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글엔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제목 때문에 라오스 여행기인 줄 알았다. 역시나, 라오스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작가가 라오스를 여행했고 그리고 라오스만의 특별함을 작가식대로 펼쳐내는 이야기인줄 알았건만 라오스는 어디로 가고 보스턴이 튀어나왔다. 찰스 강변의 오솔길을 걷던 보스턴, 뉴욕과 포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미코노스 섬과 핀란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이탈리아 토스카나, 일본 구마모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담아온 나라들이다.

  이 책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이고 해외에서 곧잘 머물렀던 작가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들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했던 그 시간의 경험이 지금보다 더 생생한 기억일 수 있겠다 싶긴 했다. 그런데 작가는 그때도 벌써 책으로 엮기 위한 글을 따로 써두고 있었다 한다. 참, 여러 면에서 놀랍다.

  온전한 여행의 느낌보다 조금 길게 낯선 나라에 머물며 여행자와 생활인의 느낌이 섞인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기억도 끄집어낸다. 작가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그리스 섬에서 탄생했다. 또한 숲과 섬, 바다 등의 풍경이 가득한 곳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일상생활자로서 방문했던 장소에 대한 글도 상당하다. 던킨 도너츠 방문기와 더불어 스타벅스 비교하기,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 및 레스토랑 방문기들이 그렇다. 자연을 보며 느끼는 감상과 이러한 현대의 공간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p137


  그렇다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딱히 안 풀리는 얘기를 해 놓진 않았다. 작가의 철학 때문인지 작가의 여행에서 잘 안 풀리는 일들은 비켜간 건가 싶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들이 있진 않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여행을 행하고 그곳을 감상하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인 만큼 라오스에 대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작가가 일본에서 라오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갈아타는 경유지 하노이에서 들은 말이다. 라오스로 가기 위해 하노이에서 1박을 하던 중에 베트남사람이 물은 말, “왜 하필 라오스같은 곳에 가시죠?” 이 말에서 작가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를 읽으며 라오스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까지도 이유가 없었지만, 가서 그 ‘무언가’를 찾겠다고. 그 질문은 작가에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었고 보다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p181~182


  작가가 여행한 시간은 지금보다 오래 전이지만 그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곳에 가본 적 없고 작가 또한 재방문하지 않았으니 기억은 작가가 여행한 그 시간 속에 그곳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일까?

 

혼자서 낯선 땅을 여행 하다보니 단순히 숨을 쉬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더랬다. p220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여행에 대한 생각 역시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여행을 글로 풀어내는 방식도 감정도 차이가 있다. 작가의 여행기는 한창 노르웨이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던 시절의 절정의 인기 시절의 글 몇편만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생각했던 스타일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잔했다.

  전세계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이 불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대표 작가이기에 이 작가의 에세이도 많은 이들에게 관심이 증폭되었을 테다. 여러 여행기를 읽다 보니 이 작가의 여행기의 차별성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건, 그만큼 작가가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수많은 여행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더불어 생각한다. 출판시장에서 여전한 열풍을 지속하기 때문에?

  이렇든 저렇든 항상 여행기의 결론은 이것인 것 같다. 자, 떠나라!

  하루키 역시 그렇게 끝맺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p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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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쉽Blue Sheep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4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하고 한국문학계에서 특히 장르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유정은 열심히 달려온 만큼 탈진 상태에 이른다. 헛헛함과 허망함을 뛰어넘어 작가로서의 공포까지를 느낀다. 욕망이 결여된 상태에 놀란 작가의 처방은, 여행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여행도 아니고 돛단배 띄어진 풍경을 바라보는 휴양도 아니라,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외치며 작가는 안나 푸르나를 향해 마음을 굳힌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떠오른 생각인지 오래 내재한 꿈이었는지 모르지만 작가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나푸르나를 가기 위해 돌입한다. 일단, 작가는 그곳을 혼자 가기는 주저한다. 여권도 없었던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던 것이다. 여행 일정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 채비를 꾸리는 것도 모두가 낯선 경험인 작가는 동료 작가이자 어린 김혜나 작가를 파트너로 17일간의 안나푸르나 환상 종주를 떠난다.

   이 17일간의 안나푸르나의 여행은 장엄하고 낭만적일 듯 보이지만 정유정이 겪고 기록하는 이 여행의 기록은 서투른 여행자의 당혹스런 경험에 대한 일기이다. 글을 읽다 보면 작가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처음 가는 여행에서 난관에 부딪히며 힘겹게 안나푸르나 일정을 마친 이야기를 고생스럽게 늘어놓는 ‘아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문학적이고 진지한 느낌보다는 좀더 발랄하고 막상 첫 여행에서 내가 겪으며 어떡해야 할지 몰라 울상짓는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만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자잘한 병치레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웃음터지는 일들이 엮인 이야기다. 뭔가 어리버리하면서도 결국엔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의 봉우리를 넘는 이 트래킹 일정을 소화해내는 작가의 집념은 놀랍다. 작가는 자신의 용기는 늘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토록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안나 푸르나, 그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를 넘는 일과 비견되는 것이었던가.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 푸르나. 유명한 산악인들이 즐겨 이곳을 찾았고 힘겨운 트레킹 코스로 알려진 이 곳은 맞닥뜨리게 될 아름다운 풍경에 그 모든 힘겨움을 이겨내고 힘을 얻게 된다. 해발 5,416미터의 쏘롱라패스가 마의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고 많은 이들이 고산병에 힘들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막연히 작가가 이 책을 내었을 땐, 이 곳을 통과해 코스를 마쳤으니 당당히 책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긴 했지만, 작가가 이토록 어설픈 여행의 경험자이자 소소한 예민미를 가진 약체력인 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의 여행에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것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뒷전으로 하고 그 일정을 소화해내는 여정에서 겪게 되는 소소한 ‘사건’들이 경치에 대한 무한한 찬사와 감상보다 괜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이 힘든 코스를 등반하며 그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이 되었기 때문일까.

   작가는 17일간의 이 여정을 세세히 기록한다. 안나푸르나의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의 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같이 등반하는 기분이 된다. 힘들게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들이란 마냥 힘들다, 죽겠다가 아니다. 그런 속에서도 머릿속으로는 하염없이 무언가를 미지의 어떤 것들, 과거의 일들, 그런 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 여행을 떠나 그 속에 있는 작가는 작가대로, 글을 읽는 이는 읽는 그대로.

손 전체가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저체온증에서 온 말단청색증이었다. 그대로 두면 동상이 되고, 심화되면 절단해야 하는 위험한 징후였다. p175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작가의 육체적인 고통을 인지하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끝가지 안나푸르나를 종주했을까를 질문하게 된다. 어떤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서 막상 닥쳤을 때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을 해본다면 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산을 올랐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 따라야 할 것들과 더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긴 하겠고 그것들을 잘 조율해야 하겠지만.

   또한 모든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긴 하고. 하지만 의지라도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무엇을 할 게 있을까. 작가는 여행에서 "블루 쉽(Blue Sheep)"을 만난다. 4000미터 이상 고지대에만 산다는 야생 양으로 경계심이 많아 사람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이라는데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의 앞길에 행운이 있을 거라는 안나푸르나의 계시라고. 작가의 의지와 계시가 서로 맞물려 아니 작가의 의지가 계시를 이끌어낸 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p133

 

   작가는 여행에서 확신을 얻었다 말한다. 자신을 지치게 한 것이 삶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본성은 싸움닭이었다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삼스럽게 처음 여행을 떠날 때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놓는 것을 배우고 편안함을 배우고 삶의 여유를 여행에서 얻었노라 하던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결론은 의외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르니 의외라고 할 것도 없긴 하다. 어쨌든 작가는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곳에서 병을 얻어왔다. 이름하여 네팔병. 누구나 여행에의 경험은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온 이 여행을 그리워하고 생각할 것임을 의심치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이 여행에서의 경험과 감상들이 은은히 배어날 것이다.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산병만큼이나 흔하게 걸린다는 이 지병에서 나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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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정여울, 홍익출판사, 2014.


  유럽을 여행할 때면 가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은 타인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먼저 여행을 한 이들을 통해 어느 장소의 노을이 멋졌더라, 어디의 무엇이 맛있더라, 어디의 뭔가가 재밌는 체험이더라.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뇌리에는 차곡차곡 여행지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리스트로 정리되고 있다.

  이 책 내가 사랑한 유럽은 그런 여행에 대한 소개다. 작가는 정여울이지만 작가가 선정한 여행지라기보다 대한항공과 유럽 여행자들이 특정한 테마별에 따라 선정한 유럽이다. 몇몇 여행자가 아니라 무려 33만 명이 선정했다니 다수에게 인상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열 개의 테마에 각 열 곳의 지역을 선정했으니 100군데의 유럽 여행지가 소개된다. 물론 나라는 중복되더라도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느낌이 다르니 이것은 나라에 대한 기억도 더하거니와 무엇보다 ‘어떤 여행’일까 하는 그 주제를 더 떠올리면 될 것이다.

  주제, 테마는 그런데 구체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유럽이라거나 직접 느끼고 싶은 유럽, 달리고 싶은, 갖고 싶은, 한달쯤 살고 싶은, 시간이 멈춘 듯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니 보다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여행의 이미지가 이 장소들을 특별하게 보이게 할 것이다. 거기에 정여울의 글이라 이 감성은 배가되는 듯하다. 작가는 10년 동안 가장 열심히 한 일이 여행을 간 일이라고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이 장소들에 척척 감상을 쏟아낸다. 이 여행지를 다 눈에 손에 발에 담아봤다니 역시나 부러움이......

  타인들의 여행경험을 읽다 겪게 되는 문제는 여행지의 안내책자처럼 내가 그곳에 갔을 때, 나는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는 여기서, 이렇게, 누군가를, 무엇을, 어떻게…. 그런 것들. 마치 매뉴얼처럼 만나고 해야 하고 느껴야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허탈하다. 하지만 사람의 느낌이란, 감성이란 차이가 있는데 어쩌면 여행에서의 감성과 감상까지 타인의 것을 가져오려는 데서 오는 선망과 욕구 때문 아닐까. 아니, 타인들이 한 것이라면 나도 꼭 해봐야 하는 그런 욕망들....

  오롯이 여행에서 내 느낌을 가지는 일, 타인이 그렇게 느꼈더래도 그것은 그의 기억이며 내가 마주치는 경험에 귀기울여야 할 것인데도 ‘익숙한 것’ ‘선망하는 것’에 치우치는 여행이 되는 때가 있다. 어떤 정보가 내게 주어지느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여행 자체, 여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에서 ‘나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어쨌든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전해 준다. 어떤 장소. 어느 나라에 어떤 곳이 있더라, 그곳은 심금을 울리기에 좋은 장소더라, 그런 식의 정보를. 거기에 작가는 문학평론가 답게 여러 책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을 떠올리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그림을 기억에 떠올리며 여행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는 싶으나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이들에게 인상적인 유럽의 곳곳을 보여주고 있어 유럽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줌과 동시에 이토록 많은 여행지 중에서 어느 한 곳은 가봐야지 않겠니라는 묘한 선동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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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여행, 한 번의 삶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967일, 낯선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김향미, 양학용


  한 며칠, 아니면 조금 긴 보름. 그보다 더 한달. 휴식에의 욕구는 항상 길다. 그리고 휴식의 카테고리에는 여행이 꼭 끼어 있다. 그런 휴식의 날들이 찾아온다면 정말로 여행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단 하루라도.

  이 책은 장기여행의 기록이다. 3년 가까이의 시간, 967일을 여행한 두 부부의 ‘길’의 기록이다. 여행의 여정.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알아듣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기도 한 대화들을 나무며 어색하기도 즐겁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여행객이 언제 급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외 여행 후의 여행기가 쏟아진 것은 10년 정도인 듯하다. 그것도 특정한 유명인이나 학자들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일반인들에 의한 여행의 기록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결혼 전의 약속이었기에 결혼 10년 째 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전한다. 일단 바라던 꿈을 지속하며 실행했다는 것이 크지만 사소한 의견의 대립마저도 일상화되어 가는 부부 사이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감행하는데 서로가 동의하며 어긋남없이 그 오랜 시간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에 절대적인 존경심이 솟는다. 전셋값을 빼들고 떠난 여행은 처음엔 1년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길 위에서 만난 매혹에 이끌려 그들은 967일을 여행한다. 모두 47개의 나라들. 중국, 인도, 이란, 볼리비아, 루마니아, 미국, 이집트, 페루, 아르헨티나, 탄자니아, 시베리아 등. 지도에서 알던 올림픽 입장할 때나 보던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한 것이다. 어떤 나라에는 잠깐 머물렀고 어떤 나라에는 몇 개월을 머물렀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이 여행기는 그들이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그들이 계획된 여정보다 오래 여행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이 이들 사람들 덕분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여행 뒤에 그 도시의 풍경과 더불어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움으로 그들을 되새기는 마음이 이 책들에 담겨 있어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이며 그들은 낯선 나라의 여행객,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재밌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따스함을 발견할 때 깊은 감정에 젖게 되니까.

  두 부부가 여행하는 기간 동안 이러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관광과는 다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관광이 여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관광여행에서는 항상 조심이 뒤따른다. 바가지 요금, 강도 등등의. 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여행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냥 그렇게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굳이 호객 행위를 하려 애쓰지 않고 굳이 그들에게 가식적인 삶을 보여주려 한다거나 특별히 경계할 필요도 특별히 애써 접대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전재산을 들고서 떠난 여행이기에 이들의 전재산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것은 곧 그들의 여행경비가 되니까. 이것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 듯 두 부부는 여행의 경비와 여행을 떠나서 겪은 일들에 대한 여행팁을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보다는 오래 전이기에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려나.....재밌는 부부라기 보다는 멋진 부부란 말이 더 적절한 두 부부의 여행의 기록을 보면 정말로 ‘즐기는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물론 순간순간의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고 그들과의 소통이 어려워도 알아들으면 듣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순간순간을 잘 보낸다. 그래서 또한 식당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볼리비아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트래킹에 홍해 스쿠버다이빙까지 하며 배우고 즐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이 이 여행으로 갈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여행 또한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이자 노력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여행 후에 더더욱 달라졌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미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살았으니 새로운 삶이 전개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여행자의 시간은 압축적이라서 한 번의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산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평생 만날 사람들을 만나 평생 받을 사랑을 받고 평생 아파할 이별을 하며 매일매일 길 위에 서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일하고 노래하며 시를 쓰며, 제각기 크고 작은 삶의 무게를 지고서 때로는 울고 웃으며 고단하고도 따뜻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피부색과 언어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와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는 묘한 연대감에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또 어떤 만남은 그들 삶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 순간 평범했던 도시는 매력적이고도 성스러운 나의 도시도 변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지저분하고 우울하며 한없이 낯설게만 굴었던 도시가 한순간에 따뜻한 백열등을 밝히고 여행자를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p8


  이 여행기는 사람 중심이라는 점 이외 두 부부가 집값을 모두 털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색다른 여행의 방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여행이란 그렇게 일상의 삶을 포기하며 이룰 수 있는 머나먼 꿈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게끔 된다. 멀리 있는 꿈이었다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꿈이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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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커리어우먼의 스페인 섬 정착기


안나 니콜라스, 

뽀까 뽀끄 - 마요르까로 떠난 한 가족의 행복한 스페인 이야기


         뽀까 뽀그.

         스페인 마요르까 섬의 관용어다.  ‘조금씩 조금씩’

  이 책의 분류는 여행기다. 작가의 마요르까의 생활이 여행이라면 여행기라고 볼 수 있긴 하겠다. 작가는 열정적인 커리어 우먼이다. 경력을 보건대 일중독자다.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기네스 세계기록의 국제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녀가 기획한 다큐는BBC에서 방영되었다. 런던에서 부유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PR회사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런던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바쁜 이 열정적인 작가 안나는 쉴 틈이 없이 일하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매일 밤마다 뉴스를 보고 잡지를 뒤적이며.

  일중독자가, 열정적인 커리어 우먼이 삶에서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느낄 때, 다른 일들에 마음이 갈 때는 언제일까. 안나에게는 그런 일은 없을 듯해 보였는데 복잡한 도시 런던을 떠나 스페인의 마요르까 섬으로 정착하는 전환을 꾀한다.

  처음 시작은 그저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 마요르까 섬으로 푸욱 쉬고 올 목적으로 휴가를 떠났건만 그때만 해도 그저 특별하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일없는 섬이었을 뿐이지만 까닥없이 낡은 집에 끌리어 휴가를 떠난 곳에서 집을 사 버렸다. 단순히 낡은 집도 아니라 바닥도 갈라지고 지붕도 무너진 그런 집을. 더구나 자신의 직장은 런던인데도.

  이렇게 무턱댄 부동산 투자(?)로 안나의 삶이 바뀐다. 그때부터 안나는 런던과 마요르까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더구나 안나가 비행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런 암울함에도 비행 공포 퇴치 안내서를 붙들고서 런던이라는 직장을 비행 출근하는, 스페인 마요르까 섬으로 비행퇴근하는 삶. 사실 한편으론 아, 멋지다 싶다. 하지만 이것이 일상이라고 한다면 멋짐보다는 무딤이 일상화된 삶의 또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도 같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차이가 있을 것이니 안나는, 이 두 지역을 오가는 생활을 안정적으로 잘 해냈다. 그리고 어디에 마음이 더 가느냐에 따라 안나의 생활이 정리가 될 터인데 안나는 마요르까 섬에 정착하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두 지역을 오가는 동안 그녀가 행하던 일에 대해서나 삶에 대해서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힘든 일은 스페인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이미 그녀의 런던 직장 생활은 익숙하기도 하고 원체 잘 하는 것이었기에.

  반면 스페인 마요르까는 집을 꾸미는 일도 지역에 적응하는 일도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새로 시작하면서 그것에 더욱 끌리게 될지 반대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그녀의 이 스페인 마요르까 섬에 마음이 끌려 붙박이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마요르까 섬이 이 도시녀의 마음을 어떻게 휘감았는지가 소설처럼 쓰여져 있다. 마요르까의 멋진 풍광이 더해진 사진이 더해지면 이 이야기는 한편의 소설처럼 재밌게 낯선 곳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하물며 이 책은 마치 소설이기라도 하듯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까지 있다.

  당연히 예상가능하지만 런던에서의 그녀의 일상은 익히 알듯이 정신없고 딱히 즐겁지 않은 사건과 일들의 연속이다. 특히나 고객을 상대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진상고객이라도 만날라치면…. 누구나 예상하듯 직장인의 삶, 바쁜 도시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요르까에서의 삶이란 또 한편 예상할 수 있기도 하듯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유가 넘쳐난다. 또한 가족들이 함께 하고. 이웃들과 함께 재밌고 즐거운 일상을 맛본다. 왜냐면 마요르까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없으니까. 다만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다채롭게 전개되어 영국인들이 스페인인들과 이웃으로 얽혀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인종을 떠나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란 낯설고 흥미로운 일들이니까.

  안나는 점점 런던에서의 생활은 감옥 안에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그녀는 도시 생활의 부속품처럼 런던 생활이 여겨지고 “별을 가득 품은 부드러운 하늘과 노래하는 매미, 미풍에 실려 다니는 재스민 향기”를 그리워한다.

  안나는 마요르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완전히 정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점점 생각하게 되는 일들. 뽀까 뽀끄는 조금씩 조금씩이란 말. 그렇게 그녀는 뽀까 뽀끄 마요르까에 끌려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의 정말의 뜻을 “뜻하는 바는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망할 희망 따위는 갖지 말라”라고 말한다. 혼란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를 죄기 위한 반어법이었나 보다. 애써 동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고락을 의연히 받아들이기 위한 생각까지 하면서.

  하지만 고뇌의 시간이 긴 만큼 생각 역시도 깊어진다. 안나는 이성의 끝까지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결국 마요르까의 삶에 편안함을 얻어 간다. 시간을 버리는 일에 편안함을 느껴가는 것이다. 안달복달하지 않고 사물을 사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며 지난 삶에서는 왜 그리 안달했던가를 생각해본다.

  

런던에서 커피 마시는 행동은 강박적이다. 마요르까 산골 마을에서 주문하는 커피는 블랙이나 밀크커피, 혹은 아이스커피, 아니면 솔로라고 부르는 에스프레소가 고작이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101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리고 참나 원, 나는 내가 마시는 커피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나는 때때로 톨 사이즈 트리플 샷 카푸치노 엑스트라 핫 또는 쇼트 사이즈 더블 샷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거나 그란데 사이즈 디캡 라테에 거품을 추가한 것 또는 해즐넛과 바닐라 아이스 모카에 크림을 얹은 것을 마셨다. 정말이지 내가 무엇을 먹었던 것일까? 이제 나는 차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덕분에 몸도 더 편안하고 돈도 아낄 수 있다. p162


  이토록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한 안나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깊은 시간 동안 고뇌를 겪어 온 그녀의 이 심심한 변화가 좋게 보이는 것은 이 삶이 동경이 되기 때문이겠지. 이제 그녀는 마요르까에서 완전히 매혹되었고 자신에 대한 강박도 날려버렸다.

  

이곳 생활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것. 위험한 자존의식이나 그라비따스, 진지함을 가진 사람은 다음 비행기로 곧장 런던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p239 


  어쩌면 안나의 런던에서의 커리어 우먼의 삶을 동경할 사람도 스페인의 아름다운 섬에서의 여유와 행복이 넘치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경험한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의미가 있겠지. 오랜 비행 시간만큼이나 양쪽의 생활속에서 비행하며 고뇌하는 모습도 마요르까의 삶에 정착하는 모습도 진지함과 유머가 잘 버무려져 있다. 안나처럼 스페인 마요르까 섬에서 낡은 집을 살 형편도 런던에서 바쁜 커리어 우먼의 일상을 보내지도 못하는 나는 삶의 고민만은 계속한다. 나도 비행을 접고 어디든 무엇에든 정착해야 할 때가 오겠지. 그때까진 곡예 가득한 비행기에 놓여 있을 수밖에.

  비행을 끝난 안나가 부정적으로 되뇌었던 ‘뽀까 뽀끄’의 의미를 마지막에 가서야 수정한다. 뽀까 뽀끄! 나의 비행기도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이 곧 다가오겠지!


 마요르까에서 나는 인내의 기술을 배웠다. 모험을 즐기는 우리의 철물상, 전기 기술자, 전화 수리공, 커튼 가게 주인 등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 느닷없이 나타나 마요르까의 진리 ‘뽀까 뽀끄’에 대한 믿음을 일깨워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다리는 자는 항상 좋은 것을 차지한다.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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