"이봐, 형씨. 희망을 가져. 꿈과 동경을 잊어서는 안 돼. 일어서라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먹구름 속으로 걸어들어간들 어때. 경치가 달라지면 눈앞에 보이는 것도 달려져. 이리저리 헤맬지언정 환한 빛을 향해 나아가면 되는 거야. 그러면 언젠가 파도 너머로 육지가 보일 걸세." - P90

"츠키하라 씨, 당신은 지금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지금 ‘이 곳‘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사는 거죠.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 데도 안 보내려고, 안 가도 된다고,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 P167

"뇌와 마음은 별개예요. 머리가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이 어딘가 가고 싶다면 그곳을 떠나보는 것이 좋아요. 인간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행복을 원하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가야 할 곳으로 향하면 다리의 통증은 사라질 거예요. 그게 답이에요." - P168

밤하늘을 날아 봄바람이 불어왔다. 앵무새 선장이 갑자기 뛰어올라 잇세이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베푼 인정은 새끼를 배어 돌아온다." - P251

‘호치노카케스는 앞으로도 여원히 너의 친구로 남을게.‘
하늘을 나는 새가 높은 하늘에서 멀리 지평선까지 이어진 땅을 내려다보듯, 홀로 꿋꿋이 걸어가는 잇세이를 곁에서 지켜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261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격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줄 모르는 츠키하라 잇세의 길을, 그가 걸어가는 길을 높은 하늘에서 지켜보는 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261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는 사실.
만약에 세상에 마법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고 육체의 죽음과 함꼐 영혼도 사라져버린다 해도, 기억이나 추억은 무無가 될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이 이 지상에 존재하면서 울고 웃는 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 P263

"이 백화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백화점 소속이든 입점 매장 소속이든 모두 한 식구입니다. 그분이 백화점을 감싸려 했다는 것을 안 이상, 적어도 그분이 마케팅하려 했던 책을 백화점 전체가 응원하는 것이 그분을 위한 아주 작은 예의일 거라고 저희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희 백화점 직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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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읽은『오후도 서점 이야기』 후속편이 책으로 나와 있다고 해서 며칠 전에 같이 빌려왔다. 후속편을 읽기 전에 『오후도 서점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웬걸. 아예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책을 먼저 읽느라 독서가 밀려 책을 빌려 놓고도 읽어보질 못하고 그냥 반납해버릴 때가 가끔 있는데 이 책도 아마 그런 경우였나 보다. 책을 빌린 기억은 분명히 있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서점을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과 착각했나 보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책 제목만 봐서는 '오후도 서점'이 주 배경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긴가도 서점'과 '오후도 서점' 두 서점 둘 다 이야기의 주요한 배경이다. 오래된 백화점 내 긴가도 서점에서 일하는 문고본 담당 잇세이는 숨은 명작을 찾는 달인이다. 그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소리소문없이 묻혀 결국은 절판되었을지도 모르는 좋은 책을 베스트셀러로 이끌 정도다.


물론 그가 고른 모든 책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서점원과, (대형 서점도 아닌) 그가 속한 서점의 노력으로 단 몇 권이라도 그런 성과를 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단지 소설 속 판타지만은 아닌 게 실제로 일본에서는 유능한 서점원이 기획한 서점 발(發) 베스트셀러들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 사례는 아직 못 들어봤다. 물론 한국에도 있는데 내가 못 들어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잇세이의 눈에『4월의 물고기』라는 작품이 들어온다. 왕년에 유명했던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 데뷔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 현재는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지만 작품의 성공을 확신한 잇세이가 마케팅을 기획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긴가도 서점을 떠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잇세이는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서점 사장이 운영하던 '오후도 서점'이라는 곳을 방문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후 이야기는 '오후도 서점'과 '긴가도 서점' 에서 진행된다. 후속편인 『별을 잇는 손』에서는 오후도 서점을 이끄는 잇세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텐데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기대된다. 


2.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서점에 관한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데, 한때 서점원이었던 적도 있다 보니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오래 일하지는 못했고 지역에 있는 중형서점에서 반년 정도 일했었다. 아쉽게도 『오후도 서점』에 나오는 것처럼 - 출판사와의 긴밀한 공조와 함께 - 특정한 책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해서 판매한다든가 하는 경험을 해보진 못했다. 


서점에서 내 주된 업무는 매입(새로 들어온 책을 서점의 도서관리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일)이었고 그외에는 도서 진열과 안 팔리는 책 반품과 다른 기관에 책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우리 서점뿐만 아니라 모든 서점에서 해야 할 필수 업무지만 난 그외에도 더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서점만의 독자적인 프로그램 기획이라든가, 특정한 테마로 책을 큐레이션한 서가를 만든다든가. 안타깝게도 내가 일하던 서점에서는 그런 시도가 전혀 없어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는데 그만한 신뢰를 쌓기엔 서점원으로 머물렀던 기간이 너무 짧았다. 


사실 그런 경험을 해볼 기회가 한 번 있긴 했다. 내가 서점에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페친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었다. 그가 운영하던 서점도 지역의 중형 서점이었지만 - 손님으로 직접 가본 적이 있는데 -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페친도 알고 있었지만) 거주지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당시에 내가 대학원 합격을 받아놓은 상황이라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양했다. 대학원이야 휴학하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내가 과연 좋은 서점원으로 자격이 있는지 자존감이 엄청 떨어져 있어서 굳이 위험부담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서점원으로 서점과의 인연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다.)


그러다가 아마도 몇 달 전인가? 무심코 인스타그램에서 예전에 일했던 서점을 검색해봤는데, 계정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서점원의 계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점 공식 계정이었다. 세월이 가니 여기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 전 직장의 서점원과 소통을 시도했다. 전직과 현직의 만남. 관심사가 같았기에 대화는 순조로웠고 당장 약속을 잡았다. 약속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만나는 건 쉬웠다. 서점원은 서점에 가면 (쉬는 날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나도 집에서 버스로 1시간만 있으면 갈 수 있었으니까. 


둘이 만나 우선 점심을 같이 먹으며 얘기를 들었는데, 그가 들려준 나의 전 직장 이야기가 반가웠다.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젊은 서점원 두 사람이 서점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내가 거기에서 일할 때 하고 싶었던 일도 일정 부분 그들이 하고 있었다. 그는 서점 일에 열정적이었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도 그렇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서점의 앞날이 밝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는 지금도 SNS 계정에 서점 이야기를 부지런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2대에 걸쳐 운영되는) 내가 초딩 때부터 들락거렸던 그곳이 부디 오래 살아남아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서점을 다룬 책은 『전국 책방 여행기』 한 권 뿐이다. 그런데도 이 글에 책 네 권을 모아둔 까닭은 이 책들의 저자가 서점원 출신이어서다. 나는 그가 작가가 되기 전, 아직 진주문고에 있었(지금은 내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에서 그를 알고 있었는데, 그가 진주문고에서 서점원으로 아직 일하고 있었을 때 문예지로 정식 등단한 것으로 기억한다. 석류 작가의 브런치에 방문하면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은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 




이 책도 서점원이 썼다. 앞서 말했던 석류 작가처럼 진주문고 출신이다.(이 분도 페이스북으로 알게 됐다.) 퇴사 후 다른 지역에서 직접 서점을 차렸는데 지금도 그 서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암에 걸린 아내와 떠난 세계여행 이야기다. 진주문고와 책의 저자와 모두 페친이어서 출간 직후부터 책을 알고 있긴 했는데, 아직도 안 읽어봤다. 7년 전에 출간된 책인데 지금도 아내 분과 잘 살고 계시려나.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잘 안 보이겠지만 확대해서 보면 '장유서점'에서 추천한 책이라고 되어있다. <10월 우리동네 북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김해도서관에서 이번에 마련한 테마서가다. 책을 추천하는 서점이 달마다 바뀌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지역 서점과 상생하려는 이런 노력은 훌륭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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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플랫폼으로 유명한 팟빵에서는 팟캐스트와는 별도로 '오디오 매거진'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팟캐스트가 1주일에 몇 번 혹은 비정기적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전달한다면, 오디오 매거진은 한 달에 한 번 8편 이상의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발행한다. 말 그대로 오디오 잡지다. 매달 일정한 정기구독료를 내고 들을 수 있다. 아직 서비스 초창기라 그런지 오디오 매거진은 <월말 김어준>과 <조용한 생활>이 두 개밖에 없다. 두 매거진 모두 월간으로 나오는데 이 서비스가 정착이 되면 더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두 매거진 모두 무료 체험과 무료공개분으로 이용해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월말 김어준 part 1』은 팟빵 오디오 매거진 <월말 김어준>에서 방송했던 에피소드를 철학, 과학, 미술, 음악, 고전 다섯 개 장으로 구성해서 엮은 단행본이다. 칸트, 헤겔, 니체, 다빈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보이고, 뇌과학, 고딩 때 배운 고전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방송을 활자화한 거라서 김어준이 질문하고 해당 분야의 권위자 (보통 교수)가 이걸 설명하는 형식이다. 일단 재밌다. 깊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인한테 아는 척하고 싶어서 이 매거진을 만들었다는 김어준. 김어준 개인에 대한 호오의 감정을 떠나 일단 재밌다.


인문·과학 교양 지식을 얕지만 넓게 이해하고 싶다면,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방송은 더 재밌다. 방송에는 책에 나오지 않은 분야도 다루는데 그건 다음 단행본에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죠. 그게 변증법이에요. 이 작은 물병 하나 속에도 제주도 바닷가에 흐르는 아름다움과 그 속에 땀 흘리는 노동자의 슬픔과 이런 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깊이 있게 계속해서 볼 수 있는 힘, 그게 변증법이에요. - P57

그렇죠. 범주화가 잘되면 뇌가 정보를 집어넣을 서랍들이 딱 정리되어 있는 겁니다. 분류가 자동으로 되죠. 그래서 공부는 스스로 분류압을 느낄 때까지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방이 많아 어지러워지면 힘들잖아요. 그러면 청소를 하게 되죠. 그 모든 것이 지향하는 것은 ‘느낌‘이라는 세계입니다. - P118

대량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저는 그 사회를 담고 있는 느낌의 축이 바뀌어 버린 것으로 봅니다. 그 사회가 공유하는 느낌은 공기 같은 거예요. 누구나 들이마실 수밖에 없죠. 그러면 판단력이 바뀝니다. 문학이나 예술가들이 그 사회를 담고 있는 느낌을 맑고, 다양하게 만들어줘야 돼요. 그게 바로 판단력과 링크되기 때문에 그래요. - P125

그렇죠. 그래서 어떤 부모한테 태어난 것보다 어느 도시에 태어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파리에서 태어나는 것과 아프리카 어느 도시에서 태어나는지가 어느 부모로부터 태어나느냐보다 사람의 운명을 더 많이 바꿉니다. 느낌이 다른 곳에서 태어나면 판단이 달라져요.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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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은 눈으로 보아 가며 맞고 안 맞고를 조절하는 걸 일컫는 말이다. 가늠의 어원은 ‘간험‘看驗이고, 눈으로 보고 실험하여 알맞게 하는 걸 의미했다. 예컨대 화살을 쏠 때 과녁과의 거리를 재는 게 가늠이다. 총기의 가늠쇠, 가늠구멍, 가늠자 등도 마찬가지다. 이에 연유하여 ‘가늠‘은 목표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리는 표준, 어떤 표준이 될 만한 짐작을 뜻한다. - P22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술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작對酌을 즐겼다. ‘참작‘은 이러한 대작 문화 산물이다. ‘참작‘은 본래 술잔의 양을 헤아리는 것을 의미했다. 하여 ‘참량‘參量이라고도 했다. 전통적으로 상대방에게 술을 따를 때는 일정한 양이 있었으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따라야 했다. 그러자면 술을 얼마만큼 잔醆에 따랐는지 헤아려야參 했다. ‘참작‘이란 여기에서 유래한 말로, 오늘날 ‘참고하여 알맞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헤아림‘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다. - P23

‘어림쳐서 헤아림‘ ‘겉가량으로 생각함‘이라는 뜻의 ‘짐작‘도 음주 문화의 산물이다. 짐작의 어원은 ‘참작‘參酌이고 술 따를 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걸 의미했다. 참작이 얼마만큼 따라야 할지 술잔을 보며 참고하는 것이라면, 짐작은 술 따를 시기를 마음으로 헤아리는 걸 뜻한다. ‘침량‘斟量이라고도 하지만 후에 침작과 침량은 쓰이지 않고 ‘짐작‘으로 바뀌었다. 현재 짐작은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 P23

‘녹초가 되다‘라는 말은 ‘아주 맥이 풀리어 늘어지다‘라는 뜻이다. 본래 ‘녹초‘는 ‘녹은 초‘라는 뜻이지만, 지쳐서 축 처진 사람 모습이 마치 녹아내린 초를 연상시키므로 몹시 지친 상태를 뜻하는 말로도 썼다. 다시 말해 녹초는 녹아 흘러내린 초처럼 물건이 낡고 헐어서 보잘것없이 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은 주로 사람이 맥이 풀어져 힘을 못 쓰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쓴다. - P83

그렇다면 지쳤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피곤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 ‘지치다‘는 원래 ‘배탈이 나서 묽은 똥을 싸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었다. 요컨대 설사하는 걸 이른 말인데, 설사를 하면 대부분 몸에 기운이 빠지고 피곤을 느끼게 된다. ‘지치다‘는 그런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그리하여 힘든 일을 하거나 병·괴로움 따위에 시달려 기운이 빠졌을 때 ‘지치다/지쳤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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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과 강의는 같은 말일까? 범법과 위법과 불법은 같을까? 이처럼 모국어 화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비슷해보이지만 미묘하게 느낌이 다른 낱말들이 있다. 그 중에는 우리의 언어 직관으로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는 어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럴 땐 국어사전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글을 쓸 때 오직 우리의 직관과 독서 경험에만 의존해서 단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문 편집자나 작가가 아닌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책은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 어감 사전』이다. 저자는 30년 동안 국어사전을 만들어왔다는 안상순 씨다. 게다가『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동사의 맛』, 『끝내주는 맞춤법』등으로 우리말 지침서(?)를 많이 펴낸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니 더욱 신뢰가 간다.





오늘부로 정확히 두 달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신간 소식을 접하는 경로가 무지 다양해서 인스타그램에서 봤는지, 뉴스레터에서 봤는지, 알라딘 사이트에서 봤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처음 봤는지는 모르겠다. 『산책의 언어』는 크게 '하늘', '땅', '물', '식물', '동물', '날씨', '시간과 계절', '자연 속에서'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평소에 잘 몰랐던 자연의 이름을 모았다. 본문에서 소개하는 단어는 이 중에 한자어를 기반으로 한 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시피하며 대부분 토박이말이다.


앞에 소개한 『우리말 어감사전』이 설명문의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본 책에서는 에세이의 형식으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우리말 단어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준다. 낱말의 실제 쓰임새를 보여주려고 이야기를 일부러 만든 것 같긴 하지만, 단순히 어휘 뜻만 나와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이런 방식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바로 아래와 같은 방법이다.



솜사탕처럼 베우 물면 달 것 같고 몸을 던지면 솜이불처럼 푹신푹신하게 몸을 받쳐 줄 것 같은 구름도 있다. 뭉게구름이다. 뭉게뭉게 피어나 세로로 두껍게 발달한 뭉게구름은 그 모양을 따서 산봉우리구름, 솜구름, 더미구름, 적운으로도 부른다. 뭉게구름은 구름그늘을 만들어 더운 여름여행을 돕기도 하지만, 계속 발달해 큰 탑 모양으로 커지면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뿌리기도 한다. 소나기구름, 쌘비구름으로 부르는 적란운이다. (230쪽)


에세이 형식의 글이 끝날 때마다 사전 형식으로 어휘를 따로 정리해두기도 했다.



나는 달·구름·계절의... 그리고 그밖의 것들의 이름이 이처럼 다양한지 몰랐다. '해'나 '달'같이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 어휘의 확장은 곧 사고의 확장이라는데, 몰랐던 우리말 단어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나는 때때로 불거지는 문해력 논란이 불만이었다. 


사실 그것은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어휘력' 문제인데, 왜 논란이 되는 낱말들은 하나같이 한자어들만 있는지. 물론 내가 한자어나 외래어에 배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 국어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들이 우리의 국어생활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럴 필요도 없고 - 왜 문해력 논란의 주인공은 늘 한자어인지. 그냥 개인적인 푸념이다.


평소에 안 쓰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여기에 있는 단어들을 기억하긴 힘들겠지만, 가끔 에세이나 독후감을 쓸 때 혹~~시라도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써먹어볼만한 말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우리말 어휘력 사전』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알라딘 사이트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주문했었다. 제일 앞에 소개한 『우리말 어감사전』처럼 유유출판사에서 펴냈는데 두 책이 같은 시리즈라고 한다. 『우리말 어감사전』이 우리말 단어의 미묘한 어감을 설명하고, 『산책의 언어』가 자연물의 이름(?)을 소개한다면, 본 책에서는 단어의 어원을 설명한다. 길게 주절주절거릴 것 없이 책의 일부를 살짝 인용해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술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작對酌을 즐겼다. '참작'은 이러한 대작 문화 산물이다. '참작'은 본래 술잔의 양을 헤아리는 것을 의미했다. 하여 '참량'參量이라고도 했다. 전통적으로 상대방에게 술을 따를 때는 일정한 양이 있었으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따라야 했다. 그러자면 술을 얼마만큼 잔醆에 따랐는지 헤아려야參 했다. '참작'이란 여기에서 유래한 말로, 오늘날 '참고하여 알맞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헤아림'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다. (23쪽)


위에 인용한 '참작'은 '정상참작'할 때 참작이고, '짐작'도 우리가 아는 그 '짐작'이 맞다. 평상시에 자주 쓰는 말인데, 음주 문화에서 비롯된 말인지는 몰랐다. 물론 '참작'과 '짐작' 두 글자에는 '술 부을 작(酌)'자가 들어가니까 한자를 알았더라면 의문을 지닐 법했겠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싶다. 내가 역사 전공자 출신이라 그런지 어원 이야기는 늘 재밌다. 우리가 공부한다고 영어단어를 외울 때 어원 중심으로 외우면 좋다고 그러는데, 우리말의 어원에도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궁금해하면 우리의 국어 생활도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아래에는 단어 관련 책은 아니지만, 내가 엄청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읽고 있는 맞춤법 책을 하나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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