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하면 생각나는 방 중엔 

80년대 신림동 사촌오빠의 방이 있는데, 사촌오빠는 

전국수석 혹은 차석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랬다 해도 놀랍지 않을 엄청난 학력고사 성적으로 

샤대 가신 분이었다.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을 가면서 샤대 가셨던 막내 삼촌 이후 사촌오빠가 한번 더. 

그리고 나의 오빠가 (....) 그랬던 80년대. 80년대말. 


지금 내게 샤대는 뭐 그냥 그렇; 그렇고 그렇;은 아니고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딩이던 80년대엔 아니었고, 사촌오빠가 살던 집에 처음 가보았을 때, 그 집에 있던 무엇이든 금빛 후광을 

거느린 것처럼 보이던 그 느낌은, 지금도 소환하려면 소환이 되는 느낌이다. 모두가 신비하게 보이던 그 집. 부자인 

나의 고모가 사촌오빠에게 아낌없이 돈 쓰게 해주었던 그 집. 




그 집과 비교하면 (심지어 80년대의 그 집과 비교해도) 아주 못한 내가 이사갈집. ;;;;; 

그럼에도, 조용히 흥분하게 되고 흥분이 지속되는 내가 이사갈 집. ;;;;;;; 

그 집 다음의 집은 내집어어야한다고, 책만이 아니라 옷도 더 잘 보관할 수 있는 내 소유의 집이어야한다고 

생각하게 함에도, 그럼에도 일단은 그 집이 이 집 다음 내가 살 집임을 기억하면 자다가도 웃고 있을 내가 이사갈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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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3-2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다섯손가락 앨범 (그것도 LP) 이 등장하네요. 제 친정에 가면 저 앨범 아직도 있어요 (요즘 말로 다섯손가락 찐팬이었답니다).
이사 앞두고 심난하시기도 하고 짐 정리하다보면 지난 날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그러시겠어요.

몰리 2021-03-24 07:10   좋아요 0 | URL
당시 사촌 오빠네 집에도 이게 있었던 거 같아요. 여러 LP들 중에서 이것.
환하고 넓었던 집. 대학생은 이런 집에서 사나, 잠깐 환상(망상)에 빠지게 했던 집.
지난 세월 돌이켜보게도 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사실 돈 걱정이 없다면 오히려 이사를 ㅎㅎㅎㅎ 자주 다닐 거 같아지기도 하고 그래요.
젊었을 때라면 그랬을 거 같은. 이제는 다시 생각하면 정착 쪽으로 기울어지지만.
 



지금 사는 집은 들어올 때 부동산과 집주인 말에 따르면 14평이었다. 

아닌 거 같은데? 한 10평인 거 같은데? 14평이면 뭐랄까 1인용 의자를 어느(아무) 구석에나 두어도 되는 공간이고 

10평이면 그게 무리인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14평이 아닌데?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14평은 과장;이었고 11.99평 정도 되는가 보았다.

그런데 집 보러 온 분들 중 집이 넓다고; 감탄한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두 분이 집을 보러 왔는데) 

"어이구 대궐이네 대궐이여" 눈을 반짝이며 이 집안을 성큼성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시기도 했다. 

일곱 걸음쯤 나오나. 어휴. ㅎㅎㅎ 아. 하튼. 


이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책들을 사서 두고 있었다. 

어디 있나는 알지만 안보이고 꺼내기 힘들어서 볼 수 없던 책들이 많다. 그것들을 이제 보이는 곳에 두고 

궁금하면 바로 꺼내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면, 조용히 흥분되는 것임이다. 


Eams chair. 

Frasier에서 프레이저가 자랑하던 임스 체어. 

서울 변두리 구옥을 위한 임스 체어를 찾아내려는 검색이 진행되는 중. 




이직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직이 어렵다면 퇴직. 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퇴직은 ;;;;; 곧 실현 예정이다. 

변두리 매력적으로 수리된 90년대식 (방이 크면 조크든여; 아무리 수리됐어도 90년대가 자동 소환되는) 집에서 

복숭아 ;;;;; 크고 맛있는 복숭아 먹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쓰고 있겠다면 좋을 21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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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23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 360회전 가능한 어두운 오렌지색 체어 소유자입니다. ㅋ 원하시는 체어 득템하시고, 퇴직도 곧 실현하시길. ㅎ

몰리 2021-03-23 23:10   좋아요 0 | URL
의자 사진 올려주셔야! ; 저 지금보다 살림이 피면 ㅎㅎㅎㅎ 무엇보다 의자에 큰돈 쓸거같아집니다. 의자가 좋으면 가능해지는 것들에 대해........ (쩜쩜쩜;;;).

2021-03-24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침내 집이 나가서 

이사할 집을 구하느라 정신 없던 3월이기도 했다. 

이사 스트레스가 이혼 스트레스 정도 된다고 하던가, 설문 결과 1위가 배우자 사별, 2위가 이혼, 3위가 이사.. 였다던가 

어디서 들은 기억 있다. 


돈은 없는데 책이 많기 때문에, 책이 ㅈㄴ 많기 때문에 ; 

책들을 가져갈 수 있는 곳 찾아내느라 고생 많았다.

다행히 방 하나가 꽤 크고 나머지 공간도 작지 않은 집을 구했다. 

역시 변두리에 구옥이면 놀랍게도 저렴한 전세로도 꽤 넓은 집 구할 수 있기는 하다. 

구옥인데 수리가 잘 된 꽤 매력적인 구옥이어서, 5월 이사할 예정인데 기대가 된다.  

저 위 이미지 같은 느낌 ㅎㅎㅎㅎㅎ 과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아주 거리 멀겠지만, 내게는 그 거리 가깝;;;. 

벽 하나가 상하좌우 전면 통창은 아닌데 상하 1/2, 그리고 좌우 통창? 창문을 아주 그냥 이상하게 크게 만들어 놓은 집. 

창 쪽 빼고 벽의 2면은 다 책으로 채울 수 있을 거 같고 남은 벽 하나에는 책상을 놓고 길게 테이블을 붙여둘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그 테이블에는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 되는 복합기를 하나 사서 두면 좋겠고, 그 외의 용도도 생각하는 중이다. 한면의 책장 앞에는 지금 식탁, 중고로 샀던 까사미아 4인용 식탁을 놓을 수도 있을 거 같고 아니면 다른 테이블을 사서 두고, 거기서 불어 공부를 해야지. 테이블 옆에는 장스탠드를 하나 사서 둬야지. 여기서 밥을 먹어도 되고. 


한면 책장 앞에 4인용 식탁을 두어도 그 옆에 1인용 소파를 둘 공간이 남는 방. 이런 방을 한 15년만에 가게 되는 거 같고 

이게 늠 좋으므로 흥분하고 흥분이 유지되는 중이다. 정말 의자를 돌리면 바로 벽인 ;;;; 벽을 보다가 등을 돌리면 벽인 방에서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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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에서 놀라운 면모 하나가 

믿음에 "지적 품위" 이것을 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intellectual respectability. 듣는 강의에서도 (관련 주제 이것저것) 이에 대한 논의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이로운 결실들이 있었다는 것. 


사실 지금 이 세계에서도 

신학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겠구나, 있는 거구나는 생각도 든다. 

철학으로는 역부족. 신학이 필요하다. 신학이 필요한 시간. 

인간의 어떤 불의, 어떤 우매함은 신학으로 온전히 이해되고 규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이걸 알았던 이들에게는 말이 필요없게 당연한 것일 듯하다. 늦게 알았다면 놀라며 알게 되는 것. 

그런지 아닌지는 실제 신학의 세계로 가보아야 알겠지만 지금 (슬로터다이크의 예가 있기도 하고) 

그럴 거 같다 쪽 된다. 


이것저것 서재에 쓰고 싶고 나눠 보고 싶은 생각들이 쌓이고 있는데 

얼마간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하면서 (부지런히 서재글들 읽고 다니면서) 페이퍼에 집중해야할 거 같다. 

"Is it 이직 yet?" - ing. 이것의 시간. (....) 좋은 날이 오게 하기 위한 침묵의 시간.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릴 ;;;;; 수도 있겠지만 돌아 옵니다. 

물론 그 전에, 돌아올 때가 아닌데 올 가능성 매우 높;;;; 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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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0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신다면....떠나십시요 ㅋ. 이야기 보따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몰리 2021-03-02 13:34   좋아요 1 | URL
오늘
오늘 돌아올..;;;;; 아 안돼! ㅜㅜ
이것저것 다 모아두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바슐라르가 이 책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든 그에 빛과 찬란함을 보태는 화가의 시선, 현대 화가의 시선과 만난다. 그의 눈은 전설이 품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투시한다. 지난 시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대를 보는 우리 시대의 눈이 여기 있다. 생명의 여명기,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강인한 나무처럼 자라던 시대, 인간이면 바로 초인이기도 했던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을 그가 우리를 위해 발견하고 보여준다. (...) 샤갈의 그림 속에서, 성경은 초상화집이 된다. 이 책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가족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형식의 창조자이며 천재인 화가에게, 천국의 (Paradise)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작업이란 어떤 특권일 것인가! 그러나, 볼 줄 알며 보는 걸 사랑하는 눈을 가진 이에게, 모두가 천국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세계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세계를 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을 갖는 세계다.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는 것, 화가에게 이것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 기쁨과 함께 그는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는 창조한다. 모든 화가에게 그의 천국이 있다. (....)" 






불어판 표지로는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바슐라르가 쓴 이 서문, 거부감도 들고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는데 

종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고 

심오하고 진실하다는 ㅎㅎㅎㅎㅎ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인가요, 부정직하게? 부정직한 거 아닌가요. 신과 성경과 

천국을 이렇게 말한다는 건. (....) 이런 쪽이었다가 

읽고 생각하고, 침묵할 줄도 알게 되는 쪽으로. 

샤갈의 그림들에 바슐라르가 경탄하며 쓴 논평들이, 전엔 잘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끔 자극한) 

슬로터다이크에게 감사할 일이다.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열린 태도가 해방시키는 정신의 면모들도 있는데, 선, 면, 색의 체험도 

그에 속할 것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책 이미지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속주의가 수행하는 해방도 있을 것인데, 종류가 다르겠으니 

세속주의가 해주는 해방도 추구하고, 종교에 열린 태도가 가능하게 하는 해방도 추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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