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제왕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을 접할때의 자세랄까, 그 기본 마음가짐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가 있을 듯 하다.

첫째는, 존 그리샴이라는 타이틀하에 그의 작품을 애독하고 싶은 마음가짐. 그의 작품이 실망스러웠다면 이번에는 조금 나아졌길, 이전에도 충분히 재밌었다면 이번에도 그 재미를 또 한번 만끽해보고픈 마음. 존 그리샴이라는 하나의 작가에 충분히 매료되어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을 터다.

둘째는, 존 그리샴이야 어떤 작가이든지, 법정 스릴러라는 그 숨막히고 복잡하게 엮이는 지적 두뇌싸움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서 법정스릴러라는 장르로 불리는 이 책을 집어든 경우가 있을 터다.

즉, ' 그리샴'의 법정스릴러를 찾아 보느냐 '법정스릴러'의 존 그리샴에 무게를 두느냐 인데, 나는 첫번째 보다는 두번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사라진 배심원'을 보고서 존 그리샴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게 아닌것도 아니지만,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보다는 법정 스릴러의 존그리샴에 무게를 준게 사실이다. 이 두번째의 입장에서, 즉 존 그리샴이 이제까지 무슨 작품을 써왔던 이제까지 재미가 있어왔던 없었던 간에 나는 오직 이 책, 하나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책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얽히고 섥히고, 공격하고 반격하고 등의 너무 치열한 두뇌싸움을 기대한 나였기에 실망이 따라왔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여기에는 그 어떤 스릴러적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어느날 주인공에게 찾아온 의문의 사나이에게 '집단소송'을 거시오라는 권유를 받은뒤,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가 형성되어지는데, 그 주요 스토리가 뚫어 놓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 싱겁기 그지 없었다. 소송사건 하나에 얽혀지거나, 숨어있는 의문, 함의 같은것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인 공격 일로다.

소송을 걸어라. 이겼구나. 돈벌었다.

이 세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싱거운 구조를 띄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주인공의 사생활은 자칫 법정스릴러라는 거대한 장르를 달고 있는 이 소설이 너무나 싱겁게 흐를 우려가 있어 보여 교묘하게 이뤄놓은 장치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이거 너무 싱거운거 아냐?'라는 불만이 일기 전, 바로 또 다른 관심거리를 둠으로써 일종의 싱거움을 방지하는 예방책이라고 할까?

소설 자체가 지루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한번 읽으면 솔직히 놓기 힘들만큼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큼의 그 어떤 문체가 있고 흐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건 법정스릴러는 절대 아니다. 스릴러라고 하면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배이게 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같이 긴장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를 심어 놓아야 하지만, 이 '불법의 제왕'은 그 의문의 사나이와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반전부분을 제한다면 그 어떤 스릴러적 요소가 없었다. 스릴러로서는 과감히 실격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법정 드라마 정도로 장르소개를 바꿔 읽는 다면 느낌이 충분히 달라지리라 믿는다. 여타 영화에서 볼수 있는 따뜻한 백설공주 변호사와 악덕하기 그지 없는 마귀할멈 변호사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일궈내는 인간미같은 드라마적 요소는 비록 없지만, 책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 미국 변호사들의 도덕불감증을 찔러내고 그 도덕불감증에 말미에 터뜨려지는 허무함을 그려낸 점에 있어서는 또 다른 드라마적 요소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이 법정스릴러 일것이라고, 영화 '사라진 배심원'에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수 없는 그 긴장감을 그대로 안고서 '불법의 제왕'을 본것이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처럼 법정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그 특수한 공간에서만 느낄수 있는 스릴러적 요소에 집착하지 않고 편안히 읽을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충분히 싱거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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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개편만 하시고나면 이런저런 불만(!)만 터뜨려 놓는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마나, 마이리뷰 관리에서 내가퍼온 마이리뷰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갱신되지 않는것 같는데요...제가 모 2분의 마이리뷰를 퍼왔는데, 퍼온 마이리뷰에는 하나도 없다고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마이리뷰 퍼올때 상품이지미와 별점도 같이 퍼와 지면 좋을것 같은데...그건 조금 까다로운 부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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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지기 2004-03-0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 오랜만이에요.. ^^ 잘 지내시지요?.. ^^
말씀해주신 부분.. 반영하겠습니다. 원래 계획상에 있었던 것인데... 살짝 빠뜨렸습니다.
테스트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100% 완벽하게 오픈하는 건 힘드네요. 이해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이번 초 내내.. 안정화/보완 작업을 할 예정이랍니다. ^^

ceylontea 2004-03-03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전히 묵묵히 알라딘 테스터의 길을 걷고 계시네요...
서울 오시면... 지기님으로 부터 얻어먹을 밥그릇 수가 너무 많아 배터지시면 안되는데...

sooninara 2004-03-0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가서 먹어 드릴까요? 불러만 주세요..배터지면 안되는데^^
 
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
이윤기 지음 / 해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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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정점으로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그리스 신화로 유명한 이윤기씨의 가장 근작 <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가 눈에 띄었다. 화려한 도판, 현란한 도판. 모두 컬러로 실린 그 도판에 난, 항상 상상만 하거나 그저 그런 해상도 떨어지는 도판만을 보아온 나는 그냥 미혹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은 도판을 제한다면 남는게 거의 없다. 1부 신화에 길을 묻다는 확실한 선이 없는 황망한 신화 겉 햝기 였고 나머지 2부, 3부도 별 볼일 없는 거의 겉햝기 수준에 밖에 머무르지 않는다.

특히나 1부에서 했던 말 또하고 반복하고, 돌려말하는 지문에는 짜증이 났고, 일면 쓸데없어 보이는 글조차 대뜸 끼어 들고 유치하기까지 한 지문은 실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종국에는 화수분이야기가 나오자 그것마저 설명해 주는 저자의 친절함에는 두손 두발 들었다.

화려한 도판이 주목적이었고 그 감상이 목적이었지만 급조된 듯 한 지문과 분량을 늘려보려고 애쓰는 듯한 처량한 모습에서는 너무 아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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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베토벤 - 시성과 악성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
로맹 롤랑 지음, 박영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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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성과 악성인 괴테와 베토벤에 관한 글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천재라는 존재들의 만남이란 시대와 국적을 떠나 보는 이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괴테와 베토벤>은 다소 실망스럽다. 괴테와 베토벤의 만남이 잠깐, 아주 잠깐 동안만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 연결의 끈이 두껍지 않다는 점도 있겠지만 이 책은 주로 괴테에 관해 다루고 있다. <괴테와 베토벤>이라는 책의 제목과는 별개로 괴테의 삶과 생각, 생활을 나타낸 것이 대부분이다. 앞부분은 괴테보다는 베토벤에 관해 다루고 있는듯 하나, 실상은 괴테와 베토벤의 사이에 중개역할과 동시에 연인의 역할을 해준 베티나에 관한 서술이 오히려 주를 이룬다.

그리고 작가의 지나친 천재숭배경향이 묻어나오는 문체도 그닥 달갑지는 않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괴테와 베토벤에 관해 고르게 서술한것이 아닌 치우친 책의 편성도 제목과의 비교에서는 엉성하기 그지 없다.

베토벤과 괴테에 관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분들이 읽기에 괜찮을 듯 하다.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같은 경우는 모차르트에 관해 모르더라도 모차르트라는 한 인간을 볼수 있었고 부족한 지식은 저자의 주를 통해 보강할수 있었다. <괴테와 베토벤> 역시 인간 괴테를 여실히 볼수 있었으나, 인간 베토벤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한 면이 있었고 또한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과 같은 이해하기 쉽고 쓰인 주가 부족한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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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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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첫사랑의 아픔, 또는 추억이라 불리는 그 풋풋한 알맹이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일반적인, 보통 '우리'라고 불리는 평범한 집단의 뭉텅거리 속에서의 알맹이들은 보편이라는 그 집단이 피해 가지 못할 공통의 소속증은 아닐까? 결국은 누구나가 사랑을 하게 되고 이성을 그리워하게 되기에, 누구나 단단히 조여있는 가슴의 뚜껑을 열어 보면 그런 추억들은 다들 하나씩 고이 맺혀 있지는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물론 그것이 아직도 촉촉히 생맹력을 지니고 있는지 말라 비틀어져 바스라져 버렸는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가끔, 솔로의 비탄에 잠기다 보면 사람은 왜 본능적으로 이성을 그리워하게 되는지... 난 이성적인 인간이라 자부하는데 왜 본능 따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런 추억의 주머니를 지니고 있는지, 또 왜 그 주머니를 버리지 못하고 가끔씩은 열어보는지...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곤 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하지메도 마찬가지로 시마모토라는 첫사랑의 기억의 편린을 조용히 소유하고 있다. 바쁜 일상 덕택에 자신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그 기억의 편린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지만 어느덧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점점 자신의 알맹이를 잃어가던 하지메는 어느 순간 자신의 무언가가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드디어 자기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 기억의 덩어리를 발견하고 만다. 가슴속의 시마모토를 그리워하곤 만다.

자신의 텅 빈 일상을, 아니 텅 빈 자신을 시마모토만이 유일하게 채워줄 것이라 믿는 하지메는 가슴속에 조용히 살아 숨쉬던 그녀를 이제는 강력히 소유하려 든다. 하지만 사실 하지메는 그녀를 소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유욕에게 소유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빈공간 일부를 반드시 메워야 한다는 심한 자괴감에 소유욕은 점점 더 강해지지만 그럴수록 하지메는 더욱 일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그러다 결국은 근원의 상실감을 느끼며 이제는 빈 껍질만 남아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빈 껍질의 자신과, 소유하려 하지만 결국은 상실되고 마는 하루키의 언어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하루키의 소설을 보고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떠오르곤 한다. 사실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하루키의 상실과 허무의 코드는 그 색채가 강하다고 볼 수 있겠고 또 사실 나 자신이 느끼는 상실과 허무의 코드 역시 그 위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하루키의 어느 소설도 주인공인 나 자신마저 현실을 쉽게 버려 버린 적은 없었다. 일상 속에서 허무와 상실을 느껴 그곳을 탈피하려 하지만 언제나 나 자신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곤 한 것이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역시 자신의 상실감을, 자신의 빈 껍질을 채워줄 알맹이를 결국에는 현실에서 찾으려고 한다. 결국은 현실로 돌아오는 나 자신인 게다. 그런 매력에서 난 상실 속에서의 희망을 발견하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런 매력이 하루키의 매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런 매력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매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아니었다면 손조차 되지 않았을 법한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의 소재로 이야기가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인간 근원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고독감과 상실감을 뿌옇게 뿌려준 작품 전반의 풍경은 은은한 생각의 쇼파로 나를 데려다 주었기에 이야기 끝까지 같이 내 달릴 수 있었는지 아닌가 한다.

첫사랑의 아련한 국경의 남쪽과 현실을 잃어가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태양의 서쪽. 나는 그동안 어디에서 어디로 걸어오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의 위치는 어딜까? 남쪽의 아련한 희망과 서쪽의 허무한 상실과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내가 잠들어 있는 그 곳은 어딜까라는 물음을, 책을 덮으며 지그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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