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브루스 질리 지음, 최준명 감역, 형선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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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있던 그 인물 `장쩌민`. 그런데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베일에 싸여 있지도 않다. 중국은 그동안 꾸준한 개방화의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 지난 날의 암흑 속 동굴에서 벗어나 드디어 `빛 본` 중국이 되었다. 그 중국의 손을 잡고 랄랄라 걸어나온 장쩌민 역시 태양아래 빛 보며 다닌다. 그 동안 나의 눈에만 베일이 드리워졌던 것을 뿐. 이제 슬슬 그 베일의 매듭을 풀어보자. 단, 개인적으로 매듭을 참으로 못 푼다.

장쩌민, 텐안민 사건이후 임시적 지도자에 불과할 것이라 여겨지며 불쑥 뛰쳐 나온 그. 자~ 주목하시라. 하지만 그런 주위의 우려어린 시선 속에서도 불구하고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까지 차지하며 명색이 아시아의 호랑이로 도약한, 더불어 아시아 최강 지도자의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던 그. 비록 현재는 서기 자리에서 물러 났지만 과거 그는 명실상부한 엘리트 국보급 지도자였다. 아, 물론 이제까지는 내 생각이 아닌 그 시대 사실과 주위 평가였다. 그럼 나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다들 왼쪽부터 매듭을 풀고 있어도 나는 내 생각되로 풀련다. 그래서 가끔 더 꼬이곤 하지만.

장쩌민은 흔히 유명한 지도자들이 지니는 `카리스마적 리더쉽`이 없다. 모든 일을 약간은 두리뭉실 다듬어 처리하는 모습. 요즘 영웅이라 불리우는 자들의 `불타는 카리스마`에 염증도 났던 차, 일방편도가 아닌 수렴형 자세는 심히 본받을, 칭찬, 존경할 바 이지만 장쩌민에게서는 오히려 그런면이 우유부단함으로 비쳤다. 장쩌민 역시 수렴형 정치 방식을 채택한다고 하나 사실 그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비추어 줄만한 결단은 찾을 수 없었다. 보물찾기를 못하는 나 좀 골탕먹이려고 숨겨놓은지는 몰라도 결코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자기 결정이 아닌 후원자, 지원자의 떠밀림 정치였다. 수렴형이 아닌 수동형 정치였다. 단 몇가지 능동적인 면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누구에게 빌붙어야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겠는가하는 결정.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풍향계`였겠는가? 제 아무리 시대상황이라도 난 그런 풍항계는 질색이다. 우리나라에서 `철새` 좋아하는 분 별로 없는 것과 일맥상통, 대동소이.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본받을 위인자`라고 생각치 않는다. 자기의 앞길을 위한 기회주의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모습에서 나는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를 본 것이 아닌 속물에 찌든 한 사람의 범인을 보았다. 나라 배경이 그런것이라 죽어라, 죽어라 외쳐도 외쳐도 못들은 체 하련다. 싫다. 물론 비난만이 아닌 본받을 만한 점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본받을 점은 가지고 있다. 그런 면이 많고 커야만이 우리는 그를 위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실 평전이야 각 개인이 읽기 나름이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고 장쩌민에게서 진정 본받을 만한것을 캐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처럼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의 이런 면을 고려해 장쩌민에 대한 이 투덜거림은 <장쩌민>을 읽은 개인적 불평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책 <장쩌민>은 장쩌민의 정치인생을 역동적이고 과감하게 그렸다는 평전이였지만 솔직히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가끔씩 눈에 띄는 연결의 부자연스럼움, 번역문제는 나의 매듭풀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였다. 더불어 짱쩌민 이전시대의 중국상황이나 장쩌민 시대의 큰 사건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다면 조금의 고난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매듭을 반쯤 풀었다. 사실 이렇게 투덜거렸어도 한 권의 책만으로 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만이다. 이제 나는 나머지 반토막의 매듭을 위해 새로운 여정을 떠날 것이다. 찜찜하던 매듭을 다 풀지 못했다고 이 <장쩌민>을 비난할 것은 아닐게다. 사람이란 매듭이 쉬워보이지만 실상은 어렵다. 이 책으로 조금의 매듭이라도 풀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매듭이 조금이라도 풀렸다는 사실에 기뻐하자. 하지만 만족하지는 말자. 이제 나는 만족치 못한 마음을 안고 바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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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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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의 끊임없는 교차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이 필연인듯, 필연이 우연인듯 보이는 만화경 같은 거울의 시선속에서, 우리는 느끼지를 못하고 있을 뿐, 그 둘의 공존의 회오리 속에 어지러이 널부러져 산다. 빙글 빙글 어지러운 세상. 그 빙글 거리는 어지러움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을때 바람막이로 `휭` 나타나는 우리의 구세주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은 작가의 가장 빼어난 대표작으로 꼽힌다. 나로써는 동일 작가의 <우연의 음악>보다는 진행의 흥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추리,탐정,논리의 설계도로 이루어진 그의 미로를 요리조리 빠져나오는 흥미, 그 미로의 통로마다 설치된 문을 열지 않고는 조바심으로 안달이 나는 기대감들, 그의 설계도는 여전히 하자가 없었다. 각각의 설계도에 따른 상대적 평가차이 였을 뿐 절대적 흥미면은 KS다. 혹 만족하지 못하면 AS도 될런지?..

<거대한 괴물>은 직역 그대로의 Giant Monster가 아니다. 처음 접할때 커다란 `고질라` 한 마리라도 나오려니 생각하면 작가 땀난다. <거대한 괴물>은 Giant Monster가 아니라 Leviathan이다. 토마스 홉스가 `개인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권력`이라 말한 그 Leviathan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개인`이란 개개인이 자기 자신의 삶을 결정해 나가려는 의지로 변장을 했고 `거대한 권력`은 불확실특별시 세계구 성채에서 무수히 쏟아 붓는 우연의 포탄들로 변태를 했다. 의지와 운명과의 지루한 전쟁터. 멍한 머리도 대하다가는 포탄 샤워를 받기 딱 좋다. 조심하라.

전쟁터를 잠시 벗어나 보자.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주운 돈으로 복권을 샀다가 `대박`을 터뜨리고, 서로 별 다른 호감이 없는 한 쌍의 남녀가 우연찮게 자주 마주치다 결국은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헤어졌던 애인이 어느날 갑자기 나의 가장 친한친구 애인으로 `쿵`하고 나타나는 일상생활의 일들. 우리는 이런 지극한 일상생활에서도 복병 `우연의 회오리`와 맞닥들인다. 버텨보려는 우리의 시도는 애처롭다. 조만간 버티던 우산은 뒤집혀 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물>은 그 위험한 복병에 철저히 자기만의 의지로 맞서 보고자 하는 인물의 삶을 나타내 준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그 괴물과 싸웠다는 것을 깨닫고 또 대부분이 벌써 그 괴물의 발밑에 두손들고 납작 눌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그 괴물의 발밑에 수장되어 서서히 썩어가는 것이 옳은 삶일까? <거대한 괴물>. 멍한 눈으로 흥미만 찾던 둔탁한 머리를 잘도 유인해 퍽!! 일격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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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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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대단한 작가다. 흔히 명성은 뛰어나나 그 명성에 비해 그 글은 터무니 없는 경우가 왕왕있는데 폴 오스터, 그는 아니였다. 난 지금 그를 최고의 이야기 꾼이라고까지 추켜 세워 주고 싶다. 출판사에게 잘보이려고? 서평담당자에게 잘보이려고? 절대 아니다. 내 주관, 내 판단으로 그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에 관한 여타 매스컴의 설명처럼 이 이야기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 뒤는 알수없는 읽는 이로 하여금 도저히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는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게끔 만드는 마력이 있다.

우연의 음악. 이 우연이란게 우리에게 참 많은 의미를 준다. 주인공은 일상적인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다 어떤일을 계기로 점점 불운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데 우연히, 아주 우연히 생면부지의 아버지로부터 거대한 유산을 받게 된다. 거기서 부터 주인공 나쉬는 우연히 만나는 도박청년꾼과 우연히 얽히게 되는 사건들 등등 모든 인간사란 우연의 필연성을 갖는다는걸 보여주기나 하듯이. 흔히 사람들은 운명이란걸 말하곤 한다. 자기 인생에 피할래야 피할수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사람들은 자기 팔자다, 운명이다라는것으로 대체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서 정말이지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이라고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가 의도하고자 또는 의도하지는 않았더래도 이 책을 다 읽는 독자가 생각할수 있는 그 무언가는 바로 그 우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다. 운명이라고만 하면 너무 수동적인 인간상일것이고 그저 우연이라고 하면 너무나 불확실한 그리고 그 역시 수동적인 삶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우연에 대한 결정을 함으로써 그 수동이란 의미를 능동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쉬가 유산으로써 드라이브를 떠나버리는것, 도박에서 자기 모든것을 거는것, 탈출의 충동에도 자기는 자리잡고자 하는 결의 등등 그 결과야 어떻든 우리는 나쉬에게서 우연이란 수동의 의미보다는 그 확고한 결정에 능동적인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렇다. 인생이란 그런거다. 자기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우연같은 사건들. 그 미래의 불확실성속에서 터지곤 하는 우연에 자기만의 확고한 의지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우연이란 결코 불확실성의, 수동의 우연이 아닐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그런 철학적개념까지 덧붙일 수 있는 그에게, 나 어찌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칭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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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악몽 - 유럽 판타지 단편선
알퐁스 도데 외 지음, 고봉만 옮겨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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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의 취향이란 너무나 다르다. 그치? 나 이 서평쓰기전에 먼저 올라와 있던 서평을 봤는데 별이 다섯개야~ 우와~ 그거 만점아냐? 만점!만점! 근데, 난 이거 빵점주고 싶어. 그 왜 있잖아~ 초등학생 받아쓰기 공책에 멋있게 예쁘장하게 그려져 있던 큰 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밑에 밑줄 2개~ 이 책. 아마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쯤에 나와서 소개된걸꺼야. 기억나. 크리스마스와 전혀 관계없는 나도 그 명절(?)의 분위기에 버티다,버티다 휩쓸린 판이였지.우~ 살려줘. 그 때 막 이런 책이 나오니까 `앗! 이 책이다`싶더라고, 그래서 조금 기다렸다 돈모은뒤 사려고 했더니만 마침 그때 절판이었던가? 여튼 그런 비슷한 일때문에 안샀더랬어. 그러던 참에 이제서야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됐어. 근데 있잖아. 음..한마디로 별로였어. 약간 판타지풍의 소설인 만큼 독자에게 흥미를 줘야 하는데 난 흥미를 전혀 못 느꼈어. 흥미야? 너 어딨니?

이건 왠지 우리나라(하긴 우리나라만 그런것은 아니지) 상술의 특허품. 시즌맞춰 고객심리 유도하기 같았어. 왜 발렌타인데이에 자기도 모르게 초콜릿 먹고 싶고(받고 싶다고 해야 하나?) 화이트 데이에는 사탕먹고 싶고 기타 등등 정말 판타스틱한 상술있잖아.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 봐~ 너무 화려한 이름들이잖아~ 이름만 들어도 와~ 하게 되는 작가,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란 흥미로운 책이라니~ 울컥하는 마음에 구매하는 사람많겠지? 근데 히햐~ 세상에, 난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있길래 우와~ 이거 판타지풍으로 각색한거 보다 싶었는데, 왠걸~ `축약 성냥팔이 소녀`더군.아, 물론 판타지풍으로 아주, 아주 약간 섞어 놓았어. 하지만 그 큰 틀은 성냥팔이 소녀야, 소녀의 생명이 꺼져가는 그 장면만 약간 신비하게 그려 놓고 나머지는 줄여놓은 성냥팔이 소녀 그 자체인.. 그때의 그 황당함이란..그나마 `조지프 셰리던 르 파누의 악마를 만나다`정도가 판타지란 명찰을 겨우 붙일만 하고(아냐, 이건 솔직히 읽으면서 오싹하기까지 했으니까 붙일만 한게 아니고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 편이 나을것 같아.) 나머지는 진짜 아냐. 몰라, 그거 내가 썼으면 졸작이라고 할걸? 유명한 사람이 쓰면 그 쓰여진 것도 유명해지는게 현실이지.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잖아? 이름없는 가수가 부르다 그냥 조용히 사라진 노래, 요즘 삐까번쩍한 얘들이 다시 부르면 가요차트 1위도 거뜬하잖아? 아자 힘내자~ 대중문화!

결론은 전체적으로 별로였다는거야. 흥미롭지 못했어. 오히려 계몽적이였다고나 할까? 음, 그래 그게 맞는것 같아. 어린이들은 아니고 이제 어린이의 틀을 막 벗은, 청소년이 좋겠군. 청소년들에게 들려줄만한 계몽동화라고 하면 딱 좋을것 같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사람을 죽이다.`이건 딱 이지.정말 요즘 말로 `맞습니다, 맞고요`야. 계몽적 그 자체야. 유령이 등장한다는 그거 하나만으로 판타지에 분류되는건가? 음. 그건 내가 분류 안해서 모르지만 판타지 보다는 청소년, 아니 이건 `어린이를 위한 계몽동화- 사람을 죽이면 안돼요~`라고 라벨을 붙여주면 딱 좋을 것 같더라. 난 누가 이 책에 물어보면 이렇게 길게 설명은 못해니까 딱 한마디로 잘라 말해줄거야. `재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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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 인간과 과학 1
앤드류 뉴버그.유진 다킬리.빈스 라우즈 지음, 이충호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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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평상시 나의 관념과 일치하는 듯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자, 다른 여러분들은 이 책을 왜 접하셨는지? 그리고 읽고나서의 그 감정기복은 어떠하셨는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어, 거기 모니터밖에 그냥 가려고 하는 분,잠깐 와서 마저 보고 가시지요.고등학교때 생물공부는 열심히 하셨나요? 음, 이과였다면 할수없이라도 좀 하셨을테고, 문과라도 기본 생물은 배우셨죠? 아,그런데 어떻하죠? 전 문과였고 배운 생물조차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군요. 나이도 별로 안됐는데 벌써 이래가지고 원, 더군다나 이 책은 앞에서 `뇌`에 구조와 기능에 대해 아주 간략히 설명해주죠. 아~ 이거 미치는줄 알았어요. 그 간략이란게 배워 제대로 익히고 있는사람에게는 다시한번 상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영양제가 될터지만, 이거 배운거 다 까먹고 빈털털이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독약이더군요. 무슨 독약요? 아 있잖아요, 잠!

뭐, 그래도 다행히 앞 몇장만 뇌에대한 구조와 기능, 기타 여러 신경반응들에 대한거고 그 다음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던군요.전 여기서 부터 정신차리고 봤죠. 덕분에 두정엽이니, 후정엽이니 하면 헷갈리기도 했죠. 자~ 신이 뭘까요? 전 개인적으로 불교라 칭하고 있지만 솔직히 저의 머리는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어요. 왜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가? 과학으로 증명안되는 우주를 그냥 멋대로 신이 만들었다고? 결국은 우리 뇌세포가 살아있어서 생각하는거 아닌가? 그 뇌가 죽으면 그런 신적 존재 의미도 살아지는거 아닌가? 이런 기타 잡다한 생각에, 저로써는 한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놈의 `이성`이란게 훼방을 놓더군요.

전 이런 기본입장에서 이 책을 잡았어요. 물론 읽기전에 이 책이 분명 무신론적 입장을 견지해 주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어요.어, 근데 그게 아니더군요. 기본적인 입장은 과학자의 입장인 만큼 무신론적 입장이였는데 뒤로 가면서 우리의 `실존체제`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결과기대로 치닫더군요. 이것이 무얼의미 할까요?솔직히 이야기 하죠, 전 여기서 느끼거나 크게 얻은것이 없습니다. 책의 서두에 `필자가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독자분들은 모르실수도 있습니다.`하더군요. 제가 바로 그 독자분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무신론적 허무의 이야기였는지, 막연한 종교의 과학적 뒷받침이란 희망의 책이였는지.. 읽으실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아, 다만 좀 지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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