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은에는 다음과 같은 여덟 개의 작위가 있었다고 한다.
부(婦), 자(子), 후(侯), 백(伯), 아(亞), 남(男), 전(田), 방(方).
이들의 꼭 절반에 해당하는 자, 후, 백, 남의 네 작위는 외국에서도 명칭으로 사용했다.
부는 왕의 아내에게 주는 작위였다. 일부다처제 시대였으므로 모든 처첩에게 이 위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정에게는 60명의 처첩이 있었는데, 그중 세 명만이 부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P177

부는 자신의 영지를 받았으며 그곳을 다스렸다. 그러려면 왕의 곁을떠나야만 한다. 바로 그랬다. 가장 사랑받는 몇몇의 젊은 왕비만이 도읍에 머물렀으며, 부는 일종의 봉건영주로 부임했다. 모계를 존중하던 씨족사회 시대의 흔적을 거기서 느낄 수 있다.
자란 왕자를 말한다. 이 역시 모든 왕자가 자작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도 역시 부여받은 영지를 지배하기 위해서 도읍을 떠났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집안의 처자뿐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을이다. 세자의 새봄후와 백은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충실한 대신이나 장군에게 주는칭호였는데, 그 영지는 대부분 변경에 있었던 듯하다. 그에 비해서 아는도읍 부근에 영지를 가지고 있어 은 왕실의 울타리 같은 역할을 하던 영주였다.
남과 전은 농사감독관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것은 실제로 일을했기 때문에 인원도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복사에도 가끔밖에 나오지않는 작위다.
마지막 방이라는 것은 은 제국의 지배권외 부족의 수장에게 주던 칭호였다. 말하자면 위성국가적인 우호관계에 있는 부족의 원수라는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178

주 시절의 복사도 적잖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달기‘라는 이름이 있는것은 한 조각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제사도 그 이전까지의 왕들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빠뜨리지 않고 지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귀신을우습게 여기기는커녕 매우 경건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복사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우리가 폭군으로서 듣고 있는 주의 모습은 실상과는 상당히다른 것 같다. 하다노예제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간단하게 처형을 당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 그중에는 애초부터 살해당하기 위해서태어난 사람들조차 있었다. 기우제를 지낼 때도 인간의 목숨이 필요했다.
봉건제 사회에 들어선 주나라는 은나라처럼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않았다. 무덤을 만들 때도 순장을 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 시대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대(前代)를 되돌아보고, 그 살육의 죄를 마지막 왕인주 한 사람에게 전부 덮어씌운 느낌이 든다. 주도 역시 많은 사람을 죽였을 테지만, 그것은 역대 왕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 P193

원시시대 중국 각 부족의 토템으로는, 동쪽의 해안선에 가까운 곳에서는 조류, 황하 중류의 중원지방에서는 수족(水族)-물고기, 용, 뱀, 그리고 서북지방에서는 짐승류가 많았다.
중국에서 제왕의 시조격인 황제(黃帝)는 여러 가지 전설을 흡수했는데, - P199

웅(熊, 곰), 비(羆, 큰곰), 비(絶), 휴(琳), 추(龜), 호(虎, 호랑이)를 교화해, 그들과 함께 판천 들판에서 염제와 싸웠다.
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서북쪽의 각 부족을 이끌고 싸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비(), 휴(琳), 추(龜) 등은 우리에게 친숙하지않은 이름인데, 호랑이나 표범과 비슷한 맹수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황제가 속해 있던 부족의 토템은 무엇이었을까? 판천 들판에서 이끌고 있던여섯 짐승 부족의 우두머리였던 곰이 틀림없다. 『사기』「오제본기」 마지막 부분에,
따라서 황제를 유웅(有熊) 씨라고 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 - P200

태왕의 손자인 창을 주의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 미담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창의 아버지인 계력은 태왕의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무렵 막내가 상속을 하는 ‘말자상속‘ 제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기』의 계보를 보면 누가 죽고 그 아들인 누가 위에 올랐다는 표현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 그 아들이 몇 번째 아들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은나라의 주도 막내아들이었다. 여기에는 두 형이 정실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가 붙어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훗날 붙여졌을공산이 크다.
후세 역사가들은 막내의 아들인 창이 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에혹감을 느낀 나머지 성서 외에도 미담을 만들어냈다. - P208

신분은 낮지만 유능한 신하가 주군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먹을 것에 대한 화제일 것이다. 혹은 취미, 예를 들자 - P218

면 낚시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야로소 상대방의 재능을 알게 되는 법이다.
창업기에 이윤이나 태공망처럼 신분이 낮아 보이는 사람들이 활약을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능력만 있으면 어떤 신분에 있는 사람이라도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집단이 약동하고 있기때문이다. 활력을 잃은 집단은 모든 것이 고여 있어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묻혀 버리고 만다. 그런 상태로 천하를 취한다는 것은있을 수 없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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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여씨춘추』에 따르면, 이윤은 아무래도 탕의 명령을 받고 첩자로 하에들어간 듯하다. 그런데 일단 탕을 섬기던 인물이 하로 옮겨가면 의심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윤은 탕의 노여움을 사 달아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 믿지 못하겠음을 두려워하여 탕은 이에 스스로 이윤을 쐈다.
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탕은 화가 나서 이윤을 죽이려고 활을 쏘는 시늉까지 했다. 이윤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하로 도망친 것처럼 되었다. 연기가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하로 들어간 이윤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총애를 잃은 말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왕조 심장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모음과 동시에 내부 교란작전도 함께 펼쳤다. 하지만 이윤의 첩보활동이나 모략공작만으로 하가 멸망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의 멸망은 왕조 내부가 크게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P132

이윤은 하에 3년 동안 있었다고 한다. 박으로 돌아온 이윤은 탕에게자세히 보고했다. 이제 하 왕조의 명맥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과감하게 일어나라고 권유한 사람은 틀림없이 하의 정세를 잘 알고 있던 이윤이었을 것이다.
탕은 이윤과 맹세하여 하를 반드시 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는 『여씨춘추』의 문맥으로 보아 탕과 이윤은 주종이라기보다는 맹우에더 가까웠던 듯하다. - P133

은나라 사람들의 행동은 전부 점복(占卜)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점복이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실권이 점복을 관장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질 우려가 있다. 왕이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점쟁이들을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 스스로가 점복을 행해야만 한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갑골을 구워 나타난 점괘를 판단하는 것은 왕의 몫이었다.
은나라의 왕은 일종의 법왕(法王, 사제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신과 조상신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고 점복을 관장했으니 성직자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수장으로서 현실의 정치도 맡았다.
이와 같은 제정일치 체제에서 왕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는 자, 신 그 - P152

자체가 되어 버린다. 은나라의 왕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난 신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세습제의 모순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오히려 왕을 더욱 신성화하는 법이다. 제사권, 점복권을 손에 쥐고 있기만 하면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왕좌는 안전하다고 할 수있다. - P153

은 시대에는 이와 같은 청동기, 청동무기 외에 타악기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구리거울이 출현한 것은 전국 시대 이후부터다.
‘갑자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그 표현이 꼭 알맞을 정도로 은의청동기는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공예품이든 치졸한 유년기와같은 시기가 있으며 점점 경험이 쌓이고 개량이 더해지다가 기술이 향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중국의 청동기는 최고의 것이 은 시대에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보인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기발한 설이 등장을 한다.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를 타고정상까지 날아오르려는 것이다. - P158

갑골문의 양식도 역시 시대에 따라서 다르다.
제1기-글자가 크고 대담하고 힘이 넘친다.
제2기-글자가 중간 정도의 크기가 되었으며, 세밀하고 정확하고 품격이 있다.
제3기-유약해졌으며 오자가 많다. - P170

제4기-다시 힘이 넘치며 활기가 느껴진다.
제5기-글자가 작아졌으며 배치를 고려한 흔적도 보이고,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썼으며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와 같은 차이도 인간의 예술 활동의 흐름, 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해하는건창업 당시의 씩씩한 기운, 그것의 거친 기운을 적당히 깎아내 정리를하는 기간, 머지않아 찾아오는 퇴폐기, 반성에 의한 부흥에 이은 성숙, 섬세해져 가는 시기.
이렇게 보니 모든 것이 유유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태고 시대에도적잖은 기복의 역사가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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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늘 그렇듯이 매일을 패턴대로 생활할 뿐이다.

어제는 올해 무얼 읽고 이번 달 무얼 읽을지 계획을 세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년에는 동시에 읽는 책들이 많아서 버겁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이를 지양해보려고 한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된다고 해도 계획 없이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친구들과 덕담을 주고 받았다.
어느새 부모가 된 친구들을 보며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생각할 때가 있다.
언제 그리 시간이 흘렀을까 싶기도 하고.
앨범 속 우리들은 청춘 그 자체였으나 나이만 어릴 뿐 그때나 지금이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여전하다 느낀다.
부모님과도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부모님은 늘 나를 걱정하시지만 나는 이제 두 분이 걱정스럽다. 하지만 늘 틱틱대기 일쑤이고 그것이 말투에서 배어나와서 이를 좋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 집에 좀 일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나는 감히 전화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전화하면 분명 부딪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잠시 시간이 지나가고 아픔이 조금은 무뎌질 때를 기다리려 한다.
그나마 더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이상 올해 큰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읽고 있는 책들)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는 사 두고 한 두번 읽다가 제대로 완독도 못하고 방치 상태였다.
이번에 읽으려고 보니 2017년에 이 책을 읽었다고 알라딘 기록이 확인되었다.
막상 읽으니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왜 다 생소한가^^; 그래도 중국신화는 간혹 접해서였는지 신의 이름이 낯설지는 않다.
신화가 후세 사람들에게 전승되고 역사가, 정치인이 이를 이용하는 것을 보면 신화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만 보기에는 그 영향이 적지 않다 생각한다.
한 나라의 신화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 당시 떠도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살아남은 것들이 이어진 게 아닐까?

토지 9권을 읽고 있다.
조선으로 돌아온 서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짠하다. 마음 둘 이는 먼 곳에 있고 그의 마음에는 서희가 없기 때문이다. 비어버린 마음은 공허함 뿐이다.
3.1 만세운동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지식인들에게는 희망의 불씨 같은 것이였을지 모르나 결국 이것이 조선에 준 것은 별반 없다.
일본제국주의와 경찰들은 조선인들을 핍박할 구실을 찾았을 뿐이고 조선인들끼리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로 나누어 서로를 겨누게 되었다.
노비는 법적으로 진작 해방되었건만 여전히 뿌리깊은 백정 차별의 모습도 나타난다. 몇 백년에 걸친 양반-천민의 차별은 쉽사리 사라지기 어려운 벽인가보다.

1일 1클래식 1포옹으로 이틀째 음악으로 하루를 연다. 짧은 글과 음악으로 하루가 더 활기차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통감절요 1권 주기 위열왕 편에서 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자병법으로 유명한 그다. 그는 사마양저만큼이나 병법에 능통한 장수였고 그랬기에 위기를 여러 번 돌파하며 위 문후에게 발탁된다. 문후는 재상인 이극에게 오기를 들일지 말지에 대해서 묻는다. 이극은 그가 아내를 죽이고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가지 않는 등 잔인하고 무정한 인간이였으나 능력만큼은 출중하다며 그를 쓰자고 했다 한다. 실제로 그는 위나라 장수가 되어 병사들과 같은 식사를 하며 위계를 드러내지 않았고 종기가 난 병사의 종기를 빨아주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을 귀신 같이 캐치하는 능력도 있어서 이후에도 자신이 위험해지자 살길을 바로 찾아나서는 사람이었다.





서재 친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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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02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

저 중학교 때인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에
중국사에 미쳐 살던 시절
이라 ㅋㅋㅋ

오기는 나중에 초나라로
가서 잘 나가다가 자신을
등용했던 왕이 죽고 숙청
의 위기에 몰리자, 왕의
시신에 엎드려서 화살 맞
고 죽으면서 복수극을
완성한 사람이 아니던가요.

대단한 사람이네요.

거리의화가 2023-01-02 16:11   좋아요 3 | URL
꽤 오래된 책이죠. 저는 이 책을 스승님을 통해서 알게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중국사는 전혀 모르던 시절...ㅋㅋ

통감절요 보면서 어느 왕 시대 어떤 인물이 있었는지 확인하게 되고 또 그 인물이 인상적이면 더 기억에 남는 효과가 있네요. 오기가 대표적입니다. 뒤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겠지만요^^ 개인적인 평가는 별개로 어쨌든 능력은 출중했고 또 머리 회전이 빨랐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ㅎㅎㅎ

건수하 2023-01-02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는 동시에 읽는 책들을 줄여보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읽는 책이 많으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북클럽 등 자제중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3-01-02 16:13   좋아요 2 | URL
수하님도 그런 결심을 하셨군요! 저는 북클럽은 따로 하지 않지만 간혹 강의를 들어서 관련 도서를 읽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이번 달부터 정희진 쌤 강의가 있는데 그래도 그건 오디오 매거진이라 부담은 덜하겠죠?ㅎㅎㅎ
수하님도 올해 책 읽기 화이팅입니다!

stella.K 2023-01-02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연로한 어머니가 계셔서 걱정인데 걱정하면 싫어하시죠. 근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고요.ㅠ 이마음 가지고 저를 키우셨겠지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1-02 16:20   좋아요 2 | URL
부모님은 자식 걱정을 하는데 자식들은 본인들의 건강을 더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가 많죠.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하시면 ‘네. 건강 챙길게요!‘ 대답해야겠다 결심합니다 부모님은 그런 말 들으면 안심하시는 것일테니요^^;
스텔라님 부모님도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2023-01-02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2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1-03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해가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다른 건 없군요 저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이달 2023년에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몸 마음 다 잘 챙기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1-03 09:17   좋아요 2 | URL
올해는 별탈 없는 것이 지나가는 것이 소망입니다^^

희선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이번 달도 즐겁게 생활하세요!

독서괭 2023-01-03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지 9권! 3.1 만세운동으로 끓어올랐던 마음이 확 식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더라구요ㅠㅠ 이상현 짜증나는 인간.. 저 11권 거의 다 들었는데 11권 완전 슬픕니다. 월선이 때처럼 눈물 줄줄 나올 정도는 아닌데 더 슬퍼요. 기대(?)하시고!!
모두들 새해 첫 책을 뭘로 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하시던데 저는 읽던 책들 마무리 해야해서 ㅠㅠ 다미여와 폭풍의언덕, 워드슬럿, 가치있는삶, 등등과 함께 새해를 맞았네요 ㅎㅎ
동생분 힘든 일 잘 지나가길 바랍니다. 화가님의 즐거운 독서생활 응원해요^^

거리의화가 2023-01-03 17:42   좋아요 2 | URL
그건 일제식민경찰과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탄압 탓도 있겠지요. 경찰서에 잡아넣고 협박 및 고문을 해대니 버틸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
이상현은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구질구질해져버렸더군요. 에효~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안 봐도 전개가 좋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기대하라고 하시니 더 몰입하여 들어보겠습니다!ㅎㅎㅎ 저는 아무래도 여성주의 책을 단체로 한 권 읽는 것조차도 버거워서~ 참고 도서까지 읽기에는 역시 무리인 것 같아요. 멤버들과 같이 책 한 권씩 읽는데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친정 집안일인데 큰일까진 아니고 이정도라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될일이니까요.
괭님의 독서생활도 응원하겠습니다*^^*

mini74 2023-01-03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 덕담으로 제게 밥 잘 먹고 손 잘 씻고 ㅎㅎ 였습니다 ㅠㅠ 엄마눈에 전 여전히 늙은 애기? 같나봐요. 이야기 중국사 그러고보니 저도 갖고 있네요. 화가님도 새해 복 마니마니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3-01-04 09:21   좋아요 0 | URL
어머님의 덕담 어느 때보다 적절한 이야기네요^^ 독감도 유행이고 코로나는 여전... 저도 기관지가 안 좋아서 겨울마다 힘듭니다ㅜㅜ
부모님 눈에는 자식이 60, 70대가 되어도 아이라고 하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드네요.
ㅋㅋ 미니님도 이 책 갖고 계시는군요. 앞부분은 신화 이야기라서 진도가 잘 안나갔는데 왕조 이야기가 나오니까 역시 더 재밌어지네요.
미니님 건강 잘 챙기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중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각지에 정권이 동시에 병립하여 각각의 건국신화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지역 정권들은 끊임없이 흥망을거듭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신화는 함몰되어 버린다. 어떤 이유에선지함몰을 면한 일부가 세상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도요 플신화는 역사를 반영한 부분도 가지고 있지만, 결코 전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단편적인 반영이다. 어떤 의도에 따라 허구로 조작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화에서 역사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고고학상의 발견은 극히 구체적인역사 그 자체의 흔적이다. 그러나 흔적은 흔적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역사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구로 조작한다고 말했지만,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역사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신화가 기록된것은 국가의 통일이 어느 정도 이뤄져서, 그것을 더욱 강화할 필요를 느낀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미 8세기에 접어든 뒤였기 때문에 허구에의한 조작의 조직성이 높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 P13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실존을 부정했기 때문에
‘말살박사(抹殺博士)‘라고 불렸던 학자들이 일본에 있었다. 중국에도 그런부류의 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의고파(疑派)라고 불린다. 학문을 하는 자세로서 이것은 평가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시대에서조차도 실존인물이라 믿어지지 않았던 황제를 전부 허구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보고, 『사기』의 권두에 그 사실을 적었다. 맹종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자세는 일종의 의고파라 할수 있다. - P17

이미 친숙하게 알려진 신들로 가득 차 있는 시대에는 새로운 신을 끼워 넣을 틈이 없다. 억지로 끼워 넣는다 할지라도 이질 분자임을 알 수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녹아들지 못한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좀 더 오래된 시대에다 끼워 넣게 된다. 어차피 혼돈스러운시대이기 때문에 그 위로는 얼마든지 섞어 넣을 수 있다.
새로운 신일수록 더 오래된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가상설(加上說)‘이라고 하는데, 의고파인 고힐강(顧頡剛, 1893~1981,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북경대학 교수-옮긴이)이 주창했다. 일본에서도 에도(江戸) 시대에 도미나가나카모토(富永仲基, 1715~1746, 고문학 학자-옮긴이)가 같은 설을 주장했다.
새로운 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신들도 끼어들 자리를 찾고 있었다. 비주류파의 신들은 자칫 오래전 시대에 자리를 부여받았던것은 아니었을까. - P18

신화에 그 편린이 반영되어 있는 역사는 의외로 짧은 기간이었을지도모른다. 신화를 정리할 때 상당 부분을 크게 늘렸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복희와 여왜가 부부신임에도 불구하고 복희 다음이 여왜였다는 계보를 만들면 그 만큼 기간이 길어진다. 비주류의 신이지만, 가상설에 의해서 태고로 끌어올려진 삼황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라고 할 수있다. 공공처럼 신화의 바다를 오랫동안 표류해야 했던 신도 있었으니.
아마도 삼황은 조용했기 때문에 계보에 들어가는 일을 인정받았을 것이다. 난폭한 존재는 방황하는 신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사실은 그런신들이 더 윤곽이 뚜렷해서 우리에게는 재미있게 여겨지지만. - P30

세습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선양을 이상화할 필요가 생겼을 것이다.
세습은 사유재산이 늘어났기에 필요해진 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씨족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은 사유재산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반파유적에 - P60

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거주지 중앙에 집회소가 있어서 대부분의 일을거기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홍수나가뭄 등과 같은 자연재해와 다른 부족의 공격 외에는 문제다운 문제는없었을 것이다.
제사를 주재하고 파종이나 수확 시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왕의 주요한 일이었다. 황제 신화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데, 부족은지역적으로 연합을 하게 되었고, 부족연합의 대수장이 제왕이라 불렸다.
그리고 각지의 수장이 바로 제후였다.
부족의 연합은 다른 부족과 전쟁할 때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치수공사를 할 때도 역시 수많은 인력을모을 필요가 있었기에 형성된 것이다.
대수장은 커다란 힘을 모을 수 있었으며 그것을 지휘할 수 있었다. 사유재산은 틀림없이 그런 힘을 가진 대수장 주변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 P61

요가 제위(位)에 있고, 순이 섭정을 할 때
공공을 유릉(幽陵)으로 유배 보내 북적으로 바꾸고,
환두를 숭산(崇山)으로 추방해 남만으로 바꾸고,
삼묘를 삼위(三危)로 옮겨 서융으로 바꾸고,
곤을 우산(羽山)에 극(極, 유패)하여 동이로 바꾸고,
라는 처분을 했다.
북적, 남만, 서융, 동이라는 중국의 ‘사이관(四夷觀)‘이 여기에 나타나있다.
만들어진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적, 만, 융, 이등 중원에서 보면 변경에 있는 각 부족은 처음부터 변경에 있었던 것이아니라 중원에서 추방되어 사방의 변경으로 가게 된 것이라 되어 있다.
이것은 요와 순의 실재, 비실재 문제와는 상관없이 유력한 각 부족이 중원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땅으로 옮겼다는 역사적 사실을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식이었다고 여겨진다. - P65

청나라 말기의 개량주의자인 강유위(康有爲, 1856~1927)는 『대동서(大同書)』를 저술했는데, 그것은 점진적으로 태곳적 대동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책이다. 대동이 어떤 시대였는지 『예기』의 「예운편(禮運篇)」에 나타나 있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를 공(公)으로 삼고, 현(賢)을 뽑고, 능(能)을 존중하고, 신(信)을 익히고, 목(睦)을 닦는다. 오직 자신의 부모만을 부모라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자식만을 자식이라 하지 않는다. 노(老)에게는 마칠 곳이 있고, 장(壯)에게는 쓰일 곳이 있고, 유(幼)에게는자랄 곳이 있고, 긍과고독폐질(吟寡孤獨廢疾)인 자를 모두가 돌보는 - P79

곳이 있다. 남자에게는 분(分)이 있고, 여자에게는 귀(歸)가 있다. 화공(貨)는 그것을 땅에 버리기를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신이 저장하는 것은 아니다. 힘을 그 몸에서 내지 않는 것을 미워하지만 반드시 자신을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고로 모(謀)는 갇혀서 일어나지 않고, 도절난적(盜竊亂賊)은 더욱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문을 잠그지 않으니 이를 대동이라 한다.

세습이 시작된 하(夏) 이전이 대동의 세상이다. 이것을 설명해보면,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위공(天下爲公)‘이 된다는 것이다. 천하를 공의 것이라보고 사유화하지 않는다. 현자를 뽑고, 유능한 사람을 존중하여 쓰고,
신을 익히고, 서로 화목하게 지낸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만을부모라 여기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노인을 대할 때는 자신의 부모처럼섬긴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만 귀여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자신의 자식처럼 사랑한다. 노인에게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하고, 장년에게는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긍(나이 들고 아내 없는 자), 과(나이 들고 남편 없는 자), 고(어리고 부모 없는 자), 독(나이 들고 자식 없는 자), 폐질(장애자) 등은 모두가 돌보게 된다. 남자에게는 직분이 있고, 여자에게는 시집갈 수 있게 한다. 재화를 버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지만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공유 재산이다. 힘을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지만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모략 같은 것은 당연히 일어날 리가 없고,
물건을 훔치는 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잠글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대동의 세상이다. - P80

하라는 국호는 우가 처음으로 봉해진 나라의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그 후 전국적(全國的)인 정권은 시조가 처음으로 봉해진 땅의 국명을 국호로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상(商, 은), 주, 진(秦), 한, 위, 진(晋), 수, 당, 송 모두이 관례에 따른 것이다. 몽골 정권은 특별히 어디에도 봉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명이 아니라 추상적인 가명(名)을 골라서 원(元)‘이라고 명명했다. 원에 의해서 하 이후의 전통이 무너진 셈이다. - P102

전승에 의하면 하와 은은 조상이 같지만, 계열이 다른 부족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서로의 생활양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하가 멸망하고 은의 천하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생활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틀림없이 하는 권력의 자리에 안주하여 수장이나 그 주변의 간부들이 타락했을 것이다. 사람들도 퇴폐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기반의 생활권 속에서 보다 청신한 기풍을 가진 은이 힘으로 권력을 대신했다. 단절이나 혁신보다 계속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은에서 주로의 교체는 흔히 ‘은주혁명(殷周革命)‘이라 일컬어지듯 커다란 변혁이었다. 그것은 계속이라기보다는 단절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에 비해서 하와 은의 교체는 일종의 사회 발전 선상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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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945 이후 - 서로 의존하는 세계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이리에 아키라 책임편집, 이동기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1945년 이후의 세계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류의 결속과 분열 사이에 있는 그 간극을 메울 정도로 일련의 상호 연동 관계로 빠져들었다. 1945년 이전에는 변화의 동력이 주로 서구에서 발전한 근대 기술과 이데올로기였다면, 1945년 이후에는 문자 그대로 수백만 명이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그 과정에 참여해 앞서 존재했던 수많은 분리의 장벽들을 없앴다. 비서구 지역의 국가와 사람들은 서구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적응하기보다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심지어 사람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점점 더 많이 인식했을 때조차 인류의 결속에 관한 의식은 계속 성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자연생활환경과 함께 공유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21세기에 닥친 핵심 질문이 되었다. (P15)

현대 세계는 보통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시작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전 베크 세계사에서는 이와 다르게 20세기 전후부터 1970년 무렵까지 넓은 범위를 다루었다. 이는 전후 많은 국가들이 탈식민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고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이념 갈등이 시작되면서 냉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베크 세계사 마지막 권에서는 1945년 이후 전후 복구 과정과 이념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세계가 연결되는 초국주의를 다룬다. 이로써 1945년 전후의 세계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들여다본다.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와 기술의 발전에서 유럽 침식 경향을 가속화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소련을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유럽에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독일이 유럽 대륙을 패권적으로 장악하는 것은 결국 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일의 패권은 외부의 개입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었다. 독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유럽 국가들은 더는 유럽에서 자력으로는 경쟁과 균형의 옛 체제를 회복할 수 없었다. (P23)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럽의 세기는 기울고 미국과 소련이 부상하였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유럽의 대도시들이 파괴되었다. 참전국들에 전쟁으로 쏟은 비용이 막대했으나 전후 비용은 더 막대했다. 승전국도 패전국도 차등이 없었다.
미국은 1947년 초 서독을 포함한 서유럽 안정화를 위해 '마셜 플랜' 정책을 발표했다. 스탈린은 서유럽 정부들이 자신의 편에 서기를 기대했으나 거부되자 마셜 플랜에 참여하기를 포기했다. 동유럽 국가 정부들은 마셜 플랜 정책에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소련 지도부의 압박으로 대신 소비에트 블록이 만들어졌다.
트루먼 행정부는 마셜 플랜을 통해 서유럽을 재건하며 자유주의적 체제를 강화했다. 스탈린은 서독의 국가 건설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서독도 서유럽 블록 체제에 합류하였다. 1949년 말에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가 붕괴한 자리에 대립하는 두 개의 권력 블록이 만들어졌다. 그 블록은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승전 주역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유럽은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뉘었다. (P51)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 끝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섰다. 트루먼은 베이징 정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장제스를 구하는 군사작전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1950년 1월 12일에 딘 에치슨 국무부 장관은 아시아의 미국 '방위선'은 일본에서 필리핀 군도까지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것에 따르면 타이완의 국민당도 아시아 대륙의 여타 다른 정권들도 미국의 군사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P55~56)
한반도는 미소 갈등의 최전선이었다. 내전은 국제전으로 비화되었고 일본은 공산화를 막는다는 미국의 결정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미일안보조약을 연이어 체결하였고 자위대를 창설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대서양 지역과 같은 정치 결속을 갖지 못했다. 일본과 일본의 옛 지배 지역 사이에 반목이 지속되었고,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로 인해 1954년 초에 미국이 '공산주의 침략자들'에게 맞서자며 제안한 군사동맹에는 영연방국가들인 영국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를 빼고는 단지 필리핀과 태국, 파키스탄만이 참여했다. (P65)
인도는 상이한 지역에 따른 행정 권리를 넘길 대상이 불분명했다. 네루는 하나의 인도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이끄는 무슬림 연맹은 이슬람 주민을 위한 독자적인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이로써 인도 통합은 실패하였으며 1947년 8월 15일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독립국가로 선포되었다.

아랍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종속되는 것에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그 지역을 장악할 때 협력했던 전근대 지배 엘리트들에게도 각을 세웠다. 아랍 민족주의는 팔레스타인의 갈등으로 가속화되었다. 그것은 1917년 11월에 영국이 그 지역에서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거주지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말미암아 촉발되었다.

시온주의자들은 나치의 인종 학살 이후에도 아직 유럽에 남아 있는 유대인 난민들에게 시급히 새 고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끝에 1947년 11월 29일에 유엔 총회는 3분의 2의 지지로 두 개의 국가를 건설해 서로 결속시키는 분단 계획을 통과시켰다. (...) 1954년 5월 14일에 영국군은 팔레스타인을 떠났고, 유대인 군은 이미 강자의 지위를 차지했고, 유대인 국가 평의회 의장은 곧장 독립 '이스라엘 국가'를 선포했다. (P69~70)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영국으로 인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물론 이들간의 기본적인 종교, 민족주의적 갈등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말이다.

서구 열강과 동유럽 블록 국가 모두 재정적인 이유로 재래식 군비 계획을 1950년대 초에 계획했던 규모대로 이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의 지도부는 모두 점차 핵 억지력에 의존했다. 핵폭탄 투입을 경고하면서 재래식 군비의 결함을 보충하거나 고비용이 드는 재래식 무기고의 감축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핵 억지 체제로 넘어가니 핵무기로 인한 절멸 공포가 생겨났다. 그래서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열강 지도부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긴 인지 오류와 핵무기 대치 상태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대화가 지속되기는 극히 어려웠고, 그 결과 동서 준비 관계에서 새로운 긴장이 계속 발생했다. (P106~107)

카터는 전략 군비를 제한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감하게 감축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미 국방부는 새 협상안을 마련했지만, 그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렵게 달성된 양보안을 다시 미국의 헤게모니 지위에 유리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소련 군부가 그것에 맞서는 요구를 제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동시에 카터는 소련 내의 체제 비판가들에 대한 지지를 과시하듯이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것은 오히려 체제 비판가들을 더 심하게 탄압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으로 인해 브레즈네프는 카터와 직통선을 만들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소련의 팽창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카터는 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의 자문을 받아 들여 ‘중국 카드‘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1978년 5월에 카터는 브레진스키를 베이징으로 보내 전략 협력과 기술 지원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했다. 10월 중순에 미국과 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외교 관계 채택을 알림으로써 세계 여론을 놀라게 했다. (P133~P134)

고르바초프는 ‘56’ 세대였다. 그것은 흐루쇼프가 스탈린주의를 공격할 때 사회화되었으며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을 가졌지만 사회주의의 ‘개선‘을 희망했던 당의 관료들을 말한다. 그를 서기장으로 끌어올린 ‘옛 동지‘ 대표자들과 고르바초프의 근본적인 차이는 고르바초프는 이데올로기의 확신에 사로잡혀 소련제국의 불편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P167)
이념에 갇혀 있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 본 리더의 모습들을 통해 생각할 점이 많다.

미국 금융계와 의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의 이탈에 개의치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의 힘과 이익을 구현할 금융거래에 노력을 집중했다. 그들은 브레턴우즈 체제로 미국이 잠재적으로 소모적인 대규모 해외 원조 정책을 그만두어도 되리라고 기대하며 달러의 지위를 그 통화 체제의 ‘기축통화‘로 끌어 올렸다. 실제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록 각국은 자국 통화를 금에 ‘연동‘(국제 통화 기금 체제 안에서 합의된 환율 패리티 범위로 통화 가치를 고정하는 것)해야 했지만, 달러가 사실상 환율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달러는 새로운 금본위가 되었다. 국제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졌고, 모든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에 대한 비율로 규정했다.(35달러가 금 1트로이온스로 교환되었다.) 이 체제는 1950년대초 전후 재건 국면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되지만, 세계 전역에서 상품과 용역의 값은 달러로 지불되었다. 따라서 다자간 협정 체제의 토대는 달러였다. (P220)

2차 대전 후 미국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문호 개방을 하며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세계화의 체제를 선도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주도에 의한 무역과 금융의 민주화는 다원주의와 권력의 공유를 가져왔다. 유럽과 아시아의 신 세력이 부상하며 미국의 지도력은 도전을 받게 된다. 세계화는 세계적 협력을 요구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은 3~5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1, 2부가 세계를 이끈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주목했다면 3부에서 4부는 미국이 지구상에서 더 이상 동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 이유와 맞닿아 있다.

3부는 전후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지구의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 인류가 지구 생태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출현한 단계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를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인류세'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인류는 그 수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다른 종의 영향력을 크게 압도하면서 환경과 지구 생태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얼마나 오래 그렇게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먼 훗날 인류세는 하나의 지질 연대로 보기에는 너무 짧은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국제 지질학회는 지금 인류세를 그 학문적 개요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두고 씨름하고 있다.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우리 편에서 보면 다행이기도 하고 속박이기도 한데, 인류세는 앞선 지질시대들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P385)

저렴한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인류는 기후 변화를 목도하게 되었으며 경제와 의학 발전으로 인해 맞은 압도적인 인구 증가는 역설적으로 지구 자원의 부족을 느끼게 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은 파괴되었으며 생물다양성은 줄어들었다.
저렴한 에너지는 인간에게 새로운 지렛대를 제공했다. 그것을 수단으로 인간은 일을 성취했고 더 빠르고 멀리 이동했으며 돈을 벌었고, 때로는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코 환경을 변화시켰다. 저렴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그렇게 했다. (P421)

우리는 소수의 선호하는 식물 종과 동물 종을 선택하여 단순한 경관 안에서 관리했으며 이러한 경관에 잘 적응하는 다른 소수의 종들(쥐, 사슴, 다람쥐, 비둘기 따위)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경관에 살았던 다른 식물과 조류, 포유류, 곤충, 양서류의 수를 크게 줄이거나 이들을 제거했다. 이 점에서 윤리적질문은 언제나 거의 동일하다. 우리는 인간과 소, 닭, 돼지는 수십억 개체에 달하지만 호랑이와 코뿔소, 북극곰은 겨우 몇천 마리에 지나지 않거나 전혀 없는 세상에 만족하는가? (P474)
놀란 세계는 부랴부랴 환경보호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의 대중적 환경보호 운동은 인간 활동의 규모와 범위를 더 완전하게 인식하는 길을 닦았다. (P567)

21세기로 접어드는 세계 주요 대도시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뉴욕이나 파리, 도쿄, 두바이, 뭄바이, 나이로비 같은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느 도시에서나 같은 의류 상표를 볼 수 있고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같은 호텔 체인에 묵고 같은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같은 것들과 마주치기도 하지만, 한곳에서 더 다양한 것들을 접하기도 했다. 도시 주민, 식습관 그리고 음악, 영화, 연극, 문학 같은 문화 상품은 다민족적이고 다문화적인 성격을 띠어 갔다. 이러한 곳에서는 동질화와 이질화가 나란히 진행되면서 혼성적인 세계 문화가 나타났다. (P571)

4부는 인류가 교류하며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 각 지역의 문화는 지식을 생산하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사실 세계화라는 용어는 1970년대에 경제학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벤처기업의 통합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효과를 설명하려고 처음 사용했다. 세계화 지지자들은 우월한 경제적 문화적 관행을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아울러 창조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참여자 모두를 위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회의론자들은 기업의 탐욕과 경제적 착취가 각 지역의 자결권을 침해한다고 경고했다. 세계화는 또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창출해 주었지만, 주변부 주민들에게는 종속을, 나아가 모두에게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한 것으로 비쳤다. (P572)

사실 나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회의적인 면에 아무래도 더 기운다.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불평등은 문화적 흐름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세계의 각 시민들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 서구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과 더 직접 연관된 정치 운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환은 정치 체제를 바꾸지 못하는 무력함을받아들여서라기보다 전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역적·개별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등장한 운동들(예를 들어 환경 운동, 여성 운동, 게이 운동과 레즈비언 운동 등)은 국적이나 젠더, 인종에 상관없이 개인의 행복에 더 큰 관심을 표명했다. 이 운동들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동반자 관계, 가족, 공동체를 조직하는 대안적 방법을 실험했다. 성인을 위한 대안 노동환경과 어린이를 위한 대안 학습 환경을조성한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파편화tragmentation는 1960년대 운동의 힘을 분산시켰고, 동시에 서유럽과 미국의 사회적·문화적 풍경을 점차 변화시켜 나갔다. (P643)

서구에서 시작된 이런 운동들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영향을 끼쳤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런 흐름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교가 냉전과 맞물리며 세계 각지를 분열시키고 냉전 종식 후에도 정치와 결합하며 종교 민족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1979년 이란 혁명,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 중동의 종교적 갈등을 통해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다원주의가 종교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까? 정치에 종교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겠지만 부디 마사 누스바움의 관용주의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누스바움의 대안은 19세기에 오귀스트 콩트가 처음 제안하고, 존 스튜어트 밀이 가다듬은 "인류교"에 바탕을 두었다. 이 종교는 "공적 제도나 공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도덕 감정인 연민"을 신봉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이 애국심은 타인을 향한 관용과 연민을 담고 있기에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자긍심을 길러 준다. "자유로운 사회는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을 훼손하지 않고, 이러한 종류의 도덕적 이상[연민]을 확립하며, 그것을 뒷받침할 도덕 교육을 장려할 수 있다. 이 이상은 평등과 존중의 공적 규범과 결부되어 공적 정치 문화의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따라서 관용적 국가는 공적 활동에서 종교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기보다 종교적 다원주의와 관용을 국민 정체성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P689)

5부는 세계의 발전을 초국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초국적 역사, 초국적 접촉, 초국적 의식, 초국적 기억을 통해 전 세계가 공유하는 역사와 문화, 기억이 있음을 확인한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힘의 방정식이 냉전의 전부였다면 냉전은 그렇게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우리는 소련 뿐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사회주의 사회가 미래의 물결이라는 인상을 심으며 자본주의와 서구에 반대하는 여론의 관심을 끈 덕분에 세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냉전의 군사적 토대 뿐 아니라 이념적 토대에 대한 도전이 세계의 지정학적 지도를 뒤흔들고 뒤바꾸어 놓는 데 이바지했다. 이러한 도전은 근본적으로 초국적이었고, 전 세계적인 인권 운동과 세계 평화를 위한 운동에서 소련과 서구 모두에 맞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냉전 종식에는 이런 모든 요소가 담겨 있었고, 지정학적 ‘현실realities‘만을 원인으로 지목한다면 기본적으로 동어 반복일 것이다. 즉 냉전이 그러한 ‘현실‘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고 본다면 ‘현실‘이 변해서 냉전이 끝났다는 주장은 뻔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지정학적 게임이 벌어지는 무대가 크게 변해서 점차 게임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핵무장국도 여전히 존재하고 국제 관계와 국가 간 경쟁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초국적 세력이 꾸준히 그 자리를 침범해 가는 중이었다. (P825)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힘겨루기는 미소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냉전은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냉전 종식을 위해 많은 국제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등 초국가적인 도전이 끊이지 않았기에 허물어질 수 있었다. 국가의 노력, 리더의 결단이 냉전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냉전이 끝나고도 여전히 인류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겨누는 것이 공멸의 길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말의 세계는 이렇게 초국적인 존재들이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층위의 활동과 감정을 보여 주는 만화경 같았다. 초국적 존재는 대부분 국경이 낮아지고 국경을 초월한 정보 획득과 의사소통이 쉬워지면서 생긴 새로운 기회를 활용해 자신과 타인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계를 폭력과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활동을 벌인 부정적인 존재도 소수 있었다. 결코 초국적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물론 세계에는 초국적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다른 나라나 사회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사람도 있었고, 원칙과 취향, 성격 등을 이유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이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초국주의의 일부 측면에는 반대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P859)

인류는 끊임없이 교류와 단절을 이어가며 지금껏 발전해왔다. 최근 들어 각국에 우경화 정부가 들어서고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흐름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커다란 전쟁을 겪은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놀라운데 현재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현실이 씁쓸하다. 과연 세계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마지막 장에서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그는 적어도 초국주의에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뒤이어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가 들어섰다는 것은 자국에도 건강하지 못한 일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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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31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계화라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은 더 좁아진 느낌이에요. 네모난 영상으로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세상을 보는 느낌 ㅠㅠ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텐데 잊히기만 하는거 같아 안타까워요. 화가님 편안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마니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12-31 21:14   좋아요 1 | URL
냉전 이후 분열과 갈등이 끝날 줄 알았건만 여전히 반목은 계속되고 있네요. 말씀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그들만의 싸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제 말이 들리지는 않겠지요^^;
미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픈 것은 좀 나아지셨는지ㅠㅠ 새해에는 건강하세요.

청아 2022-12-31 21: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베크 세계사 45년이후를 올해 클리어 하셨군요!!
세계적인 우경화 현상은 과거 전쟁,역사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벽돌장인 화가님 화이팅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1-01 18:12   좋아요 0 | URL
네^^ 클리어하고 2022년을 끝내고 싶어서 열심히 읽었습니다ㅎㅎㅎ 앞 권들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오면 그때가서 읽는 것으로 하려구요.
미미님 올 한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독서 생활도 화이팅입니다!*^^*

2022-12-31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1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1-01 0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45년이후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화가님, 한분야를 깊이 읽어내시는 모습, 항상 존경합니다.
내년에도 읽기 화이팅이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리의화가 2023-01-01 18:17   좋아요 1 | URL
이 책에도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 군데 언급됩니다. 한반도 뿐 아니라 미소 등 많은 국가들에 냉전을 더 심화시킨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뿌리깊은 이념 갈라치기도 여전한 요즘 생각이 깊어집니다.
페넬로페님의 올해 책 읽기 힘껏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독서괭 2023-01-01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성실한 독서생활 하자구요!! 😆

거리의화가 2023-01-01 18:18   좋아요 1 | URL
괭님. 해피 뉴 이어!ㅎㅎㅎ 올해도 함께 즐겁게 읽어요^^

희선 2023-01-01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자기 나라 이익만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나라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좋은 쪽으로 흐르면 좋을 텐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끝나기를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 잘 챙기시고 2023년에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1-01 18:19   좋아요 1 | URL
회의적인 사람이라 회의적인 생각만 듭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겠죠^^;;;

희선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올해도 희선님의 읽고 쓰기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3-01-01 0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의 역사 연구는 2023년에도 계속될거 같습니다~!! 2023년도 즐거운 독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3-01-01 18:1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응원 고맙습니다^^ 올해도 좋은 소설 많이 소개해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