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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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 오늘은 수능 30여일을 남긴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 강연자를 모셔서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수능을 몇일 남기지 않은 여러분에게 이런 시간을 빌게된것에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전 오늘의 강연을 광해군에게서 빌어오고자 합니다.웬 광해군이냐고요? 여러분들이 대학을 가기전 꼭 숙지했으면 하는것이 있어서죠. 자!그럼 여러분들이 광해군하면 떠오르는것이 뭘까요?'

'중립외교입니다!''대동법을 시행했어요''동의보감도 나왔죠'

'네, 그렇습니다. 의외로 많이 알고 계시는듯 하군요. 옛날에는 광해군하면 폭군을 먼저 떠올리곤 했죠. 선조 임금들에게 붙이는 `조` `종`이 붙지 않고 `군`이 붙은것만 보아도 이해할수 있죠. 그나마 역사바로 알기 운동같은것을 통해 교과서에나마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지 않고 그래도 중립외교정책 같은 업적을 밝혀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학생때 배우던 국사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물론 광해군에 대해 보려고 말이죠.그런데 그것을 찾는순간 전 웃음이 나와버렸죠. 국사책 구석에 광해군은 다만, `중립외교정책을 폈다`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치고 바로 인조반정으로 넘어가버리더군요. 현재는 얼마나 개정이 된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광해군이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애궂은 시간만 허비한 무능한 왕임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이것은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숭배하는 영웅주의 사상에 크게 물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올림픽같은 국제대회에서 종종 외국매스컴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왜 한국선수들은 은메달, 동메달을 따면 씁쓸한 표정을 짖는지 모르겠다. 물론 금메달을 못딴 아쉬움은 있겠지만 세계의 은메달, 동메달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데 말이다.` 한번쯤은 들어 보셨죠? 네. 우리나라 인식의 문제점중 하나가 승자 아니면 패자란것이죠. 승자는 크게 숭배받되 패자는 암흑의 구렁텅이 속으로 치부되어 버리죠. 광해군도 결국은 역사속의 패자로써 대접을 받은거죠. 업적이야 어떻든 결과는 반정으로써 쫓겨 났으니까요.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 소위 윈윈전략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세계각국과 접촉을 시도 합니다. 그런데 외적으로는 윈윈이지만 내적으로는 윈로즈를 명확히 구분하여 치부하다뇨.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런 광해군을 패자로써 보지는 말아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원동력입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십시요. 선의의 경쟁이란 내가 `윈`할때 상대는 `로즈`하는 것이 아닙니다.진정한 선의의 경쟁이란 서로 `윈윈`할때를 일컫음 입니다.여러분 광해군은 비록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이루지 못하고 고진고래(苦盡苦來)를 겪은 비극의 인물이지만 우리는 결과만 놓고 볼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은 고진(苦盡)상황에서 정말로 부단이 노력하였습니다. 광해군은 그 어려운 왜란의 과정을 정말 열심히 극복하여 우여곡절끝에 왕위에 등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올라서도 태만하지 않고 민심을 위해서 노력하는가 하면 외국 열강들속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정말 슬기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우리는 이런 과정, 노력에 중점을 두어야 할것이지 결과에만 집착하여 패자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결과는 비록 인조반정이란 치욕적인 상황에 끝맺음을 했지만 그 부단한 노력과정을 중히 여긴다면 역사속의 패자란 말은 있을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로 오늘의 강연을 끝내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까지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평가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노력해온것이 중요한것입니다. 결과에 너무 치부하여 이제까지의 노력에 허무한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요. 어딜가나 이제까지 노력의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시며 사신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밝을 것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수능 열심히 준비하시고 바쁘신 여러분 시간내어 들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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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F
박승배 지음 / 대현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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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독특한 소재로 독특한 구조를 가진 싱그러운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ESP라는 용어와 함께 약간의 신비적요소와 추리적 요소. 최근에 입맛을 잃은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너무나 싱싱했다.

인터넷 문학상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인 무라카미 하루키씨에게 바친다는 수상소감을 듣고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냥 읽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고 읽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을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의 구입과정에 약간의 개인적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이 책에 더운 큰 애정을 가지게 한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소설의 양파트(part)적 구성에는 혼란스러움이 많이 따랐다. 두명의 주인공으로 진행해 가는데 그 두사람이 연관이 있는데 내가 너무 급하게 책을 음미 해서 인지 연관이 있다는것은 인정하되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매치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점 한가지 더. 이 작품의 평가에도 나와 있듯이 이 소설이 종반역을 치달으면서까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것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 시도와 노력은 정말 훌륭했지만 결과까지는 그렇지 못한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한가지의 테마를 잡고 그 테마를 연상시키게 하는 방법도 아닌것 같았다. 그냥 말 그대로 허무하게 끝났고 무엇을 연상시키게도 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것이었다.

결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서라도 오랜만에 독특하고 살아있는듯한 소설을 읽음에 관해서는 후회의 여지가 없다. 어렵게(?) 손에 들어온 만큼 그 기대에 상당히 부응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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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
최윤재 지음 / 청년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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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한비자라고 하면(또는 법가) 법치를 떠올린다.그러면서 가혹한 정치와 인정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수 없는 매정함을 동시에 떠올리곤 한다. 래서 인정많은 우리국민들은 종종 한비자나 법가보다는 정통 유가를 좀더 고상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한가지 사상만을 주체적 이유없이 편애 한다면 그 사람 역시 편협한 사고를 벗어 날 수 없다

예전의 복제인간으로 세상이 떠들석할때 우리나라에서는 재밌는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바로 `다시금 복제하여 되살리고 싶은 인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예로이(?) 박정희 전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순외중에 전두환도 있는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대 국민들이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과학자도 아니요 학자도 아닌 군부독재시절의 대통령을 그리워 하는것일까?최근에는 박정희 동상 건립도 추진되었다고 하니 한때 반짝인 명예의 1위는 아니었을것이다

사실 그 설문 조사가 일어날 당시 1위가 박정희 전대통령인것을 보고 내심 공감했다.왜일까? 적어도 난 박정희의 카리스마에 반한것도 아니었고 그의 경제발전성과도 아니었다.(박정희의 경제발전성과는 긍정적으로만 볼수 없다.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폐해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좋아해서 공감했다는것인가?독재다(!)대중들 앞에서 이 소리 했다가는 몰매 맞아 병원실려가기 딱 좋은 상황이다.하지만 난 박정희 전대통령이 다시금 독재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니다.독재시절의 그 강력한 법과 제도가 그리웠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것이 다 그리웠다는 것은 아니다.민주주의를 해치는 많은 부분은 당연히 내 동감의 `당`에서 탈퇴를 해야 할것이다.하지만 난 그의 강력한 법집행을 원한다.현재 소위 민주주의를 겉으로 부르짖으며 자기 실속다 챙기는 인간들이 득실거린다.부정부패는 이제 의식주마냥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이 천지다.왜일까? 자기의 행실이 적발당할때의 기대손실보다는 당장의 일을 저질렀을때의 기대이익이 훨씬,너무나 훨씬 크기 때문이다.한비자의 말대로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것은 고상한 공자나 맹자의 말로써 교화시킬수 없다.길들이지지 않은 고양이 앞에 맛좋은 생선을 가져다 놓고 생선을 먹지 않길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현시대 상황에서는 이런 일들이 당연한 결과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이에 난 박정희를 잠시나마 그리워했었고 다시금 이 한비자란 분을 동경하게 된다.비록 꿈보다는 해몽격인 말들이 나온다 할지라도 한비자의 시대는 지금보다 2천년정도 전이었다.불과 몇십년 전에 나온 이론들도 형편없는 현실성 없니 하는 판국에 2천년 전이란 시간을 고려한다면 정말 놀라운 것이다.강력하고 제대로 정비된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이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다.현 부정부패의 금젖줄을 너무나 황홀히 겪고 있는 사람들

이 책에서의 주장대로 우리나라는 너무나 전통유가 사상에 속박되어 있다.집단내에서의 개인희생이라던지,수직적상하관계의 당연시 등등. 이 나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이것을 과감히 몽땅 싸서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동화되어 있을것이다. 그러면? 버릴수 없다면 보완을 하는것이다.전통유가적 사고 방식에 찌들어 있다하더라도 보완은 가능하다.바로 한비자식 보완책이다. 제대로된 법제정과 제도.대통령의 능력에도,국회위원의 능력으로도 도저히 극복할수 없는 이 시대 찌꺼기는 바로 법과 제도라는 여과기를 통해 극복 할 수 있을것이다

지금도 난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려버리고 달아나는 차량들을 보곤한다. 그럴때마다 싱가포르가 생각나며 그나라 법의 강력성을 부러워 하기도 한다.이제 우리는 계속 새로운것만 찾으려 할것이 아니라 뒤도 한번쯤 돌아다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옛말이 틀린것이 없다.`는 말은 틀릴지언정`온고지신`이란 말은 거부할래야 거부할수 없는 진리다. 이제 우리는 한비자를 기억해야 할것이다. 개혁을 두려워 하는 부정부패 매니아들을 뒤로하고 깨끗한 `이익`을 추구하는 소인배(?)들이 앞장서야 한다. 박정희 동상보다는 한비자의 동상을 세워보는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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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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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기전에 먼저 `뇌`를 봤었다. `뇌`에서는 등장인물 소개할때 가끔 전편인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나왔던 인물들이라고 소개하곤 했었는데 과연 대부분의 중추 인물들과 주변인물들이 동일하게 많이도 나왔다.

솔직히 초반전개를 읽으며 놀랬다. `뇌`랑 전개구조가 너무나 똑같은 것이었다. 이게 작가의 성향인가보다 하며 넘어갈수 밖에는 없었지만, 꼭 `뇌`를 다시한번 보고 있다는 기분에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는것도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나 보다.`하아~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한특징처럼 막힘없이 무난하게 읽었다. 책을 놓지 않은 덕에 사건의 흐름을 놓치지않고 이해를 잘 해나가며 읽었지만 끝은 반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허구의 소설이라지만 진정 인간 존재의 근원에대해서는 베르나르도 조심성이 나타났나 보다. 뤼크레스와 이지도르가 서로에게 말하듯 베르나르도 한번쯤은 인간근원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특정 종교, 특정 과학이론에만 집착하지 않은 그 실체가 무엇이든 말이다. 그리고 밝혀 낼수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무난하게 읽을 만한 책이었지만 군데군데 헛점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화석을 찾았다가는 도난당하고 그 도둑을 잡자마자 또 도난당하고 하는 장면은 실 생활에서는 보기드문, 그리고 아주 우연이란 장치적 구조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중요사람들. 이것을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써 재현했다면 한마디 들을만 하다. `3류 영화다` 이런 구성전개상의 안타까움이 있긴했지만 한번쯤 자기자신에게 물음을 던질만한 여유를 가져다준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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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지음, 주윤정.최세희 옮김 / 이끌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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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한국학`.. 그래. 이제까지 우리의 역사가 그랬던 아니면 이방인의 자격으로써 함부로 쓴 책으로의 의미던간에 그 발칙한이란 표어는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다.

적어도 난 이책을 낸 의도를 파악할수가 없다. 한국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그런 책이라면 장담하건데 이것보다 훨씬 나은 저서들이, 그것도 외국인에 의한 시각으로 된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제 반론 나올차례. 그래도 이건 특별하게 접근하자나?? 이 말. 여러 단체들에서 이 책을 평가한답시고 한 말이다. 그래 특별은 해. 하지만 특별하기만 할뿐. 그 이상은 없다. 개개인의 인터뷰는 외국인의 시각에 비친 한국을 그리기 보다는 `TV인간극장`같이 한국에서 그 자리까지 가게끔, 힘든적은 없었나요? 하는것 밖에는 더이상의 의미를 줄 수 없다. 둘이서 주고 받는 말들도 그 한 인물의 특정 직업에 관련된 용어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얻고자 하는것은??

너무 한 책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면 좋은 글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글이 아니라는 이 시대 고상한 생각에 봉착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에 어떤 긍정적인 요소도 찾을수 없었다. 적어도 `외국인 시각에서 본 한국사회`라는 주제를 내걸고 있을때는 말이다. 특히 북한에 관한 글들은 왜 실려있는지 모르겠다. 기행문인가?? 아니면 일기?? 기행문을 볼바에는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가 압도적이고 일기라면 차라리 `안네의 일기`를 보라. 이해할수 없다.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이 책의 구성은 엉망진창이다. 이 엉망진창함을 모면하고자 큰 주제를 외국인의 시각에 의한 한국모습이다. 난 이 책을 보며 전혀 한국적모습을 찾아 볼수 없었다. 어디 재한외국인들끼리 카페에 모여서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쓰여질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분(!)께서 적은 글을 너무 비난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명한 인사, 특히 외국에서 유명하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 내놓는 것은 무엇이던간에 미치는 아주 고상한 성향이 있다. 그 책이 우리나라의 민감하고 갸날픈 민족성이란것만 건들지 않는다면 무조건 옳고 찬양의 대상이 된다. 누가 적었던 형편없음은 과감히 밝혀야 한다. 여기서 무엇을 얻었다고 자부하는분들..과연 무엇을 얻으셨는지요??

이 책은 우리나라에 출판될게 아니라 외국에 이런 이름으로 출판되었어야 할 책같다. `나의 한국문화 답사기` 이 보다 좋은 제목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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