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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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서점에서 [나는 전설이다]를 집어들었는지 내 자신도 의아해했다.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을 사 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전설이다]를 잘 알지 못했다. 공포, 스릴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소름끼치게 섬뜩한 내용들이 나의 독서나 영화 취향이 아니어서 피해다녔다. 그러다 지난 여름 서점에서 우연히 스티븐킹의[스켈레톤크루]를 몇페이지 읽다가 무작정 구입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포소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 종로의 한 서점에 들렸다가 몇권의 책과 함께 [나는 전설이다]를 집어들었다.

  [나는 전설이다]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바가 없었다. 책을 펼쳐들고서 이책의 작가가 ''리처드 매드슨''이고 바로 이 작품이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킹''을 있게한 작가의 작품이라는데에 적잖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두툼한 책의 반이 "나는 전설이다"이고 나머지가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것도 마치 풍성한 공포소설을 접하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책을 펼쳐들었다. 표지의 좀비사진들이 내용을 일부 보여주는 듯했다. 게다가 피가 흐르는 듯한 붉은색에 하얗게 박혀있는 제목 "나는 전설이다"가 강하게 들어왔다. 더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전설이란 말인지, 제목만으로는 알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두편의 영화가 나왔다고 하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영화가 있었다니...정말 나는 공포물에는 젬병인가보다. 작가의 프로파일을 보고서야 ''리처드 매드슨''을 조금 알게되었다. 특히 놀란 사실은 "나는 전설이다"가 쓰여진때가 1954년이라는 것이었다. 50여년전에 쓰여진 소설이 어떻게 지금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어 돌아다니는지 "나는 전설이다"를 읽기전에는 믿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전설이다"를 지금의 시각이 아닌 50여년전의 시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그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말이다.

  내가 만약 혼자 살아남는다면?, 밤에는 흡혈귀들이 나의 집을 둘러싸고 소리치고 두드리고 점점 나를 공포속으로 몰아넣는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하였을까? 아무도 없는 도로를 나혼자 돌아다니고 텅비어 있는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 대화할 상대도, 함께 힘을 합쳐야할 상대도 없는 그곳에 나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된다면....몸서리가 쳐진다. 생각도 하고싶지 않다. 그게 어디 있을법한 일이란 말인가. 상상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공포의 순간들. "나는 전설이다"는 그렇게 이어진다. 홀로 남은 한남자의 처절한 생존을 위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 그러면서 변해가는 그를 발견하게된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일상은 반복된다. 이 얼마나 따분하고 의미없는 삶이란 말인가. 간혹 나오는 과거 회상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러다가 집앞에서 만난 개한마리에 왜 내가 더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개는 그의 희망이었고 전부였을것이다. 하지만....

  사실 여자를 만났을때 차라리 ?아가지 말고 보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닥쳐올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가장 궁금했던점은 과연 어떤 결말이 일어날지였다. 읽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 끝부분에 다다랐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도망을치다가 마주친 낭떨어지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리처드 매드슨''의 표현은 실로 대단했다. 섬세한 표현과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 그리고 변해가는 주인공의 묘사가 자연스럽게 빨려들어왔다.

  아마도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뻔한 공포소설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만화나 하다못해 비디오게임으로 흡혈귀나 좀비를 주제로 다른 작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바로 이작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 이유때문에 나는 50년전으로 돌아가 이 소설을 보고싶었다. 왜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했는지 알것 같았다. ''딘 쿤츠''의 말처럼 리처드 매드슨이 있다는건 우리에게 더 없는 기쁨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왜 나는 지금까지 전설속의 그를 알지 못했을까?

  우리는 모두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 정상인것만이 모든것을 해결할 수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정상의 여럿은 정상의 하나를 그들만의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전설의 그사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깨달은 사실 하나와 함께....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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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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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박정자의 책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는 부재 그대로 현대인들의 소비 행태와 그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제목의 탁월한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살며 이것저것 웬만한 책들은 읽고 살아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는 있지만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난파되어 살아남은 남자가 무인도에서 삶을 위해 투쟁을 버린다는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로빈슨 크루소도 사치를 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인가 말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곡식을 거두고 가축을 늘려가는 그의 이야기는 당연히 생존을 위해 살고자 애를 쓰는 한 인간의 안타깝고 눈물겨운 삶과의 투쟁일 뿐이었다. 나는 물론 응원을 했을 것이고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위에는 사치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었다. 높이 쌓여있는 식량의 더미를 보며 희열을 느꼈을 로빈슨은 실제적인 소비와 함께 정신적인 사치를 누린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우리의 사지에 붙어 있는 지방, 우리 정신 속에 두텁게 쌓여 기다리고 있는 기억들도 모두 자원 비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재미있는 비유였다. ‘문명이란 결국 여분의 비축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소비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문제이다. 또한 문화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소비가 없다면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문화는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비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의무’라고 까지 말한다. ‘소비하지 않으면 반사회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 또한 현대사회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실제로 소비의 사회에 살고 있다. 문만 나서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소비하게 된다. 아니, 문을 나서지 않아도 우리는 집안에서조차 소비한다. 전기를 소비하며, 물을 소비하고 냉장고를 소비하고 또한 정신적인 자원들도 소비하는 것이다. 소비는 향유가 아니라 기호라고 말하는 저자는 액세서리나 옷은 욕망을 이루기 위한 매개 수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르네 지라르의 그 유명한 ‘욕망의 삼각형’이론은 다시 봐도 재미있다. 우리가 실은 주체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흥미롭다. 나와 상품사이의 직선적인 관계가 아니라 매개자라는 하나의 점이 더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그 매개자를 통해 상품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매개자에서 비롯된 이미지인 것이다. 어느 연예인이 입고 나왔던 옷이나 악세서리에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또 다른 욕망, 즉 한 단계 더 나은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 가짜 명품들이 여기저기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 또한 돈이 많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욕망 때문인 것이다. 작가는 상류계급의 소비양식을 말하면서 미술의 예를 들고 있다. 상류계급의 소비양식을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다음 챕터는 ‘현대사회와 팝아트’인데 무척 흥미롭다. 상류계급의 선을 내려와 대중성으로 파고든 팝아트는 그 자체로 현대성의 특징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성을 반영한 예술가들도 상류층만 소비하던 고귀하기만 했던 예술이 이제는 누구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상업성의 옷을 입고 키치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챕터는 광고와 유행 등의 이야기들로 현대성의 소비를 이야기한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비’이지만 현대성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무척 쉽고 다가가기 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신의 말대로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는 바로 인문학적인 ‘팝아트’ 그자체이다. 일종의 인문학의 대중화 혹은 팝아트적인 인문서로 난해한 논리를 걷어내고 평이하게 우리에게 나가 온 것이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 그의 다른 저서, 화가와 철학자를 통해 철학개념을 이야기한다는 <빈센트의 구두>도 읽어보고 싶게 만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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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thing Book
십일월출판사 편집부 엮음 / 십일월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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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점에서 이책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아니 어찌 이런책을 만들 수 있단말인다. 이것이 책인가? 아니면 이것이 메모지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이어리인가?  이걸 어찌 책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도 모르게 두권을 구입했다. 무엇에 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서....

  여자친구에게 한권을 선물했다. 그리고 "우리 여기다 매일 매일 우리의 일기를 쓰자, 상대방에 대한 생각, 느낌, 우리가 싸운일, 좋았던일, 기억하고 싶은일 등을..." 그리고 더불어 24색의 색연필도 함께 선물했다. 글만쓰면 심심할것 같다. 물론 나도 똑같이 색연필을 샀다. 그리고 매일매일 글을 써 내려갔다. 200여페이지를 금방 채울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아무리 채워도 줄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한장씩 한장씩 채워져 갔다.  그림과 함께....커피를 마시고 온날은 커피컵을 그리고, 버스를 타고 헤어진날은 버스를 그리고....

  그리고 책이 거의 채워져 갈무렵 우리는 결혼을 했다.  발리의 신혼여행지에서 우리는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책을 서로에게 선물했다.  그 선물은 어느것보다 값진 선물이었고, 지금도 책꽂이에 나란히 두권히 꽂혀있다.  이제 또 다시 두권을 구입해 일기를 쓸 생각이다. 그리고 결혼 1주년에 다시 선물을 할 생각이다.

  그저 스쳐 지나쳐 버릴것 같은 작은 아이디어가 우리에게는 사랑을 가져다준 소중한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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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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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일은 전혀 생각하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 나는 네 옆에서 한 시도 안 떨어질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응,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을게. 아프다고도 안 할게. 힘들다고도 안 할게. 슬퍼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게. 약속해."

  여자의 직업은 사진작가이다. 그것도 물 웅덩이를 통해 세상보기를 하는 약간은 색다른 사진작가.  그를 사랑하는 남자는 출판사 편집일을 하고 있다. 그의 직업도 색다르다. 일반 출판물이 아닌 성을 주제로한 철저한 상업성 잡지를 만드는 그런 회사에서...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가 죽어가고 있다. 병원은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수 있는게 없다.  의학적으로....남자도 여자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 무엇도 없다. 단지 함께 받아 들여야 할 뿐....둘은 예전에 함께 일때문에 여행을 떠났던 프랑스 니스로 죽음여행을 떠난다. 예전에 그녀가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했던 그곳으로...

  "아디안텀 블루"늘 "파일럿 피쉬"의 2부라해서 처음에 읽기를 망설였다. 그의 전작을 보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죽음과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라 일반적으로 그러려니 했었다.  한참을 읽어 내려갈때까지 나의 생각이 맞았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그 무엇이 다가왔다. 죽음을 앞둔 남녀의 여행.  분명 후반부는 가슴 찌릿한 여운이 남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특히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말들 말들....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며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과연 죽음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을까?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혼자 살아낼 수 있을까? 둘은 다시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이세상이 아닌 다른 그 어느 세상이 존재하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로 흘러도 보낸이를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모든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디안텀 블루"를 보며 벽장안에 간직해 두었던 오래된 LP판을 찾았다.  바로 "킹 크림슨"의 "에피탑"을 듣기 위해서....대학시절 킹 크림슨의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매료되어 구입한, 지금은 잘 듣지도 않는 전축에 올려놓고 잡음과 함께 듣는 8분 50여초의 "에피탑"은 오늘따라 더 애절하게 내 귀에 전달되었다.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것이다"라는 절규의 소리를 오랫만에 듣는다. 마치 회전되는 LP판의 잡음이 마치 묘비를 둘러싼 영혼의 몸부림처럼....

  "아디안텀 블루"의 앞 부분들을 뒷부분을 끌어내기 위한 전주곡들 이었나보다. 책을 덮고나서 마음 한구석이 빈 느낌이다.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것 처럼. 이 가을 킹 크림슨과 레드 제프린, 그리고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아디안텀 블루"를 읽는다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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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추적자 - BBC 다큐멘터리 샹그리라.아르고호 원정대.시바의 여왕.아더 왕 이야기
마이클 우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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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TV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어떤 고고학자가 이집트의 유적을 발굴하는 현장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왕이나 그 일가의 무덤이 발견될 때마다 가눌 수 없는 감동의 눈빛으로 부드러운 솔을 들고 정말 조심조심 하며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덤의 조각이나 그림들을 보면서 그는 그들의 가족관계라던가 종속 관계 등 그 시대의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해 이야기 해주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성스럽고도 신기하던지 한동안 넋을 잃고 TV 앞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 시대의 문명이라는 것은 치밀하고 놀랍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이 발달하기 까지는 어떠한 알지 못하는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신화. 구전되는 민담 따위 말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문화는 형성되고 대물림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신화들은 어쩌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우드는 그런 전제 조건을 지니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상상이라는 것도 어떤 자그마한 사실의 씨앗에서부터 발아하고 커나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신화추적자>는 아름다운 천상의 나라 ‘상그리라’와 ‘아르고호 원정대’, 그리고 ‘시바의 여왕’과 ‘아더 왕 이야기’ 라는 네 가지의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작가인 마이클 우드는 말 그대로 이 놀라운 신화들을 찾아. 그 신화들의 발화점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물론 그는 모든 신화의 ‘씨앗’이 되는, 혹은 ‘어미’가 되는 곳을 찾아낸다. 정말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으나 실은 그것이 우리 생활의 어느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어쩐지 놀랍고 짜릿한 느낌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상그리라! 나는 ‘상그리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그곳은 낙원이요. 천상의 도시일 것이라는 생각. 저 멀리 레인보우 아래 어딘가에 존재 할지도 모른다는 내 끝없는 로망! 그러나 그곳은 존재하는 곳. 작가는 인도의 순례길을 따라 상그리라의 발원지를 찾아 간다. 때로는 걷고, 버스를 타고, 또 헬기를 타고 끝없이 그는 신화의 뿌리를 찾아 추적해 나간다. 네팔의 서쪽 끝에 있는 마을 ‘시미코트’, 때 묻지 않은 티벳의 고원, 중국으로 가는 길 등 그는 마치 직접 눈으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 자신의 자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지나고 있는 곳의 생활과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읽었던 책이 있다. 티벳의 모습들을 이야기 해준 <오래된 미래>에서도 그가 추적하고 있는 길이나 만난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 더 정밀하고 더 친근하게. 그때의 나닥 사람들이야 말로 천상의 사람들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산다면 내 삶 자체가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쨌건, 작가가 추적 중에 보여주는 유목민의 모습과 승려들, 그리고 마부들 등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의 일상생활이나 축제의 소박한 모습 등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설명하는 친절한 태도가 좋다. 마지막 신화의 뿌리를 찾아내는 모습까지도!

  신화는 정말 상상력에 의존한 것일까? 궁금하다면 책을 보는 것이 빠르다. 아더 왕과 시바의 여왕 등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는 마이클우드에게 감사할 것이다. <신화추적자>, 이 책은 높은 에베레스트와 같은 신화의 산을 오르는 우리에게 마치 마음씨 좋은 셀파의 역할을 해 준다. 노련하고 능력 있는 셀파가 이끄는 데로 우리는 그냥 쉬엄쉬엄 가면 그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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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2006-09-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는 시대를 알리는 하나의 거울입니다. 그것을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보지 말고 그 당시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해석해 보아야 하지요. 서사시마냥 과장된 면을 재 해석하는 것은 저자들의 몫이겠네요..

베이비송 2006-09-2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신화가 당연히 시대를 알리는 거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리뷰를 쓴 고독님도 당연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것으로 보이구요. 마이클우드도 당연, 작품의 기저에 그것을 깔고 있구요. 그렇지 않다면 누가 역사를 알려고 하고 또 신화를 알려고 할까요?? 또한, 그 시각으로 보되, 발은 현재에 딛고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제대로된 시각을 가질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것은 신화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현재의 발을 지니고 있답니다. ^^
어쨌든, 저도 이책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