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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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보통 몇 번인가 부딪혀야 하는 어려운 상황 중 하나를 나는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딪혔을때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 P278~279
사람마다 인생에 몇 차례의 어려움과 곤란이 찾아온다. 부모님 사업의 실패, 사랑·친구 관계의 파괴, 지인의 죽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직장에서의 해고 등.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비슷한 어려움이더라도 처음, 다음, 그 다음...에 각각 다르게 대처하는 듯하다. 이는 본인의 경험에 따른 판단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 외부 매체 등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이전보다는 감정적으로 덜 아파했고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대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가 나이를 말해주듯 사람의 나이는 경험치를 쌓이게 한다. 그것은 똑같은 방식을 낳지 않고 대처한 방식에 따라 삶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것이 찬성과 반대처럼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면 선택이 쉽겠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다양하다면 오히려 나중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선택지는 더 늘어날테니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3권의 전반부는 화자의 꿈, 예술,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는 질베르트와의 사랑-이별이 주 테마다.

어느 날 집에 아버지 지인인 외교관 노르푸아 씨가 찾아온다. 나는 극장에서 하는 공연 「페드르」를 보러 가고 싶었다. 헌데 담당 의사가 모든 여행을 금지했고 당연하듯 부모님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에 대한 염려,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은 충동과 열망. 이 두 저울에서 그는 선뜻 선택을 내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결정 장애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노르푸아 씨가 구세주가 되었다.

저울 하나에는 ‘엄마를 슬프게 하고 샹젤리제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또 다른 저울에는 ‘장세니스트적인 창백함과 태양의 신화‘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낱말 자체가 내 정신 앞에서 점차로 모호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고 또 모든 힘을 잃었다. 나의 망설임은 점점 더 심한 고통이 되어 만일 지금 내가 극장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그건 단지 이 망설임을 중단하고 거기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P38

공연장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배우나 가수, 스탭들이 무대 뒤에서 정신없이 준비하는 모습. 나는 이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 속이 흥분으로 공기처럼 차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합창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도 경연이 있어서 대회에 참석했다. 몇 개월을 노력해 준비한 대회였다. 대기 전 무대 뒤 장막에서의 순간, 본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쏟아지던 조명의 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 감정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걱정, 불안, 두렵고 공포스러운데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은 흥분과 설레임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쁨은 커튼이 내려진 막 뒤에서 마치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까고 나오려 할 때처럼 어렴풋한 웅성거림을 식별하기 시작하면서 커졌고, 이윽고 그 웅성거림이 높아지면서 갑자기 우리 시선이 뚫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쪽에서는 우리가 잘 보이는 그 세계로부터, 마치 화성에서 온 신호만큼이나 그렇게도 감동적인 개막을 알리는 세 번의 위압적인 두드림 형태로 분명히 전해졌을 때 더욱 커졌다. - P43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할머니에게서 오페라글라스를 받아오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내 망막을 통과한 형상은 내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보는 모습은 실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인가. 화자는 어지러움 속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장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오페라글라스를 주셨다. 우리가 사물의 실재를 믿을 때 단지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 사물을 보여 주는 것과 그 사물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같지 않다. 확대경에서 내가 본 것은 더 이상 라 베르마가 아닌 그녀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페라글라스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어쩌면 내 눈이 받아들인 이미지는 거리감으로 축소되어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두 라 베르마 중 어느 것이 진짜였을까? - P47

우상과의 만남은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베르고트는 나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온화한 모습의 백발 시인을 상상했던 나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붉은 턱수염을 가진 그를 만나고 실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 안에 있던 베르고트 작품의 아름다움마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른다. 베르고트는 삶을 글로 옮기는 법을 아는 대가였던 반면 노르푸아 씨는 작가가 꿈인 나에게 이리 저리 훈수를 두며 일명 '명예를 얻거나 돈 되는 글쓰기'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해댄다. 노르푸아 씨는 그를 (때로 저속하며, 남에게 책처럼, 그것도 자신의 책이 아니라 지루한 책처럼 떠들어 대는 작자) 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베르고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작가는 아니라고 보인다. 삶을 반영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다.

부모님은 내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위대한 작가와 같은 살롱에서 보내고 있으니 내 재능에 가장 유리한 생활을 한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재능을 자신의 내부에서 만드는 일로부터 면제받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의사와 자주 시내에서 식사하는 것만으로(모든 건강 규칙을 무시하고 최악의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 P271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나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한 번도 소나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소나타에는 우리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삶보다 덜 환멸스러운 이 위대한 걸작은 처음부터 작품이 가진 최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 - P185

클래식 음악 작품 중 일명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몇 번 이상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그 작품이 내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면 그것이 추억처럼 박혀 버려 그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마성처럼. 이는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보고 어떻게 느낌이 딱 오겠는가. 작품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개인에게 걸작은 없다. 그렇다고 하니까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또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자체의 예술성을 이해하여 그것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 음악을 들을 때의 내 주변의 상황과 풍경이 그 음악 감상에 더 큰 감상을 불러일으켜 뇌리에 박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P227


질베르트는 스완 부부의 딸이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부모는 그 집안을 전체적으로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친구는 내가 원하는 친구와는 언제나 다른가보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를 좋아했다. 하지만 질베르트도 한 얼굴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분명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이 다 100%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어느 단면을 좋아할 뿐이다. 내가 질베르트에게 기대한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수호천사 같은 그런 얼굴이었을까.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는데 선만 갖고 있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질베르트가 외동딸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두 명의 질베르트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온 두 성질이 단순히 그녀 안에서 섞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두 성질이 서로 그녀를 가지려고 다투었고, 게다가 두 성질이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이 아닌데, 제3의 질베르트가 그동안 다른 두 질베르트의 희생물이 되는 고통에 시달렸음을 추측하게 하기 때문이다. - P247
이 두 질베르트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서 당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 P248

내가 바라보는 상대는 언제나 움직인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테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항시 변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멈춰 있지 않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린다. 어느 순간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를 스스로 접어갔지만. 어쩌면 사랑이나 감정으로 인한 아픔이나 고통보다는 주변의 상황이나 그런 것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을 때, 또는 그것으로 인해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때 슬픔은 더 가중되는 듯하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 P117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음 날 약속의 가능성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단념하는 사람들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가장 다정해 보이는 표현을 그 슬픔을 초래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말한다. - P326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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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7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실제 만나고 실망하다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을 보고 사람을 상상하면 실제와 다를 때가 더 많을 테니...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을 자꾸 보면 다른 생각이 들겠습니다 겉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떻다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음악이나 그림을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듣고 보는 것과 같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한가지 면만 있지 않군요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다 있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27 09:04   좋아요 2 | URL
너무 큰 기대로 기대치를 높인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면 마치 신화화되어서 그 실망감이 오히려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사진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유명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예술 장르든 작자와 작자가 펼치는 예술이 동일시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의 생각이 일부가 담기거나, 아니면 아예 안 담길 수도 있고...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7. 위 강숙 세가
8. 송 미자 세가
9. 진 세가

주공은 「자재梓材」라는 시를 지어 군자가 지켜야 할 법과 원칙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그에게 「강고康誥」, 「주고酒誥」, 「자재」라고 이름을 지어 가르쳐 주었다. 강숙이 봉국에 이르러 이러한 주공의 명을 잘 따랐으므로, 그곳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안정시키니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성왕이 어른이 되어 정사를 처리하게 되자, 강숙을 천거하여 주나라의 사구司憲사공의 다른 이름로 삼고, 위衛나라의 보배로운 제기祭器를 내려 주어 그에게 덕이 있음을 널리 알렸다. - P216

선공은 [제나라 여자를 얻어] 아들 수와 삭朔을 낳았으며,
좌공자左소로 하여금 그들을 보좌하게 했다. 태자 급의 어머니가죽자 선공의 정부인夫人은 삭과 함께 태자 급을 헐뜯고 미워했다.
선공은 스스로도 그가 태자의 아내될 여자를 빼앗은 일이 있은 후로 마음속으로 태자를 미워하여 그를 폐위하려고 했다. 그에 관한악평을 듣고 선공은 크게 노여워하여 태자 급을 제나라에 보냈다.
떠나보내면서 태자에게 백모(경대부가 제후에게 초빙되어 갈 때 몸에지니고 가는 일종의 신표)를 주고는 도적에게 백모를 들고 가는 자를 보거든 국경에서 그를 죽여 버리라고 일렀다. - P220

의공은 자리에 오르고 나서 학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음탕한 것을 즐기고 사치스러웠다.
의공 9년, 적나라가 위나라를 치자 의공은 군대를 일으켜 막으려하였으나 군사들 중 일부가 모반했다.
대신들이 말했다.
1964
"당신께서 학을 좋아하시니 학을 보내어 적나라를 치도록 명령하십시오."
적나라는 이에 마침내 쳐들어와서 의공을 죽였다. - P222

[군각] 21년, 진나라] 이세가 군각을 폐위하여 평민이 되게 하자 위나라의 제사가 끊어지게 되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세가」에 기재된 것들을 읽다가 선공의 태자가 부인 문제로주살되었고, 그의 동생 수가 죽음을 다투어 서로 양보하는 대목에이르렀는데, 이는 진나라 태자 신생申生이 여희驪姫의 과실을 거론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 모두가 아버지의 뜻을 심하게 손상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죽음에 이르렀으니찌 슬프지 아니한가! 어떤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죽이고, 형과동생이 서로 없애려 하니 이 또한 어찌된 일인가?" - P235

미자가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골육의 감정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 - P241

이에는 도의道義로 묶여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으면아들이 세 차례 간할 것이나,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그를 따라다니며 외치면 되지만, 신하된 자가 세 차례 간하여도 군주가 듣지 않는다면 신하는 그 도의상 떠나면 될 것이다."
이에 태사와 소사들이 미자에게 떠날 것을 권하니, 미자는 마침내떠나 버렸다.
주나라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여 은나라를 무너뜨리자, 미자는 종묘의 제기를 가지고 [무왕의] 군문軍門으로 가 윗옷을 벗고 손을 등뒤로 묶고는, 사람을 시켜] 왼쪽으로는 양을 끌도록 하고 오른쪽으로는 띠〔茅]를 쥐게 하고는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무왕의 앞으로나아가 아뢰었다. 이에 무왕은 미자를 즉시 풀어 주고 그의 작위를이전과 같이 회복시켜 주었다. - P242

무왕은 즉시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그를 신하로 대우하지는 않았다. 그 뒤 기자가 주왕을 조회하기 위하여 옛 은나라의도읍지를 지나가다가, 궁실이 훼손되어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자는 상심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고,
울먹이려니 아녀자들 같아서, 「맥」라는 시를 지어 노래했다.
그 시에서 말했다.
"보리 이삭은 점점 끝이 뾰족해지고, 벼와 기장은 싹이 올라 밝디밝구나. 저 교활한 아이가 나에게 친하게 대하지도 않네!"
여기서 말하는 교활한 아이는 주왕을 가리킨다. 은나라 백성들이듣고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 P249

가을,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면서 정나라를 구하려고 했다. 양공이싸우려 하자, 자어가 간하여 말했다.
"하늘이 상 왕조를 버린 지 오래되었으니 맞서서는 안 됩니다."
겨울 11월, 양공은 초나라 성왕과 홍수에서 싸움을 벌였다.
초나라 군사가 미처 강을 다 건너지 못하였을 때, 목이가 말했다.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그들이 아직 건너지 못했을 때 그들을 칩시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건너기는 했으나 전열을 - P256

갖추지 못했을 때, 목이가 다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공격하면 됩니다."
양공이 말했다.
"그들이 전열을 갖출 때까지 기다립시다."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나서야, 송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공격했다. 송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였고 양공은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모두 양공을 원망했다.
양공은 말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를 곤궁에 빠뜨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전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북을 두드리지 않는법이다.".
12자어가 말했다.
"전쟁이란 승리하는 것을 공으로 삼아야 하거늘, 어찌 일상적인말을 하십니까? 당신 말대로 하면 [틀림없이]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뿐이니, 또한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십니까?" - P257

"송나라 왕은 주왕이 했던 만행을 다시 저지르고 있으니, 죽이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제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나라 왕언이 왕의 자리에 오른지 사십칠 년 만에, 제나라 민왕은 위魏나라, 초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정벌하여 송나라 왕언을 죽이고 마침내 송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그 땅을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F태사공은 말한다.
"공자가 일컫기를 ‘미자는 [은나라 주왕을 떠났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언하다가 죽었으니, 은나라에는 어진 세 사람이 있었다.‘ 라고 했다. 『춘추』에서는 송나라의 내란은 선공이 태자를 자리에서 내쫓고 동생을 내세워 군주가 되게 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라가 편안함을 얻지 못한 것이 십 대나 된다고 풍자했다. 그러나 양공 때는 인의仁義를 닦아 맹주盟主가 되고자 했다. 그의 대부 - P264

大夫 정고보正考父는 그를 찬미하여, 설契, 탕湯, 고종高宗7 시대를거슬러 서술하였고, 은 왕조가 일어난 것을 바탕으로 「상송商頌」을지었다. 양공이 홍수에서 패하기는 하였으나, 군자들 중에 어떤 이는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당시 중원의 나라들이예의가 없는 것을 슬퍼하면서, 그를 기린 것은 송나라 양공에게는양보의 예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 P265

헌공은 몰래 여희에게 말했다.
"나는 태자를 폐하고 해제로 그를 대신하고자 한다."
여희가 흐느끼며 말했다.
"태자를 세운다는 것은 제후들 모두 이미 그것에 대해 알고 있으 - P278

며, 그는 여러 차례나 군대를 거느렸고 백성들이 그에게 의지하고있는데 어떻게 천첩 때문에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천첩은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여희가 태자를 추켜세우는 척하였으나 몰래 사람들로 하여금 태자를 비난하게 하여 자기 자식을 태자로 세우려고 한 것이었다.
[헌공] 21년, 여희가 태자에게 일러 말했다.
"군왕께서 꿈에 제강을 보았사온데 태자께서는 빨리 곡옥으로 가서 제사를 올리고 그 음식은 군왕께 보내시오."
태자는 이에 곡옥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 제강에게 제사지내고 제육祭肉제사 고기 헌공에게 바쳤다. 헌공은 이때 밖으로 사냥을 나갔으므로 제육을 궁중에 놓아 두었다. 여희는 사람을 시켜 고기 속에독을 넣었다. 이틀이 지나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주방장이 제육을 헌공에게 바쳤다. - P279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말했다.
"이 독약을 만든 사람은 여희이거늘 태자는 어찌하여 스스로 해명하는 말을 하지 않으십니까?"
태자가 말했다.
"우리의 군왕께서는 늙으셔서 여희가 아니면 잠도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도 달게 드시지 못하오. 만약에 그것을 해명하면 군왕께서 여희에게 노여워하실 테니,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일러 말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는 것이 괜찮겠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이 더러운 이름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도망친다면 그 누가 나를용납하겠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뿐이오." - P280

혜공 7년, 중이를 두려워하여 환관 이제로 하여금 장사들과 함께가서 중이를 죽이라고 했다. 중이는 이 소식을 듣고 조최 등과 의논하여 말했다.
"처음 내가 적나라로 달아났으나 적나라가 내가 일어나는 것을도와줄 거라 생각지 않았소. 다만 거리가 가까워 쉽게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잠시 머문 것이오. 이만하면 오래 머물렀으니 정녕 큰나라로 옮겨 가기를 원하오. 제나라 환공은 선한 일을 좋아하고 패왕이 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으며 제후들을 구휼하는 데 뜻이 있소. 지금 관중과 습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때 또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선비의 보좌를 얻고자 한다는데 [내] 어찌 가지 않겠는가?"
드디어 제나라로 떠났다. - P297

중이가 제나라에 머문 지 대략오 년이 흘렀다. 중이는 제나라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제나라를 떠날 마음이 없어졌다. 조최와 구범이 뽕나무 아래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상의하고 있는데, 제나라 여인의 시종이 뽕나무 위에서 그들의 계획을 듣고 그녀의 주인에게 알렸다. 그 여인은 시종을 죽이고 즉시 행동에 옮기기를 권했다.
중이가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 편안하고 즐거우면 누가 그 다른 것을 알려고 하겠소? 반드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니 떠날 수는 없소."
제나라 여인이 말했다.
"당신은 한 나라의 공자로서 곤궁하여 이곳에 오셨지만 저 몇 분의 선비들은 당신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당신께서는 빨리 나라로 돌아가서 수고로운 신하들에게 보답하지는 않고 여색만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저는 당신이 이 점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약 추구하는 바가 없다면 언제 공을 이루시겠습니까?" - P298

문공은 처음 귀국하여 즉위할 때,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거스를까 봐 평상복 차림으로 다녔고, 왕성王城에서진나라 목공을 만났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3월 기축일, 여성과 극예는 과연 배반하여 궁성을 불태웠으나, 문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문공의 호위병들이 그들과 싸웠다. 여성과극예 등이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려 하자 진나라 목공이 여성과 예등을 꾀어내어 황하 가에서 죽이고 진나라가 회복되어 문공은 귀국할 수 있었다. - P305

도공 주의 조부는 첩으로 진양공의 작은아들이라 왕의자리에 설 수 없어서 환숙이라고 불렀는데 환숙은 [양공에게]가장 총애를 받았다. 환숙이 혜백伯 담談을 낳았고, 담은 도공 주를 낳았다. 도공 주가 자리에 올랐을 때의 나이는 열넷이었다.
도공이 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임금의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주나라에서 난을 피하다가 객사하였소. 인도 스스로 진나라와는거리감이 있다고 생각되어 왕이 된다는 희망을 거의 갖지 않았소.
지금 대부들이 문공과 양공의 뜻을 잊지 않고 은혜롭게 환숙의 후예를 세웠으니 종묘와 대부들의 영령들에게 의지하여 진나라의 제사를 받들어 어찌 감히 조심하고 삼가지 않겠소? 대부들은 정녕 과인을 잘 보좌해 주시오!"
이에 신하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자 일곱 명을 내쫓고 옛 공을 닦으며 덕을 베풀고 문공이 나라 안으로 들어올 때의 공신들의 후손을거두었다. 가을에 정나라를 정벌했다. 정나라 군대가 패배하자, 〔애공은] 드디어 진나라까지 쳐들어갔다. - P334

[도공] 3년, 진나라가 제후들을 모이게 했다. 도공은 여러 신하에게 쓸 만한 인재를 물어보니 기혜자는 황양이며 진나라 헌후默侯의 후예가 해호解狐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혜와 원수지간이었다. 도공이 다시 〔인재를〕 물어보니 기혜는 자신의 아들 기오를 천거했다.
군자가 말했다. - P334

"기혜는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구나! 밖으로는 원수임을 숨기지 않고 추천하였고, 안으로는 자식임을 숨기지 않고 추천하였구나." - P335

[평공] 14년, 오나라 연릉계자가 [진나라] 사신으로 와 조문자,
한선자, 위헌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했다.
"진나라 정권은 결국 이 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평공] 19년, 제나라가 안영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가게 하여 숙향叔向과 이야기했다.
숙향이 말했다.
"진나라는 쇠락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군주는 세금을 무겁게하여 누대나 연못을 만들면서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개별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니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 P337

이때 진나라 정치는 모두 지백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진나라 애공은 그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할 수 없었다. 지백이 마침내범씨와 중항씨의 봉토를 차지하게 되어 [세력이] 가장 강성해졌다.
애공 4년, 조양자, 한강자, 위환자가 함께 지백을 죽이고 그의 봉토를 다 차지하였다. - P340

정공 2년, 위나라 무후, 한나라 애侯문후侯의 아들, 조나라경후敬侯열후烈侯의 아들가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정공은 강등되어 평민이 되었고 진나라는 제사가 끊어졌다.
태사공은 말한다.
"진나라 문공은 옛날에 현명한 군주로서 나라 밖으로 망명하여십구 년이나 지내면서 지극히 곤궁하였으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서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오히려 개자추를 잊어버리기도 하였으나 하물며 교만한 군주이겠는가? 영공은 이미 시해되었고 그녀의후예 성공과 경공은 엄격하였으며 여공에 이르러 매우 자비하여 대 - P341

부들이 모두 주살 당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도공 이후 [진나라는 나날이 쇠약해져 육경들이 권력을 휘둘렀다. 따라서 군주가 된 자가 그의 신하를 부리는 것은 정녕 쉽지 않구나!"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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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관심 없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까다롭지 않으며 그리 예리한 심판관노릇을 하지도 않는다. - P351

인간은 불행해지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
길을 건너면서 마차에 조심하기만 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듯 우리는 이 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부의 위험이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곳, 우리 내부로부터, 우리 마음으로부터 온다. - P353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 P354

어쩌면 당시 귀족 사회 여인들 틈에 섞인 레이디 이스라엘이라든가, 훗날 귀족 사회 여인들과 교제하게 된 스완 부인을 포함하는 이 특별 계층은 포부르생제르맹에 영합하는 처지였으므로 포부르생제르맹보다는열등했지만, 거기 속하지 않은 계층보다는 훨씬 신분이 높은중간 계층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계층은 이미 단순한 부자 세계로부터 벗어나, 여전히 부자이면서도 유연성이 있어어떤 목적이나 예술 사상을 추종하며 돈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시적으로 다듬으면서 미소 지을 줄 아는 계층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이런 계층은 적어도 당시와 똑같은형태나 똑같은 매력을 지닌 채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계층에 속했던 여인들은, 나이와 함께 거의 모두가 아름다움을 잃었으므로, 그 여인들이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이제는 잃은 셈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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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擊布時 爲流矢所中 行道疾甚 呂后迎良醫入見 上嫚罵之曰 吾以布衣 持三尺 取天下 此非天命乎 命乃在天 雖扁鵲何益 遂不使治疾 〈出本紀〉

○ 呂后問曰 陛下百歲後 蕭相國 旣死 誰令代之 上曰 曹參可 問其次 曰 王陵可 然少戇 陳平可以助之 陳平知有餘 然難獨任 周勃重厚少文 然安劉氏者 必勃也 可令爲太尉 呂后復問其次 上曰 此後 亦非乃所知也 〈出本紀〉

夏四月帝崩


고조가 병이 나서 여후가 훌륭한 의원을 들어와 보게 하였으나 거부했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 천명이 아니겠냐며 돌려 보냈다.
여후가 앞날에 대하여 고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상국의 역할은 조참이 하게 하고 왕륭은 우직하지만 진평이 도와주게 하기를, 주발이 유씨를 배신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으니 그 역할을 맡기게 하였다.
한 고조가 한을 세운지 12년 만에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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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부터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천천히 속도를 늦췄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정치, 경제, 역사, 예술계의 인사들이 우후죽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정신, 창조와 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그러면서 조선, 일본, 중국, 미국, 유럽 각국의 문화를 비교한다. 이들을 다 찾아보며 정리하는 것은 무리라 보여서 일단 리스트업만 해놓는다.


야나기 무네요시: 미술사학자
요시노 사쿠조: 정치인

나카노 시게하루: 프롤레타리아 시인
아카마쓰 가쓰마로: 정치인
나카무라야 소마 부부: 사업가
기노시타 나오에: 시인. 기독교 사회주의자


그런데 생각할수록 작가님은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전반적인 당시 정세를 알지 못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이다.

기분 나쁜 그 소리, 오렌지빛 안개 같은 빛을 발하는 발가숭이 전등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던 유치장 밖에서는 늘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었다. 어찌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유치장의 문은 육중하였고 열쇠 꾸러미의 소리도 육중하였다. 몇 밤을 잠자지 못하게 하며 취조하던 일인 형사의 얼굴, 십리 가다 한 오라기 오리 가다 한 오라기, 며칠을 면도하지 못했을 때 유황같이 누리끼한 안면에 돋아났었던 수염, 그 얼굴은 공포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피를 느낄 수 없는, - P281

벼랑과 같은 절망적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떤 순간, 그것은 꼭한 번이었었지만 그 얼굴을 불행의 표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가해자가 반드시 승리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인실에게 매우 중요한 심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의 학살을 목도하였던 유인실은 피해자가 갖는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저항의식을 불태웠다. 그것은 부러질 것만 같은 가파로움이었다. 가해자가 반드시 승리자는 아니다. 피해자의 체념, 피해자의 굴복이야말로 피해자의 패배로써 그들의 승리와는 관계없이 패배할 뿐이라는 사실, 적이 누구이든, 설령 적이 인간이 아닐지라도. - P282

"형님, 지는 말입니다, 지는요, 지는 말입니다. 후회 안 할 깁니다. 겁이사 나겠지마는요, 발 빼지는 않을 겁니다. 영호하고약조를 했인께요. 살인죄인으로 세상 끝내기 보담이야 애국자로 세상 끝내는 편이 안 낫겄십니까." 지애국자라 했을 때 한복의 얼굴에는 수줍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술 안 마시고는 못할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나는 빚을 갚는 기이 안 되겄십니까? 빚 안지고 살겄다 그기이지 평생의 소원인께요. 관수형님이 처음지보고 만주 가라 했을 직에는 원망스럽기도 했지요. 하지마는만주 가서 길상형님을 만나보고 그곳 사정을 보이, 야, 길상형님이 나를 깨우쳐준 기라요. 나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라 벗어라 그것은 니 잘못이 아니다・・・・・・. 남이사 머라 카든지 서럽어도 억울해도 이자 나는 기대고 떠받칠 기둥 하나를 잡은 기라요. 사람답게 살자…………. 나는 발 못 뺍니다. 나도 이 강산에 태어나서 소리칠 곤리(권리)가 있인께요. " - P312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일본의 권력구조가 파괴된다면 조선 독립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글쎄요. 그러나 어떤 정치 형태이든 조선을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가령 오가타 씨가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오가타 씨의 이상이 국리)를 저버릴 수 있을까요? 일본이 약해지든지 조선이 강해지든지 그 두 가지 이외 무엇이 있겠소." - P350

"난생처음 도방에 나오고 보이 해묵고 살 기이 있어야제요.
다리 밑에서 거적 깔고 문전걸식, 지난 일 말하믄 머하겠십니꺼 다 소앵이 없는 일이고 더럽운 세상 한탄한들 그것 다 소앵이 없지요. 왜놈이 철천지원수요. 인피를 써서 사람이지 삼강오륜도 모리는 짐승만도 못한 놈들, 품속에 땡전 한 푼 없어도나는 왜놈의 짐만은 안 집니더." 이지노인의 수염이 흔들렸다.
저녁을 끝낸 뒤 인실은 망연한 모습으로 벽에 기댄 채 땡전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안 진다는 노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오가타를 의식한 때문이겠지만 그 말은 심장을 헤집고들어오듯 아팠다. 대일본제국의 판사 검사 되어보겠다고 최고학부를 나와서 또 머리 싸매고 고문 패스를 목표하는 수재들은 차별이 자심한 식민지정책을 원망하며 영광의 길이 멀고 먼 것을 한탄하는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노인이 삼강오륜을 앞세우며 땡전 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지지 않는다…………. - P359

압에 시달리는 우리 민족을 동정한다는 것은 모순이에요. …
어차피 문화란 다소간에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처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힘이 없다 해서 걸핏하면 중국을 들먹이는데 그건 의도적인 악의지요.
또 일본은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구요. 한자의 경우도 그래요. 글자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자를 우대하기론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당신네들한테도 우리를 거쳐 중국 것이 들어갔고 또 우리 것도 가져갔다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다 모조사상(思想)도 성립이되겠네요.
야나기의 그릇된 관점 중에 옳은 것이 하나 있어요. 조선의 예술은 고유한 것이며 독특하다고 한 그 말은 옳아요.
- P370

"칼로써 힘을 빼고 황폐해진 정신으로,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없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즐겨 말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그게 진실이라면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는 있을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무력(無力)이 아니에요. 평화는 한의 대상이며 생명에의 지향이에요. 오늘날 결과가 어떠했든, 이건 악의 승리, 하지만 결정은 아닌 거예요." - P374

"언젠가 요시노 사쿠조[作]선생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지휘에 반항하는 조선인을 불령도배(不逞徒輩)로 비난하는 논리에 대해서 선생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그들의입장은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했는데, 그분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정당함을 지적한 것은 훌륭했어요. 우리에겐 자비나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시노선생은 귀한 양심이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에선 말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 영향을 받은 지식인도 적지 않았겠는데, 공산 - P379

주의를 논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일본 군국주의 자본주의의 밑깔개가 되어 신음하는 조선에 대하여 거의 어떤 소리도 없었으니까요. - P380

야나기는 참아라, 바위에 깔리어 빈사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참아라! 폭력과 살생은 어느 쪽이든 나쁘다, 아아 비운의 민족이여!
하며 슬퍼했지요. 조선에서는 또, 소위 지식의 반풍수들이, 지적 댄디스트, 그리고 민족개조론 따위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조선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한 마디로 치사해요. 골자를 얘기하자면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라, 야나기의 그런 관점의 저변에는 사대주의의 조선이란 의식이 짙게 깔려 있어요. 그는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 했거든요. …" - P380

"내 부친께서는 생각을 매우 잘못한 겁니다. 친일파란 합방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합방이 되고 나면 쓰레기로변하는 것을 몰랐다, 세계만방에 체면 세우기 위하여 조선왕실을 일본황족으로 하고 친일파에겐 작위를 주고 그것도 일종의체면용일 뿐,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뿐이지요. 다 써먹고 이제는 필요없게 된 밥버러지가 뭐 그리반갑겠소. 죽어 없어지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게요. 처량한 신세지요. 나의 부친은 매우 셈을 잘못한 겁니다. 작위를 받을 게 아니라 상놈으로 격하됐어야 옳았어요. 노역형(勞役刑)보다 금고형(禁鋼刑)이 가혹한 걸 몰랐지요. 대학을 나오면 뭣합니까?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데, 과거 조선문화에 대한 일본의콤플렉스는 그것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유산을많이 싸안고 있는 과거 지배층이 반가울 까닭이 있겠어요?" - P410

"나카노 시게하루도 있지요. 비내리는 시나가와역(品川驛)」말입니다.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승차한다, 그 시를 쓴 나카노 시게하루."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는 시인이면서 소설가, 평론가이며 나프[NAPE, 全日本無産者藝術團體協議)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은 조선의 독립과 독립운동에 대한 뜨거운 지지를 나타낸 시다. - P411

"그렇소. 일본에서 말이오. 야나기는 조선의 예술은 사대(事大)가 아니라고 웃기는 강변(辯)을 했는데 문화에서 사대로 일관해온 일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지금 불고 있는 새 바람, 흐르고 있는 실개천도 분주하게 들여오는 서구문화에 묻어서 온것 아니오. 박래품 선호사상의 일단에 불과한 거요." - P412

"최초의 공산당 결성에 참가했었던 아카마쓰경우는 군주제 폐지를 지령한 코민테른에 반발하여 민주주의 획득에 이의는 없으나 국체 변혁을 주장할 필연성은 없다, 하고 오히려 반공으로 선회했는데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의 한 면을 살필 수 있는 예가 되겠지요. 그러한 아카마쓰를 비난할 만큼 내게는, 사실 이념이 투철하지 않습니다. 아카마쓰의 경우 군주제 폐지 때문에 선회했다면 그는 애초부터 공산당에 참가할 필요가 없었고 그는 우익인 것입니다. 사회개혁을 하더라도 일본주의아래서 한다, 일본주의가 뭡니까? 그건 황도주의(皇道主義), 절대로 천황을 부인할 순 없지요." - P415

"소위 공산주의 독재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결코 국가주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저의 예상이지요. 어중이떠중이 그많은 급진파들이 조선독립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관심이 없다기보다 기득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카노시게하루 같은 사람은 드물지요. 나카노는 커뮤니스트지만 나는 그를 사이교의 흐름에다 묶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은 청정하고 진실되고 착한 것이며 슬픔은, 대상에 대한 슬픔은 휴머니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정신도 일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 P416

"일본인은 현세적입니다. 본시부터 유물론이지요. 그런 비정한 것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바로 감상이며 쾌락주의입니다. 참 아까 저질의감상 얘길 하다 말았지요? 음 그렇지요, 저질의 감상이 일본만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도의 차인데 그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가 그것은 매우중대한 일인 것 같아요. 진부한 얘깁니다만, 적절한 예가 될는지……… 어떤 사람이 나카무라야[中村屋]의 소마 부부를 찬 - P418

양하더군요. 그들의 국경을 넘은 세계주의를 말입니다. 그때나는 찬양하는 사람도 그랬었지만 소오마부부에 대해 일종의혐오감을 느꼈어요. 신파조의 냄새가 물씬 나더란 말입니다.
인도의 망명객 포스의 후원자들, 그들의 낯짝들을 보면 뻔한것이지요. 도야마 필두로 하여 오카와大川周明, 이누를
가이犬養毅], 그 밖의 누구누구 모사가에다 정상배, 거물 정객들 아닙니까? 기왕의 식민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대륙 진출의야심으로 눈에 핏발이 선 면면들이 인도의 독립운동가를 비호한다? 하긴 그들이야 내놓은 사람들이지요. 이득을 위해선 어떤 것이든 정당화하니까요. 국익은 어떠한 악덕을 행해도 정의(正義)라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을 따라 장구 치면서 엔야 완야 하는 소마 부부, 그래 그들의 행위가 세계주의며 인류애라그 말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혐오를 느끼지만 그들을 통해서본 저질의 감상과 그릇된 시각과 뭔가 접근해보려는 심각함이결여된 위선에 좌절을 느낍니다. 게다가 소마는 기노시타 나오에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으니 넌센스지요. 지순했던 것을 광대춤으로 펼쳐놓고 우롱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P419

화제의 소마 아이조[相馬愛藏]는 크림빵으로 유명해진 나카무라야의 주인이다. 노일전쟁 때 고토쿠 슈스이[秋水], 사카이]와 함께 비전론(非戰論)을 폈던 기노시타 나오에[木下尙江]는 기독교적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상가이자 소설가인데, 소마는 그 - P419

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며 유명한 빵가게인만큼명한 예술가들이 들락거려, 자연스럽게 살롱 비슷한 것을 형성하게 되고 소마 부부는 그들 예술가를 지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일본으로 망명한 인도의 독립투사 라스비봐리 포스는 추방령에 의해 관헌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는데 그를 숨겨주고 보호한 사람이 소마 부부였다. 오가타가 말했듯이 이 망명객을 후원한 정가의 거물들을 비추어 관헌으로부터 지켜준다는 행위에 연극적 요소가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소마 부부는 사랑하는 딸까지 포스에게 주면서 요란을 떨었고 소마의 처 요시는 남편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눈먼 러시아의망명 시인 앨센코를 자택에서 보호했던 것이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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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3-24 2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토지 읽으면서 놀랐어요 작가님의 방대한 역사지식과 그시대 국제정세에 훤한 점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도 많고요 토지 읽기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여요^^

그레이스 2023-03-24 23:03   좋아요 2 | URL
저두요!^^

거리의화가 2023-03-25 09:30   좋아요 2 | URL
앞에서도 느끼긴 했는데요. 14권은 정말 놀랄 노자였습니다. 시대적으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이 등장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복잡해진 탓도 있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 있으면 절대 작품 내에 녹여낼 수 없으니까요.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의 지식에 감탄합니다ㅠㅠ

희선 2023-03-25 0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 하나를 쓰려고 박경리 님이 많은 자료를 찾아봤겠습니다 일본 정치 경제 역사 예술까지... 저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때 한국 일만 나오는 건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25 09:31   좋아요 1 | URL
네. 당연히 자료 조사도 많이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인물의 감정 묘사도 놀랍지만 이런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을 잘 녹여내신 부분이 놀랍네요.
희선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독서괭 2023-03-25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머리에 쥐가 나고 정리까지 하시다니 역시 화가님! 저는 운전하며 듣다가 이런 내용만 나오면 자꾸 딴 생각하게 되어 ㅋㅋㅋㅋ 역사공부는 거의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흘려듣기라도 하니까..?? 박경리 선생님 대단하다는 건 알겠고요 ㅋㅋ

거리의화가 2023-03-25 09:34   좋아요 2 | URL
ㅎㅎㅎ 이렇게라도 정리 안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어쨌든 기록은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저 인물들 조사 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한국어 자료로 된 것을 찾는 일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ㅋㅋㅋ 운전하면서 이 내용 들으실 때 힘드셨을 것 같아요. 흘려들어도 괜찮습니다. 스토리만 대충 알아먹으면 되지요~ㅋㅋ 저도 거의 다 들어갑니다. 14권 막바지 남아 있어요! 괭님도 남은 권들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3-03-25 10:01   좋아요 2 | URL
화이팅~ 몇년도 이야기까지 나오는 건지 궁금해요. 일부러 안 찾아보고 있어요ㅋ

새파랑 2023-03-25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도대체 몇권짜리 책인가요? ㅋ 역시 꾸준한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3-25 11:31   좋아요 3 | URL
ㅎㅎ 20권입니다 새파랑님ㅋㅋ 요즘 자주 안 보이셔서 슬픕니다ㅠㅠ 바쁘더라도 건강 잘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