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운명이 바뀔 수 있냐고 질문한다. 운명, 흔히 팔자라고 하는 게 정말 정해진 걸까. 사주 명리는 기호라서 무한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진 않지만 무한한 변주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운명이란 명을 운전한다는 뜻이다. 같은 사주팔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는 그 자신의 의지, 그를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산하는 교육, 그와 주변 환경의 일상적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이 나아져야 운명도 나아지는 거다. - P170

운명학은 개개인의 삶을 신화로 만드는 미신이 아니라 고정된 언어를 해체하고 삶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실천에 가깝다. 고정된 관념을 자꾸 버려야 하는 이유는 삶의 무한성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운명은 하나의 좁은 직선 도로가 아니다. 뻔한 관념은 있어도 뻔한 인생은 없다. - P1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90년생 홍칼리 씨가 전하는 이야기.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진짜 샤머니즘'이란 이런 거 아닐까. 무형문화재였던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 아직 구천을 떠도는 영혼 모두)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세상 만물에 영혼과 신성이 가득함을 느끼며 겸허히 살아가는, 그러한 자세가 샤머니즘의 마음 아닐까.

동물과 식물, 사물에도 존재가 깃들어 있다. 바로 ‘정령’이다. 정령은 만물에 녹아 존재한다. 땅과 바람, 음식물쓰레기, 책상, 쌀알에도 정령이 숨 쉰다. 그래서 무당은 쌀알을 뿌린 후 ‘아무렇게나‘ 배열된 쌀알로 점을 본다. 정령의 기운을 읽고 소통하는 것이다. - P121

정령들에게도 한이 있다.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거대 수산업이 만들어낸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때문에 바다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인간들이 탄소를 배출하면서 공기가 오염되고, 아마존의 숲을 무차별로 벌목하고 산불을 내면서 바람이 오염된다. 이렇게 땅과 바람에 억눌린 정령들이 터져 나오게 된 현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미세먼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멀리서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한이 쌓인 정령들이 바깥으로 터져 나오면서 내는 한숨 소리다. - P121

오랫동안 궁금했다. 산업이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정말 필요한 걸까. 나는 땅의 신 파차마마에게 기도드리며 질문했다. "정말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나요? 희생 없이 공존할 방법은 없나요?" 곧이어 파차마마의 응답이 들렸다. "그래서 사물을 준 거야. 물, 불, 공기, 흙․ 다른 말로 나무, 불, 흙, 금, 물. 그러니까 의자 하나도 소중히 다루고 쓰레기 하나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면 돼. 물건 함부로 대하면 다 되돌아오는 거야. - P122

그래서 지금 지구가 아픈 거고. 사물들도 아픔을 느껴. 그래도 너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지금 살림이 거덜 나고 있어. 로봇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도 다 좋은데, 그 사물 같은 존재들에게도 무의식과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린(땅은) 너네가 무엇이든 아끼는 마음으로 쓰길 바랄 뿐이야. 너네 때문에 덜덜 떨고 있는 사물들도 있다는 걸, 사물화된 존재들이 울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사물에게 잘하잖아? 그럼 사물이 보답한다, 그게 이치야."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제로 '만신' 이라고 불리는 큰 무당 중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이 있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름도 이제 알았다)의 세월호 참사 추모굿을 이제야 본다. 목사가 다 같은 목사가 아니고, 스님이 다 같은 스님이 아니고, (천주교) 신부가 다 같은 신부가 아니듯 무당도 다 같은 무당이 아니니까. 만신은 들어봤지만, 무당이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된 건 조금 전에 처음 알았다. 한 개인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건 도자기나 나전칠기 장인 같은 예술가이자 기술자들만 해당되는 건 줄 알았지. 하긴 굿이 '종합예술'이라면 무당도 예술가니까 못 될 건 없긴 하다.




무당의 예지력, 초인적 능력만 조명받는 사회의 분위기와 다르게, 무당은 옛날부터 공동체의 한을 풀고 흥을 나누는 굿을 해오던 문화기획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무당 고 김금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굿은 종합예술이에요. 편견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즐기는 종합예술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무당도 결국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그녀는 길 위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굿을 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다. 타인에 대한 물음은 호기심에서부터 신문(訊問), 힐난, 비난까지 다양하다. 묻는 자의 정체나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 마디로도 묻는 자의 교양, 인격, 무지, 태도를 알 수 있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었나요?" "자네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 "왜 아직도 취직을 못했나?" "여자가 왜 이런 일을?" 이런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인권 침해이다. - P78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질문에 노출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상대는 어디에 ‘서‘있는지, 내가 하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이 평생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재 여성의 비혼은 생존 전략에 가깝다. ‘일과 사랑의 조화‘, 모든 TV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가 표방하는 ‘기획 의도‘인데, 이는 남성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남성들은 성 역할(아버지, 남편 되기)과 시민권(노동권)이 비례해 순기능적이다. 결혼한 남성은 안정되고 가족 수당(임금)이 지급된다. 반대로 여성은 어머니, 아내로서의 성 역할과 노동자 역할이 정면충돌한다. 이제까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여성의 선택은 세 가지였다. 시민권을 포기하거나(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 ‘여성‘을 포기하거나(가족을 포기한 명예 남성, 이혼······), 두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울트라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다 과로사하거나. 모든 선택이 고달프고 비난받는다. - P38

여성주의를 포함해 진보 진영에서는 육아의 사회화를 주장한다. 당연히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다. 그러나 육아의 의미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제까지 여성의 일생은 육아와 맞바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여성에게 육아를 맡기거나 ‘사회화‘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육아가 사회적 책임이 되려면 모든 남성이 최소 10년 이상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전까지 국가나 사회는 절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국가보다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육아에서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는 남성을 ‘따라갈‘ 뿐이다. 육아가 여성 운동의 의제인 것 자체가 문제적이다.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남성도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 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