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에선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노래들이 한때는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였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지금 유행하는 케이팝 노래들도 노년층의 노래로 여겨지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이런 「목포의 눈물」이나 「눈물 젖은 두만강」같은 노래는 어느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일까요? 10대 청소년, 아니면 30~40대 중장년? 꽤나 헷갈리시죠?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은 뱃사공‘ 같은 가사를 아무래도 10대들이 좋아했을 리는 없고, 30-40대 이상의 어른들이 좋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러면서도 의구심이 들겠죠. 원래 답이 뻔해 보이는 문제에는 함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 P23

맞습니다. 정답은 상식을 뒤집는 답입니다. 1930년대에 이런 트로트 노래를 좋아하는 세대는 10대들이었습니다. - P23

당시 30대의 어른들은 트로트로 대표되는 유행가가 ‘아이들‘의 것이라고 치부했고, 자신들은 그런 노래를 아주 못마땅해 했다는 게 자명해졌습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같은 노래가 놀랍게도 당시 청소년이었던 10대가 즐긴 노래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노래를 열두어 살 청소년들이 가슴 설레며 불렀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게 참으로 힙듭니다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 P34

뿐만 아니라 중년은 물론이거니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만 되더라도 이런 노래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기에는 일제강점기의 트로트를 너무도 중노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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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사 연구자인 저자 이명미는 말한다. 세대 갈등은 격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대중가요의 역사도 그러했다고. 더 나아가 세대 갈등이 한국 대중가요를 발전시킨 주역이라고. 뭐든 일장일단은 있다더니 세대 갈등도 꼭 부정적으로 볼 만한 건 아니구나 싶다. 오늘날과 달리 1930년대 '트로트'의 애청자도, 지금은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옛날 노래의 애청자도 십대였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이 책 외에 분야가 다른 책 두 권을 더 빌려왔지만 페이퍼의 주제와 맞지 않으니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주목해야 할 지점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획기적으로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는 시대란 늘 ‘세대 간의 취향 갈등‘이 아주 격해지는 시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어른들이 ‘요즘 애들 노래, 그것도 노래냐?‘ 고 귀를 닫아 버리는 정도를 넘어서서 , ‘요즘 애들 노래를 보니 세상이 말세다‘, ‘저런 걸 노래라고 좋아하니 미친놈들 아냐?‘ 라고 격하게 반발하는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겁니다. - P14

정말 ‘저런 노래는 없애 버려야 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아져 여론을 형성할 정도로 격한 반발이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중가요사의 굵은 줄기가 변화하는 시대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 P16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시대로는 1990년대가 그랬습니다. ‘신세대‘, ‘신세대 문화‘란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구세대‘와의 갈등이 상당했음을 의미합니다. 1970년대 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에는 ‘청년문화‘가 화두였습니다. 이 역시 ‘기성세대 문화‘와의 갈등이 상당했음을 의미합니다. - P16

그런데 바로 이렇게, 세대 간의 취향 갈등이 아주 격해진 시대야말로 대중가요사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시대라는 겁니다.. 이런 시대에 어른들의 욕을 먹으며 형성해 놓았던 새로운 창의력의 힘으로 향후 20년 동안 한국의 가요계가 먹고사는 겁니다. 뒤집어 보자면, 어른들도 적당히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노래만 나오는 시대란, 새롭게 비약적인 발전이 이룩되는 시대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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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어린 생명체가 세계와 처음 대면하는 날들을 지켜보며 경탄한다. 아이가 보는 세계는 경이롭다. 세계 그 자체가 본래 경이롭다기보다는 세계를 경이롭게 볼 줄 아는 아이의 눈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시인은 바로 그 문장을 적는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비록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움이지만 삶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훗날 아이가 자라면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에 출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아이에게 주어진 삶은 아름답기만 해야 마땅하다는 것.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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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엄청 재밌다.^^ 우리 뇌가 이토록 유연하다니! 놀랍도록 신기하고 대단하다. 인공지능에 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이 우리 뇌가 지닌 이 정도의 유연성을 따라오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이 책을 4분의 1도 못 읽었는데, (서재에 올린 구절 외에도) 구글 시트에 메모해둔 글귀가 많다. 앞으로도 많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이 올리면 저작권을 너무 침해하게 될 듯해서 책 인용은 오늘 이 글을 마지막으로 해야겠다. 뇌과학 책 앞으로도 자주 읽게 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시각 시스템을 이용해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나, 피질의 영역 재배치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사람이 청각을 잃으면 전에 청각을 담당하던 뇌 조직이 다른 감각을 대변하게 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의 주변부 시視주의가 더 뛰어나다거나, 사람들의 말씨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입술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출신지를 알아맞힐 수 있다. 신체 일부를 절단한 자리의 감각이 더 섬세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전보다 가벼운 압력을 가해도 촉각이 감지되며, 가까운 지점 두 군데에서 느껴지는 촉각도 하나가 아니라 따로따로 감지된다. 뇌가 아직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위에 더 많은 영역을 할애하기 때문에 감각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 P64

신경 재배치는 뇌의 영역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과거의 생각을 더 유연한 모델로 바꿔놓았다. 뇌의 영역들은 다른 임무에 할당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각 피질에 자리한 뉴런에 특별한 특징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눈에 이상이 없는 사람의 뇌에서 사물의 가장자리나 색깔 관련 데이터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 P65

뇌는 부피가 한정되어 있는 피질에 온갖 임무를 배정해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최적의 조건만 추구할 수 없는 배정 결과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서번트 증후군이 한 예다. 인지능력이나 사회적 능력이 심히 결핍된 아이가 전화번호부를 외우거나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옮겨 그리거나 엄청난 속도로 루빅큐브를 맞추는 데에서는 대가의 솜씨를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지장애와 뛰어난 재주의 결합을 보고 사람들은 많은 가설을 내놓았다. 그중에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가설은, 피질 영역들의 이례적인 배정이 이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뇌가 이례적으로 큰 영역을 하나의 작업(예를 들어 기억력, 시각 분석, 퍼즐 풀기 등)에 할애하면 틀에서 벗어난 재주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가설의 가정이다. 그러나 이런 초능력에는 뇌가 일반적으로 영역을 배정해주는 다른 기능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중에는 믿음직한 사회생활 능력을 구성하는 모든 하위 기능이 포함된다. - P65

뇌의 중요한 변화들이 실행되는 속도에 궁금증을 품은 알바로 파스쿠알레오네는 시각장애인 학교의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학생들이 처한 환경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꼬박 7일 동안 눈을 가리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소리를 이용해 방향을 잡고, 거리를 판단하고,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을 경험한다. - P67

누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또는 누가 옆을 지나갈 때 발걸음의 박자만 듣고 상대의 정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한 사람이 여러 명이다. 엔진 소리로 자동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도 여러 명이고, "소리만 듣고 오토바이를 구분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 사람도 한 명 있다. - P67

파스쿠알레오네의 연구팀은 이 결과를 보고, 만약 시력이 있는 사람이 실험실 환경에서 여러 날 동안 눈을 가리고 지낸다면 어떻게 될지 실험해보았다. 그 결과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일시적으로 시각을 차단한 사람에게서도 신경 재배치(시각장애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류)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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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유로 나 역시 내가 목격한 것들을 어딘가에 적어둔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자면 ‘무한한 우주는 사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필요로‘ 하니까. - P90

어쩌면 나는 이 삶의 목격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러니까 골목길을 걸을 때, 천변을 산책할 때, 나는 환한 낮에도 손전등을 들고 걷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삶의 평범한 순간들에 동그랗게 빛을 비추어 여기 이런 장면이 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다른 이들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쓰는 사람으로서 드물게 욕심이 날 때는 바로 그런 순간. - P91

평생을 산대도 비추고 싶은 장면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안도와 기대 속에서 매일 손전등을 고쳐 잡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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