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趙王得楚和氏璧秦昭王欲之請易以十五城趙王以問藺相如對曰秦以城求璧而王不許曲在我矣我與之璧而秦不與我城則曲在秦臣願奉璧而往使秦城不入臣請完璧而歸相如至秦秦王無意償趙城相如乃紿秦王復取璧遣使者懷歸趙而以身待命於秦秦王賢而弗誅禮而歸之趙王以相如爲上大夫

조나라의 화씨벽을 인상여가 지켜낸 이야기. 여기에서 완벽이란 단어가 나왔음

【壬午】三十六年秦王會趙王於河外澠池王與趙王飮酒酣秦王請趙王鼓瑟趙王鼓之藺相如復請秦王擊缶秦王不肯相如曰五步之內臣請得以頸血濺大王矣左右欲刃相如相如張目叱之左右皆靡王不豫爲一擊缶罷酒秦終不能有加於趙趙人亦盛爲之備秦不敢動
趙王歸國以藺相如爲上卿位在廉頗之右廉頗曰我見相如必辱之相如聞之每朝常稱病不欲爭列出而望見輒引車避匿其舍人皆以爲恥相如曰子視廉將軍孰與秦王曰不若相如曰夫以秦王之威而相如廷叱之辱其群臣相如雖駑獨畏廉將軍哉顧吾念之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徒以吾兩人在也今兩虎共鬪其勢不俱生吾所以爲此者先國家之急而後私讐也廉頗聞之肉袒負荊至門謝罪遂爲刎頸之交

조나라와 진나라의 만남에서 인상여의 계책으로 조나라의 체면을 세우다

조나라 재상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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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王封樂毅爲昌國君遂使留徇齊城之未下者齊王走莒楚使淖齒將兵救齊因爲齊相淖齒欲與燕分齊地乃遂弑王於鼓里

제나라 왕이 거 땅으로 도망가니 초나라가 요치라는 자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제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요치가 연나라와 함께 땅을 나누어 가지고자 하여 왕을 시해하였다.

○ 毅聞畫邑人王蠋賢令軍中環畫邑三十里無入使人請蠋蠋謝不往燕人曰不來吾且屠邑蠋曰忠臣不事二君烈女不更二夫齊王不用吾諫故退而耕於野國破君亡吾不能存而又欲劫之以兵吾與其不義而生不若死遂經其頸而死

악의는 왕촉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왕촉을 불러오게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오지 않았다. 연나라 사람이 마을을 망가뜨리겠다 위협하였으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법이다. 제왕이 내 간언을 따르지 않기에 퇴직하고 농사나 짓고 있었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군주가 망하여 군대로 자신을 위협하니, 의롭지 못하게 살기 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 하고는 자결하였다.

○ 燕師乘勝長驅齊城皆望風奔潰樂毅修整燕軍禁止侵掠求齊之逸民顯而禮之寬其賦斂除其暴令修其舊政齊民喜悅祀桓公管仲於郊表賢者之閭封王蠋之墓六月之間下齊七十餘城皆爲郡縣

연나라 군대가 승승장구하니 제나라 성에서는 그 기세만 보고도 무너져갔다. 악의는 연나라 군대를 정비하여 침탈을 금지하고 제나라에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어 예우하였으며, 부역과 세금을 관대하게 하고 가혹한 명령은 없애고 옛 정사를 닦으니 제나라 백성들이 기뻐했다. 환공과 관중을 교외에서 제사지내고 왕촉의 무덤 봉분을 만들어주면서 여섯 달 사이 제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켰다. 제나라 성을 치면서 그것을 아예 없애버리지 않고 그곳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돋보인다.

【戊寅】三十二年齊淖齒之亂王孫賈從湣王失王之處其母曰汝朝出而晩來則吾倚門而望汝暮出而不還則吾倚閭而望汝今事王王走汝不知其處汝尙何歸焉王孫賈乃攻淖齒殺之於是齊亡臣相與求齊王子法章立以爲齊王保莒城以拒燕

제나라 요치의 난에 왕손가가 왕을 수행하다 왕의 거동을 놓쳤는데 어머니가 ”왕의 거처를 모르니 네가 그러고도 어떻게 돌아오겠느냐?“ 하였다. 왕손가가 요치를 공격하여 죽이니 제나라에서 도망친 신하들이 왕의 아들 법장을 찾아서 끌고 와 제나라의 왕으로 삼고 거성을 지켜 연나라에 항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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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三十年齊湣王旣滅宋而驕乃南侵楚西侵三晉欲幷二周爲天子燕昭王日夜撫循其人乃與樂毅謀伐齊王悉起兵以樂毅爲上將軍幷將秦魏韓趙之兵以伐齊齊湣王悉國中之衆以拒之戰于濟西齊師大敗遂進軍齊人大亂失度湣王出走樂毅入臨淄取寶物祭器輸之於燕

제나라 민왕이 송나라를 멸한 뒤에 교만해져서 초나라를 침략하고 삼진(진->한,위,조)을 침략하고 이주를 병합하여 천자가 되고자 했거늘 연나라 소왕이 밤낮으로 자기 백성을 잘 보살펴 악의와 더불어 제나라를 정벌할 것을 도모했다. 연나라 왕이 모두 병사를 일으켜서 악의로 상장군을 삼고 진,위,한,조나라 군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치니 제나라 민왕이 백성과 함께 저항했다. 제서 지역에서 싸웠으나 제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마침내 민왕도 달아나 악의가 임치(제나라 수도)에 들어가서 제나라 보물을 취해서 연나라로 가져 갔다.

이주(二周) ->
보통은 일반적인 서주, 동주를 이야기함
주(周)나라 위열왕의 이전 왕인 고(考)왕의 자기 동생을 하남(河南) 땅에 공(公)으로 봉한다. 환->위->혜->무 이렇게 흘러가게 되는데 이를 서주로 이야기함.
혜공의 둘째 아들을 다른 땅에 또 공(公)으로 봉하는데 이를 동주로 이야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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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 - 하 - 전면개정판 춘추좌전
좌구명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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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 2권은 진초(晋楚)가 양분되는 과정, 오월(吳越)이 세력을 다투는 과정이 담겨 있다.

BC 551년부터 473년까지 1권(BC 722~BC552)보다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기를 다루는데 드라마틱한 사건은 더 많아서 흥미진진하다. 이는 춘추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춘추 시대 초기만 해도 열국 간 법도와 예의를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말기로 갈수록 작은 일로 원한을 갖고 이것이 복수로 귀결되는 과정이 잦아진다. 춘추 시대만 해도 제후들은 '왕'이라는 칭호를 칭할 수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스스로가 왕을 칭하는 제후들이 많아진다. 제후들은 등급도 나뉘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엄밀한 위계에 따라 행동해야 했으나 나중으로 가면 그런 경계도 허물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핵심적인 인물은 역시 오왕의 합려와 월왕의 구천이라 할 수 있다. 둘은 쌍벽을 이루었으나 결국 월왕 구천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열국들 중 승자가 되었는지 과정을 지켜보며 리더의 자격,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합려는 BC 515년 노 소공 27년, 주 경왕 5년에 주군을 시해하고 등극하였다. 오나라의 공자 광(합려)은 무장한 갑사들을 지하실에 숨겨두고 오왕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오왕은 호위병을 자신의 주변에 단단히 깔아 놓았지만 합려의 계략에는 미치지 못했다.

공자 광이 발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설제(오나라 당읍 사람)가 물고기 요리 속에 칼을 감추고 들어가 마침내 그 칼을 뽑아 오왕을 찔렀다. 그 순간 호위병들이 양쪽에서 그의 가슴을 피로 마구 찔러 그를 죽였으나 결국 이때 오왕도 시해되고 말았다. 이에 합려는 전설제의 아들을 경으로 삼았다.

오나라에 합려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주변 열국들은 긴장했고 변경 지역의 긴장은 더했을 것이다. 사실 합려가 등극하는 모습은 이 기술이 다라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이 때의 모습은 실제 어떠했을까? 실감나는 묘사로 접했다면 더 드라마틱했으리라. 이런 아쉬운 부분은 동주 열국지를 통해서 상세하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등극한 합려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오왕 합려가 서(徐)나라 사람을 시켜 공자 엄여를 잡게 하고, 종오 나라 사람을 시켜 공자 촉용을 체포하게 했다. 두 공자가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러자 초소왕이 이들을 이용해 오나라에 위해를 가하려 했다. 그러자 대부 자서가 이같이 간했다.
"오나라의 광(光)은 새로 나라를 차지하고서는 백성들과 매우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백성을 마치 자신의 자식같이 대하고, 백성들과 동고동락하고 있으니 이는 장차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나라의 변경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 그들을 유복(고분고분하게 복종함)하게 만들지라도 오히려 오나라가 쳐들어올까 두렵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원수를 강대하게 만들어 그들의 분노를 가중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강대해지기 시작해 중원의 여러 제후국과 견주게 되었고 군주인 광 또한 마음이 아주 넓어 스스로를 선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늘이 장차 그가 포학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그를 시켜 오나라를 멸망하게 하고 이성 나라의 영토를 넓히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끝내 오나라를 보우하려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결과를 알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잠시 우리의 귀신을 편히 쉬게 하고, 우리 백성들도 안정되게 만들면서 그 결과가 어찌될지 기다려 보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니 굳이 우리가 스스로 파양(힘들게 움직임)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초(楚)나라의 신포서가 진(秦)나라로 가 구원병을 청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나라는 봉시(덩치 큰 멧돼지)와 장사(큰 뱀)처럼 욕심을 부려 중원의 제후국들을 천식(병탄)하고 있으니 초나라가 가장 먼저 그 침해를 입었습니다. 과군이 하신을 시켜 급히 고하기를, '이덕무염(오랑캐 오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다)'하니 ..."

합려 자체의 인물됨은 오나라 안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나 다른 열국들 안에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왕위에 등극한 이후 지나친 욕심으로 열국들의 긴장을 높였던 탓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오나라는 월나라가 침입하고, 신포서가 이끄는 초에 패한(BC 505년) 이후 국력이 점차 쇠하게 된다. 합려에 뒤이어 부차가 월왕 구천을 항복(BC 494년)시키기도 했으나 그 기세는 반짝이었다.

월왕 구천의 등장은 묘하게도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을 때 나타난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다. 월왕 구천(允常의 아들)이 오나라 군사의 진군을 막으면서 취리(절강성 가흥현 남쪽)에 군진을 펼쳤다. 구천은 오나라의 군진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우려했다. 이에 사사(결사대)를 두 차례나 출동시켰으나 이들 모두 포로가 되었을 뿐 오나라의 군사에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죄인들을 3항으로 열을 짓게 한 뒤 각자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제히 이같이 외치게 했다.
"양국 군주가 교전하는 중에 우리는 기고(군령)를 어겨 두 번 다시 병사가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감히 형을 피할 수 없으니 감히 귀사(죽음으로써 죄를 구함)하고자 합니다." 이에 죄인들이 스스로 목을 베어 차례로 자진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이 광경을 주목하는 사이에 월나라 군사가 일제히 진공해 오나라 군사를 대파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공격을 받아 힘껏 싸웠고 합려는 이 때 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고 가던 중 숨을 거두고 만다. 이로써 구천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부차와 구천 간의 대결은 BC 473년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포위되어 자살하고 오나라가 멸망하며 비로소 막을 내린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용동(절강성 정해현 동쪽의 해도에 위치)에 거처할 것을 허용하자 오왕 부차가 이같이 사양했다.
"내가 이미 늙었는데 어찌 군주를 섬길 수 있겠소."
그러고는 곧 목을 매어 자진했다. 월나라 군사가 오왕 부차의 시신을 이끌고 귀국했다.

건조한 문체로 적힌 간략한 기술이다. 역시 이와 관련한 자세한 상황은 동주 열국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춘추좌전을 통해 춘추 시대의 역사를 만났다. 춘추좌전은 춘추 시대 열국의 명멸을 편년체 기술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특히 전쟁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할 때 거북점을 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었고 인의예지에 입각하여 사건과 인물을 평가한 기술도 특징적이었다. 또한 <시경>과 <서경> 등 과거의 고전이나 경전의 글귀를 인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해당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춘추 시대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확인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된다. 향후에도 참고서의 역할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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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1-20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기세가 읽으면서 오나라와 월나라의 스토리 읽었는데 지금 거의 다 까먹었어요.
그래도 이름들은 기억이 나네요~~
나름 인간의 처세술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뒷통수를 맞아 어쩔수 없는 운명의 슬픔 같은거도 느꼈어요^^

거리의화가 2023-01-23 22:23   좋아요 2 | URL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는 잊어버려도 인물들은 기억나는 게 어딥니까^^
춘추좌전 읽는데 어찌나 인간의 마음이 훅훅 변하는지~ㅋㅋ 작은 거에 토라지고 그걸로 인해 싸움이 나고 하는 걸 보면서 오늘날과 다를 바가 없구나 싶습니다^^

여울목 2023-01-21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사랑판은 한길사판과 비교해 조금 풀어썼던 기억이 있는데, 좀더 고풍스러운 한길사번역이 멋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정치의 요체를 알 수있으며, 공자가 시를 공부해야한다고 한 이유를 좌씨전을 읽고서야 알 수있었습니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봅니다. 물론 조괄이 병법책 읽듯이하면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서도요.
숙향,자산,안영과같은 인물 앞에서는 무능과 교활한 궤변을 일삼는 사람은 신랄할 비판을 받았을 겁니다.
특히 자산은 매우 훌륭한 정치가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건진행이 이해가지않는 경우도 있었는 데,아마도 자세한 사료가 없어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대표적으로 왜 기씨와 양설씨가 그 정도의 사건으로 멸문되었는지는 의문이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1-23 22:53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한길사 번역으로도 만나보고 싶네요^^* 저는 사실 번역본 비교할 시간은 없었고 집에 있는 걸로 바로 읽은 경우라서요^^

네. 정치인들 뿐 아니라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리더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지와 사람을 쓰는 용인술도 배울 점이 많아 보여요.

저도 참모 중에 자산이 인상깊었습니다. 좌전에서 특히 굉장히 많이 나오더군요. 사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관중 같은 경우보다 어쩌면 더 많이 출현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인의예지에 입각한 평가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상세하지 않은 부분은 아마도 사료가 부족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23-01-22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더의 자격과 정치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군요 역사에서는 배울 게 많겠지요 그런 걸 잘 못하지만... 역사 중요한데...


희선

거리의화가 2023-01-23 22:30   좋아요 1 | URL
네. 리더들이 꼭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네요. 과거의 리더들의 우여곡절이 여기에 다 나타나 있으니 말이죠^^
 

오왕 합려의 최후
범씨 가문의 가신 왕생과 장류삭
왕기과 염유
오자서
공자, 세상을 떠나다
백공 승의 난
월앙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다

구천은 오나라의 군진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우려했다. 이에 사사(死: 결사대)를 두 차례나 출동시켰으나 이들 모두 포로가 되었을 뿐 오나라의 군사에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죄인들을 3항으로 열을 짓게 한 뒤 각자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제히 이같이 외치게 했다.
"양국 군주가 교전하는 중에 우리는 기고(旗 : 군령)를 어겨 두 번 다시 병사가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감히 형을 피할 수 없으니 감히 귀사(死: 죽음으로써 伏罪함)하고자 합니다."
이에 죄인들이 스스로 목을 베어 차례로 자진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이 신기한 광경을 속(屬 : 주목하는 사이에 월나라 군사가 일제히 진공해 오나라 군사를대파했다. 이때 월나라 대부 영고부(浮)가 창으로 오왕 합려를 공격했다. 이에합려가 장지(將指: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게 되었는데 영고부는 합려의 신발 한짝을 노획했다. 이때 오왕 합려는 급히 퇴병하던 중 취리에서 7리 떨어진 오나라의 형(經)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 P433

"지금 우리 오나라는 유과나라만 못하고, 월나라는 오히려 소강 때보다 강대합니다. 만일 월나라가 장차 이보다 더욱 강대해지면 어찌 오나라의 환난이 되지 않겠습니까. 월왕 구천은 백성들을 애호하고 은혜 베풀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는 은덕을 베풀면서도 인심을 잃지 않고, 백성을 애호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세운 공을 말살하지 않습니다. 월나라는 본래 우리와 동양 :국토가 접해 있음)하여 누대에 걸친 구수(원수)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리하고도병탄하지 않고 그대로 보전시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고 원수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비록 후회한들 불가식이(不已: 우환을 제거할 길이 없음)일 것입니다. 희성의 나라인 오나라의 쇠망은 이미 손가락을 꼽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오나라는 이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도 적의 흥성을 조장하면서 패자가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는 반드시 성사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원이 물러나와 어떤 사람에게 이같이 말했다.
"월나라가 10년간 생취(生聚:백성을 양육하고 재물을 모음)하고, 10년간 교훈(敎訓:백성을 가르치고 훈련시킴)하면, 20년 뒤 우리 오나라 땅은 월나라에 의해 황량한 소택지로 변하고 말 것이다." - P439

이제 듣건대 오왕 부차는 한 번 출행하여 이틀 이상 숙박하게 되면 반드시 대사피지(臺池:커다란 정자와 연못을 뜻하는 말로 부차가 출행하면 늘 연못에 배를 띄워 놓고 했음을 지칭)를 갖추고, 단 하루의 숙박일지라도반드시 비장빈(妃嬪御:시침드는 여인의 총칭으로 ‘비장‘은 이들 중 귀한 자,
‘빈어‘는 천한 자를 지칭)들이 모신다고 하오. 또 1일지행(一日之行 : 당일치기 출행)일지라도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자 하여 반드시 완호(玩好:놀이 도구)를 휴대하고 진이(珍異: 귀한 물건)를 수집하여 오직 즐기는 데에만 힘을 쏟는다고 하오, 나아가 그는 백성들을 원수같이 대해 매일 백성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고하니 이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이 그칠 기미가 전혀 없소. 이리하면 그는 자신이 먼저자패(敗:스스로 패망함)하고 말 터인데 어찌 우리와 싸워 이길 수 있겠소." - P442

당초 범씨 가문의 가신 왕생(王生)은 같은 가신 장류식(張柳朔)을 미워했다. 이에 범소자(것을 청했다. 그러자 범소자가 왕생에게 이같이 물었다.
"그 사람은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
"사구불급공(私仇不及: 사적인 원한은 공적인 일에 해를 끼칠 수 없음)입니다.
좋아하면서도 그 잘못을 지나치지 않고, 미워하면서도 그 좋은 점을 버리지 않는장유삭을 백인의 지방 장관으로 보낼사길석)에게 - P454

것이 의(義)의 근본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그 의를 어기겠습니까."
범소자가 백인을 떠나 제나라로 가려고 하자 장유삭이 자신의 아들을 불러 이같이명했다.
"너는 주인을 따라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라. 나는 장차 여기를 사수할 것이다. 여기는 왕생이 나의 사절절조를 지켜 죽음을 위해 마련해 준 곳이다.
나는 나에 대한 그의 신임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고는 드디어 사길석을 위해 진나라 군사를 저지하다가 백인에서 전사했다. - P455

초소왕이 이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초나라 군사가 재패(再敗:노정공 4년에 백거의 전투에서 이미 오나라에게 한 차례 패한 적이 있음)하게 되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그렇다고 맹약을 버리고 원수를 피하는 것 또한 죽느니만못하다. 어차피 죽기는 매일반이니 원수와 싸우다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고는 곧 공자 신(申:기원전 571년에 죽은 공자 신과 별개의 인물임)에게 왕이 될 것을 명했다. 그러나 공자 신이 이를 사양했다. 초소왕이 또종실인 공자 결(結: 子期)에게 사왕이 될 것을 명했으나 그 또한 이를 거절했다.
초소왕은 다시 공자 계(啓 사왕이 될 것을 명했다. 결국 공자 계는 다)에게섯 번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이를 승낙했다. - P458

이 싸움에서 공위(爲: 공무인)는 폐동(은 전차를 타고 분전하다가 함께 전사했다. 이에 이들을 함께 출빈(出치소 또는 묘지로 옮김)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공자가 이같이 평했다.
"왕기는 능히 간과를 잡고 나라의 사직을 지켰으니 가히 무상(無자의 대신 성인의 장례로 장사 지냄)할만하다."
염유는 창을 들고 제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이로써 노나라 군사가 능히 제나라 군사를 공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공자가 이같이 평했다.
"염유의 행동은 참으로 의(義)에 합당하다." - P480

그러고는 곧 오왕 부차를 찾아가 이같이 간했다.
"월나라는 우리나라에게 심복(腹)의 질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접경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를 병탄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구천의 유(柔服: 유순하게 服함)은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니 월나라를 속히 도모하느니만 못합니다. 우리가 제나라를 쳐 승리를 거둘지라도 이는 석전(경작을 할수 없는 돌밭)을 얻는 것과 같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월나라를 없애 소택지로 만들지 않으면 오나라는 장차 망하고 말 것입니다." - P483

"민천(旻어진 하늘)이 부조(不吊 : 잘 대해주지 않음)하여 국로(國老: 국가원 - P510

로)를 은유(遺:잠시 세상에 더 머무르게 함)하게 하지 않도다. 그로 하여금 여일인(余一人)을 보위하게 하여 재위했는데 이제 여(余)는 경경(勞勞:고독하여 의지할 곳이 없음)히 재구(在근심으로 병에 걸림)하게 되었도다. 오호애재(嗚呼哀哉 : 아, 슬프도다), 니보(尼 : 공자)여, 무자율(無自律 : 스스로 통제할 바를모름)이로다."
이를 두고 자공이 이같이 평했다.
"군주는 아마도 노나라에서 선종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공자)의 말씀에 이르기를, ‘예시즉혼: 예를 잃으면 혼합해 짐), 명실즉건(庶: 명분을 잃으면 잘못을 저지르게 됨)‘이라고 했다. 실지(志 : 뜻을 잃음)하면 혼암해지고, 실소(所 : 신분을 잃음)하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살아 있을 때 중용치 못하고 죽은 뒤 뇌조사를 읽음)하니 이는 예가 아니다. 또한 조사( 전자가 쓰는 ‘여인‘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 군주는 예와 명분두 가지를 모두 잃은 셈이다." - P511

이때 오나라 군사가 초나라의 신(愼: 안휘성 영상현 서북쪽) 땅을 침공했다. 그러자 백공 승이 군사들을 이끌고 가 이들을 격퇴했다. 이에 백공 승은 혜왕(惠王: 초소왕의 아들 章)에게 병사들의 전비(戰備: 무장)를 해제치 않은 채 곧바로돌진해 오나라 군사를 모두 포로로 잡을 수 종묘에 바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초혜왕이 이를 허락하자 백공 승은 마침내 기회를 틈타 반기를 들고 말았다.
가을 7월, 백공 승이 자서와 자기를 조정에서 죽인 뒤 초혜왕을 협박했다. 이때 자서는 옷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죽었는데 자기는 반군에게 잡혀 죽기 전에 이같이 - P514

말했다.
"지난날 나는 용력(勇力)으로 군주를 섬겼다. 이제 죽는 마당에 불종(弗終: 有始無終으로 시작만 있고 끝이 없음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러고는 곧 예장(豫章:樟木으로 곧 녹나무)을 뽑아 반군들을 죽인 뒤 분전하다가 죽었다. 이때 석기가 백공 승에게 이같이 주장했다.
"창고를 불사르고 왕을 시해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백공 승이 이같이 반대했다.
"그리할 수는 없다. 시왕은 불상(不祥)이고, 분고(焚庫:부고를 불사름)하면무취(無: 비축한 물자가 없앱)하게 된다. 그리하면 장차 무엇으로 초나라를 지킬 것인가.‘
이에 석기가 반론을 제시했다.
"초나라를 차지해 백성을 다스리고, 공경히 신령을 받들면 가히 득상유취(得有聚:吉祥을 얻고 물자를 비축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을 걱정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백공 승은 이를 좇지 않았다. - P515

이때 제나라 사람이 전에 제평이 계수 한 데 반해 노애공이 단지 하배(下拜)만 한 사실을 책하여 이를
러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인지구(魯人之 : 노나라 사람의 잘못이라는 뜻으로 ‘‘는 ‘쌈’의 뜻을 지니고있어 ‘구‘로 읽는 것이 옳음)를 수년이 지나도 스스로 깨닫지 못해 우리로 하여금화를 못 참아 펄쩍 뛰게 만드네. 노나라는 오직 유서여 두 나라 사이에 커다란 근심만 조성하네." - P529

노애공 22년 여름 4월, 주은공(隱公)"이 제나라에서 월나라로 달아난 뒤 월나라 사람에게 이같이 호소했다.
"오나라가 무도하여 아비인 나를 억류하고 내 자식을 보위에 올려놓았소."
이에 월나라 사람이 주은공을 귀국하게 하자 이번에는 태자 혁(革)이 월나라로 달아났다.
겨울 11월 27일,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용동(雨東:절강성 정해현 동쪽의 海島에 위치)에 거처할 것을 허용하자 오왕 부차가이같이 사양했다.
"내가 이미 늙었는데 어찌 군주를 섬길 수 있겠소.‘
그러고는 곧 목을 매어 자진했다. 월나라 군사가 오왕 부차의 시신을 이끌고 귀국했다.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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