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초콜릿
공병호 지음, 오금택 그림 / 21세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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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잠언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이겠다.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짤막한 글 중에서 그 모든걸 수용하고 기억할 수는 없지만 스쳐 버리기엔 편치않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 구절들을 구분하고 옮겨 적는건 그 느낌을 깨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잠시 내게 와 닿는 구절들은 묵상을 했다.

떠오르는 생각들,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공상까지 잠깐의 묵상으로 내 안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참 꿈을 품을 때는 내 안에 담을 수 있는게 무한했고 내 손에 잡힐 것 같은 환희에 차곤 했었는데 현재의 나는 참 작아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고 있어도 내 안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이 허다했고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 가는 꿈들을 손에서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멀어져 버렸는가.

성공이라는 거창함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서 굉장히 멀어진 느낌이였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자신을 철저히 알아갔다.

그리고 무척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자꾸 과거지향적이 되어 버리는 내게 끊어버리지 못하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다는 그림을 보면서도 나는 과거의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에겐 더이상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나는 아직 젊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용기가 솟았다.

그리고 내가 진정 하고 싶은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좀 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아직 이 나이를 퍼먹도록 그것 하나 모르고 있는 내게 난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 짧은 상념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많았고 컸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겠다라는 다짐속에서 이루어진 짤막한 묵상들은 점점 나를 행해가는 지름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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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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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그들, 평범한것 같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그들을 쉽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편안하게 시작 되었다. 그래서 부담없이 읽어 나갔는데 끝을 향해 갈수록 무거워 지는 우울함은 떼어버릴 수가 없었다. 상대방의 눈에 비춰지는 나는 나름 특징있고 삶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너무 적나라해서 순수하게 상대방의 의식만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 고백적 퍼레이드가 짙어 갈수록 그들의 내면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그래서 종반부에 내게 던져진 우울을 종잡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섯명의 동거인들의 퍼레이드 배치도 소설에서 나름 영향을 미쳤기에 뒤에 배치된 인물들에 대한 반전이 충격적이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충격적인 인물은 가장 마지막에 나왔던 나오키였다.

사토루에서부터 이상한 기미가 흐르더니 나오키는 그런 기류를 확실히 그리고 은밀히 타버린 인물이였다. 혼자 다니는 여성들의 얼굴을 처참히 뭉게 버리는 범인의 주인공이였으니까.

그것도 조깅을 하면서 태연히.

사토루의 자칭 밤일, 마약 복용, 주거침입도 결코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오키의 행동은 충격적이였다. 요스케, 고토미, 미라이의 생활도 그리 착실하다라고 칭친할만 것이 못되나 라스트의 묘미를 채우듯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찍듯 태연히 자행되는 나오키의 범죄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섯명의 동거인을 모두 이해한다고 그리고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드러난 그들의 모습앞에 철저한 방어막을 보고 말았다. 좁은 맨션에서 무려 다섯명이 북적거리며 사니까 싸울일도 많고 한편으로는 고뇌를 나누며-심각한 고뇌가 그들에게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미운정 고운정 서로 얹어주며 살 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한 공간안에 있을 뿐이였다.

그들 자신 스스로가 공간이 되어 이동할뿐 같은 영역이 되지 않는 그래서 언제 어디서 사라지든 형성되든 늘 마찬가지인 그런 마주침이였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사토루의 비디오 사건만 빼면-각자의 삶을 구축해 가면서 펼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 그들의 퍼레이드는 자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연결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한 맨션에 살고 있으니 빠질래야 빠질수가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묘미가 한층 재미를 더해 주었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대책 없고 생각없는 그들의 유별난 동거가 또 다른 삶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결코 쉬이 넘겨 버릴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아를 잃어 버린 젊은이들이였다.

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일을 하든 그들의 고백 속에서도 그들의 자아를 만나고 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무관심하고 나른한 그들을 하나의 개체로 볼 수 있을까.

'인간 군상이로구나' 라며 쉽게 물리쳐 버릴 수도 있는 문제를 왜 또 나는 진부하게 꺼내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분명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각각의 모양 중에서 그저 이런 모양을 추렸을 뿐이라고 -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이런 모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통점은 없지만-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냥은 웃고 넘어갈 수 만은 없을 것이다.

그냥 유쾌하게 읽고 지나가는게 나의 바램이지만 밀려드는 생각 또한 나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범죄로 인해 범죄자라는 틀만 기억하는 나오키, 다소 위험요소가 있다라고 경계하는 사토루, 미친듯이 술만 마셔대는 미라이, 온통 연애에만 빠진 고토, 어리 버리하면서 선배의 애인을 좋아하는 대학생 요스케....

그들의 애기를 어느 정도 들었음에도 나는 그들을 어느 정도 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들은 오늘도 그들 나름 대로의 퍼레이드를 이어갈 것이고 난 그들의 삶의 일부분만 보았을 뿐이니까.

그리고 나의 퍼레이드 속에서 빠져 나오고 있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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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무어 3 - 거울의 집 율리시스 무어 3
율리시스 무어.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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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무어에 빠져 버렸다.

1.2권을 읽고 다음 시리즈를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발간된 3권을 보고 주체할 여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무조건 읽고 싶었다. 그래서 책이 오자 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결말까지 다 읽어버리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내년까지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니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다.

 

3권에서는 킬모어 코브 그리고 오블리비아 뉴턴의 정체를 조금씩 벗겨나갔다. 킬모어 코브 전체가 비밀스러운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외부인인 오블리비아 뉴턴이 어떻게 하여 시간의 문을 알게 되고 추적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1.2권에서 폭풍처럼 지나갔던 그들의 모험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마을에서의 비밀 그리고 네스터씨에 의한 시간의 문에 대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1.2권에서의 광범위한 공간적 이동은 없었음에도 책장은 미친듯이 넘어갔고 읽고 있는 동안 현실은 깡그리 잊어 버렸다. 잠시 요기를 위해 책에서 눈을 뗄때는 빌라 아르고를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세 아이들과 함께 킬모어 코브를 하나 하나 알아 가고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넘치는 미소가 나도 모르게 지어졌다. 평소 같으면 책 읽다 배고프다는 사실이 너무 귀찮아 대충 먹어 버렸을 요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마냥 즐거웠다.

가상공간 킬코어 코브에 빠져 들었고 나의 의식 저편에는 빌라 아르고가 펼쳐져 있었다.

심각하다.

환상세계를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실존을 가늠하면서 판타지의 중독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세아이가 진실을 향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노출 시키는 모습들이 무척 자유스러워 보였다. 비밀을 풀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위험의 한가운데로 던져 졌지만 네스터씨의 적극적인 도움과 사랑이 쏟아질 것이므로 안심이 된다.

생각보다 꼼꼼하게 전개시켜가는 것 같아서 1.2권에서 느꼈던 완성도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상승되었다.

늘 무언가 정리하고 생각해봐야 하는가 보다. 3권의 그런 분위기의 영향인 듯 하니까.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아이들은 여행을 또 시작하려 했다.

오블리비아 뉴턴에게 시간의 문의 비밀을 알려준 시계공 다이달로스를 찾으러 베네치아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권에서 폭풍같이 펼쳐질 시간 여행이 4권에서는 시작되겠지.

정말 궁금하다.

어여 4권아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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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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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문학이다.

정말 국내 문학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학은 차고도 넘쳐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고 읽고 싶은 책은 어느새 한가득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요즘 고전에 관심을 두면서 자연스레 고전문학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고전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장르가 철학이 아닌가 싶다.

반면 문학만 주류가 되다 보니 확실히 한계가 느껴졌다.

한곳에서만 머물러 있다라는 생각....

문학속에서 안주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문외한인 인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갔는데(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속 인물 박순신으로 인해 철학에는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책은 몇권 구입했지만 언어의 유희에 빠져 도저히 읽을 엄두가 안났다. 읽고 싶다라는 욕구만 강하다고 해서 읽어지는게 책이 아닌 이상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철학 콘서트를 만났다. 정말 이 책이 한줄기의 빛이 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책장 속에서 잠자고 있는 철학책들을 들춰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평소에는 깊이 파고들, 아니 겉핥기도 안될 쟁쟁한 사상가 10인들이 책의 주역이였다. 저자는 고전여행의 안내자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친절하게 읽을 순서까지 알려준다.

어려울거라는 강박관념속에 겁을 먹긴 먹었나 보다. 책의 순서가 뒤죽 박죽이 될 것을 알면서도 저자가 알려준 순서대로 읽었다.

10인의 사상가를 한 번에 이해할 수도 없는데 저자는 위로까지 던져주며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어와 스미스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석가와 공자, 퇴계와 노자를 읽으라고 한다. 플라톤과 마르크스는 어려울 것이라며....(걱정마시라. 10인중에서 이름만 들어도 짓눌리는게 플라톤과 마르크스니...)

출발은 좋았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은 저자의 언어의 농락에 빠져 정말 나조차 놀랄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문제는 서서히 드러났다.

모어와 스미스도 그럭 저럭 읽어지면서 알쏭 달쏭 해지더니 석가와 공자는 완전 무의식의 세계였고 퇴계와 노자에 이르러서는 조금씩 망각이 짙어져 갔고 플라톤과 마르크스는 저자의 염려처럼 압권이였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무얼 읽고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마르크스를?

'오호~~ 역시 내게 어울리지 않아' 라는 잡념들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저자는 10인의 사상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유희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에 이런 사상을 지니고 설파했었다라는 초반의 묘미와는 다르게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유희 속에서 나는 분리되고 있었다. 분명 한사람에게 할애되는 페이지는 많은 양이 아님에도 한번의 읽힘으로 그들이 평생 지켜온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역시 무리다.

그러면서 '그들의 원작을 읽으면 어떨까' 하는 까마득한 생각이 들다가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였다.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철학을 이렇게 나마 길을 열었다는 생각과 끝까지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읽었다라는 그 사실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들처럼 깊은 사색에 빠질수는 없었지만 기억 저편에 존재하던 것들을 조금은 끌어당긴 느낌이였다. 이보다는 더 쉽게 이들을 알릴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저자의 편안함에 기댄채 나름 즐거운 시간이였다.

속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그득하지만 길을 터준듯한 느낌, 자꾸 벽을 두드리게 해주었던 느낌들은 선명하다.

이런 겉핥기 밖에 얘기할 순 없지만 그들에게 그리고 고전, 철학이라는 장르에 조금은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차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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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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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아니 어쩜 초등학교 때부터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했던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그리고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였다.

고 2때 소위 명작을 읽겠노라고 학교 도서관을 뻔질나게 들랄거릴때도 이상하게 데미안과 좁은문은 피해갔었다. 그래서 데미안과 좁은문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읽을거야!' 라고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고대하고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간직되고 짓눌렀던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그러나 그렇게 속시원한 반응만은 아니였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데미안이 필독서였는데(지금은 어떨까...) 만약 내가 중, 고등학교때 데미안을 읽었더라면 헤르만 헤세도 모호한 작가라고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읽었더라면 분명 어렵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푸념만 잔뜩 늘어 놓았을 지도 모른다. 실은 지금도 푸념을 하고 싶다.

 

지금 읽어도 고뇌에 찬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는데 중,고등학교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고뇌의 길을 가고 있던 10대라는 동질감이 그때 읽었더라면 어떤 반응으로 나타났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싱클레어는 분명 고뇌가 깊은 소년이였다.

김나지움에서의 방탕한 생활을 가끔 정지시켜 준 것은 유년시절의 데미안과의 추억이였다. 희미한 연결 고리나마 싱클레어가 잊지 않고 데미안과의 대화며 그들 둘만의 혼의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였다. 얼핏 보기엔 그 둘의 관계가 동떨어진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만큼 그들의 만남은 강렬했고 특별했다.

그런 연유로 싱클레어는 극을 달리고 있을때면 데미안과 만날 수 있었다. 추억 단 하나만으로. 그 속을 자유 자재로 드나들면서.

그런 만남속에서 데미안 앞으로 보낸 그림 한점의 답장이 싱클레어 책 속에 꽂힌다. 압락삭스라는 신의 이름으로.

그래서 싱클레어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하는 새가 된다.

 

음악가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그리고 다시 데미안과의 재회.

그런 과정의 끝에는 싱클레어가 남아 있었다.

내 것이기보다는 데이만이 더 가득 차있던 혹은 나 아닌 다른 것의 채움이였던 속에 진정한 자아인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된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자아성찰을 하기 위해 싱클레어는 고통스런 성장을 거쳤다. 비단 싱클레어 뿐만이 아닌 나를 포함한 모든 젊은이들 그리고 젊은 시절이 꿈 같이 흘러가버린 이들 속에 말이다.

그래서 처음 데미안이란 작품이 모호하고 고뇌적이라 푸념을 늘어 놓을때의 나의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따분한 과정이든 진지한 과정이였든 분명 그들은 데미안 그리고 싱클레어를 만났을 테니까. 그게 어떤 식이였든 나는 알지 못한다.

나 또한 이제 그들과의 만남을 시작했고 그들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니까. 그들을 찾지 않게 될때 그때가 언제인지 나도 불 분명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러 이러한 만남이였노라고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에서 머무를지 새가 되기 위해 투쟁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것들과 마주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찾아갈지 이젠 두려워 하거나 망설이지 않게 된다.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각각의 분량은 자신이 가장 잘 알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 가운데 나는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 알아가고, 찾아가고, 즐기는게 관건이다.

 

데미안을 알고난 후 한참만에 책 제목이 사람의 이름이란걸 알게 되었을때의 그 낯설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그 곳에 낯선 데미안이 아닌 익숙한 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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