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책들 중 음악학 책들이 남아 있지만 

그것들 제외하면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긴 하다. 그것들 제외를 하지 않으면, 영원의 문 앞에 ;;; 서 있는 듯한. 


그는 정말 어린 시절 천국을 살았구나, 확신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었다. 

이 세계가 그 천국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다, 현세계는 오직 지옥을 생산하고 있다 (...) 이걸 진심으로 믿기 어려워하는 면모도 있다. 강렬한 행복을 체험했고 천국을 알았던 아이. 그 아이로 남아 있기. 정말 바로 이것이, 그의 철학을 이끈 에너지라는 실감이 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렇게 계속 하고 계속 이 엄청난 글로 썼을까? 그 답의 일부는 바로 저기에.  



그런가 하면 

바슐라르도, 바슐라르는 아도르노와 비교하면 전혀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도 

곳곳에서 알게 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 천국을 알았음. 다시 그 천국을 불러오는 법을 네게 가르쳐주겠음......... 



천국. ;;;;; 하튼 아도르노가 너무 너무 어려운 말로, 압축적이고 변증법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그가 알았던 천국으로서의 현세계, 말하는 걸 보고 나니까 

.......... 그 세계를 찾으러 나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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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고국이 없는 이에게, 글쓰기가 집이 된다. 

"a place to live" 이 간단한 구절을 딱 맞게 어떻게 번역을 못하겠다. 


이 말 <미니마 모랄리아>가 출전인데 

이 책 전체에서 유일하게 진부한 문장... 같은 생각 했었다. 

유배자, 국외자, 망명자는 글쓰기로 도피하고, 망명하고. 늘 그랬던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말에, 내가 몰랐던 깊은 뜻이 있었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든다. 

글쓰기의 결과는 물론이고 과정 모두가 나의 "집" "고국" "살 곳"을 찾는 노력이라는 것이. 

일찌감치 (중학생?) 저게 과연 그런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늦어도 대학원에서는, 네가 쓰는 모든 페이퍼가 너의 집이다, 네가 짓는 집 거의 전부를 너는 허물고 싶어질 것이고 허물 것이다.... 고 배웠다면. 그랬다면 더 경계하고 자각하고 탐색하면서 주제를 찾고 문장을 만들고 (...) 했을 거 같다. 


어떻게 지었는가. 이것이, 어떻게 살았는가가 되는. 

아도르노의 말에 글쓰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 전부가 동의할 것 같지는 않지만 

동의하고 공감하는 쪽이라면, 그의 말에 담긴 "글쓰기의 철학"이 그걸 자각할수록 글쓰기를 변화시킬 힘을 갖는 철학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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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관련 이미지를 구해 보려고 검색했더니 

같은 검색 결과의 스크린샷을 누가. 


맨 아래줄 오른쪽은 벤야민의 책을 들고 있는 아렌트다. 





아도르노가 어느 강의에서 

"운명"에 대하여 벤야민을 인용하는데, 벤야민에 따르면 "운명"이란 

"살아 있는 이들을 연결하는 죄/죄의식의 그물 (nexus of guilt among the living)"이라고. 


일주일 전쯤 봄. 

일주일 동안 최초의 충격은 옅어지고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하... 속으로 한숨 쉬며 감탄했었다. 무슨 뜻인지 명확했다. 죄는 그걸 짓는 1인에 제한되지 않는다. 너의 죄는 나의 죄가 되고 너와 나는 묶인다. 죄의 그물이 너와 나를 엮는다 (.....) 

 

벤야민. 완전히 틀리겠다는 각오로 이론 하신 분.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이해하는 게 옳든 아니든) 벤야민의 말을 기억하고 

죄의 그물을 명상하면서 아무 말 없이 불멍하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 생각한다. 

......... 너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면서 말 없이 불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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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2-03-14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멍 좋아요x10!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몰리 2022-03-14 17:33   좋아요 2 | URL
정말 오늘 같은 날, 이런 저녁에 불멍하면서 걱정도 두려움도 죄도 사라지고 따뜻한 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극우세력 없는 ㅎㅎㅎㅎㅎㅎ 세계로 다음 날 나온;;;;;다면!

곰곰생각하는발 2022-03-14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벤야민 좋죠. 불멍도 좋고...

몰리 2022-03-14 18:38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벤야민과 불멍은 어울리는 조합인 듯요!
니체와 불멍, 아도르노와 불멍, 맑스와 불멍은 억지스럽.;;; 이들은 분리시켜야...
 



조이스도 같은 (똑같은) 취지로 

말씀하셨지 말입니다. "천재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의 오류는 그의 의지에서 오고, 발견의 관문이다."


천재가 하는 게 아니어도 

"실수/오류는 발견의 관문"인 무수한 사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실수와 오류를 어떻게 대해 왔? 

잡아 죽일듯이 대해오지 않았? 오직 맞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 




대학원 시절 이웃이었고 그걸 떠나서도 가깝게 지냈던 청년 (당시엔;;;;) 요즘 많이 생각한다. 

그는 부잣집 잘생긴... 쪽이었고 한나라당 (당시엔, 그 직전 직후도 포함) 지지자였다. 그의 누나가 만들어서 

보냈던 만두를 같이 먹었던 적이 있는데 만두가 뭐랄까, 부잣집 만두였다. 내가 알고 좋아했던 우리집 만두가 아니었다. 우리집 만두는 김치에 돼지고기, 두부 당면으로 소, 만두피 자주 터짐. 그의 누나가 만든 만두는 부추에 당면 돼지고기, 피와 소가 뭔가 딱임. ;;;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피. 과하지 않은 소. 


그 만두로 끓였던 떡만두국이 지금 바로 보이는 거 같다. . 

왜냐.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많이 놀렸었는데, 그러게 지금도 그는 그 당 지지자일 거냐. 

..................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게 더 많아서, 그래서 계속 기억하는 거 같고 어떻게든 돌려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니까. ;;;; 그러니까요. 


여튼 발견의 관문. 발견의 관문으로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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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2-03-14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치에 돼지고기 들어간 만두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김치 안 들어간 만두는 사 먹는 만두 같고 왠지 정감이 안 갑니다. ㅎㅎ

몰리 2022-03-14 14:37   좋아요 1 | URL
그의 누나 만두는 모양도 다 똑같이 정갈하고 예뻤는데 (우리집 만두는, 누가 만두를 눈으로 먹냐; 형식 파괴 만두) 문화 충격의 순간이었던 거 같기도 해요. 맛있었지만 이질적 맛있음이기도 했어요. 왠지 정감이 안 가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classics로 채워진 서가. 


아도르노 강의록 읽다 보면 감탄스러운 대목들 아주 많다. 

왜 아니겠. <계몽의 변증법> <부정 변증법>만 놓고 보면 반(anti) 과학 입장 아닌가, 느낌 들게 하는데 강의록들을 보면 전혀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점. 자연과학의 성취, 방법론에 그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편견이 없었다. 


사회 과학에서 이론의 역할에 대해, 이 강의 저 강의에서 방대하고 깊이 있게 논의하는데 

이론적 사유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도 한다.  


저게 내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생각할수록 감탄하게 되는 논의인데 

"완전히 틀릴 수도 있어야 한다" 딱 핵심만 이렇게 정리하면, 비이성의 옹호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아도르노 = 비합리주의자, 이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습.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을 알기. 강력한 돌파력을 갖기. 

바로 이것(그게 바로 "천재성"이라고 아도르노가 말하는)이, 이론 사유에서 완전히 틀릴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완전히 틀릴 수도 있는 자유는 강한 주체, "강한 자아"여야 가능하므로 


이론적 사유의 융성을 보고 싶다면 

강한 주체, 강한 자아..... 로. 


하튼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 아주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 "비대한 자의식" 이런 표현이 비판으로 쓰이는 게 아주 너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과잉이고 비대한 건 "자의식"이 아닐 것이다. 


완전히 틀릴 수도 있는 자유를 언제나 체험하는 강한 자아, 강한 주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체험을 언제나 기록한다면. 그런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언제나 쏟아지고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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