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많이 사고 있다. 

살 때는 오 이거, 이거 사야해. 이것도 사야지. 이것도! 이러다가 

책 박스가 도착하면 그냥 밀어두고 (안에 뭐가 있는지 아니까...) 이틀 뒤에 열어보면서, 그러면서 부지런히 사고 있다. 


연초에 이런 결심 했었다. 

올해 연말에, 아도르노와 바슐라르가 나눈 가상의 대화... 를 써야겠다고 작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런 작정이 가능해지면 올해는 너에게 최고의 해일 것이다. 

매일 저녁이 되면, 저 목표를 위해 오늘은 무엇을 했나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대화를 위해 오늘 네가 한 일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는 그들의 대화를 위해 매일 무얼 하고 있기는 하다. 

아주 그냥 두 사람 책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 생각해 보니, 사실 이건 아주 너무 매우 좋은 일이 아닌가. 모니터에서 좌우, 심지어 등 뒤, 어딜 봐도 두 사람의 책들이 보인다는 건. 



그랜드 심연 호텔. 

아도르노가 어떤 강의록에서 '방향이 근원적으로 틀렸으나 장엄하게 틀린 책, 틀림과 무관하게도 장엄한 책, 역사 철학의 위대한 시도' 정도로, 비꼬는 게 아니고 사실 굉장한 상찬으로 루카치 <소설의 이론> 얘기를 꺼내더니 "이제 이 책의 재판이 나왔으니 여러분 모두 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그가 이 책 서두에서 나를 강하게 공격한 걸 알고 있지만 권합니다. 이 책에서 그의 성취와 나에 대한 그의 혹평 사이에 관계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저런 말을 하는데, 웃기기도 했고 뭔가 감동적이기도 했다. 

리처드 로티 책들 감탄하면서 읽다가 아도르노를 읽으면, 가장 감탄스러울 때의 로티라 해도 아도르노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지 ("child's play", 헤겔이 좋아했던 거 같은 구절...), 같은 생각 든다. 



연말, 12월 27일 즈음 서재에 나타나 "허허허 제가 말입니다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를 끝냈...!" 

.... 럴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오늘 서재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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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쓸 계획이 없었다가 막상 써보니 좋아서 또 쓰고 싶어졌다. 

리처드 로티를 중요하게 다루는 방향으로다.  

이 책은 1979년에 나왔고 일부의 평가에선 (과장스럽긴 한데) "전기충격" 같았던 책. 

유명한 책이면, 그걸 누가 읽든 말든 현실의 일부다... 안 읽었어도 이미 현실의 일부였다, 같은 생각 들게 한다. 철학 관심 독자라면 다 그렇게 체험할 거 같은 책. 




요즘은 pdf가 구해지는 책들은 그 파일을 워드로 전환해서 워드 파일과 종이책을 같이 보는데, 여러번 읽어야 하고 인용도 해야 하고 그렇게 '뽕뽑아야' 하는 책이라면 이 방법 꽤 쓸만한 방법 아닌가 생각한다. 일단 워드 파일로 전환이 완전히 잘되지 않기 때문에 깨진 글자등을 수정하면서 파일을 내가 고쳐서, 고쳐 가면서, 써야 한다. 이 과정이 의외로 좋다. 대가의 책을 "원고" 형태로 만드는 일. 원고 형태로 마주 보는 대가의 책은, 아주 다른 느낌. (이 책에도 이런 시작이 있었겠군요...). 또 본문 검색은 pdf로 하는 게 더 편리한 면이 있지만 워드의 경우엔 본문과 함께 내가 보탠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 워드의 "메모" 기능 활용하여 노트를 달아두면 이것들만 따로 모아서도 볼 수 있는데, 종이책에 덕지덕지 붙이는 포스트잇 메모를 찾아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리함. 


이보다 더 선진적인 방식들이 있을 거 같다. 논문노동자들의 이런저런 추천들을 본 거 같다. 

그런데 이 방식도 괜찮음. 특히 논문, 학업 노동자에게, 전자 파일로 책들을 이렇게 '내가 만들어서' 갖고 있는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 이 집에 이사하고 나서 컴 수리했을 때, 기사님이 ms워드 2020 깔아주고 가셨는데 아주 너무 잘 쓰는 중이다.   


켁. 그래서 저는 또 논문 노동의 눈물의 계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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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12-31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포스팃은 머에요? ㅋ 79년도의 포스팃일이는 없는디요..ㅎㅎㅎㅎㅎㅎ
내가 쓰고 있는 워드는 20인가 아닌가 궁금해지네요.(노트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니..., 심히 혹하네요). 지금 컴은 맥이니...나중에 확인해 바야겄스요.

몰리 2022-01-01 04:52   좋아요 1 | URL
아앗 저건 걍 구글 이미지가 구해준 이미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철학책! ㅎㅎㅎㅎ 하면서.

제가 워드02를 쓰고 있었는데 (11년에 02로 깔고 10년 내내 그걸로) 기사님이 보시며 무슨 이런 동굴인간이 있나... 혀를 참. 02 버전 워드에서는 안되던 많은 것들이 20에서는 되더라고요. 파일 열었을 때 직전 작업에서 정지한 대목으로 가기. 이거 옛날 버전으로는 안되던 건데 그게 되는 것도 너무 좋고 메모들을 별도로 볼 수 있는 것도 아주 굿굿. 진작 업그레이드 했더라면 그것만으로도 작업 효율이 달랐을 텐데... 고작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도 업그레이드 못/안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 ㅎㅎㅎㅎ

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2년엔 우리가 소원하는 여러 중요한 것들이 모두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han22598 2022-01-08 04:31   좋아요 1 | URL
이미 22년을 살고 있는 우리.

몰리님도..눈물의 계곡에서 많은 결실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아래 포스트 쓰고 나니

"의미론의 영구 혁명" 바슐라르의 이 말 이거 별도로 기리고 싶어졌다. 너무 좋음. 

과학 개념들이 겪는 운명에 대한 논의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 자신의 글들도 의미론의 영구 혁명 하는 글들. 



중고책 검색하다가 저런 책이 찾아졌었다. 

프랑스, 프랑스인들의 arrogance. 이 주제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면 

이런 것도 찾아진다. 







의미론의 영구 혁명. 

이 구절 말고도 바슐라르 과학철학엔 곳곳에 혁명의 반향이 있다. 

"혁명" 이 말 자체가 자주 쓰이기도 하지만 이 말이 없이도, 과학하는 삶과 혁명,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연결하는 대목들. 


불어 학습서 모제 불어책에서 프랑스 철학 다루는 부분 보면 

프랑스 철학이 얼마나 이 세계에 새로운 사유를 주었는가, 등등 예상 가능한 자화자찬이 있는데 

바슐라르 과학책들 보면서, 그 말들이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허한 말이 아니었... 생각했었다. 

혁명을 했으니까 혁명에 대한 반향이 넘실거리는 과학철학도 하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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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리님 !
프랑스 철학적 사유가 넘치는 만큼 사람들 전부 수다쟁이들 ㅋㅋㅋ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몰리 2021-12-24 14:11   좋아요 1 | URL
아이구야 감사합니다. 스콧님도 성탄절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사들인 과학 책들 중 이런 것들도 있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이 책은 부제가 The Meaning of Genius. 

부제를 저렇게까지 달았으면 "천재" "천재의 의미"가 중요한 내용이 되는 책이긴 할 텐데 

책을 열어보면 바로 첫 페이지에 "나는 천재라는 말을 추방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고 

그리고 이어서, 그와 비슷한 입장인 이들이 흔히 하는 얘기를 한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었다 해도 그를 만든 건 시대이고 상황이고 문화다. 그와 직접, 간접적으로 협업한 무수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천재"라는 말을 내버려두는 쪽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천재" 이 말을 추방해서는 안된다, 이 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들도 있다고 

프랑스 혁명기 정치 연설 읽다가 생각했었다. "우리를 일어서게 한 것은 자유라는 이념의 천재성입니다." 

............!!!! "génie de la liberté" 이런 구절이라 "자유라는 이념의 천재성"이라고 하면 이념은 불필요하게 집어넣은 말이 되겠. 영어라면 genius of freedom. 


저 말 읽으면서 순간 환호, 감동했었. 

그렇지. 이념의 천재성이 있지. 종교의 천재성도 있고. 

무얼 알고 나면, 막을 수 없는 운명 (......) 있지. 


사실 영어의 genius와 불어의 génie는 많이 다른 단어같다. 

영어 단어는 의미가 축소되는 역사를 거친 거 같고 불어는 반대이지 않나 짐작한다. 

어쨌든 영어 단어로는 말할 수 없게 된 뜻들이 불어 단어엔 저 깊은 어딘가에 다 남았고 어른거리는. 

정신, 영혼, 혼령. 등등. 

그러니 불어 단어 génie의 천재성도 있는 것. 




그리고 원칙적으로, 언어의 삶에서 뭘 "추방"하고 그런 것에 반대해야 하지 않나. 

바슐라르의 표현을 빌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혹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 말이 있다면 추방할 게 아니라 "의미론의 영구 혁명" 이런 걸 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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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2-24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리님의 서재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주 정리가 잘 된 깔끔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좋은 포스팅 많이 올려주세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내년도 벌써 기대가 됩니다.
복된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몰리 2021-12-24 15:56   좋아요 0 | URL
아이궁 민망민망쓰, 낮뜨거워집니다. 라로님 서재야말로 ㅎㅎㅎㅎ 그래요.
라로님도 올해 남은 며칠도 내년 한해도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엠마 왓슨의 이 말. 바슐라르가 보면 기뻐하실 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열심히 생각할 때 정신에 일어나는 그 놀라운 변화. 


그런 변화가 있었다, 혹은 그게 무엇인지 이제 알았다. 

생각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리고 그러다 보니 

글쓰는 게 달라졌다는 생각도 하게 됨. 이것들이 언제나 중요한 주제이긴 했는데 

전과는 달라지는 차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쓰고 싶은 글들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그 모두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 



아니 정말 그렇다. 씀으로써 (쓰였기 때문에) 모두가 달라졌다. 

이걸 알게 된 다음엔 막을 수 없는 운명;;;;;; 하튼. 그렇습니다. 

이제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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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1 2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문구 제 침대 머리맡에 붙여 놓고 싶습니다 ^ㅅ^

몰리 2021-12-22 16:32   좋아요 0 | URL
my brain is changing so rapidly sometimes.
이것과 똑같은 얘기를 바슐라르가 길고 심오하게 무수히 하시는데
... 아 그런가? 과연? 정말? 무슨 말씀인지 알겠긴 한데.... 하다가
이 간단한 구절로 순간 명료하게 이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