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싱의 고백 -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조지 기싱 지음, 이상옥 옮김 / 효형출판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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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Hoc erat in votis.


글의 서문 앞에 적혀 있는 저 글은 라틴어인데 '이것은 바라는 것이었다.' 라는 뜻인가보다. 그렇게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니.


현재 푹 빠져서 읽고 있는 책. 하지만 아직도 다 읽으려면 많이 남은 책.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그저 이 세상에 살며 고되게 일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죽어서 휴식을 찾게 되었을 뿐이다. 8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가 자랑삼아 하는 말을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빚을 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10

그동안 나는 어디서나 안식을 찾아보았지만, 책을 들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17

나는 이 낡은 펜대가 나를 원망하고 있으리라고 상상 할 수도 있다. 이 펜대는 그간 나의 문필생활을 위해 훌륭히 봉사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내가 행복해졌다고 해서 이 펜대가 먼지나 뒤집어 쓰고 있도록 못 본 척해서야 되겠는가? 날이면 날마다 내 집게손가락에 놓여 있던 바로 그 펜이 아닌가? 그게 그러니까 몇 년 동안이던가? 적어도 20년은 될 것이다. 토턴엄 로에 있는 어떤 가게에서 이 펜대를 사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그날 나는 문진도 하나 샀는데, 값이 1실링이나 되는 사치품을 사면서 몸을 떨었다. 그때는 새로 칠한 바니스 때문에 번쩍이던 펜대가 지금은 아래위 모두 수수한 갈색일 뿐이다. 펜대를 잡던 집게손가락엔 지금 굳은살이 박혀 있다. 19

방이 어쩌면 이토록 조용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방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거나, 양탄자위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황금 햇살의 형상을 바라보거나, 벽에 걸린 액자 속의 판화들을 하나씩 살피거나, 책꽃이에 줄지어 늘어선 내 사랑하는 책들을 흝어보았다. 집안에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정원에서는 새들이 움직이는 소리며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하루종일이라도 그리고 밤이 되어 더 깊은 정적이 찾아올 때까지도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다. 22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쓰고 싶은 마음이 내킬 때가 아니면 쓰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23

가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편안함이다. 세부적인 미장은 돈, 참을성 그리고 안목이 있을 경우 추가하면 된다. 24

이제는 새로 산 책을 책꽂이에 꽂으면서 "내게 너를 읽을 눈이 있는 한 여기 서 있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짜릿한 기쁨으로 나는 몸이 떨린다. 25

"대도시의 거주자들을 위해서, 특히 셋집, 하숙집, 아파트 혹은 인간의 빈곤이나 우매함이 ‘집‘이라고 고안해낸 그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는 구절을 덧붙이고 싶다. 25

나는 금욕주의자의 미덕을 곰곰히 생각해 보곤 했지만 그것은 늘 헛된 일이었다. 이 작은 지구 위에서 거주지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는 것이야말로 바보스럽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늘의 눈 태양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현자에게는
휴식처가 되고 행복한 피난처가 될 수 있으리. -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1막 3장 275~6행

인간의 우매함에 대해 격분한다는 것은 인간이 좀 덜 우매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30

사람들이 흔히 돈으로도 가장 귀한 것들은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상식적인 말은 곧 그들이 돈이 부족하여 고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중략)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흐믓한 즐거움을,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희구하는 소박한 행복을 가난 때문에 상실해야 했던가! 해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돈 때문에 불가능했다. 내게 약간의 돈만 있었어도 할 수 있었을 일들을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여 슬픔, 오해, 아니 잔인한 따돌림까지 겪어야 했다. 또 내가 마땅히 누려야 했을 흐믓한 기쁨과 만족을 궁핍 때문애 줄이거나 포기해야 했던 경우도 무수히 많다. 나는 단지 옹색한 형편 때문에 친구들을 잃어야 했다. 친구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 나에게는 낯선 이들로 남아야 했다. 쓰라린 외로움, 친구를 갈망하고 잇을 때 내게 강요된 외로움이 나의 삶을 저주하곤 했는데 그것은 오직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값을 치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도덕적 선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이 말이 별로 과장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5-36

인간은 자신의 불행 속에 홀딱 빠지는 성미 고약한 짐승이다. Homo animal querulum cupid suis incumbens miseriis. 37

나는 불만에 가득 찬 자기 연민의 깊디깊은 수렁에 빠진 채 하늘의 빛까지 완강히 외명하면서 비굴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과 사귀기를 꺼렸기 때문에 그 암담한 시절을 겪으면서도 단 한 명의 친구만을 사귀었을 뿐이다. 43

나는 빵 살 돈 때문에 낯선 사람들에게 구걸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모든 것 중에서도 이 구걸이 가장 쓰라린 체험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나는 친구나 동료에게 빚을 지는 것을 구걸보다 더 못할 짓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나에게는 늘 나와 세계라는 두 존재만 있었고, 이들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44

나이가 쉰셋 된 사람이라면 사라져버린 젊은 시절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51

그러나 대체로 나는 가난말고는 별로 불평할 일이 없이 살았다. 56

젊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던 그 모든 고난을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다. 30년 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이 허약하기만 한 못난이인가!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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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8-0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의 눈 태양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현자에게는
휴식처가 되고 행복한 피난처가 될 수 있으리. -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1막 3장 275~6행
* * *
《리처드 2세》를 최근에 읽은 덕분에 저 구절을 대하니 ‘풀버전‘이 너무나 궁금해서 다시금 찾아봤답니다. 후일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헨리 4세‘로 등극하게 되는 ‘헨리 볼링브로크‘가 리처드 2세로부터 ‘부당한 추방 명령‘을 받고 조국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존 오브 곤트)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격려의 말‘인데,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따스한 父情‘이 느껴지는 대사여서 저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라로님 덕분에 그 구절을 옮겨 적으며 다시금 음미해 봅니다.

태양이 내려 쪼이는 장소는 모두가 다
현자(賢者)에겐 항구요 아늑한 정박지니라.
곤경에 처해서는 이렇게 생각해라 ㅡ
곤경처럼 도움이 되는 것 또 없다고.
전하께서 너를 추방했다 생각지 말고, 네가 전하를
멀리한다고 생각해라. 괴로움을 심약하게 받아들이면,
괴로움은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르는 법.
가거라. 영예를 쟁취하라고 내 너를 보내는 것 ㅡ
전하께서 너를 추방하심이 아니다. 아니면,
생명을 삼키는 역병이 대기 중에 맴돌아,
네가 신선한 풍토를 찾아 도피한다 생각하거라.
네가 무엇을 값진 것으로 여기든, 네가 가는 곳에
그것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뒤에 남긴다 생각 마라.
지저귀는 새들을 악사들로 여기고,
네가 밟는 초원을 골풀 깔린 접견실로,
꽃들은 아리따운 여인들로, 그리고 네 발걸음은
흥겨운 무도의 율동이나 춤으로 여기거라.
이빨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슬픔도 그걸 조소하고
가볍게 여기는 자를 물 힘이 약해지나니.




라로 2017-08-03 12:00   좋아요 1 | URL
멋지십니다!! 저 작은 구절만 보고도 이렇게 풀버전을 옮겨주시다니요!!
알라딘에 이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분은 오렌 님이 유일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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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쓰기는 어렵다. 직간접으로 겪지 않은 것을 글로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남의 글에 대해 잣개를 들이댈 만큼 글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녀에게 해줄 말은 있었다. 써야 할 글이라면 반드시 써지는 것이지 남의 평가에 그 의지가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고.

남의 글에 오지랖을 떨 만큼 글쓰기에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하루살이처럼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연명하기 바쁜 처지였다. 253

일방적인 오해 앞에서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게 구차스러웠다. 254

모든 갈등은 옳고 그름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었다. 다 옳거나 그른 가운데 문제는 발생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는 게 문제였다. 자고로 물은 건너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 대체로 갈등 당사자들은 많이 상처 주고 적게 상처받으면서도, 적게 상처주고 많이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 가해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피해 입은 것은 오래 기억하는 인간 속성 때문이다. 가련한 피해자 입지가 자책하는 가해자 입장보다 동정받기 쉽다. 오죽하면 때린 놈보다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생겼을까. 오희와 명지는 서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희가 받은 타격이 더 커보였다. 안 그런 척하는 사람에게 뒤총수를 가격당하는 파장이 대놓고 그러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기 떄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명지는 오희에 비해 훨씬 혼화한 이미지를 풍겼다. 이 빠진 독수리의 한 방보다는 독을 품은 쐐기풀에 슬쩍 스치는 게 더 아픈 법이었다. 263

헐겁고 구멍 난 흙담같은 인간적인 세계가 그들에겐 없어 보였다. 더운 날 서늘한 바람 한 줌, 흐린 날 비릿한 흙먼지 안개, 비오는 날 알싸한 한줄기 비가 그 뚫린 구멍으로 지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허기와 상처의 극한을 경험한 자들의 자기보호 방식이 저렇게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겹게 정착한 이 땅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떠나게 했던 그 요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었다. 267

다 다르면서 다 똑같은 게 사람이다. 거창하거나 소박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착하거나 못되거나 모두 상처의 길을 터벅터벅 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의 한살이란 끊임없는 상처의 길이다. 길을 내고 지우는 동안 숱한 상처들이 얹혔다 사라져간다. 271

나는 처음주터 그녀의 원고를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 안에 든 내용이 소설인지, 시인지, 판타지인지 등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오희가 원한 건 글쓰기가 아니라 절절한 소통이었다. 그녀가 글을 써야만 한다면 운명처럼 쓰게 될 것이었다. 소통을 원하는 그 애절한 순간에 우연히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272

내가 보기엔 모든 관계란 우연의 집합물일 뿐이다.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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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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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향을 밟고 그가 지난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나는 밟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기 못한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내 감정은 풀어져야 한다. 이런 맘으로 아버지가 준 포푸리를 병원으로 갖고 왔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킨다는 허브 포푸리도 아직까지는 내 살의를 완전히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담백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속하고 또 단속한다. 그렇다고 살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쓰고 싶지도 않다. 가끔씩 부녀혼을 느낄 때가 있다. 살의는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전인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100

투명한 창을 방해하는 저 창살도 걷어내고 싶다. 한겹 넘어 또다른 한 겹이 모든 것의 문제구나. 부질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걷어내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그 일상의 시간에 작은 틈이 생기고 그것은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큰 구멍이 되기도 한다. 101

그 발랄함의 원천이 궁상맞은 심신의 허기를 감추기 위한 자폐적 연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결핍에서 오는 지루한 지나침이 감지되면 남자들은 쉽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몇 번의 상처 끝에 나는 사랑을, 아니 사람을 믿지 않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사람이 그리운 느슨한 천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는 새로운 대상에게 빠져들곤 했다. 102-103

따뜻한 가족애를 표방하는 허울 좋은 드라마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었다. 134

일상처럼 굳어진 엄마의 무관심이 차라리 편하다.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의식을 느끼는 여자로선 엄마의 그런 태도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월질 수 있기 때문이다. 163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결 같은 성품 때문에 엄마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168

사랑에 빠진 청춘의 누썰미가 객관적이기를 바란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을 알기에 이 점은 엄마를 이해하기로 한다. 169

분신 같은 추억의 물건도 새 남자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릴 절묘한 타이밍을 엄마 앞에서 여자는 선택한 셈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쉽게 잊을 줄 알았다면 그 테이프를 버리지 않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복수였다. 170

자신의 정체성을 모독하고 위협하는 모든 언사는 폭력이죠. 173

따뜻하다, 정겹다, 라는 소박한 형용사가 이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176

소설이 무엇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좋은 소설을 만나면 내가 쓰는 게 소설이 되려면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인다는 것. 좋은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서늘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나쁜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작가의 자기 합리화가 들어간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인칭 시점 소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삼인칭 소설을 표방하지만 작가의 자의식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무늬만 삼인칭인 소설 역시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들은 자기 연민이며 자기방어의 소산물이다.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요즘 세상에 내레이션을 맡은 화자의 진술이 얼마나 진부하며 자기기만을 일삼는지를 자주 보아왔다. 중립을 가장한 채 자기연민에는 당위성을 끌어다 붙이고, 타자를 향한 시선에는 근거 없이 객관적인 척하는 기만.
p.186-187

소설은 어차피 팔 할이 구라와 뻥이고 나머지 이 할은 자의식이 낳은 똥일 테니까. 그 말은 모든 소설이 진실을 다 이야기하지는 못한다는 말과 같다. 진실인 척하면서 이야기를 꾸밀 뿐이다. 왜 그럴까? 아무리 소설이 사람 사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해도 작가 자신을 다루는 데는 서툰데다 환벽히 솔직하기 힘들기 떄문이다. 여타 일인칭 소설들이 즐기는 도덕가연하고 객관적인 척하는 내레이션의 포기가 이 글의 지향점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벌써 어리바리 갈 길을 잃었다. 187

공유한 추억은 분명 같은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기억은 각각이었다. 약자는 약자 식으로 나는 내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193-194

제 식구를 무시해서 얻은 여력으로 타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 중의 하나였다. 196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약자의 기억과 내 기억은 달랐다. 누구나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볼 수 있는 것만 본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202

기억이란 얼마나 허황된 가공품인지, 얼마나 다양한 변수가 각자의 기억들을 조종하는지, 그랬다. 처음부터 누가 빈지문을 닫았을까 하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상황을 모르는 약자와 나만 가로 늦게 의미 없는 수수께끼 놀이를 했다. 각자 자신만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엉뚱한 해프닝을 벌인 셈이었다. 상황과 개별자가 만나 접점에서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엉뚱하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약자와의 조우가 말해주었다.

꽃집을 지나다가 그 꼿을 만났다. 라넌큘러스. 얇디얇은 꽃잎이 겹겹이 쌓인 꽃이다. 꽃잎만 무려 삼백여 장이 넘는단다. 꽃받침마저 줄기에 바짝 붙어 있어 지저분하지도 않고 담백한 느낌이 난다. 백합과 수국 옆에서도 제 기품을 잃지 않는 꽃이다. 넓은 잎과 휘돌아간 매무새는 장미를 닮았지만 꽃잎 개수가 많은데다 활짝 피었을 때 겹겹이 벌어지는 건 국화를 닮았다. 미나리처럼 연한 꽃대에서 저토록 무성한 겹꽃잎을 피워 올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직 꽃 하나만으로 풍성한 자태를 드러내는 그 모양새에 반했다. 212

습지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라넌큘러스.

처음엔 한 두 잎으로 시작했겠지. 하지만 돌봐야 할 저마다의 기억을 윤색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저토록 많은 꽃잎으로 늘어났겠지. 꽃말조차 매혹과 비난이라나. 인간사에서도 매혹과 비난은 이음동의어가 아니던가.

수 겹의 잎으로 피어나는 꽃잎은 한 장 한 장 각기 다른 기억의 조각보를 지닌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조각보를 만드는 사람의 기억처럼 얇디얇은 꽃잎도 각자마다 다른 기억을 품는다. 라넌큘러스 꽃잎이 벌어진다. 잎 얇고 빚깔 만ㅁㅎ은, 수 백 개의 잎으로 번지는 저 기억의 낱 잎들. 그 잎들은 각자가 만든 틀 안에서 재편집되고 수정되고 확산된다. 그렇게 기억의 꽃잎은 피고 진다. 213

창을 열면 햇살보다 먼저 송홧가루가 들어앉곤 했다. 문틀에, 마룻바닥에 앉은 노란 가루는 닦아내기가 무섭게 쌓였다.

마음은 반드시 몸에 흔적을 낸다니까. 216

유효기간 지난 감정의 미망에서 벗어나려면 구체적 행동이 필요했다. 225

생의 환멸을 정면으로 돌파할 에너지가 있는 자만이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227

누가 뭐래도 간호학은 내면에 억척스러움이 있거나, 어리석지 않는 착함으로 단련된 이가 선택하기 좋은 학문이었다. 환자를 돕고 싶다는 순진한 사명감은 색연필로 장래희망을 그리던 어린 시절에나 필요한 덕목이었다. 228

현실적 고통 없는 지루함. 그래서 인형 작업에도 이렇게 진척이 없는 걸까? 나른한 한 나절,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시든 난꽃의 대궁을 잘라봐도, 더께 낀 창틀을 닦아 봐도, 한껏 미뤄둔 작업대에 앉아 봐도 갑갑함은 언제나 친구처럼 가까이 있었다. 어쩌다 손재주는 있어, 종이 인형을 만들기는 하지만 죽도록 다 하는 열정이 아니었으므로 완전한 프로가 되기도 힘들었다. 허영일 뿐이었다. 뭔가를 부여잡고 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픈 허욕의 뿌리이자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었다. 230

잔잔하고 반복되는 일상일수록 내면의 파고는 높은 법. 232

절망의 구정물에 손 적신 적 없고, 비루함의강 둔덕에 발 디뎌 본 적 없는 무구한 아이. 그건 노력이나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선천적 투명함을 지닌 데다 가정 환경이 받침되는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기질이었다. 235

비관보다는 낙관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엉뚱한 곳에서 고삐를 풀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무릇, 관계는 담백하고 부담이 없어야 오래간다. 부모 자식 간인들 다르겠니.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있잖아. 고슴도치가 제 날카로운 털은 생각하지 않고 사랑스럽다고 서로 가까이 가 봐. 생채기만 나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오래 갈 수 있어. 독사 스무 마리 쯤 길들이는 마음으로 견뎌내야 해. 즐기는 날보다 치욕을 견디는 날이 많은 이유가 뭐겠니? 갈망하는 관계는 오래 못 가. 누군가 말했잖아. 타인이야말로 진정한 감옥이라고. 가족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니? 사무침이 없으면 원망도 없잖아. 누가 뭐래도 그 말은 진리야. 24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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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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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께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 가만 아내를 끌어안는다. 응급실 창밖으로 목련 가지가 스친다. 흔들리는 가지를 뚫고 하얀 꽃망울이 끓어오른다. 봄이 멀지 않다. p.34

누구든지 어둠 속 세탁선에 승선해서 마음과 육체의 때를 씻고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라는 것을 손님들에게 설명해주었다. p.44

인간의 욕망은 은밀할수록 솔직해지고 틀어막을수록 대담해진다. p.45

여자는 이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믿지 않기로 한다. 시각적인 것이 얼마나 위선인가를 여자는 깨닫는다. p.51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열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응징이나 경고쯤으로 자위할 참이었다. p.53

시각적인 현상으로 보면 추악한 단면들도 어둠 속이라면 솔직한 욕망이 될 뿐이라고 김은 생각한다. p.59

감정이나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없는 심연이었다. 지미를 거부한 자리에 남편은 새 접견자를 앉혔다. p.67

참하면 지루하고, 오지랖이 넓으면 성가시다. 힐링이 목적인 여행에서는 적당한 무심함이 최고의 미덕인 것을. p.69

라요하네 마을은 호수가 마을보다 컸다. 굵고 곧은 자작나무와 아직 잎이 떨어지지 않은 은사시나무가 호수를 낀 먼 산등성이를 휘감고 있었다. 가까운 호숫가에는 대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가 번갈아 가며 병풍처럼 박혀 있었는데 그 속으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산책로, 그 길에서 잠시 멈추고 바라보던 호수안의 고요. 투명한 물속에서 헤엄치던 크고 작은 물고기 떼. 힐링을 위한 장소로는 더할 나위없는 곳이었다. p.74

겉보기와 달이 모래알 같은 내면의 섬세함이 샌드리를 힘들게 했을까. 보통 때의 털털하고 오지랖 넓은 모습과 대조적인 샌드리의 속내를 알고 나니 지미는 착 가라앉는 기분이 되었다. 샌드리의 거침없는 친화력은 자신의 내면을 감추기 위한 몸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 81-82

호의나 친절은 풀어놓는 순간 지속성을 요구한다. 계속하지 않으면 상대는 변했다고 생각하고 서운함을 느낀다. 자칫 예민한 상대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도덕적 노예가 되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내면을 힐링하려는 자는 섣불리 제 패를 다 내어놓아서는 곤란하다. 힐링하기도 전에 자신과 상대를 킬링하게 될지도 몰랐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만큼 공허하고 허망한 인연을 왜 이리 쉽게 끊지 못하나. 라요하네를 떠날 때까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지미는 밤새 그 생각에 시달렸다.

초콜릿 간식을 나눠준다든가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내면화된 사람 같았다. 된 사람이니 남편까지 잘 만나는 복을 얻었구나, 하는 부러움이 일 정도였다. 사람을 곧이곧대로 신뢰하는, 꼬인 데가 없는 멋진 여행 파트너였다. p.88

천성적으로 인간에 대한 선한 동정과 공감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p.89

결속력 없는 조합이 으레 그렇듯 유효기간 두 달을 넘길까 싶었는데 잊을 만하면 소식이 올라와 카톡방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었다. 이해심 많은 율리아와 오지랖 넓은 샌드리 덕이었다. p.90

타자를 공감하고 탐색하는 일은 불편한 제 안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은 피해가고 싶었다. 타자의 아픔이 제 아픔이고, 타자의 욕망이 제 욕망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서글픔. 삶이 진행되는 한 지속될 그 형벌을 일부러 찾아가며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서로 이해 불가능한 존재였다. 자신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만 이해 가능한 족속이 인간이었다. p.91

제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건 죄가 아니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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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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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슨의 대표작 [율리시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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