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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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오나와 티그는 전형적인 중산층 부부였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오나는 글을 쓰고 티그는 연구를 한다. 그런데 또한 “전형적인” 쇼 윈도우 부부이기도 하다. 두 아들을 낳고 키우지만 부부 사이는 언젠가부터 냉랭하기 그지없다. 집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 가정도 가끔 다른 부부, 일 때문에 가까워진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럴 때마다 서양인들이 늘 그렇듯이 괜찮은 와인 한두 병을 들고 오는 부부에게 그럴 듯한 정찬을 대접한다. 손님들이 보기엔 더없이 화목해서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이상처럼 생각하는 홈, 홈, 스위트홈의 정수를 자랑하기 위해 초대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오나와 티그 역시 행사가 있으면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부부동반으로 멋진 에스코트 자세를 유지해 행사장에 입장한다. 부부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늘 그윽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눈길은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과 무슨 말을 하는지 별로 상관도 안 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오나는 함부로 이혼해주고 싶지 않다. 어쩌면 오나에 대한 지독한 오해인지 모르지만, 오나는 적당하고 안전한 여성 호구를 하나 준비해 티그와 함께 살게 만든 다음, 티그에게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현금을 뽑아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에 오나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일은, 티그와 새로운 여성이 오나가 향유할 수 있는 최선의 주거와 복지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거다. 이래서 오나의 눈에 띈 젊은 여성이 넬. 넬도 인텔리다. 캐나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대학 강사나 작은 출판사 편집 일을 기간제 혹은 단기직으로 하다가 훌훌 털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이 체질에 맞다고 생각하는. 넬이 편집일을 할 때 오나를 만난다. 오나의 책을 출간하는데 하여튼 작품 속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오나의 책이라기보다 넬의 책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개입을 해서 오나가 흡족해한다. 자기 작품의 편집자로도 그렇고, 가능하다면 남편 티그의 불륜 상대로도. 불륜? 이것도 불륜이라면. 오나가 보기엔 젊고 똑똑한 여자. 솔직한 의견으론 어리고 어리버리한 년.

  결국 티그는 이혼도 하지 못한 채로 조금 떨어진 (“조금”이라고 해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땅이 넓은 나라인 캐나다에서 조금이니까 쉽게 생각하지 마시라) 농촌에서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낡은 집을 얻어 나가는 대가로 자기 소득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아이들 양육비와 생활비로 송금해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넬이 티그와 합류한다. 넬은 시골에 정착함에 따라 먹을 야채도 직접 재배하고 처음엔 닭으로 시작해서 양, 소, 오리, 거위, 개, 말 같은 가축도 기르게 되고 일상적인 농촌 노동에 익숙해진다. 한편으로는 처음엔 주말에 간혹 방문하던 티그의 두 아들까지 합류해 독자가 읽기엔 나름대로 괜찮은 농촌생활을 꾸려간다. 티그와 두 아들까지 다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이 정도면 아버지의 새 애인으로도 꽤 만족스럽다. 세월이 조금 지나 낡은 농가를 떠나 좀 더 북쪽으로 가서 괜찮은 집으로 이사해 여전히 농촌 생활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식 아내가 되고 아이도 출산한다. 출산을 망설이는 것 같던 나이 든 티그도 정작 아이가 생기니 좋아한다. 이만하면 꽤 괜찮아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넬은 남자, 남자의 두 아들, 그리고 매번 삶의 장애가 되는 오나를 바라지하느라 자신의 본업인 교육, 편집 또는 저작활동은 점점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처음엔 작업실이 있었지만 뒤로 가면 작업실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

  티그의 아이들이 다 성장을 하고 넬의 아이들도 점점 커져 이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오나는 이제 가진 것이 거의 없고, 하던 연애도 번번이 실패해 별 볼일 없는 형편이지만 넬-티그 커플이 자기보다 더 넓고 밝은 집에서 사는 꼴을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통해 압력을 넣어 넬이 친정에서 상속받은 현금으로 집을 사게 하고 시세보다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의 월세로 그 집에 들어가 살다가 그것도 내지 않으려 한다.


  두 번째 이야기.

  넬이 열한 살 때, 넬과 부모, 오빠는 아빠가 곤충 연구를 하는 섬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오빠는 여름이 되면 도끼와 망치를 써서 숲 속에 들어가 동료들과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스카우트 캠프로 떠날 것이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멀리 가야 한다. 그런데 엄마의 배가 남산 만하다. 아니, 남산은 아니고 북통 정도다. 출산을 하기엔 많은 나이라서 나이 때문에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약간 있기는 하다. 이건 복선이다. 이 아이, 즉 동생이 나중에 독립하고도 몇 년 지난 후에 밝혀지는 바, 정신적으로 분열증 증세가 있다고 돌팔이 신경정신과 전문의한테 진단을 받는다. 다시 다른 의사한테 재진을 받아 약을 바꾸지만 적어도 가볍지 않은 우울증은 확실한 거 같다. 끝까지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어쨌거나 약 덕분에 이후에 동생의 증세는 정상 수준에 도달한다.

  넬은 곧 있을 것이라는 엄마의 출산을 대비하기 위하여 어렸을 때 배운 손뜨개를 열심히 하고 있다. 동생의 배내옷 일습을 짜고 있는 것. 손싸개 두 개, 발목 양말 두 켤레, 레깅스 한 벌, 겉옷 한 벌, 그리고 모자. 만삭의 어머니는 오래 전 트렁크 속에 넣어둔 스목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그걸 입으면 왜 그렇게 가난해 보이는지. 엄마의 배가 본격적으로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몸집이 거대해졌지만 평소엔 민첩하고 과단성 있게 산책을 하거나, 놀라운 속도로 스케이트를 타거나, 발차기를 힘차게 하면서 수영을 즐기거나, 열 받으면 벽에 던져 접시를 부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 늙어 임신을 하면서 엄마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넬은 어머니가 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무기력하고 부푼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그래서 왜 나의 미래를 그늘지고 불확실하게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만해도 어머니 자신 역시 뜻밖에 당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1, 2주 후에 아버지가 돌아오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철새들이 울어 10월이 되었다. 넬이 열두 살이 되기 몇 주 전에 여동생 리지가 태어나 ‘나’는 배내옷 모자에 분홍색 끈을 달아 일습으로 동생한테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동생은 잠을 자지 않았다. 밤에도 어머니의 품에서 놓여나기만 하면 날이 새도록 빽빽 울어댔다. 어머니는 아기하고 통하는 무슨 특별 교류장치라도 있는지 리지가 울 때마다 몽유병자처럼 일어나 어르고, 젖이나 물을 먹이거나 하고, 다시 재운 다음에 침대로 돌아갔지만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빽빽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한테만. 넬은 밤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주 뚱뚱했던 어머니는 이제 너무 여윈 모습으로 변했다. 수면부족으로 수척해지고 눈 밑엔 짙게 검은 그늘이 젔으며 머리카락은 언제나 푸석푸석했다.

  그래도 넬한테는 어김없이 사춘기가 왔다. 하지만 넬의 십대 시절 대부분 엄마는 동생 때문에 늘 혼수상태였다. 엄마한테 넬까지 부담을 주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어찌 한 번이라도 대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귀싸대기 한 대를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도 봤지만. 하여간 언제나 파김치 상태로 늘어져 있는 어머니 덕분에 넬의 사춘기 시절은 부모한테 더욱 비밀스러웠고, 부모 입장에서는 아주 무난한 십대 시절을 보낸 착한 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세월은 가고 또 간다. 넬과 리지 자매는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며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이제 나이 들어 누워 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한테 함께 들르기로 한다. 뭐 그렇게 사는 것이지.


  《도덕적 혼란》은 이 두 이야기를 주축으로 만들어가는 열한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겉 표지에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이런 표현은 대개 중단편집일 때 쓰는 걸로 알고 있다. 매우 애매하다.

  연작 장편으로 볼 수도 있다. 연작 장편이라면 위에 적은 두 이야기 사이에 모래밭이 놓여 있어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서걱거린다. 어머니와 자매들 이야기의 경우엔 애트우드 특유의 페미니즘 적으로 괜찮은 작품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나와 티그가 끼어들면서 20세기 가정 이야기로 확 바뀌어 버린다. 이야기 자체도 애트우드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거의 “평면적”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밋밋하다. 문장 역시 <도둑 신부>, <고양이 눈>, <눈먼 암살자> 같은 작품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덜 발칙하다. 그렇다고 열한 편의 단편소설로 읽자니 이야기들이 딱 맺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 생각은 애초에 단편을 책 한 권에 실었고, 그걸 읽어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알고 있어서 그렇게 “딱 맺어지지 않”는 것 같이 생각했겠지만. 그렇다고 애트우드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정도 작가의 경험 가지고 자전적 운운도 우스운 거 같고. 그래서 내가 읽은 결론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트우드. 애트우드의 명성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읽기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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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16 05: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쥴퓨 리반엘리, <살모사의 눈부심>
화요일. 지넷 윈터슨, <예술과 거짓말>
수요일. 에두아르 르베, <자살>
목요일. 신동호,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금요일. 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
 
백제행 창비시선 12
이성부 지음 / 창비 / 197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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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골의 이성부. 청춘시절부터 이이를 좋아했다. 시인은 언제나 산을 좋아했다. 그의 시도 산악만큼 강건한 목소리를 지녔다. 시 어느 한 곳에서도 나약과 주저와 비겁의 몸짓을 발견할 수 없다. 나도 한 시절엔 이십대 초반이었고, 시절은 더 이상이 없을 만큼 암울했는데, 이때 불 같은 목소리의 시어들에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선배의 하숙방에 잠입해 동녘이 밝을 때까지 읽던 시인들이 신경림, 조태일, 황명걸, 김수영, 민영, 정희성, 황동규, 마종기, 정현종, 김명인, 이성복 같은 이들이었다. 금속활자 시대의 시집. 이들의 목소리는 각기 달랐으나 다행스럽게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였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을 고르기 쉽지 않지만 이성부의 강건한 시어들은 언제나 정직해서 좋았다. 이 시집은 책꽂이 저 깊숙한 곳에 있다. 문제는 그걸 다시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였다. 이성부를 다시 읽고는 싶지, 그렇다고 책꽂이를 다 뒤집는 이판사판공사판을 벌이고 싶지는 않지, 도서관 서가에도 없지, 그래서 선택한 것이 헌책방이었다.


  《백제행百濟行》에 실린 첫번째 작품은 <좋은 詩>. 시인이 쓴 시가 아니라 시인이 읽은 좋은 시를 노래한다.



  좋은 詩



  그대가 깊은 밤 渾身의 힘으로써 간추린

  이 한마디 말씀을,

  멈춘 시간의, 캄캄한 속을 빠지고 빠지다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가까스로 다시 하늘 만나 숨쉬는

  이 한마디 말씀을,

  그 혼자만 무릎쳤던 기맥힌 기쁨을,

  내 또한 깊은 밤에 이렇게 엿듣고 있나니.


  이렇게 이렇게 가슴 뛰나니.

  그대 기쁨 세상에 들키고 말았나니. (1977. 전문)



  밤 깊도록 시를 읽다가 어느 시를 만나 갑자기 무릎을 칠만큼 기쁨을 발견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누가 있어 혼신의 힘을 써 한 줄의 노래를 만들었고 그것을 또한 알아보는 시인을 만났으니 원래의 시를 쓴 또다른 시인이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시인의 소망이 누군가 자신의 시를 읽으며 애써 숨겨놓은 기쁨을 세상에 들키는 일이겠건만.

  《백제행》은 시인이 1974년에서 77년까지 쓴 작품을 위주로 실었다. 3부는 행사에 축하하는 시와 기념일 시를, 4부는 문청시절 또는 데뷔 초기에 쓴 작품 가운데 앞선 시집에 싣지 않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3부와 4부는 굳이 새겨 읽을 필요는 없다.

  74년부터 77년이면 유신정권이 엄한 눈으로 국민들을 감시하던 시기. 그리고 경제적으로 거의 다 여유가 없는 팍팍한 살림을 살던 시기다. 어느 쪽으로 눈길을 돌려도 강퍅한 생활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극소수 재벌 집단은 세상의 자본주의가 다 그랬듯이 고용인의 저임금을 담보로 차근차근 이익을 모아 투자, 다시 투자, 그리고 재투자를 해 나가던 시기였다. 당연히 일종의 필요악이었던 부패가 도처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과도한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건강을 잠식했으며 이런 불평등은 다만 조금의 차이가 있을 망정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소외였다.

  딱 이럴 때 기념비적인 비극이 1970년에 터진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면서 분사한 전태일. 이 사건은 그간 허무와 잠식과 순응에 길들여진 인텔리겐치아들의 참여의식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본격적인 리얼리즘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엄혹한 금지와 검열의 시기. 함부로 글을 썼다가는 백지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었다. 끈질긴 금지의 시대. 당시의 시는 어떤 시가 되어야 했을까? 이성부는 대답한다.



  우리들 詩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슬픔,

  피흘리는 슬픔,

  등 돌리고 울음 감추는 슬픔,

  연탄가스에도 중독되지 않는

  가장 예리한 칼날로는 베히지 않는

  슬픔의 肉體,

  나자빠진 主題.

  우리들 한복판에서

  늘 우리들 모습을 새로 만드는

  슬픔,

  우리가 그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깨진 무르팍 호호 불고

  흙먼지 털털 털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1977. 전문)



  이 시절에 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혈관 속에 피와 함께 농축 니트로글리세린이 포함되는 몇 년의 시간. 그러나 이 시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을 폭발시키지 않고 얌전하게 하라는 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절반 이상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어여쁜 아내 만나 아이 낳고 잘 살다가 이혼당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목총을 들고 사격과 총검술과 분열, 열병식을 검열했던 북괴 남침위협의 시기. 세상의 모든 미덕은 시키는 것만, 하라는 것만 하는 일에서 시작했다. 공장에서 프레스로 찍어내듯 비슷한 국민들을 양산하고 싶었지만 세상에 그런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 사람들은 겉으로 표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니트로글리세린은 아닐지언정 누구나 가벼운 기폭제 하나쯤은 가슴 속에 장만해두고 살았다. 그랬었던 거 같다.



  奴



  문 열고 소리치면

  긴 대답으로 서 있는 얼굴

  언제나 그렇게

  나에게서 나를 빼버리고 남는 얼굴.


  갈수록 나는

  몇 겹 부끄러움 몸에 둘러쓰고

  비틀거리거나

  자빠지기 일쑤로다.


  지나는 바람 불러 세워

  세상의 뜻을 맡기고

  그 살갗에

  내 볼을 비비며 껴안아도

  나는 끝내 빈껍데기일 뿐

  타는 입술일 뿐…….


  몇 살 먹은 絶望아.

  너는 요란한 소리로 나를 다스리는

  나의 원수로다,

  나의 마지막 남은 칼이로다.  (1974. 전문)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다만 한 가지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을 멈추지 않는 위기상황을 늘 겪어야 하는 특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채택한 가장 효율적인 “한국적 민주주의”인 유신체제를 이어가야 하는 나라의 신문기자. 불온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 판단을 누가 하는지는 몰라도 가볍게 자신이 쓴 기사 자리가 하얗게 빈 채 인쇄되어 나가야 하는 나라에서, 기자이기도 한 시인은 “낙원 속의 노예” 상태인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성부는 저 아프리카 잔지바르 섬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 속 노예상태인 유수프가 아무 전망도 내놓지 못한 반면에, 한국적 민주주의의 낙원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망을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칼로 소유하기를 바라고 있다. 노예의 절망이 한 자루의 칼이라는 희망으로 뒤집히는 역전극의 시도. 이성부는 이런 시인이었다.

  시인이여, 편히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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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gial 2024-02-15 0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뜨거워지는군요. 선친이 시인의 고등학교 후배인데 마주친 적이라도 있는지 여쭤볼 길이 없습니다.
제 청소년기에는 이 분은 없었고, 김남주•김승희•고정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의성’은 오타입니다^^

Falstaff 2024-02-15 15:59   좋아요 1 | URL
멀리서나마 인연이 있는 시인이군요. ㅎㅎㅎ 멀지 않은 미래에 제가 시인을 먼저 만나서 물어보겠습니다. 오타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

그레이스 2024-02-19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살 먹은 절망아!˝
이 부분 소름돋았습니다.

Falstaff 2024-02-19 12:1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시집은 읽으면서 이런 시 한두 개 건지면 본전 뽑습니다.
 
무사시노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46
구니키다 돗포 지음, 김영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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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모양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작가 연표를 봤더니, 세상에나, “1922년 치바 현 초시에서 출생”이란다. 윽. 근데 이광수가 이이의 작품을 읽고 소세키와 견줄 만하다고 했다? 혹시 이 이광수가 춘원 이광수도 아니고 “런닝맨”에 출연하는 영화배우 이광수를 말하는 건가? 그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누구야? 에휴, 그랬다가 다음 줄 보니까 “1874년 3세”라고 한다. 1922년 출생은 1871년 출생의 오식이다. 을유문화사 왜 이래, 모양 빠지게.

  무사(武士) 구니키다 센하치는 배 타고 어디를 가다가 초시 앞바다에서 좌초되어, 물에 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초시의 한 여관에 짐을 풀었다가 ‘만’이라는 이름의 여관의 하녀를 통해 아들 돗포를 낳는다. 고향에는 본처와 아들 셋이 있었음에도. 돗포의 엄마 만이 미녀였는지 아빠는 엄마와 돗포를 불러 같이 살다가 조강지처와 이혼을 하고 만을 정실 부인의 자리로 올렸다. 돗포는 엄연히 사생아였기 때문에 양자로 입양하는 방식을 택해 호적에 이름을 올린다. 1884년 열다섯 살에 적자로 올렸다는 걸 봐서, 아빠 구니키다 센하치는 전처 사이에 낳은 아들 삼형제를 호적에서 파버렸던 거 같다. 세상에나….

  이후로는 일반적인 작가들의 연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무슨 무슨 학교를 다녔으며 어떤 잡지에 무슨 글을 기고했고 데뷔도 하고, 혼인도 하고 뭐 그런 것들. 특징을 보면 단편소설 전문 작가인 거하고, 폐결핵을 2년 앓다가 1908년 서른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숟가락 놨다는 거. 아, 그래서 생소했구나. 단편 위주에 짧게 살다 갔으니. 하여간 이름을 남기고 싶으면 무조건 좀 길게 사는 게 유리하다. 그러니 평소에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배변활동도 쾌활하게 해야 한다.


  단편소설 열다섯 작품을 실은 소설집. 위에서 연표를 몇 번 인용했다. 이이의 연표 가운데 아주 특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구니키다 돗포는 1894년 청일전쟁이 터지자 종군기자로 승선해 기사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조선에 상륙을 했었는지는 밝히지 않은 반면에 다음 해인 1895년 6월에 도쿄의 한 병원 원장 사사키 혼시와 기독교부인교풍회 서기 도요주 부부가 종군기자 초대 만찬을 열었고, 여기서 구니키타가 이들의 맏딸 노부코信子를 알게 되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구니키타는 노부코에게 사사키 집안과 절연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이해 11월에 결혼을 한다. 1895년에 구니키타는 홋카이도를 개척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가지고 현지 조사를 하고 있었으나 겨우 겨울을 나고 이듬해 1896년 3월에 도쿄로 돌아온다. 그리고 곧바로 4월에 갑자기 아내 노부코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결혼을 해서 겨우 백일 남짓 같이 살다가 자신의 배 안에 딸이 자라기 시작했음에도 노부코는 자신의 행복, 사랑, 꿈의 질곡을 뒤집어 쓴 채 과감하게 뛰쳐나간 거였다. 삿포로로 간 노부코는 딸을 출산해 다른 집안에 입양을 시키고, 친척 회의를 통해 미국에 있는 일본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행을 결정했지만, 미국행 배 안에서 유부남 사무장과 염문을 일으킨다. 이 일 때문에 노부코는 미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해야 했고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다. 노부코는 이후 선박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무장과 살림을 차려 다시 딸을 하나 낳고 잘 사는 듯했으나 1921년에 사무장이 죽은 후엔 여동생에게 가서 일요학교를 열고 성서와 찬송가를 가르치며 살았다고 한다.

  이 노부코를 모델로 아리시마 다케오는 훗날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할 장편소설 <어떤 여자>를 썼고(지금은 품절), 첫 남편인 구니키다 돗포의 단편 여기저기에선 중요한 등장인물로 선을 보인다. 상, 중, 하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 <가마쿠라 부인>에서 나오는 ‘하이칼라 독부’가 딱 자신의 첫번째 아내인 노부코를 연상시킨다. 미국행 배의 승선원하고 눈이 맞은 것까지 모두.


  열네 작품과 마지막에 실은 자신의 일기 <거짓없는 기록> 전부, 깔끔하고 전형적인 단편소설이다. 딱 단편의 규격에 맞게 짜인 작품들. 해설을 읽어보면 모파상에게 영향을 받았고, 조선의 소설가 김동인한테 영향을 주는 등 당시의 동양인 시각에서는 매우 탁월한 심미안을 가졌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건 그때 이야기이다. 지금 보면 딱 그만큼 세월의 녹이 슨 작품이라는 말도 되리라. 일본에서 새롭게 소설문학이 터전을 잡을 당시를 개척한 작가와 작품. 그리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세련된 작업이었다는 건 충분히 인정할 만큼 단편소설의 틀이 잡혀 있다. 소설을 공부하고 쓰려 하는 사람에겐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나처럼 즐기기 위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소위 ‘강추’하기는 좀 애매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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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2-14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적어도 50까지는 살아야 세상에 확실히 이름을 남기는 거 같아요. 저는 레르몬토프를 보고 그 생각을 했는데 이 작가도 참 같은 팔자였네요.
근데 작가 아버지 조강지처와 그 자식들에게 한 짓이 참 심하네요. 😰

Falstaff 2024-02-14 21:19   좋아요 1 | URL
19세기까지 일본의 무사 계급.... ㅋㅋㅋ 정말 대책없는 인간들이었습지요. 우리나라 원래 양반계급보다 훨씬 교조적이었던 조선 말 돈 주고 양반첩 산 인간들하고 비슷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21세기 와서 벌 받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창비세계문학 90
J. M. 쿳시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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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1928년생으로 1995년 현재 예순여섯, 곧 예순일곱 살이 되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다. 멜버른에서 낳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1951년부터 63년까지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살았으니 사실상 범 유럽, 아니, 범 백인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진보적 작가라서 인종에 관한 차별의식은 없는 사람이라도, 유럽 전역에 살았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일당의 만행과, 공장식 축산의 고통을 견디다가 짧은 생을 전기충격으로 마감하는 짐승들의 비참한 축생은 대단히 슬퍼할지언정, 불과 자신의 몇 대 선조밖에 되지 않는 유럽에서 유입된 백인 종자들이 테즈메이니아 섬 원주민을 완전히 멸종시킨 것에는 한 번도 관심을 쏟아본 적이 없다. 나중에 누군가가 말을 해주어 본인도 깨닫고 왜 그랬을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때 뿐이다. 작가로 지내는 동안 장편소설 아홉 편, 시집 두 권, 그리고 새들의 삶에 관한 에세이 집과 기타 잡문을 썼는데, 이 가운데 젊은 시절의 노작인 <에클스가의 집>이 대박을 쳐, 독자들은 아직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하면 <에클스가의 집>을 먼저 언급할 지경이다. <에클스가의 집>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율리시즈>에 출연하는 두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레오폴드 블룸의 아내인 메리언 블룸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명성을 떨쳤는지 평론가들은 지금도 <에클스가의 집>이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죽은 후에도 오래오래 살아남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율리시즈>만큼 오래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평할 정도이다.

  두 번 결혼했고 결혼마다 한 명씩, 자식 둘을 두었다. 딸은 남 프랑스에서 미술관련 일을 하고, 아들은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다가 현재는 휴직중이다. 1995년 봄에 코스텔로 여사는 펜실베이니아의 윌리엄스타운에 가야 한다. 엘토나 대학에서 수여하는 스토우Stowe상의 수상자로 선정이 되어 상금인 수표 5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 그래서 이번 여행엔 아들 존이 펜실베이니아의 호텔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다시 출국할 때까지 옆에서 보살피기로 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스토우 상과 관련한 허드레 일을 전담하는 테리사가 해주기로 했다.

  아들 존. 만만하지 않다. 어머니라 해도 흔히 생각하는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작가 어머니는 글을 쓸 때 자신의 서재 문을 여는 어떤 경우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를 밖에 던져놓고 문을 닫아 걸어버린 엄마에 대한 응답 가운데 하나의 방법으로 존은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쓴 작품은 물론이고 매스컴에 기고한 어떤 문장도 읽어보지 않았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단단한 벽을 쌓은 어머니에게 자신 역시 벽을 쌓아 답례를 했겠지. 그는 어머니의 수상연설이 끝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출국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만난 라디오 방송국 여성 진행자이자 여성주의 작가 수전 K. 모비어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제 어머니는 남자였던 적이 있어요. 개였던 적도 있지요.”

  워낙 독특한 폭력을 묘사하는 데 도가 튼 쿳시라서 위 인용을 읽고 이게 무슨 수작인지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어느 날 일어나보니 생식기가 변했다거나 개로 종변하는 변용 현상이 일어났던 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남성적인 폭력성을 구사한 적도 있고, 개 같은… (생략)…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존도 나이가 들고, 결혼도 했으며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어서, 예전에 쌓아 올린 벽도 많이 허문 상태이다. 그러나 1995년 봄의 펜실베이니아에서의 존은 비록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엄마를 향해 거슬리는 말을 삼가지 않는 조련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은 터였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온갖 찬사를 남발하는 군중들이 굳이 자신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당신들은 이 여자가 무녀라도 되는 양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 여자는 사십년 전, 날이면 날마다 햄프스테드의 원룸에 처박혀 온자 울고, 저녁이면 안개 자욱한 거리로 기어나가 피시 앤드 칩스를 사서 끼니를 해결하고, 입은 옷 그대로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아이들에게 ‘니들 때문에 내가 죽지, 죽어! 니들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구나!’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멜버른의 집을 뒤집어놓던 바로 그 여자지요.”

  하지만 아들 존은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게 쉽게 되나, 어디.

  책에서는 모자간, 모녀간 불화가 문제로 부상하지 않는다. 한 시절에 그랬던 적이 있다, 수준이지. 문제가 터지고, 도무지 수습되지 않는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건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자신의 육성으로 말한 스토우 상 수락 연설에서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와 여성문제, 원주민 권리 보장과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 같은 문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오리무중의 연설. 심사위원장을 맡은 맥길대학 교수 고든 휘틀리는 스토우 상이 엘리자베스 차지가 된 이유는 1995년이 오스트랄라시아의 해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라는 악담을 날려버린다.


  엘리자베스는 채식주의자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는데 위에서 잠깐 말한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다만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낳고 죽어가는 동물의 섭취를 포기한 거였다. 자신이 동물을 먹지 않겠으면 그냥 먹지 않으면 되는 거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도 육식을 금지하기를 바라 2년 후 다시 방문한 미국의 애플턴 대학 연설에서 공장식 축산을, 어처구니없게도, 트레블린카, 나치에 의한 유대인 처형수용소에 비교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유대인의 생각으로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다. 독일 사람한테 얻어맞고 싶으면 그 사람 얼굴 앞에서 Sie sind ein Schwein 너는 돼지야, 라고만 하면 된다. 전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 사람들도 그렇다. 이 일로 백인 지역의 많은 지식인들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정상이 아닌 작가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소수의 네오나치들과 낭만적 채식주의자들은 열광했다.

  연설 후에 교수 부부들과 육식 금지에 관한 담론이 벌어진다. 이 자리 말석에 엘리자베스의 아들이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주최측이 급하게 참석시킨 아들 부부도 끼어 있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토론은 엘리자베스와 며느리 노마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다.

  “우리가 돼지는 먹고 개는 안 먹는다면 그건 그저 우리가 양육되는 방식인 거예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엘리자베스? 그건 그저 우리 습속의 일부라고요.”

  시어머니는 교수(부부)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답한다. “역겨움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는 신들을 제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역겨움을 제거하지는 못했는데, 역겨움은 일종의 종교적인 공포예요.”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인가. 시어머니 엘리자베스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나라 대통령 배우자의 이름을 넣어도 비슷할 거 같다.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먹거리 십자군이 쳐들어왔다. 국회라는 공권력은 조만간에 완전히 사라질 개고기 식용을 아예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금지권은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권력이거늘 오만한 국회는 이를 무시했다. 자칭 진보도, 보수도. 며느리 노마는 시어머니에게 다시 덤벼든다.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절제의 힘에 의거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월한 존재, 예컨대 사회 내의 우월한 카스트로 분류한다 이거예요. 브라만처럼.”


  채식주의자라고 고기 먹는 사람들에게 괜히 우월감 갖지 말라는 뜻이다. 나도 개고기 안 먹었다. 그러나 먹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개고기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인간들의 90퍼센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도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웃기는 사람들. 대신 당신들은 개고기 먹는 사람을 열등하게 봤잖아, 아냐? 3년이 흐른 후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이 아니라 범죄자가 되는 거다.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만큼 개고기 먹는 게 그렇게 세상에 대고 쪽팔렸니? 아주 먹지 못하게 되기 전에, 먹기만 해도 범죄자가 되어 여차하면 족보에 빨간 줄 올라가기 전에, 나도 한 번, 적어도 한 번, 몇 십 년 만에 먹어보고 여전히 맛있으면 수십번이라도 먹겠다. 이거 진심이다. “금지권력”을 조심하고 삼가하지 않는 너희들, 우스운 종자들, 너희는 개만도 못하다는 거, 이건 몰랐지?


  육십대 후반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세상에 많은 것을 겪었겠지. 이 책을 출간할 당시의 J.M. 쿳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년 동안 거주했고 예순세 살이었으며 다음 해에 동물보호단체 “보이스리스”에 가입한다. 그리고 3년 후인 2006년엔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을 딴다. 여러가지로 엘리자베스와 쿳시가 비슷한 면이 많다. 이제 노년의 초입에 들어 작품이 변하기 시작해서, 쿳시를 읽을 때마다 재미는 있으나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많이 누그러졌다. 아프리카의 지역적 특색 때문에 숨기지 못했던 야만성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거구의 남성에 의한 여성 폭행 장면도 나오긴 하지만 그게 작품의 한 전환점으로 기능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방법이 달라졌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주인공의 연설 내용과 모임의 참석자 사이의 대담 같은 것들로 만들어져 전에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쿳시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만큼 쿳시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더욱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오류나 과장, 잘못은 전부 엘리자베스가 한 짓으로 몰아버리고. 거참 똑똑한 작가네. 말은 자기가 하고, 책임은 주인공한테 뒤집어 씌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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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9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추락>인가요? 거기서 동물의 안락사와 관련된 내용에서, 이 작가의 동물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읽었던 것 같아요.

Falstaff 2024-02-19 12:18   좋아요 1 | URL
넵. 말씀을 들으니까 기억이 날 듯합니다. <추락>하면 성희롱, 성폭력 이런 것들이 주로 떠올라서 말입죠. 그런 것들이 과해서 쿳시가 저한테는 좀 불편한 작가였거든요.
 
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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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 아프리카의 내륙지방에 사는 소년 유수프 이야기. 이슬람도 에덴과 노아의 방주와 기타 기독교의 오랜 약속 또는 계약인, 구약과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소년 유수프. 이 꼬마의 이름을 기독교 식으로 쓰면 “요셉”이다. 나 이거 몰랐다. 알았다면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꽤 고민하다가 읽더라도 아주 나중에 읽지 않았을까 싶다. 요셉과 관련해서는 토마스 만이 쓴 걸작 한 편으로도 내게는 너무 충분했으니까.

  앗! 이거 괜히 말했다. 소년 유수프가 소년 요셉하고 같은 이름이라면, 벌써 눈치 채실 분은 앞으로 벌어질 유수프의 팔자 사나운 앞날을 다 그릴 수 있을 듯하니. 요셉은 야곱이 낳은 많고 많은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엄마 닮아 잘 생긴데다가 야곱이 그렇게 아끼던 둘째 아내 라헬이 직접 낳은 아이라서 남들 눈에도 유별나게 총애하는지라 형제들의 시기를 많이 받았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형들 나이가 많아지고 야곱이 늙어가니까 열 명의 형들이 야곱을 마른 우물에 내던져 버린다. 지나가던 상인이 야곱을 구해 그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 큰 관리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잘 생긴 외모가 어디 가? 관리의 아내가 그만 요셉에게 반해 유혹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허위로 요셉을 고발하여 유치장으로 보내버린다. 여기까지만 알면 된다. 우리의 주인공 유수프가 족장의 아들 요셉만큼 성령 가득한 이스라엘 소년도 아니고 게다가 아마 케냐 몸바사에서 내륙으로 쑥 들어간 곳에 사는 가난한 여관집 흑인 소년에 불과하니 요셉만큼 휘황찬란한 기록은 남기지 못한다.


  그럼 유수프의 아버지는 여구부?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무려 14년 동안 외삼촌이자 장인이 될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반면, 유수프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아버지는 유서 깊은 아랍계 킬와 가문의 아가씨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반도주해 버렸다. 아버지는 이 집안을 위해 토기 물단지를 탁송해주는 대리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위가 되는 건 언감생심이었으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려면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이후 인도인 소유의 상아 창고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일을 똑소리 나게 잘 해서 사환으로, 임시직 상인으로 승진 비슷하게 했으며 이동안 두 아들을 낳아, 향수병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두 손자를 앞세우고 8년 만에 칼와로 갔다가 처자식을 빼앗기고 홀로 도망쳐 나왔던 적이 있다. 물론 천사하고 씨름을 하다 엉치뼈를 부러뜨리지도 않았다.

  유수프의 친엄마는 타이타 오지의 시골 산지 부족의 딸이지만 아버지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지참금으로 콩 두 자루와 염소 다섯 마리만 주면 그냥 등 떠밀어 시집보내는 지역이라고 했다. 유수프의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사업을 하다가 거참 이상도 하지, 하는 일마다 어떻게 그렇게 말짱 다 말아먹는지. 나중에 머리를 굴려보면 바닷가에서 크게 장사를 하는 아지즈 아저씨의 대리점 비슷하게 상품을 보관도 하고 빚도 얻어서 사업도 했지만 그리 성공을 보지는 못했다.  이 가족이 사는 곳이 소도시 ‘카와’라는 곳인데, 독일인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내륙의 고지대로 가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전진기지로 사용하면서 신흥도시로 부상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철도가 놓이자 이제 카와는 목재와 물을 얻기 위한 중간계류지에 불과하여 이동인구가 없어지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지옥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수프의 아버지가 한 사업은 호텔업. 말이 좋아 호텔이지 이층 객실에 침대 네 개를 놓고, 아래층에선 밥을 파는 식당을 운영할 뿐이었다. 당연히 이 호텔이라는 곳도 카와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지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인 아지즈 아저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래 산골 카와에 아지즈 아저씨가 뜨면 종종북, 탐부리, 뿔피리, 시와 같은 지역 전통악기를 두드리고 크게 부는 악대를 선두로 이어서 경비원과 짐꾼들이 줄을 잇고 제일 나중에야 아지즈 아저씨와 저승사자같이 생긴 음냐파라(경비대장) 모하메드 압달라가 도착했다. 아지즈 아저씨가 올 때마다 아버지와의 일을 끝내고 유수프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슬쩍 유수프에게 10안나짜리 동전을 쥐어 주었다. 그런데 이 날은 아지즈 아저씨 혼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음식을 했는지 읽으면서도 군침을 꿀떡 삼켰으니, 닭고기와 저민 양고기로 만든 두 종류의 카레, 건포도와 아몬드가 점점이 박히고 버터를 발라 반짝이는 최고의 페샤와르 쌀밥, 천으로 덮인 바구니에 가득 담긴 향긋하고 불룩한 번, 만다지와 마함리, 코코넛 소스로 버무린 시금치, 물콩 한 접시, 잔불에 구운 말린 생선. 아쉽다, 쐬주 한 병이 빠졌다.

  식사가 끝나고 아지즈 아저씨는 위층 객실에 올라가고, 아버지는 방에서 시에스타를 즐긴 후에, 아빠가 먼저 깼다. 그리고는 하나밖에 안 남은 아들 유수프를 불러 놓고 하는 말이, 이제 너도 열두 살이니 제법 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렸다. 그리하여 넓은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것이 당연, 오늘 당장 아지즈 아저씨와 함께 가서 세상 사는 법과 장사하는 법을 배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를 게을리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무려 기차를 타고, 해변, 바닷가까지 가는 일정이라는 데도 유수프는 이상하게 즐겁거나 기쁘지가 않았다. 엄마가 벌써 작은 보따리를 준비했으니 속에는 반바지 두 벌, 지난 이드 축제 때 사서 아직 새것인 칸주(무릎까지 내려오는 무슬림 옷), 셔츠 하나, 쿠란 한 권, 그리고 어머니가 쥐어 준 낡은 묵주. 이게 다다. 그리하여 유수프는 아지즈 아저씨와 함께 기차를 타고 (뭄바사로 여겨지는) 해변가 도시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묵주는 기차간에 떨어뜨려 영영 잃어버리고. 상단에 팔린 요셉이 생각난다고? 뭐, 나도 그랬다.


  아지즈 아저씨는 이제 주인님이라는 뜻의 “사이드”라고 불렸다. 유수프는 아저씨가 입에 붙어 도저히 사이드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소년이 일해야 하는 상점의 열일곱 정도 먹은 청년 점원 칼릴에게 구박도 받았다. 칼릴은 이복 여동생과 함께 이 집에 들어와 상점과 아지즈 아저씨 부재 시의 장부 관리까지 다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칼릴은 잘 생긴 유수프를 동생이라 칭하며 여러가지로 그를 돌보게 된다. 딱 하나 아쉬운 건 워낙 말이 많은 수다꾼이라는 점. 칼릴은 냉정하게 현실을 읽어준다. “유수프, 네가 여기 있는 것은 네 아버지가 사이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야. 네 아버지는 형편없는 사업가가 틀림없어.” 칼릴의 아버지도 사업을 하다 사이드 아지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칼릴과 여동생을 (법적으로 노예제도가 없어졌으니) 담보로 데려와 일을 시키고 있었으며, 여동생은 후에 아지즈의 두번째 아내가 된다.

  아지즈는 그냥 평범한 똘똘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못생겼지만 엄청나게 부자인 과부가 수많은 청혼자를 물리치고 아지즈에게 결혼하자고 중매를 넣었다. 과부는 못생긴 것도 모자라 미치기까지 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인간의 손에 다친 상처가 아니라 뭔가 나쁜 영이 손을 댄 것이라 과부는 아지즈와 결혼한 후에도 사람들 눈으로부터 숨어서 지냈으며, 아지즈는 단박에 큰 부자가 되어 큰 상단을 꾸려 내륙으로 카라반을 시작했다. 원래 과부는 상선을 거느리고 무역을 하던 집이었지만 아지즈는 바다 대신 시야를 내륙으로 돌린 것인데, 이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직접 읽어보셔도 모른다.

  우리의 유수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빼어난 미남으로 다시 태어난다. 설마 야곱의 아들 요셉만 하겠는가만 하여간 근동의 최고 미남으로 꼽아도 군소리가 없을 정도였으며, 실제로 나이 든 처녀 한 명이 노골적으로 남편을 삼겠다고 껄떡대기 시작했다. 이럴 즈음 유수프는 마님의 예전 노예 출신 정원사 음지 함다니가 가꾼 정원에 흠뻑 빠져 살았고, 벽 뒤에서 유수프를 본 마님은 다 큰 청년이 자신의 정원을 들락거린다며 불평을 했으며, 아지즈 아저씨는 다음 해 상단이 출발할 때 유수프를 데려 가, 산악지대에서 자신의 대리점과 창고를 하고 있는, 아이고 이름도 길다, 알함둘릴라히 라빌 알라민의 집에 유수프만 달랑 남긴 채 카라반을 계속한다. 유수프는 졸지에 사로잡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후 유수프는 더 멋있는 청년으로 자라 다시 해변가 저택의 상점으로 돌아오고, 이번엔 진짜 상단을 따라 험하고 고단한 카라반에 동행하며, 금단의 정원에서 정원사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세상의 모든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 들이닥치는 법이라서, 천상의 낙원처럼 보이는 금단의 정원, 이곳이 낙원이 아닌 이유는, 차마 말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직접 확인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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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2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읽어서 아는 내용인데(성경 포함)^^
폴스타프님 글은 너무 재미있네요~

Falstaff 2024-02-12 08: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애초에 재미있게 읽어주시려 각오하고 읽어주시니 그렇지 별 거 있겠습니까. 그저 고마울 따름입지요. ^^

moonnight 2024-02-12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흥미진진한데 끊어버리시네요ㅠㅠ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Falstaff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2-12 11:18   좋아요 2 | URL
이 책 재미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24-02-12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끝내시면 어떡합니까, Falstaff님!!
˝애굽으로 가 큰 관리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잘 생긴 외모가 어디 가?˝ 에서 빵 터졌습니다. 저도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 중에서 요셉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요셉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똑똑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잘생겼는지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차은우 떠올려봅니다.
저도 읽어보려고요. 차은우 떠올리며 읽는 유수프 이야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2-12 16:2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실존은 의식보다 강합니다! 차은우가 누구여? 마누라한테 물어봤다가 오지게 얻어 터지고, 그래 내가 뭐랬어, 책 좀 그만 파고 테레비 좀 보라 그랬지, 검색해보니까 예쁘장하게 생겼네요. ㅋㅋㅋㅋ
꿈 해몽한 것도 쓰려다가 아무래도 길어질까 싶어 관뒀습지요, 유수프 역시 그만큼 똑똑하지는 않고요. 그만큼이라니,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재미있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