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과는 없다 VivaVivo (비바비보) 46
김혜진 지음 / 뜨인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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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사과는없다

7살 여름,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함께 보던 나와 지호는 거의 매일 만나 같이 놀고 같이 밥을 먹는 각별한 옆집 친구였다. 4학년 봄, 이사를 하고, 서로 다른 중학교를 다니게 된 후로도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다. 어릴 때부터 본인이 피노키오라도 되는 양 "네가 내 양심이야, 지미니."라고 반복해서 말했던 지호는 중3 여름에 학폭의 가해자로 강제 전학을 갔고 연락이 끊겼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학원에서 지호에 대한 소문을 사실인 양 말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런 일은 없었어."라고 말하고 그 일을 계기로 다온과 가까워진다. 지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아이들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어나간다.

소설의 중반을 지나도록 지민, 지호, 다온, 인서, 재희, 리하 등 인물들의 이름으로 성별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행동과 말에서도 유추해내기 어려웠다. 재희랑 같이 다니는 서영이는 여학생이겠지? 재희가 지호, 다온과 사귀었다는 대목에서야 '아, 재희가 여자앤가 보다'하고 짐작했을 뿐.

피노키오에 나오는 귀뚜라미의 이름이 '지미니 크리켓'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피노키오가 인간이 된 결말을 지금껏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 왔다.
꽤나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소설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설정이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만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지만, 주변의 개입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완벽한 사과는 없을 지라도 진심 어린 사과는 필요하다. 외면하고 지켜주지 못 한 것, 어쩌면 직간접적인 가해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하여.

#김혜진 #장편소설 #청소년소설
#학교폭력 #폭력 #뜨인돌 #뜨인돌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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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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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 이거 미담 자랑이면 어쩌나?’하는 것이었다. 나는 유치하게도 칭찬 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미담을 크게 소문내는 말이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에 글쓰기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2시간씩 8회 과정이었는데 첫 번째 강좌가 있던 날, 비가 내려서 장우산을 들고 강의실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했기에 구석에 자리를 잡고 등 뒤에 우산을 기대어 세워놨다. 첫 시간답게 수강생 15명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내 옆자리는 꽤 오래 비어있었는데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직진해서 내 옆자리로 왔다. 의자를 빼면서 내 우산을 쓰러뜨렸는데, 도로 세워놓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산을 발로 차서 구석으로 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고 당황해서 얼른 우산을 치워놓았다. 우산을 발로 찬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는데 오히려 내가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강좌는 수요일 저녁이었고 화요일 자정까지 강사님께 메일로 글을 써서 보내면 강사님이 출력해 오셔서 읽고 얘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출석 인원은 줄었고 수강생들은 조금씩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남이 보면 허물이거나 약점일 수도 있는 것들을 글로 고백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처음 내 우산을 발로 차던 그 여자분은 일관되게 본인의 미담만을 소재로 썼다. 집에 가구 배송을 온 기사님께 커피를 대접한 이야기, 회사의 청소원 이모님께 친절을 베푼 이야기 등. 나는 그런 이야기 자체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고 별 것 아닐 수 있는 우산의 기억 때문인지 그녀의 글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이 책은 미담에 관한 글이 맞다. 하지만 다행히 작가님의 타고난 선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쉴 새 없이 자기 점검을 하며 ‘무해한 존재’로서 타인과 만나고자 하는 사람, 김민섭 씨의 선한 영향력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어제 저녁에 불현듯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예전에도 소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했던 적이 있지만 생활이 어렵다는 핑계로 1년 만에 중단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다시 해야지,하고 생각했지만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광고를 보고 문자를 보내면 소액이 결제되는 방식의 기부를 했는데 더 큰 기부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하는 중에 두 번인가 전화가 더 걸려 왔지만 스팸 전화를 대하듯이 피하고 말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게 바로 선한 영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5월의 어떤 사건 때문에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늘었다. 생각 없이 시청하다 보면 내가 찾은 영상 뿐 아니라 연예계 가십에서 요리 영상, 영화 리뷰까지 정처 없이 건너가게 되는데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로 가득한 댓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쩌자고 이 사람들은 악의와 불만을 이렇게 그악스럽게 표현하는 걸까? 사실 표현이라기엔 적절치 않고 배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본인만이 정답이라고 큰소리 치며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떠오른 사람이 있다. 10년 전에 직장동료로 만난 열 살 어린 동생인데 10년간 쉴 새 없이 “언니가 잘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 덕분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그럭저럭 무해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민섭작가 #김민섭 #선한영향력 #에세이 #책추천 #창비 #창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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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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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흔들려도매일우아하게

 

#모멸에품위로응수하는책읽기 라는 부제의 #독서에세이 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내가 빨리 읽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틀간의 출퇴근길에 다 읽었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했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 놀랄 만큼 흠뻑 빠져들었다. 견고하고 안전하면서도 쾌적한 이글루 안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20여권의 책에 등장하는 20여명의 여성들이 고난과 모멸의 순간에 어떻게 품위 있게 대처하는지를 볼 수 있다.

 

독서로 쌓은 교양이 가장 힘든 순간에조차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하는 무기가 된다. p. 29

 

적힌 책 중 반 정도는 읽고 소장했으나 처음 알게 된 책도 있다. 내게 없는 책들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탐욕스럽게 쓸어담았다. 다만 양이 방대한 유리가면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릴 적 남에게 얻어온 문학전집에 있었던 소공녀, 어린 요코보다는 불륜을 저지르던 나쓰에가 더 선명하게 남은 빙점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20대에 날을 새며 읽고 30대에도 다시 구입해서 읽었지만 화자의 시선만을 쫓았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얼마 전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으로 독파한 작은 아씨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영향으로 한동안 빠져 있던 전혜린도 떠오른다. 뜻밖에 마스다 미리도 등장해서 반가웠지만 그의 철학적인 저술들을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은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대학시절 친구에게 빌려 읽던 10권짜리 빨간 머리 앤7권까지 읽고 멈췄는데 마저 읽지 못해 아쉽고 출판사가 어디였는지 새삼 궁금하다.

작년에 실수로 두 권이나 구입하고도 아직 읽지 못한 배움의 발견의 타라 웨스트우드와 우리 도서관에도 소장한 비커밍의 미셸 오바마도, 그간 요망한 허영덩어리로 오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도 알고 싶은 여인들이다.

중학교때 단체로 관람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 대해 묘사한 문장에 웃음이 터졌다.

 

여자 작가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은 대개 먹물인 작가 자신을 투영해 책 좋아하고 지적인 데다 생각이 복잡한데, 스칼렛은 다르다. 시쳇말로 얼굴에 이 없고, 본능과 감정에 지극히 충실하다. p.127

 

나는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정갈하고 명료하면서도 다정한(?) 문장을 따라가는 독서 여행이 즐겁고 의미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삿되고 부박한 단어로 투명하게 이 좋음을 표현하고만 싶다. 이 책이 겁나 대박 좋다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엄과 품위를 지켜온 여성들을 보며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예민하고 지랄맞고 미성숙하지만 그나마 독서를 통해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정당하거나 공격 당하면 상처 받고 속이 상하지만 무논리로 주장하며 나를 설득하려고까지 드는 사람에게 똑같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을 아낄 줄 알게 되었다.(정직한 표정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지만) 앞에선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내지만 뒤에서는 어떻게든 내 흠결을 찾아내고 광고하는 사람을 알아보게도 되었고, 의리라는 허울로 구질구질하게 이어가던 인간관계도 깔끔하고 당당하게 정리할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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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내려온다

SF를 배제했다기 보다는 굳이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공상과학이니 과학기술이니 하는 것들이 어렵고 부담스러워서였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SF소설을 접하고 보니 ‘이런 소재도 재미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제목을 보면 국어를 주제로 한 에세이일 것만 같은 이 책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문장이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테드 창의 ‘숨’을 읽었을 때처럼 작가의 지식 배경이 궁금하면서도 경이로웠고 어쩐지 번역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나로서는 계속 같은 문장을 곱씹고 있는 시간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여러 번 다시 읽어볼 만큼 놓치기 싫은 아름다운 문장이 참 많다.
‘마지막 로그’는 안락사 요양소 실버라이닝이 배경이다. 실버라이닝은 본인의 여명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들이 묵는 마지막 숙소인 셈인데 입소자에게는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의 안드로이드가 배정된다. 차곡차곡 마지막 날을 향해 시간을 보내는 A17-13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 조이, 은모든 작가의 ‘안락’과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떠올렸다. 지능과 인격을 가진 존재에 대한 존중의 문제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표제 소설인 ‘단어가 내려온다’는 만 15세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단어가 내린다는 가설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적힌 대로 국어학 SF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국어학자를 꿈꾸는 나는 엄마의 고집에 못 이겨 화성으로 이주한다. 동갑 친구들은 이미 다 받은 단어가 왜 나에게는 내리지 않는지가 나의 최대 관심사이자 고민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에게도 단어가 내린다면?’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단어가 내린다면 여러 가지 왜곡이나 해석이 가능한 조사나 의존명사 말고 명쾌하고도 확실한 명사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福’이라면 어떨까? 그야말로 나는 복 받은 사람일테니.

‘분향’에서는 화성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합동 분향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해프닝을 다뤘고 ‘미지의 우주’에서는 화성이주 2세대인 미주가 지구에서 진행되는 2년간의 연수 대상자로 선발되어 역이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행성사파리’에서는 열세 살 미아가 쌍둥이지구로 우주여행을 떠난 이야기이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에서는 화자가 기억 아카이빙 인공지능이자 무인탐사선인 ‘영원’이다. 영원이 서술하는 이야기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절체절명의 무작위에 사소한 까닭을 부여하는 애틋함이 없었다면 그들의 기억은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없었으리라. 어쩌면 나는 이를 부러워하고 있는 걸까. 밤하늘의 아무 별이나 가리키며 그것이 내 것이려니 믿어버릴 수 있는 무구한 대상화를,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멀리멀리 보내겠다는 무해한 욕망을. p.219

마지막에 수록된 ‘일식’에서는 기억 아카이빙을 소재로 기억관리자가 목격한 인간의 어긋나는 기억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다룬다.

경험할 때 이미 왜곡되어 인지된 감각을 돌이킬 방법은 없다. 아무리 타인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VR 파일을 들여다보아도 그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경험이라면, 아무리 열화된 VR 파일이어도 깨달을 수 있다. 그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기도 한다. p. 246

‘미지의 우주’와 ‘행성사파리’에서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비슷한 것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에서 읽은 다음 문장으로 ‘아하’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지의 우주」는 ‘이주’, ‘개척’ 등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모험의 단어들이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성별에게 얼마나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분통에서 시작했다. 마침 ‘미니 이주’를 앞두고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한국의 공공사이트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했는데 덕분에 생생한 분통을 수집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지나고 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에 가능했던 기적 같은 순간들만 선명하게 남았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pp. 258~259

익숙한 방식의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은근히 숨어 있는 유머와 묘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동아시아 #동아시아출판사 #허블 #SF소설 #오정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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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기를 찾습니다 사계절 아동문고 102
이금이 지음, 김정은 그림 / 사계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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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기를찾습니다

어린 시절,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개 외모나 성격의 결점을 빗대어 별명을 지었다. 마른 체형의 소유자에게는 멸치, 덩치가 크면 고릴라, 말이 많으면 촉새, 행동이 느리면 거북이로 부르는 식이다.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변형한 별명도 많았다. 말순이는 말똥이, 옥희는 옥자, 성이 빈씨인 아이는 빈대떡, 방씨면 방구쟁이가 되었다. 재떨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어 책상 위에 엎드려 울던 재철이가 생각난다. 수업시간에 방귀를 뀌어 똥씨가 되었던 아이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별명은 대체로 남을 놀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당연하게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괴로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뿐이겠는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면 한창 이름을 날리던 개그우먼과 이름이 같은 친구는 다른 학생들의 웃음에 얼굴이 빨개졌고 유명 드라마의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경우에도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5학년 차대기는 열두 살 인생 중 처음으로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됐을 때 전학 온 윤서가 짝꿍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날치기를 잡아 검색어 1위에 오른 개그맨과 이름이 같은 윤종현이 자기가 한 일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바람에 반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본인의 이름을 검색해서 같은 이름의 유명인을 찾느라 소란스러운데 윤서는 꿋꿋하게 책을 읽었다. 차대기는 본인과 이름이 같은 유명인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2G 폰이라 검색을 하지 못하고 윤서처럼 관심 없는 척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차대기에게는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 1학년 때 교실에서 옷을 입은 채로 똥을 싸는 바람에 똥자루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잊혀졌겠거니 기대했지만 최근 몇몇 아이들이 다시 똥자루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차대기는 윤서가 그 별명을 알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과연 차대기는 똥자루라는 별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예전에는 어른들에게 괴로운 마음을 상담해봐도 ‘네가 무시해라.“ 또는 ”네가 좋아서 놀리느라 그러는 거다.“하는 무심한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이 책에서는 차대기가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중 잣대, 친구의 선행을 본받아 발전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된 따스한 울림이 있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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