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국 여행작가 패트릭 리 퍼머가 쓴 수도원 체험기.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나온 이걸로 오래 전 사두었다가 이사 앞두고 발굴해서 조금씩 읽고 있다. 이 표지 이미지는 아마도 카파도키아의 지하, 혹은 동굴, 수도원 이미지인 듯. 그는 세 곳의 수도원을 방문했고 각 수도원마다 1장씩 3장의 글을 썼다. 마지막 장, 3장이 카파도키아의 수도원. 아직 1장에 있는데 1장의 수도원은 프랑스의 St. Wandrille de Fontanelle 수도원. 가장 엄격하게 수도한다는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수도원이다. 


수도원, 수도하는 삶 이 주제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조금도 끌리지 않을 책일 것이긴 하다. 

그런데 카렌 암스트롱이 쓴 서문은 그런 독자라도, 일단 그가 책을 집어들었다면, 계속 읽도록 이끌 힘을 갖고 있다. 

일반인이고 비신자고 심지어 종교에 적대적이더라도, 수도원에서 어느 정도 오래 머문다면 하게 될 수도 있는 종교적 체험, 그게 어떤 것인가 차근차근 설득력있게 말한다. 카렌 암스트롱이 이런 얘기 하면서 인용하는 패트릭 리 퍼머의 문장들은 매력적, 매혹적이다. 이 책은 57년에 처음 나왔는데, 초판에 저자가 쓴 서문에도 좀 놀라운 대목들이 있다. "정신의 번민하는 물들. 그 물들이 잔잔해지고 맑아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잠겨 있으면서 물에 반투명의 어둠을 주던 것들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너는 그것을 걷어내 버릴 수 있다." --> 수도원에서 하는 체험의 한 예. 



A Time to Keep Silence by Patrick Leigh Fermor



이런 표지도 있다. "너는 그것을 걷어내 버릴 수 있다." 

아주 오래 명상할 수 있을 만한 문장 아닌가. 


기대하고 본문으로 진입했는데 글쎄다 한편으로는 기대를 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대에 많이 못 미치기도 한다. 

반반 같은 책. 실망은, 저자가 아주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여행 작가라는 데서 오는 거 같다. 

와 프로페셔널하게 쓴다는 건 이런 것이었군요.... : 이런 심정이 계속 든다. 

그 자신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믿었겠지만) 기성 노선에, 표준에 충실하다. 

어떻게 표현하든 다 예측 가능한 세계. "너는 그것을 걷어내 버릴 수 있다" 이 귀한 표현도 이 예측 가능함의 세계 안에서 시시해지는 느낌. 


내가 수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 이 책을 읽었다면 한편 아주 불쾌했을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수도하는 사람은 아니고 비신자에 가깝고 하튼 불쾌하지는 않지만, 누가 아주 좋은 분석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이 책이 종교적 체험과 무엇을 하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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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터다이크 인터뷰집 Neither Sun Nor Death, 첫번째 인터뷰가 이 책 논의로 시작한다. 

"96년 출간된 당신의 책 <자기 실험>엔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있다. 자발적 신체 훼손이 일어나는 차가운 실험실을 나는 연상하게 된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이것이 그 책의 주제같기도 하다.(...) 파편화와 통합성. 당신의 철학은 파편화와 통합성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원천을 찾는가?" 


<자기 실험>은 영어 번역, 한국어 번역 안된 책이다. 인터뷰집 읽기 전 슬로터다이크 책들을 어느 정도 

읽으면서 영역된 그의 책들 서지 파악해 두었었고, 하여 독일어로만 존재하는 이 책 <자기 실험>은 

제목을 기억할 의지도 일지 않던 책. 모든 책은 바로 번역되어야 한다. 1언어로만 존재하는 모든 책에 역자를 보내라. 

올해 안에 모든 책에 번역이 있게 하세요. 


고달픈 재미라도 재미가 있는 책이긴 하겠지만 

고달픔이 지금 감당 안될 고달픔일 수도 있겠지. 아예 알지 말자. 

구글 번역 돌리면 어떤 책인가 대강은 알겠지만 구글 번역 돌리지 말자. 


했다가 어제 인터뷰집 다시 읽던 동안 아마존 독자 리뷰 찾아서 구글 번역 돌려 보았다.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든다. 독일어 책들 중에도 이런 표지 책들이 있구나. 주어캄프의 이런 책들 





2색, 3색이 다인 이런 표지와 달리 

색들의 축제 같은 표지를 한 책도 있구나. 


구글 번역 돌려 보니 <자기 실험>도 인터뷰집이었고 

한 리뷰에 따르면 너무도 재미있는 책, 파티같은 책이라고 한다. 

"즉석에서 이런 생각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일 것이다" 이런 말도 한다. 


파티같은 책. 그렇다면 그림의 책일지라도 구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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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30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표지가 파티각! ㅋㅋㅋㅋㅋ 원저자도 그렇지만, 이럴때는 번역자들도 칭송받아 마땅하지요.

몰리 2021-04-30 06:53   좋아요 0 | URL
번역가는 계몽의 전령이다??

굉장히 유명한 말이지만, 정확히 기억 못하겠는 유명한 말!
실러가 했다던가 괴테가 했다던가. 지금 막 별별 검색을 다 해봤는데 찾지 못했어요. ㅎㅎㅎ 그런데 어쨌든 정말 번역가가 하는 엄청난 역할. 뛰어난 번역을 남기신 분들에게 경의를. 비오는 금요일엔 빨간 장미;를 번역가에게.
 





일단은 페이퍼를 연달아 써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빨리 회고록 장르에 속할 글도 써야겠다, 써야 한다는 생각 늘 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말>이 진짜 엄청난 도움 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가 하듯이 툭툭 말하기. 

이 화법의 능란한 사용자라면 못할 말이 없을 거 같음. 어떤 훼손이든 훼손없이. 온전히. 


사르트르도 재평가되는 중이겠지만 

보봐르는 맹렬히 재평가, 철학적 복권, 진행중. 위의 책 포함해서 

주요 저술 전부가 보봐르 시리즈로 올해 출간되었다. 


<제2의 성> 옛 영어번역 사서 갖고 있었는데 (지금도 갖고 있나 불분명) 

나중에 찾아지더라도 상관없게, 새번역이 나와 있고 새번역으로 사고 싶은데... 했더니 

새번역 나와 있음. 이미 오래전 2011년 간. 옛 번역은 "깊이 결함있는 deeply flawed" 번역으로 

알려졌었다. 표지 이미지들 중에서는 아래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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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4-28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도 저걸로 갖고 있더라구요. 영어 잘해서 얼른 읽어야 하는데;;;

몰리 2021-04-28 14:16   좋아요 2 | URL
새번역 굉장히 호평받는 거 같고
그에 반해 옛번역은 진짜 한숨나게 한심한 대목들이 (남자가 했나 본데 자기 마음대로 왜곡, 창작하는...) 많다는 듯해서, 번역 놓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씩 꾸준히, 매일매일 공부합시다.
 



한옥 별로 안 끌려서 

한옥으로 뭘 하든 심드렁했었는데 유튜브에서 보낸 시간 길어지면서 달라지기 시작하는 중이다. 

서까래 살리면서 리모델링, 이런 거 심란하기만 했었다가 이제는 좀 뭔가 매력적. 심지어는 

이게 집의 원형인가보다 같은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한국인에게는. 선과 면, 공간 분할 이런 게. 

뭐랄까 "깊이 만족스러운" 그런 느낌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양옥 집은 우리에게 대용일 뿐이었? 


저 집도 마음에 들고 아침 저녁으로 마당 한바퀴 돌면 "깊이 만족스러운" 느낌 들거 같은 집. 

11분 지점에 거실 구석에 설치된 드럼 세탁기 나오는데, 이게 또 뜻밖에, 불시에, 충족감 주는 장면이었다. 

세탁기 크기에 딱 맞게 공간을 짰는데, 아 그걸 보기만 해도 충족감. 빨래 돌릴 맛이 나겠군요. 빨래 넣고 꺼내면서 

복도를 오가는 맛이 나겠습니다. 


이런 동영상에 달리는 댓글들 보면, 궁금했지만 알 수 없던 것 알아지는 느낌 들기도 한다. 

시골이라고 다 텃세 심한 건 아니고 서로 도시보다 더 소닭보듯 하는 동네도 있고 --> 오호 그렇군요.  

어떤 댓글은 십년째 시골에서 산 다니고 텃밭 일구면서 살고 있는데 이런 삶이 지금도 여전히 설렌다고 

하고 있었다. 오호 그렇군요. @@ 



나도 그러기로 결정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음을 알면서 본다는 것이 

주는 안도감, 만족감이 있다. 삶의 훼손이 지속되었던 지난 세월 동안 "극빈층으로 전락" 이거 진짜로 진정한 공포였었다. 그만두기로 하고 나서, 그것만으로도 시작한 변화가 있는데 저 공포와 함께 살았음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 명확히 자각함. ㅎㅎㅎㅎ 하튼 그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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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8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올려주신 영상 눈이 즐겁네요ㅋㅋ 세탁기 위 공간을 저렇게 해서 활용할 수 있는것! 보는것 만으로도 만족감이 마구 올라옵니다ㅋㅋ예전에 드라마 <궁>에서도 한옥이 참 이뻤어요!

몰리 2021-04-28 16:03   좋아요 1 | URL
그쵸? ㅎㅎㅎ 세탁기 위 공간도 마음에 들고 세탁기 공간과 부엌이 그렇게 연결되는 것도 충족감! 바베큐장 보면서, 파티하고 싶어지고. 비오는 어느 날 바베큐장에서 커피 마시면 행복할 거 같고. 마루에 앉아서 개 뛰어노는 걸 보아도 좋을 거 같고. 아 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지는 집!
 



이 책은 데릭 자만이 말년에 쓴 일기.

데릭 자만은 이름은 들어봤고 작품도 본 적이 있는 거 같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이름만 알고 있는 감독. 심란하고 집중하기 힘든 영화들이지 않았나? 아님? 

막연히 그런 인상 남아 있는 거 같지만 그게 실제로 보긴 보아서 남은 인상인지도 확실치 않음. 


그런데 알라딘 중고샵에 이 책이 있었고 아마존의 어떤 독자는 

"나는 그의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이 일기는 내가 읽은 

일기 중 최고의 일기다. 너는 빠져들 것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기, 편지, 회고록, 자서전 

이것들 중 호평 받는 거라면 바로 사둠. 해서 이것도 사두었다. 






그가 남긴 일기를 묶은 책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책. Modern Nature. 

89년 HIV 양성 판정을 받고 부친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는 런던의 소음, 소문을 떠나 영국 해변 시골 마을에 정착했고 오두막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5년 후 94년에 타계한다. 일요일마다 오는 Brain Pickings 이메일이 전해 준 내용. 


구글 이미지에서 그의 오두막과 정원 이미지들 다수 찾아진다. 




유튜브에 저렴한 시골집 매물을 주로 올리는 채널이 있는데 

어떤 집들은 "오 마음에 든다" 같은 느낌이 바로 들기도 한다. 3천만원 이하 매물이 그렇기도 하다. 

어떻게 100-300평 대지 집들이 2천, 3천만원에 나오냐. 평당 10만원. 혹은 이하. 그럴 수도 있군요.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만들었던 몽크스 하우스. 나의 집. 나의 정원을 이 부부 따라해서 만들어 보는 게 아주 큰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 



요 집도 마음에 들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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