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뜨거웠던 여름, 우리는 작은 밴으로 이사했다. 집과 직장은 모두 정리한 상태였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안전벨트를 맸다. 두고 온 고양이가 보고 싶으면 어쩌지, 도중에 사고가 나거나 도둑맞아서 포기하면 어쩌지. 뒤늦게 걱정이몰려왔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일단 시동부터 걸었다. "우리 어디로 갈까?" "몰라."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묵지?" "모르지." "우리 아무것도 모르네. 진짜 대책 없다, 그치?" "응, 그러네. 우리 이제 이렇게 대책 없이 사는 거야? 신난다!" "그러게, 신나는데!"
우리는 그저 작은 밴으로 옮겼을 뿐이지만, 삶은완벽하게 달라졌다. 매일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두려웠던 우리는, 내일은 어떤 낯선 풍경으로 이사할지, 어떤 새로운 사람을만날지, 어떤 신기한 일이 생길지 기대하며 눈을 뜬다. 두 사람이누우면 가득 차는 2평 남짓의 밴에서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는 시간과 여 유가 부족해서 도전하지 못했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나는 고등 학교 이후로 시도한 적 없던 글과 그림을 시작했다.
일단 이 작은 밴은 거의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여름이면 유럽해변의 인기 있는 주차장에 캠핑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여행객들에게 자리를 내주기위해 주차장 입구에 캠핑카 금지 푯말이 붙어 있거나 아예 높이제한 바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보통 1.9-2m), 우리가 선택한 밴은 높이가 2m를 넘지 않아서 대부분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다. 주차장뿐만 아니라 큰 차량이 다니기 힘든 도로나 마을에서도 이작은 밴은 유용하다. 옛 성터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의 경우 차량 길이가 4m 이상이면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이 많고, 넓은 도로를 내기 힘든 산속에서는 큰 차량이 다니기에 위험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캠핑카는 눈에 띈다. 유럽은 워낙 캠핑 역사가 오래되어 캠핑카가 낯설지 않지만 그래도 캠핑장이 아닌 도심 주차장에세워져 있는 캠핑카는 정말 튄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넘어 질투의시선을 던진다. "가뜩이나 주차장 자리도 부족한데, 힘들게 일하면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팔자 좋게 캠핑카에서 쉬면서 자리만차지하네." 실제로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길가에 세워진 캠핑카를 보고 한 말이다. 우리는 그 도시의 아름다운 면을 즐기고자여행을 왔지만 어떤 이에게는 고단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우리는그곳의 문화와 풍경을 즐기되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는 여행객이 되고 싶었다.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풍경이 흐트러지지 않게.
그는 작은 밴의 장점 중 최고로 운전하기 편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 장점이 너무도 커서 오히려 더 작은 밴으로 골랐어도 좋았을 거라고 할 정도다. 우리의 밴이 아무리 작아도 일반 차에 비하면 큰 편이라 오르막길에서 빨리 달리지 않는다고 뒤에서 눈치 주기도 하고, 주차장에 겨우 자리가 나도 10cm가 모자라서 주차를못 하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바로 옆에 둔 좁은 도로를 달리다 캠핑카나 버스를 만나면 두 손 모아 아무 신에게나 기도해야 하는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처음엔 ‘운전하기 편한 밴‘을 밀어붙이는그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난 2년간 혼자 운전을 도맡아 하는그를 지켜보며 캠핑카를 고집하지 않은 걸 얼마나 큰 다행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