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3 #시라는별 36

쓸데없는 게 어딨어
- 김상순

니는 남의 아아들한테 씰데없는 넘, 이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이.

그 말 않고 살기 어렵소.

세상에 씰데없는 말은 있어도 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라. 하매(하물며),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넘이 있고 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 여문 넘이나 무른 기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래도 쓸데없는 사람은 있소.

아이다. 니 눈에 그리 보여도 안 그렇다. 사람도 한 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노? 밥 하는 놈 있고 묵는 놈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 다 있어야 하는 기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나.

요새 세상은 그런 사람 없어도 잘만 돌아가요.

내사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기 별 다르지 않다. 지 눈에 안 찬다고 괄시하는 기 아이라. 내사 살아 보니 짜다라 잘난 넘 없고, 못 볼 듯 못난 넘도 없더라.


허수경을 시들이 무거워 팝콘처럼 가볍게 통통 튀는 김상순의 입말 시로 돌아왔다. 게다가 곧 스승의 날이지 않은가.  

초등학교 교사 홍정욱은 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어머니 김상순에게 언제나 타박을 듣는다. 비가 많이 오겠나? 라는 질문에 내가 우찌 아오? 라고 답하면 김상순은 ˝선생이 배운 게 짧네. 하루 일기도 못 봐서. 그래가 크는 아이들 똑띠 갈치겠나.˝ 라고 핀잔을 주고, 힘드니 뭘 자꾸 하지 말라는 아들의 염려 섞인 말에는 ˝안 힘든 일이 있으며 갖고 와 봐라. / 다 그리 산다. 니는 사는 게 수월하냐?˝ 라고 도로 묻는다.

살아 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지혜까지 먹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가방끈이 길다고 지헤의 끈까지 길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김상순이 책보다 흙을 만지고 살면서 몸과 마음에 익힌 세상 사는 지혜를 꿀꺽꿀꺽 삼켜야지.

세상에 씰데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러니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스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상순은 흙이 길러낸 스승이다.

˝배우긴 어디서 배워? 날마다 뭘 해 봐라. 일머리가 보이고 길이 보이지. 손이 일을 하면 머리는 또 제대로 일을 찾는다 아이가. 그기 일머리다.˝

사진은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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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3 0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흙으로, 삶으로 똑띠.단디 배우는 인생공부^^♡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0:42   좋아요 4 | URL
ㅋㅋ 똑디. 단디. 이 말 넘 좋아요. 넵. 단디 배우겠습니다^^

새파랑 2021-05-13 1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쓸데없는 사람은 없다. 좋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2:08   좋아요 4 | URL
어. 이상합니다. 분명 댓글 달았는데 없어졌음요.🤔🤔🤔 지는 늘 방문해 댓글 달아주는 새파랑님 좋아요~~~~완전^^

새파랑 2021-05-13 12:18   좋아요 3 | URL
행복한책읽기님 덕분에 좋은 시랑 글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

scott 2021-05-13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사람 없고
쓸모 없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은 있는 ~ㅎ
마지막 사진
행복한 책읽기님 사진에 포착된 생명들 모두
생기가 가득 (。♥‿♥。)

행복한책읽기 2021-05-13 22:45   좋아요 2 | URL
명언 등록이요^^ 매달리지 않겄어라~~~^^

붕붕툐툐 2021-05-13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쓸데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리~ 아마 김상순님도 저랑 한 달만 같이 살면 쓸데 없는 사람 있다고 맘 바꾸실지도;;;;ㅎㅎㅎㅎㅎ
이팝나무 넘 멋져요!! 저도 좋아라 하는 나무예용!

행복한책읽기 2021-05-13 22:48   좋아요 2 | URL
어머 무슨 말씀. 아마 툐툐님이 김상순님께 감화돼, 내가 엄청 잘났구나로 맘을 바꾸실듯요. ㅋ 이팝나무꽃이 지려해요. 다른 곳에서 같은 맘으로 보아요^^

희선 2021-05-16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말이네요 쓸데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꼭 큰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이 세상에 왔다가 자기 삶이라도 잘 살고 가면 괜찮겠지요 살다가 비뚤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남한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희선
 
아빠의 말공부 - 자녀의 인생 태도를 결정하는
천경호 지음 / 푸른칠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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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천경호 선생님은 페북으로 알게 된 초등학교 교사이다.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다. 세상에 이런 선생님만 있으면 아이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고민하고, 공부하고, 강구하고, 실천하려 애쓰고, 실제로 많은 일들을 하신다. 페북을 통해 천경호 선생님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보면, 히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성실할 수 있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거듭거듭 발전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말공부>>는 수록된 저자의 글은 다 보석 같으나 출판사의 제목 설정과 편집은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임숙 심리치료사의 <<엄마의 말공부>>를 그대로 따라하다니. ㅠㅠ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말이란 결국 생각에서, 생각은 결국 삶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천경호 선생님은 말 이전에 삶으로 이미 저 모든 말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빠가 처음이다. 아니다.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아이들은 자라고, 그때마다 필요한 아빠의 모습은 계속 달라지니까. 커 가는 아이들에 따라 아빠의 역할도 계속 달라져야 하니까. 따라서 매 순간 아빠의 역할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그래서 계속 배워야 하고,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한다. - P19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아빠의 역할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자기실현을 추구할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가족 역시 아빠의 자기실현을 도와주어야 한다. - P39

아이의 질문("아빠는 공부가 좋아, 내가 좋아?)을 받고 내가 공부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빠가 되어서 참 좋다. 나를 성장시키고, 삶의 목적을 깨닫게 해 주는 이들이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까. - P41

이제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디를 가건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 P48

나는 아이들과 규칙을 세웠다. 어떠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내가 먼저 말하지 않고, 아이에게 행동의 이유를 물었다. 때로는 어른들은 알 수 없는 아이들만의 이유와 감정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그리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예상하고, 또 조절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 나갔다. 쉽지는 않지만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아이가 경험하고, 또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부모의 일관된 신념이 가장 중요하다. - P73

부모가 아이의 어떤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아기가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느냐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칭친과 격려는 아이가 노력하는 과정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해 주는 것이 좋다. 그것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 - P96

아빠는 네가 좋은 대학에 가는 사람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그게 너를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 - P130

불교에는 ‘예토즉정토‘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좋은 학교에 가기를 바라지만 내가 다니는 혹은 근무하는 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는다. / . . . .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있는 곳을 치고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는 게 어떨까. 모든 아이들과 교사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가장 훌륭한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학벌보다 학력(배우는 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 가는 길은 더 쉽지 않을까? - P140

가족이라는 친밀하고 신뢰하는 공동체 속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타인은 바로 아빠다. 열 달 동안 한 몸으로 지내 온 아이와 엄마는 서로를 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빠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타인인 셈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아빠보다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이외의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아빠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아빠는 아이의 사회생활에 일종의 모델링이 되어 준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 아빠가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 아빠가 아이와 같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때문이다. - P151

아이들 곁에는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부모가 필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 혹은 가치를 이야기하며 자부심을 보여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부모라는 어른을 통해 바라보는 사회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어른도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음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전하는 진정한 칭찬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어야 할 테니까. 부모의 삶으로 전하는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할 테니까.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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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2 11: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나라에 가면 문지기가 물어본대요. 어떤 사람들과 살았었냐고. 나쁘고 악한 사람들과 살았었다하면 여기도 마찬가지일테니 돌아가라고 한답니다. ‘예토즉정토‘ 보니 떠올랐어요ㅋㅋ결국 태도와 말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듯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2 12:11   좋아요 4 | URL
오호. 행복나라 문지기. 미미님은 ‘예토즉정토‘를 이미 알고 계셨군요. 역쉬~~~~ 우리는 문지기에게 말해주자구요. 저는 악하고 나쁜 사람들도 만났지만 착하고 예쁜 사람들과 주로 어울려 놀았다고 말이죠.^^

초딩 2021-05-12 12: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일이 처음이다
가슴에 담고 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0:45   좋아요 2 | URL
<매일이 처음이다> 이 말 넘 좋죠. 저도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천경호 샘도 같은 생각을 하는 계셔 동질감 듬뿍듬뿍 솟았답니다.^^

새파랑 2021-05-12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이란 생각이고 삶이다~너무 좋은 말이네요~★★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0:46   좋아요 1 | URL
어머. 새파랑님은 이미 너무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계시는 걸요. 사람들에게 좋은 책들 엄청엄청 알리고 있잖아요. 멋짐멋짐.^^

scott 2021-05-12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계속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그게 너를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
내가 사는 곳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오늘의 밑줄 쫘악~~◌⑅⃝*॰ॱ✍
이런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하시는 행복한 책읽기님!!
τнänκ чöü♥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0:49   좋아요 2 | URL
아. 우리 scott님은 역시 인생의 행복을 아는 분. scott님 은 배움이 행복임을 누구보다 알고서 날마다 배우고 자기 사는 곳을 만들어나가는 분이어요. 님 또한 제게는 보석 같은 귀인입니다요.^^
 
아빠의 말공부 - 자녀의 인생 태도를 결정하는
천경호 지음 / 푸른칠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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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험하다. 책담 아래 사는 울집 남자가 손도 안대 내가 읽다 열폭해 버렸다. 넘 비교돼서. 이 책의 저자는 아빠이자 교사다. 페북으로 이분 인생 철학과 태도를 보고 늘 감탄했는데, 아빠로서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도 귀감이 된다. 적용하고프나 잘 안 된다. 제목은 넘 성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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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시라는별 35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나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를 절반 가량 읽었다. 대체적으로 슬프다. 시인이 죽기 2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는 걸 알고 읽어서인지 허 시인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가 특히 더 그랬다.

이 시는 지난 번 소개한 <엄마의 나의 간격>처럼 존재의 원초적 고독을 노래한다. 우리 모두는 별개로 존재하는 섬이다. 허수경 시인이 ‘섬이 보내는 편지‘라 하지 않고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라고 쓴 까닭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연에서 나는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일찍이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짧은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말했다. 정 시인이 사람 간의 소통 열망을 노래했다면, 허 시인은 사람 간의 소통 불가를 꼬집는다. 서늘한 통찰이다. 서늘한데 또 뭉클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신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소통을 염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하려 해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섬과 섬 사이의 간격처럼 절대 메워지지 않는다. 메울 수 없기에 그 간격을 허수경 시인은 ˝세기의 차이˝이자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고독˝이라 부른다. 원초적 고독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책이 있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132)
˝격렬한 아픔을 견디고 있을 때, 가장 또렷하게 자기 자신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을 하나하나 전부 눈으로 쫓아가듯, 자신의 아픔을 ‘아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난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1초1초마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저주하게 된다. / 그러나 고통뿐 아니라 애초에 신체적 감각을 느끼는 일 자체가 내가 나한테 얽매여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134)

고독은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이기도 하나, 기시 마사히코의 지적처럼 내가 나임을 오롯이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나의 고독을 모른다. 나의 고통을 모른다. 나의 아픔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나 나나 그리 쓸쓸하게, 그리 처절하게, 그리 헛헛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봐 줄 수 있다. 비록 창백하게 빛나는 별이고 잊혀질 손이고 사라질 섬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시인의 말따나 짤막한 안부 인사 뿐일지도. 고독이 고독에게 악수를 청할 때, 그 손은 꼬옥 잡아주자. 비록 실오라기 같은 공감밖에 나눌 수 없다 해도, 악수를 하는 그 순간만큼 뜨거워질 수 있을 테니까. 따뜻함이 피처럼 온몸으로 퍼질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순간의 힘으로 영원을 사는 존재들이니까.

지금은 오월의 싱그러움에 기대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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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0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독과 섬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때론 고독하지만,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너무 싱그러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7   좋아요 3 | URL
그죠. 고독과 섬은 정말 환상의 콤비.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 캬! 맞습니다. 맞아요. 그 시간들이 있어 마음의 평화도 찾았던 것 같아요.^^

scott 2021-05-10 16: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님의 유고집 같은 이 시집도 정말 좋지만
행복한 책읽기님의 시! 평이 떠 좋아요
한번에 묶어서 나만 읽고 싶어라~~
마지막 사진까지
이런 재능 ,아끼지 말귀 ( *ฅ́˘ฅ̀*)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8   좋아요 3 | URL
아니 이런. AI scott님한테 칭찬 들은 겁니까. 저. 아이 좋아라. 아이 기뻐라. 햇빛 찰랑거리는 이 오후에 혼자 어깨 들썩들썩 춤을 춥니다요. 감솨감솨~~~~~^^

희선 2021-05-12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이 나오고 다른 책도 나오기는 했는데 그것도 못 봤네요 거기엔 더 죽음을 말하는 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밖에 공감할 수 없는, 그렇겠지요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인 듯합니다 그래도 그런 때가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12 09:5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주 조금이고 아주 짧은 순간이어도, 그런 순간이 여러 겹이 되면 공감 또한 쌓이는 게 아니겠어요. 알라딘 서재도 공감의 공간인 것 같아요. 그죠.^^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김상순.홍정욱 지음, 이우만 그림 / 이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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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추다. 저자가 쓴 다른 책 제목처럼 꼭꼭 씹을수록 단맛이 쏙쏙 우러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고단함과 신산함을 지혜 듬뿍 밴 유머로 버무려버리는 김상순의 능청스러움라니. 사는 게 무거운가. 어버이가 그리운가. 이 책을 읽으시라. 가벼워지고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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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7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 시집~! 밑에는 필독, 이책은 강추면 이 시집을 읽어야 겠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8 09:32   좋아요 1 | URL
필독은 강강추입니다. 새파랑님 얼얼하니 좋아하실 거예요. 두 책의 색깔이 전혀 다른데, 둘 다 저는 넘 좋아요^^

붕붕툐툐 2021-05-08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강추는 담아갑니다아~ 가벼운거 너무 좋아욤^^

행복한책읽기 2021-05-08 09:34   좋아요 2 | URL
툐툐님께도 두 권 모두 추천.^^ 1945는 특히 국어샘 역사샘들에게 강추하고픈 필독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