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륵’이란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전혜린의 에세이집에서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그녀가 이미륵 씨의 무덤에 찾아가 추모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 나의 호기심은 이름이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정도로 그쳤었다. 이십대 초반에 대면했던 전혜린이 너무도 강렬하고 찬란했던 탓에 이미륵이란 작가는 그저 묻혀 버린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찾아 읽은『압록강은 흐른다』는 참 좋은 책이었다. 앞선 시대의 어린이가 놀고, 배우고, 사색하며 성장해가는 풍경이 심상한 듯 솔직한 필치로 잔잔하게 담겨 있었다. 일제 침략과 더불어 신구 문화가 교체되던 혼란한 시기, 아이다운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도 배움에 재능이 있고 자부심 강한 이미륵 소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당시 독일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았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이방인인 그가 우리들에게 외계와의 이해에 있어서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것을 더욱 더 깊이 파고 또 깊이 실천해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209). 이러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독일인들에겐 동양의 소년들이 제기를 차고, 연을 만들고, 서당에 모여 공부를 하고, 베개를 쌓아놓고 꿀을 훔쳐 먹다 들켜 매 맞았던 일 등 유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특히 그 색다른 체험 안에 녹아있는 정직과 겸손, 가족애와 우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한국적인 미덕들에 반했으리라 생각된다.

  전에 동료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들은 값비싼 선물보다 깨진 도자기 조각 하나에 더 환호한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함께 근무하던 원어민 교사들도 대개는 익숙한 서구식 보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장소와 음식, 물건들을 더 좋아하곤 했다. 특히 대표적 회식 메뉴인 소주와 삼겹살은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환영 받았다. 그들은 양반다리와 젓가락질을 힘들어하고 마시던 잔을 톡톡 털어 다시 내미는 행동 등을 낯설어하면서도, 동시에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계절 내내 지나치리만치 수수한 차림의 그들은 미지의 것, 독특한 것을 향한 호기심만큼은 열렬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서구 문화를 대함에 있어 우리가 간과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또한『압록강은 흐른다』는 청소년 권장도서를 넘어 어른들에게도 두루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매사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부심과 자애심을 두루 갖춘 부모가 등장한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144) 소년 이미륵은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무엇보다 그의 부모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본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들이 막대한 자본으로 양육되는 시대, 올곧게 중심을 지키는 어른의 모습은 더욱 절실해졌다.

  내 또래의 어른 중에 015B의 노래 한편 따라 부르지 않고 서른이 된 청춘은 없을 것이다. 세련된 청승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들은 ‘수필과 자동차’라는 예쁜 제목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가 이젠 없는 건 옛 친구만은 아닐 거야. 더 큰 것을 바래도 많은 꿈마저 잊고 살지. 우리가 여태 잃은 건 작은 것만은 아닐 거야. 세월이 흘러갈수록 소중한 것을 잊고 살잖아. 잊혀져가는 시대의 소중한 보고서이자 사랑스런 일기장인 이 책은, 담담하지만 기품 있는 어조로,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책과 정드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09-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에 나온 요런책 소식은 우째 아시는거래요?!
그져 신기합니다. ^^
덕분에 또 훌륭한 책 한권 추천받아 좋으네요~
보관함으로 쓩~

아, 제가 깐따삐야님 리뷰를 보고 읽었던 '대ㅎ"나 "연ㅁ"은 정말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땡스투도 날려 드리고 있다지요!
여기저기 선물하느라.. 이히힛~


다음책 리뷰도 기대합니다.

깐따삐야 2009-01-15 22:47   좋아요 0 | URL
좋아하던 걸 계속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작가나 책을 발견하는 건 정말 반갑고 설레는 일이지요? ^^

언젠가부터 읽고나서 별로였던 책은 리뷰를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레와님이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땡스투도 감사해요.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아주아주 재밌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책 있음 꼭 알려주세요. 책을 읽고 있는데도 책이 고파요. 요새는.

다락방 2009-01-16 08:4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살짝 끼어들어서 더 살짝 추천해드리자면,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아주아주 재미있는 책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추천해요. 깐따삐야님의 취향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서 어쩌면 영 어긋나버릴지도 모르지만, 암튼 그 책 추천해요.
그리고 혹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도 추천해요.
새벽 세시, 는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으실 거예요. 엄청나게~는 벌써 읽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

깐따삐야 2009-01-16 16: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추천 고맙습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알라딘 내의 입소문이 하도 무성해서 지금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구요. '엄청나게...'는 아직 못 읽었어요. 다락방님 소개를 받고 찾아봤는데 분명히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꼭 일어볼래요! 앞으로도 재밌게 보신 책 있음 마구마구 추천 부탁드릴게요.

웽스북스 2009-01-1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혜린 책에서 이미륵 처음 봤던 것 같아요. 전혜린은.. 이십대 초반이나 십대 후반쯤 만났음 좀 더 인상적이었을 것 같은데 스물 다섯 넘어서 만나니 그다지 와닿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구, 오히려 이미륵에게 더 관심이 갔었으나, 찾아보지 않았던 게으른 영혼! 흐흣

깐따삐야 2009-01-15 22:55   좋아요 0 | URL
그쵸? 웬디양님. 전혜린 에세이집을 두 권 모두 갖고 있는데 이십대 초엽만 해도 감탄하며 읽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답답해지더라구요. 그래도 나름 삶의 부조리에 눈뜰(!) 무렵 위안과 더불어 길잡이가 되어줬던 책이라 애착을 갖고 있어요.

이 책은 전혜린의 에세이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럽고, 재밌었어요.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1-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어린이용으로 나와 7차 교육과정에선 6학년 읽기에 수록되었어요.
어린이용은 상.하로 나누어 있지요. 아름다운 리뷰예요~~~~ ^^

깐따삐야 2009-01-15 22: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론 지금의 어린이들보다 지난 시대의 어린이들, 그러니깐 요즘 어른들이 읽어야 더 공감이 가고 재밌을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요.^^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올해엔 책을 많이 안 읽었다. 강의 중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논문을 쓰느라 관련 도서를 뒤적거린 것 말고는. 새로 출간되는 책들이 흥미를 끌지 못하면 과거에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꺼내보곤 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게으른 독서에 그친 한해였다. 대개 이쯤 되면 읽고 싶어지는 종류의 책이 있는데 아무개의 독서 일기다. 부지런히 읽고, 메모하고, 사색한 이들의 노트를 훔쳐보면서 반성과 동시에 워밍업에 들어간다.

  작가들의 흔적 중에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가, 는 상당히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넘어 그들의 정신적 역사를 엿볼 수 있고 취향에 맞을 법한 책을 소개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소설가 김형경이 유르스나르를 좋아한다고 해서 『알렉시』와 『세 사람』을 책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매력은 있지만 어려웠다. 분명 몰입되리라는 감이 왔는데 당시 내 마음이 좀 허황되어 있어서 그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김현의『행복한 책읽기』는 문학을 공부했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책인데 꼼꼼히 정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학부 초년생 때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몇 페이지 못 나가고는 도로 갖다 주었던 경험만 있다. 이번에 서점에서 페이지를 훑다가는 평론가 김윤식에 대해 쓴 부분을 보고 빌리지 말고 사서 읽어야겠단 결심을 했다. 그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자기 직관에 그가 유보 없이 매달릴 때이며, 그가 가장 어설픈 대목은 원론에 집착할 때이다(29). 이럴 수가. 참 적확하다 싶었다.

  막상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자 어느새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역시 만만한 책이 아니었구나, 긴장이 되었다. 아무리 ‘김현의 일기’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어도 애초에 ‘김현’이라는 이름 두 글자만으로도 할랑한 독서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런데도,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조금씩 곱씹어가며 읽고 싶었고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남진우를 비평하는 대목의 말미에, 모든 작가들이 분석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뛰어난 작가들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비평가도 자란다. 자라지 않는 비평가를 보는 것은 나이든 난쟁이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266). 과연 그렇구나. 비단 비평가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김현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들로 80년대의 한국문학의 풍경을 아우르고 있었다. 한 줄 한 줄마다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기에 어느 한 대목만 인용하기엔 나머지 글들이 아쉬워진다. 지금 활동 중인 생존 작가들도 많이 언급되고 있었지만 이름만 들어본 작가나 작품들도 있었고 어떤 촌평은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의 글은 가치 있고 합당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김현이라는 권위에 이끌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참으로 명민하고, 사려 깊고, 예지 넘치는 비평가를 너무 일찍 잃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기형도의 죽음은 맬랑꼴리의 작품세계를 더욱 신화화시킨 경향이 없지 않지만, 김현의 죽음은 직관과 통찰을 두루 갖춘, 동시대의 비평을 접할 수 있는 작가와 독자의 혜택을 앗아간 셈이다.

  김현은 책에서 ‘읽을 만하다’라는 표현을 종종 쓰고 있는데 그의 모든 글이 말 그대로 읽을 만한데 내 취향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 말로 절친이었던 김치수를 언급하는 대목이 참 좋았다. 김현에게 김치수는 그냥 친구가 아니라 정말 친구였다. 이 글 속의 김현은 그저 친구가 가져온 과일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술병 환자일 뿐이고, 김치수는 친구가 또 아플까봐 휴일을 기꺼이 내어주는 다정한 몽고추장이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교의 선생(김치수: 문학평론가)인데, 얼굴이 시커멓고 몽고추장이라는 괴상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내가 술병으로 한 일년을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보던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관악산에 등산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 . .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면서 그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숨이 가빠서 그런 것이지만, 숨이 별로 가쁘지 않은 요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침 7시에 만나 별말 없이 산길을 걷는다. 그가 쉬자고 하면, 어느 틈엔지 숨이 목까지 차 있다. 그는 참외나 사과, 배를 꺼내 깎아 반쪽을 나에게 준다. 그는 어린애 달래듯, 이젠 잘 걷는데라고 말한다. 거의 매번 되풀이되는 칭찬이다. 어린애 달래듯, 혹시 내가 이젠 못하겠다 하고 나자빠질까봐 하는 소리다. (54-55)

  이렇듯 김현은 친구 김치수를 이야기하며 친구를 바다에 빗댄다.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 좋은 친구도 그러하단 이야기다. 이렇듯 근사한 우정론이 있는가 하면 ‘타자의 철학’이라는 부제 아래 쓴 짤막한 글도 눈길을 끈다. 타자의 철학: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65). 그렇고말고. 때론 돌이나 풀보다도 못할 수도 있다.

  김현은 갔지만 책은 남았고 모처럼 유익하고 즐거운 독서를 했다. 그 동안 너무 안 읽어서 이토록 신이 난 걸까. 이제부터는 책을 보는 법을 읽지만 말고 책을 좀 읽어야겠다. 시작하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시장미 2008-12-2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 시간이 되셨군요? ^^ 리뷰도 참 좋네요. 요즘 저도 책 읽는 시간이 참 즐거운데, 리뷰를 쓰려면 왜 눈앞이 깜깜해 지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리뷰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책만 읽지말고 리뷰좀 써야겠다. 시작하자.' ㅋㅋ

깐따삐야 2008-12-29 14:14   좋아요 0 | URL
저는 메뚜기도 아니면서 겨울 한 철 많이 읽고 다른 시기엔 독서 기록이 듬성듬성이랍니다. 꾸준해야 하는 거고 그러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 되네요.

김현의 글이 지성의 패치워크라면 장미님의 글은 사랑의 패치워크랄까.^^ 풍성한 페이퍼와 리뷰로 따땃한 겨울 보내자구요.

웽스북스 2008-12-2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깐따삐야님. 올 한해 읽기에 참 게을렀다는 생각에. 달달하게 감도는 것들만 좋아하고, 나머지 부분에는 많이 게을렀다는 생각에, 부끄럽구 그래요. 으.

함께 시작해요. 깐따삐야님의 리뷰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요 ^_^

깐따삐야 2008-12-31 00:48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은 많이 읽지 않았나요? 페이퍼를 리뷰로 봤나. 그나저나 우리 연말에만 반성하지 말고 이젠 정말 열심히 읽기로 해요! ^^

순오기 2008-12-2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느라 여유있게 책읽을 시간이 없었던거죠~ 결혼도 한 몫 했을거고요.^^
난 알라딘서 노느라 책을 못 읽으니 만날 어린이그림책 리뷰나 쓰는 거고...ㅋㅋ
초등학교도서실에 학부모 도서 구입할 때 사놓고는 제대로 안 봤어요.ㅜㅜ

깐따삐야 2008-12-31 00: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역시 순오기님은 옳은 말씀만 하신다니깐요!! 근데 다 핑계구요. 사실은 게을렀던 거죠 뭐.
아마 순오기님이 올리시는 그림책 리뷰를 보면서 알라딘의 어머니들이 도움 많이 받으실 걸요. 순오기님처럼 잘 쓰시는 분도 드물구요.^^

개츠비 2009-01-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새해 선물이로군요..^^ 올해두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깐따삐야 2009-01-07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선물도 받았는데 올해는 정말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글샘 2009-01-0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현보다 김치수가 훨~~ 좋아요~
축하합니다~

깐따삐야 2009-01-07 11:55   좋아요 0 | URL
한국문학에서는 워낙에 김현과 김윤식의 평론이 독보적이다보니 김치수의 평론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어요.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 모든 걸 떠나서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축하 감사합니다.^^

이매지 2009-01-0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집에 있는데 계속 미루고 있네요 ^^;
저도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그나저나 깐따삐야님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깐따삐야 2009-01-07 11:58   좋아요 0 | URL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야금야금 곱씹다보면 참 맛있고, 멋있는 책이에요. 감사하구요. 이매지님도 올 한해 즐거운 독서 많이 하시길요.^^

네꼬 2009-01-06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리뷰 너무 맘에 들어서 별찜했어요.
함께 시작해요. 깐따삐야님의 리뷰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요 ^_^ 2
그리고 축하드려요.
:)

깐따삐야 2009-01-07 12:00   좋아요 0 | URL
별찜까지! 감사합니다아. 확실히 좋은 책을 읽으면 리뷰 쓸 때도 즐겁고 잘 써지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9-01-0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합니다~~
원론에 집착않기^^

깐따삐야 2009-01-07 12:0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혜경님. 감사합니다. 김윤식에 대한 그 평을 보고 바로 책을 질러버렸다니깐요.^^
 
길 위의 책 - 제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겨울, 블로그』를 읽고 나서 ‘강미’란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현직 교사이기도 한 작가는 꾸준히 청소년 소설을 써오고 있는데 『길 위의 책』으로 제3회 푸른문학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겨울, 블로그’보다는 ‘길 위의 책’이 더 좋았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유난할 것도 없는 도서반 여고생의 일상이지만 긴 장편을 쓰면서 단 한 문장도 쉽게 쓰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만큼 정갈한 문체가 돋보였다.

 소설은 도서동아리 회원이 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책이 안내하는 세계에 눈뜨고, 조금씩 자신의 색깔과 꿈을 찾아가는 여고생 ‘필남’의 이야기다. 작가는 학생들의 실상을 항상 가까이서 체감한 교사답게 여고생들의 고민과 성장을 시종일관 세심하고도 따듯하게 바라본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미덕은 ‘나비물’, ‘멀기’, ‘버림치’, ‘잘코사니’와 같은 순우리말을 볼 수 있다는 것. 처음 들어본 우리말에 갸웃해져서 사전을 찾다보니 왠지 기분이 고양되더라는. 그 느낌에 맞게끔 참 잘도 지었구나 싶었다.

 또한 모범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도서동아리의 전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변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한 해 동안 읽을 성장소설 목록을 만들어 함께 토론하고 여러 행사를 준비하며 우정을 나누는 가운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훌쩍 성숙해 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도 풍부한 시기에 입시 공부를 하느라 ‘외딴방’과 ‘길버트 그레이프’를 놓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필남도 그러하거니와 지금의 십대는 대체로 목표의식이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이나 희망 없이 그저 학교와 집을 오갈 뿐이다. 어느 선생은 현실이 너무 편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지금의 십대가 그저 편안하게,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다. 가족이나 성적이나 친구관계에서 날마다 상처받고 상대적 빈곤감 속에서 살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게 배부른 소리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지금을 사는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194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과 영화를 많이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와 액션에만 주파수가 고정되기 전에 내가 아직도 잊지 못한 십대 시절의 책들을 그들의 길 위에 놓아주고 싶다.

 92년도 청목에서 나온 ‘생의 한가운데’의 두 번째 페이지에는 “정감이 깃든 눈을 가진 **야.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이라는 글귀가 남겨져 있다. 십년도 더 지난 책이다 보니 아무리 아세테이트지로 싸서 책장의 맨 안쪽에 모셔두었다 해도 누렇게 빛바랜 페이지들이 그간의 세월을 여실히 드러낸다. 소설 속 정현희 선생님을 보면서 당시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셨던 담임선생님을 떠올렸다. 그 때 선생님은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어렸었다. 아담하고 조용한 분이었는데 어느 가을 날, 나를 부르시더니 ‘생의 한가운데’와 ‘죄와 벌’을 선물해 주셨다. 얼마 전 ‘제인 에어’를 읽었냐고 물으셨을 때 ‘읽었다’고 대답했던 것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중학교 3년을 마칠 때까지 내게 많은 말씀을 해주신 것도 아니고 그다지 활발하거나 살가운 분도 아니었지만 뜻밖의 책 선물과 글귀만큼은 내 마음 속에 오롯이 남아서 큰 힘이 되었다. 나중에 민음사에서 나온 ‘삶의 한가운데’를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어렸던 그때보다 책장은 더 잘 넘어갔지만 처음의 감동을 앞지르진 못했던 것 같다.

 십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일 초의 지체도 없이 아니오, 라고 말하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잠깐씩 그립기도 하고 선생님이 보고 싶기도 했다. 책을 읽고 빌리느라 점심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던 도서관 정경도 떠오른다. 책에 있는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던 도서위원 오빠도 생각난다. 뭘 보남? 내가 책 훔쳐가게 생겼남? 하는 눈빛으로 뾰로통하게 응대해주곤 했었는데. 이 책 한권으로 사계절 선선하던 시골 학교 도서관과 그 안에서 블라우스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책 읽기에 빠져들던 어린 내 모습을 회상할 수 있어 다정한 시간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필력과 집중력이 남다른 작가란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부터 전경린을 읽지 않았다. 나 자신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탓일까. 처음엔 신선했던 그녀의 주인공들이 점차 일탈을 즐기는 이기주의자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깊이 있는 시선이라든가 밀도 있는 문체는 일단 읽을거리에 공감하고 난 다음의 문제였다. 평범한 일상의 대척점에서 뜨거운 몽상가들로 살아가는 전경린의 여자들에 대해 조금 반감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성 전반에 대해 살기 어린 콤플렉스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나물에 그 밥인 소설만을 양산해 내리라고 내 멋대로 짐작하기도 했다. 얼마 써내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몇몇 여류작가들에 비해선 근기도 있어 보이는데다 신들린 듯 아름다운 문장과 마주할 땐 속으로 감탄하기도 했지만, 혼자만 특별한 척 하는 게 못내 아니꼬웠는지도 모르겠다. 박완서 할머니도 연세 드셔가며 점점 더 교만해지시는 같아 못마땅하던 차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권여선한테 슬슬 관심을 가져보려던 중이었는데 이번에 만난 전경린의 소설이 어라, 나쁘지 않더라는. 

 쿡쿡, 웃음이 터지는 대목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간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땐 입을 앙 다물고 미간을 찡그린 채 불편해하며 읽었는데 ‘엄마의 집’은 따듯하고, 담백하고, 간혹 깜찍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줄거리는 아니다. 대학생이 된 딸에게 공산당 선언을 읽었냐는 질문으로 인사하는 386컴퓨터 같은 아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용기백배하여 결혼하고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져버린 엄마, 그리움을 안으로 모아 쥔 채 일찌감치 세상의 밑바닥을 봐 버린 아이처럼 조숙하게 자라온 호은, 그리고 제비꽃이란 이름의 토끼 한 마리를 들고 엄마와 내가 사는 집으로 찾아든 아빠의 딸 승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조심스럽거나 서먹해지기 마련이고,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엉성하게 엮인 호은이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싶은 유화를 못 그리고 생계를 위해 케릭터를 디자인하는 엄마를 보며 승지는 ‘아줌마는 타락했다’고 말한다. 공산당 선언스러운 발언이다. 친딸도 아니면서 승지는 아빠를 닮아있고 시대착오적인 아빠에게 호의적이다. 확실히 ‘생계노동’을 하는 엄마보다는 ‘노동운동’을 하는 아빠에게 사람들은 마음으로나마 더 관대하다. 그래도 스무 살이 되었다고 리본 달린 구두를 사주고 동그랑땡을 만들어주는 건 엄마다.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아빠의 세계와, 밥은? 이라고 짧게 묻는 엄마의 세계는 한때 사랑했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화해와 공존만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조숙하고 냉정한 척 하고 있어도 아직 마음의 물고가 닫히지 않은 소녀들은 서로 간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물결을 놓치지 않는다.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놀랄지언정 승지는 딱 한번이나마 ‘엄마’ 소리를 하고, 엄마는 처음의 언짢음과는 달리 호은에게 승지의 언니가 되어주라고 말한다.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라는 교집합을 통해 그들은 관계가 규정하는 틀을 벗어나 동료가 된다. 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p.279 헤어짐을 아픔으로써가 아니라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호은.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의 운명이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어빠진 레몬 같지만, 그것을 달콤하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건 각자의 몫일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하염없이 먹먹해졌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의 눈매가 달착지근해지고 입매 또한 상큼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사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땐 힘을 빼도 너무 뺀 것 아닌가, 트렌드의 파도타기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뜻인가, 잠깐 실망할 뻔도 했다. 지난 386세대와 근래의 N세대를 읽어내는 포즈도 그다지 충실해 보이거나 매력적이지가 않아서 역시 전경린은 ‘문장’에는 성숙한데 ‘문제’에는 미숙하구나. ‘사랑’에는 유심한데 ‘사연’에는 무심하구나. 혼자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팡질팡 소녀 같은 엄마와 시큰둥한 노파 같은 딸들의 까칠한 동거담은 다 읽고 났을 때 그 뒷맛이 꽤 괜찮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전경린이 주조해내는 여자들은 아무리 밥을 위해 뛰어다니고, 딸내미의 체육복을 사다주고, 잡채와 동그랑땡을 만들어도, 애인을 만나러 가기 전, 제비꽃마냥 차려입은 달뜬 실루엣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그녀들이 화려한 비극이 아닌 누추한 희극의 주인공들로 거듭나면서도 그 보랏빛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이 작가를 다시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게다예요 2008-01-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긴 했는데 전경린을 읽은지 하두 오래라 선뜻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전경린의 여자들은 언제나 몽롱하기만 했는데, 이번엔 좀 다른가봐요. 리뷰 잘 읽었어요~

깐따삐야 2008-01-24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망설이다가 그래도 그간의 갑빠가 얼만데~ 하는 생각에 질렀죠.
이번에도 제멋대로인 건 여전하구 정신상태도 몽롱하긴 한데 그녀의 딸내미들이 아주 당차고 귀엽더라구요.^^

비로그인 2008-01-2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롱하다'의 의미는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겠죠?

깐따삐야 2008-01-25 09:31   좋아요 0 | URL
음... 당최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사람처럼 안 보인다는 의미랄까요?
써놓고도 영 부족함을 느껴요. 한번 읽어보세요. ^^
 
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사람의 성격은 각각 다르다. 사람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마음이 아니라 성품이며, 그 성품은 나아갈 행동의 향방을 결정지운다. 마음과 성품의 차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심술을 부리거나 해를 끼쳤던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누구나 비슷하다. 다만, 여리고 무른 사람은 조금 속상해 하기만 할 것이다. 독하거나 오기가 있는 사람은 때를 보았다가 복수의 계기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누가 더 선한가. 아무도 선하지 않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 중에 곤란한 궁금증이 생기면 꼭 나를 시켜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멋 모르고 응해주다가 나중에 사람들의 낯빛을 보고 아차, 싶었더랬다. 나의 착오는 수줍음과 내숭의 차이를 혼동한 데에 있었다. 진정 수줍은 사람은 잇속을 챙기는 데에도 서툴 뿐더러,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한다. 교묘한 우회전법으로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잇속을 챙기는 그를 보며 내가 배운 한 가지는 가만히 있을수록 이익이 가마니로 떨어진다는, 참으로 게을러빠진 교훈이었다. 그를 A로 놓고, 그 가운데 내가 있고, 또 한 사람의 동료인 B가 있었는데 A와 B는 여건상으로나, 연령상으로나 친밀하게 지낼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음에도 융화되지 못했다. 나중에 이유를 깨닫고 보니 간단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닮아 있었기에 말도 섞지 않은 채 미리 알아보고 경계했던 것이었다. 스물넷 이후였던 것 같다. 사심 없는 교제라는 것에 대해 사심 있는 회의를 품게 된 것이.

 나쓰메 소세키는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인간의 속마음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심리소설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슈테판 츠바이크나 아르투어 슈니츨러처럼 적나라하거나 악랄하지 않다. 그의 화자들은 얌전한 글방도련님이자 정갈한 에고이스트이다. 인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표정으로 가릴 수 있을 만큼 절제되어 있고, 사사로운 감정과 사회의 윤리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을 만큼 정제되어 있다. 웃음과 눈물의 자유를 외면하고 있는 소세키의 백수들은 고상하지만 고통스럽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형의 경제력에 기댄 채 유유자적하고 있는 고등룸펜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근대 일본에서 빵을 위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는 고귀한 한량인 동시에, 아버지가 누누히 강조하는 '성실'과 '열의'에 무관심한 사회 부적응자이다. 대학 시절, 진심 어린 소통이 가능했던 친구 히라오카가 사회에 나온 이후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간 느낌을 받으며 다이스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은 히라오카만이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았다. 대지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금세 토막토막 분리되어 버렸다. 집 안에 있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문명은 인간을 고립시킨다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 히라오카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의 다이스케는 남을 위해서 울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점점 울 수가 없게 되었다. ... 서구 문명의 압박을 받아서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며 격렬한 생존 경쟁의 무대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을 다이스케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다. -p.142 문명에 동화되기엔 너무 데카당하지만, 그 데카당함을 유지하려면 재빨리 시류에 편승하여 자본을 쥐게 된 아버지의 경제력에 의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다이스케의 운명이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덕목에 반하는 그의 '나태'와 '무관심'은 스스로의 아이러니한 운명에 맞서는 최후의 자존심일지도.

 이러한 다이스케로 하여금 빵을 구하러 가게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히라오카의 부인 미치요이다.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죽은 친구에 대한 무거운 부채감과 결단력 부족으로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히라오케에게 미뤄 버린다. 직업사회의 경쟁에서 번번히 실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히라오카는 병든 아내 미치요에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게 되고, 내막을 파악한 다이스케는 미치요에 대한 옛 감정이 되살아나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갈등한다. 기대했던 집안과의 결혼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이스케가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아버지와 형은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린다. 이제 다이스케는 푹푹 찌는 더위 속으로 직업을 구하기 위한 발걸음을 뗀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네, 라는 삼각관계의 통속성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심플한 플롯 안에 정교하고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다이스케의 심경이다.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담담한 어조로 자기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마음을 읽어가는 과정은 차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한편으론 점점 문명화 되어가는 일본 사회에 쉽사리 동화될 수도, 전복할 힘도 없기에 시종일관 어정쩡한 포즈만을 취하고 있던 다이스케가 미치요를 동정하고 그녀에게 스스로를 거는 행위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가 않는다. 과거의 비겁한 자신을 부정하고, 물신화된 결혼을 종용하는 아버지와 형을 부정하고, 실패에 찌들어 사랑을 망각한 히라오카를 부정하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린 적이 없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경제 사정으로 인해 신앙도, 믿음도 잃어버린 일본사회를 부정하는 반항의 행위는 아닐까. 일자리를 구하러 나와 전차를 탄 다이스케. 그가 새빨갛게 타오르는 더위 속에서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은, 숨막힐 듯 후텁지근한 문명에 대한 구토의 징후처럼 느껴졌다.

 다이스케는 '마음'에서 유서를 남기고 떠났던 선생님의 과거 분신일 듯 싶다. 쉬이 자존심을 버릴 수 없는 자는 고독해지고, 양심을 외면할 수 없는 자는 우유부단해진다. 다이스케는 바깥 사회에 적응하는 대신 내면 세계에 길들여짐으로써 때로 비웃음을 면치 못한다. 들여다보면 대개 거기서 거기인 게 사람의 마음이지만 성정에 따른 선택에 따라 누군가는 하리오카가 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다이스케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다이스케를 비웃는 주변 인물들을 조롱하는 동시에, 주변 인물들을 무시하는 다이스케를 반성하게 함으로써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거침없지만, 결코 터프하지 않다. 한 가지도 제대로 버릴 줄을 모르지만, 참 양심적인 작가다. 그의 미덕은 격조 높은 이율배반에 있는 듯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1-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시간은 오래 걸렸을텐데 나는 짧게 읽어버릴 때, 쓴 사람에게 미안하지요.
지금도 미안해요,대충 눈으로 훑어버리는것 같아서.

깐따삐야 2008-01-22 09:11   좋아요 0 | URL
승연님의 고마우신 말씀에 길게 써서 죄송하단 생각이 듭니다.^^;

치니 2008-01-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의 리뷰도, 소세키처럼 터프하지는 않지만 세심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일품 리뷰네요 ~ ^-^

깐따삐야 2008-01-22 15:58   좋아요 0 | URL
이궁. 감사합니다.^^ 치니님 뽐뿌질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