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영어사전인 《메리엄 웹스터 사전》편찬자 중의 한 사람인 코리 스탬퍼가 쓴 에세이다. 영어는 주류 언어라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온라인 시대에선 영어사전도 예외가 아니구나. 언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사라지고 태어나는데 사전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니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언젠가 한국에서 종이사전은 국립국어원에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 정도만 남으려나. 코리 스탬퍼의 책으로 사전 편찬자의 삶을 엿봤는데, (세상에 만만한 직업은 없지만) 사전 편찬자들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듯하다. 나중에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을 읽고 후기를 쓰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긴 한데, 웹사전이 나오기 전부터 사전을 만드는 데 헌신한 많은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를 다루는 장인들이었구나. 

오늘날 우리 업계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언어는 성장 산업이지만 사전은 사양 산업이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새 사전을 구입한 건 언제인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내가 남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면 ― 곧장 우리가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하루 종일 방에 앉아서 글을 읽고,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단어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 P27

메리엄 웹스터에서 사전 편찬자가 되기 위한 공식 요건은 두 개뿐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공인 4년제 칼리지나 대학 학위가 있어야 하며, 영어 원어민 화자여야 한다. - P27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측정할 수 없고 명시되지 않은 조건이 또 있다. 무엇보다도 ‘슈프라흐게퓔sprachgefuhl‘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영어 화자들이 독일어에서 훔쳐온 이 단어는 ‘언어에 대한 감각‘을 뜻한다. 슈프라흐게퓔은 자꾸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미끄러운 장어이자, ‘planting the lettuce(양상추를 심다)‘와 용법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머릿속 기묘한 윙윙거림, ‘plans to demo the store(가게를 데모할 계획)‘이 쇼핑하는 법에 대한 친근한 시범이 아니라 대형 망치를 들고 패기를 발휘할 계획을 뜻한다는 걸 알려주는 눈의 경련이다. 모두에게 슈프라흐게퓔이 있는 것은 아니며 영어에 무릎까지 담그고 그 진흙탕 속을 헤쳐나가려고 애써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 P30

15년 이상 메리엄 웹스터에서 편집자로 일한 에밀리 브루스터는 모든 편집자들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맞아요,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혼자 칸막이 사무실에 앉아서 단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듣기만 해도 좋네요!" - P33

사전 편찬자들은 그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일생 영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사전 편찬업의 속성 자체가 이를 요구한다. 영어는 아름답고 당혹스러운 언어로, 깊이 잠수해 들어갈수록 공기를 마시러 수면까지 올라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요한다. 사전 편찬자가 되려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단어와 그것의 많고도 복잡한 용법들을 숙고하고, 그 용법들을 해당 단어가 글에서 사용되는 대다수 용례를 아우를 만큼 넓은 동시에 실제로 이 단어에 대해 구체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해줄 만큼 좁은 두 줄짜리 정의에 담아내야 한다. - P36

예를 들어 ‘tency‘와 ‘measly‘가 서로 다른 종류의 작음을 일컫는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무엇이 단어를 가치 있고 아름답고 혹은 올바르게 만드는지에 관한 개인의 언어적, 어휘적 편견을 제쳐두고 언어에 관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숙고 중인 단어가 영어에서 썩 내쫓아야 마땅한 역겨운 똥 덩어리더라도, 모든 단어는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기묘한 수도승처럼 속세를 등지고 전적으로 언어에만 헌신한다. - P37

옛 사전들을 들을 연구하는 한 학자 친구가 사전 편찬이 직업보다 소명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정말 그렇다. 사전 편찬자들은 매일 팔꿈치까지 오는 영어라는 탁류 속으로 몸을 던지고, 단어들과 씨름을 벌인 끝에 진흙탕에서 단어를 잡아 빼서 펄떡거리는 채로 페이지 위에 내던지고, 지치고 들떠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모든 작업은 회사 이름 아래 익명으로 출간되니 명성을 위한 일도 아니요, 사전 편찬에서 얻는 이윤은 센트 단위로 계산해야 할 만큼 보잘것없으니 부를 위한 일도 아니다. 사전을 창조하는 일은 마법적이고, 절망스럽고, 두통을 유발하고, 평범하고 속되며, 초월적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고 일컬어진 언어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 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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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 국어 문법서를 빌리러 갔다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저자는 '코리 스탬퍼(Kory Stamper).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Merriam Webste)에서 20년 넘게 근속하고 있는 사전 편집자이자 단어 애호가다. 국어사전 편집자가 쓴 책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 어쩌다 보니 영어 사전 편집자의 저서를 먼저 읽게 됐다. 


책 날개에 쓰인 저자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인문학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라틴어·그리스어·고대 노르웨이어·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난 사전 편집자는 자국어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하긴 아무리 자기 나라 말이라고 해도 - 다른 언어의 영향 없이 - 오로지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면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도 있을 법하다.) 코리 스탬퍼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요즘 단어 애호가로 살고 있어서 이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수많은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영어, 그 중에서도 영단어를 다루는 사람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 책에서 펼쳐질 이야기들이 자못 기대된다.




'메리엄 웹스터'가 아무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라지만, 출판사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자국만이 아니라 멀리 한국의 지상파 뉴스에 오르는 걸 보니 영어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새삼 실감된다. 어휘와 문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영국이랑 미국이 영어를 공유하고 있어서 미국은 영국에서 만든 사전을 쓸 뿐, 별도로 자국어 사전을 만들지 않는다고 예전에 들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였나 보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한국에서도 살 수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유튜브 계정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영단어를 좋아하고 영어 듣기에 익숙한 사람은 공식 유튜브 계정을 방문하면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에서 'Merriam-Webster Dictionary'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난 영어 거의 못 알아듣지만 일단 구독해 두었다. 언젠가는 알아듣는 날이 오겠지 뭐. ㅋㅋㅋ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의 저자 '코리 스탬퍼'도 이 채널에 출연해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고 한다. TV나 라디오에서도 만난 적 없는 사전 편집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지금은 大유튜브 시대다. 한국에서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도 유튜브 채널이 있다면 난 바로 구독할 텐데. 한국에서 국어사전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대부분 망했다고 들었지만, 아직 명맥을 이어가는 동아출판(사전만 만드는 곳은 아니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전 동아에서 만든 국어사전만 봤는데. ㅠ





두 권 다 같은 저자의 책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최후의 사전편찬자들』은 아마 어떤 종이신문에서 출간 소식을 접했던 것 같다. 국내의 사전 전문 출판사들이 사라지면서 자취를 감춘 국어사전 편집자들을 저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담았다. 국어사전이 모르는 낱말의 뜻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국어 교과서에서 모르는 낱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오는 숙제를 받기도 했었지. 그 시절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국어사전에서 단어 뜻 빨리 찾기 대회를 연 적도 있다. 빨리 찾는 사람한테 상품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이때만 해도 사전에서 뜻 찾는 속도가 느렸는데, 나중엔 여기에 재미를 붙여서 모르는 거 나올 때마다 찾다 보니 지금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거랑 속도 차이가 별로 없다. 그땐 사전을 너무 많이 써서 걸레짝처럼 만들 정도였으니까. 요새 애들은 그 감성을 알려나 몰라.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사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최근에 산 책들을 모두 읽고 나면, 몰입 독서를 이 두 권으로 마무리짓게 될 것 같다. 그 뒤로도 읽긴 하겠지만, 슬슬 다른 분야도 좀 읽어야지. ^^:;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밀렸다.



그리고 아직 안 본 영화 <말모이>는 위 책 두 권과 함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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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2-14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행복한 사전>이란 일본 영화를 봤는데 꾸준하게님
글 읽으니 떠올랐어요. 요즘
이 분야 책 그야말로 꾸준히 읽고 계신모습 넘 보기좋아요^^*

꾸준하게 2022-12-14 22:15   좋아요 1 | URL
우와. 그런 영화가 있었군요. ㅎㅎ 추천 감사합니다. 나중에 볼게요. 재밌어 보이네요. 아마 연말 내지 1월 초까지는 이런 테마로 책을 읽을 것 같아요. 이 글에 추가한 책 두 권까지 읽고 나면 다시 자유롭게 여러 분야의 책을 섞어서 읽을지, 아니면 다른 분야로 하나만 정해서 한동안 또 집중적으로 읽을지 생각해봐야겠어요.^^

호우 2022-12-15 0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전 만드는 회사들이 잘 안되는군요. 하긴 저부터도 인터넷 사전을 더 많이 이용해요. 의식하고 일부러 종이 사전을 찾아볼 때도 있어요. 요즘 사전 못 찾는 사람도 많더군요. 초등학교때 사전 찾는 법 처음 배워서 집에 와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아무거나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신기해했었는데.

꾸준하게 2022-12-15 11:31   좋아요 1 | URL
예전엔 국어사전의 종류가 더 다양했었어요. 지금은 여전히 가끔 나오는 종이 사전이 몇 개 있긴 하지만, 그걸 만드는 곳이 사전만을 만드는 출판사들은 아니라서 사전 전문 회사는 다 망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 사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학교 수업을 계기로 종이사전 사용에 재미를 붙였죠. 근데 요새는 종이사전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니 어쩐지 좀 충격이네요. ㅠ 하긴 네이버에서 찾을 줄만 알지, 어쩌면 종이 사전의 존재조차 모를 수도 있겠네요. 그런 걸 보면 기술 발전이 좋은 점도 있지만 어쩐지 좀 아쉬울 때가 있어요.

모나리자 2022-12-15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국어사전, 한자 옥편을 찾으며 공부하던 학창시절이 떠오르네요. 언제적 얘긴지요.ㅎ
요즘은 네이버에 각국의 사전이 나와 있어서 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 변화에 사라져가는 것도 많군요.

꾸준하게 2022-12-16 18:13   좋아요 1 | URL
영어, 일본어 사전이야 옛날에도 흔했지만 비인기 외국어 단어의 뜻을 찾을 땐 정말 유용하더라고요. 한자는 웹사전 시대로 넘어오면서 정말 엄청나게 편리해졌고요.

사라져가는 존재들은 아쉽지만, 웹사전만의 장점도 있으니까요. 전 온/오프라인 사전이 계속 공존하길 바라지만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확실히...
 



분명 처음 읽는 책인데, 여기에 쓰인 문장들을 읽으며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어쩐지 저자 이름이 익숙해서 확인해봤더니, 그에게서 예전에 맞춤법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줌(ZOOM)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이메일로 받은 수업 교재를 파일집에 넣어서 잘 정리해뒀었다. 바로 아래와 같이.





문장이 익숙한 건 당연했다. 그때 수업 자료로 받았던 글이 고스란히 책에 실려있었으니까. 그러니 기시감이 아니라 같은 글인 거다. 책 본문에서 강의에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여기에 실었나 보다. 책 날개에 수록한 작가의 약력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 서울대 금속학과 졸업 →  제련소  취업 → 학부 국문학과 편입 후 동대학원 졸업 → 현재는 시인 겸 대학 교수(사실 교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계속 국문학 강의를 한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공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강신주 씨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흔한 이력일 수는 없으니까. 


(혹시 내가 들었던 강의를 듣고 싶으신 분은 '말과활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강사 이름인 '정제원'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글쓰기와 맞춤법을 주제로 하는 저자의 강의가 열린다. '말과활아카데미'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신규 강의를 안내하는 이메일을 보내준다. 인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플랫폼이다.)


우리말 맞춤법을 다룬 책을 살면서 많이 읽었지만, 오로지 '띄어쓰기'만을 다룬 책은 이번에 처음 읽는다. 이 책 한 번 읽고, 나의 글쓰기에서 '띄어쓰기'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는 없겠으나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국어 문법에 관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국어사전을 가까이 해야 하지만 독서 습관을 바꿀 필요도 있다. 책을 읽으며 내용만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띄어쓰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도 유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지킨 좋은 글들을 눈으로 익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9쪽)


"곁에 두고 있는 책 중 하나를 집어들고 읽으며 어떻게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어사전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단어라고 생각했던 말이 실은 두 단어이고, 두 단어라고 생각했던 말이 실은 한 단어였다는 사실을 국어사전에서 깨닫게 되는 순간,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정말로 단순해진다." (11쪽)


지은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문법은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 대상이라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당연히 완벽하진 않겠으나 우리가 오늘날 최소한의 맞춤법을 지키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자의든 타의든 수없이 많이 글을 읽고 써오면서 문법을 체화한 덕분일 테니까.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맞춤법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읽는다면 더 좋다. 물론 사전과 함께 한다면 최상이다.




요즘엔 종이 사전이 잘 나오지 않는데, 종이사전만의 손맛을 느껴보고 싶어서 작년에 질렀다. 어릴 땐 하도 많이 봐서 사전이 시꺼매질 정도였는데, 요즘엔 네이버를 이용하다 보니 아직도 새 책 같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앞으론 열심히 이용해야지. 사전에 관해선 온/오프라인 포함해서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으니까 그건 다음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맞춤법을 다룬 책이라지만, 내가 봤을 때 시중에 나와있는 대중서의 대다수는 보통 '단어'만을 다룬다. 아니면 이 분야 최고의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 쓰기』(5권 다 갖고 있다) 처럼, 내가 쓴 문장을 교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던가.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우리말 문법을 전체적으로 쉽게 설명하는 책은 찾기 힘들었다. 


'문법'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의 눈높이에서 쓰긴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일까. 그런 점에서 『(글쓰기를 위한) 4천만의 국어책』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상당히 만족하는 책이다. 사실 내가 이걸 사서 읽었던 당시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그때도 쓰기와 읽기를 좋아했지만 맞춤법에 크게 관심은 없었던 듯하다. 완독을 했는지 못 했는지도 기억 안 난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만한 책이 드물다.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까 절판됐는데 ebook은 볼 수 있다. 2006년에 출판됐으니 오래됐지만, 그 사이에 국어 문법의 틀이 크게 변하진 않았을 테니 지금 봐도 상관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 역시 맞춤법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오랜 경력을 지닌 출판편집자가 썼기에 더 신뢰가 간다. 나도 한때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었는데. 몇 년 전에 사놓고 완독을 한 번도 못했지만, 이 책의 특성상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으면 된다. 괜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려고 욕심 부렸다가 도리어 얘한테서 멀어진 듯하다. 앞으로는 곁에 두고 알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만 봐야겠다.




산 책과 빌린 책이 섞여있다. 내가 원래는 좀처럼 특정 분야 책을 몰아서 읽는 타입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요새는 이 분야만 계속 읽는다. 연말의 나는 아무래도 대단히 '언어에 진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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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13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이 사전을 찾는 손맛이 있는데. 저도 사전이 그저 책꽂이에 꽂혀만 있네요. 새삼 사전을 가까이 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언어에 진심인 꾸준하게님의 추천책들에서 많이 배웁니다. 공부에 깊이가 느껴집니다.

꾸준하게 2022-12-13 09:58   좋아요 1 | URL
깊이는 없어요. ㅋㅋㅋ 그냥 취미 삼아 가볍게 읽을 뿐인걸요. 근데 국어 문법서를 취미로 읽는 비전공자 출신 일반인이라니... 저도 참 특이하죠? ㅋㅋㅋㅋ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
 



어휘력을 늘리는 데엔 책과 사전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껏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건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책이나 사전에서 본 다양한 단어들을 모두 기억할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기억한다고 해도 그걸 적재적소에 써먹기란 쉽지 않다. 말이나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에겐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어휘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일상 어휘력을 확장하려면 그보다 더 실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어른의 어휘공부』는 어휘력 빈곤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최상의 어휘력 실전 훈련서다. 여태껏 살면서 읽은 관련 분야 책 중에 가장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책 뒷장의 판권을 보니 올해 6월에 나온 신간인데 벌써 6쇄나 찍었다. 한국어 어휘를 섬세하게 사용하는 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기뻤다. 앞으로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언어 세상을 몇 안 되는 언어가 독식하고 있다. ‘숱하고 허다하며 수많으며 수두룩하고 비일비재하며 하고많고 흔전만전하다‘로 말할 수 있는 상황과 대상은 ‘정말 많고, 너무 많고, 진짜 많고, 좀 많다‘로 뭉뚱 그려 모습을 드러낸다. 부사 한두 개로 농도만 달리한 우리의 언어 세계는 종일 요동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눈에 들어온 세상을 잿빛 단 하나의 색으로 덮어 버린 듯하다. - P5

이 책은 ‘한국인들이 반복적으로 쓰는 어휘를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서 책과 사전을 가까이하라지만 무작정 이들을 뒤적여 본다고 어휘력은 늘지 않는다. 다채로운 어휘를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나의 말과 글이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 P5

상민이는 어른들이 하는 일에 나서다가 결국 혼이 나고 말았다.

…붙임성이 좋은 것을 넘어서 어른들의 일에 자꾸 참견한 모양이다. 위 문장에서는 ‘무슨 일에나 자꾸 가리지 않고 참견하다‘라는 뜻의 ‘덥적덥적하다‘가 ‘나서다‘를 대신할 수 있겠다. ‘덥적덥적하다‘는 ‘참견하다‘라는 뜻 외에도 ‘남에게 자꾸 붙임성 있게 굴다‘라는 뜻도 가진다. 그러고 보니 참견과 붙임성이 좋은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한 것도 같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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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당첨돼서 적립금 1만원을 받았다 (무슨 이벤트인지는 까먹었다). 응모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알라딘에서 받은 메일을 보고 알게 됐다. 저번 달 초에는 3만원, 오늘 1만원. 수익이 쏠쏠하다. 물론 진짜 현금은 아니고 알라딘 내에서만 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다달이 나가는 책값이니 나로선 정말 감사할 따름. 


유효 기간은 아직 넉넉하지만, 들어온 김에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책을 살까. 보관함에 담아둔 책이 다양하지만, 일단 분야는 이미 정했다. 난 이번에도 '언어'쪽 책을 사기로 했다. 세 권을 다 사면 좋겠지만, 자금 사정상 일단 이 중에 한 권만 사야겠다. 원래 옛날부터 좋아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올 연말에는 유독 더 애정이 간다. 이 흐름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 흐름을 즐겨보려 한다. 몰입 독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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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2-0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의 맛 잘못 들면 못빠져 나가는 데!! 꾸준하게님의 1만원 받고 2만원쓰는 생활을 위해 부자되기를 응원합니다 ㅋㅋㅋㅋㅋ

꾸준하게 2022-12-08 13:07   좋아요 1 | URL
만원 받고 2만원 쓰는 생활. ㅋㅋㅋㅋ 근데 맛 들이고 싶어도 알라딘에서 줘야 말이지요. ㅎㅎ 공쟝쟝님한테야 흔한 일이겠지만, 전 글솜씨가 부족해서요. 공쟝쟝님이야말로 부자 되셔서 좋은 리뷰, 페이퍼 많이 써주세요. ♥️ ♥️ ♥️

꾸준하게 2022-12-08 12:56   좋아요 1 | URL
안 궁금하시겠지만, 책은 『어른의 어휘공부』를 주문했어요. 😁😁

공쟝쟝 2022-12-08 15:15   좋아요 1 | URL
꾸준하게님의 몰입독서와 어른의 어휘를 응원합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