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집은 들어올 때 부동산과 집주인 말에 따르면 14평이었다. 

아닌 거 같은데? 한 10평인 거 같은데? 14평이면 뭐랄까 1인용 의자를 어느(아무) 구석에나 두어도 되는 공간이고 

10평이면 그게 무리인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14평이 아닌데?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14평은 과장;이었고 11.99평 정도 되는가 보았다.

그런데 집 보러 온 분들 중 집이 넓다고; 감탄한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두 분이 집을 보러 왔는데) 

"어이구 대궐이네 대궐이여" 눈을 반짝이며 이 집안을 성큼성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시기도 했다. 

일곱 걸음쯤 나오나. 어휴. ㅎㅎㅎ 아. 하튼. 


이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책들을 사서 두고 있었다. 

어디 있나는 알지만 안보이고 꺼내기 힘들어서 볼 수 없던 책들이 많다. 그것들을 이제 보이는 곳에 두고 

궁금하면 바로 꺼내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면, 조용히 흥분되는 것임이다. 


Eams chair. 

Frasier에서 프레이저가 자랑하던 임스 체어. 

서울 변두리 구옥을 위한 임스 체어를 찾아내려는 검색이 진행되는 중. 




이직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직이 어렵다면 퇴직. 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퇴직은 ;;;;; 곧 실현 예정이다. 

변두리 매력적으로 수리된 90년대식 (방이 크면 조크든여; 아무리 수리됐어도 90년대가 자동 소환되는) 집에서 

복숭아 ;;;;; 크고 맛있는 복숭아 먹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쓰고 있겠다면 좋을 21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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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23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 360회전 가능한 어두운 오렌지색 체어 소유자입니다. ㅋ 원하시는 체어 득템하시고, 퇴직도 곧 실현하시길. ㅎ

몰리 2021-03-23 23:10   좋아요 0 | URL
의자 사진 올려주셔야! ; 저 지금보다 살림이 피면 ㅎㅎㅎㅎ 무엇보다 의자에 큰돈 쓸거같아집니다. 의자가 좋으면 가능해지는 것들에 대해........ (쩜쩜쩜;;;).

2021-03-24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침내 집이 나가서 

이사할 집을 구하느라 정신 없던 3월이기도 했다. 

이사 스트레스가 이혼 스트레스 정도 된다고 하던가, 설문 결과 1위가 배우자 사별, 2위가 이혼, 3위가 이사.. 였다던가 

어디서 들은 기억 있다. 


돈은 없는데 책이 많기 때문에, 책이 ㅈㄴ 많기 때문에 ; 

책들을 가져갈 수 있는 곳 찾아내느라 고생 많았다.

다행히 방 하나가 꽤 크고 나머지 공간도 작지 않은 집을 구했다. 

역시 변두리에 구옥이면 놀랍게도 저렴한 전세로도 꽤 넓은 집 구할 수 있기는 하다. 

구옥인데 수리가 잘 된 꽤 매력적인 구옥이어서, 5월 이사할 예정인데 기대가 된다.  

저 위 이미지 같은 느낌 ㅎㅎㅎㅎㅎ 과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아주 거리 멀겠지만, 내게는 그 거리 가깝;;;. 

벽 하나가 상하좌우 전면 통창은 아닌데 상하 1/2, 그리고 좌우 통창? 창문을 아주 그냥 이상하게 크게 만들어 놓은 집. 

창 쪽 빼고 벽의 2면은 다 책으로 채울 수 있을 거 같고 남은 벽 하나에는 책상을 놓고 길게 테이블을 붙여둘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그 테이블에는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 되는 복합기를 하나 사서 두면 좋겠고, 그 외의 용도도 생각하는 중이다. 한면의 책장 앞에는 지금 식탁, 중고로 샀던 까사미아 4인용 식탁을 놓을 수도 있을 거 같고 아니면 다른 테이블을 사서 두고, 거기서 불어 공부를 해야지. 테이블 옆에는 장스탠드를 하나 사서 둬야지. 여기서 밥을 먹어도 되고. 


한면 책장 앞에 4인용 식탁을 두어도 그 옆에 1인용 소파를 둘 공간이 남는 방. 이런 방을 한 15년만에 가게 되는 거 같고 

이게 늠 좋으므로 흥분하고 흥분이 유지되는 중이다. 정말 의자를 돌리면 바로 벽인 ;;;; 벽을 보다가 등을 돌리면 벽인 방에서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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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가 이 책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든 그에 빛과 찬란함을 보태는 화가의 시선, 현대 화가의 시선과 만난다. 그의 눈은 전설이 품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투시한다. 지난 시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대를 보는 우리 시대의 눈이 여기 있다. 생명의 여명기,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강인한 나무처럼 자라던 시대, 인간이면 바로 초인이기도 했던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을 그가 우리를 위해 발견하고 보여준다. (...) 샤갈의 그림 속에서, 성경은 초상화집이 된다. 이 책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가족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형식의 창조자이며 천재인 화가에게, 천국의 (Paradise)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작업이란 어떤 특권일 것인가! 그러나, 볼 줄 알며 보는 걸 사랑하는 눈을 가진 이에게, 모두가 천국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세계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세계를 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을 갖는 세계다.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는 것, 화가에게 이것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 기쁨과 함께 그는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는 창조한다. 모든 화가에게 그의 천국이 있다. (....)" 






불어판 표지로는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바슐라르가 쓴 이 서문, 거부감도 들고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는데 

종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고 

심오하고 진실하다는 ㅎㅎㅎㅎㅎ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인가요, 부정직하게? 부정직한 거 아닌가요. 신과 성경과 

천국을 이렇게 말한다는 건. (....) 이런 쪽이었다가 

읽고 생각하고, 침묵할 줄도 알게 되는 쪽으로. 

샤갈의 그림들에 바슐라르가 경탄하며 쓴 논평들이, 전엔 잘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끔 자극한) 

슬로터다이크에게 감사할 일이다.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열린 태도가 해방시키는 정신의 면모들도 있는데, 선, 면, 색의 체험도 

그에 속할 것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책 이미지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속주의가 수행하는 해방도 있을 것인데, 종류가 다르겠으니 

세속주의가 해주는 해방도 추구하고, 종교에 열린 태도가 가능하게 하는 해방도 추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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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터다이크는 일기도 책으로 냈는데 (두껍게 여러 권) 

일기도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생전에 자기 일기를 책으로 내는 저자. 

그러면 딱 들만한 반감이 그에게는 들지 않는다. 낼만해서 냈겠고 

자기 일기의 가치를 정확히 그 자신이 알았겠지. 하게 된다. 


그가 왜 우파로 여겨지고 진지한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도 하는지 알겠다 싶은 대목들이 

그의 책에 꽤 있기도 하다. 읽다 보면 나온다. 권 당 세 번? ; 그러니 많지는 않은. 그러나 그렇다고 

가끔 예외적으로인 것도 아닌. 꾸준히, 일관되게 있긴 있다. 


그는 하버마스를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고도의 조롱을 하기도 한다. 

그의 저술들은 "미디어 이론의 순진성의 고전이다" 같은. 의사소통 행위에 관한 하버마스의 이론은 

"맑은 날, 기분 좋은 날에만 진실이다" 하기도 하고. 


그런데 아도르노에게는 애착, 존경, 동일시 이런 것들이 있다. 

"비판 이론이 내게 이론적 고향이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비판 이론은 아도르노. 

비판 이론 1세대와 2세대를 비교하면서, 2세대의 패착은 1세대의 이론적 과잉을 내다버린 데 있다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1세대의 이론적 과잉을 말하면서 "overkill" 이 단어를 쓴다. 


overkill. 독어로는 어떤 단어였길래 이렇게 번역된 건가 몰라도 

<계몽의 변증법> <부정변증법> 아도르노의 이런 책들을 말할 때 아주 딱인 단어. 그러나 아무도 쓰지 않았던 단어. 

그에게는 1세대의 그 과잉이 그를 그곳으로 이끈 그것. 


그에게 비판이론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는 면들도 아주 많고, 이미 이 주제로 나온 글들이 꽤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영어로는 아직까지 내가 찾아낸 건 없는데 독어로는 있지 않을까. 없다면 (그런데 이걸 읽는 당신이 혹시 철학도라면) 이 주제로 쓰시는 것이....  


그리고 solidarity, 이것의 엄청나게 열정적인 이론가이기도 하다. 

이 주제로도 아직 내가 찾아낸 글은 없는데, 좋은 글/논문이 나올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한다. 


하튼 나는 그에게서 많이 배웠고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거 같음. 절대로 불가능하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가 선생이라면 그를 능가함으로 보답하는 제자가 되어보고 싶음. 망상. 너무 쉬운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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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2-2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망상이라는 말로 급 수습하시는 겸소함 ㅎㅎ

2021-02-23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4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4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년 르몽드가 슬로터다이크, 지젝과 한 인터뷰가 있다. 

"서구 문화의 위기를 빠져 나갈 출구가 있는가?" 


슬로터다이크는 명랑하고 낙관적인데 

내용이 명시적으로 그렇게 보일 내용이 아닐 때에도 

스타일 덕분에 (스타일이 다인 게 아니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말합시다) 어김없이 그러함을 알게 한다.  

이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좌파가 몰락한 혹은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자기를 좌파에 포함시키면서 우울감 내지 패배감을 넌지시; 비친다거나 아니면 자기를 우파로 여기면서 

schadenfreude 이걸 내비친다거나, 전혀 조금도 눈꼽만큼도 그러지 않고, 대신에 "모두를 이해하는" 자의 

냉혈함으로 슥슥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함. "지성은 존재한다" + "지성은 좋은 삶을 원한다"가 

배후에 언제나 있기 때문에 명랑하고 낙관적이라 느껴진다. 


하튼 명랑하고 낙관적으로 슬로터다이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좌파는 분노가 원한("르상티망" 망할 르상티망)으로 타락하는 걸 막지 못했음. 이제 좌파는 심리정치가 원한 너머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함."


반응으로 지젝이 이런 말을 한다.

"르상티망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건 우리가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보다 남에게 해가 되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본성이 그렇다. 당신들도 아는 설화가 있다. 천사가 농부에게 나타나 묻는다. "소 한 마리를 줄까? 앗 잠깐만, 네가 소 한 마리를 받으면 네 이웃에겐 두 마리를 줄 거야." 슬로베니아 농부의 답은 "안 받아요!"다. (....) 슬로터다이크의 말에 동의한다. 르상티망을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해 나는 비관적이다. 사람들은 부패했다. 변화의 가능성은 없다. 변화가 가능한 때도 있겠지만 예외에 속한다. 전체주의의 공식이 있잖은가. "너는 추상형으로 인류는 사랑하지만 실제 인간들은 혐오한다." 이에 따르면 나는 전체주의자다. 나는 인류는 사랑하지만 실제 인간들은 약하고 사악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가진 우매함을 진정 깊이 염오한다. 나는 슬로터다이크가 말하는 영적 수련의 현실성을 믿지 않는데 그러기엔 내가 비관주의자라서다. (....)" 


지젝이 이렇게 명확히 "나는 인간을 혐오한다, 인류는 사랑하지만" 같은 말들을 흔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하게 되던 말들이었다. 여기 슬로터다이크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동유럽에서 있었던 심리정치의 진화 과정의 피해자다. 러시아에서는 모두가, 한 세기 동안 있었던 정치적이며 개인적인 재난의 무게를 자기 어깨 위에 지고 다닌다. 공산주의의 비극이 여전히 동유럽 사람들의 삶에 스며 있다. 여전히 그 비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재난과 비극의 무게, 이것이 자기 생산하는 절망으로 이어진다. 나는 본성이 비관주의자지만, 삶이 내 비관주의를 격파했다. 삶과의 2차전에서 낙관주의를 성취한 낙관주의자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점에서 당신과 나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시작은 아주 달랐을지라도 우리는 나란히 놓아볼 수 있는 삶들을 살아 왔다.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는 같은 책들을 읽었다." 


우리는 같은 책들을 읽었다. (.....) 아 이 말. 이런 말을 감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겁니까. ㅜ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이런 말을 감동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까. ; 하튼 감동했고 그리고 "우리는 같은 책들을 읽었다" 말고도 지젝의 (땡깡부리는 애 같았던 지젝의) 말에 대한 슬로터다이크의 반응이, 이게 진짜 어른이고 문명인인 사람의 사유이고 말이라면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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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30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로터다이크의 말... 정말 좋네요. 감동입니다... 지젝과 슬로터다이크라... 꺅.

몰리 2021-01-31 08:07   좋아요 1 | URL
경탄스러운 말들을 아무데서나 그냥 막 합니다.
고르고 버리고 할 거 없이 다 정신없이 주워담아야 하는 거 같은 느낌 자극해요.
몇날며칠 토론해도 끝이 없을 재미있어 보이는 주제들도 참으로 많이 제시해요! (한숨.....)

다리 2024-01-2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인터뷰 링크 좀 알 수 있을까요?

몰리 2024-01-30 09:42   좋아요 0 | URL
저는 Selected Exaggerations (Polity), 이 책에서 읽었는데 책 찾아보니 인터넷 링크가 책에도 있는데, 일단 여기 한 번 가보세요. https://www.lemonde.fr/idees/article/2011/05/27/comment-sortir-de-la-crise-de-la-civilisation-occidentale_1528306_32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