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처럼 직접 총을 들고 일제와 맞선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있다는 건 예전에 정운현 선생의 『조선의 딸, 총을 들다』를 읽고 처음 알았다. 기억력의 한계로 책에 실린 24명의 인물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 '남자현'이란 분의 이름만은 지금도 기억한다. 많이 아시겠지만, 영화 <암살>에서는 그를 모델로 한 안옥윤(전지현 분)이라는 인물을 주요 배역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일제에 맞선 페미니스트』는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우봉운, 김명시, 조원숙, 강정희, 이경희, 이계순, 이경선 이렇게 7명의 여성 독립투사가 등장한다. 이 중에 김명시 정도만 들어봤을 뿐. 나머지는 처음 들어본다. 김명시처럼 무장투쟁에 나선 인물도 있고, 우봉운처럼 근우회와 같은 단체를 통해 활동한 인물도 있다. 공통적인 건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점이다. 일제 치하 조선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투사라면 대개 다 페미니스트일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책 본문에서는 여성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인물들을 모았다.


학창 시절에 근·현대사를 배웠다면 '근우회'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 근우회가 한국 여성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은 우리가 그냥 교과서에서 스쳐지나가듯 배웠던 그것보다 훨씬 크다. 그것을 예전에 다른 책에서 근대 여성사 대목을 읽게 되면서 느끼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들의 헌신을 다룬 대목이 너무 소략하다는 것은 아쉽다. 


아래 인용문은 『일제에 맞선 페미니스트』본문 중 일부다. 조선이나 간도·연해주가 아닌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여성 투사라니. 언젠가 이 분의 생애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가 한 편 나왔으면 좋겠다.

김명시의 활동 무대가 아시아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김명시의 ‘반제국주의 운동‘은 조선에 한정되지 않았다. 중국, 대만, 필리핀 등의 국민국가를, 인종과 민족을 넘어섰다. 반제운동을 할 수 있다면 상해에서 하얼빈까지 걸어서 찾아가 조직할 만큼 열정이 남달랐다. 김명시는 동방피압박민족반제대동맹, 재만조선인반일본제국주의대동맹, 상해한인반제동맹 등의 단체를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지만 ‘트랜스내셔널 반제운동가‘라는 호칭을 하나 더 첨가해야 한다. 김명시의 항일 무장투쟁을 알면 해방이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해방공간, 그이는 국가건설에 남녀 역할이 따로 없다고 외쳤으며 역할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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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4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사史 배워갑니다.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이 성차별 질문을 던지거나, 채용 후 사례는 많이 들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젠더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책에 인용된 사건은 놀랍게도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책에 언급되지 않은 더 많은 사례가 있었다. 아래 링크는 팩트체크를 위해 내가 직접 찾은 기사들이다. 그리고 기사화가 되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사례가 있을 테다. 우리가 2023년을 살고 있는 게 정말 맞나.


https://www.hani.co.kr/arti/society/area/812774.html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05253&plink=TIT&cooper=SBSNEWS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121916428295629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9902936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015, 2016년 시험 순위를 조작해 합격 순위에 들었던 여성 응시자 일곱 명을 불합격시켰다. 2014년 대한석탄공사는 서류전형에서 여성에게 고의로 낮은 점수를 줘 142명 중 세 명만 통과시키고, 그 세 명 역시 면접에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점수를 줘서 탈락시켰다. 킨텍스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제멋대로 남용하여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여성 지원자 43명을 탈락시키고, 필기시험에서도 성비를 이유로 임의로 세 명을 더 탈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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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성 & 젠더 서가 사진을 기대한 분이 혹시 계신다면 죄송한 일이지만, 그걸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앞으로 만들거란 이야기다. 그 첫 신호탄은 바로 이 책.



그동안에도 젠더 서적을 꾸준히 읽어오기는 했지만, 늘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어서 내 오프라인 서가에는 없었다. 여성 & 젠더 서가의 첫 책은 이 책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정희진 선생 젊은 시절에 쓴 『페미니즘의 도전』은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 책을 안 읽고 이 책을 바로 읽어도 상관없으려나?




얼마 전에 전자책으로 구입한 박정훈 기자의 책이다. 박정훈 기자는 페미니스트 남성으로서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관한 의견을 꾸준히 개진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다. 인스타그램에서 저자의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글을 예전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의 글을 책으로 읽긴 처음이다. 아무래도 나 같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깨우치게 해주려고 쓴 책이겠지. 이틀 전부터 조금씩 읽고 있다.



종이책으로도 팔지만 전자책으로는 무료로 풀어서 (확인해보니 지금도 무료다)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전자책으로 구입했었다. 나도 그 사건이 대단히 충격적이어서 그날 그 사건을 계기로 젠더와 페미니즘에 처음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말이 필요없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세계가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힌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오래전에 전자책으로 사놓고 아직 완독은 못했지만, 읽을 때는 성별 미러링에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고. 




위 사진은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이 중 『형사 박미옥』은 젠더 서적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보다 더 고루한 젠더 불평등 시대에 최초의 여성 강력계 반장이 된 분의 이야기니 간접적으로는 관련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젠더 서적을 온/오프라인 양쪽으로 좀 적극적으로 구입하고 읽어볼까 한다. 아마 이 다음에 읽을 젠더 서적은 아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에 담아놓기만 하고 안 읽어봤는데, 서가를 꾸미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생활이 별로 안정되지 못해서 책을 마음껏 사질 못하는데, 늦어도 내년 중순부터는 (더 일찍 될 수도 있다, 더 늦을 가능성은 없고) 드디어 어느 정도 괜찮은 일자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 후부터는 집에 있는 서가가 내 관심사의 확장이나 변동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게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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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7쪽의 인용문은 영국 런던 유학 시절에 엄유진 작가에게 조언을 해준 지도 교수 로빈의 말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문자 그대로 그림에 관한 조언이었겠지만, 난 이 말을 인생을 향한 조언으로도 여긴다. 어쩌면 작가도 그렇게 느끼고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이를 돕거나 배려하는 행위는 앞을 내다보고 주위를 살필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할 힘이 있어야 가능했다. - P61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이를 돕거나 배려하는 행위는 앞을 내다보고 주위를 살필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할 힘이 있어야 가능했다. - P79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이를 돕거나 배려하는 행위는 앞을 내다보고 주위를 살필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할 힘이 있어야 가능했다. - P125

"속도를 늦추고 그림을 그려도 돼. 너무 빨리 그리다보면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놓칠 수 있으니까. 자기가 어디로,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지."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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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은,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시는 분들의 직업을 따스한 시각으로 조명해준다는 점이다. (물론 장점도 많지만) 여러 문제가 많은 우리 사회가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너지지 않고, 한편에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부분도 있음은 이런 분들의 무명의 헌신 덕분이 아닐까.


이 책에 나오는 분들이 자신의 직업과 일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그저 퇴근 시간과 휴일만 기다리기에 급급했던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반성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분들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 인용을 그동안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이번 책 인용은 이게 마지막이다. 책에는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더 상세히 나오니 꼭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조산사가 법에 명시된 것은 무려 1914년(조선총독부령 ‘산파규칙‘). 국내에 조산사 면허를 가진 이는 6000여명. 조산사는 간호사 자격을 지닌 이가 1년간 정해진 의료기관에서 조산 수습 과정을 거쳐야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공식 의료종사자이다. - P135

"사실 우리나라 병원에서 하는 자연 분만은 외국에선 고위험군 산모들에게 취하는 방식이에요. 금식하고 움직이지 말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고. 쉽게 말해 산모가 병원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산모는 환자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산모는 환자가 아니거든요. 환자가 아닌, 출산의 주체가 되도록 조력하고 이끄는 게 제 일이죠." - P137

그 시간 동안 산모는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쓰며 출산에 이로운 자세를 찾아 나가야 한다. 자궁이 열리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진통의 유형과 세기, 그리고 그때마다 임신부가 취해야 할 자세나 호흡을 알려준다. 우선 북극곰 자세. 이 자세는 곰이 몸을 엎드려 웅크린 자세로 아기가 하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세라고 했다. 다음은 런지 자세. 이번에는 김수진이 시범을 보인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다른 쪽은 쭉 뻗는 이 자세를, 필라테스에서 본 것 같은데. 골반 틀어짐을 잡아줘서 이 또한 출산을 돕는다. 짐볼을 대고 엎드리거나, 배우자와 등을 맞대어 기대는 동작도 권한다. - P138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출산 과정 전반을 살피고 판단하는 일이다. 조산사는 의료진이니까. 김수진은 산모가 의료체계 안에 갇히지 않고 출산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돕지만, 한순간도 의료진의 위치를 놓지 않는다. 출산은 매 순간 판단이 필요한 일이다. 의료적 개입의 시점을 파악하는 것 또한 조산사의 일이다. 동시에 산모를 믿는다. - P141

아기 머리가 보이는 순간부터 조산사는 산모 발치에서 쪼그러 앉아 꼼짝하지 않고 기다린다. 길면 한두 시간도 걸린다. 어깨가 굳는다. 허리도 당연히 아프다. 하지만 침대를 박박 긁으며 통증을 참는 산모를 앞에 두고 제 몸의 통증을 느낄 새가 없다. 뜨개질을 하는 산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산파의 눈은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 P144

수업 때 김수진은 산모(와 그 가족)에게 작은 것 하나조차 꼼꼼히 일러두었는데 출산 직전 언제 병원으로 출발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이었다. ‘몇 분 간격으로 통증이 오면 자궁이 몇 센티가 열린 것이니,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 통증이 몇 분 안쪽으로 잦아졌을 때 출발을 하면 된다.‘ - P147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 통증 정도와 관계 없이, 언제든지. 이 말을 듣는 데 산모도 아닌 내가 다 든든하더라. 하지만 그때문에 그가 자면서도 귀를 열어둘 줄은 몰랐다. 잠을 깊게 들 수 없다. 개인 약속도 잡지 않는다. 한 달에 열흘 넘게 밤을 새운다. - P150

산모가 출산의 주체라는 말은 분만의 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산사는 임신부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출산 계획을 세우도록 조력한다.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산모의 결정권을 존중하되, 그 판단은 의료적 지식과 임신부와의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배움과 숙련이 쌓여간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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