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없다. 그런데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건 농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글줄이나 써가며 편안하게 살아왔으면서 웬 엄살인가 싶고,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꿈도 망상도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 때문일 듯 싶다. ...... 여자들은 요새 여자들 핸드백처럼 늘 호미가 든 종댕이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김매고, 밭머리건 논두렁이건 빈 땅만 보면 후비적후비적 심고 거두던 핏줄의 내력은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꽤 집요한 것 같다. (p. 51)

  여러가지 사정 상, 당장 그러기는 어렵겠지만 가족들에게 종종 시골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을 비칠 때가 있다. 나중에 아이들을 낳고 기를 때에도 그 곳이 산도 있고 들도 있는 시골이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위의 대목처럼 이건 꿈도 망상도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 때문일 듯 싶다. 어릴 적, 추운 겨울마다 앞마당의 샘에 나와 머리를 감을 때에는 내가 하루빨리 이 곳을 뜨던지 해야지, 라고 투덜거리곤 했고 그건 순전히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스컴에서 귀농이란 말이 들려오거나 기회가 닿아 산과 들을 둘러보고 올 때면 마음이 공연히 뒤숭숭해지곤 했다. 촉촉한 흙의 촉감과 달큰한 딸기향을 오감으로 느끼며 맨발로 딸기밭을 매던 아이,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즈음 된장찌개에 넣을 풋고추를 따기 위해 고추밭으로 달려가던 시골 아이가 바로 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집요하다. 그 기억은, 아마 요즘의 아스팔트 킨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촌스러운 유전자를 내 몸 어딘가에 집요하게 새겨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닮아간다 했던가. 박완서님의 신간을 읽으면서 이 분도 자연히 자연을 닮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이제는 눈이 아파서 글도 제대로 못 읽겠구나, 하시던 엄마를 떠올리며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 한 권을 묶어내기 위해 때로 깔깔한 눈도 비비고, 저려오는 손도 주무르고, 뻐근해오는 어깨도 두드리고 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니 잠시 송구스럽기도 했다. 값싼 재주만 부리다 쉬이 잊혀져가는 작가들에 비하면 알토란 같은 얘깃거리를 들고 뒤늦게 등단해 지금껏 모범적 삶을 일궈오고 있는 박완서님은 문단의 원로이자 우리시대의 어머니, 라고 해도 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히 요술을 부린다 싶을만치 비루하고 남루하기 그지없는 인간사를 천의무봉의 글솜씨로 요리해내는 것을 보면서 타고난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했더랬다. 그러나 읽기 쉬운 글은 그만큼 쓰기는 어려운 법.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동네 사랑방 수다 같기도 한, 쉽고도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락을 읊기 위해서는 점점 더 노쇠해지는 심신과 싸우는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31년생의 작가가 두툼한 수필집을 묶어 내놓고는 책머리에 '하지만 이 나이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지는 한 편, 어쩐지 빙글빙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새 책에서 작가는 꽃을 키우고 풀을 매고 계절을 보내며 나이 들어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과, 음식과, 시대와,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를 나로 있게 하고 작가를 작가로 있게 한 것, 결국 팔할의 바람이란 것은 그 사람과 음식과 시대와 엄마가 아니겠는가. 소싯적의 옴팡진 촌철살인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지만, 기억들을 보듬어 감싸 안는 작가의 품이 훨씬 더 푸근하고도 넉넉해졌다. 글을 읽으며 문득 나도 박완서님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인형을 업고 있는 외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밥숟가락 위에 참게장을 올려주며 입맛을 잡아주는, 곰살맞고도 유머러스하고, 맛깔스런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별난 사연도 많이 아는, 세상살이와 살림살이에 빠삭한, 귀엽고도 야무진 할머니. 늙수그레하더라도 누추하지는 않게끔, 그렇게 나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

  먼저 산 세월이 한참인 원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전부 다 공감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지만 요즘의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 가는 데가 더 많았던 건 사실이다. 지나온 자의 여유와 거쳐온 자의 통찰이 행간마다 넘쳐났고 삶은 곧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곧 그의 글이다, 라는 말을 실감했다. 봄이면 논둑마다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쑥이며 냉이를 캐러 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다짐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너무도 한적해서 때때로 심심했지만 지금처럼 때때로 고독하지는 않았던, 그 모든 게 사실은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순수한 생명력 때문이었다는 깨달음을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하고 있다. 이제는 농촌도 예전의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움직이는 단 몇 평의 땅이라도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맨흙땅이었으면,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마늘쫑을 뽑아 밥상을 차리는 소박한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택배 상자 안에는 과꽃의 씨앗 한 봉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올해도 과아꽃이 피었습니다아...하던 노래의 그 과꽃. 이미지를 찾아보곤 아, 하는 반가움과 함께 지천으로 피어나던 들국화를 떠올렸다. 나는 과꽃을 부르면서도 과꽃이 과꽃인 줄 몰랐구나. 한 때는 우리 고향집 앞뜰에도 갖가지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났었다. 까만 씨앗을 깨뜨리면 하얀 분가루가 나오던 분꽃, 물관의 흐름을 살펴본다고 자연시간에 뿌리째 뽑아가야 했던 봉선화, 외사촌 동생이 잘 그리는 꽃 모양처럼 생긴, 예쁘기도 한 이름을 가진 채송화... 고향 땅을 떠나온 지금, 봄을 맞이하여 나는 이 꽃씨를 땅이 아니라 내 마음에 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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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2-2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분이 무슨 글을 이리 구수하게. ㅋㅋ
깐따삐야 님의 소망처럼 늙어가실 거라고 예감해요.
곰살맞고도 유머러스하게.
제가 깐따삐야 님 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거든요.

깐따삐야 2007-02-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근본은 속이지 못한다고 제 뿌리가 시골에 있기 때문인지, 때로 이렇게 시골 아줌마스러운 글을 쓰는가 봐요.

봄봄 2007-02-2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인터뷰글을 옮겨봅니다^^

-70대의 시간이 마음에 드십니까?
=뜻하지 않은 나이죠. 예정에 없었던. (웃음) 걱정도 없고 먼 계획도 없고 하루하루 편안히 가요. 예전에는 작가로서 계약도 하고 연재도 했지만 이제는 매이는 일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찌 보면 여벌의 삶이지만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경제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내가 온전히 독립했다는 자유의 느낌이 굉장히 좋습니다.

깐따삐야 2007-02-2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70대의 시간이라... 저로썬 아직 상상하기 어렵지만 경제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온전히 독립했다는 자유의 느낌이라니, 늙는 것도 기대가 되려 합니다. 물론 한평생 남들보다 열심히 산 원로 작가나 누릴 수 있는 복록이겠지요.^^

봄봄 2007-02-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라지요..아,,근데,,넘 부러분거 있죠..감정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요즘 이 방을 자주 오네요^^ ㅋㅋ
 

  또 한 번의 졸업식. 교사가 된 후 어제로써 두 번,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이번 아이들은 나와 인연이 깊다면 깊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맨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었고 그 때 우리는 모두 새내기였다. 1학년 신입생과 신규 교사로 만나 온갖 시행착오와 악다구니 속에서 겁나먼 일 년을 보냈다. 어리버리한 교사와 천방지축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이란 매일매일이 거침없이 하이킥, 이었다. 선배 선생님들은 처음 가르쳤거나 처음 졸업을 시킨 아이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지만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우리 그만 잊기로 해요, 라는 절절한 목소리만 되돌아왔다. 그런데 한 해 동안 학년이 엇갈려 떨어져 지내다가 3학년이 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서로 뭔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남자중학교라지만 어쩐지 이제는 서로를 향해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았다. 어제 Y는 편지에 그런 말을 썼더랬다.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했는데 재작년과는 달리 수업시간에 웃음도 많아지고 재미있어서 좋았노라고. S의 편지를 읽고 났을 땐 낯이 뜨거워졌다. 우리를 가르치실 때는 별로 웃지도 않고 혼내시기만 했는데 작년에 3학년 형들한테는 많이 웃고 잘 대해주시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질투도 났었다고. 하지만 왠지 1학년 때의 선생님 모습이 더 좋았다고. 나는 사실 그 동안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진심을 전하는 그 마음까지도 알 것 같다.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소진했던 일 년이었지만, 훨씬 여유로워지고 화기애애해진 현재보다 왜 그 때를 그리워하는지도.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넘어질 듯한 열정으로 오해의 벽과 이해의 문 사이를 들락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때, 아이들이 내게 바랬던 것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이해, 라는 것도 결국 타이밍의 문제다. 

  졸업식과 종례를 마치고 누나와 함께 우리 교실로 찾아온 W는 급기야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몰라보게 훌쩍 자란 녀석이 훌쩍거리니 당최 마음의 갈피가 잡히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왔지만 잘 달래서 보내야 한다, 는 생각만 계속 났다. W는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던 아이다. 반 배정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와 일단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의자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빼빼하고 예쁘장한 아이가 계속 몸을 비틀며 눈에 띄도록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곱게 자란 예민한 아이구나. W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역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귀한 아들이었다. 잘 먹지 않아서 몸이 약한 편이었고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W는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만화를 그렸고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를 때마다 W의 만화노트를 보며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이어질 내용을 함께 구상해 보기도 했다. 말수가 적고 몹시 까다로운 아이였는데도 처음부터 쉽게 말을 붙이고 폭폭 안겨오는 아이들에 비해서 왠지 더 정이 가곤 했다. 교사에게는 아이들을 향한 호오의 감정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것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서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정이 가거나 매력을 느끼는 케릭터가 존재한다는 건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아팠다기 보다는 무슨 일인가로 마음이 너무 상해서 학교에 나가지 못했을 때 W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었다. 간식을 좀 내어오자 맛있게 먹는가 싶더니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손으로 꼭꼭 찍어서 다시 쟁반에 털어놓던 모습이 떠오른다. 깔끔한 녀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고싶었어요, 라고 말하는데 속으로 문득 놀랐고 굉장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면 그 집의 아이들이 풀이 죽는 것처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계속 씩씩해야겠구나, 다짐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서 아이들의 장난에 맥을 놓고 있던 내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풀어주려 했던 것도 W였다. 하지만 그 반 아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난리를 피울까봐 나는 일부러 W를 포함한 그 반 아이들 모두를 담담하고 차갑게 대했다. 어제서야 비로소 그런 내 마음을 전했다. W는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 걸음을 잇지 못한 채 꺼억꺼억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울어본 기억이 없다. 교생실습 마지막 날, 작년의 졸업식에서도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한 분위기야 있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나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큰 W의 등을 토닥이며 선생님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네 소식 누구한테라도 꼭 물어볼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등등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모든 말을 해가며 W를 달랬다. 그 눈물이 무척 고맙고도 미안했다. 한 치의 티끌도 섞일 틈이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면 바로 어제의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W의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W의 어머니가 예전에 보내주셨던, 깨농사를 직접 지어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기억해내셨다. 농사를 짓듯 아이들에게도 꾸준히 정성을 기울이는 부모님과 참하고 다정한 누나가 곁에 있으니 W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고 스스로를 아낄 줄도 안다.

  신규였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폭은 딱 우리 학급 뿐이었고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에게 만큼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해주었다.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오버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의 질투를 샀고 그럴수록 내가 다른 반 수업에 들어가면 교실은 고의적인 장난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착하고 말 잘 듣는 우리 반 아이들이 더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그런 마음을 표현하면 할수록 다른 반 아이들은 더욱 더 심술궂고 교활해졌다.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제 무덤 파는 격으로 나는 참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그렇듯 악순환만 되풀이 하다가 앙금만 잔뜩 맺혀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아이들이 어제의 졸업생들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아이들이 다시 우리 반이 되기도 했고 나와 매일매일 다정하게 속닥거리던 아이들이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맨 끝 반 교실로 배정되기도 했다. 학년별 교과 담당 교사를 발표하던 조회 시간에 내 이름이 강당에 울려퍼지자 여기저기서 고함과 휘파람이 섞여 나오는 등, 우스운 진풍경이 벌어졌고 영문을 모르는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줄로만 아셨다. 하지만 그건 환영이 아니라 어이없음, 이었다. 아무튼 그 어이없는 인연의 사슬에 매여 다시 일 년을 보냈고 재작년의 끔찍한 악몽에 비하면야 그 정도만 해도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았다. 자잘한 사건사고가 끊일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3년만 채우고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가야만 한다, 가고야 말 것이다, 라고 늘 생각했으니까. 올해 나는 여기에 없다. 발령 통지를 받았고 다른 학교로 가시는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나도 떠난다. 올해에도 여기 계실 거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노처녀 되기 전에 결혼이나 하시라는 둥, 공부라니 징글맞지도 않느냐는 둥, 선생님은 확실히 공부 좀 더 하고 오셔야 된다는 둥, 별별 녀석들이 다 있었다. 괴짜들 덕분에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고 이런 감정이 보람이라면, 보람도 느낀다. 그리워질 무렵이면 다시 돌아오겠지.

  그 눈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지쳐 있을 때마다 나를 웃겨 주려 했던 너희들의 마음씨 또한 그럴거야. 고백하건데, 속으로는 킥킥대고 얼굴로는 근엄하느라 나도 힘들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마냥 순수할 수만은 없겠지만 너무 빨리 철이 들지는 말기를. 졸업과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희들이 장난 칠 때마다 선생님이 잘하던 말 있지. 그러니까 좋아? 재밌어? 행복해? 그렇듯 내내 좋고 재미있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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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07-02-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봄봄 2007-02-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이해, 라는 것..시차의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님도 재미난 새해 맞으시길..

깐따삐야 2007-02-2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때가 되면 이해하게 되곤 하죠. 님도 즐거운 한 해 보내세요.^^

레와 2007-02-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앙..

오늘, 멋찐 제자들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깐따삐야 2007-02-2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제자들이 멋지게 성장하고, 저도 제발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고 빌어주세요. ^^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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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초년생이었을 무렵, 거의 전작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윤대녕을 탐독했던 것은 윤대녕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윤대녕을 좋아하는 어느 선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내 사랑의 방식은 그토록 무분별했다. 좋아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가 아니라 좋아하면 알아야 하며 알고 나면 보이지 않을까, 였다. 선배는 윤대녕과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좋아했고 아마 고정희나 기형도 같은 시인들도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우선 <은어낚시통신>과 <그리스인 조르바>로 고단한 짝사랑의 여정을 출발했다. 나중에 선배가 모교를 떠나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을 때 이미 감정은 식은 지 오래였지만, 나는 여전히 윤대녕과 카잔차키스와 기형도 등을 좋아하고 있었다. 선배는 어느 가을 날, 롤링페이퍼에 예의 그 독특한 글씨체로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을 찾아"라고 써주었고 동경하던 선배의 소중한 말씀이니 고이고이 새겼으나, 나는 여전히 휠 줄 모르고 여기저기 부러져서는 상처만 늘려가며 살고 있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라는 작품집에서 만났던 단편 '상춘곡'은 내가 가장 아름다운 단편들 중의 하나로 꼽는 작품이다. 그림이 되려다 만 시처럼, 시가 될 뻔한 그림처럼, 행간마다 연두와 분홍이 엇갈리는, 애틋하고 아슴아슴한 봄빛 그 자체였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듯한, 가장 윤대녕다운 작품이 아닐까 한다. 사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는 늘 얼마만큼의 기대치가 있다. 현실의 변방에서 역마살과 도화살의 운명을 피해 갈 수 없는 남자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 같은 여자들, 실패한 시인이 지어준 듯한 카페 이름들, 바흐나 굴렌 굴드, 아바 등 시공을 초월하는 음악들, 베스킨라빈스의 화려한 달콤함에 이어지는, 고개를 떨군 채 바싹 타들어가는 초췌한 식물들의 이미지, 희망을 예견하되 현실에의 복귀가 아니라 또 다른 방황을 시작할 것만 같은 쓸쓸한 결말들... 그러한 것들이 거기에 있을 거라는,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할지언정 그 특유의 톤과 색조는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엄습한다. 그것은 뻔함도, 진부함도 아니다. 익숙한 기대감 같은 것이다. 장편 <달의 지평선>이 나왔을 때 혹자는 적잖이 실망했다고도 하고 윤대녕은 장편은 무리지 않겠냐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완벽하게 몰입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그녀들과 몽땅 사랑에 빠졌다. 그럴 만큼 말랑말랑한 연령이기도 했지만 삶의 한복판이 아니라 그 귀퉁이에서 아무 것도 결론 내리지 않고 시와 잠꼬대의 중간 정도 되는 은유들이나 읊조리면서 그네들과 더불어 살아갔으면 했다. 매력은 있지만 생활력이라곤 터럭만큼도 없는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그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을 골려주었다 얼러주었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매력은 없지만 둘째 가라면 서러울 생활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서 그들을 가끔 그리워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시답잖은 낭만을 꿈꿨더랬다. 당시엔 누군가 짱돌을 넣은 양파망을 던진대도 꿈쩍 않을 만큼 삶에 관한 탄성 또한 대단했으니까. 지금은 세월의 각질층으로 인해 뻔뻔해져서 그렇다지만 그 때는 당최 아무 것도 몰라서 도리어 용감했다.

  옅은 제비꽃 빛깔로 곱게 장정한 <제비를 기르다> 역시 익숙한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좀더 따스하고 의젓해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마음은 어쩐지 처연하고도 호젓했다. 가까스로 청승을 비껴나 그럴듯한 폼만 잡고 말만 청산유수로 뻔드르르하게 할 뿐, 사실은 웅크린 어린애나 다름없었던 윤대녕의 남자들이 이제는 조금 달라진 것도 같았다. 우연인 듯 필연처럼 인연이 엮이고, 문득 하나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섬으로 육지로 떠돌고, 일상 저 너머에 있는 헛것에 매달려 녹록찮은 은유를 덧씌우는 기법은 비슷했지만, 이제는 운명에 쓸리고 휘둘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라도 순응하고 감싸고자 하는 곡진함이 느껴졌다. 일상에 침입한 예고 없는 변화나 균열들에 대처하는 방식들도 지지부진하고 어릿어릿하기만 했던 과거에 비하면 상당 부분 적극성과 현실성을 띄고 있었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스토리 라인에 여전히 비슷한 플롯의 반복이었지만 언제나 '나'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를 통해서 타인을 바라보거나 의식하고, 타인의 내면에서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 또한 '나' 뿐이었던 우울하고 이기적인 나르시스트가 타인의 운명과 상처의 생김생김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았다. 찬이 초라하기에 역설적으로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밥맛의 깊이(연), 당신의 입안에 남아 있는 치약 냄새를 사랑했노라는, 다소 유치하지만 이보다 더 사실적이기도 힘든 고백(못자국), 하루 세 번 먹는 밥과 세 번 닦는 이처럼, '나'는 포즈 잡을 겨를 없이 꾸역꾸역 이어지는 생활의 발견 앞에서 슬그머니 겸손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회한 것 까지는 아니고, 윤대녕은 한 두 갈피 정도는 언제나 옹골차게 노회함이 쳐들어오지 못할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을 법 하지만, 오랜만에 성숙의 향기가 은은히 우러나는 근사한 작품들을 만나 반갑고도 즐거웠다. 안 보는 사이, 무턱대고 퍼져가지고는 달통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접스런 이야기들을 묶어가지고 새 책이랍시고 들고 나오는 작가들도 있는데 <제비를 기르다>는 역시 믿고 읽을만한 중견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신뢰감을 주었다. 어디 하나 꼬집을 데 없이 유려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읽히는 문체 또한 건재해서 역시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 맞구나 싶어 다행스럽기도 했다. 선배는 떠났고 윤대녕은 남았다. 어차피 남을 사람은 윤대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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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5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7-02-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반갑습니다. '상춘곡'이 님과 저를 이어주네요. ^^

봄봄 2007-02-1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이 맴맴 도네요^^ 선배는 떠났고 윤대녕은 남았다. 어차피 남을 사람은 윤대녕이었던 것이다..씩씩하십니다..홧팅..님의 대문그림이 영화 <바람피기 좋은날>에 잠깐 스쳐가더군요..^^

깐따삐야 2007-02-1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반가워요. 별명을 예쁘게 지으셨네요. 좋아서 걸었는데, 여기저기서 종종 눈에 띄는 그림이더라구요.

RAJAH 2007-02-2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춘곡..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한동안 베껴쓰며, 외우며, 푹 빠졌었는데.. 같은 느낌을 받은 분을 만나다니 정말 반가워요. 헤헤 깐따삐야 님의 리뷰를 읽으니 다시 윤대녕을 읽을 마음이 생기네요.

깐따삐야 2007-02-2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neenrajah님, 상춘곡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을 만났네요. 베껴쓰며, 외우며...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저 봄이 올 적마다 다시 읽어봤으면, 하는 정도랍니다.^^

비로그인 2008-01-2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좋아요...아직 상춘곡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이 책에서 '탱자'를 볼때마다 울어요.
읽은책을, 그것도 단편을 또 읽는 습관은 원래 없는데..^^

깐따삐야 2008-01-24 16:48   좋아요 0 | URL
어므낫. 리사님은 왜 탱자를 볼 때마다 우실까요. 감수성도 풍부하셔라.^^
근데 윤대녕 단편들이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건 맞는 것 같지요?
'상춘곡'은 봄처럼 화사하고 촉촉한 작품이었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아이들의 흑단 같은 머리 다발들이었다. 방학 동안 한 번도 안 깎았지 싶었다. 음악다방 DJ 마냥 한 번씩 뒷덜미 쪽으로 털어주는 오버스런 몸짓들 하며, 나이 한 살 더 먹어도 하여간 머스마들 유치한 건 알아줘야 돼. 내가 지난 3년 사이에 이토록 입이 걸어지고 유치빤스만 입게 된 건 다 걔네들 때문이다. 거기다 긴긴 겨울방학 동안 제법 어깨선이 굵어지고 눈빛엔 기름기가 좔좔 흐르면서 된통 능글맞아진 것 같았다. 그냥 예뻐지셨네요, 라고 하면 될 것을 손수 실루엣까지 만들어가며 바디라인이 살아났다느니, 남몰래 한 달을 굶었을 거라면서 쿡쿡대지를 않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근슬쩍 한 번 훑어내리고는 가소롭게 내려다보는 등, 온갖 추행들이 난무했다. 별달리 새롭지도 않은 풍경인데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 세상에 중3 남자 아이들처럼 징그러운 존재들도 없을 것이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어중간한 발달 상태, 뿔긋뿔긋, 혹은 노릇노릇 올라오는 여드름과 제딴엔 감는다고 감는대도 뭉텅뭉텅 떡지기 십상인 머리, 닳고 닳아서 빤들거리는 데다 껑충 짧아진 교복, 게다가 입에서 폭발하는 언어들은 대개 87퍼센트 이상 비속어나 인터넷 은어다. 원래 큰 키도 아니지만 방학 동안 비육우처럼 튼실해진 아이들 앞에 서니 나는 그야말로 난쟁이 똥자루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일다니 정이 들긴 든 모양이구나 싶다가도, 졸업식을 앞둔 일주일 동안 씨도 안 먹힐 게 뻔한 말들을 해가며 이 넉살 좋고 약삭빠른 녀석들에게 휘둘릴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아마도 조물주는 이런 나를 어여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엾이 여겨 선뜻 공부할 기회를 주셨나 보다.

  또래 선생님들과의 수다.

  윤샘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시술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만 한 통 했더라면 극구 말렸을텐데. 이지은이나 한지혜, 얼마나 예쁜 눈인가. 쌍꺼풀이 있는 내 눈은 아무런 상상력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그냥 길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무난하고 평범한 눈이다. 그런데 윤샘의 눈은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면서도 귀염성이 있었고, 작지 않으면서도 쌍꺼풀 없이 동그란 눈은 아담하고 부지런한 윤샘과 잘 어울렸었다. 원래 다른 사람 외모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인데 이번 만큼은 내 일처럼 안타까웠다. 나는 연예인을 포함하여 여성이든 남성이든 쌍꺼풀 없는 눈을 가진 매력적인 마스크를 꼽으라면 수십 명까지 댈 수 있다. 순전히 내 취향 탓일지도 모르지만 주변에서 누가 쌍꺼풀 수술 어쩌고 하면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윤샘 스스로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더 안타까웠다. 겉으로야 부기 내리고 자리 잡히면 이쁘겠다, 말했지만 속마음을 자주 들키곤 하는 나는 윤샘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야기 하기가 힘들었다. 영리해 뵈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생글거리던 예전의 윤샘이 그리웠다. 몇 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지겠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더라. 나 같으면 학교 안 간다고 성질 부리고 재수술이니 어쩌니 했을지도 모르는데 활짝 웃으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윤샘이라서 보기 좋았다. 그래도.. 쌍꺼풀 없는 눈이 더 예뻤다구.

  홍샘은 입덧 때문에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원래 잘 비벼 먹지 않았는데 오늘은 고추장에 밥을 슥슥 비벼서 억지로 떠넣고 있었다.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하더니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임신을 했다. 아마 겁 많고 게으른 나 같았으면 삼 년씩 걸릴 일이었겠지. 저번에 점심을 같이 하면서 친정이고 시댁이고 아기를 빨리 갖기를 원한다길래, 아직 나이도 어린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아기 가져도 늦지 않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는데 겨울방학이 길긴 길었나. 안그래도 약하고 갸냘픈데 방학 내내 입덧 때문에 변기만 붙들고 살았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쌍춘년에 결혼해서 황금돼지해에 아기를 낳을테니 기막히게 잘 짜여진 극본 같아서 축하인사를 건네면서도 한편으론 가증스럽게도 에구, 난 다행이구나... 싶었더랬다. 일찍 결혼해서 빨리 아이 낳아 키우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 편하다고도 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 말이 맞지 싶기도 한데, 뭐든지 그렇게 결정나버리는 게 아직은 두렵다. 이제는 피도 삭고 기운도 빠져서 누구를 만나도 폭폭 정이 들기는 어려울 듯 한데, 이러다가 사촌 동생이 일촌평에 쓰고 도망친 것처럼 진짜 "허벅지에 비밀이 있는 노처녀"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고나. 홍샘은 새 학기에 다른 학교로 옮겨 가게 될 것 같다. 부디 순산해서 홍샘처럼 착하고 예쁜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며 아이들과 대청소를 했고 목이 칼칼하고 코가 맹맹해서 결국 주사를 맞고 왔다. 집에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역시 학교는 내 심신을 사정 없이 갈궈댄다. 쓰레기 버리러 가는데 가위바위보를 하던 그 아해와 그 아해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르르... 몸서리까지 나네. 키는 나보다 훤칠한 것들이 고깟 쓰레기 버리러 가는 데 오판삼승제로 핏대나 세우고. 덩치는 산 만해도 애들은 애들이다.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졸업이다. 이별의 아쉬움이나 세월의 보람, 그런 감상이나 낭만 보다는 어째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부디 무사태평한 일주일이 되기를,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인데 서로 얼굴 붉힐 짓은 하지 않았으면, 머리는 보온용이려니 넘어간다지만 실내에서는 제발 실내화만 신었으면, 너희들이 교문을 나서는 그 순간 나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쾌재를 부를지도 몰라. 오죽하면 그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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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2-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하는 이 동네 중3들은 중1때부터 악평이 자자한데, 그 동네도 만만치 않은가봐요. 해마다 아이들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니 참 신기하죠. 이번에 고2 올라가는 애들은 아직도 작고 어리버리한데^^

Mephistopheles 2007-02-1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합니다.
저 중3때 생각하면서 잠깐 능글맞게 웃었습니다.(참고로 전 쌍커플 없습니다.!!)

깐따삐야 2007-02-1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얘네들도 중1때부터 악명 높았더랬죠. 얘네들이 중1일이었던 당시, 저는 신규였습니다. 얼마나 엉망진창이었을지 안봐도 비디오지요? 으이구.

메피스토님, 췌... 그랬었었었었군요. (오, 부디 수술 같은 건 생각하지 마시길!)
 

  아무도 인터뷰를 하러 오지 않아 혼자 백문백답 목록을 가지고 논다. 엉터리 같은 질문들. 그래도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묘한 오기가 생긴다.

 

* Pretty

1. 예쁜 남자에 대한 생각 : 고맙지, 뭐.

2.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볼 때 하는 생각 : 췌, 예쁘군.

3. 내 친구가 엄청난 미녀라면 : 비결을 물어보겠어.

4. 성형수술을 하고 싶을 때는 : 지대루 업그레이드 된 사람을 볼 때.

5. 꼭 고치고 싶은 부위는 : '꼭' 고치고 싶진 않구.

6. 안 예뻐서 생긴 에피소드는 :  내 어린 시절부터 오라버니 曰, "넌 안 예쁘니깐 공부라도 잘해야 된다." 

7. 예쁜 사랑을 해 본 적은 : 예쁜 사랑은 모조품 같아.

8.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물건 :  전자수첩

9. 정말 예쁜 물건을 발견한다면 :  예쁘기만 한 건 안 사.

10. 내가 하루 아침에 예뻐져서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면 : 입 벌리면 다 알아보게 되어 있어.

11. 예쁘게 사랑하는 법 : 시의적절한 가식.

12. 예쁜 사랑이란 : 질문하고는. 예쁜 사랑은 니미럴.

 

* Cute

13. 가장 귀여운 동물은 : 태어나서 두 주 정도 지난 발바리 새끼.

14. 귀여운 남자가 좋은가 : 귀엽기만 한 건 싫어. 애완동물이냐.

15. 좋아하는 사람이 귀여운 여자를 좋아한다면 귀여운 척 할 수 있는가 :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16. 친구가 심하게 귀여운 척을 한다면 : 위로가 필요한 게야.

17. 난 애교가 많은 여자? : 여자들한테만. 비극이지.

18. 난 귀여운 편? : 남들은 귀엽대.

19. 어린 아이가 길을 잃어버려 울고 있다면 : 길치지만 으른이니깐 도와줘야지.

20. 귀여운 강아지가 우리집 앞에 있다면 : 귀여운 강아지라며. 주인이 곧 데려가겠지.

21. 귀여운 아이라도 때릴 수 있는가 : 이쯤되면 막가자는 건가.

22. 난 귀엽다는 말이 좋다 : 별로.

23. 잘생긴/귀여운/능력 있는/ 중에 한 가지를 고르면 : 능력 있는!

24. 이성이 귀여워 보일 때 : 둘러댈 말을 못 찾아 안절부절할 때.

25. 애교 많은 남자친구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 : 애교로 모든 걸 커버하려는 가련한 행태와 맞닥뜨렸을 때.

26.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지만 애교 없이 무뚝뚝한 남자는 : 모든 조건...! 애교를 발굴하겠어.

 

* Smart

27. 멋있는 남자/착한 남자 : 일단은 멋있는 쪽.

28. 가장 멋있어 보이는 가수 : 비, MC몽.

29. 못생긴 남자가 멋있는 옷을 입었을 때 : 다 제멋에 사는거야.

30. 멋있는 척 하는 사람을 보면 : 대략 역겨워.

31. 남자가 멋있는 말을 하면 : 꿍꿍이가 뭐길래.

32. 능력이 좋은데 옷을 못 입는 남자는 : 능력이 좋은...! 잘 입히면 돼.

33.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프로포즈를 한다면 : 고맙지, 뭐.

34. 예전에 나한테 고백을 했던 코찔찔이가 멋있어져서 돌아왔다면 : 췌, 유치한 복수.

35. 난 쿨하게 잊어주는 사람? : 쿨하게 헤어지기만.

36. 멋있는 사랑이란 :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랑.

37. 멋있는 남자란 : 성실한 남자.

38. 멋있는 연예인 : 윤도현, 존 쿠삭.

39. 기억에 남는 멋진 멘트 : Life is not what one has lived, but what one remembers and how one chooses to tell it.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40.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본 영화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41. 현재 내 눈에 가장 멋져 보이는 사람 : 현재 없다.

42. 현재 내겐 멋진 남자친구가 있다 : 현재 없다구.

43. 외모가 멋진 사람, 마음이 멋진 사람 : 유치하다, 유치해. 마음이 멋져야 남자지.

44. 멋있는 노래 : Creep / Radiohead

45. 쿨하게 헤어지는 사람은 멋진 사람? : 쿨한 것과 싸가지 없음의 차이가 하도 미묘해서리.

46. 사랑한다면 해야 할 멋진 일 : 손수 도시락을 싸는 거지. 밥정이 무서운 게야.

47. 멋있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 Do Your Best!

 

* Sad

48. 가장 슬펐던 기억 : 엄마가 편찮으셨을 때.

49. 길거리에서 우는 여자를 본다면 : 마음이 짠하겠지.

50. 남자의 우는 모습은 : 때로 멋지고, 때로 구차해.

51. 울고 싶을 때는 : 이따금, 불현듯.

52. 사랑 때문에 운 기억 : 너라면 없겠니. 없다면 독한 것...

53. 주로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가 : 스스로가 꼴도 보기 싫어지거나, 뭔가 디게 미안하거나.

54. 눈물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 불가사의한 분비물.

55. 사랑은 슬픈 것? : 때로 그래.

56. 슬픈 로맨스에 대한 기억 : 기억은 담담해.

57. 울고 난 후의 후유증 : 머리가 디게 아퍼.

58. 날 가장 많이 울린 사람 : 초딩 때 그 배 나온 머스마.

59. 내가 울려 본 사람은 있는가 : 셀 수 없을 정도야.

60. 있다면 몇 명 : 손, 발가락으론 부족해.

61. 최근 울어 본 기억 : 얼마 안 됐어.

62. 사랑은 돌아오는 것? : 돌아버리는 거지.

63. 눈물을 참기 위해 해 본 것 : 눈을 감아버리거나, 밥을 크게 한 술 떠 넣거나.

64. 난 눈물이 많은 편/적은 편 : 여전히 많아.

 

* Purity

65.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 소설 <소나기>의 소년, 소녀처럼.

66. 난 순수한 여자? : 맹하다는 걸 꼭 그런 식으로 돌려말해 주드라.

67. 순수한 남자에 대한 생각 : 고맙지, 뭐.

68. 순수한 것과 착한 것의 차이점 : 순수한 건 사심이 없는 것. 착한 건 사심이 있더라도 감추는 것.

69. 사람이 가장 순수해 보일 때 : 코... 자고 있을 때.

70. 남자친구가 내게 순수해지길 원한다면 : 미친X. 더 이상 뭘 더 바라냐고 하겠지.

71. 순수한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카사노바였다면 :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돌아서야지 뭐.

72. 다 갖춰진 남자인데 순수함이 없다면 : 다 갖춰진...! 순수함을 발굴하겠어.

73. 이성이 순수하게 보일 때는 :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집중력.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눈빛.

74. 바보 같은 것은 무슨 뜻일까 : 사랑에 빠진 나 같은 것.

75. 순수한 여자가 간절히 되고 싶을 때 : 간절히 되고 싶은 게 퍽도 음따.  

76. 섹시/순수 나한테 더 가까운 것 : 섹시는 증말이지 아닌 것 같다.

77.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은 순수? : 알아, 내가 촌스럽다는 거.

78. 순수한 남자/터프한 남자 중에 택하라면 : 섞어봐, 좀.

 

* Ordinary

79. 평범이란 : 무난한 거.

80. 난 현재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 대체로 그래.

81. 슬픈 사랑, 멋진 사랑보다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다 : 응. 피곤해.

82.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 응. 피곤하거든.

83. 연예인이 결혼하자고 한다면 : 안 해. 피곤하다니깐.

84. 난 평범한 얼굴인가 : 응. 지극히 동양 여자.

85. 잘생긴 남자/평범하게 생긴 남자 : 물으나 마나 한 걸. 잘생기면 고맙지.

86. 재벌2세와 결혼한다면 : 뭐가 달라져?

87. 난 특별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 : 가끔. 피곤하지만 않으면.

88. 화려한 옷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 대놓고 화려한 건 싫어.

89. 평범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 난리부르스 추지 않고 담백한 거.

90. 평범한 사랑을 해 본 적은 있는가 : 아니, 죄다 이상했어.

91.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 '전원일기' 정도면 괜찮아.

92. '평범하다'라는 말의 뜻을 설명하자면 : 물은 거 또 묻고 그래. 튀지 않는 거. 남들 가는 데로 가는 거.

93. 난 평범하단 소리를 자주 듣는다 : 특이하단 소리를 더 자주 들어.

94. 평범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면 : 불만하지 말고 남들 가는 데로 가는 거.

 

* Unique

95. 독특하다는 건 : 남다른 개성이 있다는 거지.

96. 나는 독특하단 소리를 자주 듣는다 : 응. 그 점이 의아해.

97. 지금껏 만났던 사람 중 독특했던 사람은 : 라면 먹을 때 우유 섞는 사람. 맛있어?

98. 평범한 남자보다는 개성 뚜렷한 남자에게 끌리는가 : 예전에는 그랬지.

99. 조만간 해보고 싶은 비범한 행동이 있다면 : 개학 날 땡땡이 치는 거.  

100. 평범하게 끝인사 한 마디 :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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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0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하기 1번 ^^

깐따삐야 2007-02-0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해보셈, 의외로 잼나요.

Mephistopheles 2007-02-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번은...마님이 저에게 자주쓰는 수법 중에 하나군요..ㅋㅋㅋ
따라해보고 싶은데...사무실에선 불가능해요...^^

깐따삐야 2007-02-07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