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고르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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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많이 노골적이다. 남편 고르기. 쇼파에 앉아 이 책을 읽던 나를 향해 빗발치던 비웃음 섞인 눈총들. 약 십 년 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와 흡사한 분위기였다. 가족들은 나를 아직도 어른으로 보지 않고 있다. 막내이긴 하지만 이제 그다지 막무가내는 아닌데 늘상 대놓고 어린애 취급이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에 대해 열변이라도 토할라치면 하여간 말은 잘해, 못박아 버리시고 아빠는 더 들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듯 귀를 닫고 계신 듯 하며 오빠는 가끔 볼 때마다 꼭 한 두번은 머리를 툭툭 쳐대곤 한다. 작가 하 진이라면 아마 이런 상황을 기막힌 반전으로 처리하겠지. 나의 상상력은 가족들이 놀랄 만큼 진짜 멋진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 나 결혼할래, 라고 외치는 것에서 진부하고 유치찬란하게 끝이 난다면, 하 진은 뭔가 아주 배꼽 빠질 듯 재미있거나 가슴이 뜨끔할 만큼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반전을 선사할 것 같다.

  이 책은 좋은 남편을 고르는 백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이 아니다. 우연히 모르는 이의 블로그에 흘러들어갔다가 하 진이라는 작가에 관해 대단히 호평을 해놓았기에 일단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믿고 책을 구하게 된 것은 그 블로그 주인장이 쓴 다른 글들 때문이었다. 이 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책을 읽어봐도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선택은 옳았다. 국내에는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와 <남편 고르기> 두 권의 책이 출간되어 있는데 두 권 모두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로알드 달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군더더기 없이 상큼하게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찡하고 뜨뜻한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단편들이었다. 작가의 손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니 작가가 스무 번 이상 원고를 수정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과연 그렇구나, 끄덕여졌다.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수공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감칠맛이 나는 것이구나 싶었다.

  책에 실린 단편의 소재들은 특별하지 않다. 마오쩌둥과 개방화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는 중국 변방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개는 완고한 집단과 자유로워지고픈 개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일견 중립적인 톤으로 상황을 줄곧 묘사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부조리와 모순 탓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실함을 드러내고 마는 공산주의와 집단논리를 은근히 조롱하면서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과 선택에 손을 들어주는, 휴머니즘적 경향이 짙다. 과도기 속에서 빈부격차로 인해 피폐해지고 잔악해지기까지 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족족 등장하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공감할 수 있는 폭도 컸다. <남편 고르기>와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는 비슷한 소재와 형식이기 때문인지 어느 단편이 어느 책에 있었는지 두 권 모두 읽고 났을 땐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각 단편들의 수준이 고르게 훌륭하며 작가가 일관성 있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가 뚜렷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중국에 다녀온 덕분에 장면마다 등장하는 음식들이라든가 생활상들이 비교적 선연해서 그 재미 또한 쏠쏠했다.  

  고수가 차려놓은 맛깔스런 단편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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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2-0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작가로군요..
흐음.. 그러고 보니 전, 중국 작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일단, 보관함으로~!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쨍한데, 바람은 머리통 얼어버릴만큼 차갑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깐따삐야님!! ^^*

깐따삐야 2007-02-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처럼 햇볕은 쨍하고 바람은 찡한 날씨, 무척 좋아라 합니다. 레와님도 아프지 마시고 씩씩하게 지내세요. ^^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 1994 제1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절판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각은 사고의 마비를 가져온다. 어떤 논리가 납득이 안 가거나 이해되지 않을 때, 그 논리의 모순이나 한계를 찾기보다는 자기가 부족하여 그러겠거니, 모든 걸 자신에게로만 화살을 돌린다. 반대로 자기 자신이 제법 독특한 논리나 의미심장한 사유를 전개할 때에는, 자신의 학습이 얕아서 그렇지 이쯤이야 높은 교과를 수료한 이들은 이미 아는 바이겠거니, 스스로의 사유와 논리에 금방 시들해진다. 주체적인 판단이 습관적으로 유보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건 자격지심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자기 비하감이나 과장된 피해 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배움이 부족하다는 걸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에서 오는 엉뚱한 굴레인 것이다. 물론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특별히 인문적 기질이 강하고 그러면서 자긍심 높은 사람들이 그런 허방다리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바로 우리가 그러했다.-33쪽

그 해 여름은 길고 지루했다. 어딘지 귀익은 표현이다. 그 해 겨울은 춥고 어두웠다는, 이런 식의 회상조 어투들. 그 속에는 확실히 축축하고 쓸쓸한 어떤 것이 있다. 어느 정도 감정의 부풀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여하튼 버티어낸 자들만이 그런 말도 할 수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는 언제나 너무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꾸역꾸역, 어쨌거나 살아냈으므로. -44쪽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어리석음이다. 연애란 마치 죽음과 같은 것이어서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법이며, 알게 되는 경우란 이미 끝났을 때뿐인 것이다. 죽음과 다른 것이라면, 첫사랑은 그렇게 지나가지만 두번째 기회가 있다는 점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두번째 세번째 연애에서도 어리석음을 범하는지, 그건 첫번째 연애에서 충분히 상처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72쪽

무릎 한번 치고 대문 밖으로 나서니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렬히 반성하고 나서도 세상은 여전히 아득할 수가 있다. 어뜩 자기 허물 하나를 집어올렸다지만, 세상이 달라져 보이지 않는데야 그건 멍에로나 남을 뿐이다. 결국 모두가 자기 한계 속에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어쨌거나 그때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였다.-87쪽

한 가지 우리가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인 게 있다면 새 동거인이 보여준 인내와 끈기였다. 나중에 거듭 그 논쟁의 시간을 돌아볼수록, 우리의 반론을 받아내는 데에, 우리를 설득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에, 새 동거인이 보여준 인내와 끈기는 경탄할 만했다. 만약 우리 자신이 언젠가 새 동거인처럼 변모된다면, 그리하여 그 자리의 우리들처럼 완고히 도리질치는 상대를 향하여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면, 그때 새 동거인처럼 인내하고 절제하며 지침없이 자신의 신념을 피력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었다. 사악한 적들에게 용기를 갖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무지 때문이건 편협 때문이건 나름대로의 소신으로 무장되어 질타해 들어오는 자들과 마주선다는 건 정말 피로한 일일 것이다. 뒤늦게 그러한 점에 생각이 미쳤을 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공연히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201쪽

차츰 세상이 유형지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누군가의 볼모였다. 우리는 무언가 자복해야만 하는 위치에 몰려 있었다. 죄목도 모른 채 어느 날 잠자리에서 체포되어 캄캄한 밀실에 던져진 카프카였다. 심판은 있는데 죄는 없다. 카프카는 죄를 찾아야 했다. 자기의 고통과 수모를 납득하기 위하여 카프카는 스스로 자기 죄를 찾아내어야 했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자인하는 사형수만이 고통 없이 형장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평안해지기 위해 빨리 무언가를 자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분노나 오기 따위는 치워버려야 했다.
그것은 쉽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의 분노와 오기는 엷어져 갔다. 그러나 내내 걷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처구니없음. 무언가 어처구니없다는 그것. 기꺼이 자복할 마음이 돼 있었음에도 그 어처구니없음만은 끝내 치워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상처가 상처를 부화시켰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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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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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일찍 세상에 통달했어요. 사랑, 회한, 연민, 비겁, 비굴... 언제였더라. 서른넷이었어요. 그때 천진난만을 버렸죠. 특별한 계기? 없어요. 졸업한 느낌으로 평생 살았어요.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 순간순간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다 알지요. 그러나 스스로는 큰 재미가 없었어요. 사람을 만나도 흥분, 기대, 호기심, 이런 게 없었어요. 사람이라는 것의 한계를 깨우쳤달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 했어요."

  권수가 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던 책들을 정리했다. 왜 샀을까 싶은 것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것까지 분량이 상당했다. 난 왜 이만큼을 읽고도 이 정도일까. 지나온 날들 중에 내곁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은 것은 책들 뿐이구나. 책들을 모아 가지런히 줄을 세우면 세울수록 괜시리 마음이 산란했다. 정리 도중 학부 때 쓰던 화일에서 신문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새 드라마를 홍보하는 작가 김수현의 인터뷰가 실린 글이었다. 그 페이지를 왜 오려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긴 인터뷰 기사 중에 김수현의 저 쓸쓸한 멘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뼈가 저릴 지경까지는 아니어도 가슴이 저릴 만큼은 느껴오던 바였다. 그리고 그 삼 년 전의 신문기사를 다시 읽으며 근래에 만났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떠올렸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나는 어느 날 바닷가에 갔다가 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와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를 선생님이라 칭하고 자주 왕래를 하며 마음을 열어보이지만 어쩐지 선생님은 인간과 세상을 향해 굳게 마음을 닫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간 나는 선생님의 유서를 받게 되고 그로써 선생님이 평생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알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고독한 생활을 하던 선생님은 한 친구를 얻게 되고 그의 거절에도 불구,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베풀었던 선의는 비극의 시초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신이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던 하숙집 딸을 그 친구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친구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결국 선생님은 고민 끝에 친구를 배반한 채 하숙집 딸에게 먼저 청혼을 하게 되고 친구는 자살하고 만다. 비록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긴 했으나 그 모든 과정을 끝까지 비밀로 감춘 채 선생님은 끊임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고통과 회한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광수나 나도향의 근대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이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나에게 보낸 유서 부분이었다. 끝끝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 무섭도록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의 속내야 다 거기서 거기듯 차마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던 내 안의 허욕과 비겁을 맑은 거울 앞에 그대로 드러낸 듯한 기분이었다. 오로지 내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앞선 적어도 너의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술, 순간적인 욕심과 아집으로 인해 무참히 퇴색되어버리고 마는 의리, 스스로 고통을 받을지언정 가까운 이에게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성벽을 두르고 사는 외로움, 참회와 참회를 거듭하지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영원히 비밀이 지켜지길 바라는 당부와 함께 자살을 택하고 마는 무거운 자존심... 얼굴 들고 뻔뻔하게 살만한 용기가 없음에도 때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돌이키지 못할 수치스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실수에 남몰래 괴로워하기도 한다. 몇몇의 영리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라도 망각하기 위해 애쓰고 다시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테지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회한과 자괴감으로 끊임없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용기가 없어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약해서, 그저 순간적으로, 원래 비겁해서, 이유야 얼마나 많겠는가. <마음>의 선생님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행위의 이유들과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 선택에서 파생되었던 고통을 두려울 만큼 진실한 목소리로 털어내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신하거나 배신당하고 자기 자신조차 배신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한 번 쯤 누구나 신뢰가 무너지고 의리가 바닥을 치는 고통을 겪는다. 상처 받지 않으려면 아예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일테니까. 나중의 삶 속에서 꿋꿋이 자존심을 지킨다 해도 슬픈 일 다음의 자존심이라봤자 인생을 달통한 듯한 자의 고독한 포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나는 누군가보다는 천진난만할 것이고 누군가보다는 영악하겠지. 타고난 천성이나 지나온 경험의 질량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기를 지나 인생을 졸업한 듯한 느낌으로 산다는 것은 편안하지만 쓸쓸한 일이다. 인생 별 거 있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거지, 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만나면 그 담담한 포즈가 부러우면서도 나 역시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것, 삶은 끝없는 방황이요, 열광이라고 믿었던 치기어린 시기를 이제는 지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저만치 정신의 안식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실망하고 슬픈 일을 많이 겪었을까, 하는 두려움 등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지곤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을 벼랑 끝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수레바퀴일 때가 더 많다. 죽을 힘으로 살아라, 목숨 중한 걸 알아야지, 하는 말들은 그야말로 속편한 여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고비를 넘긴 후 고즈넉하게 찾아드는 안식의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온다. 범사에 충실하고 감사하라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얻기 위해 그렇듯 타인과 스스로를 미워하고 괴롭히며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고 하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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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단순치 않은 것 같습니다.
주변을 간명하게 하는 것도 괜찮지요. 혼자서 잘 논다면요.. 하하


깐따삐야 2007-01-2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단순치 않은 것 같은데 결국에는 누구나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개츠비 2007-01-2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고.. 이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생각해보면 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또 누군가를 상처입히며 살아왔거든요..

깐따삐야 2007-01-2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가 없는가 봐요. 좀 덜 긁어대고 덜 긁히며 살고 싶은 마음은 자나깨나 굴뚝같은데, 마음을 앞서는 주둥이와 몸뚱이가 문제라지요.

프레이야 2007-02-0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좋은 책 같아요.

깐따삐야 2007-02-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감사합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쓴 리뷰인데 말이죠. ^^

마늘빵 2007-02-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저도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

깐따삐야 2007-02-0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고맙습니다. ^^

글샘 2007-02-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의 수레바퀴 하나, 잘 읽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깐따삐야 2007-02-0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감사합니다. 저도 글샘님 서재에서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비연 2007-02-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축하드려요^^

깐따삐야 2007-02-1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고맙습니다. ^^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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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순진한 여인에 대한 남자의 환상.  

욕심 없이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성공한 사내의 그리움.

문학 내지 예술을 향한 자본과 현실의 끊임없는 구애.

  책을 읽고나서 위의 세 문장으로 감상평을 요약해 보았다. 어쩌면 한 때 내가 꿈꾸던 연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었다. 한 남자가 내게 반한다, 나는 아무런 직업도 가지지 않고 하루 종일 읽고 쓴다, 남자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가해한 면 때문에 나에 대한 그의 환상은 지속된다, 그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에 비껴서서 색다른 설렘과 열정을 낳는다, 나는 그의 사랑을 받지만 사랑의 대가를 사랑으로 돌려주지는 않는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어느만치 사실이지 않은가. 스무 살 무렵의 나는 한 때 유행했던 전투적 페미니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마치 소설 속 이진처럼, 늙지 않는 소녀같고, 잡을 수 없는 요정같고, 불가해한 귀신같고, 마음 없는 식물같은 여성이 결국 남성을 지배하리라 믿었다. 이진은 가출하지도 않고 가출에의 욕구도 없다. 이현과의 공간에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마련할 줄 알고 방해받지 않은 채로 일과 고독에 침잠할 줄 안다. 내편에서 바라본 그녀는 위대한 페미니스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란 점이었다. 분량이 적지 않은 장편인데도 책을 받자마자 거의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사이사이 이진의 기록, 이라는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 단편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문체는 힘들이지 않은 듯 하면서도 유려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진 무력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작가의 따듯한 시선 또한 좋았다. 김수현이 쓴 드라마를 보면 끝까지 비난할만한 악인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 두가지의 인간적 결점으로 인해, 혹은 스스로의 선에서 뒤바꾸기엔 힘겹고 벅찬 운명 때문에 회의하고 방황하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가는 모습들을 애정어린 묘사로 잔잔히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로서 문재와 상상력은 꼭 필수적인 항목이겠지만 결국 소설이 사람 사는 이야기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작가 심윤경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이란 미덕은 참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상평 하나 더 보탠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희극과 촌극의 시대가 뜨겁게 허물어져가는 비극의 시대에 보내는 동경의 메시지.

그리고 이 리뷰를 쓰면서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수와진이라는 착하게 생긴 형제 듀엣이 불렀던 노래, 파초. 이진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이 노래의 노랫말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은 파초같은 여자였다.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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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6-12-1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요 내일쯤 올 거 같아요. 과연 어떤 연애가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깐따삐야 2006-12-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이고, 이진이고, 흔치 않은 남녀고 흔치 않은 관계인데 황당무개하지 않고 완전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님의 리뷰를 기대합니다. ^^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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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라면 한 번쯤 이런 책을 써보고 싶지 않을까. 좋아했던 작가들이 할랑한 에세이집을 내면 그 작가도 아니면서 왠지 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마음이 뻑뻑하고 생활이 촘촘할수록 그런 책들이 반가워지고, 작가가 은유의 형식을 빌려 미처 못다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숨어있지나 않을까 싶어 때론 멈칫거리며 읽기도 한다. 결국 문학이란 건 에두른 자기고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특히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작가의 비밀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시답잖은 속내마저 예쁘게 장정된 책으로 나오기도 하니 작가란 얼마나 거품투성이 직업군이냐 싶은 질투 어린 불평을 해보기도 한다.

  조경란은 무척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는 작가는 아니다. <나의 자줏빛 소파>라는 책을 갖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지만 단지 기억하는 건, 목선이 갸냘프게 드러나는 표지 속의 작가와 적적하고 쓸쓸한 어떤 느낌 뿐이었다. 사실 조경란이 문단에서 두각을 보이던 시기에 나는 김영하를 더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대척점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서로 다른 경향의 작가니만큼 단지 나의 취향 탓일 것이다. 조경란은 이 책에서도 예의 그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비추고 있듯 오랜 고독과 습작 끝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경우다. 반면에 김영하는 타고난 기지와 발랄함으로 언어와 문단을 상대로 놀이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만큼 상상력의 파고가 한 마디로 장난 아니다. 조경란이 작가의 운명을 지녔고 작가일 수 밖에 없다면 김영하에게선 펀드매니저나 타짜를 했어도 호의호식하지 않았을까 싶은 짓궃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긴, 혹자는 소설가와 사기꾼은 한끝 차이, 도찐개찐이라고 하더라마는.

  <조경란의 악어이야기>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책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유명 작가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한 두 가지 감추고 싶은 가정사를 지닌 평범하고 부족한 인간이며, 불행과 고독이 때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매우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등대의 불빛 모양 속에서, 나뭇잎 속에서, 수도꼭지 속에서 아무때나 불쑥불쑥 모습을 비치는 악어 제이크는 희망의 상징이다.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에 젖을 무렵 빠꼼히 고개를 들고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경란의 어둡고 쓸쓸한 자전적 에세이 사이사이마다 네 발 달린 녹색 희망, 제이크가 배수진을 치고 있다. 글과 삽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 못생기고 작고 무표정하고 튼튼하기만 한 악어가 어쩐지 서먹하고 주춤거리는 듯한 작가의 글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악어였는지도 모른다. 나무 이야기도, 물고기 이야기도, 고양이 이야기도 아닌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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