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을 읽으려고 서가에서 꺼내고 보니 정창권 교수의 책이다. 예전에『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로 이 분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비참했으리라 생각했을 전근대 장애인의 삶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는 점을 알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같은 저자가 쓴 책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네. 근데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검색해보니 그 책 이후에도 『역사 속 장애인은...』의 이후 시기를 다룬 『근대 장애인사』도 썼구나. 


이 세 권 외에도 많은 책을 쓴 분이지만 나중에 읽으려고 일단 이 책만 추가로 여기에 담아둔다. 근데 내가 알라딘 보관함에 담은 다른 모든 책들이 그렇듯 그 책도 언제 읽을지 기약은 없다. 세상은 넓고 저자와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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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만에 독립서점에 다녀왔다. 근데 사실 난 독립서점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독립출판물을 판매해야 독립서점이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참고서를 취급하지 않는)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동네서점은 다 독립서점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내가 오늘 간 책방은 독립출판물은 없지만 남들이 여기를 독립서점이라고 부르니 나도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런 기준을 두고 봤을 때 김해에도 독립서점이 몇 개 있다. 오늘 내가 간 곳은 '숲으로 된 성벽'이다. 이름만 봐도 독립서점 느낌이 확 난다. 카카오맵으로 서점 위치를 찍어봤을 때 대략 40분쯤 걸린다고 했는데, 약한 빗줄기지만 비가 조금씩 오고 있어서 그냥 버스를 타고 갔다. 정류장에서 내려 대략 6분쯤 걸으니 책방이 보였다. 숨북숨북에 이어 김해 내 독립서점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이 책을 읽고 있다가 일어나서 나를 맞이했다. 처음 가본 곳이라 사고 싶은 책을 고민하면서 서점 전체를 구경했다. 사장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사장님의 그런 모습이 손님으로 간 나를 편안하게 했다. 책방에 머무르는 동안 다른 손님이 오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나 말고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책방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카피라이터 정철님의 책을 골랐다.



카운터 위에는 여러 종류의 스탬프가 있었는데, 손님이 자기가 원하는 스탬프를 골라서 책에 찍을 수 있었다. 그림 모양의 스탬프가 예뻤다. 찍고 보니 인쇄한 거 마냥 깔끔하다. 3% 적립을 해준다길래 회원가입을 하고 왔다. 집 근처에도 (전통적인 방식의) 동네 서점이 있지만 책방이 맘에 들어서 또 가게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김해에 있는 다른 독립서점에 가볼 예정이다. 참고로 책 본문은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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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엄청 재밌다.^^ 우리 뇌가 이토록 유연하다니! 놀랍도록 신기하고 대단하다. 인공지능에 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이 우리 뇌가 지닌 이 정도의 유연성을 따라오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이 책을 4분의 1도 못 읽었는데, (서재에 올린 구절 외에도) 구글 시트에 메모해둔 글귀가 많다. 앞으로도 많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이 올리면 저작권을 너무 침해하게 될 듯해서 책 인용은 오늘 이 글을 마지막으로 해야겠다. 뇌과학 책 앞으로도 자주 읽게 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시각 시스템을 이용해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나, 피질의 영역 재배치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사람이 청각을 잃으면 전에 청각을 담당하던 뇌 조직이 다른 감각을 대변하게 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의 주변부 시視주의가 더 뛰어나다거나, 사람들의 말씨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입술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출신지를 알아맞힐 수 있다. 신체 일부를 절단한 자리의 감각이 더 섬세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전보다 가벼운 압력을 가해도 촉각이 감지되며, 가까운 지점 두 군데에서 느껴지는 촉각도 하나가 아니라 따로따로 감지된다. 뇌가 아직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위에 더 많은 영역을 할애하기 때문에 감각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 P64

신경 재배치는 뇌의 영역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과거의 생각을 더 유연한 모델로 바꿔놓았다. 뇌의 영역들은 다른 임무에 할당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각 피질에 자리한 뉴런에 특별한 특징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눈에 이상이 없는 사람의 뇌에서 사물의 가장자리나 색깔 관련 데이터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 P65

뇌는 부피가 한정되어 있는 피질에 온갖 임무를 배정해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최적의 조건만 추구할 수 없는 배정 결과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서번트 증후군이 한 예다. 인지능력이나 사회적 능력이 심히 결핍된 아이가 전화번호부를 외우거나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옮겨 그리거나 엄청난 속도로 루빅큐브를 맞추는 데에서는 대가의 솜씨를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지장애와 뛰어난 재주의 결합을 보고 사람들은 많은 가설을 내놓았다. 그중에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가설은, 피질 영역들의 이례적인 배정이 이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뇌가 이례적으로 큰 영역을 하나의 작업(예를 들어 기억력, 시각 분석, 퍼즐 풀기 등)에 할애하면 틀에서 벗어난 재주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가설의 가정이다. 그러나 이런 초능력에는 뇌가 일반적으로 영역을 배정해주는 다른 기능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중에는 믿음직한 사회생활 능력을 구성하는 모든 하위 기능이 포함된다. - P65

뇌의 중요한 변화들이 실행되는 속도에 궁금증을 품은 알바로 파스쿠알레오네는 시각장애인 학교의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학생들이 처한 환경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꼬박 7일 동안 눈을 가리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소리를 이용해 방향을 잡고, 거리를 판단하고,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을 경험한다. - P67

누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또는 누가 옆을 지나갈 때 발걸음의 박자만 듣고 상대의 정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한 사람이 여러 명이다. 엔진 소리로 자동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도 여러 명이고, "소리만 듣고 오토바이를 구분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 사람도 한 명 있다. - P67

파스쿠알레오네의 연구팀은 이 결과를 보고, 만약 시력이 있는 사람이 실험실 환경에서 여러 날 동안 눈을 가리고 지낸다면 어떻게 될지 실험해보았다. 그 결과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일시적으로 시각을 차단한 사람에게서도 신경 재배치(시각장애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류)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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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읽은, (인간의 뇌를 다루기는 했지만 뇌과학보다는 젠더 분야 책이라고 보는 게 더 맞아보이는) 『젠더 모자이크』를 제외하고 뇌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이번에 처음 읽는 것 같다.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을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그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도 비전공자라서 자세히는 모르긴 해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말로 알고 있다.


이를 뇌과학자인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이하 이글먼)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의 뇌는 미완성으로 태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회로를 바꾼다고. 그리고 그것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인간의 독보적이고 강력한 무기였다고. 이글먼은 덧붙여 말한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난 아직 1장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책 전체에 걸쳐 뇌의 가소성을 다루는 듯하다.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예전에 처음 들어봤을 때 난 정말 기쁘고 설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경험하는 대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우리 뇌의 특성을. 물론 사람마다 한계치는 제각기 다르고 그러기에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타고난 뇌를 갖고 거의 그대로 살아야 하는 지구의 다른 생물들에 비하면, 타고난 재능 탓을 훨씬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스스로 학습한다는 인공지능의 '딥러닝'도 인간 뇌의 가소성을 흉내낸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좋은 점은 이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우리 시스템은 처음부터 완전히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형성해나간다는 것. 자라는 동안 우리는 뇌의 회로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어려운 과제와 씨름하고, 기회를 이용하고 사회구조를 이해한다. - P12

인류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성공적으로 접수한 것은, 어머니 자연이 발견한 요령이 우리에게 최고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의 설계도를 처음부터 다 만들지 않고, 기본적인 요소들만 준비해준 뒤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 바로 그 요령이다. 마구 울어대던 아기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흡수한다.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다듬는다. 주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더 넓은 의미의 문화와 국제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의 신념과 편견을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정겨운 기억, 모든 가르침, 모든 정보가 아기의 신경회로를 다듬어 결코 미리 계획한 적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 거기에는 주위의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 - P12

게다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빠져있다. 뇌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서 주변 환경의 요구와 몸의 능력에 맞춰 항상 회로를 바꾼다. - P17

사람이 새로운 지식, 예를 들어 좋아하는 식당의 위치나 직장 상사에 대한 뒷공론이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중독성 있는 노래 등을 새로 익히면, 뇌에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경제적인 성공, 대인관계의 큰 실패. 감정적인 각성을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다. 농구공을 골대로 날릴 때, 동료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로 갈 때, 그리운 사진을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때, 거대한 정글을 닮은 우리 뇌는 조금 전과 살짝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런 변화들이 합쳐져서 기억이 된다. 기억은 사람의 삶과 사랑이 빚어낸 결과다. 몇 분, 몇 달, 몇십 년에 걸쳐 뇌에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모두 합쳐져서 사람이 된다. - P18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체로 미완성인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무력한 아기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보람이 있다. 우리 뇌가 세상을 향해 미완성인 부분을 채워달라고 손짓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들의 문화, 패션, 정치, 종교, 도덕을 목마른 사람처럼 빨아들인다. - P20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각인되어 있지 않다. 대신 우리 유전자는 간단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지 말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우리 DNA는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다. 이 DNA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변 환경을 반영해서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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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유로 나 역시 내가 목격한 것들을 어딘가에 적어둔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자면 ‘무한한 우주는 사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필요로‘ 하니까. - P90

어쩌면 나는 이 삶의 목격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러니까 골목길을 걸을 때, 천변을 산책할 때, 나는 환한 낮에도 손전등을 들고 걷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삶의 평범한 순간들에 동그랗게 빛을 비추어 여기 이런 장면이 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다른 이들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쓰는 사람으로서 드물게 욕심이 날 때는 바로 그런 순간. - P91

평생을 산대도 비추고 싶은 장면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안도와 기대 속에서 매일 손전등을 고쳐 잡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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