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찬란하고인생은귀하니까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현명하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은 정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내 속을 다 꺼내 보이며 의지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멋대로 기대한 만큼 크게 실망했다. 이만큼의 나이를 먹고 보니 나도 좋은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출퇴근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를 하고 당연하게 양보를 요구하는 어른들을 자주 만난다. 얼마전 TV에서 중학생이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되는 것 같아요."라고 한 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 책은 최근 유튜버 밀라논나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70세 패션 디자이너 장명숙님의 인생 내공이 담긴 에세이다. 한국인 최초의 이탈리아 패션 유학생, 패션 디자이너, 패션 컨설턴트, 문화코디네이터, 이탈리아 명예 기사, 교수 등 저자의 성취는 외모만큼이나 멋지고 화려하다. 하지만 저자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와 겸손하고 검약하는 생활철학에 있다. 멋진 할머니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인생 멘토라 칭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지키고' 품위를 유지하며 이해하고 안아주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글에 녹아 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오래된 프랑스 영화가 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밀라논나처럼'이라는 말로 이 책을 표현하고 싶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걸 붙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심사숙고하여 선택해서 그 택한 일에 후회하지 말자.
나의 행복을 스스로 지켜나가자. p.59

기성세대는 인생을 숙제풀듯 살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축제처럼 살게 해줍시다.
경계선을 잘 파악하시고 선을 넘지 않을 때 어른 소리를 듣습니다. p.71

자기 취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좋은 디자인이 탄생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각 개인은 개성을 구가하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p.217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장명숙 #밀라논나
#가제본 #서평단
#에세이 #책추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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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 무사히 나이 들기 위하여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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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는 50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어떤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나이에 저걸 해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40대 후반에는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얼른 실행에 옮겼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게 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50세가 되면 못할 것 같아서였다.
1월생으로 소위 빠른 72년생인 나는 올해 양력 나이로도 50이 됐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건 한꺼번에 10년 늙어버린 기분이어서 조금 징징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집 근처에 캘리그라피 공방이 있는 걸 발견하고 바로 등록했고 바로 얼마전에는 모 사이버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누군가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기에 속으로 생각했다. '아닌데? 난 재미있게 할건데?'
50대가 처음이라 나이를 밝히기는 좀 쑥스럽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물론 노화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피부는 탄력이 떨어지고 시력도 저하되고 머리칼은 얇아졌다. 마스크의 영향도 있겠지만 조금 빨리 걸으면 호흡이 가쁘고 쉽게 피로해진다. 별 수 없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기엔 나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만 같다.
이 책은 50대의 여자 사람이자 고등학교 사회 교사인 저자가 글쓰기와 몸쓰기로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적은 에세이다.

이 책에는 나이 들어가는 한 사람이, 자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한 사람이, 서러움과 피로가 차곡차곡 쌓여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던 한 사람이, 삶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기 위해 100일 동안 몸 쓰기에 대해 글을 쓴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pp.12~13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는 '아니, 사회선생님이 왜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 거지?'하고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나, 알고 보니 <수상한 북클럽>,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등 여러 권의 책을 내신 작가님이셨다.

저자가 실천하는 몸쓰기란 달리기이다.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조금씩 꾸준히 달리면서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사실 나는 수차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정확히는 7번이다. 하지만 30대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수영대회에 자주 가는 내가 수영을 꾸준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심판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은 수영복도 한 벌 없다. 그러면서도 운동하는 사람인 척 나를 속이고 있었다.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는 송이를 운동을 하지 못하는 핑계로 삼고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강좌를 등록하면 과제 제출을 위해 글을 쓰지만 강좌가 끝나면 가위로 자른 듯 나의 글쓰기도 끝이 난다. 올해엔 매일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지만 단 이틀로 끝이 났다. 잘 쓰고 싶어서 계속 쓰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런닝화를 사고 싶어졌다. 운동복도 필요하다. 다시 달리고 싶다. 가볍게 달리면서 생각한 것들을 100일 글쓰기로 잇고 싶다. 개학하면 몇몇 선생님들을 꼬셔봐야겠다. 50은 나를 돌보기에 적당한 나이니까.

알고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알게 된다. 쓰기의 과정이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이 쓰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앎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스러운 것은 쓰기가 아니라 앎이다. p. 208

단번에 잘하려고 하면 반드시 일을 망친다. 살아온 여정의 어느 지점을 뒤져봐도 한결같다. 엄청난 목표를 설정하고 단번에 잘해내려고 했던 일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다. 나는 늘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만 해낼 뿐이다. p. 211

오늘 혼을 갈아넣은 글쓰기를 하고 3일간 드러눕는 것보다는 오늘 시시한 글쓰기를 하고 내일도 시시한 글쓰기를 하며 매일을 보내는 편이 좋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시한 글쓰기를 매일매일 하다 보면 절대 시시하지 않은 글을 쓰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날이 올 것이다. p. 220

#박현희 #에세이 #책추천
#뜨인돌 #뜨인돌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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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두 친구 - 한국전쟁 71주년 기획소설 생각학교 클클문고
정명섭 지음 / 생각학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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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월, 희준과 주섭은 산 꼭대기, 일명 남산스키장에서 만나게 된다. 스키라는 같은 취미에 배제중학교 5학년이라는 것 외에도 희준은 청진에서 월남했고, 주섭은 오사카에서 해방 후에 귀국한 이방인 출신이라는 점이 두 사람을 급격히 가까워지게 한다.
그러나 남한 단독 선거는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할 거라는 주섭과 북한 빨갱이들을 믿을 수 없다는 희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계속 부딪친다.
두 소년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소설이다.
내가 20대였을 때에도 스키는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1948년에 이미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동묘, 서촌, 서울역 등 당시 거리의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국, 이념이란 본인의 경험이나 주변의 영향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지만 타의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대립한 현실이 서글프다.

갑작스런 결말은 아쉽다. '두 장을 넘긴건가?'하고 다시 책장을 뒤적였다.

그럼에도 의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우정과 전쟁을 다룬 점에서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 떠오른다.

"사회주의든 뭐든 결국 사람을 잘살게 만들려는 거잖아. 그것 때문에 서로 멱살잡이에 주먹질을 해. 그걸로도 부족하면 이제 총질을 하고 칼을 휘두르겠지. 안 그래?" p.124

#정명섭 #정명섭작가
#한국전쟁 #소설추천 #책추천
#생각정원출판사 #생각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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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 끝내야 내가 사는 독성관계 심리학
권순재 지음 / 생각의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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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성관계는정리합니다

올해 초, 방송에서 경악할 사건을 접했다. 경남 김해에서 사설 응급구조단 단장이 부하직원을 장시간 폭행하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가운데 단장이 부하직원 A씨를 노예처럼 대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단장과 응급구조사 A씨가 사실상 지배관계, 주종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해자인 구조단장은 A씨에게 무임금 각서와 부당한 채무이행각서를 쓰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착취했다. A씨는 해군부사관 출신의 건강한 남성이었으나 구조단장의 지배하에 있게 된 2년만에 급격하게 외모가 변했을 뿐 아니라 폭행장면이 기록된 영상에서 울먹이며 어눌한 말투로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폭행의 현장에는 세 여인이 함께 있었는데 놀랍게도 아내와 두 명의 내연녀였고 아내와 내연녀 1인은 폭행에도 가담했는데, 영상에서 그들은 왜 단장님을 화나게 했느냐며 A씨의 뺨을 때린다. 여성 3인은 자기들도 피해자라며 구조단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한다. 구조사 동료들은 A씨가 염전 노예보다 못한 생활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A씨를 구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었다. 은연중에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라거나 '나만 아니면 돼' 또는 '왜 저렇게 사람이 답답한거야? 그 모양이니 저런 꼴을 당하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 구조단장은 주도자, 구조사 A씨는 희생자, 세 여인과 A씨의 동료들은 협력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이러한 관계를 '독성관계'라고 정의했다.
이 책에서는 독성관계의 네 가지 사례를 제시했는데 희생자들은 모두 엘리트지만 주도자의 지속적인 학대나 폭언, 무시와 괴롭힘으로 점차 독성에 잠식되어 무기력, 불안, 수치심, 분노를 갖게 되었다. 저자는 희생자에게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독성관계를 스스로 끊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도 독성관계에 놓일 뻔한 적이 몇 번 있다. 남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피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과 가까워져 있었다. 평소엔 친절하고 예의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다르면 불같이 화를 내고 자신이 부정당했다고 여긴다. 퇴근 후에도 전화나 메신저로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사사건건 동조해주길 요구하니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점점 지치고 힘들었지만 '나한테 잘해준 적도 있는데 이제 와서 외면하면 내가 나쁜건가?'하는 생각에 한동안 질질 끌려 다녔다. 다행히 그 사람에게 협력자가 없었고 나라는 사람이 언제까지고 부당함을 견디면서 속으로만 끙끙 앓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불편한 관계를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성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쪽은 희생자이다.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독성관계에서 구해내야 한다. '자격 없는 사람을 당신 마음에 허용하지 말라.'
불편하고 괴로운 관계에서 해방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어쩌면 잠재적 주도자거나 협력자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권순재 #심리학 #생각의 길 #독성관계 #인간관계 #가스라이팅
#문학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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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단골손님을 찾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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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꿈백화점2 

꿈을 다룬 말랑말랑한 동화 같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1권에서 진작 깨닫고 있었다. 2권에서는 한층 향과 농도가 진해진 커피처럼 더 묵직한 감동과 여운이 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에서 1년이 된 페니는 '꿈 산업 종사자'로 인정받아 '컴퍼니 구역'의 출입증을 발급 받게 되었다. 하지만 출근열차를 타고 꿈 제작사에 방문할 기대에 차있는 페니에게 스피도가 민원관리국의 '매운 맛'을 보게 되었다며 얄미운 말을 한다.
막연히 1년간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하던 페니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달러구트는 가게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손님과 갑자기 발길을 끊은 단골손님 중 어떤 손님을 모시려는 노력이 중요한지 질문하고 페니는 '단골손님'이라고 답한다.
처음으로 민원관리국에 방문한 페니에게 달러구트는 가장 높은 단계인 3단계 등급의 민원을 맡긴다. 민원인은 792번 단골손님으로 꿈꾸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수준이라면서도 "왜 저에게서 꿈까지 뺏어가려고 하시나요?"하는 아이러니한 글을 남겼다. 
페니는 그에게 꿈을 찾아줄 수 있을까?
유명 꿈 제작자 킥 슬럼버가 자신의 장애와 꿈 제작의 배경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른쪽 무릎 아래가 없는 채로 태어났고 13살에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의 꿈'을 제작하여 그랑프리를 수상한 인물이다.

그 꿈은 해안에서 멀어지는 범고래의 시점으로 진행돼요. 그건 저 자신을 나타낸 거였어요. 제가 살아가기에 너무나 제약이 많은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 다리를 아예 쓰지 않아도 더 큰 세상을 보는 범고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바다에 빠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아래에 더 큰 세상이 있더라고요. p.101

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섬세한 문장, 실감나는 대사를 읽는 맛이 엄청나다. 푹 빠져서 읽다보면 무방비하게 눈물을 쏟게 되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이미예 #장편소설 #소설추천 #판타지소설 #책추천 
#팩토리나인 #달러구트꿈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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