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근 며칠 동안 고기 반찬을 안해주신다. 그나마 코끝을 자극하는 메뉴는 기껏해야 생선구이 정도고 잡채를 해준다고 하셔서 기대했더니 부추와 파프리카만 무진장으로 넣은 풀무침이었다. 내 몸은 동물성 단백질을 원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밥상 위에 올라오는 계란후라이는 나에겐 식물성 단백질이나 매한가지다.

"엄마, 고기 먹고 싶어."

"고기는 뭐하러 먹어. 김치하고 나물하고 이런 걸 먹어야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지."

"싫어. 두부된장 말구 소고기 넣은 미역국 끓여줘. 고추장 양념해서 빨갛게 불고기도 해줘."

"넌 텔레비전도 안 보냐. 넌 언제쯤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고 나댕겨볼래. 처녀애가 무슨 월드컵 대표팀마냥 먹으려고 들어."

"오늘 기운 없어서 수업도 제대로 못했어. 막 어지럽고 짜증났어."

"네가 정신력이 무뎌서 그런게지. 그게 고기 탓이냐."

"엄마가 집에서 고기 안해주면 나 회식 가서 정신없이 먹는단 말야."

"에혀... 알았다. 엄마가 불고기 해줄게. 대신 고기 먹으니깐 밥은 조금만 먹어. 알았지?"

나는 어릴적부터 한 번도 말랐던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우람했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남산만한 배를 보고 다들 떡두꺼비같은 아들이거나 쌍둥이일 거라고 예상했단다. 일찍이 식탐도 남달라서 오빠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를 낚아채서 내 입으로 쑤셔넣는 등, 누군가 먹는 것을 보면서 시기질투도 대단히 심했단다. 결국 남달리 덩치가 좋았던 덕분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닭싸움으로 전교를 제패했던 영광의 추억도 있다. 그러나 성장이 빠른 대개의 소녀들이 그렇듯 중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키가 점점 안자라더니 뒷번호에서 중간번호로, 고3 무렵에는 급기야 앞번호까지 점점 작달막해지기 시작했다. 땅 넓은 줄만 알지 하늘 높은 줄은 모른다고 그 때부터 나의 바디라인은 처참하게 망가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3때는 얼굴은 누렇고 헬쓱한데 하체는 스모선수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괴이한 불균형 속에서도 대학 가면 빠진다, 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거짓말만 믿고 의자에 엉덩이를 고정시킨 채 빠다코코*, 사브*, 에이* 등 고열량의 비스켓을 와삭거리며 호리호리한 맵시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망상에 잠기기도 했다.

물론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살이 빠진다거나 하는 신기한 일은 내게 일어나주지 않았다. 노력도 안하고 노력할 생각도 없었으니 당연지사다. 대학생활은 별 스트레스 없이 즐거웠고 기숙사에서 나오는 밥은 어찌나 맛있고 푸짐하던지. 친구들이 점오시간 때문에 불편하지 않느냐고 할 때도 점오시간 어겨서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것 보다는 너희들이랑 안 놀고 말겠다고 말할 정도로 참 입이 즐거운 하루하루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앞에서 넌 참 밥을 맛있게 먹어. 넌 참 밥을 이쁘게 먹어,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너나없이 다이어트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들은 손바닥만한 티셔츠와 발바닥만한 미니스커트를 벽에 걸어두고는 선식과 토마토 등으로 연명하면서 다들 죽음과 맞닿은 허기와 투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난 진짜 많이 먹는데 살이 안 쪄~ 라고 말하는 깜찍함이란. 그렇다고 내가 물만 먹어도 살이 쪄~ 라고 응수한다면 얼마나 가증스럽겠는가. 난 남달리 많이 먹기 때문에 찌는 것이다. 많이 먹는데 살이 안 찌다니. 그럼 먹는 족족 토하냐. 정직하지 못한 체질같으니라구.

이렇듯 자신만만하고 그칠줄 모르는 식탐 때문에 내게 관심이 있었던 한 남자애와 그냥 친구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동기 H가 어느 날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이고 자신과는 아주 절친한 사이인데 턱선이 예리해서 별명이 나이키라고. 머스마처럼 실속 없이 활개치고 다니던 시절이었기에 소개팅은 개뿔 뭔놈의 소개팅이냐고 어색해하는 나에게 H는 점심 무렵에 카페테리아 식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냥 편하게 학교 식당에서 나이키가 사주는 점심 한 끼 먹는 건 괜찮지 않냐면서 말이다. 그냥 내 친구로서 만나봐. 다 같이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너도 발도 넓힐 겸. 그래서 나는 당시에 붙어다니던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정오 무렵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바글바글한 학생들 틈에 H와 나이키가 보였다. 남자애들은 왜케 별명을 잘 짓는거샤. 척 보니 나이키였다. 바나나도 괜찮았을 듯. 아무튼 선하고 순진해 뵈는 눈매에 아직 덜 자란 소년같아 보이던 나이키는 우리에게 안녕, 하고 쑥스럽게 인사를 건네더니만 먹고 싶은 걸 다 시키라고 했다. 오늘은 자기가 쏘겠다고. 얘가 카페라고 우습게 보는구나. H가 나의 식탐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안했던지, 아니면 이런 자리에서 지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을 수 있겠냐고 안심했던 게 분명했다. 첫 만남인데다 다들 주머니 허전한 대학생이었기에 물론 자중하기로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에 있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들은 김밥, 만두, 쫄면같은 양 많고 쌈직한 분식류였는데 나는 걸신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나이키는 말수가 적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그리고 H와 내 친구들은 사범대생 특유의 소심함을 내보이며 나보다 더 어색해하는 중이었다. 열심히 먹다가 넌 왜 잘 안 먹니? 내가 묻자 나이키가 대답했다. 너 정말 잘 먹는다... 그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이라니. 그 말을 듣자마자 놀랍게도 나는 식욕을 반쯤 잃었으나 음식은 이미 거진 다 없어진 상태였다. 그 후로도 H는 이런저런 모임에 나이키를 대동하고 나타났고 나이키는 뭐에 미련이 남았는지 가끔 내 옆자리에 옮겨 앉아서 안녕, 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기도 했으나 그 예리한 턱선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너 정말 잘 먹는다...라고 하던 모습이 떠올라 나는 응, 안녕~ 하고 짧게 인사를 맺곤 했다. 그 이후 그나마 H를 매개로 나이키와는 무덤덤한 친구로만 지내게 되었다. 지금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런데 나이키 이름이 뭐였더라.

대학 때도 여전히 과체중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사회에 나가면 힘들어서 빠질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참으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힘들다고 안 먹나요. 힘든만큼 더 먹지요. 이젠 결혼하면 힘들어서 빠질거라는 하릴없는 소리가 나올 차례인가. 사회에 나오니 주변에선 대개들 그렇게 말한다. 얼굴 진짜 귀여운데 살 조금만 빼봐. 살 조금만 빼서 귀여운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랑 짧은 치마 입으면 정말 깜찍할 거야. 피부 참 곱네. 살만 빼면 되겠어. 물론 4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후덕한 이 모습 그대로 각광받고 있으나 내 또래의 2,30대 층에서야 어디 그런가. 나야 토실토실한 나의 몸뚱아리에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왔다고는 하나, 낭창낭창한 바디라인에 길들여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구쓰나미 정도로 버겁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현실은 이토록 야멸찬 것이다. 그까이꺼 남은 남이지, 맛있게 먹고 기분 좋고 건강하게 살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옷을 사러 갔을 때 모조리 아동복 사이즈로 나오는 옷을 꿰어 입어보다가 한숨 쉬며 돌아설 때나 선생님은 다이어트 안하세요? 나중에 베트남 가서 남자 사오실 거죠? 라고 아이들이 들이댈 때는 이렇듯 자기관리 하나 못하고 식탐에 휘둘리면서 뭔놈의 교육인가 싶어서 마구마구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기반찬 타령을 하고 있는 나. 도무지 식탐의 굴레를 벗어날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요즘은 그나마 먹는만큼 움직이고 있으니 체중이 더 불어나는 일은 없다지만 이제 곧 방학 아닌가. 게다가 여름은 내가 좋아라 하는 각종 탕의 계절이 아닌가.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등등. 먹는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싫어지지 않는다. 내일은 고기 먹으러 간다. 고기를 먹으려고 일부러 외출을 계획했다. 난 살 빼긴 글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6-06-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갑자기 어제 유학시험 인터뷰 준비를 하던 3학년 애의 말이 생각나서...자기 소개를 준비하는데, '친구들이 너보고 뭐라고 하냐?'고 물어봤더니 '후덕하다고 그래요'라고 대답하던 그 녀석의 동글동글 동안이 생각나서리...ㅍㅎㅎㅎ

깐따삐야 2006-06-0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ㅡㅡ;

마태우스 2006-06-0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자고 사는 건데, 남들 시선의식해서 식탐을 절제하는 게 과연...으음... 원하는 거 드시고 운동을 해보심 어떨까요. 글구 귀여운 얼굴이라면 굳이 살을 빼지 않는다 해도 남자는 몰려올 거로 사료됩니다. 20대 초반을 지나면 귀염성이 키 포인트죠

깐따삐야 2006-06-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예쁘다고 말하기 뭣하면 귀엽다고 말하는 건 이미 대중화된 위로 멘트라는 걸 아시면서 그러시나요. 그리고 뭐가 몰려온다구요? ㅋㅋ
 



엄마가 봄 동안 뜯은 쑥으로 만든 쑥갠떡. 원래 쑥개떡~ 쑥개떡~ 했는데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쑥갠떡'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송편처럼 속에 팥고물을 넣기도 하고 불린 서리태를 박아서 찌기도 한다. 달지도 않고 쫀득쫀득 참 맛있다. 몸에 좋으니 약처럼 먹으라는 엄마 말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6-05-3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먹고파요.

Mephistopheles 2006-05-3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소박하지만 은근히 입에 자꾸 들어가는 구수한 매력이 있는 건데....^^

깐따삐야 2006-06-0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그림의 떡만 올려놓아 죄송해요. ^^

메피스토님, 그렇죠? 정말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 간식이에요.

치유 2006-06-0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쑥으로 송편만 잘 만들어 줍니다..쑥향이 참 좋아요..엄마 정성 땜문에 더 맛있었겠어요..

깐따삐야 2006-06-0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참 좋은 간식이지요? 그렇지만 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빻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지요. 다이어트식으로 해주시는 건데 엄마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니 죄송할 따름이지요. 히히. ^^

치유 2006-06-0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힘 안들어요//방앗간에 가지고 가면 다 알아서 해 주시던걸요??반죽하기가 힘들던데요..저는....그런데 먹기는 너무 쉬워요..후후후~!
 
김점선 스타일 - 전2권 세트
김점선 외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책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김점선 화가를 처음 보았다.

성별 구분이 모호한 외모에 느릿하고 어눌한 말투로 툭툭 내뱉는 솔직한 언사에 호기심이 일어 <나, 김점선>이란 책을 읽었고 그 뒤로는 그 사람을 그냥 무작정 좋아하게 되었다.

유행은 넘치지만 진짜 스타일이 부재하는 요즘, 그만큼 매력적이고도 희귀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특정한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김점선 화가만의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글과 그림 모두 불필요한 장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다.

자잘한 설명도, 궁색한 변명도 없다.

그만큼 솔직하고 떳떳하고 천진하다.

<김점선 스타일>은 김점선 화가가 만났던 사람들, 김점선 화가를 만났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엮은 유쾌하고 담백한 추억의 앨범과도 같다.

사람을 저절로 기분좋게 만드는 '웃는 말'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증정품으로 받은 컵받침 네 개는 본래의 용도로 쓰지 않고 책장에 얌전하게 세워두고는 짬이 날 때마다 바라보며 하루를 돌아보곤 한다.

뭔가 ~ 체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는지, 뭔가 ~ 척 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진 않았는가 말이다.

전 지구를 덮을만큼 숱한 그림을 그리고,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를 구하려 했을만큼 일과 사랑에 있어 자신을 통째로 걸었던 김점선 화가의 열정을 떠올릴 때마다 웃는 말, 날고 있는 오리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내면에 그 무엇도 따라잡지 못할 강력한 에너지를 장전한 자연의 전사들처럼 용기 있고 비장하게 보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일레스 2006-05-3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크릿 가든 노래 제목이네요? 히힛. ^^
깐따삐야님 서재 댓글로는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잘 부탁드려요~ :)

깐따삐야 2006-05-3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반갑습니다. 곧 서재에 구경 가야겠네요~ ^^
 
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2/3 정도 독서를 한 다음 이 책을 읽고 어떻게 서평을 쓰나, 하는 마음에 쉰을 훌쩍 넘기신 엄마께 책을 권해드렸다.

엄마는 오후 내내 진지하게 독서에 몰입하신 다음 "너는 이 책 읽지 마라."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한 생명의 신성한 탄생과정부터 장난처럼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너무나 불온할 뿐더러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하셨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신사적이지만 언제든 섬 밖으로, 룰 너머로 튀어나가고 싶은 일본 사람들의 감춰둔 욕망 해소를 위해서 쓰여진 잡담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렇게 마구 불쾌했던 건가?"

"번역한 사람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소설처럼 옮기느라 애 많이 썼겠더라."

엄마의 혹평에 대부분 공감하며 나도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 다음에는? 라는 질문에 이 책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아쿠마 카즈히도라는 다분히 유아적이고 엽기적인 존재를 이야기 전면에 내세워 작가가 홀로 이런저런 발칙한 장난을 치면서 억눌린 무언가를 배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이따금씩 조각난 파편처럼 의식 속을 떠다니곤 하는 유치한 사고, 지독하게 무료하거나 사람들로부터 환멸을 느낄 때마다 머릿속 한 귀퉁이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엽기적인 상상, 그것들을 펼쳐놓는 데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

배설을 통한 자기만족과 자기위안이 필요하다면 일기를 쓰거나 수기를 쓰면 된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배설을 추구하긴 해도 작가가 여과 없이 쏟아놓은 적나라한 배설물을 보고 싶어하진 않는다.

소설은 보편성을 추구함으로써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장르다.

추한 가운데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고 독특한 가운데에도 진실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무엇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경계 없이 흘러다니는 지나친 자유로움은 오직 혐오감만 준다는 깨달음 하나가 내가 건진 것의 전부다.

이렇듯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책이었으나 애쓴 번역을 고려하여 별 두 개를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금 잘 삐치시고 욱하시기는 하지만 제가 겪어본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선생님에 대한 첫인상도 그랬고 그 인간적인 모습이 선생님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중학교에서의 기억을 좋게 안고 가고 싶네요.   - E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선생님이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항상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솔직한 면도 상당히 마음에 들고, 또 다른 선생님들과도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 J

1학년 때에는 무척이나 힘이 드셨죠? 철없는 1학년이 3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힘드신지... 3학년이 되어 저는 더 힘이 듭니다. 애들이 선생님한테 말장난 하는 것은 아마도 관심받고 싶어서일꺼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건 싫어요. 그래도 너그럽게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선생님 다리 무다리. ㅋ 그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뭐라고 하지 마시길.  - K

쌤한테 00가 까부는데요. 좋아서 그런거래요. 00가 원래 남한테 감정 표현을 이런 식으로 해요. 그러니까 이해해 주세요. 쌤, 앞으로도 더 이뻐지시구요!  - E  

아, 편지 쓰니까 쌤 생각나요. 우리 참 많이 이해해 주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요. 내가 왜 그랬나? 말 좀 잘 들을걸 하고 후회해요. 쌤, 지금 애들은 안 힘드세요? 저희보단 낫죠? 그럼 다행임~ 항상 웃는 선생님이 저는 참 기억에 남네요.  - 졸업생 T

----------------------------------------------------------------------------*****

지난주에 스승의 날이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편지들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 편지를 받았을 땐 남자 아이들이 편지를 '썼다는' 것에 놀랐고 편지를 읽고 나서는 철없는 말썽쟁이들로만 보였던 아이들이 마음 속으로 이만치 의젓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뜻밖의 마음의 호사 때문이었을까. 요며칠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나를 솔직하고 인간적인 선생님으로 너그럽게 보아줄 정도로 그새 그렇게 훌쩍 커버린 것인지. 내딴엔 허구언날 버럭버럭 화만 내고 이래저래 다그친 기억 뿐인데 다정하고 잘 웃는 선생님으로 좋게 기억해 주고, 다소 버릇없이 보이는 친구들을 이해해 주라고 내게 조언을 할만큼, 아이들 마음 속엔 저마다 듬직하고 의젓한 어른 하나씩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저만치 속 깊은 아이들 앞에서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열을 올리던 나였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하는가 보다.

체육대회를 하루 앞두고 각종 예선경기가 치러졌던 오늘도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다독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몇몇 경기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아이들 저마다의 실망도 컸을법한데 "선생님, 딴반 애들이 뭐라고 해도 기죽으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중간고사는 일등 했잖아요." , "선생님, 우리반은 개개인만 놓고 보면 다들 뛰어난데 단결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담엔 더 잘해요.", "선생님, 씨름만큼은 우리가 백전무패에요. 내일 기대하세요." 선생인 나야 아이들을 향해 전체적으로 '수고했다'  한 마디 해 줄 뿐이지만 아이들은 그 머릿수만큼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니 나는 너무나 복이 많은 셈이다. 꼭 우승을 못하면 어떠랴. 즐겁게 운동하고 뛰어 놀며 아무데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그 날을 즐기면 되는 것이리라. 내일은 우리반 아이들 모두에게 맛있는 햄버거와 음료수를 쏴야겠다. 배불리 먹고 즐겁게 놀자.

모든 일이 대개 그러하듯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늘 좋기만 한 것도, 늘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를 싫어하는 아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관자놀이가 미칠듯이 아플 정도로 아이들 문제로 진이 빠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아이들 덕분에 정말로 기분이 유쾌해지고 따듯해져서 행복한 걸음걸이로 귀가하는 날도 있다. 나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고 학교란 곳 또한 아직도 눈물이나 불화보다는 웃음과 화목이 더 지배적인 곳이라고 믿는다. 모든 길은 한 가지 루트로만 통하지 않는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이들조차 선생님의 어설픔을 솔직함으로 덮어주고 이해하며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하는데, 다 큰 어른들이 서로 한 가지 잣대만을 들이대며 싸운대선 말이 되겠는가. 모름지기 사람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한 손가락이 남을 가리킬 때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던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주지 못한 나는 한 번 찡그리고 싶을 때 두 번 웃고, 한 번 잔소리 하고 싶을 때 열 번 칭찬하는 것으로 부족하게나마 내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작해야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를 넣어주고 있지만 아이들은 나를 하루하루 더 나은 인간으로 키운다. 정작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다. 나의 사소한 실수로 그들의 맑은 눈에 재를 뿌릴까 늘 두렵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6-05-2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좋네요.

BRINY 2006-05-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반 애들이 뭐라고 해도 기죽으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중간고사는 일등 했잖아요 ->Oh~ 저랑 같은 경우시군요! 어제가 체육대회였는데, 오늘1교시 수업 들어간 반이 줄다리기에서 저희를 이긴 반이었어요. 우리보고 몇등했냐고 물어보길래, '우리는 중간고사 잘봤고, 씨름에서 3등상 받았으니까 만족해'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그 반 애들이 '우리가 중간고사 2등인데~'그러길래 '우리가 1등이거든?'했더니 조용~해지더라구요. 하하!

깐따삐야 2006-05-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좋지요. ^^

BRINY님, 저도 경기에서 진 걸 가지고 약을 바짝바짝 올리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겠니? 제 유치함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

마태우스 2006-05-2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욱하는 성격이신가봐요^^ 지금 제 네 손가락도 깐따삐야님을 가리키고 있어요 ^^ 홧팅. 근데 제 제자들은 왜 편지를 한통도 안쓸까요...-.-

깐따삐야 2006-05-2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쿠쿠. 제가 좀 욱하는 성격이긴 합니다. 마냥 하하호호 하다가도 한 번 화가 나면 머리 꼭지가 홱 돌아버려서 덜 되먹은 인간이란 걸 곧잘 표내곤 하지요. 고치려곤 하는데 성격이란 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서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썼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었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쓸 기회도 없었고 쓰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머리가 커질수록 자기만의 세계가 점점 더 확장되면서 선생님이란 존재가 가까이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