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후천적인 영향이 클지라도 호르몬은 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르몬도 태어난 후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과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패턴이 비슷하다는 점이 발견되어, 이 차이를 찾으려 했던 많은 연구가 실패했다. 차이점을 찾았다는 연구도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아주 일부 뇌 영역 기능에서만 차이가 나타난 사례다. 문제는 대부분의 ‘유사점‘은 보고되지 않고 ‘차이점‘만 과학계와 대중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다. - P31

그 뒤 이어진 다른 많은 연구는 다양한 언어 관련 과제 수행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차이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 논란을 잠재우려는 시도로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대학병원University Medical Center Utrecht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26개의 연구를 종합하여 ‘메타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2008년 학술지 <브레인 리서치Brain Research>에 언어 처리 과정에서 증명된 성별 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주요 언론에서 이 분석의 결과에 대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 P33

흥미롭게도, 갓 태어난 여자 아기와 남자 아기의 뇌의 구조와 기능은, 남자 아기의 뇌 전체 크기가 평균적으로 6퍼센트 큰 것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성별 차이가 미리 정해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의 가슴 모양에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점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태어난 후 살면서 생기는 뇌의 성별 차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살면서 획득하는 남자와 여자의 경험 차이를 많이 반영한다. - P38

예를 들면,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남자아이들보다 언어적 검사에서 뛰어나다. 이 사실을 두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특성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선천적인 성별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기에게 말을 하는 것이 언어능력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부모들이 아들보다 달에게 말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의 우월한 언어능력이 그들의 성별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받은 양육 방식의 차이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P40

심지어 성호르몬 같은, 성별 자체의 어떤 측면까지도 젠더의 영향을 받는다. 남성성의 생물학적 ‘정수‘라고 흔히 생각되는 테스토스테론의 혈액 수치는 많은 외부 요인에 따라 달라지며, 그중 일부는 젠더와 관련 있다. 경쟁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에게 경쟁에 참여하기를 권장하지만 여성에게는 경쟁을 말리는 경우가 많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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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라고 해도, 더 나이 들었다는 말이 덕담으로 통한다니 되게 신선하당. 😮



히마라야 산맥에 사는 라다크인에게 나이듦은 곧 값진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지난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요" 하고 반가움을 표한다. 그들에게 노화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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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 땅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함께 모여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독서회 사건들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엔 조국 독립, 군부독재 시절엔 민주화를 열렬히 희망하면서 그들은 책을 읽었으리라. 오늘날에야 그그런 숭고한 목적 없이 오직 책 이야기만을 다루는 독서 모밈이 많지만,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독서 모임이란 당대의 권력자들 눈에는 불온성이 다분했다. 지금도 그런 모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책 읽기 모임과 《녹색평론》읽기 모임이 그렇다. 다만 지금은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을 뿐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은 오늘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책을 읽었던 독서가들을 통해 당대 독서의 정치사를 다룬다. 처음 보는 이름들도 있지만, 익숙한 이름들도 많다. 홍명희, 신채호, 김구, 나혜석, 이상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여성 독서가들도 많이 다루고 싶었지만, 시대의 한계로 남성 독서가들에 비해 사료도 부족하고, 아직 연구가 많이 부족해서 아쉬웠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책 차례의 말미에는 독서회 이야기도 언급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수평이 되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테다.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지만, 가부장제의 시대가 너무 뿌리 깊어서, 아직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내가 죽고 나서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바로잡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총 11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다독가 홍명희' 편에서 예상치 못하게 페미니즘과 만났다. 존경받는 민주투사,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젠더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한계를 보여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그저 <임꺽정>의 작가로만 알았던 그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어쩐지 반갑다. 한참 후대인 80년대 한국 남성들의 평균적인 젠더 감수성과 비교해도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간 것 같다고 보아도 비약은 아닐듯하다.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역사전공자 출신으로서, 홍명희가 열렬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는 점은 부끄럽지만 오늘 처음 알았다.)

홍명희는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여성문제에 대해 상당히 깨어 있었다. 일단 그는 쌍둥이 딸의 대학 졸업논문을 손수 지도했을 정도로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그는 장녀 홍수경이 <우리 의복제도 변천에 관한 연구>를, 차녀 홍무경이 <조선 혼인제도의 역사적 考究고구>라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홍수경과 홍무경의 논문을 엮은 책인 《조선 의복·혼인제도의 연구》(을유문화사, 1948)에 실려 있다. 여성이 신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38

그의 칼럼 모음집인 《학창산화》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주목할 만한 책이다. 여기에 실린 <혼인제도>는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혼인제도들을 거론하며 ‘일부일처제‘가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폐해를 이야기했다. <신맬서스주의>라는 글을 통해서는 미국의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Margarret Sanger, 1879~1966)의 산아제한 운동을 언급하면서 피임의 타당성을 논했다. <차별>은 영국의 사상가 에드워드 카펜터(Edward Carpenter, 1844~1929)를 인용하며 생물학적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한 글이다. - P38

근우회가 창립할 때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식인종으로 풍자하는 글을 썼다. 그러면서 "우리 조선은 세계 선진국에 비하여 후진이라 모든 것이 남에게 뒤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운동은 더욱이 뒤지고 있는 것의 하나"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페미니즘의 역사를 상당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그가 언급한 크룹스카야(Nadezhda K. Krupskaya, 1869~1939)와 올랭프(Olympe de Gouges, 1748~1793), 그리고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페미니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 P39

크룹스카야는 소련의 페미니스트로 홍명희와 한 시대를 공유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러시아혁명을 이끈 레닌의 부인이기 때문에 언론 보도로 어느 정도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올랭프와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의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페미니즘 역사를 모르고선 언급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올랭프는 프랑스혁명기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1791)을 발표한 페미니스트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6주에 걸쳐 《여성의 권리 옹호》(1792)라는 책을 쓴 영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였다. 올랭프와 울스턴크래프트는 페미니즘이 태동할 때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인물들이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들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독가로서 여성운동에 관한 책도 섭렵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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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어나서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고, 비행기는 아직 미성년일 때 제주도에 두 번 가본 이후로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자동차 운전 면허는 있지만 장롱 면허다. 내가 특별히 친환경적으로 살려고 의지를 갖고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비행기를 타거나 자가용을 안 몰겠다는 다짐은 못하겠지만, 그런 점에서는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지구를 덜 해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그 외엔 여름에 에어컨(이 없어서 안 트는 거지만) 안 트는 정도?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아예 보일러를 끄고 생활하고 있다.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번 달에 나온 난방비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지만, (근데 이번 달에 더 나왔다. ㅠㅠ) 날도 많이 풀리고 다행히 지금 사는 집은 위치도 나쁘지 않아서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살짝 쌀쌀할 뿐 그렇게 춥진 않다. 예전에 살았던 자취방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거기선 보일러를 안 틀면 온도가 8도까지 내려갔다. ㄷㄷ) 


난방비가 다시 떨어지는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앞으로는 겨울에도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고 생활할 생각이다. 틀더라도 가끔 동파 방지용으로 아~~주 약하게 트는 정도일 테다. 계속 틀어놓는 게 난방비가 더 적게 든다는 걸 경험상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융통성 있게 날씨 상황을 잘 보고 판단하면 될 테니깐.


그거 말고는 특별히 기후 위기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외출할 때마다 자꾸 까먹는 텀블러부터 평소에 잘 챙겨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조금씩 찾아봐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 나도 가끔 빠지는 - 허무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우리의 집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나.

좋은 소식은 에너지 절약이 반드시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1965년 스위스의 기대 수명은 오늘날 미국의 기대 수명과 거의 비슷했고 전 세계 평균보다도 높았다. 일하는 날이 적었고 통근하는 거리 또한 짧았다. 그때도 인생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훨씬 더 적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도 건강한 인생의 기본을 갖추고 있었다. - P229

같은 보고서에서 150개국 이상을 대상으로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하지 않은 정부, 건강한 삶에 대한 기대, 1인당 국민소득 등 행복의 비교문화적 개념의 사회적 근간을 구성하는 여섯 개 요소를 분석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도 이런 요소 대부분을 현 상태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 P230

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만일 당신에게, 당신 부모보다 10년 더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자원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지구상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우리는 소비의 해독解毒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삶을 살펴보자.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런 행동을 바꿀 의향이 있는가? 우리 스스로를 바꾸지 못한다면 사회제도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 P234

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게으른 허무주의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고. 한 가지 해결책이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끼니, 우리가 여행하는 모든 여정, 우리가 쓰는 한 푼에 지난번보다 에너지가 더 사용되는지 덜 사용되는지를 고민하며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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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에 살았던 공자는 말했다. '통치자는 재화의 많고 적음보다는 고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라고. 공자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간디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구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엔 넉넉하지만, 욕망을 채우기엔 모자라다고 했던가? 그런데 하물며 인류의 생산력이 그때보다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나게 성장한 지금에야 더 말해 무엇할까. 전 세계의 식량이 남아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빈부 격차의 문제는 분배의 공정성이다.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기술보다는 분배를 잘할 수 있는 기술과 정책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

썩어가는 오물 문제를 조금이라도 분석해보면 인간 배설물 외에 다른 쓰레기도 포함시켜 고려해야 함을 알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배설물에 더해 미국의 모든 가정과 학교, 회사, 병원에서 버려지는 과일과 채소 등의 음식 찌꺼기, 정원의 가지치기에서 나오는 쓰레기 등을 합하면 매년 8,000만 톤의 유해 폐기물이 발생한다. 모든 OECD 국가에서 발생하는 이런 폐기물의 양은 연간 1억 5,000만 톤에 이르고 나머지 국가들까지 다 합하면 매년 4억 톤에 가까운 양이 된다. - P110

전 세계 폐기물의 엄청난 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식량의 양에 맞먹는다. 곳곳에서 낭비되는 곡류의 양은 인도에서 필요로 하는 연간 곡물 공급량과 비슷하다. 매년 버려지는 과일과 채소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필요로 하는 과일 및 채소의 양과 비슷하다. 테니스화를 주문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창고에서 24시간 안에 발송을 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제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품을 재분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말기를 - P111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은 숫자 자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식품이 곯다가 썩어가지만 그 이상의 문제가 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에는 엄청난 비극이 담겨 있다. 매일 거의 10억 명이 배를 곯는 동안 또 다른 10억 명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망쳐버린다. 우리는 먹을 의도가 전혀 없는 음식에 숲과 깨끗한 물과 연료를 걸고 도박을 하는데, 매번 그 도박에서 지고 있다. 우리 입맛에 봉사하기 위해 이 지구에서 짧은 시간 머물다 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을 무의미하게 멸종시켜버렸다. - P112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의 던져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풍요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에 이끌린 결과, 우리가 공허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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