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1 시라는별 4 

불화하는 말들 12 
- 이성복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에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젊지 않으면 쓰나 마나 한 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쓰게 돼요 .

우리가 할 일은 
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오직 시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syo님 페이퍼에서 이성복 시인의 <<불화하는 말들>>을 낚시질해 중고로 구입해 읽고 있다. 부제가 ‘이성복 시론‘이어서 무언가 했더니 ˝2006년과 2007년 사이 시 창작 강좌 수업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시처럼, 잠언처럼 읽히는데 삼분의 일쯤 읽은 나의
소감을 말하자면, 히야, 시인은 역시 아무나 될 수 없구라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시를 이 시인의 말대로 꼭 ˝모호하게, 여운이 남게˝ 써야 하는가 라는 대들고픈 의문이다. ㅋ

syo님은 이 시론집을 오래 묵혀 한 30년 벗하며 살 수 있겠다더마, 흠흠흠, 아무래도 내게는 30년까지야 싶다.  

이성복 시인은 52년생이다. 대학 시절 이 분 시를 좋아해 읽고 다니던 동기생들이 몇 있었다. 나는 훨씬 뒤에야 이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을 펼친 독자이다. 시와 산문으로 접한 이성복 시인은 언제나 젊게 느껴졌었다. 만년 청년인가 했더니 52년생! 올해 나이 70! 그런데 이
시론집에서 발견한 위의 저 시론을 읽고 이성복 시인을 만년 청년이라 부르기로 했다.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

˝불화는 젊음의 특성.˝ 불화하되 꼰대짓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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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1-2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 벗할 수 있겠구나- 해놓고 팔아치웠어요 ㅋㅋㅋㅋㅋㅋㅋ 벗할 수는 있겠지만 벗하지는 않겠다....

행복한책읽기 2021-01-21 09:56   좋아요 0 | URL
헐. 그럼 스요님이 팔아치운 책을 지가 또 낚시질한 걸까용 ㅋㅋ

syo 2021-01-21 09:58   좋아요 1 | URL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ㅎㅎㅎㅎ 세상에는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읽은 책은 자꾸만 팔아치우게 되네요.....

희선 2021-01-22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하고도 세상하고도 불화해야 언제나 젊겠습니다 자기 고집이 되지 않게 해야 하니 그것도 쉽지 않겠네요


희선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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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시라는별 2

불편으로  
- 이규리 

불빛을 좀 낮춰주세요

내가 아프니 그들이 친절해졌는데요 

그러지 말아요 
아픔을 가져가지 말아요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
상처받았다 받았다 하니 
상처가 사탕인가 해요 

태생들은 불편이었을까요 

불편을 들이며 그만한 친구도 없다 생각했는데 
이게 그거 
별일 아니라는 듯 
별이라 불러보려 했는데 

그 별 다치게 한다면 멀게 한다면 

일찍 늙어버린 사람 
마치 그러기를 바란 사람처럼 
별과 별 사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다고 그랬을까요 

손톱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한 생각을 물어뜯도록 

괜찮아요 절룩이며 
여기 남을게요 

불편이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끌 수 있다면 
별을 헤듯 

그래요 여기 남아서 말이죠 


작년(벌써 작년) 첫 눈 내릴 때(2020.12.13) 당도한 이규리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해를 넘겨 한 달이 넘게 들여다보고 있다.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거의 포기 상태. ㅋ

‘불편으로‘ 시 좋다. 시어들이 쏙쏙 들어온다.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 / 상처받았다 받았다 하니 / 상처가 사탕인가 봐요˝ 라는 구절을 읽고 피식 웃었다. 상처가 사탕이면 무슨 사탕이려나, 사탕은 대개 달달한데, 달달한 상처가 있던가. 씁쓸한 맛이 나는 사탕이 무엇이더라, 아하, 혹 홍삼 캔디??

모든 관계는 크든 작든 ‘불편‘하다. 세상 편한 관계는 세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론 기꺼이, 때론 마지못해 그 ˝불편을˝ 내 삶에 들인다. 기꺼이 일 경우에는 불편보다 행복이 큰 탓일 테고, 마지못해 일 경우에는 피치 못할 사정 탓일 게다.
그 불편을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고 ‘별˝이라 부르며 ˝그 별˝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럼그럼. 우리는 누구도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별과 별 사이.˝ 그 사이는 ˝가늠˝이 되지 않는 거리. 멀리서 보면 굉장히 가깝고, 가까이서 보면 아득히 멀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와 이미지가 겹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시의 화자 역시 섬이자 별인 그에게 닿고 싶다. 관계는 불편을 담보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끊고 독야청청 살아가기도 만만찮다. 그런 삶이 아름답기도 어렵다. 허니 다리를 절뚝거리더라도 ˝여기 남아˝ ˝별을 헤듯˝ 관계를 이어갈 밖에. 그러니 별들 여러분, 내가 들여다보게 ˝불빛을 좀 낮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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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28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사야 할 것 같아요. 책 님 때문에!! 세뇌되는 거 같음;;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세뇌를 환영합니다~~~^^
 

20210113 시라는별 1 

뇌는 하늘보다 넓다(1862) 
-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뇌는ㅡ하늘보다 넓다ㅡ
둘을ㅡ나란히 놓아 두면ㅡ
뇌 안에 하늘이 쉽게 들어가고 
더구나ㅡ당신도ㅡ들어가니까ㅡ 

뇌는 바다보다 깊다ㅡ
푸른 것과ㅡ푸른 걸ㅡ담아 보면ㅡ 
뇌가 바다를 흡수하니까ㅡ
양동이ㅡ속ㅡ스펀지처럼ㅡ

뇌는 신의 무게와 같다ㅡ
둘을ㅡ나란히ㅡ들어 보면 
다르기는 해도ㅡ그 차이는ㅡ
음절과 음의 차이 정도라네ㅡ

The Brain—is wider than the Sky—
For—put them side by side—
The one the other will contain
With ease—and you—beside—

The Brain is deeper than the sea—
For—hold them—Blue to Blue—
The one the other will absorb—
As sponges—Buckets—do—

The Brain is just the weight of God—
For—Heft them—Pound for Pound—
And they will differ—if they do—
As Syllable from Sound—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5장 도입부에서 발견한 시다. 5장에서는 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과학서에서 에밀리 디킨슨을 만날 줄이야. 반갑고 신선했다.

디킨슨의 저 시는 1862년, 그러니까 뇌 과학이라는 것이 시작되기 전에 쓰였다. 일찍이 에머슨은 ˝시인은 천문학, 화학, 식물학, 동물학을 잘 알아야 한다˝고 썼다. 디킨슨이 아마추어 식물학자였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인데 혹시 뇌 과학에도 식견이??

디킨슨의 시에서는 줄표 기호가 아주 중요한데, 코스모스 번역서에는 빠져 있어 원문을 찾아 줄표를 넣고 번역도 조금 수정했다. 

같은 제목의 제럴드 애델만이 쓴 뇌 과학서(절판)가 있고, 파시클에서 출간된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박혜란 번역)에도 이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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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9 #코스모스가능한세계들 6일차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만큼 서술이 매력적이지 않다. 세이건의 서술법은 생명의 오디세이를 보고 있고 우주 탐험선에 탄 기분이 들게 했다. 거의 매순간 경이로움을 접했던 것 같다. 앤 드루얀의 글은 그 정도는 아닌데, 차이가 뭘까 생각해 보니, 세이건은 보여주려 했고 드루얀은 설명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중언부언에 중구난방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빅토르 모리츠 골트슈미트는 노르웨이 과학자로 지구를 하나의 계(system)로 바라본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러시아 화학자 드리트리 멘델레예프가 다듬은 원소 주기율표를 활용해 자기만의 주기율표를 만들어 지구 화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원자로와 로켓에 쓰일 초록 보석, 감람석을 연구하여 우주 화학의 길을 열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생명의 기원에 관여했을 법한과 복잡한 유기 분자들에 관한 논문을 쓰고 눈을 감았다.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유해를 화장해서 그 재를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한 ‘감람석‘ 단지에 담아 달라고. 무릇 모든 생명은 재에서 태어나 재로 돌아간다. 다음 글은 화학자의 유머 코드를 보여주는 재미난 일화이다. 나는 무엇을 고를까.



나치가 노르웨이를 쳐들어오기 전날, 골드슈미트는 보호복을 입고 사이안화물(청산가리) 캡슐을 몇 개 만들었다. 그리고 게슈타포가 잡으러 올 때를 대비해서 캡슐을 늘 몸에 숨겨 지니고 다녔다. 어느 동료가 그에게 자신도 하나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골드슈미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독약은 화학 교수를 위한 거라네. 자네는 물리학자이니까 밧줄을 쓰게."(124)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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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12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밧줄은 시간이 걸리고 괴로울 듯합니다 청산가리는 조금만 먹어도 바로 죽잖아요 그건 소설에서 봤지만...


희선
 

스피노자가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이었다고?


1632년 태어난 바뤼흐 스피노자는 10대까지 암스테르담 유태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20대 초부터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신에 대한 생각을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했다. . . 그의 신은 우주의 물리 법칙 그 자체였다. 그의 신은 사람들의 죄에는 흥미가 없었고, 그의 성서는 자연의 책이었다(60) 

​구약의 기도문은 사람들에게 매일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행동에서 주님을 떠올리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한 일이 바로 그것 아니었는가? 그는 사방에서, 만물에서 신을 보지 않았던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 중이든 자연의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보지 않았던가? . . . /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에서 신을 찾지 마라. 기적이란 자연 법칙의 위반인 셈이다. 그런데 만약 그 자연 법칙을 쓴 것이 신이라면, 신이야말로 그 법칙을 가장 잘 이해하지 않겠는가? 기적은 자연적인 사건을 인간이 오해한 것뿐이다. 지진, 홍수, 가뭄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신은 인간의 희망과 두려움이 투사된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존재하게끔 한 창조력일 뿐이고, 우리는 자연 법칙을 연구할 때 그 창조력을 가장 잘 접할 수 있다.(61) 

​스피노자는 성서는 신이 불러 준 내용이 아니라 인간들이 쓴 내용이라고 말했다. . . 주요한 전통 종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초자연적 현상은 조직화된 미신일 뿐이었다. 그는 그런 마술적 사고가 자유로운 사회의 시민들에게는 위험하다고 믿었다. /  . . . <<신학ㅡ정치론>> 에는 이후 미국 혁명을 비롯한 많은 혁명이 핵심적으로 내세울 사상들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민주 사회는 기본적으로 정교 분리 사회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랬다. 그 책에는 저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발행 도시도 가짜로 적힌 데다가 출판사도 가공의 출판사였다. 그런데도 스피노자가 저자라는 소문이 온 유럽에 퍼졌고, 그는 대륙 전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이 되었다. 스피노자는 1677년에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렌즈를 연마하느라 미세한 유리 먼지 입자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을 것이다.(62)

-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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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05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코스모스 거의 다 읽어가요!! 이 책도 글쓰기가 칼 세이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가요??

행복한책읽기 2021-01-05 08:48   좋아요 0 | URL
대박. 벌써 다 읽어가신다고요. 흠. 드루얀은 세이건의 글쓰기에는 미치지 못 한다는 게 지금까지 제 느낌이에요. 그래도 재미는 있어요. 세이건이 미처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단 느낌?? 저는 코스모스 항해를 완수하고 싶어 드루얀 호도 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