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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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에 가졌던 대담을 채록, 월간 샘터 400호 기념으로 나왔던 책이다. 1부는 피천득 선생님과 샘터사 고문인 김재순, 2부는 법정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피천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그 상냥하고도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아 좋았다. 이 분은 다시 뵈어도 참 귀여우시다. 예전에 '인연'을 들고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하신 적이 있는데 검버섯이 피어나는 얼굴 안에 아이 같은 천진함이 깃들어 있어 참 귀여운 할아버지네, 라고 생각했었다. 금아라는 예쁜 아호처럼 그야말로 맑고, 곱고, 깨끗하게 늙어가셨던 분. 동시에 아래 인용한 구절처럼 겸손한 예지까지 겸비하셨던 분.

금아: 그런데 소설에 보면 사랑방 손님이 떠나간 후 계란 장수가 왔을 때 어머니가 "이제 계란 먹을 사람이 없어요"라며 돌려보내지 않습니까. 전 그게 아주 못마땅해요. 사랑하는 딸에게 계란을 사 먹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 p.37

금아: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은 대개 글을 좋아하고 문장이 좋은 그런 친구들인데 일반적으로 가난했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좋은 글이란 가난 속에서 나오거든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남보다 더 물질적인 향락을 누리며 산 사람들은 고생하면서 산 사람들의 내면을 잘 알 수가 없어요. - p.62

 나이 먹을수록 친구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친구의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 누군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나로부터 자꾸만 미끄러져 간다. 시정의 대화에 둔감한 나는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이나 한참 어린 아이들과는 비교적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인데 별로 터울이 안 지는 또래들 사이에선 보기좋게 연기만 하고 있을 뿐.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물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대개 나를 향해 솔직하고 재미있다는 평가까지 내려준다. 어쩌면 일리가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너만큼은 계속 솔직해라, 앞으로도 웃겨주길, 이라는 암묵적 명령처럼 들리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고, 입술이 마르고, 그 자리에 대해 회의감이 들 무렵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신들과 이야길 나누느니 샘터에서 나온 '대화'를 읽겠어요, 라고 말하진 못하더라도 이젠 점점 체력도 달리고 소갈머리는 옹졸해지는데 굳이 소모스러운 수다에 끼일 필요는 없지 싶다.

 가장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그이가 없는 자리에서의 뒷담화인데 요래조래 얽혀 사는 사람인 이상, 전혀 안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도가 지나치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그 부분이었다. 돌아가는 이익에 따라 서로를 헐뜯던 어제의 웬수가 오늘의 다정한 친구로 지내는 것에 대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나로서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황희 정승이나 스위스마냥 중립노선을 지키곤 했다. 그조차도 버거워지면 너무 피곤해서 말수가 줄어든 것으로 무마하기도 하고.

 불의만 보면 인내심이 솟구치는 비겁한 회색분자여!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고집은 나 자신을 사수하기 위한 것일 뿐. 타인과 쓸데없이 넝쿨지기 위한 것이 아닌 바. 비 오기 전, 조용조용 줄지어 피신하는 개미처럼, 약하고 무능한 나의 생존본능이었다. 책과의 대화로 에너지를 장전하여 세상에 나가면 어르신들은 이런 내가 순진하고 딱해서, 아이들은 그야말로 수준이 맞아서, 어쩌면 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위안까지 받으면서, 스스로의 조숙함에 으쓱해지기도 했겠지.

 넓어진 세상, 대화의 통로와 방법이 훨씬 더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 혹은 서로 다른 코드를 가졌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문학계의 훈남, 최인호와 불교계의 완소남이신 법정 스님의 대화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고도 부럽게 보였다.

최인호: 노래 가사도 예전과는 무척 많이 달라졌어요. '네가 날 버려? 나도 널 잊어버릴 거야' 같은 내용들이더라고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같은데 뭔가 왜곡된 느낌이에요.
법정: 그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그러니까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도로 무른다고 그렇게 수고들을 하지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이기적인 흥정이지요. 사랑은 따뜻한 나눔이고 보살핌이고 관심이지요. 더 못 줘서 안타깝고 그런 것이 사랑인데 말이지요. - p.80

최인호: 주인공이 못 되는 것이지요.
법정: 그렇지요. 완전히 소도구로, 부속품으로 전락해 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교육은 사람을 활짝 펴게 만들지 못하고 잔뜩 주눅이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보면 학생들 표정이 아주 발랄한데 우리 아이들은 굳어 있어요. 그래서 기회만 되면 술을 마시고 때려 부수고 하는 것이지요. - p.99

최인호: 문학상의 심사위원도,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사람도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 저는 창작이 제 남은 삶을 채우기 바랍니다.
법정: 참 소중한 꿈입니다.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 p.118

최인호: 우문입니다만, 스님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으신가요?
법정: 그럼요.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 p.140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예술가들은 소통 부재를 화두로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올려가며 소통을 시도한다. 시대의 징후를 느끼는 독자와 관객들은 문득 쓸쓸해지면서도 굳게 입을 다문다. 상대의 닫힌 입을 보았거나, 세치 혀에 찔렸던 아픔을 상기하면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는 어르신들의 대화를 읽으며 지식의 내공이나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가 부러웠다기 보다는, 서로 깍듯하게 삼가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가는 대화법이 참 그립고도 소중했다. 세치 혀에서 꽃이 피는가, 독침이 돋는가는 자신에게 달린 몫. 스스로에게 엄격하되, 타인에겐 겸양의 자세를 잃지 않는 자세를 연마하고 또 연마하여 각자의 혀에서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그것들이 만발하여 향긋한 이야기꽃을 피워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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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8-01-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덕분에 주옥같은 책을 만난 것 같아요!

리뷰만 읽었을 뿐인데 날이 선 제 마음이 조금은 무뎌지는 느낌이네요..

아.. 좋다!! ^^*

깐따삐야 2008-01-08 12:24   좋아요 0 | URL
레와님, 반가워요.^^
이 책 옆에 두고 가볍게 읽기에 좋아요. 그러면서도 내용은 가볍지 않구요.
저는 피천득 선생님의 상냥한 어조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답니다.

2008-01-23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3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1-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이군요! 축하해용, 깐따삐야님^^

순오기 2008-01-24 15:21   좋아요 0 | URL
저도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축하해요 깐따님! ^^
멋진 책에 멋진 글이군요.

깐따삐야 2008-01-24 16:44   좋아요 0 | URL
어떤 친절한 분이 알려주셔서 저도 어제 알았어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네꼬 2008-01-2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축하해요. 저 어제 봤는데 인제야 답을.. 우리 이제 호떡 먹는 거예요? (5만원어치?)

깐따삐야 2008-01-25 11:28   좋아요 0 | URL
앗!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제가 사는 청주에 '쫄쫄이호떡'이 아주 유명하거든요. 찹쌀로 빚어서 바삭바삭 튀겨내는 호떡인데 한 개에 오백원이니깐 오만원 어치면 네꼬님이랑 저랑 부족함 없이 먹겠네요. ㅋㅋ

개츠비 2008-01-2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주 리뷰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 5만원, 생각보다 거금이더군요..ㅋㅋ 마음의 양식, 눈의 양식, 마니 구입하세요!!

깐따삐야 2008-01-25 21: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들이 보관함에 그득했는데 이제 좀 비워야지요. ㅋㅋ 요즘 님도 열심히 읽으시는 것 같아요!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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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혜영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희뿌연 안개와 질척한 습지 안에서 울부짖고 허둥대는 짐승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무사안일한 일상의 이면에 잠복해 있다가는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불시습격을 감행하는 짐승들, 짐승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거나 그들의 냄새를 맡는 순간 숨겨두었던 본능을 드러내는 인간의 허울을 뒤집어쓴 짐승들. 안락과 유희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우연히 맞닥뜨린 짐승의 시간 속에서 한껏 으르렁거려보지만 결국엔 속수무책이다. 작가는 교외로 소풍을 떠난 연인들과 삶의 안정을 꿈꾸는 가장들 코앞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짐승의 살점을 던져준다. 너희가 기대한 바는 아니겠지만 피해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식으로. 그것은 그로테스크함을 극단까지 추구함으로써 파생되는 엽기나 잔혹함이라기 보다는 염려와 기우 없는 평면적 일상에 울려대는 경종처럼 들린다.

 사육장에서 탈출한 개에게 물어뜯긴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향해 차를 모는 아버지. 그러나 그가 운전하는 방향은 개들이 짖어대는 사육장 쪽이라는 아이러니. 고속도로의 거대차량들은 시시때때로 이들의 행로를 위협하고 개 짖는 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인 소음 속에서 주인공들은 공포와 혼돈의 맨 구석까지 몰리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무심하고 간결한 단문들로 서술하는 작가의 솜씨가 그런 면에서 더욱 섬뜩하게 옹골차다.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 내 귓전에다 대고 정신 차리시라, 고 하는 경고문을 듣는 것 같았다. 방바닥을 뜯으면 집채만한 잡쥐들이 우글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맨홀 뚜껑을 여는 순간 폐수에 젖은 너구리나 족제비가 얼굴을 할키며 달려들거야. 이렇듯 점점 괴기스런 상상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것들이 짐승의 탈을 빌려쓴 인간이거나 재주만 몇 번 넘으면 인간으로 화하는 요물이라면 그 공포는 배가 되리라. 정글에, 땅굴에, 동물원에, 사육장에 숨어있고 갇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과욕과 허영 때문에 멧돼지의 습격을 받았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집과 차와 여가를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생활인들이여. 아파트 마지막 납임금을 내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길, 도로 한복판에서 돼지떼의 습격을 받는다면, 그 와중에 덩치 큰 트레일러의 묘기 운전에 위협받게 된다면, 당신은 집과 차와 더불어 무엇을 더 가지고 싶은가.

 짐승과 관련된 공포 스토리 한 두 가지 쯤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어릴적에 집에서 소를 기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외양간에 소를 보러 갔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성장한 개마냥 커다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삼각형으로 오므라드는 눈빛을 번뜩이며 나를 쏘아보고 있더라는. 대개 호랑무늬의 크지 않은 도둑고양이와 맞닥뜨린 적은 있어도 그런 기묘한 고양이는 난생 처음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돌로 굳어선 꼼짝도 할 수 없었는데 고양이 역시 꿈쩍도 안 하고 계속해서 나를 주시하더라는. 결국 눈싸움에서 지고 만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후다닥 도망쳐 얼른 마루 위로 뛰어 올라왔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내내 고양이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한번은 집에서 키우던 발바리가 새끼를 낳아서 강아지를 보러 갔는데 세상에나. 발바리 짝퉁처럼 생긴 시커머죽죽한 너구리 한 마리가 우리 강아지들을 떡하니 품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소리를 질러가며 헐레벌떡 집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아빠가 너구리를 멀리멀리 쫓아낼 때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뭔가를 밟았는데 물컹해서 보니 뱀이었다던가, 쥐가 갉아놓은 빨래비누 등을 발견하는 건 시골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저 두 가지 경험은 아주 어릴적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뇌리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인간의 시간 속에 길들어버린 가축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 안이하고 평온한 일상에 길들어버린 인간들도 마찬가지.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은 그 길들인 균형 속에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끼어들어 균열을 일으키고 소음을 내는 짐승의 시간이다. 수십배의 덩치에 달하는 소도 두렵지 않은 고양이, 다른 동물이 낳은 새끼들은 떡하니 품고 있는 너구리. 이들은 어제와 다르지 않던 오늘에 무참히 끼어든 침입자들이다. 여기에서 하필 왜? 라는 질문은 무색하고 부질없다. 밤길 운전 중, 족제비 배를 깔아버린 채 그대로 내달리는 승용차를 향해 하필 왜? 라고 질문하는 족제비가 없는 것을 보라. 저기 불빛들이 꼭 달빛 같지 않니? 여자는 남자의 상투적인 비유들을 못 견뎌하지만 상투 튼 점잖은 일상을 헤쳐놓는 비상투성은 공포의 낭떠러지로 여자를 몰아간다. 토사물 한 봉지와 함께 다시 인간의 시간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작가는 팔짱을 낀 채 무심히 묻고 있는 것만 같다. 아까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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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1-0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으셨네요. 저도 아오이 가든은 아직 못 읽었는데,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 살짝 아쉬워 하지만, 대놓고 섬뜩하고 무서운 것 보다는 이 책이 주는 공포도 충분히 살떨리던데요?

깐따삐야 2008-01-08 12:37   좋아요 0 | URL
그쵸. 심상한 어투로 늘어놓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더 섬칫한 법이잖아요.
편혜영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요.^^
 
카뮈를 추억하며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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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알베르 카뮈의 기일이란다.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다갔지만 그가 이십대 초엽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 카뮈의 책을 다시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곤 한다. 강요하는 것이 없는데도 조용히 복종하고 싶어지는 느낌. 카뮈는 깊고 진실하여 말수가 없어뵈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한때 이 핸섬한 작가에게 끌려 학부 시절, 도서관에서 카뮈의 기름하고도 잘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다 사진이 실린 그 페이지를 살그머니 찢어서 도망온 적이 있다. 다시 구할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 날은 문득 그러고 싶었다. 오래된 책 속의 흑백 사진을 찢어 내 소유로 하고 싶었다. 스무살엔 그런 아무것도 아닌 도발들이 재미있었나 보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코트깃을 올린 그의 옆얼굴은 반항아 제임스 딘 보다도 훨씬 더 근사했다. 지중해의 이방인이자, 알제리의 반항인. 나는 지상에 없는 카뮈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그를 좋아했다.

 내가 갖고 있는 '카뮈를 추억하며'는 위에 걸어놓은 민음사판이 아니라 87년에 발행, 96년에 9쇄 발간, 청하에서 나오고 서정기가 번역한 조금 오래된 책이다. 아마 지금은 절판이 됐는지 검색 자체가 안 되더라. 번역자인 서정기가 책 첫머리에 쓴 옮긴이의 글이 참 좋다.

 반항, 혁명가적 기질의 힘, 그러나 내향성의, 내부의 긴장으로 다스려질,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덕으로 길러져 이상화될 에너지. 한, 자신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전혀 길러주지 못하는 환경. 더구나 병으로 인한 좌절 사이에 찢겨 있는, 그것을 선생 앞에서 냉담함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어린 고등학생의 짐짓 꾸민 듯한 오만함. 그것을 선생은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라고.

 이렇듯 집약적으로 어린시절의 카뮈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카뮈의 스승이자 이 책의 저자인 장 그르니에는, 어색한 첫만남에서 카뮈에 대한 인상을 놓치지 않는다. 수줍음 속에 가려진 도도한 자존심, 선생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적의 앞에서 쉽사리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려는 과묵함에 대해 너그럽게 공감한다. 위대한 영혼끼리는 아마도 필연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있으므로.

 저 너머의 세계를 갈망했던 스승과는 달리, 카뮈는 지상 너머의 세상과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자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지만, 그렇듯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들의 인연은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동안 지속된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그 이해가 사랑과 신의로 확장되는 순간,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한 인생의 친구가 된다.

 카뮈는 예상컨대 그 성품 상,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작가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르니에가 살려놓은 카뮈를 읽으며 더 감동에 젖는 것도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수줍어할 이 작가를, 그의 가장 신실한 친구가 대신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그 간접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르니에는 이 책 속에서 작가이자 철학자로서, 레지스탕스로서, 연극인으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의 행로를 되새기며 때론 감회에 젖고 때론 경의를 표하며 그의 제자를 오롯히 부활시켜 놓았다.

 <최초의 인간>은 아마도 원시인이며, 미개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 준 원초적 힘을 소유한 순수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장 최고의 선과 어쩌면 가장 커다란 악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인간이다. 어쨌든 평범한 데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다.

 카뮈 최후의 작품이었던 최초의 인간에 대한 그르니에의 평. 최초의 인간은 이방인 뫼르소의 선조이자 후예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선악의 관습과 동떨어진, 순수한 인간으로서 미완성 원고 속에 영원히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된다. 알제리의 정열과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간극 사이에서 모호한 균형을 견지하고 있는 카뮈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그는 적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가 무엇인가를 좋아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반대되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채로였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그 반대의 것과, 그가 좋아하는 사물을 대조시켜 볼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할 줄 알았다.

 최초의 인간은, 곧 행복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부분.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지병으로 일생을 불안정하게 살아갔던 카뮈이지만 그는 지중해의 태양,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고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 지중해의 대척점을 空으로 남겨두고,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은 채, 그러므로 실망 없이,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의지하여 순수한 열망과 신념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성실하고 정직한 인간을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다.

 보다 많은 글을 발췌하여 옮겨놓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한편으론, 이미 오래전 내면 안으로 녹아들었던 카뮈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와 사상들을 몇편의 파편적인 글들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미흡하단 생각이 든다. 침묵하고 읽을 것. 카뮈라면 그렇게 말하리라. 알고 싶다면 읽을 것. 그리고 행동할 것.

 아이고, 아니지요, 만일 카뮈가 천당에 가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판이지요.

 나도 그러겠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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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 많은이들의 청춘과 함께 했던 책. 추억속의 까뮈를 불러내는 글이군요.
이제는 까뮈보다 장 그르니에가 더 땡겨서 5년 전인가 '섬'을 끼고 살았죠.

깐따삐야 2008-01-05 08:42   좋아요 0 | URL
저번에 순오기님이 말씀하셨던 루 살로메와 카뮈는 스무살 무렵의 저를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지성인들이에요.
'섬'은 저도 가지고 있어요! 민음사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본으로요. 저는 본문보다 카뮈가 쓴 서문을 더 좋아한다죠. :)

비로그인 2008-01-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뮈를 마흔 넘어서 읽었어요.
그래도 좋더군요.
한 6개월은 그에 관해 생각했답니다.
리뷰...좋아요.

깐따삐야 2008-01-05 09:05   좋아요 0 | URL
승연님. 좋은 아침이에요. 반갑습니다.^^
저도 서른 이후, 마흔 이후에 읽어도 여전히 좋을 것 같아요. 카뮈는.
그런 작가 만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밤에 졸면서 쓴 리뷰인데 카뮈의 외모에만 너무 치중한 것 같아요. 흐흐.

2008-01-05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6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8-01-0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읽고 싶어지게 리뷰를 쓰셔놓고, 책은 검색 조차 안된다니, 흑.

깐따삐야 2008-01-06 09:0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청하판으론 검색이 안 되지만 위에 걸어놓은 민음사판 책은 지금도 구입할 수 있어요.^^

개츠비 2008-01-0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기판으로 그 책을 갖고 있습니다. 제목이 약간 다르게 `카뮈를 추억함'이죠. 깐따삐야님의 서평으로 그 책을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카뮈, 언제나 다시 돌아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깐따삐야님의 글속에서 만난 카뮈는 특히 더 그래요..멋진글입니다^^

깐따삐야 2008-01-07 21: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카뮈를 추억함. 서정기가 쓴 옮긴이의 말을 참 좋아했어요.
학부시절에 카뮈홈에서 얻은 자양분들이 참 많았는데 언제 들러봐도 좋은 음악과 함께 그대로여서 행복합니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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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가 많이 들어간 책 치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것이 별로 없는데 이 책에 실린 돼지코 부자의 애증어린 유머는 글보다 더 웃기고 유익했다. 간혹 소심하고 겸손한 사람들 중에 알고보면 은근히 재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우일이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작가 김영하야 너무나 유명하니까.

'화양연화'에 얽힌 에피소드로 풀어나가는 이십대와 삼십대의 차이에 대한 글은 저 위에 보이는 책 표지 한방으로 설명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삼십대의 사랑, 절제의 아름다움, 말해지지 않는 것의 비의.

 대학 시절 친구와 저 영화를 보다가 영화 한컷 한컷마다 바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답고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나오는 장만옥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느린 화면 속에서 국수통을 들고 골목을 지나던 매혹적인 장만옥. 아무리 뜯어봐도 별로 예쁜 것 같진 않은데 도드라진 광대뼈마저도 섹시하고 세련되어 보이던 장만옥.

 장만옥을 위한 영화군, 후다닥 결론을 내리고 잠이 들었던 나로서는 내가 아직 어설픈 이십대라서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낼모레면 사십대 문턱에 들어설 선배 선생님 중 한 분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깐샘은 '냉정과 열정 사이'나 '화양연화'를 보면 뭔가가 막 느껴져? 난 걔네들이 왜 그렇게 답답하게 지내는지 모르겠어. 왜들 그렇게 사는거래? 좋으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그러게나 말이에여. 다 영화나 소설 속 출연자들이라 괜히 폼 잡느라 그러겠져. 흐흐."

 하지만 나랑 동갑이었던 친구는 이 영화를 참 좋아했더랬다. 새내기 시절부터 워낙 세상 다 산 얼굴을 하고 다녀서 조로, 조로, 쾌걸조로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보았으니 좋다고 말했겠지. 이 책을 다시 꺼내 읽다보니 영화도, 그녀도, 한번 더 보고싶어지더라는.

 여담인데. 김영하는 사랑을 잘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잘'. 그의 글들은 날쌘 잽을 날리듯 발랄하지만 사랑에 있어선 깨나 진득한 남자일 것 같다. 이 책을 새로 읽으며 생뚱맞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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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을 읽으면 김영하가 사랑을 잘할 것 같은 남자로 보일까요?
흠, 저는 한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8-01-02 14:32   좋아요 0 | URL
나는 요상하게 새벽만 되면 직관에 발동이 걸려서요. 퍼뜩! 뭔가 떠오르곤 한단 말이죠. 다음날 깨서 다시 생각해보면 옹? 그런가? 막 요러고. ㅋㅋ
(김영하 같은 남자랑 사겨보고 싶은 욕구에의 발현이었단 말이냐요?)
 
유리동물원 범우희곡선 8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신정옥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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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만다, 톰, 로라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슈처럼 열망하던 꿈을 잃고 좌절해버린 비극적 주인공들이다. 아만다는 한때 무도회에 나가면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이는 미녀였지만 지금은 한낱 가정주부로 전락해 버렸고, 해설자 톰은 모험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과거만을 회고하며, 연약한 불구의 소녀, 로라는 이미 약혼한 짐이 구세주가 될 수 없음에 그녀의 순정은 유리동물처럼 산산조각 나고 만다. ‘크러취’라는 비평가는 윌리엄스의 "여름과 연기"를 본 후, 주인공 앨마에 대해 “천성은 열정적이지만 생기 없는 상류문화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귀족근성을 버리지 못한 불행한 여성”을 또다시 목격했다고 언급했는데 앨마, 아만다, 블랑슈 등 윌리엄스 특유의 여주인공들의 성품을 예리하게 지적한 코멘트라고 생각한다.

 블랑슈가 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 구축해 놓은 환상의 세계에 살고 있듯, 로라 역시 유리동물원이라는 자폐적인 세상 안에 칩거하고 있다. 아만다의 Blue Mountain, 톰의 영화관도 현실에서 도피한 illusion의 세계라는 관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유리동물의 특성처럼 로라의 세계는 투명하고 순수하지만 파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뿐더러, 움직이지 못한 채 차갑고 견고하게 굳어 있다. 윌리엄스 초기 작품의 여성들은 외부의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하는 길을 모색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 버리거나 미쳐버린다. 블랑슈가 미치를 유혹하듯 아만다는 로라에게 짐을 소개하지만 극은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으며, 실제로 스스로도 남부의 로망을 잊지 못했던 윌리엄스는 마치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히로인들에게 편리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는다. 블랑슈의 전등갓은 찢겨지고 로라의 유리동물은 깨져버린다. 이러한 상징적인 연출을 통해서 윌리엄스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절망감을 직시하게끔 하는 동시에, 구원의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식당의 싱글테이블에 앉아 1인분의 식사를 하고 가족이나 연인 대신 애완동물을 선택한다. 대학 시절 친구 하나는 강아지를 분양 받을 때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면서 그 아래에는 싱글맘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이야기를 써놓기도 했다.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외롭게 지내는 그녀는 그런 식으로 도시의 쓸쓸함과 조우하고 있는 것일지도. 근간의 싸이월드, 블로그, UCC(User Created Contents) 등의 유행을 보면서 만약 인터넷이 사라진다면 한동안 공황상태가 지속된 다음, 정신질환과 자살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블랑슈나 로라가 구축해놓은 자폐적 환상 세계처럼, 현대인들 역시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서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해받지 못한 윌리엄스의 퇴락미녀들은 좌절했지만 요즘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조차 하나의 개성이자 유행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은둔하거나 실성해 버리는 비극에서 비껴나 그런 식으로 시대의 우울을 견뎌가는 현대인들은 영리해 보이지만, 역시 외로워 보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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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연극 수업 시간 때 관심 갖던 작품이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알라딘은 나의 유리동물원일까요?

깐따삐야 2008-01-02 14:39   좋아요 0 | URL
어둡고 우울한 내용이지만 독특한 인물들 덕분에 지루하진 않은 작품이었어요.
절망테스트 결과를 보니 어쩌면 그런 것 같기도.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