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길, 헌책방에 들렀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비아트릭스 포터의 그림 이야기책 시리즈를 발견했다. 동행했던 열두살배기 외사촌은 눈을 반짝이더니 푸른 자켓을 입은 토끼가 그려진 <진저와 피클 이야기>를 집어들었다. 영화에 나왔던 그림책 속의 귀여운 주인공들이 첫번째 속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플롭시 버니즈, 피터 래비트, 제미마 푸들 덕... 동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기쁨에 겨워하던 포터(르네 젤위거 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1900년대 초, 칙칙하고도 점잖은 의상 속에 가까스로 우겨넣은 듯한 르네 젤위거와 이완 맥그리거는 어쩐지 불편하고도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고스란히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옮겨오고 싶은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하면서도 깜찍한 그림 속 주인공들, 앙증맞게 꿈틀대는 동화적 상상력이 알맞게 어우러져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 노만 워른(이완 맥그리거 분)의 죽음 이후부터 다소 밋밋하게 흘러가던 후반부와 바로 뒷줄에서 거의 에로영화를 찍고 있던 커플의 소음이 옥의 티라면 옥의 티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상상력과 그림에 대한 재능을 갖고 있었던 베아트릭스 포터는 동물 케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책을 출판하려 하지만 1902년의 영국 사회는 그녀를 결혼하지 않고 책만 쓰는 독특한 노처녀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만 워른이라는 편집자가 포터의 재능과 그림의 매력을 알아보고 그녀의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두 사람은 책이 나오기까지 함께 일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장사치와는 결혼시킬 수 없다는 포터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포터의 부모는 포터에게 여름 동안 런던을 떠나 있을 것을 제안하고 포터는 노만과의 사랑을 믿고 훗날을 기약한 후 잠시 헤어져 있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있던 사이, 노만은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고 그 충격으로 포터는 잠시 방황하지만 노만을 통해 친구가 되었던 밀리(에밀리 왓슨 분)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포터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 한적한 시골 농장에 머무르기로 하고 자신이 그림책을 팔아 벌어들인 인지세로 개발 위기에 놓여있던 땅을 사들이며, 그 과정 중에 만난 윌리엄 힐리스(로이드 오웬 분)와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는 후일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삼십대 노처녀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넘치도록 보여주었던 르네 젤위거는 이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사랑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다정다감하면서도 자의식이 강한, 그 때 그 시절에 놓아두기엔 너무 아깝다 싶은, 매력적인 동화작가의 모습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살짝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수더분한 미소는 여전하다 못해 질릴 지경이었지만 자신이 그려놓은 토끼나 개구리와 넉살 좋게 대화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르네 젤위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영원한 <영 아담>일 줄 알았던 이완 맥그리거의 출현에는 왜 이런 도발을 하는 걸까, 갸우뚱했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사실 의문이 풀릴 턱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그를 본 것은 반가웠다. 그래도 이완 맥그리거는 조니 뎁처럼 점점 더 다양한 얼굴로 등장하여 관객을 놀래키거나 즐겁게 하지 말고 계속 눈과 허리와 다리에 힘주고 살았으면 좋겠다. <트레인스포팅>에서처럼 늘상 혈기왕성할 순 없더라도 토끼 그림을 보면서 눈에 별까지 띄우면서 아름답다고 감탄한다든지, 반들반들 가지런히 빗어넘긴 머리가 왠말이며 그마저 비에 다 젖은 채로 나타나서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1902년의 영국이나 지금이나 가정주부 이상, 또는 그 이외의 꿈을 꾸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우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남성들의 시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있고 그것이 어느만치 현실이라고 인정해 오던 바였는데 밀리와 포터의 신실한 우정은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팽배한 자존심이 아니라 넉넉한 자의식을 지닌 두 여성의 대화와 우정은 따스하고도 멋스러웠다. 우연처럼, 서점에서는 보봐르와 샤르트르를, 헌책방에서는 브레히트와 루트 베를라우의 이야기를 읽었다. 연인이었지만 그들의 사랑도 동지로서, 친구로서, 우정의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나도 나이를 먹은걸까. 일시적인 냉소일까. 넘칠 듯 아슬아슬한 열정은 어쩐지 불안해서 더 흥미로운 장난같다. 동지애에서 싹튼 듬직한 우정을 포터와 밀리, 포터와 노만, 포터와 힐리스에게서 읽었고 성장을 위한 자양분과도 같은 그 사랑들이, 예전에는 다소 싱겁게만 보였던 그 관계들이, 이상향이라도 된 듯 벅차게 다가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01-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이 이 영화를 보여달라고 하길래 잠깐 검색해봤는데....
생각보다 러닝타임이 짧더라구요...자를 내용의 영화는 아니므로..
워낙 짧게 만들어진 영화이구나 싶었습니다.^^

깐따삐야 2007-01-2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짧은 영화에요. 스토리도 평범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심심해지는. 그래도 재미있었고 이완 맥그리거를 봐서 좋았답니다. ^^
 

#

  Loving students means giving them the ability to hurt you... it is part of the burden of being a good teacher... When I feel hurt by them that I know I'm suffering for good reasons.

  어찌어찌하여 흘러들어간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귀다. 교무실 책상 앞에 붙여놓고 오며가며 새겨야 할. 새학기에 난 다른 곳에 있겠지만. 돌아와서라도 잊지 말아야 할. 좀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아쉬움도 드는.

 

#

  체중이 좀더 줄어서 바지들을 수선했다. 저주받은 하체에도 축복이 오려나. 먹음직스런 음식을 보면 군침은 도는데 식욕이 예전같지 않다. 식욕 뿐인가, 했더니 예전같지 않은 게 한둘이 아니구나. 입체감을 잃은 욕망들. 머리에 웨이브라도 줘야 할까.

 

#  

  진열장 오른쪽에 놓아두었던 동자승이 왼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 놓았는데 그 다음 날 보니 또 다시 왼쪽으로 옮겨져 있고. 이상하다, 생각하고 옆으로 조금 틀어서 오른쪽으로 옮겼는데 오후에 다시 보니 왼쪽으로 다시 옮겨져 있었다. 원인은 소리 없이 강한 아빠의 고집. You Win. 먼지 닦을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는 정리벽만 고집하는 건 아빠를 빼다박았다는 엄마의 지적. 더 정확히 말해보면 쓸데없는 걸 좋아하는 게 닮은거지. 아빠의 휴가와 나의 방학이 겹친 요즘. 엄마는 가출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셨다. 우리 부녀는 효용이니 실용이니 하는 말들과 언제쯤 화해할 수 있을까.

 

#

  '직녀에게'란 노래가 있다. 중학생이었을 때, 마방진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첫 시간에 마방진이라는 숫자게임을 설명해 주었고 마방진이라는 게임 이름은 선생님의 지루하고 기다란 얼굴과 잘 어울렸다. 보다보다 너희들처럼 공부 안하는 애들은 처음 봤다며 맞는 말만 하더니 어느 날 수업을 하다 말고 굵다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저렇게 청승맞은 노래를 저렇게 진지하게 부르다니, 우리는 총각선생님의 갑작스런 도발 앞에서 키득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틈만 나면 조용히 잠을 청하는 내게 특혜받았느냐 어쩌느냐 하면서 상처를 주었던 선생님. 당신도 밤새 라디오 듣고 엽서 쓰느라 고심하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척 해봐. 안 졸린가, 라고 말하진 못했고 그냥 묵묵히 미워하기만 했었다. 얼굴만 길면 다야, 그까짓 수업 안들어도 백점이다. 그만치 재수없던 여학생이 교사가 되었다는 걸 알면 인과응보란 말을 떠올릴까, 개과천선이란 말을 떠올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직녀에게'란 노래가 가끔 당길 때가 있다. 더욱이 누군가 노래방에서 이 노래라도 부르는 날이면 잠시나마 마음이 방긋, 웃는 것도 같다.  

 

#

  고향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어릴적에 헝겁을 오려서 인형 옷을 예쁘게도 만들던 언니는 이젠 옷가게를 하고 있다. 그 때 우리는 <캔디 캔디>라는 책을 좋아했다. 원래는 말랐었는데 보약을 많이 먹어 뚱뚱해졌다고 주장하던 언니의 친구는 언니에게 시리즈로 나온 그 책들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나는 언니에게서 그 책을 다시 빌려보는 식이었다. 드디어 언니가 마지막 권을 빌려온 날,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언니에게 그 책을 내가 먼저 봐야겠다고 했다. 언니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는 서로 한 마디도 안하고 함께 버스에 올랐고 집으로 오는 내내 침묵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토라진 채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언니도 동생과 함께 총총 사라졌다. 풀리지 않은 마음으로 꽁해 있던 오후, 문득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는 순간 너 먼저 읽어, 라는 말과 함께 급하게 전화가 끊겼다.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그 길로 언니네 집으로 달려가서 <캔디 캔디>를 가져와서는 별로 재미없는 캔디의 편지들을 읽으며 먼저 읽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을 후회했다. 언니는 성씨만 다를 뿐 나와 이름이 같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착했다. 진심으로 행복하길 빈다.

 

#

  오빠는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는 엄마한테 말하길, 엄마, 나 두부 넣고 끓인 김치국 먹고 싶어...란다. 언니도 옆에 있었을텐데 한 대 맞지나 않았을런지. 흔하다 못해 뻔하기까지 한 두부와 김치라니, 언니는 오빠의 만행에 두부처럼 하얘졌거나 김치국물처럼 붉어졌거나. 아니면 이젠 아예 그러려니 하거나. 결혼한 오빠가 찾는 음식들은 희한하다. 지극히 평범하다는 의미로 희한하다. 김치찜, 고사리나물, 계란말이, 김밥, 깻잎장아찌, 멸치조림... 좀더 나아가봤자 소면이 아닌 당면을 넣은 갈비탕 정도. 회식자리에서, 또는 출장을 다니며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을텐데도 언제나 전화기 너머로 칭얼대는 메뉴들은 간소하기 짝이 없다. 오빠의 투정을 어쩐지 이해할 것 같긴 한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입장에서 그런 것일 뿐,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 짧은 남자는 질색이다.

 

#

  왜 깨닫기 위해선 아파야만 할까. 진부한 물음. 그럼에도 간혹 던질 수 밖에 없는 물음. 책을 읽을 시간에 좀더 사람들과 부대껴야 했을까. 과연 책도 읽고 사람들과 부대꼈던 이들은 똑고른 나이테를 지닌 채 단단하게 성숙해 있을까.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연애를 걸고 더 많이 좌절했다면. 하지만 그렇듯 파란만장했던 이들도 결국엔 재테크와 다이어트와 아이들의 조기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투적인 생활인이 되고 말텐데. 왜 깨닫기 위해선 아파야만 할까. 진부한 이 물음이 꽤 신선하게 들릴 날이 올지도 모르고 이런 싱거운 생각을 하고 있다니 겨울밤은 너무 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07-01-2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깨닫기 위해선 아파야만 할까. 그냥, 아프지 않고, 돌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깐따삐야 2007-01-2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개츠비 2007-01-2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때까지 깨달아야 하는게 사는건가 봅니다. 그러나 뭐든 많이 해보는게 중요한거같습니다. 연애도 공부도 ...마니마니..그래야 후회가 없는것도 같습니다.

깐따삐야 2007-01-2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저란 인간은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까요?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많이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후회로 점철된 삶... 에고. 사람은 생긴대로 살고, 성격이 팔자 만든다는 말이 맞는지도 몰라요.
 
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일찍 세상에 통달했어요. 사랑, 회한, 연민, 비겁, 비굴... 언제였더라. 서른넷이었어요. 그때 천진난만을 버렸죠. 특별한 계기? 없어요. 졸업한 느낌으로 평생 살았어요.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 순간순간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다 알지요. 그러나 스스로는 큰 재미가 없었어요. 사람을 만나도 흥분, 기대, 호기심, 이런 게 없었어요. 사람이라는 것의 한계를 깨우쳤달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 했어요."

  권수가 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던 책들을 정리했다. 왜 샀을까 싶은 것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것까지 분량이 상당했다. 난 왜 이만큼을 읽고도 이 정도일까. 지나온 날들 중에 내곁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은 것은 책들 뿐이구나. 책들을 모아 가지런히 줄을 세우면 세울수록 괜시리 마음이 산란했다. 정리 도중 학부 때 쓰던 화일에서 신문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새 드라마를 홍보하는 작가 김수현의 인터뷰가 실린 글이었다. 그 페이지를 왜 오려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긴 인터뷰 기사 중에 김수현의 저 쓸쓸한 멘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뼈가 저릴 지경까지는 아니어도 가슴이 저릴 만큼은 느껴오던 바였다. 그리고 그 삼 년 전의 신문기사를 다시 읽으며 근래에 만났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떠올렸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나는 어느 날 바닷가에 갔다가 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와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를 선생님이라 칭하고 자주 왕래를 하며 마음을 열어보이지만 어쩐지 선생님은 인간과 세상을 향해 굳게 마음을 닫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간 나는 선생님의 유서를 받게 되고 그로써 선생님이 평생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알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고독한 생활을 하던 선생님은 한 친구를 얻게 되고 그의 거절에도 불구,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베풀었던 선의는 비극의 시초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신이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던 하숙집 딸을 그 친구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친구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결국 선생님은 고민 끝에 친구를 배반한 채 하숙집 딸에게 먼저 청혼을 하게 되고 친구는 자살하고 만다. 비록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긴 했으나 그 모든 과정을 끝까지 비밀로 감춘 채 선생님은 끊임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고통과 회한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광수나 나도향의 근대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이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나에게 보낸 유서 부분이었다. 끝끝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 무섭도록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의 속내야 다 거기서 거기듯 차마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던 내 안의 허욕과 비겁을 맑은 거울 앞에 그대로 드러낸 듯한 기분이었다. 오로지 내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앞선 적어도 너의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술, 순간적인 욕심과 아집으로 인해 무참히 퇴색되어버리고 마는 의리, 스스로 고통을 받을지언정 가까운 이에게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성벽을 두르고 사는 외로움, 참회와 참회를 거듭하지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영원히 비밀이 지켜지길 바라는 당부와 함께 자살을 택하고 마는 무거운 자존심... 얼굴 들고 뻔뻔하게 살만한 용기가 없음에도 때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돌이키지 못할 수치스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실수에 남몰래 괴로워하기도 한다. 몇몇의 영리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라도 망각하기 위해 애쓰고 다시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테지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회한과 자괴감으로 끊임없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용기가 없어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약해서, 그저 순간적으로, 원래 비겁해서, 이유야 얼마나 많겠는가. <마음>의 선생님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행위의 이유들과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 선택에서 파생되었던 고통을 두려울 만큼 진실한 목소리로 털어내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신하거나 배신당하고 자기 자신조차 배신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한 번 쯤 누구나 신뢰가 무너지고 의리가 바닥을 치는 고통을 겪는다. 상처 받지 않으려면 아예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일테니까. 나중의 삶 속에서 꿋꿋이 자존심을 지킨다 해도 슬픈 일 다음의 자존심이라봤자 인생을 달통한 듯한 자의 고독한 포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나는 누군가보다는 천진난만할 것이고 누군가보다는 영악하겠지. 타고난 천성이나 지나온 경험의 질량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기를 지나 인생을 졸업한 듯한 느낌으로 산다는 것은 편안하지만 쓸쓸한 일이다. 인생 별 거 있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거지, 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만나면 그 담담한 포즈가 부러우면서도 나 역시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것, 삶은 끝없는 방황이요, 열광이라고 믿었던 치기어린 시기를 이제는 지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저만치 정신의 안식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실망하고 슬픈 일을 많이 겪었을까, 하는 두려움 등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지곤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을 벼랑 끝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수레바퀴일 때가 더 많다. 죽을 힘으로 살아라, 목숨 중한 걸 알아야지, 하는 말들은 그야말로 속편한 여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고비를 넘긴 후 고즈넉하게 찾아드는 안식의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온다. 범사에 충실하고 감사하라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얻기 위해 그렇듯 타인과 스스로를 미워하고 괴롭히며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고 하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1-2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단순치 않은 것 같습니다.
주변을 간명하게 하는 것도 괜찮지요. 혼자서 잘 논다면요.. 하하


깐따삐야 2007-01-2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단순치 않은 것 같은데 결국에는 누구나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개츠비 2007-01-2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고.. 이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생각해보면 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또 누군가를 상처입히며 살아왔거든요..

깐따삐야 2007-01-2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가 없는가 봐요. 좀 덜 긁어대고 덜 긁히며 살고 싶은 마음은 자나깨나 굴뚝같은데, 마음을 앞서는 주둥이와 몸뚱이가 문제라지요.

프레이야 2007-02-0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좋은 책 같아요.

깐따삐야 2007-02-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감사합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쓴 리뷰인데 말이죠. ^^

마늘빵 2007-02-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저도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

깐따삐야 2007-02-0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고맙습니다. ^^

글샘 2007-02-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의 수레바퀴 하나, 잘 읽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깐따삐야 2007-02-0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감사합니다. 저도 글샘님 서재에서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비연 2007-02-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축하드려요^^

깐따삐야 2007-02-1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고맙습니다. ^^
 

  어제 오후 대학 동기 K가 집에 왔었다. 방학이라고 띵가띵가 쉬고 있는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에 있는 그녀는 보충수업을 하느라 내내 바쁜 모양이었다. K는 엄마와 이야길 많이 했다. 요즘 연락하며 지내는 한 남자에 대해 엄마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다 괜찮고 어디 하나 흠잡을만한 데는 없는데 가슴이 뛰질 않노라고. 엄마 말씀, 같이 살 남자는 그저 편한 게 최고다. 그리고 넌 누굴 만나도 가슴이 뛰긴 어려운 사람 아니냐. 쉽게 수긍하며 이놈의 가슴이 당최 뜨뜻해져 본 적이 없고 뜨뜻해질 생각조차 안한다는 K. 왼쪽 가슴 속에 개구리라도 들어앉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려대는 나와는 달리 K는 사실 그랬다. 언제나 차고 도도하고 담대했다.

  시내에 나와 엉터리같은 영화를 한 편 보고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행사에 쓰라고 보내준 돈의 액수를 후배가 잘못 정산해 올려놓았는데 아직까지 정정을 안해서 좀 창피하다고 하자 K는 아무 말 하지 말고 입금시켰던 영수증 스캔 떠서 보내줘, 라고 말했다. 착오니 실수니 등등의 말을 했더니 돈의 액수가 그대로 제 통장에 찍혔을텐데 무슨 얼어죽을 놈의 착오고 실수냐면서 제발 상대방을 헤아리려고 들지 말고 개싸가지스러운 현상 그 자체에만 주목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돈 떼어먹고도 떼어먹었다고 말하는 놈 못 봤다면서 그것도 이미 졸업한 선배가 보내준 돈을 확인 절차도 없이 그 따위로 처리한다는 것은 문제성이 있다고 했다. 마치 엄마처럼 K는 나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넌 걔를 이해하려고 하니. 이해해주지 마. 사실 그 말은 대학 시절부터 K로부터 즐겨 듣던 말이었다.

  K는 나처럼 자잘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객관적일 수 있었고 그런 면에서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물론 그녀는 나의 어리석었던 연애사를 보고 들으며 이런 말 해서 좀 너에겐 미안하지만 난 그래도 항상 정열적인 네가 부럽다, 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그 말이 어느만치 진심이라는 것도 이해했지만 나는 언제나 눈빛과 태도에서 감히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냉기와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그녀를 닮고 싶었다. 내가 어느 순간 활짝 피었다 시들었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야생화라면 그녀는 토파즈로 만든 차고 푸르고 단단한 돌꽃 같았다. K는 장난처럼 종종 내가 남자였으면 너를 기꺼이 거둘텐데, 라고 말하곤 했다. 난 진심으로 K처럼 야무지고 단단한 남자가 이렇듯 나약하고 변덕스럽고 다정도 병인 나를 좀 거두어줬으면 했다.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 질긴 존경심으로 그를 위해 노력할텐데, 생각하곤 했다.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 익숙하지 않은 도로로 접어들자 갑자기 헷갈려하며 불안해하는 날 보며 운전을 하던 K는 알아서 집으로 뫼실테니 걱정 말라며 널 어떡하면 좋으냐, 라고 했더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너무 보고싶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걸 참고 있었노라고 고백해 놓은 참이었다. 핼쑥해진 내 모습에 K는 막연히 감을 잡고 있었고 나는 추스릴 새도 없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버렸다. 바닥을 봐야만 정신이 드는 나이기에, 정신이 들어도 원망의 화살 하나 쏠 줄 모르고 도리어 화살촉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 스스로의 가슴에 대고 겨냥하는 나란 사람을 알기 때문에, K는 차분한 충고 끝에는 늘 씁쓸한 한 마디를 남기곤 했다. 결국 넌 내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알고 있어.

  사주를 봤는데 말이지. 내 사주에는 갈고리가 하나 있대. 결국 무엇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거지. 내게 상처낸 것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갈고리로 잡아당겨서 당한 만큼 갚아주고 넘어가야만 되는 사람 있잖아. 내가 그런 사람이래. 사주에 갈고리가 있다니, 사주로 그런 것까지 읽을 수 있다니 참 재밌어.

  그 말 끝에 K의 미소는 의미심장하고도 무서웠다. 가슴에 옹이지는 것이 두려워 결국엔 무엇이든 다 좋았노라, 하고 미화시키고 넘어가야만 편히 숨을 쉬는 나에 비해 갈고리를 지녔다는 K는 강하고 독한 사람이었다. K는 예의 없이 다가왔던 것들은 다시 예의 없이 떠나가기 마련이라며 그런 무례한 것들은 너도 무례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머리로는 그렇지,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그래도 난 그 사람이 보고싶다, 고 말하는 내 복잡한 눈빛을 K는 침착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넌 다른 사람들한테는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 자신한테도 좋은 사람이 되어봐. 대학 시절 무슨 일인가로 징징거리던 나를 토닥이며 K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도 갈고리를 하나 지녔으면 싶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네가 그랬단 말이지, 라고 옹이를 품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K는 하나의 경험을 통과하면 열을 배운다. 그녀는 결코 징징대지 않고 받은대로 돌려주거나 스스로를 훌쩍 키워버린다. 돌처럼 딱딱한 심장을 지녔을지 모르지만 오래오래 식지 않는 따듯한 돌이다. 나는 항상 붉은 피로 출렁이지만 곧바로 까맣게 죽어버린다. 그녀는 내 정열이 부럽다 했지만 나는 K가 나보다 훨씬 더 원대한 사랑을 할 것이라는 걸 안다. 아무 때나 심장을 내었다 들였다 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딱 한 번 그녀의 갈고리로 뜨거운 심장을 끌어내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날이 올 것 같다. 사랑보다 더 진한 존경심으로 나는 K가 좋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01-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고리라는게 한번 걸리면 잘 안빠지는데...^^
소울 메이트신가 봐요???

마늘빵 2007-01-1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은 차분하게 자기를 들여다보는 듯 해서 좋습니다.

치니 2007-01-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나는 그럼 어떤 쪽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비로그인 2007-01-1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장을 걸어내는 갈고리라..
음.. 가슴이 뜨끔합니다. 하하


깐따삐야 2007-01-1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갈고리란 말, 올가미 등등의 말처럼 무섭고 좀 그랬습니다. 소울메이트까진 아니고 그냥 오래 알며 지내다보니 서로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차분이라니 내숭일거에요. 전 절대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ㅋㅋ

치니님, 치니님은 K와 저를 반반 섞어놓은 것 같은 분이 아닐까, 싶어요. ^^

깐따삐야 2007-01-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헛?! 님도 역쉬...

2007-01-1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재 21권 세트로 나와 있는 토지는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소심하게 선택한 것이 청소년 토지 12권. 김현주가 최서희로 나왔던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김현주 보다는 악한 김두수 역할을 실감나게 해냈던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눈여겨보게 되었지만. 비록 작가가 아닌 다른 이들에 의해 재구성된 책이긴 하지만 새벽을 환히 밝히면서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토지를 모두 읽고나서 그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을 무렵 묵혀두었던 이상문학상 전집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활자들은 핑그르르 두서없이 떠다녔고 급기야 신경질이 나려고까지 했다. 모든 책은 각자 가치가 있고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한 장 속에 있는 짤막한 어구들조차 누군가의 고민이 녹아있다고 생각하며 지내다가도, 이렇듯 숨막힐 듯한 대작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래도 똑같을 순 없지, 라는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

  평소에 시나 소설을 좋아하긴 했지만 하도 잡식성이다보니 원래 특별히 꼬집을만한 취향은 없었는데 근래 들어 역사소설이 좋아진다. <상도>를 찬찬히 다시 읽고 싶어졌고 최인호의 <유림>이 완간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점점 더 아빠를 닮아가는 내 얼굴과 엄마의 말투와 생활습관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부모님과 부모님 위의 더더 오래된 조상들, 나 개인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민족의 역사, 그 민족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인류의 역사, 그러한 것들이 궁금해진다. 뭔가 근원적인 것, 변하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낸다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일이 더 쉬워지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것에서 말이다. 토지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마는 차디차고 고고한 윤씨 부인의 모습에서 엄마의 할머니를 보았다 하고 나는 최서희의 강하고 질긴 모성애를 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임명희와 양현이의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각자 땅을 향한 강한 집념을 보였지만 최서희에게서는 스칼렛 오하라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기품이 느껴졌고 그것은 한국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오롯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토지에 대해서는 감히 리뷰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손을 놓고 있지만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 어딘가에 한국 여성의 끈기와 기품이 서려있지는 않을까, 하는 허튼 희망을 걸어보는 경험은 매우 행복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1-1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며 부모님을 닮아감을 실감합니다..
또한 그분들의 사랑과 애쓰심 역시.


깐따삐야 2007-01-1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