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6 시라는별 6 

희망은 한 마리 새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에밀리 디킨슨 

희망은 한 마리 새 ㅡ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ㅡ
그칠 줄을 모른다 ㅡ 절대 ㅡ 

모진 바람 속에서 ㅡ 더욱 달콤한 ㅡ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ㅡ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ㅡ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ㅡ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ㅡ
허나 ㅡ 아무리 ㅡ 절박해도 그건 내게 
빵 한 조각 ㅡ 청하지 않았다 


파시클 출판사에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이 그림 시집과 함께 시리즈로 출간되었길래 첫 권을 구매했다. 그림시집 4권. 시선집 4권이다. 번역가가 디킨슨 아카이브에서 1800편의 시들을 직접 고르고 엄선해 번역했다. 옮긴이 소개글을 보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다 페미니즘으로 전공을 바꿔 틈틈이 시인의 시를 읽고 번역해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마치 에밀리 디킨슨이 날마다 시를 쓰고 모아진 시들을 바느질로 엮어 책자를 만든 것처럼.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번역가의 이런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고 그의 시를 이렇게나 많이 번역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번역이 대체로 무난하고 시인의 문체를 살리려 애썼고 디킨슨 시의 독자성인 줄표 기호도 그대로 실었다. 그런데 . . . 오역이 눈에 띈다. 어쩔겨 ㅠㅠ 위에 올린 저 시 ‘Hope I the Thing with Feathers‘를 박혜란 번역가는 ‘˝희망˝이란 놈은 깃털이 있어‘라고 번역을 했다. 이건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디킨슨 시의 장점인 군더더기 없는 문구와 간결한 문체에서 벗어난다. 더 문제는, 2연과 3연의 아래 두 줄은 명백한 오역이다. ㅠㅠㅠ 시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기에 번역가의 이 실수가 나로서는 안타깝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시를 두고 ˝이것은 세계에 보내는 편지야 / 세계는 결코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ㅡ˝이라고 썼다. 번역가는 디킨슨의 편지를 부분적으로 잘못 해석했다.

내가 위에 올린 번역시는 장영희 영미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번역이 잘
된 번역, 좋은 번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줄표는 저 번역본에 없는 것을 내가 넣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죽기 전까지 거의 25년 동안 바깥 세상과 등을 진 채 살았다. 그 기간 동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는 오로지 그녀가 쓴 시로서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간 디킨슨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데서 동질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희망‘을 깃털 달린 것이라 한 것은 그녀 또한 훨훨 날고 싶은 속내를 이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희망‘의 소리를 듣겠다 하고 ˝아무리 절박해도˝ 구걸 따윈 하지 않겠다는.

디킨슨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 곧 희망‘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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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27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어려운데, 시를 번역한다는 일. 저로서는 가히 상상히 되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1-27 08:08   좋아요 0 | URL
그죠. 시 번역은 아무리 잘해도 원작 느낌을 고대로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 같아요. 그럼에도 하시는 분들 넘 대단하고 고맙죠. 지는 걍 읽는 것에 만족함다^^

라로 2021-01-2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 제목이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아닌가요? ^^;; 저도 장영희 선생님 번역하신 시들이 다 좋아요. 그러네 새로운 번역이 나왔군요. 젊은이의 해석일까요?? 읽어보지 않아서 추측만. 저희집에 에밀리 디킨슨 시집 여러 권 있는데 제가 읽은 것들은 영문학 수업 들으면서 읽은 것들이 대부분. 또 반성모드로 전환중.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21   좋아요 0 | URL
헐. 지가 s를 빼먹었군요^^;; 감사해요. 반성 모드 필요없음요. 라로님은 이미 책을 충분히 읽고 있음요^^ 라로님 집에 있는 디킨슨 시집들 내 집으로 옮겨오고 싶음요^^

희선 2021-01-2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시를 한국말로 옮기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일 듯합니다 그 나라 말뿐 아니라 한국말도 잘 알아야 하니... 어디선가 이 제목 시 본 것 같아요 희망은 한 마리 새가 더 어울리고 좋게 보입니다


희선
 
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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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시라는별 5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 
-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 나는ㅡ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주말에는 가능한 아이들과 함께 산행 혹은 산책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사온 동네(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에는 마침 뒷산이 있어 큰마음 먹지 않고 물과 간식거리만 챙겨 가볍게 나설 수 있다. 이 가벼움은 물론 내게만 해당된다. 아이들은 . . . 흠흠 . . . 몸이 정말 무겁다. ㅠㅠ

아파트를 기준으로 등산로가 좌우로 나뉜다. 좌측길은 들어갈수록 사람 사는 동네를 벗어나고 우측길은 사람 많은 동네 중심가로 이어진다. 나는 코로나 19로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산 지 어언 1년이라 인적 드문 좌측 등산로를 선호하지만 아이들은 노선도 짧고 놀이터도 자주 등장하는 우측 등산로를 선호한다. 어제는 왼쪽길로 긴 시간, 오늘은 오른쪽길로 짧은 시간 산행을 했다.

하여 떠오른 시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이었다.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로도 해석된다. 이 시와 시인은 워낙 유명해서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조차 많이들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대학 때 수업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더더기 없는 좋은 시다.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를 부른다. 나는 아쉬워는 하나 후회는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택했거나 택하지 않은 길들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다. 다만 반백년 인생에 이르고 보니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때 좀더 치열하게 파고들 걸 하는 아쉬움은 정말로 크게 남는다. 허나 또하나 알겠는건, 사람이란 저마다 가진 역량이라는 것이 있어 저 열심히나 치열하게가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나란히 걷는 내 아이들은 어떤 길들을 택해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지금은 사람 많은 길을 좋아하는 저 아이들이 나중에는 다수가 잘 찾지 않는, 혹은 다수가 절대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택할까. 어떤 길이 되었건 그 길에서 나를 찾고 너를 찾고 ‘낙‘을
찾았으면 좋겠다.

번역은 고 장영희 선생님의 영미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에 수록된 것이다. 장영희 선생님은 내 은사님이었다. ‘이다‘가 아닌 ‘었다‘라고 쓰게 되다니 마음이 참 . . . 장영희 선생님의 번역은 아주 훌륭하다. 시 해석은 물론이거니와 운율을 아주 잘 살려놓았다. 이
시집은 고 김점선 화백의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소장용으로 그만이다. 나는 이 시집을 여기저기 선물도 꽤 했다.

봄날처럼 따스한 겨울날. 아이들과 산행을 하다 이 시를 떠올리고 장선생님의 책을 다시 펼쳐 볼 수 있어 기뻤다. 선생님의 글은 종종 선생님의 육성이 지원되는데, 그 높은 어조와 속도만큼은 지원 불가의 영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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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나무숲은 참 멋지네요! 멜랑꼴리한 서양 풍경화에 나왔을 법 한 분위기이네요!ㅎ 담주도 즐건 한주 되시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1:35   좋아요 2 | URL
그죠. 저기 뒷산의 오지인데 아이들 덕에 질퍽한 땅 밟고 내려가 찍었답니다^^ 막시무스님도 즐건 한주 만들어가세요~~~^^

미미 2021-01-24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것을 바꾸어놓았네

요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홍정욱 7막7장에서 어릴때 읽구요. 여태 앙드레지드라고 알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프로스트의 말이란걸 확인했어요. 어쨌거나 마음 한켠에 자리했던 좋은 말
또 제대로 보니 반갑습니다 사진도 멋짐^^♡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2:17   좋아요 1 | URL
어머. 그랬군요. 7막7장. 장안의 화제였던 책. 넘 샘이 나 멀리한 책. 어찌나 잘났던지. ㅋ 미미님께 추억을 떠올리게 해 기뻐요^^

2021-01-27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1-27 15:58   좋아요 1 | URL
아 장샘 애독자를 이리 만나니 넘 반가워요. 장샘이 하늘에서 미소 짓고 계실듯요. 장애와 무관하게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답니다^^

라로 2021-01-28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선생님을 은사로 두시다니!!! 책님 넘 부러워요!!! 제가 알라딘 공식 장영희 샘 마니아 1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분 책은 단 한 권 빼고 다 갖고 있는데 그 한 권 찾기가,,,이제는 거의 포기.ㅠㅠ 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저 시에 대한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그때 교수님이 가장 애정하는 시인이 프로스트 였는데, 자기가 어렸을 적에 어느 가정집에서 프로스트가 읽어주는 시를 들었었데요. 같은 동네 출신;;; 세상은 참 요지경 같은데도 질서가 있어요. 동향사랑, 뭐 이런.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럼 라로님이 저보다 장샘 책을 더 많이 소장하고 더 많이 보셨네요. 장샘이 살아계셔 제가 라로님 얘길 전해드렸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얘, 그런 애독자들 수두룩해. 너희들만 내 유명세를 몰라!!˝ ㅋㅋㅋ 정말로 제자들은 몰랐어요.^^;;; 프로스트가 직접 읊어주는 시를 듣는 행운을 누리셨다니, 그 교수님 와~~~ 근데요, 그 한 권이 뭘까요????

라로 2021-01-28 21:06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몰라요. ^^;; 한때 어마어마한 팬이었어요. 그 한 권은 <여자에게>라는 책이에요. 그분 뿐 아니라 다른 분도 함께 글을 쓰셨는데 이거 재발간 안 해주나 싶네요. ^^;

그런데 책님이 쓰신 그분의 말투는 제 생각처럼 넘 귀여우세요!!>.<
 

20210124 인간은 여행가방

캐서린 맨스필드를 처음 읽는다. 이 작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떴구나. 34세. 짧은 인생이나 역정이 순탄치 않았다. 디아스포라. 동성애. 폐결핵. 평단 무시.
아홉 편의 단편 중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를 읽었다. 문체가 시니컬하다. 이야기 중심이기보다 사변적. 그래서 술술 읽히진 않는데, 인생을 보는 작가의 통찰에 눈이 뜨인다.

나는 인간이란 커다란 여행가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동댕이쳐지고 덜컹거리며 보내지고 잃어버려졌다가 다시 찾아지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아니면 더 꽉꽉 채워지다가 마침내 궁극의 기차에 홱 올려놓으면 덜그럭거리며 사라져버린다.(141)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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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전 여기 실린 첫번째 단편 ‘차한잔‘ 영화 ‘아가씨‘가 떠올랐어요 ^.^
 
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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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불화하는 마음

이성복 시인의 《불화하는 말들》을 읽다 이 구절이 떠올랐다. 불화는 필연적이고 행복은 일시적이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되 유토피아에 갇히진 말 것^^

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부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정신의 내면 세계를 개발하면서 세상에 적응한다. 완벽한 행복, 다시 말해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일어나는 일체감은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찾지만, 바로 그런 본성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든 창의적인 노력에서든 행복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 . / 가장 행복한 삶이란 인간관계나 인간관계 이외의 것 어느 한쪽에 대한 관심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이상화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49)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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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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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체는 싫어하지 않으나 여행 준비는 걍 귀찮아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 준비만으로 설렘과 만족을 동시에 거머쥐는 행운아라니. 얼른 읽고 슈퍼바이백으로 내놓으려 했으나, 내가 몰라 참조해야 할 여행준비기술 땜에 묵혀 두기로. 이런 사람은 못되겠으니 이런 친구를 옆에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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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1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같은 시절이 길어지니 정말 강렬하게 여행준비하고 싶어지네요!ㅎ 즐거운 하루되시구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1-21 12:25   좋아요 1 | URL
ㅎㅎ 막시무스님도 여행을 꿈꾸며 즐건 하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