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에 대해 네가 으쓱해하지 않는 게 이상해."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단 말이지. 내가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시시한 사람인데도 그러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뻔뻔해서일 거야."

나는 단지 점잖게 처신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팔짱을 낄 때면 언제나 내게 몸을 바짝 기댔다. 하지만 난 신사나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자세가 싫었다.

"그래." 그녀는 직설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 태도야말로 그녀의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거짓말을 할 때조차도 솔직하고 숨김이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태도는 간단히 말해서 소금, 즉 그녀의 인격을 보존해주는 저장용 양념으로,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격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알아줄 만한 곳에서 나를 알아주기만 하면 충분히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내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 관심사와 사고 속에 신분이니 사회적인 지위니 박식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공간과 위치를 차지했다. 그것들은 나의 삼류 하숙생들이었고, 그것들에게 나는 작은 거실과 후미진 작은 침실만 내주었다. 식당과 큰 거실이 비어 있을 때조차도 그것들의 처지로 보아 작은 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되긴 했다.

지위가 낮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맥이 없는 게 곧 자존심에 치명타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타락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지위나 인맥을 높이 사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조상이 신사가 아니고 평민이었으며, 부자가 아니고 가난했으며,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자기비하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치명적인 사실을 숨기려 들고 그런 사실이 폭로될까봐 떨며 놀라서 움츠러든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오래 살면 살수록 경험은 더 넓어진다. 이웃의 행동을 덜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의심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조신한 척하는 미덕이건 세속적인 점잖음이건, 작은 방어들이 쌓이는 것은 분명히 그런 방어가 필요해서이다.

나는 ‘강연’을 할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학자 중 하나가 연단에 나가서, 아떼네의 학생들을 향해 교조주의가 반, 왕자에게 바치는 아첨이 반인 형식적인 연설을 하려니 막연히 예측할 뿐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묻지도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분명히 신경을 썼으며 너무나 소탈해서 그것을 감추지 못했고,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욕망을 억누르지도 못했다.

마음속에 칭찬의 말이 가득했으나, 내 입술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부자가 접근해오면 늘 다소 뒤로 빼는 편이었다. 그에게는 질기고 강한 독립심이 있었다. 그의 성격을 알고 나면 눈에 거슬리기보다는 기분 좋아지는 특징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팬쇼 양의 경우에는 아무렇게나 슬쩍 스쳐가며 이목구비를 만들었으나, 바송삐에르 양의 경우에는 고도의 섬세한 필치로 이런 세세한 특징을 완벽하게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바송삐에르 씨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그는 언어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편이었다.

폴리나의 우아함과 지성은 이 사색적인 프랑스인들을 매료했다.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와 미숙하나 진실한 타고난 재치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썩 잘 맞았다.

하지만 독자여, 진실을 말하자면, 어떤 뛰어난 미모도, 완벽한 우아함도, 확실한 세련됨도 그만큼 뛰어난 힘, 그만큼 완벽한 힘, 그만큼 확실한 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유약하고 나태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뿌리 없고 시들시들한 나무에서 꽃과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날 알아보고 웃음을 짓더니, 방을 가로질러 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는 창백해 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나대로 존 선생이 세달 만에 말을 걸고도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내가 네로였어도 그림자처럼 거슬리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요."

마음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반항적인 용기가 솟았다.

이제 나는 그가 내 성격과 본성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늘 내게 나의 것이 아닌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나의 본성은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랑의 드라마에 감초 같은 하녀 역은 기대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깨워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드럽고 열렬한 속삭임에 이어서,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루시" 하는 그의 애처로운 부탁과 겹쳐, 반대편에서 날카롭게 내지르는 소리가 났다.

존 선생은 일생 동안 성공을 거두는 행운의 남자였다. 왜일까? 기회를 포착하는 눈과 적절한 시기에 행동을 개시하는 열의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담력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친구는," 그가 말했다. "말 한마디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 법이오. 당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지금까지도 뺨이 달아오른 게 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 위대한 잘난 체쟁이 영국놈7" (그는 브레턴 선생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불렀다.) "때문인지 말해주시오."

"전 선생님을 의식도 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감정을 일으킨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있답니다." 내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나는 평상시의 내 모습을 억누르고 가식적으로 새침하고 쌀쌀맞게 말하는 데 다시 한번 성공했다.

그녀는 끄레시가에서부터 맹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포세뜨가에 도착하기 전에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진정한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칭찬해주어야만 했고, 그것은 존 녹스가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게 바친 찬사를 능가할 만큼 소박하고 충성심이 가득찬 것이어야 했다.11 이것이 지네브라에게 걸맞은, 그녀의 수준에 어울리는 교육이었다.

뽈 에마뉘엘 선생은 수업시간에 방해를 받는 데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벌컥 화를 냈다. 수업 중에 교실을 가로질러 가는 일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혼자건 여럿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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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기가 나지는 않았지만 약간 필사적인 심정이 되었다. 종종 필사적인 심정은 용기 대신 나서서 용기가 할 일을 하기도 한다.

선생이 될 수 있고 또 개인 지도를 할 수도 있지만, 가정교사가 되거나 말상대가 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훌륭한 집안의 가정교사가 되느니 차라리 하녀가 되어 질긴 장갑을 사서 끼고 침실과 층계를 쓸고 난로와 자물쇠를 청소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 편이 더 마음 편하고 독립적이었다. 말상대가 되느니 차라리 셔츠를 만들다 굶어 죽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빛나는 숙녀의 그림자, 바송삐에르 양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가 침울한 성격이고 가끔 우울해하긴 했지만, 우울해하거나 눈에 띄지 않게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원해서였다.

나는 그때그때 전환되고 나를 맞추는 사람이 못됐다.

"쌩삐에르 양에게야 충실하게 근무해준 데 대해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겠지만, 당신에게 그런 보상을 하면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아마 소원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가할 수 있는 일이 한가지 있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혼자 내버려두는 거죠. 앞으론 그렇게 할게요."6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그 순간부터 여태껏 강요하던 모든 미미한 구속을 조용히 없애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녀의 규칙들을 존중했다. 즉, 내게 맡겨진 학생들에게 기꺼이 두배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일에 만족했다.

그레이엄과 함께 있을 때는 원래 수줍어했는데 지금은 더욱더 수줍어했다. 가끔씩은 그에게 냉담하려고 애쓰고 때로는 그를 피하기도 했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랐고 그가 들어오면 말이 없어졌다. 그가 말을 걸면 더듬거리기 일쑤였고, 그가 떠날 때면 난처해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조차 이런 태도를 눈치챌 정도였다.

그도 말을 많이 하지는 않던데요. 저를 겁내는 걸까요, 아빠?"
"오, 물론이지! 어떤 남자가 이렇게 조용한 작은 아가씨를 겁내지 않겠니?"

그는 그녀를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고, 몹시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마치 너무 크게 숨을 쉬면 공중에 매달린 행복이라는 거미줄이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몹시 수줍어했지만 우정을 진척시키려는 진지한 태도에 분명히 아주 섬세하고 요정 같은 매력이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아빠의 억양은 에든버러식인가요 아니면 애버딘식인가요?"
"귀여운 아가야, 둘 다란다. 게다가 물론 글래스고식이기도 하지. 이런 억양 덕분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거란다. 스코틀랜드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 프랑스어도 능숙하게 하거든."

바송삐에르 씨가 ‘스노우 양’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나는 내적으로 깨달은 바가 많았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때때로 얼마나 상반된 특징들이 우리에게 부여되는가! 베끄 부인은 나를 박식하고 우울한 여자로, 팬쇼 양은 신랄하고 빈정대기 좋아하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홈 씨는 모범적인 선생에다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 즉 다소 관습적이고 엄격하고 편협하며 까다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교사다운 정확성을 지닌 산 표본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 즉 뽈 에마뉘엘 같은 사람은, 알다시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성격이 불같고 무모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대담하다고 암시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꼬마 폴리나 메리였다.

그녀와 사귀는 일이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긴 하지만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는 말상대가 되지 않겠다고 하자, 폴리나는 규칙적으로 계속 만날 수 있도록 같이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나를 설득했다. 자기나 나나 독일어가 능숙하지 못하니 함께 독일어 공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끄레시가에 여선생을 모셔다 함께 수업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정해지자 우리는 매주 몇시간은 함께 있게 되었다. 바송삐에르 씨는 아주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미네르바 엄숙 부인’9이 자신의 아름답고 귀여운 딸에게 여가시간의 일부를 할애해주는 데 대찬성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뽈 선생만큼 훌륭한 작은 사람도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다 심술궂은 작은 독재자도 없었다.

그녀는 독일인답게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소위 우리 영국인의 신중함이라는 것을 아주 갑갑하게 여기는 듯했다.

사실 우리의 독일어 공부는 진척이 느렸는데도 그녀는 우리의 발전에 놀라는 것 같았다. 좀처럼 스스로 사고하거나 공부를 하려 들지 않는 외국인 여학생들, 즉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거나 사고와 응용으로 풀어보겠다는 생각조차 전혀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익숙해 있어서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우리가 한쌍의 쌀쌀맞은 신동, 냉담하고 자신만만하고 불가사의한 신동이었다.

백작의 딸은 다소 거만하고 까다로운 면이있었다. 그리고 타고난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런 감정을 가질 자격이 있기도 했다.

그녀처럼 조용한 경멸이라는 갑옷으로 자신을 방어한 적도 없었다

폴리나를 예쁘장한 운디네15 같은 존재로 여기며 반은 두려워하면서도 반은 숭배했고, 인간적이고 좀더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내게서 휴식을 찾았다.

우리가 읽고 번역하기를 좋아했던 책은 실러의 서정시집이었다. 폴리나는 곧 그 시들을 아름답게 낭독하는 법을 배웠고, 선생은 흐뭇한 웃음을 띤 채 듣다가 그녀가 읽는 소리가 음악 같다고 말하곤 했다. 또 폴리나는 그 시들을 아주 쉽고 유창하면서도 시적인 열정에 찬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녀의 뺨은 발그레해졌고 입술은 떨리며 웃음을 머금었고 아름다운 눈은 빛나거나 옅어지곤 했다. 그녀는 가장 훌륭한 시들을 외워서 단둘이 있을 때면 종종 암송하곤 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시 중 하나는 「소녀의 탄식」이었다. 그녀는 음성에 스며 있는 애조 띤 가락을 알아내고 그 단어들을 되풀이하여 읊기를 좋아했지만, 그 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비판하곤 했다. 어느날 저녁 우리가 난롯가에 모여 앉아 있을 때 그녀가 그 시를 나지막이 암송했다.

"루시, 나는 그녀가 무례한 사람이며, 거짓말을 했다고 믿어요. 우리 둘 다 브레턴 선생님을 알잖아요. 조심성이 없고 거만한지는 몰라도, 그가 비열하게 굴거나 비굴한 적이 있었나요? 그녀는 매일 자신의 발밑에 꿇어앉아 빌고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그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녀가 아무리 모욕을 주며 물리쳐도 사랑을 구걸하는 그에 대해서 말이에요. 루시,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인 점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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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학교 관계자들이 품위 없고 저급한 인간들과 사귀지 않고 교양 있고 품격 있는 친구들과 자주 접촉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솜씨 좋게 늘어놓음으로써 기회주의자에다 아첨꾼이라는 경멸을 피해갔다.

일어나 다부진 망아지 같은 모습으로 나가면서 그녀가 덧붙인 말이었다.

아아! 이제는 그녀가 읽은 그런 편지가 더이상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다시 떠오르자 무언가가 눈 속으로 밀려들어와 눈앞이 흐려지고, 교실과 정원과 겨울의 빛나는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나는 마지막 편지를 읽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근사한 강의 강둑에 머물렀고, 그럴 때면 강물이 튀어 내 입술에 활기가 돌게도 해주었는데, 이제 그 강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금욕적이기는 했지만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눈물이 흘러내려 손과 책상을 적셨다. 나는 잠깐 엉엉 울었다.

그러나 곧 자신을 타일렀다. "지금 애도하고 있는 이 ‘희망’은 고통받았고, 또 나를 몹시 고통스럽게 했어. 사라질 시간이 될 때까지 죽지 않았지. 그렇게 미적대며 내게 고통을 주었으니 이 ‘희망’의 죽음을 환영해야만 해."

그러나 그 편지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어야만 했다. 그런 상실을 체험한 사람들은 황급히 기념물들을 모아 멀찌감치 치우고 자물쇠로 채워놓기 마련이다. 회한이 날카롭게 되살아나 매순간 가슴을 찌른다면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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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처럼 들리겠지만, 기분이 나아지는 가장효과적인 방법은 타인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개선하는 만큼자신의 삶도 조금씩 나아진다. - P154

설령 이 모든 게 사라지더라도 우리에게는여름의 정수를 압축해 놓은 음식이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그대로 잔에 담아,
우울함을 날려 버리고 신선하고 상쾌한기분을 선사하는 레모네이드가 그것이다. - P156

힘이 나지 않는 이유야 두 손으로 꼽기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지난밤에 너무 늦게잠들었거나, 성가신 일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있었다거나, 또는 너무 많은 요구에 시달려서삐걱거리거나 집중이 안 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다. - P158

이국적인 요리를 하면서 우리는 자아의중요한 일부분이 언제나 다른 곳에 속해있음을 천천히 깨닫는다. - P161

아기를 보살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것이다. 아이들이 힘들어 보인다 싶으면 항상피곤하거나 목마르거나 배가 고픈 상태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오후 7시에 소화가 잘되는 저녁을 먹고 9시에는 잠드는 하루를우리 자신에게 허락하는 게 모욕일 수가없다. - P163

예술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독립심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진지하게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 역시동일하게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할때이다. - P172

아이들 식사에 균형을 잡는 일은 거대하고도영원한 인류의 숙제다. 어떻게 아이들에게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유도할까? 흔히는귀찮게 권해서 상대를 굴복시키지만, 이는소모적일 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다. - P181

아이의 식단 문제를 르네상스적으로접근한다면, 아이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싶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이입맛이나 선호와 싸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좋아할 만한 요리에 몸에 좋고 건강한 좋은식재료를 조금씩 더하는 것이다. - P181

거창한 식사도 좋지만 복잡한 요리가 언제나좋은 인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로는단순한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한쪽으로치우치거나 변색된 요리가 매력의 중요한요소를 식탁 위에 올리기도 한다. 불안에대한 솔직한 인정,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려는태도, 그리고 허세와 야망을 희극적으로표현할 줄 아는 친절이 바로 그것이다. - P184

식탁이야말로 열린 마음이 필요한 자리이다.
소수의 친구와 함께 도덕적으로 판단받을우려 없이 기이한 구석을 드러내 보일 수있다. 괴상하게 생긴 바다 생물을 식탁에올린다면 자리는 한층 더 빛날 것이다. - P192

열 살 때 당신은 어떤 아이였나요? - P198

「우리는 친구들이 지닌매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들의 내면에 대해서는거의 알지 못한다. - P198

필요하다면 음식으로 침울한 분위기를자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짙은 색에 살짝무거운 질감, 그리고 은근하고 고상한분위기를 자아내는 소고기나 콩 스튜를먹으면서 좀 더 자기반성적인 마음을자아내는 것이다. - P201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보다위안과 안심이 필요하다. - P205

애정을 가지고 능숙하게 타인을 놀리는기술은 인간만이 지닌 심오한 재주이다.
물론 고약하게 놀려대서 상처를 긁는 경우도생긴다. 하지만 순수하게 호감을 표현하는너그럽고 친근하게 다가가 상대방의 기분을북돋는 유익한 장난도 있다. - P208

불행하게도 집안 살림은 대체로 흉하다. 서로악다구니를 쓰고 사방이 난장판이다. 아무도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가족들은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가장 솔직하면서도옹졸한 생각을 입 밖에 낸다. 구부정하게앉아 끊임없이 구시렁거린다. - P211

유토피아적인 공동체에서는 무엇을 차려먹을까? 간단하고 저렴하며 한꺼번에 많이만들 수 있는 음식이 적합할 것이다. 커다란냄비에 국자를 담그고, 넘칠 듯 찰랑이는주전자와 요리가 잔뜩 담긴 접시를 돌린다.
그렇게 소모된 ‘나’를 구원해줄 무리의일원으로 구원되어 소속감과 위안을 느낀다. - P216

이론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위안과 소속감의원천이다. 흔히들 잘 맞는 사람만 찾으면평생 만족을 보장받는다고 낭만적으로생각한다. 참으로 편리하면서도 강력한환상이다. - P223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음식은결정적이다. 음식은 우리 마음속 감정적인부분과 맞물린다. 음식 덕분에 우리는 의견충돌이나 진전 없는 논쟁을 뛰어넘을 수있다. 음식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위로하고, 달래거나 놀리면서상대를 매혹시킨다. 음식은 소중히 아껴야하며, 아마도 내심 그래 왔을 사람을떠올리는 결정적인 요소인 셈이다. - P223

우리가 얼마나 능숙하게 약점을 다루는지보인다면, 우리를 진짜 상냥하고 매력 있는잠재적 파트너라고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다. - P224

사랑에 빠진 어른이 되려면 무언가 놀라운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타인을자신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며, 침대 맡에맛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져다주는 일말이다. - P235

이별을 맞이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의 미래를 겪고 기분이어떨지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 요점은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예측하는 게아니다. 우리가 그리워할 무언가를 이미 손에쥐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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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광폭한 하얀 눈보라가 일어서 마차가 안 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대모님을 믿어야지! 한번 초대한 이상 그녀는 반드시 손님을 맞아들이는 분이었다. 여섯시경에 나는 이미 마차에서 내려 라 떼라스의 정면 계단을 올라가 현관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 안에는 여름이 있었다. 두배나 더 추웠더라도 그녀의 친절한 키스와 다정한 악수 앞에서는 온몸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그녀의 매력은 하얗고 투명한 안색이나 예쁘장한 이목구비나 완벽한 몸매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영혼에서 뿜어져나오는 차분한 광채였다.

그것은 비싼 재료로 만들었지만 불투명한 꽃병이 아니라,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정결한 램프였다.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시절뿐 아니라 그 하루하루와 그 하루하루의 시간까지도요."

그녀의 눈은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어린 시절이 꿈처럼 사라지지 않고 젊은 시절이 햇빛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녀는 삶을 방만하게 맥락 없이 받아들여 어떤 시기는 그냥 넘겨버리고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삶을 소중히 간직할 뿐 아니라 거기에 더 보태는 사람이었다. 종종 처음부터 돌아보기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아늑한 난롯가에 앉아 있으면서도 얼마나 자주 여자와 소녀 들의 마음과 상상은 주위의 안락함을 떠나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고 매몰찬 날씨와 눈보라와 다투며, 아버지와 아들과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외롭게 문이나 문설주에 기대어 기다려야 하는지!

"자, 어머니," 그가 말했다. "이제 타협을 하죠. 몸뿐 아니라 마음도 따뜻해지게 와세일주3를 들죠. 그리고 여기 난롯가에서 예전의 영국을 위해 건배하는 겁니다."

"난 루시 양을 잘 기억해요. 내 기억력이야 믿을 게 못되지만 딸아이가 자주 이름을 얘기한데다 하도 여러가지 긴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오랜 친구처럼 여겨지는군요."

"전 교사예요." 나는 이렇게 말할 기회가 생긴 게 다행스러웠다. 얼마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루시 양의 태도와 모습을 곰곰이 뜯어보고 그녀가 다른 사람을 보호할 사람이지 보호를 받을 사람은 아니란 걸, 그리고 나서서 일할 사람이지 섬김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단다. 루시 양이 충분히 나이가 들어 이런 운명 덕분에 아주 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는 신께 감사할 거다.

더욱이 세상에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야깃거리가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교제할수록 친밀해지고, 점점 더 친밀해져서 하나가 된다.

떠날 때 그는 이별의 아쉬움이 담긴, 수줍지만 아주 부드러운 표정, 즉 자신을 감싸주던 고사리 수풀에서 나온 새끼 사슴이나 초원을 떠나는 양처럼 아름답고 무구한 표정을 짓고 떠났다.

여자나 소녀에게서 자제력이나 금욕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일상적인 잡다한 비밀이나 종종 느끼는 시시껄렁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만 있으면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내가 제대로 된 사람들을 사귄다고 인정해주었다. 그 훌륭한 여교장은 처음부터 날 존중해주었는데, 라 떼라스와 대단한 호텔에서 나를 자주 초대하자 나에 대한 그 존중이 특별한 인정으로 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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