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 (Paperback, 미국판, International Edition) - 『아름다운 아이』원서
R. J. Palacio / Random House USA Inc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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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한다. 학창 시절은 내게 괴로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홈스쿨링을 하던 아이가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가 겪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1인칭이 아니라 같은 사건을 다양한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한 것은 일방적 방향의 서술을 지양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판단된다. 이는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어떤 폭력이든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폭력은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가해자는 가볍게 던진 농담이나 신체적 학대가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이를 실제로 겪었고 아주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겪었다. 지금도 때때로 괴로운 기억으로 올라오기도 하니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진도가 쑥쑥 나갔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후부터는 읽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한 템포씩 쉬면서 읽어 내려갔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 냄새가 난다고, 미의 기준에 떨어진다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고 쉽게 차별을 가한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Standard를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비켜서 있으면 그를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 있나.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는데 나의 생각을 옳다 여기고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다정함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가해를 주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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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2-11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거리의화가님 피해자셨나요 ㅠㅠ 읽기 힘드셨겠습니다… 이런 책이 사람들에게 폭력을 지양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3-02-11 12:34   좋아요 3 | URL
피해의 강도가 있을 뿐 일상 생활 속에서 차별의 행위는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사실은 3점을 줄까 하다가 이런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1점을 더했어요. 괭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2-11 09: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말 ‘더 글로리‘ 란 넷플 드라마를 봤거든요. 너무 끔찍해서 내 삶이 피폐해지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힘들고, 본 이후도 힘들더라구요.
이 책도 그러한 종류의 책이군요?
어휴~ 더욱 힘드셨겠습니다.
저런 쪽의 드라마든 책이든 자극적인 요소로 재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음 싶은데, 그 효과는 얼마만큼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드라마의 후유증이 넘 컸네요.
차라리 책을 읽는 게 더 나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2-11 12:37   좋아요 4 | URL
저는 ‘더 글로리‘ 이런 드라마류 자체를 못보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이지만 사실 실상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테니까요. 저는 학교폭력 뿐 아니라 성폭력, 강간, 일상적인 차별과 배제 행위를 접할 때마다 분노하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다만 이런 매체를 통해서 이를 모방하는 것으로 이어질까 두려워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니까요. 나무님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3-02-12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읽으셨군요 ~! 사람이 사람을 왜 괴롭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 저도 알게 모르게 제가 누군가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는군요~~

거리의화가 2023-02-13 09:11   좋아요 1 | URL
네^^; 한 달 넘게 붙잡고 있었네요ㅠㅠ 사실 영어 수준은 쉬운데 내용 때문에 좀 오래 걸렸습니다.
왕따, 따돌림 이런 장면 나올 때 답답해지더라구요. 그래도 공유하고 싶은 책입니다^^
 




아이다 벨 웰스, 메리 처치 테럴: 흑인 여성 운동의 리더들






프레더릭 더글러스(19세기), W.E.B. 듀보이스: 흑인 여성 운동을 지지한 주도적 남성들


전미여성참정권협회의 지도부가 ‘피부색 문제‘에 대해서 취했던 표면상의 ‘중립적인‘ 입장은 사실상 참정권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 내에서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사고가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맞춤하게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여성참정권협회의 1895년 대회에서, 참정권 운동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은 "니그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여성참정권을 채택할 것을 남부에 촉구했다".10 헨리 블랙웰의 주장에 따르면 이 ‘니그로 문제’는 투표권에 문해력 요건을 넣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 P182

1899년 참정권 운동가들은 재빨리 탐욕스러운 신흥독점자본가들을 향한 한결같은 충성의 증거를 마련했다. 인종주의와 쇼비니즘의 명령이 국내 노동계급에 대한 전미여성참정권협회의 정책을 이미 결정해놓았으므로 이들은 미제국주의의 새로운 개가를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 P187

흑인 여성들의 조직 결성 경험은 남북전쟁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백인 자매들처럼 문학 모임과 자선 모임에 참여했다. 그 시기에 이런 활동들은 대체로 노예제 반대라는 대의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 운동에 함께했던 백인 여성들과는 달리 흑인 여성들의 동기는 자선이나일반적인 도덕적 원칙보다는 흑인의 생존이라는 확고부동한요구였다. 1890년대는 노예제 폐지 이후 흑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인종의 저항 투쟁에 가담할 의무를 느꼈다. 밀어닥치는 린치의 물결과 흑인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성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최초의 흑인여성 클럽이 조직되었다. - P203

수전 B. 앤서니,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그리고 다른 신문사 동료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대의에 중요한 기여를 하긴했지만 사실 이들은 단 한 번도 노동조합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흑인해방이 백인 여성들의 이해보다 일시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이들은, 노동운동이 힘을 얻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단결과 계급 연대라는 근본적인 원칙들을 전적으로 포용하지 못했다.
참정권 운동가들이 보기에 ‘여성’은 궁극의 시험대였다. 만일여성의 대의를 더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남성 노조원들의 파업에서 여성들이 배신자 노릇을 해도 잘못이 아니었다. - P218

노동계급 여성들은 계급투쟁을 지속하는 데 보탬이 되는 무기로서 참정권을 요구했다. 여성참정권 운동 내에서 이 새로운 관점은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실제로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참정권 운동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노동계급 자매들의 경험에서 탄생한 투쟁의 비전을 옹호했다. - P223

흑인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다인종운동을 구성하는 데 그 ‘관찰과 판단이라는 분명한 권력‘
을 보탤 의지가 누구보다 더 컸다. 하지만 이들은 백합처럼 환한 백인 여성참정권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번번이 배반당하고퇴짜맞고 거부당했다. 참정권 운동가들에게도 여성 클럽 회원들에게도 흑인 여성들은 남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하얀 피부색으로 아양을 떨어야 할 때가 되면 바로 갖다 버릴 수 있는대상에 불과했다. 여성참정권 운동의 경우, 남부의 여성들을위해 한 온갖 양보는 결국에 별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정헌법 제19조*에 대한 투표 결과를 분석해보니 남부의 주들은 여전히 반대 진영에 도열해 있었고 사실 이 수정안을 거의 부결시킬 뻔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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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란 서서히 동화된 진부한 예술 작품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만이 매력과 우아함과 자연의 형태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독창적인 예술가란 바로 이런 진부함을 벗어 버리는데서부터 출발한다. - P52

오데트는 스완에게 ‘그의 차를‘ 따라 주며물었다. "레몬 아니면 크림?" 그래서 스완이 "크림."이라고 대답하면 그녀는 "구름 한점만큼!"***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그가 맛있다고 하면 "자, 보세요, 전 당신이 좋아하는 걸 잘 알아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그 차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스완에게도 아주 귀중해 보였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렇듯 여러 기쁨 속에서, 그 사랑을 정당화해 주고 사랑의 지속을 보장해 주는 증거를 필요로 하므로(반대로 기쁨은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 P66

없으며, 사랑과 더불어 끝난다.) 저녁 7시 그녀와 헤어져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는 이 오후가 가져다 준 기쁨을 억누를 길이 없어 "이처럼 귀하고도 맛있는 차 한 잔을 자기 집에서 대접해 줄 귀여운 여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되풀이했다. - P67

‘피렌체 작품‘이라는 단어가 스완에게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치 어떤 작품의 제목과도 같은 이단어는 오데트의 이미지를 그녀가 지금까지는 접근할 수 없었던 꿈의 세계로 침투하게 했고, 거기서 그녀는 고귀함으로적셔졌다.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단순한 육체적 관점은 그녀얼굴이나 육체, 그리고 다른 모든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불러일으키면서 그의 사랑을 약화해 왔는데,
대신 어떤 미학적인 요소를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되자 이런 의혹은 이내 사라지고 사랑은 보다 확실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입맞춤이나 육체의 소유가 시든 육체에 의해 주어졌을 때는 자연스럽고 하찮게 보이던 것이, 박물관 예술품에 대한 숭배가 이를 축성하러 오자 초자연적이고 감미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 P71

프레보 카페로 가는 마차를 탄 스완은 이미 예전의 스완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혼자가 아니었고, 새로운 존재가 그에게 들러붙고 뒤섞여서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이 새로운 존재로부터해방될 수 없을 것이며, 마치 스승이나 질병에 대해 그러하듯이, 이 존재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존재가 그에게 덧붙었다고 느낀 순간부터 그의 삶은 보다 흥미로워 보였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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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戌】三十二年始皇巡北邊盧生入海還因奏錄圖書曰亡秦者胡也始皇乃遣蒙恬發兵三十萬人北伐匈奴收河南地爲四十四縣築長城因地形用制險塞起臨洮至遼東延袤萬餘里威振匈奴

【戊子】三十四年丞相李斯上書曰異時諸侯並爭厚招遊學今天下已定法令出一百姓當家則力農工士則學習法令今諸生不師今而學古以非當世惑亂黔首相與非法敎人聞令下則各以其學議之入則心非出則巷議誇主以爲名異趣以爲高率群下以造謗如此弗禁則主勢降乎上黨與成乎下禁之便臣請史官非秦記皆燒之非博士官所職天下有藏詩書百家語者皆詣守尉雜燒之有偶語詩書者棄市以古非今者族所不去者醫藥卜筮種樹之書若欲有學法令以吏爲師制曰可 

분서를 위해 몰아가는 이사


【己丑】三十五年使蒙恬除直道道九原抵雲陽塹山堙谷千八百里數年不就

○ 始皇以爲咸陽人多先王之宮廷小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先作前殿阿房東西五百步南北五十丈上可以坐萬人下可以建五丈旗周馳爲閣道自殿下直抵南山表南山之顚(巓)以爲闕爲複道自阿房渡渭屬之咸陽以象天極閣道絶漢抵營室也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乃分作阿房宮或作驪山發北山石槨寫(瀉)蜀荊地材皆至關中計宮三百關外四百餘於是立石東海上朐界中以爲秦東門因徙三萬家驪邑五萬家雲陽皆復不事十歲

○ 侯生盧生相與譏議始皇因亡去始皇聞之大怒曰盧生等朕尊賜之甚厚今乃誹謗我諸生在咸陽者吾使人廉問或爲妖言以亂黔首於是使御史悉按問諸生諸生傳相告引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皆坑之咸陽始皇長子扶蘇諫曰諸生皆誦法孔子今上皆重法繩之臣恐天下不安始皇怒使扶蘇北監蒙恬軍於上郡

진시황이 함양의 유생들을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자신이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이에 유생들을 심문하니 고발당한 모두가 함양의 구덩이에 빠져 죽였다(갱유). 시황의 첫째 아들인 부소를 몽염 장군이 있는 곳으로 쫓아 보냈다.

【辛卯】三十七年冬十月始皇出遊左丞相斯從少子胡亥最愛請從上許之西至平原津而病秋七月丙寅始皇崩於沙丘平臺丞相斯爲上崩在外恐諸公子及天下有變乃秘之不發喪獨胡亥趙高及幸宦者五六人知之趙高乃與丞相斯謀詐爲受始皇詔立胡亥爲太子更爲書賜扶蘇數以不能闢地立功上書誹謗將軍恬不矯正知其謀皆賜死扶蘇自殺胡亥至咸陽發喪襲位九月葬始皇於驪山下

진시황이 서쪽으로 출행한 뒤 평원진에 이르러 병이 나 사망하였다. 외부에서 황제가 붕어했기 때문에 호해, 조고, 이사만 이 사실을 안 채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세 명은 거짓으로 시황의 서신을 빌미삼아 첫째 아들인 부소가 아닌 둘째 아들 호해를 태자로 삼고 그를 왕위에 옹립했다.


二世皇帝在位三年壽二十四

【壬辰】元年春二世東行郡縣夏至咸陽謂趙高曰人生世間譬猶聘六驥過決隙也吾欲悉耳目之所好窮心志之所樂以終吾年壽可乎趙高曰陛下嚴法而刻刑盡除先帝之故臣更置陛下之所親信則高枕肆志寵樂矣二世然之乃更爲法律務益刻深大臣諸公子有罪輒僇死〈出李斯傳〉

○復作阿房宮盡徵材士五萬人屯衛咸陽

○秋陽城人陳勝陽夏人吳廣起兵於蘄是時發閭左戍漁陽九百人屯大澤鄕勝廣皆爲屯長會天大雨道不通度已失期乃召令徒屬曰公等皆失期當斬且壯士不死則已死則擧大名耳王侯將相寧有種乎衆皆從之乃詐稱公子扶蘇項燕爲壇而盟稱大楚勝自立爲將軍廣爲都尉入據陳〈出陳涉傳〉

陳中父老請立涉爲楚王張耳陳餘曰秦爲無道暴虐百姓將軍出萬死之計爲天下除殘今始至陳而王之示天下私願將軍毋王急引兵而西遣人立六國後自爲樹黨爲秦益敵敵多則力分與衆則兵强誅暴秦據咸陽以令諸侯則帝業成矣涉不聽自立爲王諸郡縣苦秦法爭殺長吏以應涉〈出陳餘傳〉

이사의 사사로운 욕심? 조고는 이를 이용했다.

중단되었던 아방궁 공사를 재개하였다.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켰다. (진승이 스스로 장군이 되고 진에 들어가서 스스로 초왕이라고 칭하며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장이와 진여가 육국의 제상이 되어 사람을 모아 세력을 얻는 계책을 내며 이에 반대했으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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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흑인 여성에게 해방의 의미

노예 해방 후에도 흑인 여성은 대부분이 농장에서, 주방에서 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부의 흑인들은 노예제 대신 재소자 임대 제도에 의해 재소노동자로 당국에 임대되어 수용 시설에 수용된 채 쓰러져 숨을 거둘 때까지 노역을 당했다. 재소자 임대 제도는 노예 소유주와 주 당국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어 그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었다. 재소자 여성들의 경우 감옥에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노예제 이후 농장에서 시달리지 않는 대다수 흑인 여성 노동자들은 가사 노동자가 되어 30년 이상 집 안 하인으로 일했다. 그녀는 백인 고용주의 노예에 불과한 삶을 살았다. 사실상 가사서비스는 노예제의 연장 선상에 다름 아니었다.

짐크로법은 철저한 인종 분리 정책으로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된 법이다. 흑인들은 이 때문에 백인보다 경제, 교육, 사회 모든 면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웃긴 것은 흑인 하인이 백인과 같이 있으면 문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도장이나 지문처럼 주인이 있으면 그 상황에서는 하인 또는 노예가 인정되고 허락되는 시스템이었다.

흑인 여성의 '부도덕함'에 대한 끈질긴 이야기는 가사 노동자의 취약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가사노동은 대부분 흑인 여성이 수행하고, 비천한 일을 수행하는 흑인 여성들이 '무능'하고 '문란'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이 가사 노동을 한다고 해서 그런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서 그들이 무능하고 문란한가. 이는 신화로 이용되는 도구였을 뿐이라 생각한다.
1890년 인구 총조사에서 48개 주 가운데 32개 주에서 대다수의 흑인들이 종사하는 직업이 가사 서비스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 당시 백인 여성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백인 여성들은 가사 노동자들의 투쟁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예제에 맞서지 않는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의 비인도성을 외면하였다. 1940년까지도 노예제에서 해방된 흑인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운 좋게 산업계에 진출한 흑인 여성들도 저임금과 착복에 시달렸다.



6장 교육과 해방: 흑인 여성의 관점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흑인은 열등한 위치에 자리했으나 그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는데 적극적이었다. 

다행인 것은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은 연대하였다는 것이다. 프루던스 크랜들과 마거릿 더글러스, 미르틸라 마이너는 젊은 흑인 여성들에게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투쟁했다. 미르틸라 라이너는 1851년 위험을 무릅쓰고 학교를 열었다.

교육은 흑인들에게 해방이자 빛이었다. 교육을 받은 흑인들은 자신들이 얻은 지식을 노예 해방과 집단 투쟁에 이용하였다.

1831년 냇 터너 반란 이후 남부에는 노예 교육 금지 법안이 강화되었다. 메릴랜드와 캔터키 주를 제외하고 모든 남부가 노예 교육을 금지하였다.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들의 교육을 저지하기 위해 체벌을 가했다. 그럼에도 몰래 독학으로 읽고 쓰기를 배운 이들은 자매와 형제들에게 지식을 나누었다. 

남북전쟁 이후 남부에 여러 흑인 대학들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인종분리 교육이 등장하여 흑인의 교육 기회가 급감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교육에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사실 여전히 "유색인종 여성은 백인 남성의 적법한 먹잇감 취급을 당했다". 그리고 만일 이들이 백인 남자의 성폭력에 저항할 경우 감옥에 내팽개쳐져서 ‘또 다른 형태의 노예제로의 회귀‘인 시스템의 피해자로 전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 P146

나는 백인 아이들과 전차를 기차를 타러가곤 했고 (...) 앞자리든 뒷자리든 내가 원하는 데는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백인 남자가 다른 백인 남자에게 "저 검둥이가 여기서 뭐하는 거죠?"하고 물었는데 "아, 저 여자는 그 앞에 있는 백인 아이들의 보모예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순식간에 평화의 침묵이 찾아왔다. 내가 하인-노예-으로서 백인 남자의 객차에 오르거나 전차의 백인 남자 구역에 있는 한 만사형통이지만 옆에 백인 아이가 없어서 내가 하녀임을 증명할 수 없으면 단박에 ‘검둥이‘ 자리나 ‘유색인종 객차‘를 할당받곤 한다. - P148

재건시대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 가사 노동자들은 ‘그 집 남자‘들이 자행하는 성학대를 중대한 직업상의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여겼다. 이들은 번번이 일을 하다가 피해를 당했고, 자신과 가족이 절대 빈곤으로 떨어지든가 성학대에 굴종하든가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지아의 한 여성은 "마님의 남편이 내게 키스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입주 일자리 중 한 곳을 잃었다. - P149

인종주의는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백인보다 흑인하인을 더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이 흑인을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들은 실제로는 하인-솔직히는 노예-은 천생 흑인의 숙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다른 고용주는 자신의 요리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근면하고 조심성이 있어요. 정성스럽죠. 그녀는 착하고 충직한 사람이고, 아주 고마워할 줄 알아요." 미국 문학과 이 나라의 대중매체는 흑인 여성의 숱한 전형을 충직하고 참을성 있는 하인으로 제시한다. - P152

백인 여성들은 더 나은 일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 가사노동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흑인 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이런 일자리에 발목이 붙들렸다. 심지어 1940년대에도 뉴욕과 그 외 대도시에는 백인 여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흑인 여자들 무리에서 원하는 사람을 골라갈 수 있는 길거리 시장-현대판 노예 경매장-이 존재했다. - P153

작금의 ‘중간계급‘ 페미니스트 프로그램에서 가사 노동자 문제가 편의적으로 누락된 것은, 그들이 부리는 가정부에 대한 착취적인 처사를-최소한 부유층 여성들의 입장에서-감추고 정당화하는 방편인 것으로 드러날 때가 심심찮게 있었다. - P155

수백만 흑인-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은 해방이 ‘주님의 강림‘이라고 확신했다. - P161

흑인들은 해방이 되면 ‘40에이커의 땅과 노새 한 마리‘가 생긴다는 망이 악의적인 루머임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땅을 손에 넣기 위해, 정치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 치며 투쟁해야 했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지내던 이들은 간절한 학구열을 충족시킬 권리를 열정적으로 부르짖게 된다. - P163

마르틸라 마이너는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돌을 던지는 인종주의 폭도들의 여러 비행과 방화 시도, 퇴거 조치와 전투를 벌였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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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0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예제도가 없어졌다고 해도 오랫동안 흑인과 백인은 화장실을 함께 쓰면 안 된다는 법도 있었군요 흑인은 거의 가정부 일을 했네요 교육은 중요하죠 그게 아무 도움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차이가 크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10 09:43   좋아요 0 | URL
네 인종분리 정책은 악명높았죠. 196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그닥 나아지지 못했다는 것. 흑인들은 필사적으로 교육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자신들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구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