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날 여정을 마치면 책 읽는 걸 그날의 보상으로 생각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이에요." 그 책은 아직 상한 곳 하나없이 내 배낭 안에 들어 있었다. 눈길을 걸으며 앞으로의 일정이 언제 어떻게될지, 다음 보급품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기에 책을 찢어 불태우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 책을 다 읽었고 지난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괜찮다면 한번 읽어봐요." 제프가 이렇게 말하며 《짝짓기》를 손에 들고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이미 다 읽었으니까.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으면다른 책도 있어요." 그는 주방을 나가 침실 쪽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뒤 제임스미치너의 두툼한 책 한 권을 들고 와 이제는 텅 비어버린 내 접시 옆에 놓았다.
제목이 《소설 The Novel》 이었다. 제임스 미치너는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였지만, 그 책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미치너의 책을 읽으며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내가 《대중을 위한 즐거움An entertainer for the masses》이라고 대답했더니 교수는 비웃듯이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정말 진지한 작가가될 생각이 있다면 제임스 미치너의 책 같은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나는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10대 시절 내내 그의 책들에 흠뻑 빠져 지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에 입학한 그 첫 달에 나는 어떤 작가가중요하고 또 어떤 작가가 그렇지 않은지 금방 배우게 되었다.
"엄마는 그게 진짜 책이 아니라는 것도 몰라?" 그해 크리스마스에 누군가엄마에게 미치너의 《텍사스Texas》를 선물하자 나는 조롱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진짜 책이라니?" 엄마가 나를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는 표정으로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진지한 책이 아니라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진짜 문학을 좀 읽어요." 내가 핀잔을 던졌다. -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