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8 #시라는별 17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국어 교사 서현숙 선생님이 쓴 <<소년을 읽다>>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정말로 반가웠다.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은 후기를 담은 <<소년을 읽다>>는 좋은 책이다. 모든 교사가 읽었으면 좋겠고, 좋은 어른을 꿈꾸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책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집은 내가 이십 대 중반부터 서른 초반까지 즐겨 읽던 시집이었다. 이 시기는 내 생애 가장 많은 시를 읽었던 때이기도 하다.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은 시들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 중 정현종 시인의 시들은 내가 가장 이해할 만한 철학이 담긴 시들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소장한 시집들 중 이분의 시집이 가장 많다.

‘방문객‘은 내가 모르는 시였다. 알아 보니 이 시인의 대표적인 시 ‘섬‘만큼이나 잘 알려진 시였더라. 이 시가 처음 실린 시집은 <<광휘의 속삭임>>(문학과 지성사, 2008)이다. 2015년 문학판에서 출간된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섬>>에도 실려 있다.

서현숙 선생님은 소년원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 주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47쪽) 


˝애들아, 이 시 어때?˝
˝좋아요!˝ 이 대답은 의례적인 때가 많다. 그래도 ˝나빠요.˝보다는 나으니까.
˝그래, 우리가 만난 것도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도운이를 만난 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도운이를 만난
거잖아. 그러니 한 사람이 얼마나 어머어마한 존재니, 그치?˝
˝예, 그런데 선생님, 환대가 뭐예요?˝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한다는 의미야. 환영의 대접을 한다는 거지. 이런 대접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좋아요.˝ 
˝최근 환대받아본 경험 있니?˝ 
˝아니요. 참, 여기 국어시간에 오면 환대받아요. 선생님한테.˝ 
˝내 마음을 그렇게 여겨주니 고맙다. 너희들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닌 어마어마한 존재니까, 환대해야지.˝ 

지겨운 코로나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들이 드디어 등교를 한다. 많은 교사가 저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환대‘한다면 우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하물며 아이들이야. 마음의 ˝갈피˝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는 힘들지만, ‘환대‘는 아무때고 기꺼이 할 수 있다.

봄도 온다.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힌다. 사람도 봄도 환대하리!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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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8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이렇게 월요일 행복한 책읽기님 서재방에 시 한편 사진 한장 손에 쥐고

저는 감사의 마음이 담긴 커피차와 냠냠이 놓고 갑니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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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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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τнänκ чö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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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3-08 11:17   좋아요 2 | URL
저란 존재도 시도 사진도 몽땅 환대해주는 scott님을 환대합니다.^^ 차와 빵. 맛나게 냠냠 중^^ 저야말로 고마워요~~~^^

희선 2021-03-09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선생님이 많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게 만들... 저는 선생님 무서워서 학교 가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반겨주고 대접해주면 무척 기쁠 듯하네요

행복한책읽기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9 11:06   좋아요 0 | URL
희선님은 선생님들 무서워하셨군요. 저는 좀 좋은 선생님 몇 분 만났어요. 덕도 봤구요. 희선님 글로밖에 못보지만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여기까지 손걸음(타자로 ㅋ) 해주시는 것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거든요.^^
 
















20210304 #시라는별 16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한자 듬성듬성 낀 이성복 시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읽다 잠이 깨기는커녕 잠이 들 지경이라 이규리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로 갈아탔다. 희한한 느낌을 받았다. 외국어를 읽다 모국어를 읽는 편안함. 웬일이니. 한자는 이제 내게 완전한 외국어여서 한글 표기 없는 글은 읽기 힘들어졌다. 꺼이~~~~~ 

내가 이규리 시집 <<당신이 첫눈입니까>>를 읽고 있을 때 syo님이 말했다. "이 시집도 좋지만, 정말 좋지만 저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가 더 좋아요" 라고. 아직 몇 편밖에 읽지 않아 "더 좋아요"라고는 못하겠고 '암튼 좋다'라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다. 

읽은 몇 편 중 오늘 올리고 싶은 시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이다. 마지막 세 행에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편안해졌다.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부음 통보는 되도록 받고 싶지 않은 전화에 속한다. 12년 전 딱 저런 상황을 맞은 때가 있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살아계시는 동안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저 시처럼 "차일피일" 미루고 "어영부영" 지내다 부음 전화를 받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이었다. 

그분은 꽃처럼 절정의 순간을 살다 가셨다.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분을 나는 보지 못했다. 너무 열심히만 살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아 병이 온 거라고 주위 사람들은 말했다. 그런 말에 그분은 개의치 않았다. 사는 동안도 씩씩했던 그분은 죽음조차 씩씩하게 받아들였다. 참으로 그분다워서 눈물 흘리는 것조차 송구해지려 했다. 그때 하려고 했던 무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결정을 못 지은 채 "어영부영 놓치고" 산다. 

이규리 시인 덕분에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주 멀지는 않을 언젠가 받게 될 통보를 가볍게,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전화를 받으실 줄만 알던 당신이 내게 전화를 주셨군요. 아, 오늘이 "꽃피는 날"이었군요. 한송이 꽃으로 내게 왔다 향기 듬뿍 뿌려주고 가신 당신. 고맙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라고 덤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자면, 꽃매를 당하지 않도록 한 번 더 전화하고, 찾아보고, 노래하고, 웃어야지. 그날 따윈 없어. 지금이 그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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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4 1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시는 누군가를 향한 전상서
세상에 없는 존재를 위한 부음, 세상에서 가장 슬픔 부음이네요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3-05 22:56   좋아요 1 | URL
근데 전 위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부음이 슬픈 소식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희선 2021-03-05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 제목 봤을 때 저는 김용택 시인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가 생각났습니다 올려두신 시는 슬프군요 뭐든 생각났을 때 바로 해야죠 미루다 보면 못해요 많은 사람이 그러기는 합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5 23:00   좋아요 1 | URL
어머. 김용택 시인 저 시 몰랐어요. 희선님 덕에 찾아봤어요. 말랑말랑, 므흣므흣한 시네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이래요. 전화까지 한다는 건 더없이 사랑하는 거겠지요. 희선님께도 그런 사람이 있겠지요.^^
 

20210301 엄마의 말뚝


박완서 작가의 적나라한 솔직함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속내를 글에 담아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청량 음료처럼. 


중딩 딸이랑 같이 읽으려고 절판된 중고서적을 구매했더니 아이고야, 엄마의 말뚝 1 과 단편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만 있더라. 꺼이~~~ 


먼저 읽은 딸에게 이 엄마와 저 엄마 중 누가 낫냐고 물으니, 딸의 시큰둥한 대답, "오십보백보야." 우문현답이었음. ㅋㅋ






엄마의 말뚝은 출판사 판본이 정말 많구나. 장삿속?? 맑은소리 판본(이 출판사 없어진듯)은 중학생들이 읽기 좋게 글자도 크고 요즘 쓰지 않는 옛말 설명도 되어 있다.(그래서 나도 읽기 편했다) 


엄마가 억지로 조성한 나의 우월감이 등성이 하나만 넘어가면 열등감이 된다는 걸 엄마는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우월감과 열등감은 다같이 이질감이라는 것으로 한통속이었다. - P85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 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것일 뿐이다. 다만 새끼줄 몇 발의 길이에 지나지 않더라도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 P105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여자들끼리의 진정한 의미의 성의 있는 위로가 무엇인가를. 그것은 오직 자기보다 좀더 불행한 경우를 목격하게 하는 것뿐이다. - P122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아픔을 정직하게 신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 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 하고 놓여진 채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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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02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십보 백보야! 딸의 대답이 ㅋㅋㅋ 웃프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4:50   좋아요 0 | URL
그죠. 저희딸은 저 닮아 팩트 폭격기에요^^

scott 2021-03-02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십보 백보 라고 대답한 따님
어제도 울엄마 오늘도 울엄마 내일도 울엄마~
라는 뜻 아닐까요 ^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5:44   좋아요 1 | URL
ㅋㅋ 어찌 아셨음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식모엄마^^;;
 

20210301 #시라는별 15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雜草 돋아나는데, 그 남자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地下의 잠, 한반도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대목伐木
당한 여자女子의 반복되는 임종臨終, 병病을 돌보던
청춘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日本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祖國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


‘이성복 시집을 다 읽어버리겠어!‘ 라고 야무진 다짐을 했으나 시인의 첫 시집을 읽다 좌절 중이다. 뭣보다 모르는 한자가 . . . 한자가 . . . 왜 이렇게 많단 말인가. 시 한 편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꺼꺼이~~~~

1980년에 출간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시집이었다고 한다. 시 문법의 과감한 파괴, 번뜩이는 비유, 화려한 수사, 연상 작용을 통한 이미지 연결이 주된 특징이라는데 . . . . . .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집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과 더불어 1980년대 한국 현대시의 방향 전환을 이끈 시집으로 꼽힌다.

<정든 유곽에서>는 이 시집에 실린 두 번째 시로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처음 발표된 시인의 등단 작품이기도 하다. 이성복 시인은 1952년생이니 26세경에 쓴 시다. 시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어서 반복해 읽었으나 시가 정말 우러러볼 수만 있을 뿐 언제 가 닿을지 모를 ˝까마득한 별˝ 같다. 고통의 별빛. 내게는 이해하기 벅차 고통의 별이나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 찬란˝한 별로 지금까지도 반짝거리는 시집이다. 2016년 1월의 통계에 따르면 51쇄를 찍었고 6만 7천부가 판매된 스테디셀러 시집이다. 현재는 몇 쇄까지 찍혔는지 모르겠다.

2에 등장하는 ‘엘라‘는 헬라어 표기로 ‘나의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시편과 마태복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예수가 골고다 형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 하신 말씀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의미이다. 이 뜻을 찾아보고 다시 읽으니, 우리 인간은 ˝목마른 나신裸身˝으로 세상에 나서 삶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살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참한 죽음˝을 맞고 별이 될 존재들이지 싶다. 까마득히 멀어 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별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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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1 0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좌절이요...제 참을성 없음에....˝목단˝을 여태, 목련 꽃으로 평생 그렇게 알아왔네요. 시 읽닥 계속 막혀서 단어 찾는데...설마했던 목단이 그 목련이 아니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3-01 09:28   좋아요 1 | URL
ㅋㅋㅋ 동질감 대열에 합류해주셔 넘 반가워요. 지는 목단을 찾고도 목단???이 머지 했더니, 아 글쎄 화투장 중, 새와 꽃이 함께 있는 그 목단이더만요. 화들짝. 먼 옛날 울엄니가 목단!!이요 외치던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답니다^^

scott 2021-03-01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시 넘 슬퍼여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삼일절에 읽는시 그리고 역쉬 행복한 책읽기님에 멋진 사진 맨마지막 사진 순간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그곳으로 착각함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3-01 16:05   좋아요 1 | URL
역쉬 scott님은 시를 읽는 눈이 밝다니까요. 저도 이 시가 우리의 슬픈 역사의 한 면을 시적으로 형상화했다고 느껴져요. ‘정든 유곽에서‘라는 제목부터가 짠하잖아요. 왜 하필 유곽이냐고요. 우린 결국 제 몸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들 아닙니까요. 그런 존재들이 사는 세상이니 유곽일 밖에요. 그런 세상인데도 몹쓸 놈의 정이 든다지요. 그런데. . . 저희 집이 후쿠호카 구치소가 돼버린 겁니까 ㅋ ^^

희선 2021-03-02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잖아요 모란이 바로 목단... 이걸 알았는데, 저도 댓글 보고 목단이 목련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 잠시 했네요 오월이면 지나다니는 길에서 보고는 했는데... 모란이든 목단이든 별로 안 써서 잊어버렸나 봅니다(목단이라 하면 목 매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건 예전에 한 생각이군요) 이 시집 예전에 봤는데, 제가 제대로 봤는지 어땠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네요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삼일절,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삼월인데 비 많이 오고 어딘가에는 눈도 온다니 하고 다른 우울한 생각을 했네요 지금 사람이 그렇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5:09   좋아요 1 | URL
어머나 모란이 목단이었어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저 이제야 알았어요. 희선님 고마워요. 세상에 모르는 거 천지이긴 하나 모란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른 채 시를 외웠다니. ㅠㅠㅠ. 입시교육 폐해. 모란을 작약이랑 비슷해 목작약이라고도 부른다네요. 꽃이 화려합니다. 색으로 보면 목단은 장미과 목련은 백합과에 가깝네요.
목 매단다, 햐 그리 생각도 되겠네요. 좀 무섭지만 짱이심^^ 고마워요. 희선님 덕에 죽기전 모란을 알고 가게 됐어요. ㅋㅋㅋ
 















20210224 메그웨치  

상반기가 아직 한참 남았지만(물론 금세가 되겠지만) 로빈 월 키머러의 #향모를땋으며 는 2021년 상반기 독서목록 최고 책이 될 것 같다. 한 번도 듣지 못한 북아메리카의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눈에서도 키머러 교수의 학생들처럼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24) 그 불꽃은 책을 덮고서도 꺼지지 않았고 내 안에서는 이런 목소리의 터져 나왔다. 어쩔. 이리 흥미로워도 되는겨. 이리 아름다워도 되는겨. 이리 뜨거워져도 되는겨. 

"나는 과학의 '드러냄'에 뿌리 내리고 토박이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의 렌즈를 길잡이로 삼는 세상을 꿈꾼다. 물질과 영혼에 고루 목소리를 부여하는 이야기 말이다."(504) 

"모든 존재의 사람됨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동식물을 표기할 때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기를 고집한 식물학자의 이야기 덕분에 이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아주 커졌다. 나는 교인이 아니다 보니 식사를 하기 전 감사 기도 의례를 갖지 않는다. 그저 '잘 먹겠습니다' 라는 말만 한다. 이 책의 완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날, 아들과 아침을 들기 전(딸은 늦게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쏟아졌다.

"밥님 감사합니다. 미역님 감사합니다. 배추님 감사합니다 .시금치님 감사합니다. 브로콜리님 감사합니다. 고기님 감사합니다." 

아들이 재미 있어하며 따라했다. 저녁 때 이 과정을 빼먹고 내가 숟가락을 들려고 하자 아들이 일러주었다.

"엄마, 그거 빠졌잖아요."

"응? 뭐가?"

"그니까, 아침에 했던 거, ~님 감사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이번에 니가 해봐."

아들은 상에 차려진 메뉴를 차례차례 호명하며 감사를 드린 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맛있는 것들을 차려준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아호. 감동의 쓰나미. 이 책을 읽으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이런 감사의 마음이 자연스레 솟구친다. 메그웨치 키네 게고(어떤 말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없어요). 나는 이 의례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또하나의 감사의 말을 덧붙여. "이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게 일해주시는 아빠에게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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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4 1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들 최고네요 밥님 브로콜리님 미역님 ㅋㅋㅋ편식안하는 착한 아들 행복한 책읽기님 신사임돵 이셨어 ^ㅎ^

행복한책읽기 2021-02-24 22:58   좋아요 1 | URL
편식합니다. 각종 채소는 엄마 몫이라죠. ㅋㅋ

막시무스 2021-02-24 16: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지의 제왕도 잘 버텼는데, 사람을 감사하게 만드는 이 리뷰에는 버틸수 없네요!ㅎ 땡투 드리고 구매완료입니다! 즐건 하루되십시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2-24 23:01   좋아요 2 | URL
와. 막시무스님 낚이셨다요. 작전 성공 ㅋ 이 책 넘 좋아요.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인간 중심적 사고를 조용히 나무라며 지속 가능한 공존을 제시합니다. 머리도 때려주고 가슴도 적셔주는 고마운 책이었어요^^

얄라알라 2021-02-24 19: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제가 알라딘 서재를 좋아하는 이유!! 이렇게 서로 좋은 글로 살찌우고, 지갑은 얇게 만드는^^ 으쌰하며 책사랑 나누는 분위기! 즐독하세요

막시무스 2021-02-24 19:28   좋아요 3 | URL
살은 지금도 충분히 찌워진 상태라서 정중히 사양하지만, 맘속의 살은 근육으로 튼튼허니 만들고 싶네요! ㅎ

일단, 3월달에 내기 테니스는 무조건 이겨서 밥값, 치맥값 등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얇아진 지갑은 최대한 방어해 보겠습니다.ㅎ

즐건 저녁 시간 되십시요! 북사랑님!ㅎ

행복한책읽기 2021-02-24 23:05   좋아요 2 | URL
와우. 저 오늘 이래저래 바빠 이제야 북플 들어와 보는데 두 분 여서 대화나누시는 모습 넘 좋습니다요. 막시무스님 댓글은 진짜 센스가 넘치심요. 테니스로 몸근육 맘근육 탄탄한 막스(마르크스?? ㅋ)라 불러드리겠슴요^^

희선 2021-02-25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먹어요 여러 가지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일본 사람은 늘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 해요 세상에는 고맙게 여길 게 많은데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사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2-25 09:10   좋아요 0 | URL
그럼 오늘부터 잘 먹겠습니다 시작해요~~~^^

han22598 2021-02-25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eing...존재 자체에 대한 가치,소중함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인 것 같아요. 저는 기독교이라서..이러한 마음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

행복한책읽기 2021-02-25 09:15   좋아요 0 | URL
격하게 동의합니다. 그러나, 신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선물해 주셨으나 증오하는 마음과 해하는 악까지 주신 것 같아요. ㅠㅠ 이 책은 참 좋아요. 이 저자 같은 맘과 행동으로 사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더욱 평화로워질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