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적 초조함을 이해합니다
뤄전위 지음, 최지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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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는 고정된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식은 아예 고정성을 버리는 것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이해하는 과정은 확실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정, 변화가 있어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41쪽


끊임없이 변화하라는 말은 식상하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건 또 싫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조금씩 정립이 되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몰랐거나 혹은 관심 없는 분야가 허다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저자가 먼저 곱씹고 곱씹어서 소화시킨 다음에 친절하게 다시 알려주고 있어 모르는 사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런 독서가 얼마만인지! 책 제목이나 두툼한 두께를 보면 결코 녹록치 않은 읽기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선입견을 철저히 깨주어 굉장히 즐거웠다.

제1장에서는 제목처럼 ‘지적 초조함’을 왜 느끼는지 상세하게 풀어낸다. 현대 사회가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사라져가고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겉도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기보다 그냥 흐름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 부분을 건드린다. 과거의 인물들과 역사를 통해 ‘관념’이란 개념을 새롭게 정립함과 동시에 변화의 통찰과 현재의 밀접함은 물론 미래까지 연결시키는 과정을 상세하게 안내한다. 그 과정을 느긋하게 따라가다 보면 흩어졌던 정보들이 제자리를 찾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기분까지 들었다.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독서를 즐기는 이들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만 판단할 때, 독서를 하는 사람은 더 깊이 들어가 무엇이 옳은지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부터 옳게 되었는지까지 알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지식의 과일을 맛봄과 동시에 지식으로 인한 오만을 피할 수 있다. 71쪽

제2장에서는 ‘경제학에서 인지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 부분이 재미있었다. 오래전에 읽은 『괴짜 경제학』이 반가웠고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본 사회 구조, 협력, 인간 마음 등이 꽤 정확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경제학이 정치권을 쥐락펴락한 역사의 생생한 현장도 알게되었고, 경제학을 몰랐기에 실생활에 대입할 생각을 못해 보고 나와 상관없는 학문이라 여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고정된 생각을 깨주어서 반가웠다.

혁신의 핵심은 협력에 있지 이마를 탁 치는 것이 아니다. 252쪽

제3장에서는 ‘혁신, 인지 수준 향상의 수단’ 부분에서 노벨상에 관한 연구가 인상 깊었다. 노벨상이 특정인물이 아닌 협력을 통한 혁신의 결과라는 분석과 협력이 되지 않을 때 노벨상의 문제점을 바로 드러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렇게 접근하면서 해결책도 제시해 주어 뭔가 후련했다. 또한 ‘제조는 커다란 강점이다’에서 왜 아이폰이 중국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 중국은 짝퉁 천국이라고 말하면서도 중국에서 수많은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복잡한 제품을 대규모로 제작할 능력을 갖춘 개방형의 유일한 국가’라는 의견에서 많은 걸 느꼈다.

당신의 가치는 사장이 얼마를 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의 가치를 창출해내는지,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316쪽

제4장에서는 ‘비즈니스적 사고 기르기’에서 ‘파트너십을 맺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하고, 경력이 어느 정도 쌓였지만 방향을 잡지 못한 회사원들과 CEO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부분이었다. 분명 연봉이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저자는 회사에서 나의 가치를 무엇으로 높일 수 있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래서 나처럼 평범한 아줌마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많은 회사와 직원(퇴사한 직원 포함)들이 파트너십을 만들어 서로 윈윈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정말로 그런 예시를 많이 들려주어서 흐뭇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독서라는 방식을 통해 이 세상을 바꿔가지 않겠습니까? 332쪽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분야가 방대하고 상세해서 잠시 길을 잃을 때도 있다. 분명 읽다 보니 지적 초조함을 채워졌는데 자꾸 더 궁금하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협력은 혁신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날카롭고 예민하게 키우라는 건지 곰곰 생각해보아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저자는 마지막 제5장에서 ‘이 세상은 좋아질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다시 독서로 돌아와 꽤 난이도 있는 철학서 두 권을 소개한다. 물론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는데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선뜻 말할 수가 없다. 38억 년 생물의 발달부터 현재의 인간까지 관통하는 생존에 대한 부분이 기억에 남은『물연통론』의 깊이만 겨우 체감했다. 그러면서도 의존도, 자유도가 높아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는 이유를 ‘대상’으로 설명한 부분이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이 책을 완독하기가 무섭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적 초조함이라는 게 해소될 리 있겠냐만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시키고, 의미를 정립하고, 나름대로의 체계가 세워지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초조함이 생겨났다. 이 마음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했던 삶의 방향이 잡혔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독서의 결과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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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적 초조함을 이해합니다
뤄전위 지음, 최지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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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지적 초조함은 해결이 되었지만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가닥이 잡혀 오히려 더 초조해지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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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이덕무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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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덕무의 책만으로도 반가운데 정민 선생님이 옮기셨다니!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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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김개미 동시집
김개미 지음, 최미란 그림 / 토토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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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똥 냄새를 맡는 것도 싫고/똥 싸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누가 똥 싸냐고 떠드는 소리는 더 싫어./문밖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으면/나오던 똥도 도로 쏙 들어가.//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혼자 똥 싸는 게 좋아./수업 시간에 똥 싸는 게 좋아./눈치 안 보고/마음껏 똥 싸는 게 좋아.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시를 읽다가 너무 공감이 가서 큰 소리로 웃어 버렸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한 개라 유난히 쟁탈전이 심하다. 남편이 먼저 들어간 화장실도 싫고, 진지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수시로 문을 열어대는 것도,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도 싫다. 그래서 정말 웃지 못 할 일들이 많다. 오죽하면 심각하게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되냐는 말을 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땐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울어대는 통에 화장실 문을 열어놓는 건 기본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경쟁 상대(?)는 남편 뿐이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부터 경쟁 상대가 둘로 늘어났고, 서로 가겠다고 우겨(생리 현상이 조절이 안 되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없다)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화장실 가는 횟수를 체크하게 되어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먹고, 싸고, 먹고 싸고’가 되어버렸다. 정말 화장실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이상하게/선생님이 말을 시키면 부끄러워진다./특히 일어서서 말하라고 하면/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그렇다고 선생님이 질문할 때/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애들 모두 손을 드는데 혼자 안 들면/선생님이 꼭 나를 쳐다본다.//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모를 거다./선생님 앞에서 말하는 게 어떤 건지./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도 나는/대답할 말을 한참 생각한다. <대답>

나는 중학생 때까지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걸 너무 힘들어 했다. ‘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는 말에 공감을 넘어 심장이 내 귓가에서 뛰는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못 마주치고 다른 곳을 보며 겨우 발표를 마치고 들어오면 한참동안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왜 못했지?’라며 후회하곤 했다. 그러다 서서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부끄러움이 더 커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튀지 않고 군중에 묻혀 있고 싶은 마음, 발표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내연한 척 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른인 내게도 전해져 괜히 찡해졌다.

“이빨 닦았어?/안 닦았으면 얼른 닦아.”/“닦았어.”/“요게 누굴 속이려고?/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닦은 이를 또 닦는다./이러다 정말/이가 다 닳아 없어지겠다./내 이가 홀랑 다 없어지면/엄마가 내 말을 믿을까?//그럴 리가 없다./엄만,/내가 이가 하나도 없어도/이빨 닦으라고 할 거다. <잔소리 ①>

충치로 고생을 하진 않았지만 6년 동안 교정하면서 양치질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아이한테 자기 전에는 양치질을 꼭 하라고 한다. 내가 해보니 너무 귀찮고, 힘들다는 걸 알아서 아이한테 잔소리가 덜 해지는 편이다. 대신 아빠가 꼬박꼬박 하지만 치아도 어느 정도 타고 난다는 걸 알게 된 터라 좀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잔소리에 못 이겨 닦은 이를 또 닦으며 이빨이 홀랑 다 없어진다는 아이의 말에 어쩔 수 없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이가 하나도 없어진 다음에도 엄마가 이를 닦으라고 잔소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엄마의 잔소리도 들을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표현이 다르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을 때마다 시인의 시선은 정말 다름을 느낀다. 동시지만 쓰는 이는 어른(아이의 과정을 거쳐 왔더라도)인데 어쩜 이런 시선과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늘 경이롭다. 이 동시집을 읽으며 웃다가, 그리워하다, 씁쓸해하다, 행복한 마음을 모두 느꼈다. 또한 시심은 우리의 마음에도 충분히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게 서툴러 동시를 읽을 때 조금씩 들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치 이렇게 내 마음을 대신 드러낸 시들을 만나면 그저 즐겁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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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 높아진 자아, 하나님을 거부하다
팀 켈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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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민족 사랑과 애국심은 선한 것이었지만 잘못되었다. 그의 민족사랑은 편협함으로 변질되었고, 이스라엘이 국제적 권력 투쟁에서 이길 가망이 사라지자 그의 삶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273~274쪽


오늘 주일 예배 대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제대로 전하고 있다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기도의 바탕에는 나, 내 가족, 내 교회, 내 지역의 안락함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거란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나는 복음의 의미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런 마음 상태에서 만난 요나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둘째가 책에 관심을 한참 가질 때, 밤마다 어린이 성경 중에서도 요나 이야기를 가져와 매일 읽어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길이가 짧아 매일 읽다 보니 아예 외워버려서 어둠 속에서 아이에게 들려줄 때가 있었다. 큰 물고기가 등장해 요나를 삼키는 부분에서 아이는 가장 흥미로워했는데, 나 역시 요나의 이야기를 흥미 위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니느웨로 가기 싫었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바다에 던져지는 벌을 받고 결국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끌어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 싫어했던 이유가 잘못된 애국심과 민족 사랑이라는 해석 앞에서 내 안의 나름대로 쳐 놓았던 여러 가지의 벽들이 ‘퍽’ 하고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여 그들을 너그럽고 정의롭게 대하기를 원하신다. 48쪽

익히 알고 있듯이 앗수르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국이었다. ‘요나의 생애 내내 유대인들의 왕국을 계속해서 위협했’고,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과 사마리아를 침공하여 파괴’한다. 그런데 그런 곳으로 요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요나가 결국 도망치게 된 의문 즉,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앗수르와 같은 민족에게 그분의 자비를 경험할 일말의 가능성’을 주신 것일까? ‘가령, 1941년에 한 유대인 랍비가 베를린 거리에 서서 나치 독일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면 그는 얼마나 오래 목숨을 부지했을까?(25쪽)’만 생각해봐도 요나가 했던 고민에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했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배를 탔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요나보다 훌륭하게 처신하는 이교도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부터 종교, 민족을 떠나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그건 요나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비신자들에게 배울 것이 많음을 알고 모든 사람의 수고에 감사해야 한다. 요나는 이 사실을 어렵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59쪽

요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마지못해 하나님의 명령에 이끌려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인 줄 알았다. 그랬기에 박넝쿨 사건에서 하나님과 논쟁하는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 싫어서 엉뚱한 배를 타고 가다 폭풍을 만나고, 이교들이 요나보다 더 훌륭히 처신하고, 절대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은 그 사실을 요나를 비롯해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리고 복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며,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려야 한다. 때론 희생이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요나서를 깊이 마주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는 시간들이 참 감사했다.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다양하게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요나가 제비뽑기로 바다에 던져져야 할 사람으로 뽑혔을 때 뱃사람들이 물음에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라며 민족에 관한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다. 이에 저자는 ‘요나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믿음은 민족과 국적만큼 그의 정체성에 깊고 근본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던 모양(71쪽)’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와 다르면 타자화 시켜 지역, 교회, 소속으로 분류하고 나누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우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는 자신 안에서 길을 잃고 결점 많고 자격 없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흠모하는 분이 용납하시고 기뻐하시는 존재이다.(278쪽)’라고 했다. 지금껏 나만 그러하다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요나서를 읽으면서 단지 복음을 받아들이고의 차이일 뿐, 하나님에게 이 세상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구분 짓고 나누고 규정하는 모든 경계가 허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그게 요나서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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