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에 대해 네가 으쓱해하지 않는 게 이상해."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단 말이지. 내가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시시한 사람인데도 그러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뻔뻔해서일 거야."
나는 단지 점잖게 처신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팔짱을 낄 때면 언제나 내게 몸을 바짝 기댔다. 하지만 난 신사나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자세가 싫었다.
"그래." 그녀는 직설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 태도야말로 그녀의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거짓말을 할 때조차도 솔직하고 숨김이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태도는 간단히 말해서 소금, 즉 그녀의 인격을 보존해주는 저장용 양념으로,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격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알아줄 만한 곳에서 나를 알아주기만 하면 충분히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내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 관심사와 사고 속에 신분이니 사회적인 지위니 박식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공간과 위치를 차지했다. 그것들은 나의 삼류 하숙생들이었고, 그것들에게 나는 작은 거실과 후미진 작은 침실만 내주었다. 식당과 큰 거실이 비어 있을 때조차도 그것들의 처지로 보아 작은 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되긴 했다.
지위가 낮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맥이 없는 게 곧 자존심에 치명타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타락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지위나 인맥을 높이 사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조상이 신사가 아니고 평민이었으며, 부자가 아니고 가난했으며,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자기비하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치명적인 사실을 숨기려 들고 그런 사실이 폭로될까봐 떨며 놀라서 움츠러든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오래 살면 살수록 경험은 더 넓어진다. 이웃의 행동을 덜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의심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조신한 척하는 미덕이건 세속적인 점잖음이건, 작은 방어들이 쌓이는 것은 분명히 그런 방어가 필요해서이다.
나는 ‘강연’을 할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학자 중 하나가 연단에 나가서, 아떼네의 학생들을 향해 교조주의가 반, 왕자에게 바치는 아첨이 반인 형식적인 연설을 하려니 막연히 예측할 뿐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묻지도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분명히 신경을 썼으며 너무나 소탈해서 그것을 감추지 못했고,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욕망을 억누르지도 못했다.
마음속에 칭찬의 말이 가득했으나, 내 입술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부자가 접근해오면 늘 다소 뒤로 빼는 편이었다. 그에게는 질기고 강한 독립심이 있었다. 그의 성격을 알고 나면 눈에 거슬리기보다는 기분 좋아지는 특징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팬쇼 양의 경우에는 아무렇게나 슬쩍 스쳐가며 이목구비를 만들었으나, 바송삐에르 양의 경우에는 고도의 섬세한 필치로 이런 세세한 특징을 완벽하게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바송삐에르 씨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그는 언어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편이었다.
폴리나의 우아함과 지성은 이 사색적인 프랑스인들을 매료했다.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와 미숙하나 진실한 타고난 재치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썩 잘 맞았다.
하지만 독자여, 진실을 말하자면, 어떤 뛰어난 미모도, 완벽한 우아함도, 확실한 세련됨도 그만큼 뛰어난 힘, 그만큼 완벽한 힘, 그만큼 확실한 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유약하고 나태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뿌리 없고 시들시들한 나무에서 꽃과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날 알아보고 웃음을 짓더니, 방을 가로질러 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는 창백해 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나대로 존 선생이 세달 만에 말을 걸고도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내가 네로였어도 그림자처럼 거슬리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요."
마음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반항적인 용기가 솟았다.
이제 나는 그가 내 성격과 본성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늘 내게 나의 것이 아닌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나의 본성은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랑의 드라마에 감초 같은 하녀 역은 기대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깨워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드럽고 열렬한 속삭임에 이어서,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루시" 하는 그의 애처로운 부탁과 겹쳐, 반대편에서 날카롭게 내지르는 소리가 났다.
존 선생은 일생 동안 성공을 거두는 행운의 남자였다. 왜일까? 기회를 포착하는 눈과 적절한 시기에 행동을 개시하는 열의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담력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친구는," 그가 말했다. "말 한마디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 법이오. 당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지금까지도 뺨이 달아오른 게 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 위대한 잘난 체쟁이 영국놈7" (그는 브레턴 선생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불렀다.) "때문인지 말해주시오."
"전 선생님을 의식도 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감정을 일으킨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있답니다." 내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나는 평상시의 내 모습을 억누르고 가식적으로 새침하고 쌀쌀맞게 말하는 데 다시 한번 성공했다.
그녀는 끄레시가에서부터 맹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포세뜨가에 도착하기 전에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진정한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칭찬해주어야만 했고, 그것은 존 녹스가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게 바친 찬사를 능가할 만큼 소박하고 충성심이 가득찬 것이어야 했다.11 이것이 지네브라에게 걸맞은, 그녀의 수준에 어울리는 교육이었다.
뽈 에마뉘엘 선생은 수업시간에 방해를 받는 데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벌컥 화를 냈다. 수업 중에 교실을 가로질러 가는 일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혼자건 여럿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