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단순히 우리 뇌에서 젠더 차이를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학술적으로 밝힌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에서 1, 2부까지는 그런 면이 두드러지지만, 두 저자들이 집필 의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3부 '젠더의 문제', 4부 '젠더 없는 세상'에서는 이 책이 단순히 자신의 연구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1부와 2부에서 남성의 뇌, 여성의 뇌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음을 논한 두 저자들은 3부에서는 젠더 이분법의 환상을 깨고 그것이 남녀 개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고 있음을 고발(?)한다. 그리고 4부에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기존의 젠더 시스템을 벗어난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대중적인 학술서(사실 그런 책도 좋아한다)일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었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나 또한 저자와 같은 꿈을 꾼다. '젠더 없는 세상'을.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논지를 펼치는 1부와 2부도 정말 흥미로웠는데 학술적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논문 같은 글은 아니고, 에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손방(문외한)인 분야 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은 건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선생의 책 이후 처음인듯하다. 언젠가 영어 실력이 좀 더 쌓이면 원서로도 읽고 싶다. 


리뷰를 상세히 쓰면 좋겠는데, 요즘 시간이 너무 없는 게 아쉽다. 내가 소개한 것보다 훨~~~~~~~~~~~~~~~~~~씬 재밌으니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북플 친구 중에 좋아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직 책을 덜 읽었지만, 간만에 별점 만점을 줘야겠다.  

마침내 1990년대에 스펜스가 사람들은 남성적 특질과 여성적 특질의 ‘집합‘이라고 재시했다. 그녀는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성별에 대해 사회에서 기술되고 관행으로 여겨지는 과정관념에 따른 성 역할, 특성, 관심, 태도, 행동을 모두 보이지 않고, 그것들 중 일부만 보인다. 또한 다른 성별과 연관된 특성이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라고 썼다. - P135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의 말하는 방식 차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차이는 성별이 아닌 지위의 차이를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 모두 높은 지위에 있으면, 눈을 맞추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끊는 등 ‘남성적‘으로 인식되는 태도로 이야기를 하고, 낮은 지위의 남성과 여성은 모두 이유 없이 미소를 띠는 등의 ‘여성적‘ 성향을 보인다. 여자든 남자든 학생들이 내게 보내는 이메일은 "조엘 교수님께"로 시작하고 공손하게 이메일의 목적을 쓴 후 "감사합니다"로 끝을 맺는다. 그것에 대해 나는 짧고 용건만 간단한 답을 자주 보낸다. 그렇지만 내가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낸다면 학생들이 내게 하는 것만큼 예의를 갖춘 이메일을 보낼 것이다. - P138

이런 사례들은 맥락에 따른 적응을 젠더 차이로 돌리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특정 젠더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할 때조차도,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스스로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기대가 우리의 행동을 ‘젠더화‘(‘gender‘를 동사로 사용하여 사회·문화적 성 규범에 부합하게 만든다는 의미 - 옮긴이)한다. - P139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일단 성 고정관념이 뿌리를 내리면 그것이 변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밝힌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상응하는 세부 사항들만 지각하고 기억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정보만 믿고 그렇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고정관념에 적절한 특성을 마주하면 그것을 성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예외라고 하거나 상황, 또는 개인차라고 치부한다. - P140

내가 꿈꾸는 세상에는 젠더가 없다. 성별만 있을 뿐이다. 성별만 있을 뿐이다. 여성, 남성, 또는 간성의 성기를 가진 인간들이 이 세계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누구는 인형만을, 다른 누구는 공만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둘 다를 택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인간이 해도 되는 것이라면 당신이 해도 된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립투사로만 알았던 이상설 선생. 수학자로서의 면모는 처음 알았다. 만일 그가 지금 시대에 살았더라면 평생 수학 연구에 일생을 바쳤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관련 논문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읽어보려고 아래 링크에 첨부해둔다.


http://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0914064136210

서양의 과학 지식을 배우는 데 적극적이었던 이상설이 제일 좋아했던 분야는 과학의 언어인 수학이었다. 언어가 풍부할수록 정보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수준이 깊어지는 건 당연지사, 이상설이 1896년에 성균관장으로 부임하면서 교과과정에 서양 수학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1898년에서 1900년 사이에 《수리數理》와 《산술신서算術新書》라는 수학책을 썼던 건 과학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조치였다. 그야말로 이상설은 ‘근대 수학 교육의 개척자‘였다. 평생에 걸쳐 《기려수필羈旅隨筆》을 집필한 송상도(송상도(宋相燾, 1871~1946)라는 인물은 이상설을 수학에 관심이 많은 천재적인 청년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일찍 올리려고 했는데 이제야 알라딘에 접속이 되네요.) 아기 엄마만이 아니라 아기 아빠도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니. 그것도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한 숫자라니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오로지 여성의 문제로 인식되어 병명조차 남성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는 건강 상태가 있다. 바로 산후 우울증인데, 연구자들이 이 명칭에서 젠더의 의미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기의 출산 전후에 아기 아빠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혀졌다. <JAMA 소아과학JAMA Pediatrics>에 2018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산후 우울증을 앓는 엄마와 아빠의 수가 놀랍도록 비슷함을 발견했다. 설문지에 답을 한 수천 명의 새내기 부모들 중 엄마의 5퍼센트, 아빠의 4.4퍼센트가 우울증의 기준에 해당했다. 양쪽 부모 모두에게 우울증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데 중요하다"라고 연구자들은 논문에 밝혔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시대에 스웨덴에 유학을 간 것도, 그 당시 스웨덴에서 이미 최저임금 제도라는 게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이 정도로 초엘리트인 사람이 고국에서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갔다는 점도 서글프고... 스웨덴에 있던 시절 황태자의 총애도 받았다는데, 차라리 스웨덴에 정착해서 계속 살았더라면, 스웨덴에서 간접적으로 한국을 도울 방법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경기도 여주군 출신인 최영숙은 1926년 7월 13일 밤 하얼빈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멀리 스웨덴을 향하여 떠났다. 지난 9일에 배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다롄에 상륙했을 때, 최영숙은 일본 경찰에게 잡혀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에 정통하다. 경찰에게 체포된 이유는 사회주의에 관한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86

최영숙은 노동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스웨덴의 노동조건에 주목했다. 생활비를 쓰고도 남는 임금에 놀라기도 했다. 최영숙은 스웨덴의 선진적인 노동시스템을 식민지 조선에 도입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 P186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스웨덴까지 유학을 갔다 왔으니 그의 귀국은 큰 주목을 받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렵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그를 불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영숙은 한 1년 동안만 신문기자 노릇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었으나 결국 헛된 희망이었다. 이화학교 은사인 김활란의 의뢰로 공민독본을 편찬하는 일을 맡은 게 전부였다.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스웨덴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딴 엘리트였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가 귀국한 해인 1931년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이긴 했지만, 그의 실업은 이상할 만큼 견고했다. - P1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건 후천적인 영향이 클지라도 호르몬은 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르몬도 태어난 후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과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패턴이 비슷하다는 점이 발견되어, 이 차이를 찾으려 했던 많은 연구가 실패했다. 차이점을 찾았다는 연구도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아주 일부 뇌 영역 기능에서만 차이가 나타난 사례다. 문제는 대부분의 ‘유사점‘은 보고되지 않고 ‘차이점‘만 과학계와 대중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다. - P31

그 뒤 이어진 다른 많은 연구는 다양한 언어 관련 과제 수행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차이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 논란을 잠재우려는 시도로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대학병원University Medical Center Utrecht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26개의 연구를 종합하여 ‘메타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2008년 학술지 <브레인 리서치Brain Research>에 언어 처리 과정에서 증명된 성별 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주요 언론에서 이 분석의 결과에 대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 P33

흥미롭게도, 갓 태어난 여자 아기와 남자 아기의 뇌의 구조와 기능은, 남자 아기의 뇌 전체 크기가 평균적으로 6퍼센트 큰 것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성별 차이가 미리 정해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의 가슴 모양에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점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태어난 후 살면서 생기는 뇌의 성별 차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살면서 획득하는 남자와 여자의 경험 차이를 많이 반영한다. - P38

예를 들면,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남자아이들보다 언어적 검사에서 뛰어나다. 이 사실을 두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특성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선천적인 성별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기에게 말을 하는 것이 언어능력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부모들이 아들보다 달에게 말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의 우월한 언어능력이 그들의 성별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받은 양육 방식의 차이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P40

심지어 성호르몬 같은, 성별 자체의 어떤 측면까지도 젠더의 영향을 받는다. 남성성의 생물학적 ‘정수‘라고 흔히 생각되는 테스토스테론의 혈액 수치는 많은 외부 요인에 따라 달라지며, 그중 일부는 젠더와 관련 있다. 경쟁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에게 경쟁에 참여하기를 권장하지만 여성에게는 경쟁을 말리는 경우가 많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