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아픈 기억들이 올라오고 있군요. 그래서 긴장하고 있고, 긴장하면 소화효소가 적게 분비돼서 점점 소화가 힘들어지죠. 소화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니까, 예전의 아팠던 기억이 다시 소환되고, 점점 더 불안해지고. 불안하니까 소화효소 분비가 적어지고, 그러니까 소화가 더 안 되고… 악순환이 시작되려는 거예요."
진짜 소화가 안 되려나?’ 당연하다. 그걸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먹기 전부터 불안했으니 소화가 될 리 없다. 결국 소화가 안 되는 날이 하루 더 쌓이고, 이렇게 쌓인 소화불량 경험은 우리를 더 위축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소화는 부교감신경의 담당 영역이다. 부교감신경은 그야말로 ‘부’교감신경이다. 교감신경과 경쟁하기 힘들다. 부교감신경은 오직 교감신경의 흥분이 잦아들었을 때에만 자기 역할을 슬며시 해낸다.
에너지를 써서 무언가 해야 할 때 필요한 집중, 긴장, 초조, 분노, 흥분, 불안의 신경중추가 교감신경이라면, 부교감신경은 이완, 소화, 배설의 중추이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근육이 긴장하고,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동공이 커진다. 장 운동이 멈추고 소화효소의 분비가 줄어든다. 그야말로 소화 불가! 어렵거나 낯선 사람 앞에서 꾸중을 들어가며 밥을 먹었을 때 체하고 마는 것,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교감신경이 흥분되니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거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이거 먹고 또 체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면 소화제를 먼저 드세요. 그리고 괜찮다고, 나는 소화제를 먹었으니까 이제 잘 소화를 시킬 거라고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괜찮은 날을 하루라도 더 경험하는 게 좋아요. 오늘이 괜찮고 내일이 괜찮아야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믿을 수 있고, 그래야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불안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소화가 되기 시작할 겁니다."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숨을 못 쉬어 죽을 것 같은 순간을 겪은 이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순간을 다시 또 경험할까 봐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이것이 예기불안이다. 불안해질까 봐 미리 불안한 것. 그리고 이런 걱정과 불안이 결국 공황을 부른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이번엔 다를 수 있어요. 그러려고 약을 쓰는 것이니까요. 괜찮은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갈수록,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내 안의 힘도 생겨날 겁니다."
근육은 뭉치면 길이가 짧아지므로 목과 어깨의 근육이 점점 짧아지는데, 이렇게 짧아진 근육이 두피의 근막을 잡아당겨, 안구 근처, 양쪽 관자놀이까지 마치 작은 헬멧이라도 쓴 듯 꽉 조이고 욱신거리는 두통이 나타난다.
엉? 이러면 나도 할 게 없는데, 어쩐다? 할 게 없으면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그간 경험에서 터득한 진리다.
특히 다른 의사들이 이미 루틴한 방식대로 진료를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뭔가 모르는 게 숨어 있다는 뜻이다.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다들 실력이 좋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환자의 얘기를 더 섬세하게 들어야 한다. 무엇 때문이라고 환자가 생각하는지도 들어야 한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한 후 해부학 교과서를 꺼냈다. 목 뒤의 근육과 뼈를 보여주면서, 부딪힌 부위가 여기고, 그 아래에는 어떤 조직이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회복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피부 밑에는 꽤 조직이 으스러진 상처가 있었을 테고, 이 조직들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회복되는 바람에 지금 목 근육과 두피의 골막까지 잡아당기고 있을 수 있다고, 이것이 두통의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때때로 이런 종류의 복통을 호소한다. 배를 크게 가른 것도 아닌데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다고 한다. 복강경 수술은 구멍을 뚫어서 카메라나 기구를 집어넣기 때문에 크게 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배를 가르는 외과 수술에서와는 달리 층층이 이어 붙일 수가 없다. 그래서 피부, 피하, 근육, 복막이 모두 한꺼번에 한 땀으로 꿰어진다. 서로 다른 복부의 여러 층들이 한데 엉겨 붙어서 흉터로 남는 것이다. 흉터는 작지만, 마치 배에 수직으로 꽂아놓은 못처럼 작용한다. 복부 각 층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니 날카롭게 당겨지는, 움직일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럴 때는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픔에 공감을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증의 이유를 찾아내 이름 붙이는 건, 그래서 환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건 오직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통증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는 ‘적절한 진단적 공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신생아를 돌보는 산모들이 잘 걸리는, ‘드퀘르벵씨병’이라는 손목건초염이 있다. 아기를 들어 올리면서 손목을 자주 꺾다 보니 손목의 근육과 건초 사이에서 마찰이 생겨 염증으로 이어지는 질환이다. 드퀘르벵씨병에 걸린 아기 엄마들은 손목이 조금만 꺾여도 찌릿한 통증을 심하게 느껴, 손을 잘 쓰지 못하게 된다. 이 병은 여자들에게 잘 생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팔 근육이 약한데 아이를 주로 돌보게 되는 여자들에게 특히 잘 생긴다. 그러니까 독박 육아도 이 병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 응급실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응급실에 산모가 오면 여러모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산모들은, 증상에 관계없이 자신의 상태를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중환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사실 본인과 태아, 두 몫이니 산모들의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생식과 관련된 사망이 줄어들면서 너무 많은 것들이 ‘책임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사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아도 장애아는 태어날 수 있고, 누구도 잘못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플 수 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사망하는 태아와 산모가 생긴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것들이 엄마들 혹은 의사들의 책임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외로워서 위태로운 그녀들과 공명하기 위해 나는 그녀들의 몸에 집중한다. 아기가 아닌 그녀들에게 집중. 아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몸을 만드세요!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가장 다른 점은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일 것 같다.
노인정에 가려 해도 어디인지 잘 모르겠고 모두 똑같이 생긴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십상이어서, 결국 집 안에만 계셨다고 한다. 요리도, 장 보는 일도, 청소나 빨래도 굳이 할머니가 직접 할 필요가 없는 아들과 며느리의 집에서, 할머니는 잘 유지해오던 일상적인 기능을 일시에 잃어버렸다. 기억력과 판단력 등 인지 기능도 순간에 놓쳐버렸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거나 인지 기능이 떨어진 분들일수록 그런 적응이 힘들 수밖에 없다. 반평생을 살던 정든 동네에서 갑자기 쫓겨났으니, 그 상실감과 당혹감이 얼마나 컸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오래 살아오던 그 집에서 내쫓겨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치매 어르신과 함께 살기를 준비하는 일본 나고야의 한 마을에 간 적이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인지 기능 장애가 있어도 충분히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마을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치매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알려 그 지역에서는 차들이 지나갈 때 속도를 줄이고 조심해서 운전을 하도록 캠페인을 진행하고, 길 잃은 치매 노인들을 잘 안내하고 치매의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주민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치매에 대응할 교육을 받은 주민들은 오렌지색 링을 팔찌나 목걸이로 달고 있었다. 이 링을 달고 걷는 사람들이 마을에 많아질수록 점점 더 안전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치매는 분명 뇌의 퇴행성 질환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질환이기도 하다.
나는 비혼이고 자녀가 없다. 치매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 같은 손녀는 내게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동네가 재개발되어 싹 다 갈아엎어지지 않도록, 골목과 가게들을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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