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쓴다는 것


매혹의 러시아로 떠난 네 남자의 트래블로그, 서양수·정준오, 미래의창, 2015.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인천공항에는 무수한 인파가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이 나라를 떠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고 있다. 그래, 그동안 너무도 지쳤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너무도 힘들었던 시간이다.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나라 때문에 아직 회복되지 않은 채 바짝 긴장된 몸과 마음. 이 기회를 맞아 힐링을 하고 돌아오면 5월엔, 5월엔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정권을 볼 수 있을까.

  

 “시베리아 자작나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여행은, 홀리듯이 가더라도 몸이 지쳐 돌아와도 다시 가고프다. 여기 네 남자가 떠난 러시아여행처럼, 여행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이 자꾸 불러댄다. 여행 책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어쨌든 떠나라!

  이 책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네 명의 남자들의 러시아 여행기이다. 네 명의 남자들은 2008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인연으로 다시 한번 러시아를 떠난다. 갑작스럽게. 네 명이지만 두명만이 여행 서술을 담당하고 있고 그들이 방문한 러시아의 감상과 겪은 여행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는 여행기다. 네 명의 왁자지껄한 여행의 일상이 담겨 있다.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경험을 통해 여행에 대한 욕구를 충독질하는 일이다.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대한 인상을 타인의 경험을 통해 간접경험하며 절실하게 나도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과 그들이 예찬하는 장소 어딘가를 선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여행기 또한 넘쳐난다. 어떤 이는 여행을 가고 시리즈로 여행기를 발행하기도 한다. 세상에 여행할 곳은 너무도 많으니까 여행기는 사람들과 장소에 비례하여 기하급수적이 될 것이다. 그 많은 여행기 중에서 어떤 여행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 여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감안할 땐 중요한 일일 거다.

  이 책의 특징은 뭐랄까. 편하게 읽히는 만담같다. 여느 여행기나 블로그에서 보듯 방문한 곳의 유명한 장소에 대한 소개와 그곳에 대한 인상이 담겨 있는데 이를 통해 “아, 나도 가고 싶어”라고 할만한 장소는 선뜻 와닿지 않는다. 그만큼 특정한 장소에 대한 묘사와 강렬한 인상을 담고 있진 않다.

 기억에 남는 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그들의 이력이다. 어떤 여행기는 “여행을 떠난 이유” 자체가 여행의 내용보다 차별화된다. 여행을 떠나는 일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는 일인듯 ‘과감’하게 일상의 일들을 접고 떠난 이들의 여행기가 주를 이뤘다. 그들은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거나, 전세금을 빼거나, 전재산을 몽땅 들고서 여행을 간다. 그런 일들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러나 한편으로는 로망이기에 그렇게 해서 떠난 여행이 어떤 매력으로 가득했는지, 그들이 후회를 하는지가 궁금해서 그들의 여행기를 보게 된다.

  그다음 작가나 학자의 여행기다. 그들은 학술적인 정보를 감상과 함께 섞어 준다. 문학가의 감상은 남다른 언어를 통해 특정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학자들은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일반인들이 여행을 하지만 여행기를 쓰는 경우 저런 ‘과감한 행동과 이력’이 있어야 눈에 띄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이 네 남자의 여행기는 직장 생활하거나 공부하거나 일상을 누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여행을 떠났다. 아주 특별할 것도 없이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을 책으로 만들었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여행을 가는 멤버를 영입하기 위해 ‘책으로 쓰자’는 아이디어가 먼저 나왔다. 어쨌든 보통의 사람들이 여행을 갈 때 하는 방법 그대로, 그 전날까지 일에 치여 있다가 날짜에 맞춰 허겁지겁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게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하고 또다시 휴가에 여행을 떠나는 그런.

  여행을 떠나는 일이나 혹은 여행을 가서 여행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내는 건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여행기는 일상과 평범이 그대로 녹여있는 여행기이다. 여행을 하고 싶고 여행기를 쓰고 싶은 이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씌워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물론 몇 박 며칠의 휴가를 다녀온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고 해서 출판사해서 즉각 환영하며 출판해 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책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필요한 법이니까. 한편으로는 이들 네명의 독특한 이력이 한몫했다는 생각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주비행사에 도전하기도 하고 공모에 당선되어 갈라파고스를 촬영하기도 하는 사람들, 이미 20대에 연해주 역사탐방단에서 시베리아 순례를 하던 이들 네 명. 그러나, 지금은 30대 직장인이거나 아직 공부중인 채로 지난 날의 여행의 기억을 마음에 품고 언제든지 그 여행 속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여행은 그리고 여행기는 정해진 누군가의 몫은 아닌 것이다. 누구든 도전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긴 연휴를 앞두고 든다. 도전하고픈 연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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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4-2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모 항공사 광고에서 본 듯한 사람들인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이들의 이력이 여행서 출판에 한몫했다는 얘기가 의미있게 다가오네요.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여건이 허락해주지 않은 현실에 살짝
서글퍼지려하네요^^ 의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모시빛 2017-04-29 22:14   좋아요 0 | URL
동감이요. 서글픔...출판에 있어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저자 프로필이 우선하기도 한다더군요. 심지어 프로필이 70%라는 얘기도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즐겁게 열심히 책읽고 좋은 콘텐츠를 쌓아보자구요. 화이팅입니닷!
 

행복한 날의 드로잉


  

 

  가을, 바람이 쌀쌀해져서인지 춥다는 생각과 함께 떠올린 것이 실비아 플라스다. 글쎄. 그것이 너무나도 추운 날, 무섭고 매섭게 추운 날 죽은 것과 연관이 있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글보다도 그녀의 생애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찌라시에 관심갖는 모양새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남편이라 불리는 사람과 남편의 연인의 죽은 방법까지가 더해진. 그렇지만 그녀의 죽음이 너무나 뇌리에 각인되어 떠나지지가 않았다.

  죽음이란 언제나 누구의 일이든 안타까운 일이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이른 죽음에 대해선 더 아쉬워한다. 실비아 플라스 역시 그녀가 가진 재능이 너무 탁월했기에 그 재능을 더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고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더구나 어쩌면 당연 피할 수도 있었을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 마음이 극에 달하게 되는 것일 게다. 어린 날부터의 자살시도와 고독, 남편과의 별거, 아이를 둔 상황에서의 극단적인 자살이란 방식이 그녀의 예술적 재능을 잠시 내리고 강렬하게 보이게 하지만 그 놀라움에 적응이 되고 난 후엔 그녀가 가진 재능에 대한 놀라움에 빠진다.

  실비아 플라스 드로잉집은 그녀의 재능 중에 한가지 그림, 미술이 얹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줄곧 그녀는 시인이었으니까. 작가였으니까. 이 책 <실비아 플라스 드로잉>은 실비아 플라스가 그린 드로잉 46점과 편지글과 일기가 엮인 책이다. 얇은 분량의 이 책은 1956년도의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1956년은 그녀가 남편 테드 휴스와 결혼한 시기였고 그와 함께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한 때다. 그때 그린 그림들이다. 낯선 곳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만난 테드와 비밀리에 한 결혼이다. 결혼 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까 불안을 가지면서도 결혼했고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그려낸 그림들은, 펜과 잉크로 그려낸 드로잉들. 어느 한 순간이라도 그녀는 그렇게 무언가를 그리고 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잘 그린 그림인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를 때엔 사실적인 그림, 실물과 같은 그림을 보면 ‘오우, 잘 그렸다’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젠 사실적인 그림에 대해서만 잘 그렸다라고 하진 않는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좋다” “잘 그렸다”라는 말이 나오는 느낌이 드는 그림들이 있다. 그런 그림은 그러니까 감성을 건드리는 거라고 보면 될까.

  아주 뛰어난 화가라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림도 잘 그리네라는 생각을 하기엔 충분했고 그림을 그릴 때의 그녀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가 궁금했다.


테드와 이곳저곳 다녔는데 내가 펜과 잉크로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테드는 옆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때로는 그저 생각에 잠겨 있었어. 내가 그림 그리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는 게 좋대. 내 그림도 좋아하고. 내가 펜을 움켜잡고 재빨리 스케치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데. 베니돔에서 그린 그림, 보고 싶겠지만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 생애 최고의 걸작들이야. p47


  정말로 그녀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행복을 누린 시기가 있었을까 의구심을 가졌는데 그녀가 남긴 기록들을 보건대 마냥 의심하며 미심쩍어하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다. 1956년 이후야 어쨌든. 프랑스에서 엄마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림을 그릴 때의 정경이 보인다. 이 시기의 그림들과 몇 편 남긴 편지들로만 보면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림에 대해 만족하고 확신에 차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이제 막 결혼한 그녀에겐 가장 행복이 충만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시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드로잉집은 시와 다른 그녀의 감성을 볼 수 있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을 ‘그림’이라고 했다.


1958년 3월 22일 외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머니는 열정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예술적 원천을 찾았어. 바로 그림이야. 앙리 루소나 고갱, 파울 클레, 데 키리코처럼 원초적 기운이 넘치는 작가들. (매주 청강하는 ‘현대미술사’ 시간에 교수님이 추천하는 대로) 미술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름다운 책들이 책상에 가득 쌓여 있어. 일 년 동안 간헐 온천수를 병에 꼭꼭 담아놓았던 것처럼 참신한 생각과 영감이 마구 샘솟고 있어.” p10


  소소한 것들에도 영감을 가지며 그림을 그리던 실비아 플라스. 그 행복한 때의 기억들과 예술적 열정을 기록했던 그녀의 생애의 한순간을 보면서 죽음 때문에 각인되었던 회색빛 이미지로만 그녀 전체를 덮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그녀는 행복을 느끼며 이처럼 더많은 예술적 영감과 함께 더 많은, 더 좋은 시들을 그림들을 소설들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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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계획없이 목적없이


삶의 배후에 있는 삶을 찾아 떠난 여행자들은 때가 되면 귀환한다. 삶에서 얻은 것들을 삶의 뒷전에 놓아두고, 검고 어두운 어머니의 계곡으로부터 잃어버렸던 자아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은 기존 사회의 ‘서릿발 같은 증오와 심문’과 맞서야 한다. p444


  개정판에선 윤광준 사진가의 사진이 더해진 떠남과 만남은 저자의 남도여행기이다. 초판은 2000년이니 그 무렵의 어느 즈음에 여행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 즈음 저자는 2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오랜 시간 직장인으로서 살아온 저자에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IMF 이후로 자발적 퇴사보다는 어떡하든 직장인으로 살아남으려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가. 그런 만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때의 여행은 마냥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여행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다지며 미래를 위한 결심을 다지는 여행, 저자는 오랜 직장인으로서의 관습과 결별하겠다는 의미로 여행을 시작했고 다시 보내게 될 새로운 인생은 일에 매달려 바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단언하건대, 비효율적으로 한 달반을 보내게 될 것이다. 쓴 만큼 못 얻는다는 것이 비효율의 정의다. 일주일에 다섯 군데밖에 구경하지 못했다면, 같은 시간에 열 군데를 둘러본 사람에 비해 얼간이 같은 짓을 했다는 뜻이다. 나는 얼간이가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는 없다. 사랑도 해야 하고 눈물도 흘려야 한다. 순수한 배운 자체는 즐거운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가장 고독하지 않다. 이제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지리적 오지란 별로 없다. 마음속의 오지가 더 넓다. 나는 나와 함께 있을,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움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간다. 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쓸 예정이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강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p19


  찬기와 따스한 기가 공존하는 3, 4월의 남도. 봄꽃이 나와 흔드는 길 위의 여행, 아무 계획도, 행선지조차 없는 여행은 50일간 지속되었다. 그 50일은 저자가 자신에게 주는 휴가였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10년의 휴가, 한달. 그리고 20년 일한 뒤의 두 달의 휴가. 기차표는 구례까지였다. 그러나 순천이든 곡성이든 저자는 어디든 내려도 상관없었다. 저자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발길 닿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따라서 혹은 그저 기대를 따라서, 혹은 꽃을 따라서….” 어쨌든 구례역에서 내렸나 보다. 섬진강이 이 책의 첫 시작인 것을 보면.


  꽃잎이 날리는 길을 따라 취한 여행길은 어느덧 옛사람의 정취를 느끼는 길을 따라 이어진다. 해남 두륜산과 강진, 다산초당에서, 그리고 고금도 충무사에서 그는 옛사람들의 정취에 그리움 한가득 담아 온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서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며 반성과 다짐이 반복되는 진중한 여행. 역시 사람의 향취가 드리운 여행의 모습이다.  

  다시 바다와 바람이 이어진 길들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바다를 즐기는 법을 배운다.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음미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철썩거리며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갈 때 작은 갯돌들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저쪽 구석에서 먼저 부서진 파도가 내는 소리를 듣고 이어 다시 이곳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파도가 싣고 오는 바다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이다. 바다의 채취는 바람에 실려 온다. 그 속에는 미역, 김, 파래, 톳 같은 것들의 싱싱함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처럼 눈을 감고 누워 손가락을 조금씩 꼬물거려 갯돌들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매끄럽기 한량없다. 조금 거친 것들도 있고, 완벽한 매끄러움으로 손가락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도 있다. 또 있다. 간혹 바다가 만들어주는 소리들에 가벼운 변주를 더해주는 것이다.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갯돌을 누운 상태에서 하늘로 던지는 것이다. 잠시 후 바다에 퐁 빠지는 그 소리는 연주회에서 간혹 들리는 탬버린 소리처럼 경쾌하다. p179


 장환의 일몰, 잊혀지지 않는 천관의 초야, 아름다움이 가득한 천관산을 여행하고 마치 바다와 바람에 몸을 맡긴 듯이 정말로 계획과 목적 없이 떠난다. 섬으로 섬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계획 없다 하여 두려움을 품지 않는다. 목적이 없다 하여 허무를 품지 않는다. 보길도, 완도, 장도, 완도. 남도의 섬에서 그가 마냥 섬이라 고립과 외로움을 얻어 왔겠는가.


줄곧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 누군가 며칠 다녀가고 다시 혼자가 되면 그때는 허전해진다. p74


  여행이란 떠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의 귀환은 어떤 변화와 함께였을까. 그가 잃어버린 자아와 되찾은 자아는 이제 이어갈 삶에서 어떤 형태로 그를 다듬어 가게 될까. 여행은 떠남이고 만남이다. 그것은 장소와 사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생각과 생각들도 포함된다. 익숙했던 관성에 따랐던 것들을 어떤 식으로 떠나보내었을지. 왜 그것들을 보내고 새로운 생각들에 나를 담그게 되었는지, 여행은 그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만든다.

 

한 달 반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버리고자 했던 다섯 가지를 버렸는가? 아침의 면도, 대낮에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 지위에 대한 압박, 월급이 주는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아닌지도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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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사진에 담고 그 속에 함께 풍경이 된 나를 사진 찍어오는 일이 여행의 시작에서 끝을 장식하는 외향이라면 여행에서 느끼는 모든 생각과 느낌들은 내향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외향보다 내향이 가득해서 책을 덮어도 시각적인 사진 한 장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의미의  끈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만 같다.

   


 길을 오래 걷는다면 비움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p6


  사색적인 이 여행의 기록들은 저자의 여행의 이유와 닿아 있을까. 배낭여행이 계속되면 배낭은 간소해질 수밖에 없는 이 당연함 속에 저자의 배낭은 가벼워졌고 그만큼 저자의 가슴은 채워졌다. 십 년의 시간 틈틈이 여행을 다닌 저자는 그곳에서 타인들을 만나며 생생히 살아올 때의 전율이 글들을 쓰게 했다. 현지에서 편지로, 엽서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때의 기록들을 서랍 속 노트에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떠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 그들은 저자에게 사회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일상에 한정되어 갇힌 인식의 벽을 넘는 것, 그것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느낌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담은 책이기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여행에 대한 풍경도 사진도 없다. 오직 그곳에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소제목 역시도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 자신,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p104)"이라 말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오롯한 기억의 틀 안으로 그들을 들이는 것이다.

  여러 모로 “이게 어떻게 여행책이야?”라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정도 장소에 대한 소개도 시간적 순서에도 의하지 않은 이 책이 오히려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더불어, 눈에 현혹되지 않은 채 나 역시 저자와 같이 어떤 것들, 삶에서 이루어지는 면면에 대한 재인식의 시간을 경험한다.

  가령, 스페인의 교역의 중심지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문명의 충돌에 대해 생각한다. 그 대립의 시기와 이유를.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부질없이’라고. 그것은 전쟁으로 이어져 각각 승패를 거듭하며 팔백 년을 이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선 김병화박물관과 마주한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되어온 조선인들이 농업노동인력으로 일했고 김병화는 그 리더였다. 이 곳에서 저자는 우리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가지는 협소한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고 대한민국의 틀 안에서 훈육된 국가주의의 사고의 수준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수많은 침략을 당하는 역사에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다.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된 이 상황에서 더더욱 떠돌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권력자들이 이들에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일상 속에서 사는 데 지장없기에 스스로 의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래서 저자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시공간에서 게으른 관념의 틀을 산산조각 내준 풍경을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사하라의 사막 마을 시와에서 사구 넘어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저자는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절경인 풍경 앞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규준과 척도에 대한 개념을 떠올린다. 또한 이것을 사회와의 연관성과 연결짓는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미담은 늘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환경이 가능성을 구속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대단한 이들’의 뒤편에는 낙오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잉여가 된 이들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환치되고 포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기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들개가 등짝을 맞는 일만큼이나 흔하고 쉽게 일어난다. 작은 사막 마을 안에서 한계를 가지고 살아온 삶은 다재다능하고 리더십도 있는 그가 더 넓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꺾었을지도 모르겠다. p77


  저자가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속에서 이끌어내는 사유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단지 ‘사유를 위한 사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조차 철저하게 생활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관념, 그것은 생활을 이끌고 생활 또한 관념을 이끌고 그렇게 서로가 맞물리기에 중요한 요소이다. 내 삶의 진정을 위한 사유의 여행은 저자의 여행 내내 계속된다. 저자가 소제목으로 기억하는 나라의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를 생각 속으로 이끌어주는 현지인들이다. 그들은 그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삶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며 어떤 때는 저자가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집어주기도 한다.

  저자가 여행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바는 아닐 지 모른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전쟁을 겪었고, 사실 역사에서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전쟁의 상처가 없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그 전쟁의 기억에 대한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전쟁의 대상이 다를 뿐. 같은 경험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자가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으로부터 인지된 폭력의 예감’을 생각한다. 불확실함 속에서 권력의 파괴성을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권력의 주체로 인해 폭력 또한 예측불가이므로 국가에 대해 자발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역사는 살인사건처럼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라면 더욱 그렇다. p262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던가. 저자와 마주친 사람들은 이 역사가 남겨놓은, 권력자들이 지져놓은 모순과 삶의 피폐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그런 존재들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나라의 역사, 사회적 배경을 떠올렸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거듭 생각했다.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나라의 여행객이 찾아오면 자신의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저자의 이 고민의 시간들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더욱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였던가? 사진도 없고 그들의 이름도 가명이 된 것은.


'연대와 동정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나눔과 봉사의 차이‘를 들이민다든가 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성에 경도된 스스로가 낳은 모순이 아닐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행 중이든 일상에서든 어디에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걸과 동정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쌓아온 논리는, 동정은 연대보다 열위에 있으며 계급을 고착시키는 반동적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리에 따라 구걸에 요지부동 무반응이었던 나는 현실의 ’고통‘들을 대면하면서 그것이 관념적으로 이성을 따르는 이의 어쭙잖은 형식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p283~284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기 전에, 어쨌든 생각과 고민은 인식의 확산을 한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를 인지한다는 점에서 대안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관념적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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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욕구는 한국이 싫어서


   올림픽에 각 나라의 선수단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줄기차게 등장하는 피켓을 보며 ‘저긴 어디지?’ 하는 나라들도 등장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가본 곳은? 조금이라도 아는 곳은? 참…….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가능한 시대지만 내가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유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유가 있거나 없거나 세계를 누비는 사람도 많다. 이 세계는 수많은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여행, 다른 곳을 방문하는 일은 무한대로 일어날 일이다. 그 무한대 속에 역시나 증가하는 여행기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 책자가 아니라 순수 여행기, 여행에세이의 특징은 첫째 누가 썼느냐다. 그 글을 쓴 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나 일반인이다. 너무도 당연한 걸. 그럼 일반인의 여행기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아주 특별하게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행기라 분류되는 여행의 에세이가 가진 차별성이 사실 없더라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의 여행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여행이든 동경을 일게 만드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자신의 감상을 가지고 그것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늘 ‘나는 그곳에서 나를 찾았다’, ‘여행은 전환과 변화의 기회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떠나라, 여행을 가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뭐, 이런 이야기를 특별히 감상적인 문체로 글로 쓰고 있다.

   그 기록을 읽는 독자에게는 특정한 곳에 가기 위한 참고용이거나 대리만족을 얻기 위함이거나 유명하다니까, 베스트셀러라니까 하면서 책을 읽지만 가끔 타인의 여행기는 씁쓸한 만족을 남긴다. 여행기란 그래서인지 나의 여행의 기록이 아닌 다음에야 글쓴이들 자신의 힐링이 될 뿐 나의 힐링이 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취향, 스타일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여행스타일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기에 대한 감상 역시도 책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이 있으니까,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도 어떤 글은 와닿고 어떤 글은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스타일을 얘기하니 여행기에 대한 나의 취향은 여행에 대한 소개와 감상보다는 인문학이 가미된 책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곳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떤 여행기는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결심하기 전의 이야기에 솔깃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한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 또한 흐릿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탄생한 이야기일 것이지만 모두 그런 이야기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가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이나 괴테의 여행기록처럼 문학작가들의 여행 기록은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이 작가라는 점 때문인가 생각도 했지만 또한 시대적인 묘미도 있는 듯하다. 최근의 여행이 아니라 그들이 떠났던 시대의 느낌을 아울러 볼 수 있기 때문에. 읽은 여행책 중 좋은 느낌이었던 건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였다. 

작가도 낯선 이름이었고 처음 책을 쓴 사람이었지만 여행에 관한 책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스타일을 내가 선호하나.

 가을이 되었고 축제의 향연이다. 폭죽소리와 음악소리가 땅을 울리며 귀로 전해지는데 같이 마냥 즐겁지가 않다. 여행을 맘속에 품지만 발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또 생각하지만 맘속의 그 열망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유인 듯도 하다. 아주 강렬한 열망으로 여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미미하게 여행을 마음 속에 드리우고 있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떠남”에 대한 욕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떠오르는 책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이 책은 소설책으로 문학적으로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문체며 전개방식이며 말들이 전혀 울림이 없었다. 그저, 책 제목만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스타일과는 역시 달랐다고 말하면 되겠다만 이 책이 그토록 열광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나만큼 한국이 싫은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이 얘기에 공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이 떠남에 대한 욕구는 다른 이유 없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그러니 여행에 대한 욕구와는 다른 종류의 욕구이다. 축제의 음악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도 이탈하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이 난장판인 나라를 뜨고 싶은 마음이랴 오죽하랴. 한국의 뉴스가 들려오지 않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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