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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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돼지꿈』이후 다시 만나는 오정희 작가의 단편집이다. 앞선 책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여자로서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읽고 나면 언뜻 고루하거나 밋밋한 이야기 거리처럼 보이는데 그것을 빚어내는 솜씨가 역시 대작가구나 싶었다. 현실에 발 딛지 못하고 공중 부양하듯 무리한 상상력을 시도하는 젊은 작가들의 글을 대하다가 이렇듯 글쓰기의 고수와 재회하면 독자인 나마저 지상으로 안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애호박과 소고기를 주재료로 만드는 ‘편수’라는 담백한 만두가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자극적인 맛을 최대한 배제한 깔끔한 편수와도 같다.

  작가가 그려내는 여인들의 모습을 읽다 보면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 앞으로 더욱 나이 먹어갈 내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 지나가는 여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나서야 나는 결혼과 잘 맞지 않는 인간인가보다, 생각했었다. 노력하거나 기다려 볼 틈도 없이 불편해하고 어색해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주변으로 고개를 돌려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 삐걱대는 생활 속에서도 묵묵히 마음의 갈무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보였다. 속속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연과 회한 없는 이가 없는데 혼자만 너무 엄살을 부리는가 싶었다.

  허구라 해도 글 속에는 어떻게든 작가의 모습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다른 여자들처럼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 한편으로는 여전히 소싯적의 추억과 그리움을 곱씹는 여자이기도 한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환갑의 세월을 지나오며 ‘환멸과 슬픔과 쓸쓸함 또한 우리의 생을 살게 하고 보다 높이 들어 올리는 힘이며, 인생은 바래지 않는 순정한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존경스럽다. 울다가 웃는 소녀를 본 듯하다. 이처럼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 그 모두를 삶이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숨 쉬는 일이 좀 더 편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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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문학터치 2.0 -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
손민호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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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먼저 읽은 신형철의『몰락의 에티카』가 다소 현학적이었던 탓일까. 신문기자가 쓴 단문일색의 발랄한 작가론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살랑살랑 가벼워지는 느낌. 두 작자는 주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신형철의 주석은 주석에도 새로운 주석이 필요할 법 한데 손민호의 주석은 작가들에 관한 뒷담화 일색이다. 때로 촌철살인의 엉뚱한 직관이 성실한 통찰보다 구미에 더 맞을 때가 있다.

  손민호는 이 책에서 김연수, 김중혁, 김애란, 권여선 등 동시대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서른 명의 젊은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관상쟁이마냥 꼼꼼하게 그들의 외모부터 훑고, 공들여 작품을 읽고, 같이 만나 술도 한잔 하고, 요즘 잘 안 풀리는 건 건 뭔가 속내도 나누고.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어묵꼬치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어묵을 쏙쏙 빼먹듯 따끈따끈하고 이색적이다. 그의 친화력은 박민규의 주옥같은 말도 건진다. 소설을 읽고서 한참 뒤 만났을 때 나는 왜 하필 기린이냐고 물었다. 박민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본주의가 가장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40) 그래서 문단의 기린아인가. 여하간 그 문단의 기린아 박민규가 둘도 없는 공처가란다. 무릎을 꿇고 예쁘게 운동화끈을 매주는, 잠자리안경을 쓴 장발의 남편이라니. 어딘가 그로테스크하다.

  중간 중간 분홍색 페이지에 젊지 않은(?) 작가들, 김훈이나 마광수를 언급하는 대목도 좋았다. 마광수의 박사 학위 주제는 뜻밖에도 윤동주 연구였다고. 내가 아는 교수님 중에도 뜻밖에 오스카 와일드로 학위를 받은 분이 계셨는데 우리는 모여서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떠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광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고 겉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상식의 재확인. 이처럼 작자가 책상물림이 아니라 그런지 한껏 귀를 열어놓고 편견을 비트는 에피소드들 역시 흥미롭다.

  한편 손민호 기자도 한때는 문학청년이었다는데 글에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문학에 끝끝내 목을 매기엔 너무 영리하고 혈기왕성한 것 같다. 원룸의 모니터 앞에 앉아 소설의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해장국집에서 작가들과 술을 마시며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상하는 편이 훨씬 더 제격인 듯. 아니면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변해간 것일까. 어쨌거나 요즘의 젊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시종일관 진솔하고 따듯한 시선이 좋았다. 나 역시 이제는 읽을 만한 것이 없다, 세월을 견뎌낸 고전만한 게 없다, 를 주장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보수적인 시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여기의 젊은 작가들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부지런히 암송되고 있기를 바란다.”(12)는 작가의 바람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직 젊고, 살아가야 할 세월과 써야 할 글들이 많은 그들에게 엄격한 비판은 필요하겠지만 섣부른 비난은 말 그대로 섣부를 테니 말이다.

  이번 독서는 뒤통수를 쨍하니 때리는 새로움이 있었다기보다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든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저런 얘기까지 여기에 써도 되나 싶을 만큼 낱낱이 까발리되, 그 까발림이 홀딱 벗기기가 아니라 도리어 본래의 색을 찾아주려는 노력과도 같은 글쓰기. 문학과, 문학을 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자칫 잡설로 비칠 수도 있었으리라. 특히 신문기사를 쓰는 기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깔끔하고도 생생한 문체가 매력이었다. 필요한 엑기스만 감칠맛 나게 살려놓은 듯한, 구경미나 백가흠을 읽지 않은 독자라도 마치 그들을 사겨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친화력 있는 글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손민호 기자는 김훈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데 나는 김훈보다 손민호 기자의 글이 더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뜨거운 가슴과 부지런한 발로 문학인들과,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메신저가 되어 주십사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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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2-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재밌을 것 같아요. 흐흐흐~

깐따삐야 2009-02-03 23:34   좋아요 0 | URL
동시대 젊은 문인들이 대거 출연해서 읽는 내내 반갑고 즐거웠어요.^^

Mephistopheles 2009-02-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삐딱하게 보면 문학계의 김구리인건가요..ㅋㅋ

깐따삐야 2009-02-03 23:3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아들 동현이를 바라보는 김구라인 거죠. 아들에 관해 말할 때도 가차없이 객관적인데 어딘가 새록새록 애정이 묻어나는. 아빠 김구라. ㅋㅋ
 
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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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르그리트 뒤라스 하면 우선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연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뒤라스는 젊은 날, 은밀하고 다채로운 은유로 <연인> 속의 자신을 감췄다. 그리고는 이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고백했다. 제인 마치가 열연했던 프랑스 소녀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어른이 채 되기도 전에 사랑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는 것. 끔찍한 일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백 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모데라토보다는 안단테로 읽히는, 우아하고 섹시한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영화를 염두하고 쓴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활자보다는 정황과 분위기에 매료되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상류층의 정숙한 여인, 안은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치정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가 있고, 피범벅이 된 여자를 애무하며 슬퍼하는 남자가 있다. 안은 그처럼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목도한 이후 공장 노동자인 쇼뱅과 함께 그들의 사랑을 재현한다. 그들은 카페에서 만나 죽은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를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언어유희와도 같은, 기묘한 대화를 나눈다.

  그 여자는 다시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여자의 행동을 눈으로 쫓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알아차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을 들어 그 여자 손 위에 포개놓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서로 스쳐갔다. 지금과 같이 소망 속에서 말고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손은 죽음의 포즈로 굳어진 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116).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스쳐가는 인연. 단 한 번의 성마름도 없이 모데라토 칸타빌레, 보통 빠르기의 절제된 템포로 연주되는 사랑.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120). 안은 쇼뱅과 더 나아가지 않는 대신, 과거의 안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갑작스런 일상의 균열, 그 틈을 비집고 쳐들어오는 자유에의 갈망과도 같다. 낯선 세계로의 진입과 동시에,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일깨우고 원래의 나보다 더욱 나처럼 느껴지게끔 만드는, 전인적인 자유, 그리고 변화. 안은 아들에게 말한다. “어떤 때는 내가 널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 같아. 네가 진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니까(41).” 그렇듯 생경해지곤 한다. 무언가에 심신이 매혹되어 일상 저 너머로 이동하는 찰나, 익숙했던 일상의 요소들이 거짓말처럼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역으로, 열렬히 매혹되었던 그 무언가를 향해 똑같은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내가 널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 같아. 네가 진짜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니까. 그리고는 뒤따르는 의문들. 사랑하는 내가 나일까. 살아가는 내가 나일까.    

  이런 사랑, 도 있노라고 한번쯤 권하고픈 작품이었다. 그리고 뒤라스의 다른 소설들을 더 찾아 보고 싶어졌다. 한편으론, 뒤라스의 모든 사랑은 <연인>, 그 첫사랑의 도돌이표에 지나지 않겠구나, 하는 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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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2-0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시기에 뒤라스를 읽으셨네요^^
'히로시마 내 사랑'도 느낌이 비슷해요. :)
아마도 뜨겁게 사랑했던 건 그 중국남자가 아니라 뒤라스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연인'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여준 뒤라스기에 다른 작품은 오히려 소품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민음사에서 나온 <연인>의 해설은 심리학적 개념을 들이대면서 그 어린 소녀를 무슨 변태성욕자쯤으로 몰아세우고 있던데, (전 그래서 전문가가 싫어요) 절망과 수치, 죄의식, 중독, 애욕...에 대해 이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도 드물다고 봐요. 사소설이란 점에서 아니 에르노와 닮았다고 볼수도 있지만 아니 에르노의 몽상과는 정말 달랐어요.

깐따삐야 2009-02-02 11:54   좋아요 0 | URL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사랑의 절대치를 경험했기 때문일까요. 노년에 이르러 발표한 <연인> 이외의 작품들은 알리샤님 지적처럼 다소 소품 같기도 하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만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해요.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고 <연인>을 가장 마지막에 읽었다면 느낌이 과연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요.

흐업. 변태성욕자라니. 제 눈에 비친 <연인>은 오히려 사회학적인 소설이었어요. 백인 집단에서는 가난한 최하류층에 속하고 그렇다고 베트남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프랑스 소녀. 그렇듯 이중소외를 겪고 있던 사춘기 소녀가 지푸라기 붙잡는 심정으로 빠져들었던 사랑. 그 안쓰러운 일탈을 변태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군요.

알리샤님 말씀처럼 뒤라스는 아니 에르노와 비슷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집착이나 격정과는 많이 다르죠. 저에겐 뒤라스가 더 잘 맞아요.^^

Mephistopheles 2009-02-0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일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의 행위와 방식을 "연인"이라는 그 시작점과 함께 계속 연장되는 분위기 인건가요??

깐따삐야 2009-02-02 12:00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느낌이 계속 들어요. 감수성 풍부하고 명민한 소녀가 이미 사춘기에 <연인> 속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나머지 사랑은 모두 소품에 불과하지 않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다가와도 결국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요. 뭐든 빨리 경험하거나 안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라는, 노인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다락방 2009-02-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읽을래요!! 안그래도 연인 읽고 뒤라스 또 읽어 보고 싶었어요!

깐따삐야 2009-02-05 19:38   좋아요 0 | URL
이 책 분위기가 묘했어요. 행간의 무드를 천천히 느껴야 할 책. 읽어보세요.^^

다락방 2009-02-06 08:53   좋아요 0 | URL
땡스투 저예요 ㅋ

깐따삐야 2009-02-06 17:0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감사해요. 그나저나 이 책이 다락방님께도 재밌어야 할 텐데 말이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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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랄하게 주고받는 핑퐁 같은 스토리. 상큼하고 바삭한 쿠키 같은 대화. 다소 허무한, 그럼에도 더 이상을 바라기도 뭣한 단출한 결말. 잘못 보낸 이메일 한통으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에미와 레오의 러브스토리는 인터넷과 이메일이 보편화 되면서 여러 장르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참신했다. 한편, 읽는 동안 스쳐가는 기억들이 있었고, 그 순간 속에 머뭇대느라 책장을 잠시 덮어두기도 했고, 책을 고른 것은 나였지만 이 책이 왜 내게로 왔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분명코 추억으로 남을 독서였다.

  생활의 안녕을 위해 꼬박꼬박 살고 있다지만 우연하고도 모호한 비밀 하나 쯤 간직하지 않은 삶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일상의 습관이 주는 안락에만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울 것 없는 생활회화의 세계에서 잠시잠깐 이탈하여 깊숙한 마음의 목소리와 목소리가 맞부딪쳐 불꽃이 일어 그 온기로 가슴을 촉촉이 데우고픈 열망.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그 비효율적 열망에 때때로 시간과 에너지와 영혼까지 내어바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우리에게 그처럼 흥미로운 대화에 동참할 할 수 있고, 다른 이의 매력을 상상하고 찬미할 줄 알며,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 세상엔 아마 사랑도, 예술도 없었을 것이다.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와, 레오와, 작가는 결국 에미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을 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에미가 에미가 아닌 사람이 되거나, 진심이 사라지거나, 두 사람의 추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만의 유일한 능력인 사랑은 때때로 현재의 인습 그 너머로 넘어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적이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유혹에 연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도 그처럼 당장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이 결국, 보이지 않는 진실만큼 큰 공명을 일으키지는 못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루시드 폴이 노래하듯 몸집만한 선물보다 더욱 컸던 내 마음, 그건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공명에 이끌려 발 디딘 현실로부터 둥둥 떠오를 수도 없는 일. 어쩌면 발칙한 상상과 평범한 일상이란 서로 맞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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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도 몇번씩 발칙한 상상이라도 하고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

깐따삐야 2009-01-24 11:06   좋아요 0 | URL
하루에도 몇번씩은 아니고 저도 그냥 아주 가아~끔만.^^

웽스북스 2009-01-2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깐따삐야님다운 리뷰. ^_^
이 책을 우리 회사 사람 몇에게 추천했는데, 다들 그저그런 유치한 사랑얘기라고만 하는 통에, 거의 너는 뭐 이런 유치한 러브스토리가 좋다고 난리니? 라는 말없는 압박을 받았던 마음을 깐따삐야님의 리뷰가 달래주어요. 흐흐. 깐따삐야님과 후버카페 만남을 해봤어도 좋았을텐데. 그러기엔 내 사진이 너무 많다. ㅜㅜ

다락방 2009-01-23 08:2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유치하다'는 평이 제 동생이 말한 '불륜소설'이란 것 보다는 훨씬 낫네요, 웬디양님. ㅜㅡ

깐따삐야 2009-01-24 11:1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스토리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안에 담긴 대화들이 알콩달콩 산뜻하고 재미나더라구요. 더 이상 특별한 소재도 아닌데 작가의 재주가 참 깜찍하단 느낌. 후버카페 만남은 안되겠지만 후진카페에서라도 만나 언젠간 즐거운 대화를.^^

다락방님- 흐업! 불륜소설. 바람이 부나요? 에서 바람은 그럼 그 바람이 아니고 그 바람이었단 말인가욥? ㅋㅋ

다락방 2009-01-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깐따삐야님의 레오면, 깐따삐야님은 우리의 에미인거죠? ㅎㅎ
추천해드린 책을 재미있게 읽으셔서 급 방실방실이요. :)

깐따삐야 2009-01-24 11:15   좋아요 0 | URL
창밖으론 눈이 내리고 다락방님 댓글은 로맨틱하고 이 책은 참 재밌었고... 다락방님의 추천도서는 참말로 믿을만하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레와 2009-01-2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후버카페를 꼭 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으흐~


깐따삐야 2009-01-24 11:16   좋아요 0 | URL
넘 재밌을 거 같죠? 으흐~

다락방 2009-01-25 20:30   좋아요 0 | URL
전 후버까페 해봤는데 말입니다. 므흣므흣 :)

깐따삐야 2009-01-27 13:06   좋아요 0 | URL
우왓! 정말요? 궁금궁금 :)
 
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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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을 만날 때가 있다.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구성이 아니어도 읽다가 자주 멈칫거리게 되는 소설. 『레이스 뜨는 여자』가 그랬다. 작가이면서 교사, 철학자이면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는 파스칼 레네의 이력처럼 이 소설은 아주 진부한 연애 이야기 안에 중요한 성찰들을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 ‘뽐므’는 단순한 여자다. 불행이든 가난이든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며 사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닮은 뽐므. 타고난 단순성에서 배어나오는 둥글고 매끈한 아름다움. 그러나 짐승처럼 순응하기만 하는 그녀에게 한 남자도, 독자도 그만 질려버리고 만다. 사랑의 기쁨을 상대를 위한 노동으로, 결별의 아픔을 거식증으로 표현하는 그녀. 소통과 교제의 가장 활발한 매개인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그녀는 존재하고는 있지만, 공존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뽐므와 같은 여성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이방인』의 뫼르소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충격보다 덜하긴 하나, 많은 부분 뫼르소의 누이처럼 느껴지는 그녀. 뽐므와 그녀의 어머니는 조잡한 궤변, 뒤이은 심리 묘사, 암시의 두께가 있는 소설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것이며, 아울러 그들을 무한히 능가하며 그들로서는 그 속의 깊이며 너비를 잴 길 없는 저희의 기쁨이나 괴로움의 거죽을 뚫고 들어갈 줄도 모르게 되리라. 그들은 자기네 이야기를 하는 책의 종이 위에서 아주 작은 벌레 두 마리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를 달아난다(20-21).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뽐므를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능숙함과 서투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여건의 불평등으로 인해 교육과 사교로부터 애초에 배제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는 하류 계급의 여성. 뽐므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순수한 무지로부터 비롯되지만 무지가 더 이상 미지가 아닐 때, 사람들의 호기심이 채워질 대로 채워진 이후, 그녀는 쉽게 버려진다. 뽐므는 그 남자를 꼭 찾아가 보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 . . 그가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권태로워했다고, 자기가 자주 그를 성가시게 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기와 얽힌 불쾌한 추억을 지니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133).  

  그러나 남자는 다른 꿈을 꾼다. 그는 뽐므를 자기가 꿈꾸어 오던 것, 즉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 . . 아울러 자기가 그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음을 인정하면서 뿌듯해할 것이다. 지금 느끼는 수치심과 약간의 회한을 격에 맞게 변모시킬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약점은 ‘작품’으로 승화할 것이다. 독자는 감동하게 될 것이다(138). 이처럼 레이스 뜨는 여자는 언어라는 허영에 찬 직조물로 재탄생한다.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 없는,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위선에 찬 폭력 앞에 무력하게 제조되는 존재, 뽐므.  

  당연의 세계라고 믿고 있는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오묘하고 특별한 책이었다. 파스칼 레네는 마치 스스로를 표현할 줄 모르는 뽐므들을 위해 이 소설을 헌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침묵 속에 갇혀버린 갖가지 비의들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언어에 도취되느라 그 '있음'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메시지만으로도 참 귀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의 밀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실을 비틀어 다시 진실을 보여주는 솜씨 또한 빼어나서 내겐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작가가 될 듯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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