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찍 올리려고 했는데 이제야 알라딘에 접속이 되네요.) 아기 엄마만이 아니라 아기 아빠도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니. 그것도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한 숫자라니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오로지 여성의 문제로 인식되어 병명조차 남성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는 건강 상태가 있다. 바로 산후 우울증인데, 연구자들이 이 명칭에서 젠더의 의미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기의 출산 전후에 아기 아빠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혀졌다. <JAMA 소아과학JAMA Pediatrics>에 2018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산후 우울증을 앓는 엄마와 아빠의 수가 놀랍도록 비슷함을 발견했다. 설문지에 답을 한 수천 명의 새내기 부모들 중 엄마의 5퍼센트, 아빠의 4.4퍼센트가 우울증의 기준에 해당했다. 양쪽 부모 모두에게 우울증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데 중요하다"라고 연구자들은 논문에 밝혔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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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스웨덴에 유학을 간 것도, 그 당시 스웨덴에서 이미 최저임금 제도라는 게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이 정도로 초엘리트인 사람이 고국에서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갔다는 점도 서글프고... 스웨덴에 있던 시절 황태자의 총애도 받았다는데, 차라리 스웨덴에 정착해서 계속 살았더라면, 스웨덴에서 간접적으로 한국을 도울 방법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경기도 여주군 출신인 최영숙은 1926년 7월 13일 밤 하얼빈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멀리 스웨덴을 향하여 떠났다. 지난 9일에 배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다롄에 상륙했을 때, 최영숙은 일본 경찰에게 잡혀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어와 중국어, 그리고 영어에 정통하다. 경찰에게 체포된 이유는 사회주의에 관한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86

최영숙은 노동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스웨덴의 노동조건에 주목했다. 생활비를 쓰고도 남는 임금에 놀라기도 했다. 최영숙은 스웨덴의 선진적인 노동시스템을 식민지 조선에 도입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 P186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스웨덴까지 유학을 갔다 왔으니 그의 귀국은 큰 주목을 받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렵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그를 불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영숙은 한 1년 동안만 신문기자 노릇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었으나 결국 헛된 희망이었다. 이화학교 은사인 김활란의 의뢰로 공민독본을 편찬하는 일을 맡은 게 전부였다.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스웨덴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딴 엘리트였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가 귀국한 해인 1931년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이긴 했지만, 그의 실업은 이상할 만큼 견고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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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후천적인 영향이 클지라도 호르몬은 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르몬도 태어난 후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과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패턴이 비슷하다는 점이 발견되어, 이 차이를 찾으려 했던 많은 연구가 실패했다. 차이점을 찾았다는 연구도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아주 일부 뇌 영역 기능에서만 차이가 나타난 사례다. 문제는 대부분의 ‘유사점‘은 보고되지 않고 ‘차이점‘만 과학계와 대중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다. - P31

그 뒤 이어진 다른 많은 연구는 다양한 언어 관련 과제 수행에서 남성과 여성의 뇌 활성도 차이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 논란을 잠재우려는 시도로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대학병원University Medical Center Utrecht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26개의 연구를 종합하여 ‘메타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2008년 학술지 <브레인 리서치Brain Research>에 언어 처리 과정에서 증명된 성별 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주요 언론에서 이 분석의 결과에 대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 P33

흥미롭게도, 갓 태어난 여자 아기와 남자 아기의 뇌의 구조와 기능은, 남자 아기의 뇌 전체 크기가 평균적으로 6퍼센트 큰 것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성별 차이가 미리 정해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의 가슴 모양에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점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태어난 후 살면서 생기는 뇌의 성별 차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살면서 획득하는 남자와 여자의 경험 차이를 많이 반영한다. - P38

예를 들면,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남자아이들보다 언어적 검사에서 뛰어나다. 이 사실을 두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특성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선천적인 성별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기에게 말을 하는 것이 언어능력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부모들이 아들보다 달에게 말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의 우월한 언어능력이 그들의 성별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받은 양육 방식의 차이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P40

심지어 성호르몬 같은, 성별 자체의 어떤 측면까지도 젠더의 영향을 받는다. 남성성의 생물학적 ‘정수‘라고 흔히 생각되는 테스토스테론의 혈액 수치는 많은 외부 요인에 따라 달라지며, 그중 일부는 젠더와 관련 있다. 경쟁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에게 경쟁에 참여하기를 권장하지만 여성에게는 경쟁을 말리는 경우가 많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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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을 며칠 앞두고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읽고 있는 다른 책도 있으니 일단 잠시 묵혀두었다가 당일부터 읽을 예정이다. 예전부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내게 특별히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남성과 여성의 젠더 차이에 타고난 측면이 분명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측면이 더 크다는 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1살 때 인류학 수업(내가 인류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전공 수업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과제를 해야 해서 읽었던 아래 책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회과학 분야가 아닌 이과 쪽 학문으로 이를 논중한 글은 처음이다. 아니 읽었는데 까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단행본으로는 처음 접하게 된 것 같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도서관에서 젠더 분야 책을 찾다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아직 독서를 시작하진 않을 생각이지만, 일단 일종의 프롤로그(이 책에는 저자의 서문이 따로 없다)에 가까운 글귀 중 일부를 옮겨 여기에 싣는다. 


리뷰를 쓰면 좋겠지만 요즘 리뷰를 쓸 만한 물리적·심리적 여유가 없으니, 책을 읽는 동안 본문 중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하려 한다.



뇌 촬영 영상 수백 개를 분석한 후에 깨달은 것은,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점을 모두 더한다고 해서 한 개인의 뇌가 일관되게 ‘남자 뇌‘ 또는 ‘여자 뇌‘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성과 여성의 뇌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님을 주의하기 바란다. 오히려 반대로, 다른 과학자들처럼 내 연구실에서도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를 많이 찾아냈다. 다만 내 주장은, 개개인의 뇌 안에서 이런 다른 점들이 한데 섞여서 독특한 모자이크를 만들어내고, 어떤 모자이크는 여성에게서, 또 다른 모자이크는 남성에게서 더 흔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모두 ‘여성적‘ 그리고 ‘남성적‘ 특징이 혼합된 조각보와 같다는, 이미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내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가, 애초에 ‘여자 뇌‘와 ‘남자 뇌‘ 또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천성 같은 것은 없다고 제안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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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라고 해도, 더 나이 들었다는 말이 덕담으로 통한다니 되게 신선하당. 😮



히마라야 산맥에 사는 라다크인에게 나이듦은 곧 값진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지난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요" 하고 반가움을 표한다. 그들에게 노화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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