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출산을 했다가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는다. 서희에게 유일하게 버팀목이 되었던 어른인 수동이가 죽으면서 서희는 나무를 잃는다. 삼수는 두리를 강간하고 삼월을 폭행하는 몹쓸 짓을 하고 김훈장은 조준구와 노선을 달리 하며 갈라선다. 조준구는 자신을 위협하던 세력들을 모조리 제거한다. 삼수는 마을 사람들을 배신하며 조준구에 빌붙었지만 그는 이제 삼수가 더 이상 불필요하고 귀찮은 이로 간주될 뿐이다. 결국 삼수도 조준구에 입김에 의해 죽는다. 봉순이와 길상이가 안타까웠는데 둘은 다툼 이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조선땅을 버리고 간도로 이동하게 된 평사리 사람들. 조준구 부부만 잘 먹고 잘 사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4권의 역사적 배경은 러일전쟁, 한일의정서와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 고종의 강제 퇴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한 경제 침탈, 군대 해산에 이은 전국적인 의병 봉기이다.
이 중 토지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장면은 의병 봉기다. 이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한 국내 토지와 자본의 침탈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의 기반 산업은 농업이었고 농민이 대부분이었다. 농민이 토지를 뺏기는 것은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어찌 두고 보겠는가.
최참판 댁의 살림은 이미 조준구 부부가 차지하였고 그 밑에 있던 하인들은 부부의 입김에 따라 모두 쫓겨나거나 토지를 빼앗기고 만다. 이에 김훈장을 위시하여 이동진, 용이, 길상이 등은 분연히 들고 일어나지만 계란이 바위 치기라고 결과는 뒤집을 수 없었다. 조준구는 친일 관리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모두 제거한다. 악한 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잘만 사는 세상. 지금도 이는 바뀌지가 않는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서울 가보니 여간 긴박한 상태가 아니었더란 말이오."
"대관절 싸움은 누가 한다는 거요."
"누가 하기는요? 아, 그것도 짐작이 안 가시오? 아라사하고 일본이지 누구긴.
김생원께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그도 전라도 조그마한 고을에서 발단된 민란이 오늘날 일본과 아라사의 싸움 원인(遠因)이다. (...) 아무리 일본이 전승국이라고는 하나 대국 아라사와 불란서 독일의 삼국을 상대하여 이길 재간이 있었겠소? 문명이 앞서 있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그네들을 말이오. 게다가 영국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부지리나 얻을까 싶어 관망하는 상태였으니 일본으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요동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때부터 일본은 아라사에 대해서 보복의 칼을 갈았던 게지요. 참으로 나라와 나라의 다툼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이 다투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성싶소. " - P36~38
"수구파다 개화파다 쌈질이나 했지 나라 생각을 했던가요? 한심한 일이외다. 김생원께서도 이거 실례의 말씀인지 모르겠소만 상투 자르고 양복 입는 것만 대역이요 불효막심한 이라고 할 게 아니라, 또 양이니 왜구니 하고 유아독존의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조선땅의 수백 배나 넓은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그것을 아셔야 한다 그 말이오." - P39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다. 러일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배경을 살펴보자. 일본인들이 전보국과 우체사를 점탈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러시아와 내통하여 군사 기밀을 누설할까 싶어 두 기관을 점령한 것이다. 청국에서 의화단 사건이 발생한 뒤 러시아가 만주를 차지한다. 이에 영국 미국 독일이 청나라에 영토를 할양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일본은 여기에 보조를 맞추면서 반러시아 전선을 구축하며 1902년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다. 러시아는 1902년 4월 8일 만주를 청나라에 반환하고 군대를 철수시킨다는 내용으로 청국과 협정을 맺었으나 러시아는 남하하면서 만주에 대한 독점권과 몽고에 대한 간섭권을 의미하는 새 요구를 청에 제시한 것이다. 러시아의 의지는 일본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왔고 이는 전쟁의 불씨가 된다.


2월 8일<음력 12월 23일이다> 일본군 6천 명이 남양(南陽) 해안에 상륙했으며, 3천 명이 또 옥구(沃溝) 군산항으로 상륙하여 아산(牙山) 백석포를 향해 나아갔다. 또한 삼화(三和) 증남포항으로도 상륙했으며, 6천 명이 또 덕원(德源) 원산항에 상륙했다. 일본군은 부산 창원 대구 세 곳의 전보사(電報司)를 점거했다.
일본 외무 대신 고무라 주타로가 각국 공사 및 내외국 신문기자들에게 일본과 러시아가 교섭한 전말[日俄交涉始末]을 발표했다.『대한계년사 7권』 - P25
러시아 2등 순양함 와리야크호와 포함 코리에츠가 며칠 전 인천항에 와서 정박했다. 2월 8일 일본 군함 10여 척도 역시 팔미도에 도착해 정박했다.
2월 9일 인천항의 일본 영사가 러시아 군함에게 물러가라고 타이르기를, "거절한다면 오늘 오후 4시 이전에 물위에서 공격을 당할 것이다" 했다. 오전 7시쯤 일본 함대사령관이 러시아 군함에게 말하기를, "오후 4시 전까지는 인천항에서 물러가라" 하니, 러시아 함장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당장 팔미도 밖 해양으로 물러나가 전투를 벌이자" 했다. 러시아 포함이 먼저 닻을 거두어 올리고 순양함이 뒤이어 닾을 거둬 올려 출항했다. 오전 11시쯤 겨우 팔미도 밖으로 몇 리쯤 나갔는데, 한 발의 포 쏘는 소리가 쾅하고 굉음을 울리며 진동했다. 일본과 러시아 군함에서 나오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가득 덮쳤다. 『대한계년사 7권』 - P25~26
같은 날 인천항 주재 러시아 영사가 인력거를 타고서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 왔다. 이날 오후 4시 일본 군함이 여순(旅順) 항구를 습격하여, 러시아 전투함 두 척과 2등 순양함 한 척을 격파했다. 2월 10일<음력 12월 25일이다> 일본이 전쟁을 알리는 황제의 지시를 내렸다. 『대한계년사 7권』 - P27


"뭐라구요? 우리나라가 왜국하고 공수동맹(功守同盟)하기로 의정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말씀이오?"
어느 날 서울 소식을 말해주는 조준구를 보고 그가 도장을 찍은 당사자이기나 하듯 김훈장은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
"일본군이 제물포에 상륙하자 아라사 공사인 파블로프는 창황히 달아나고 장안을 활보하는 것은 무장한 일본 병정이니 무슨 수로 대적하겠소. 아닌 게 아니라 서울에선 그 의정서 까닭으로 민심이 소란해졌다 하더구먼요. 이지용대감댁(외무대신 서리)에 폭탄을 던진 사건도 있었다 하오."
그러나 사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친로파의 거두 이용익(李容翊)을 잡아 일본으로 데려갔다 하고 아마 살해되었으리라는 풍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특파대신(特波大臣)으로 내한하면서 일본에 아부하는 세력이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며 일군들이 주둔함으로써 넓은 땅이 군용지로 징발되고 통신망도 접수된 것은 이미 체결된 의정서에 의한 것이거니와 심지어는 군사행동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연해 어업권이며 전국에 흩어진 황무지의 개간 권리까지 일본 수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전황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九連城) 봉황성(鳳凰城)을 함락시켰고 여순항(旅順港)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 P46~48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이 일본의 강제로 인해 한일의정서를 맺게 된다. 전문 6조로, 일본으로 하여금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의 보증, 시설의 개선에 관한 권고 등을 비롯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고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등의 조건이 들어가 있다. 이 중 4조의 내용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일본이 나아갈 길에 조선이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친선과 우의를 강조하나 이것이 어딜 봐서 친선국에 대한 행세인가? 조약을 빙자한 침탈이 아닐 수 없다.


제1조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오래도록 변함 없는 친교를 유지하고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를 확신하여 시정 개선에 관한 충고를 받아들인다.
제2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확실한 친선과 우의로써, 대한제국 황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한다.
제3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확실히 보증한다.
제4조 제3국의 침해나 혹은 내란을 당하여,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전에 위험이 생길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형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제국 정부는 위의 대일본제국 정부의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편의를 제공한다. 대일본제국 정부는 앞 사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형편에 따라 수용할 수 있다.
제5조 대한제국 정부와 대일본제국 정부는 서로 간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는, 앞으로 본 협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협약을 제3국 간에 맺을 수 없다.
제6조 본 협약에 관련되는 미비한 세부 조항은 대일본제국 대표자와 대한제국 외부 대신간에 형편에 따라서 협의해 결정한다. 『대한계년사 7권』 - P45


"듣자니까 민대감[閔泳煥]이 자결하셨다 하지 않소."
"어디 민대감뿐이겠소. "
"조병세 대감께서도."
"팔십 노구를 이끌고 가평서 올라와 정청(庭請)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쫓겨났다 하오. 그래 가마 속에서 음독 자결하신 모양이오. 홍만식 참판도 자결하고, 자결할 사람이 앞으로도 속출할 것이오.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는 둥."
"찢어 죽일 놈들! 노약에 도장을 찍은 다섯 놈들을 밟아 죽여야 하오!"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지요. 일본은 오조약에 도장을 찍은 그 사람들 아니라도 얼마든지 오적(五賊)을 만들어낼 거요."
"세상에 협박 공갈하는 보호조약도 있답디까?" - P187~189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천황의 특사로 서울에 왔다. 그는 천황의 칙서를 들고 왔는데 거기엔 동양의 평화라느니 조선의 안전이라느니 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또 두 나라는 친선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일본은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말도 들어 있었다. 고종은 이를 읽고 치를 떨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토는 며칠 뒤 한일협상조약을 내밀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일본에서 이를 대신하며 외교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일본인 통감(統監)을 둔다는 것이었다. 그 조항이 다섯 가지여서 을사5조약이라고 부른다. 고종은 이토의 강압을 뿌리치고 서명을 거부했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9권』 - P164~165




11월 9일<음력 10월 13일이다> 일본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로 들어왔다. 11월 10일 황제를 만나 뵙고 일본의 국서를 삼가 바쳤다. 그 글에 이르기를, "나는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사를 특파했으니, 한결같이 대사의 지휘를 따라 조처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또 말하기를, "국가의 방비는 내가 튼튼히 할 것이요, 황실의 안녕도 보증한다." 했다. 나는 지금 천황 폐하의 명령을 받들고 와서, 귀국과 네 가지 큰 안건의 조약 문서를 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고, 드디어 그것을 내보였다. "하나, 황실을 안녕히 할 일. 둘, 한국의 외교권을 도쿄로 옮길 일. 셋, 한국을 통감부 아래에 둘 일. 넷, 통상조약은 예전대로 할 일."

'5조약'이 조인되었다는 말이 전파되어 나가자, 신사(紳士)와 인민 남녀 노소가 모두 매우 분격하여 치를 떨었다. 한숨을 쉬는 사람들과 길게 목놓아 통곡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대한계년사 7권』 - P133~170


을사조약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조선은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조선은 외국에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천황의 조서를 전달하며 고압적 자세를 유지하였고 일본은 동양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아갔다.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나서 백성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료들이 울분에 차 자결하는 일이 일어났다.

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은 일본제국으로 넘어갔고 새로운 실권자를 추종하는 새로운 세력군이 형성되는 혼돈 속에 권력과 동반하게 마련인 경제의 유동, 그 중에서도 후일 대다수의 농민들이 피땀에 전 땅을 버리고 남부여대 기약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한 악명 높은 착취기관 동양척식회사 설립의 소지는 다져지고 있었다.
이런 내세에서 고고하게 현실에서 몸을 사리던 선비들이 그러나 강의(剛毅)하게 일어선 항쟁은 물거품이었고 1907년에 들어서서 헤아밀사사건(海牙密使事件)으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던 고종이 그나마 퇴위하는 비극과 훈련원에서의 조선 군대의 해산은 빈사의 목숨에 마지막 칼질이었다. 그로 인하여 참령 박승환(朴勝煥)은 자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기고를 부수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인들은 남대문에서 일군과의 처참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 서울로 일 갔었던 윤보가 뛰어들었던 것이다. - P338

1907년 7월 31일 이완용은 임금의 조칙을 날조해 군대 해산을 지시했다. 연성학교와 군악대까지 해산하도록 하고 시위대 1개 대대만 남겨 두었다. 서울에는 삼엄한 계엄이 펼쳐진 가운데 각 대장에게 8월 1일 오전 10시 맨손으로 군사 연습을 할 터이니 무기를 휴대하지 말고 모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군인들이 병영을 떠나자 일본 군인들이 일본군 조교의 안내로 무기를 거두어 갔다. 시위대 제1대대장 박성환은 사태를 짐작하고 무기고에 굳게 자물쇠를 채우고는 무기를 일본 교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훈련원에 가지 않고 남아 있다가 군대 해산식이 있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통곡을 하며 "나라가 망했다"고 외치면서 칼로 배를 찔러 자결했다. 이를 본 부하 장교 두 사람과 군졸 한 사람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자결했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9권』 - P184~185


1908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를 설립해 토지를 침탈하고 관리에 나서도록 했다. 말이 주식회사이지 실제로는 통감부의 지원을 받으며 반관(半官)의 역할을 맡았다. 이 회사는 서울에 본점을 두고 도쿄와 지방에 지점을 두었다. 설립 초기 전국에 10개의 지점을 두고 통감부에서 약탈한 국유지를 인계받아 관리했다. 이들 토지는 주로 일본인에게 불하했다. 1909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한 토지는 1만 2,064정보였다. 그러면 왜 도쿄에도 지점을 두었을까? 바로 일본인 농업이민을 주선하기 위한 공작이었다. 자본이 있거나 수완이 좋은 일본 농부는 농장주가 되어 많은 논밭을 가지고 조선인 노동자를 두고 농사를 짓거나 소작을 주어 소작료를 챙겼다. 이 무렵 일본인 농장주가 차지한 토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보다 많은 3만여 정보를 헤아렸다. 일본 자본가들과 농장주들은 땅을 사서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9권』 - P189

항일투쟁은 을사조약을 거친 뒤 고종의 양위, 정미7조약, 군대해산, 토지 탈취 등의 사건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고양되었다. 관동, 호서, 영남지방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서울 동쪽 여러 고을에서도 일시에 호응했다. 왜인들이 연달아 정병을 뽑아 토벌하게 했으나 지리에 어두워 진격하고 후퇴할 적에 길을 잃었다. 의병들은 천리에 연이어 험한 산세를 의지해 나오고 사라졌기 때문에 왜군들은 피로에 지쳐 패전을 거듭했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9권』 - P203
일본 토벌대와 현지의 수비대들은 의병들에게 패전을 거듭하자 무고한 민간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세가와 일본군 사령관은 "비도들과 연계해 도와 주는 고을은 불태워 버리고 온 동리 사람을 죽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1907년 8월부터 12월까지 다섯 달 동안 충청북도에서는 민가 1,078호, 경기도에서는 769호가 불탔으며 제천, 홍천 등지는 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지경으로 마을이 잿더미로 변했다 한다. 이렇게 일본군 토벌대가 포악해지자 주민들은 일본군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으면 모조리 산 속으로 숨었으며 토벌대의 신문을 받은 동네 아낙네들과 주막집 노파는 벌벌 떨며 거짓말을 보태 일러바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세가와는 토벌대를 증강하고 농촌에 수비대와 헌병분견소를 증설했으며 남해 일대에는 수뢰정, 경비정을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의병들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더욱 강력하게 펴서 마을을 고립시켰다. 이것이 남조선 대토벌작전의 전초였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9권』 - P205

고종은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시도를 했다가 일본의 입김에 의하여 강제 퇴위를 당하고 이후 정미 7조약, 군대 해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한 토지 침탈이 이루어지며 국내 정치, 경제를 잠식해갔다. 이에 유생을 비롯한 농민들은 의병을 일으켰으며 서울에서 시작된 것이 전국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일본은 초반에 의병의 세력들을 물리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의병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행위로 일본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제 일본군은 조선 의병들을 해치우지 않고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남조선 대토벌작전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4권을 마지막으로 평사리에 있었던 최참판댁 식구들은 조선 땅을 버리고 모두 간도로 이동하게 된다. 외국에서의 삶이 어찌 쉬울까. 안 봐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의 행적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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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9-30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께서는 워낙 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셔서 토지를 읽으며 그 배경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역사가 숨가쁘게 흐르고 거기에 따른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 보여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30 17:28   좋아요 2 | URL
토지 읽으면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역시 더 재밌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개항기 이후 강제병합 직전까지의 역사가 워낙 역동적이어서 소설 속에서도 많은 사건들이 다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 백성의 삶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죠.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은 이, 돈 많은 지주만 승승장구하는 세상이 되니 안타깝죠.

mini74 2022-10-02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 읽으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그 시절 역사적 사건을 양반 민초 등 다양한 인물들의 대사와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화가님이 역사와 이야기를 오고가며 이렇게 리뷰 써 주시니 좋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0-02 21:19   좋아요 1 | URL
저는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심리를 분석하고 이런 것은 영 안 되고 그래서 마침 역사 소설이라 관련 역사와 접목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정성을 알아주셔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적어나가려구요^^
 


귀녀에게 진심이었던 이는 강포수 뿐이었으나 그녀는 죽기 전까지도 그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만 해댄다. 그러다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강포수에게 미안함을 전하는데 그 장면이 왜 그리 짠하던지. 강포수가 귀녀에게서 종국에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 귀복이와 한복이, 홍이 등이 그랬다. 부모의 잘못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으나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고향에 돌아온 이들. 이 중 한복이는 참 잘 크고 있구나 싶었다. 어찌나 생각이 바른지. 부모가 다 죽고서도 그리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역병과 흉년으로 많은 이들이 죽는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겠나. 하지만 내가 어려우면 주변을 배척하기 쉽다. 그걸 보듬고 함께 가는 이가 대단한 것이겠지. 마을의 인심이 사나워지고 흉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틈타 삼수 같은 놈은 지 살길 때문에 은혜를 베풀었던 이들을 배반하고 뒤통수를 친다. 어찌 보면 줄타기를 잘하는 처세에 능한 것이겠지만 같은 인간이라는 게 나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 홍씨가 등장한다. 조준구의 본처답구나. 쓰레기 옆에는 쓰레기가~? 하는 생각을 절로 했다. 무너진 최씨 집안을 어떻게든 꿰차겠다는 부부의 행태는 똥물을 튀겨도 시원치 않은 일이었다. 삼수와 조가 부부가 등장할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3권의 역사적 배경은 외국 열강에 하나 둘 이권을 뺏기는 조선의 상황이 드러난다. 거기에 서재필, 어윤중, 이용익, 이범윤 등의 인물을 통해 당시의 조선 내외의 혼란상을 엿볼 수 있다.

'각처에 왜인들 은행이라는 게 생겨서 한전(韓錢) 어음까지 떼는 판국이니 장차 어찌될지.... 노상 하는 말이오만 큰일이외다.'
'지각 없는 사람들은 서울 제물포 사이에 나는 듯한 철마가 달리고 종로 네거리에는 전등불이 휘황하며 한강에는 철교를 놓았다 하여 신기해들 하는 모양인데 그런 것을 우리네가 만들고 우리네 임의로 한다면야 반가운 일이지요. 우리들도 남들만큼 나라 사정이 달라져야 할 테니 말이오. 헌데 그 내막을 알고 보면 가슴을 칠 일이고 숫제 쓸개를 뽑아서 갖다 바친 꼴이지 뭐겠소? 듣자니 서울 제물포 간의 철도만 하더라도 그 권리를 얻기 위하여 미국인이 임금 관계 대신에게 막대한 금액을 헌납했다는구려. 나라에서 그네들에게 철도를 부설하는 땅을 빌려주었으면 정당한 임대료와 권리금을 떳떳하게 받아야 하거늘 상호 간의 약정서의 내용이라는 게 실로 해괴하다 하오. 또 하나 해괴한 일은 그 권리마저 이문을 붙여서 미국인이 왜인들에게 팔아넘겼고 왜인들이 그것을 성사했다 하지 않소?'
'어디 그뿐이겠소. 도처에서 우리 금광을 파헤쳐서 각 나라들이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 하오. 허가도 없이 마구 덤벼서 도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오. 산의 나무들도 저희들 마음대로 베어 팔고 바다의 고기도 저희 마음대로 잡아가고 삼포(蔘圃)를 강점하는가 하면 조선옷 입은 왜인이 작당하여 수 년을 정성 들여 키운 삼을 모조리 뽑아가고 백성들 재물까지 약탈함이 다반사요.' - P60~62


1876년 개항 이후 1894년 사이에도 열강의 경제 침탈이 있었지만 1895년 이후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열강들은 수출을 통해 이득을 얻기보다 이권을 앗아가는 일에 더 역점을 두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그들이었다. 이권을 차지한 나라들은 이권을 철저히 확보한 뒤 온갖 특권을 누렸다. 








주요한 이권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일본
1898년 서울-부산 사이 철도 부설권
1900년 직산금광 채굴권
1900년 경기도 연해 어업권
1901년 인삼 독점적 수출권
1903년 평양 무연탄 채굴권
  • 미국
1895년 운산금광 채굴권
1896년 서울-인천 사이 철도 부설권(뒷날 일본에 팖)
1898년 서울 전차, 전등 및 수도 경영권
1899년 서울-개성 사이 철도 부설궐
  • 러시아
1896년 경원과 종성금광 채굴권
1896년 경성 석탄 채굴권
1896년 두만강, 압록강 및 울릉도 산림 채벌권
1897년 해관 관리권
1899년 동해안 포경권
  • 영국
1896년 해관 관리권
1898년 은산금광 채굴권
  • 프랑스
1896년 서울-의주 사이 철도 부설권
1901년 창성금광 채굴권
  • 독일
1897년 금성금광 채굴권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9권』 - P12~114

보면 알겠지만 조선에 남아 있는 이익이 이제 무엇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 넘어간 것을 알 수가 있다. 철도 부설권은 일본이 거의 대부분 가져갔고 운산금광은 당시 순금이 터지는 잭팟 금광이여서 나오는 족족 금이 쏟아졌다고 한다. 러시아는 백두산 아래 나무들을 벌채하여 만주 철도를 부설하는 데 버팀목으로 사용하고자 했고 거기에 사용되는 석탄도 조선에서 공급하려 했다. 국경 지대 백성들의 살림은 더욱 피폐해졌음이 틀림없다.


"그분이 돌아와서 외무대신 자리를 마다하고 신문을 만들고 몽매한 백성을 깨우치려 노력하였지만 실상 그분의 본업은 의학박사였단 말씀이오. 그런 양반이 이곳에 부질 못하고 돌아갔으니."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소."
"글쎄올시다. 상감께서 지나치게 소심했기 때문이지요. 왕실을 없이하고 미국처럼 대통령을 뽑을까 두려워하신 나머지, 이래가지고는 나라가 안 망하고 어찌 견디겠소? 나라 꼴이 제대로 되려면 식자들이 먼저 깨달아야 하고 서재필이 그 양반과 같이 서양문물에 밝아서 반상(班常)의 구습부터 타파해야 할 것이오."
"서양문물에 밝은 것도 좋고 반상의 구습을 타파하는 것도 좋고, 허나 서재필인가 그 양반같이 되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소? 그 양반이 명문의 자제로서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겠는데 이십 세의 약관으로 장사들을 이끌고 국사를 바로잡을 충심에서 거사한 것도 장하고 만리타국,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가서 빈주먹으로 의술을 배운 것도 장한 일이었소. 허나 그 양반이 어디 우리나라 백성이오? 이름 석자를 버리고 그곳 이름에다 그 나라 백성이 되었고 그 나라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근본이 잘못 되어버린 그 사람 본을 따는 것은, 글쎄올시다. 산간벽촌에서 침이나 꽂고 약방문이나 쓰는 늙은이 소견에는." - P142~144


서재필은 영은문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영은문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개선문 같은 조선 독립의 상징물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 서재필은 독립문 건립과 함께 신문사 설립과 민권단체인 독립협회 결성을 서둘렀다. 『독립신문』은 1896년 4월에 창간되어 정부와 독립협회의 기관지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이라는 개념은 중국으로부터 자주권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곧 전통적 사대질서를 거부하고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이때의 독립은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자는 의미였다.
독립협회에서는 이해 가을부터 활발하게 토론회를 벌였다. 서재필과 윤치호 주도로 일요일마다 벌였던 토론회는 1년 동안 34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하급 벼슬아치, 유학을 다녀온 신청년, 각급 학교의 교사와 학생, 심지어 장사꾼들까지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토론장소는 서대문 언저리에 있는 예전 경기감영의 내아(內衙)나 독립관 등이었다.처음에는 머리를 깎아야 옳으냐" 따위, 사회 인습의 개량, 위생과 청결 등을 주제로 삼았으나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문제 등을 다루어 친러파와 대립하기도 했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9권』 - P121~124

서재필은 독립협회의 주역이었다. 김훈장의 시선은 이해할 만하다. 그는 미국인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다만 그가 독립협회를 만들고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전 토지 2권에서 살펴본 바 있지만 고종은 독립협회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고 보부상들의 단체인 황국협회를 뒤에 조종해서 독립협회를 탄압한다.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용납할 수 없었던 고종이었다.

"이십 년이 넘었구먼.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로 있을때 말이오. 그때 청나라 정부에서 도문강(圖們江) 동북에 있는 조선사람들을 쫓아내려 했었거든. 그래서 어윤중이 그 양반이 종성(鐘城)의 사람 김우식(金禹軾)을 시켜서 백두산을 탐색하게 하고 정계비(定界碑)를 찾았는데 정계비가 있는 것은 도문강이 아니요 토문강(土門江)이었더란 말이오. 그 강은 북쪽으로 흘러서 송화강(松花江)으로 빠지거든. 그러니 청나라 사람들 말문이 막혀버린 게요."
"어윤중이 그 양반은 착실한 살림꾼이었는데 백성들한테 맞아 죽다니, 그 양반 친일할 사람도 아니고 친로할 사람도 아니고 청나라하고 손잡을 사람도 아니요, 나라에 이득이 된다면 누구하고도 친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아니겠소. 그걸 백성들이 알아야 하는데...." - P272~273

두만강 국경 관련하여 <두만강 국경 쟁탈전 1881-1919> 책을 통해서 살펴본 바가 있었다. 간도 지역은 1877년 조선인 14가구가 용정에 처음 정착했다. 본래 있었던 세금 폐해에 이 무렵 조선에 심각한 자연 재해가 발생하자 많은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워졌고 이에 자발적으로 간도로 넘어가게 되었다. 1881년 조선인의 월경 사건을 계기로 청과 조선이 두만강을 둘러싼 국경 조사/협상을 시작했으나 이후 1885년과 1887년 두 차례에 걸쳐 국경을 정하기 위한 청나라 측과의 회담이 열렸는데, 1차 회담에서는 백두산정계비에 기재된 토문강이 두만강과 같은 강이라고 주장하는 청나라 측과 두 강은 서로 다른 강이라고 주장하는 조선 측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해 무산되었고, 2차 회담에서도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각각의 주장을 지도로 남기고 결국 국경을 확정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어윤중은 이 협상에 참가한 당사자다. 을미사변 후 이어진 개혁에서 친일 내각이 탄생하고 어윤중은 탁지부 대신으로 임명된다. 고종과 친러파의 합작으로 아관파천이 이루어지고 기존 조정 인사들은 체포령이 내려진다. 그는 김홍집 등이 성난 군중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고향으로 피신하는 길에 사망한다.


제4차 김홍집 내각(친일 내각)은 내외의 비난 속에서도 급진적 개혁을 단행했다. 더욱이 민비시해사건으로 미우라가 소환되고 책임을 묻는 급박한 정세 아래 국가의 중대사가 연달아 결의되어 고종의 재가에 올려졌고 고종은 이들 안건에 수결을 놓기에 바빴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9권』 - P58~59








전 탁지부 대신(前度支部大臣) 어윤중(魚允中)이 귀향하다가 용인(龍仁)에 이르러 거주하는 백성에게 살해되었다. - 『고종실록』 建陽 원년(1896) 2월 16일


"이곳에서의 법이란 곧 주먹이야. 담판을 해야 한다구? 그건 한 시절 전의 체면이나마 생각하던 시절의 얘기 아닌가. 이부사가 내 목을 쳤으면 쳤지 국경을 줄일 수 없노라 했던, 그 시절 말일세."
이부사랑 1887년 도문강(圖們江)을 중심한 국경 분류로 인한 담판에 감계사(勘界使)로 참석했던 당시 안변부사(安邊府使)였던 이중하(李重夏)다.
"총 휘두르는 놈이 땅 한 치라도 더 먹게 돼 있지. 서울서 군병을 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 나도 이부사 같이 내 목 내어놓고 사포대(私砲隊)를 모을 수밖에. 우선 병영(兵營)을 설치해놓고 힘으로 대항하는 게야. 우리 백성들이 남부여대하여 찾아와서 피땀으로 일궈놓은 땅을 왜 내놔? 어림없는 소리지." 이범윤의 말이었다.
'서울서 군병을 보내? 죽은 나무에 꽃 피기를 바라지. 유약한 상감, 파벌싸움에 영일이 없는 정상배들! 한 치 앞이 눈에 봬야 말이지. 하긴 나라 안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서. 대궐 안도 지키지 못하는... 결국 사포대를 만들어 그곳 백성 스스로가 힘을 뭉쳐 대항할 수밖에 없겠지.' - P293~294

이범윤(李範允, 1856년 12월 29일 ~ 1940년 10월 20일)은 구한말 시대 복벽주의 성향 독립운동가이다.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군을 조직하여 국내침공작전을 추진했다. 대한제국에서 변계경무서 예하 북변간도관리사 직책을 지냈다. 그는 간도로 파견되었고, 이듬해(1903년)에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였다. 이범윤은 이 지역의 포수들로 자위적 성격의 군대인 사포대를 조직하였는데, 이 사포대가 향후 간도 지역 의병운동의 한 기반이 되었다. 「위키피디아 이범윤」

이범윤은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러시아 군대와 연대하여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1906년 이범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러시아령으로 망명했다. 이후 이 지역에 이미 기반을 잡고 있었던 최재형의 도움으로 기반을 닦고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다.

황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다. 외국에 이권들은 넘어갔고 개항 이후 열강들과 차례로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이 강산은 무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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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리뷰로 100자평을 쓰기는 했지만 책의 내용 중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을 나누어야겠다 싶어서 더 늦기 전에 글을 쓴다. 나는 이론을 갖다 대거나 다른 책을 대기에는 공부가 부족하여 체험과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사례로 든 ASMR, 인스타그램, 유튜브, 웹툰 등등은 모두 내게 낯선 것들이었다. 그나마 게임 개발자의 챕터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이머들의 비율은 남성이 많은 편이고 게임 개발자도 압도적으로 남성 개발자들이 많다. 여성 개발자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 비율은 차이가 크다. 또 온라인 공간의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들이 얼마나 많이 폭력에 노출될까. 한 회사에서 여성 개발자들이 얼마나 일할까 싶은데 그 안에서도 여성 개발자들간의 커뮤니티는 활발하지 못하다.

"MMORPG 게임은 거의 남성 중심의 게임이고, 기획, 개발자도 대부분 남성이었고, 조직 문화에서도 여성이 뭔가를 주도해서 하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조직 내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여성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 P295

IT 업계가 3D 직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데 게임업계는 특히 그렇다.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분은 개발자는 아니고 DBA다. 그분을 통해서 게임업계가 돌아가는 세계를 간접적으로 듣곤 했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게임이 오픈할때쯤이면 게임 개발자들은 비상이라 밤샘 근무는 허다하고 주말에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밤에 갑자기 불려나가는 경우도 있다.
게임 오픈 후에는 더하다. 책에서도 개발자들의 체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최소 6개월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팬더곰이 되기 십상이다.

책의 체험기들이 너무 생생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기혼인 여성 개발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그나마 대기업은 휴가 제도, 육아를 위한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지만 중소기업은 그런 제도들이 갖춰 있을리가 만무하다. 제도가 갖춰져 있다고 해도 여성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제도를 고스란히 잘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저는 일을 하면서 봤던 분 중에 유일하게 한 분이 결혼과 임신 이후에 게임 개발자 일을 계속했어요. 그 분은 팀장이었는데요. 예전에는 "저렇게까지 독하게 일을 해야 할까"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도 "회사의 구성원이 되려고,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P294

게임 업계는 아니지만 나는 IT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모든 직업인들이 겪는 고충이겠지만 개발자는 일명 버그(bug), 오류와의 싸움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오류는 단시간에 고쳐야 하고 오류는 가능하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제품이든 오류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이 때문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임 업계는 게임이 오픈되면 수많은 게이머들로부터 폭탄 세례를 받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빨리는 일이다. 나도 어떤 제품을 만들어 팔지만 소수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게임 개발자들의 고충을 보니 내 고충은 고충도 아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들을 만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직접 소비자들을 항시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은 자리 잡기 어려워요. 게임 출시 준비를 하는 1년 정도가 체력적으로 소모가 엄청 심한 시기에요. 이 시기를 잘 버티지 못하면, 게임 준비에 들인 노력이 모두 사라져요." - P289

"대박난 게임이 없으면 개발하다가 그 팀이 없어지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게임 테스트 과정에서 평가가 좋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그 팀이 없어지는 거죠. 게임이 드랍되면 개발자는 실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거고, 그럼 회사에서 나가야 해요. " - P292

또 하나 든 생각은 오래 업계에서 일한 여성 개발자일수록 잘못 쓴 계약서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것은 비단 여성 개발자라서 생기는 일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되는 이슈다. 보통 회사와 계약을 하는 노동자들은 계약서의 세세한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신입 때는 그 내용을 잘 모르기도 하고 눈여겨 보기도 힘들다. 입사해서 들어왔는데 막상 자신이 상상하며 그리던 환경이 아닐 때가 너무나 많다. 1차 계약인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하도급으로 2차, 3차 계약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수수료가 이중으로 떼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은 초봉이 좀 올랐겠지만 내가 처음 입사해서 받은 연봉은 말도 안되는 낮은 금액이었다. 그 때 그런 금액을 받고 일했고 심지어 불합리한 조건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퇴직금, 추가 노동에 대한 부분 등 수도 없다.

게임 개발의 성공에만 집중하는 회사의 조직 문화로 인해 게임 개발자들은 계약 과정에서의 문제를 인지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개발자는 인센티브만을 바라보고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 P292

모든 노동 업계의 문제겠지만 여성 게임 개발자들의 처우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소망이 크다.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노동자를 사망 또는 사상에 이르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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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게임이나 IT업계에서 여성이 버티기가 더 힘들다는 느낌이 확 와닿네요. 저런 일은 진짜 육아나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걸 여성들이 대신해주면서 남성 IT업계의 노동자들이 뼈를 갈아넣는 현실을 유지하는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성들은 그런 서포트를 못받으니 도태되고.....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저렇게 뼈를 갈라넣은 남자들도 나중에 보면 가족은 모두 떠나 있고 자신은 가정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지경이 될테고....
우리나라의 노동조건이 가장 첨단 산업에서 오히려 전근대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 자체를 문제삼아야 하는거 맞죠?
화가님도 IT업계에서 일하시느라 고생많으시겟어요. 에휴 토닥토닥 위로를 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9 09:26   좋아요 3 | URL
네. 게임 업계는 특히나 여성개발자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미혼도 힘들텐데 기혼은? 애까지 있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갑갑해집니다. 뼈를 갈아넣는다는 말씀이 맞아요. 저도 거의 대리급 정도까지는 밤샘 근무는 여사였어요. 사정을 봐주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게다가 젠더 인지 감수성도 굉장히 부족한 업계입니다. 성희롱과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_-; 저는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게임 캐릭터들이 대부분이 소녀 캐릭터가 많은데 그런걸 보는 여성 개발자의 마음은 어떨까~ 저는 동공지진일어날 것 같더라구요. 게임이 좋고 게임 개발자가 하고 싶어서 들어간 여성 개발자들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09-29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부분 읽으면서 화가님은 괜찮으신가? 걱정되었습니다. IT업계에 일 하신다던데...직접 묻기도 그랬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읽으니 책에 나오는 게임 개발자들만큼은 아니라고 하셔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업무의 고충이 크실 듯 합니다.
예전에 90년도 후반쯤에도 남편의 중학 동창을 함께 만나 얘기를 했었는데 IT쪽 게임 개발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때도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하고 있어 늘 피곤해 하더니 결국 몇 년 못버티고 이직을 했다더라는 이야기도 생각났어요.
남자도 버티기 힘든 강도의 업무를 여성이 특히 기혼 여성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특히나 게임 온라인상에서 여혐이 그렇게나 심각하다니...책을 읽으면서 충격이었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9 09:32   좋아요 3 | URL
아이고~ 나무님^^ 제 걱정을 다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오류와의 싸움이죠. 사실 제품을 항시 만드는 것보다는 제품을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기간이 더 길거든요. 그래서 욕을 항시 먹는 그런 직업입니다ㅠㅠ
기혼이고 육아까지 하는 여성 개발자들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나마 애가 없지만 만약 제가 애가 있었다면 다닐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온라인 게임 대부분이 채팅 기능이 있거든요. 저는 게임을 하지 않지만 옆지기가 게임 마니아라 옆에서 보다 보면 할말하않. 채팅 기능으로 얼마나 여성 게이머들이 폭력에 많이 노출될까 싶어요. 캐릭터의 문제도 있구요.

2022-09-28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9-29 0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딱히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부분이었거든요. 저도 노동자이기는 하지만 게임 개발을 전후로 그렇게나 미친듯이 일을 해야 한다니.. 그런데 거리의화가 님이 그 부분의 글을 써주셨네요. 같이읽기가 왜 좋은지 거리의화가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우린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데 읽는 사람마다 말하고 싶어지는 지점,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다르잖아요. 너무 좋네요, 화가 님.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요! 거리의화가 님,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읽어주세요!

거리의화가 2022-09-29 09:43   좋아요 2 | URL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으며 좋은 지점이 그것인 것 같아요. 제가 나눌 수 있는 부분은 경험이나 소감 나눔 정도지만 서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도움이 되는 듯 싶어요.
다락방님이 리딩도 잘해주셔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다음달 책 포르노랜드 읽으면서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을까 걱정은 됩니다만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mini74 2022-09-29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린세스메이커란 게임 생각나요.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인데 정말 싫었거든요. 키우는것도 결말도 ㅠㅠ 조카들 셋이 그쪽에서 일하는데 ㅠㅠ 여자조카 이야기 들어보면 ㅠㅠ 그렇습니다. 화가님도 고충이 많으시겠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29 13:09   좋아요 2 | URL
여자조카 이야기. 안봐도 그려지는 듯합니다ㅠㅠ 게임들은 왜 다 캐릭터가 다 일률적이고 스토리도 그럴까요? 여성에 대한 비하나 차별이 보여서 너무 불편합니다.
고충은... 이제 제가 몇 년이나 이 업계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은 날까지 잘 버텨야지 그런 생각만 합니다^^;;;

독서괭 2022-09-30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리뷰 쓰면서 이 꼭지에 관해서는 게임개발자 두명의 인터뷰만 있어서 아쉽고 연구가 더 진행되면 좋겠다고 썼는데, 화가님 글 보니 두명의 인터뷰어라도 여러 가지 내용을 풍부하게 담아냈구나 싶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여성개발자가 회사에서/회사밖에서 당하는 차별이라든지 젠더폭력에 관해 좀더 깊이 써줬으면.. 했어요. 너무 중요한 부분인데요. 하긴 짧은 글들에 <레이디 크레딧> 같은 내용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요^^;; 갑자기 제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이. .횡설수설..
아무튼 화가님도 IT업계에서 일하시며 많이 고생을 하셨고/하고 계실 듯 합니다. 몸을 잘 챙기시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30 18:22   좋아요 3 | URL
괭님 인터뷰어 숫자보다는 저도 젠더 차별과 폭력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때문에 저도 제 체험 이야기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쉽습니다. 향후 이런 연구서가 나온다면 이 부분을 보강해주면 좋겠어요.

- 2022-10-04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T, 온라인 노동은 정말인지 상시 노동이라는 게 가장 큰 힘듦인 것 같아요. 플랫폼 노동도 그렇고. 저도 할말 많은 프리랜서라서 할말이 진짜 많은데... 온라인 노동에는 퇴근이 없다..(출근도 없지만ㅋㅋㅋ)..... 진짜 그토록 한세기 넘게 빡세게 노동운동 하면서 얻어낸 노동법 다 쓰레기로 만드는 메타버스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시장 돈벌자~ 와랄라랄라랄라라~이러고 있는 거 너무 슬프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돈벌어야 하는 내 신세 나도 슬프고...
암튼 이렇게 화가님의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으니까 또 좋군요! 읽느라 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10월에도 화이팅! ^^

거리의화가 2022-10-04 17:54   좋아요 1 | URL
온라인 노동... 생각만 해도 힘드네요^^; 퇴근이 없는 일이라니ㅠㅠ 쟝쟝님도 고생이 많으세요~ 먹고 사는 것은 왜 이리 고달픈가 싶네요~!
제가 볼 땐 있는 노동법 잘만 지켜도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기업에서는 법을 피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니 화가 납니다. 이 달에 읽을 책이 저는 걱정되네요~ㅠㅠ 쟝쟝님도 화이팅!
 
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서야 하는 일이 있는 법. 달걀로 바위치기였기에 뒤집을 수 없었던 결과. 어쩔 수 없이 고향 평사리를 떠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람들. 선한 자는 죽거나 다치고 비열함도 악(惡)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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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9-28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모두 토지 읽으시는군요! 저도 어제 도서관에서 한참 갈등하다 일단 돌아왔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8 09:31   좋아요 1 | URL
어쩌다보니 4명이서 읽고 있는 것 같은데요^^(괭님, 다락방님, 미미님, 저까지) 비타님도 함께 하시죠! 정말 아름다운 한국문학입니다~

독서괭 2022-09-28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걀로 바위치기 ㅠㅠ 정말 안타깝죠. 삼수만 아니었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8 10:22   좋아요 2 | URL
삼수 때문에 꼭지 돌뻔 했는데 그 뒤에 더한 X이...ㅎㅎㅎ 정말 빡침의 연속이었어요ㅠㅠ

다락방 2022-09-28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2권 시작했는데 강포수가 귀녀를 짝사랑해요. 아, 이 빌어먹을 사랑이란 것...

거리의화가 2022-09-28 11:34   좋아요 2 | URL
강포수 진짜 미련할 정도로 귀녀를 끝까지 사랑하죠. 귀녀가 계속 강포수를 밀어내다가 죽기 전에야 받아들일 때 넘 안타까웠어요ㅜㅠ

독서괭 2022-09-28 11:35   좋아요 1 | URL
저 7권 듣는데 강포수 재등장해서 반가웠어요 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8 11:41   좋아요 1 | URL
7권에 다시 등장하는군요. 안 그래도 강포수 소식 궁금해지더라구요ㅎㅎㅎ

scott 2022-09-28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토지 9권에서 멈춰 버린 이유가
화가님의 리뷰와 비슷 ^^

거리의화가 2022-09-28 13:00   좋아요 2 | URL
3, 4권 특히 힘들었어요. 뒤로 갈수록 더할 것 같긴 하군요. 작가의 내공 때문이겠지만 그로 인해 읽기가 힘들기도 합니다ㅠㅠ 스콧님의 심정 이해가 가네요.

mini74 2022-09-29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1권은 사서 읽고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어요. 재미있는게 뒷권으로 갈수록 책이 깨끗합니다 ㅎㅎ 1권은 너무 지저분해서 구입한 거였거든요 ~~~

거리의화가 2022-09-29 13:32   좋아요 1 | URL
정작 전권 세트 구입해놓고 인용문 참고할 때만 책을 뒤적뒤적해서 께끗합니다! 뭐 이것도 자주 하다보면 지저분해질까요?ㅎㅎ
 
[전자책] 노생거 사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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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독자의 무지를 고백하고 간다. 나는 이 책을 순전히 출간순으로 생각해서 <맨스필드 파크>와 <엠마> 다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작가 28 세때 써낸 최초의 장편소설이었다. 읽고 나니 이 책이 왜 초기작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의 이름은 「수전」이었다고 하는데 20대 때 썼지만 책은 작가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출간되었다. 


먼저 제목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해야겠다. 사원이라는 말이 언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에 수도원이었던 건물이니 수도원이라고 하던지 저택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책의 장소가 주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이 성글고 거칠다. 그런데 그래서 놀라웠다. 왜냐! 초기 장편소설의 수준이 이렇다고?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놀라웠다. 

첫 번째, 소설과 소설가를 논한 부분과 역사(책)에 대한 논쟁과 토론.

두 번째, 고딕 소설을 체화한 스토리. 심지어 그 스토리가 꽤나 내게 먹혔다. 괴기스러움과 삐걱거림. 좀 오싹하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한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서 잘 풀어냈다.


새로 나오는 소설마다 쓰레기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신문에다 대고 케케묵은 곡조로 왈왈거리게 내버려두자. 우리끼리는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 우리는 상처 입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세상의 어떤 다른 문학기관이 내놓은 작품보다 광범위하고 가식 없는 즐거움을 주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글보다 폄하되었다. 자존심 탓이든 무지 탓이든 유행 탓이든, 우리의 적들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많다. 

그들은 『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약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章)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 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 하다. 
“전 소설은 읽지 않아요……. 소설은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걸요……. 제가 종종 소설을 읽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꽤 좋네요.” 이런 것이 판에 박힌 듯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 뭘 읽고 있어요?”
“아이! 그냥 소설이에요!” 젊은 숙녀는 대답한다.
일부러 무관심을, 혹은 일시적인 수치심을 엿보이며 책을 내려놓으면서. “별거 아니고 『세실리아』나 『커밀라』나 『벨린다』인걸요.”
한마디로 그냥 소설 작품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전 역사를 좋아해요."
“저도 좋아하고 싶어요. 역사책은 의무적으로 조금 읽었지만, 짜증 나고 죄다 지루한 이야기뿐이더군요. 페이지마다 나오느니 교황들과 왕들의 싸움이고 여기에 전쟁이나 역병이 곁들여지고요.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요. 정말 따분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따분하다는 게 이상하단 생각도 종종 들어요.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것이 분명한데 말이에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연설이라든가, 그들의 생각이나 속셈이나……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게 틀림없죠. 다른 책에서는 지어낸 게 재미있는데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불쌍한 아이들이 처음에 문자를 배우고 그다음에 철자를 배우는 소리를 저만큼 자주 들어 보신다면, 그 아이들이 아침나절 내내 얼마나 집단으로 멍청해질 수 있고 저의 가엾은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얼마나 진이 빠지시는지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고문하다’와 ‘가르치다’가 가끔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실 거예요. 전 거의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그런 모습을 늘 보거든요.”“그렇다고 해 두죠. 그러나 읽기를 배우는 어려움을 역사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당신 자신부터가 평생 동안 책을 읽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이삼 년 정도는 고문을 당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지도 모르잖아요. 보아하니 아주 심하게 빡빡한 공부에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또 하나 추가한다면 이것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매번 등장하는 것 같은 그녀의 지적 수준이다. 작가가 드러내는 글은 작가의 지적 능력을 고스란히 보이게 된다. 이 소설도 역시나 그런 면모를 내보여주고 있다. 주로 고딕 소설을 쓴 작가와 책 제목이 여러 번 나열된다. 당시 고딕 소설이 꽤 많이 유행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다. 휴머니스트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올해 초 고딕 소설류들을 펴냈던 것이 기억났다.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는데 작가의 묘사력을 보니 충분히 읽어볼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헨리 틸니에 대한 열정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리고 대체로 성과 사원들은 그의 모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몽상의 매력을 선사했다. 고성의 누벽과 성채, 혹은 사원의 회랑을 둘러보는 일은 여러 주 동안 소중히 품어 온 소망이었다. 한 시간 정도 관광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족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택의 이름이야 하우스, 홀, 플레이스, 파크, 코트, 코티지 등등 어떤 것으로 불려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노생거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머물게 될 터였다. 길고 음습한 통로들, 좁은 방들과 폐허가 된 예배당을 날마다 접할 수 있을 터였다. 무언가 전통적인 전설들, 상처 입고 불행해진 수녀의 참혹한 사연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집안사람들이 잠들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터. 그리고 틸니 부인이 아직 살아 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갇혀 지내면서 남편의 무자비한 손으로 밤마다 조악한 음식을 공급받으며 지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발상이긴 했지만, 적어도 부당하게 급사한 것보다는 나았다. 사태가 순리대로 진행되면 머지않아 풀려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병, 그런데도 바로 그 시기에 딸이 없었고 다른 자식들도 없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니…….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그녀가 유폐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 기원은.... 아마도 질투였겠지. 아니면 까닭 없는 잔인함이든가……. 아직은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마지막의 결말이 약간 용두사미 같달까. 급하게 끝내려고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특성 답게 해피엔딩으로 정리하려는데 좀 더 매끄럽게 시간을 들였다면 독자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설득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포장하는데 기술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첫 번째 장편 소설을 이렇게 그려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제인 오스틴 천재 맞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어내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라 한 편의 서사를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상상력과 현실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그것을 글발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내용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은 주인공인 캐서린이 무도회에 진출하여 사람들을 사귀게 되는 과정. 그리고 뒷 부분은 노생거 사원에 가서 겪게 되는 일이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의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사실상 두 부분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파트는 제인 오스틴 하면 떠오르는 무도회에서 남녀가 만나 춤을 추고 눈이 맞거나 친구를 사귀는 내용이 나오는 반면 두 번째 파트는 사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인데 환상과 현실의 버무림이랄까. 꿈 속을 헤매다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덧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제인 오스틴의 장편 소설을 4번째로 읽게 되는 것이 되었다. 읽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밋밋함이 서서히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듯 보이는 19세기 영국 여성의 이야기임에도 스토리, 공간,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다름이 느껴지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예를 들면 바로 이전에 읽은 <맨스필드 파크>와 이 책은 정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노생거 사원>은 인물 관계도가 복잡하지 않고 스토리도 간결하다. 그에 비해 <맨스필드파크>는 이야기의 호흡도 긴 편이고 인물 관계도 복잡하다. 내 생각에는 <맨스필드 파크>가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는 생각이지만 캐릭터 싸움에서는 사실 누가 승리할지 모르겠다. <노생거 사원>의 주인공 캐서린이 내게는 좀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과도하게 몰입한다는 단점 빼고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여리여리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에 반해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내겐 많이 답답했다. 수동적이고 상처를 잘 받고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해서 툭 하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함이 내겐 부담스러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다. 역시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경험할 수 있는 것.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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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09-27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요. 이 글은 ‘단숨에‘ 쓰셨구나 했습니다. 저도 한 호흡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

혹시 이 부분을 좀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거리의화가 2022-09-27 14:16   좋아요 2 | URL
불친절한 리뷰어라 죄송합니다^^; 앞 부분에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명확한 인용문이 있었는데 그걸로 대체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어쨌든!

앞 부분의 인용한 소설 부분은 주석을 살펴보니 ‘세실리아‘와 ‘커밀라‘는 프랜시스 버니(Frances Burney, 1752~1840), ‘벨린다‘는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 1768~1849)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 문장 앞 부분에 요 문장을 보면 더 이해가 되실 것 같아요.
->
˝그들은 『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약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章)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 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하다.˝

초원 2022-09-28 10:05   좋아요 2 | URL
전혀 불친절하지 않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의 답을 듣고보니 이렇게 명확한데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군요. 에구~.
상냥한 화가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9-27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팽귄클래식판 <노생거 수도원>으로 읽었습니다 ㅋ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약간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더라구요. 갑자기 고딕소설화 된것도 재미있고 ㅋ

거리의화가 2022-09-27 14:56   좋아요 2 | URL
명칭으로 보면 수도원이 나은 것 같아요. 사원 진짜 좀 이상...ㅋㅋ 저도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서 술술 잘 읽혔어요~ㅎㅎ 말씀하신대로 뒷부분 급반전!ㅎㅎㅎ

바람돌이 2022-09-27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를 고백. 지금 이성과 감성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노생거사원이 초기작이군요. 순서 바로 바꿉니다. 일단 저도 노생거사원 먼저 읽는 걸로.... 사원이라고 하면 저는 절이 먼저 생각나는데 역시 수도원을 사원이라고 하는건 틀린 표현은 아닌데 잘 안 떠오르는.... 곧 따라가겟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27 16:04   좋아요 2 | URL
타이밍을 제가 맞춰드렸군요! 이 책 읽고 이성과 감성 읽으시면 더 잘 읽히실 것 같습니다^^ 사원 저도 좀 언뜻 떠오르지는 않아서 애매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바람돌이님의 흥미진진한 리뷰 기대할게요*^^*

레삭매냐 2022-09-27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 노생거...

그전에 을유문화사 판을
중고서점에서 본 적이 있
는데 그 때 샀어야 했나
봅니다.

저는 장정본을 좋아하거든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모두
6권인가요? 전 <설득> 하나
읽었네요.

거리의화가 2022-09-27 16:25   좋아요 2 | URL
네. 장편소설은 총 6권이더라구요^^ 저는 엠마하고 설득 빼곤 다 읽었는데 두 권은 나중으로 미루려구요. 지금 읽을게 너무 많아서ㅎㅎㅎ

팬이라면 장정본 쭈욱 모아두면 좋은 듯 싶어요. 저는 펭귄판도 표지가 이뻐서 좋던데 그렇게 모으기에는 지금 서재에 공간이 다 차 있어서 불가능할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