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 헛간을 태우다, 그 밖의 단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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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나면 또는 읽으면서 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럴수 밖에 없기도 하다. 하루키 책은 생각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주제를 찾지 못해 헤매이거나 하루키만이 주는 상실감에만 젖을 뿐이기에. 하지만 이런저런 많은 하루키의 소설,특히 단편들을 읽고나면 생각은 많되 그것을 글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전반적인 하루키의 메세지는 단편집들이 서로서로 `대동소이` 하기때문에 같은 말만 반복할수는 없다. 그렇다고 각각의 소설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만을 하는것도 아니니 이또한 미묘한 하루키세계의 묘한 매력이 아닌가 한다.

이 책 개똥벌레외 다수의 단편들. 특히 개똥벌레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출발점이며 그 개똥벌레 자신또한 상실의 시대와는 별개로 아주 뛰어난 단편으로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개똥벌레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반딧불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구판이 개똥벌레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나도 상실의 시대와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역시 상실의 시대는 그 나름대로 그리고 개똥벌레 그자체만의 나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부분에서 개똥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란..아마 상실의 시대에서 마지막대사에서 주는 `짜릿한`정체성의 물음처럼 여기서는 그 정체성의 방황을 나타내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나.. 정말 여러가지의 생각을 가질수 있기에 간단한 `텍스트`로는 진정한 표현은 어려울것같다.물론 나의 실력부재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개똥벌레 외에도 다수의 단편이 실려 있다. `헛간을 태우다`에서는 어딘가 알수없는 미묘한존재로부터의 무의식속의 현실세계 접근이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며 읽으면서의 재미보다 읽고나서의 재미가 `쏠쏠`했던 작품이다. 그 외에도 춤추는 난쟁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같다.(마치 다른 작품중의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처럼 미묘한 인상을 준다.) 특히 주인공의 여자와의 `키스신`(?)에서의 묘사란 상상을 할경우 아주 비위에 거슬릴 정도였다. 욱~ 지금생각해도 그때의 묘사가 머릿속의 공연장에서 펼쳐지려 한다.

그리고 `장님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렉싱턴의 유령`이란 단편집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한 `장님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원본격인데 수정을 가한 작품에서나 원본이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하지만 수정을 가한부분이 좀더 매끄러워 보이긴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편은 그다지 나의 마음에 와닿지 못했던 까닭에 머릿속의 방을 얻지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라 찾기가 힘들다.

혹시 `상실의 시대`는 읽었으나 이 원본격인 `개똥벌레`는 보지 못한분이 계시는지요? 혹시 계시다면 얼른 보시기 바랍니다.자~ 우리도 한번 개똥벌레처럼 밤하늘을 날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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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모색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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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가의 3대요소라는것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토지` `주권` 그리고 `국민` 이것은 우리 뇌리속에 부정할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써 여겨져 왔었다.하지만 이미 그런 불변의 진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토지가 없으면 당연히 국가는 존재할수 없는 것이고 주권역시 마찬가지다. 주권이 없다면 식민지라고도 할수 있으니.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개념에 `물`이 새고 있다. 우리가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의도된 물이 새고 있는것이다.

노암 촘스키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에서는 그 국민이라는 의미를 상당히 좁은 의미로 정의해준다. 바로 힘있고 돈있는 소수 엘리트 권력층이란것이다. 사회를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다면 이 `소수`에 의해 그리고 `소수`를 위해 나라경제라는 바퀴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자들에게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것에 큰 문제가 있다.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며 나란 존재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이 국가의 3대요소개념의 파기는 흔히 말하는 강대국이 앞장서서 저질러 왔다. 강대국이란 개념이 들어가면 반드시 따라오듯 미국이 아주 장하게 해냈다. 교묘한 `신자유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울부짖으며 미국내의 `소수`에 타협했다. 이 시대의 세계의 경찰이라고 불려지는(솔직히 이런 표현은 역겹기 짝이 없다.) 나라는 실상이 경찰이 아니라 사기꾼이였던것이다. 앞으로는 엄한 얼굴로 질서를 지키자! 민주주의를 옹호하자! 라고 외치지만 뒤로는 키득거리며 테러를 조장하고 온갖 법의 울타리를 당연하단듯이 넘나들고 있다. 오죽하면 911 테러도 혹시 미국이 조장한것은 아니냐?라는 의심섞인 말들도 나오질 않겠는가.

우리는 현재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 식민지를 겪고 있다. 다만 이것을 언론이라는 장막으로 인해 못느끼고 있을뿐이다. `노암 촘스키`는 우리에게 그 장막의 일부분을 살짝 걷어 올려 보였다. 이제는 우리차례다. 그 장막을 걷어올릴게 아니라 확실히 불태워 제대로된 국민의 유리창으로 만들어야 할것이다. 현재 세계의 국민들은 이제 그 `장막`의 존재를 알아 차리고 여기저기 불을 짚이고 있다. 그리고 MAI 의 발진연기또한 커다란 불씨라고 볼수 있다. 이제 그 불씨를 살려야 할때가 온것이다. 저기 어둠속에서 물을 들고 달려오는 그 `소수`를 이기기 위해.`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또한 당신의 몫이기도 하다.`라는 촘스키의 당부를 우리는 잊지 말지어다.

-우리나라 국민들역시 농락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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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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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이 책과는 상당히 오래전에 대면한적이 있었다. 책이 읽고 싶다는 나의 생각 하나에 친구가 빌려준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내 자세에 문제가 있었으니 막상 책을 대하고 나니 책을 그다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버렸다는.... 더군다나 그때까지는 하루키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당연히 이 책을 접했을때 `야~ 정말좋군`이란 미사여구는 나올리 만무하고 `응? 이게 뭐야? 참나.`라는 표현이 나오기 딱 적당했다. 그렇게 나와 하루키의 첫만남은 서로의 실망으로 끝나 버린것이다.

친구에게 중국행슬로보트를 돌려주며 한마디 했던것이 지금은 후회가 된다.`야! 이 책왜이래? 추상적이기만 하고 뭘 나타내려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뒤 다시 하루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 책에 대한 그 편견은 영원히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 하루키의 특성은 대충알것 같아.`란 생각의 든뒤의 이 책은 정말이지 괄목상대였다.(책은 비록 가만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꼭 책이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다가온것 같았다.) 더 이상의 어떤 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시 그 때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말했다. `야! 너무 좋더라~~` 그 책을 계기로 해서 난 하루키의 팬이 되고 말았다.

하루키팬들이라면 당연히 숙지하고 있을 책이지만 혹시나 아직 하루키와는 서먹서먹하신 분들은 이 책을 계기로 하루키작가와 좀더 친근한 관계를 만들었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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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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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아마도 영화를 소설화 한것이거나 소설을 영화화한것으로 들었다. (후자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생각한건 `제발 영화한것을 소설로 한것이 아니기를~`(난 영화를 소설화한것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보지를 않는다.)

소설 전개방식이 약간은 특이했다.(특이하다고는 볼수 없다. 요즘 이런식의 전개또한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기존 전개와는 약간의 개성이 있다는 점에서 `특이`란 이름표를 하나 더 달수 있는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전개일거라는 생각없이 덤덤히 읽다가 헷갈린 기억도 있다. 그래도 한가지 재밌는점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한다는것이 나름의 독특한 재미를 주었다는거다. 각 인물들의 동일사건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1인칭으로써 모두 알아본다는것은 `베스트라빈스31`에 진열되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하나 맛본다는 과장의 표현도 빌릴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바로 나를 찾아왔던(노크도 없이) 생각은 `영화한편`을 본것 같다는것이다. 여주인공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책속의 극장뿐만 아니라 나의 뇌속에 자리잡은 극장에서(이 극장의 주인은 산만할때가 많아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상영하는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도 생생히 상영을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만 극장에서 다른세계로의 여행에 잠시 길들여져 있다가 예고없는 끝으로인한 현실과의 괴리감이 이 책에서도 느껴진것은 약간의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까한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굳이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중학교 독후감 같다.) 한번 읽어보십시요.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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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미 유어 드림 -상
시드니 셀던 지음, 정성호 옮김 / 북앳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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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절판


시드니 셀던의 명성에 걸맞게 흥미진진했다.몇몇분은 끝이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렸다고 하시는데, 뭐 이 책에는 그다지 큰 여운을 남기지 않으려고 주인공의 일말까지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그냥 마지막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 거기서 그것으로 끝맺음을 해도 큰 지장은 없었겠지만 작가는 그 여주인공의 결말과 그 여자가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것이 아닐까 한다.솔직히 마지막에 여자의 살인과정과 정신상태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으면 이 책은 너무 주어진 상황이 억측이다라는 비난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보자. 난 오히려 끝부분에 더 큰 흥미가 갔다. 1권은 말할것도 없이 너무나 큰 흥미속에 빨려들어가 헤어나오질 못했다. 2권의 판결과정은 약간의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측과 검사측의 팽팽한 입장대립 또한 놓칠수 없는 볼거리였다.(아, 물론 맘에 들지않았던 판사.;;) 그리고 그 모든 엉킨 실타래를 마지막 치유과정에서 모두 보여주었다. 난 이 책이 그렇게 끝맺음을 상당히 달갑게 생각한다. 어이없는 반전이라 함은 오히려 맨처음 있지 않았나 한다.

난 이책을 전혀 모르던 상황에서 읽었기 때문에 처음 3파트가 지난뒤 그 파트를 묶어주던 상황이(혹시 안본분들을 위해 언급을 할수 없음이 답답 ㅡㅜ)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반전이었다.오히려 그것을 반전으로 삼는다면 몰라도 나머지는 큰 반전은 없을듯 한데...아! 한가지 `옥의티`는 보였다.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마지막 재판과정에서의 결말부분. 좀더 자세한 판사의 내면심리 묘사같은 부분이 필요하지 않았나 한다.

이 책은 어떤 감동문학보다는 추리소설같은 흥미부류의 책이다. 하지만 그 `흥미`라는 곳은 비싼 `택시비`를 주고서라도 꼭 한번쯤은 방문해볼 가치고 있는 곳이었다.

최대한 책의 내용은 자제하려고(그만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것을 안만큼의 세배이상은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다.) 했는데도 너무 많은 것을 언급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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