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본기
진시황 본기

목공은 백리혜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 많은 재물을 치러서라도그를 데려오려 했으나, 초나라 사람들이 내주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에 사람을 보내 초나라에 일러 말했다.
"나의 잉신인 백리혜가 여기 있는데, 청컨대 검정 숫양 가죽 다섯장으로 그의 몸값을 치르고자 한다."
초나라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여 백리혜를 내주었다. 이때 백리혜는 나이가 이미 일흔 살이 넘었다. 목공은 감옥에 갇힌 백리혜를 풀어 주고 그와 함께 국사를 논의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리혜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망한 나라의 신하인데 어찌 자문할 수 있겠습니까!"
목공은 말했다. - P170

"우나라 임금이 그대를 등용하지 않아서 망했으니 그대 죄가 아니오."
그러고는 묻기를 고집하여 사흘 동안 이야기했다. 목공은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면서 오고대부五段大夫라고 불렀다. 백리혜가 다시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제 친구 건숙蹇叔에 미치지 못합니다. 건숙은 현명한데도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신이 세상을 떠돌다가 제나라에서 곤경에 빠져질 땅의 사람들에게 걸식했는데 건숙이 신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신은 이 일로 인해 제나라 왕 공손무지를 섬기고자 했으나 건숙이 신을 말렸습니다. 그래서 신은 제나라의 난을 벗어나 마침내 주나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나라왕자퇴가 소를 좋아한다기에 신은 소 기르는 재주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퇴가 신을 쓰려고 할 때 건숙이 신을 말렸기에 신은 떠나서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나라 임금을 섬기자 건숙이 다시 신을말렸습니다. 그러나 신은 우나라 임금이 신을 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사로이 녹봉과 관직이 탐나 잠시 머물렀습니다. 두 번은 그의 말을 들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한 번은 듣지 않아 우나라임금의 재난을 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현명하다는것을 압니다." 이에 목공은 사람을 보내 많은 예물을 들여 건숙을 맞이하고 상대부로 삼았다. - P171

동주의 군주가 제후들과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도모하자 진나라는 상국 여불위呂不韋를 시켜 그를 죽이고 그 나라를 모두 진나라에 편입했다. 진나라는 주나라의 제사를 끊지 않고 양인陽人 땅을 주군周君에게 내려 주어 그 제사를 받들게 했다. 몽오蒙鰲에게 한나라를 정벌하게 하니, 한나라는 성고成皐와 공鞏을 바쳤다. 진나라의 국경이 대량에 이르렀고, 처음으로 삼천군三川郡을 설치했다.
[장양왕] 2년, 몽오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하여 태원을 평정했다.
[장양왕] 3년, 몽오가 위나라의 고도 급을 침공하여 점령와
했으며, 조나라의 유차, 신성, 낭맹서른일곱 군공격하여데 성을 빼앗았다. 4월에 일식이 있었다. 왕흘이 상당을 공격했다.
처음으로 태원군太原郡을 설치했다. 위나라 장수 무기無忌가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진을 공격하자, 진나라는 황하 바깥으로 물러났다. 몽오가 패배하여 포위망을 풀고 달아났다. 5월 병오일에 장양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정이 자리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 P204

대량 사람 위료尉繚가 와서 진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했다.
"진나라가 강대해지자, 제후들은 마치 군현의 우두머리와 같아졌습니다. 신은 다만 제후들이 합하여 군대를 모아 뜻하지 않게 출병할까 두려우니, 이는 바로 지백, 부차, 민왕이 망하게 된까닭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권세 있는 대신들에게 주어서 그들의 모략을 혼란스럽게 하신다면, 불과 삼십만금만 쓰고서도 제후들의 그러한 마음을 완전히 없앨 수 있습니다." - P213

진나라 왕은 한단에 가서 일찍이 자신이 조나라에서 태어났을 때 외갓집과 원한 맺은 사람들을 모두 산 채로 묻었다. - P216

과인은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군대를 일으켜 포학한 반도들을 주살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혼령이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섯 나라 왕이 모두 자신들의 죄를 승복하니 천하가 크게안정되었다. 이제 〔나의] 호칭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룬 공적에 걸맞지 않게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그대들은 제왕의 칭호를 논의하라."
승상 왕관, 어사대부御史大夫 풍겁馮劫, 정위廷尉 이사 등이 모두 말했다.
"옛날에 오제는 땅이 사방 일천 리였고, 그 바깥의 후복이나 이복夷服의 제후들 가운데 어떤 자는 조회에 들기도 하고 어떤 자는들지 않았으나, 천자가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의로운 군대를 일으키시어 남아 있는 적들을 주살하고 천하를평정하여 전국에 군현을 만들고 법령을 통일하셨으니, 아주 오랜옛날 이래로 일찍이 없었던 일로 오제라 할지라도 감히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들이 삼가 박사들과 함께 의론하여 말하기를
‘고대에는 천황天皇이 있고, 지황地皇이 있고 태황泰皇이 있었는데,
태황이 가장 존귀했다.‘ 라고 했습니다. 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존칭을 올리나니, 왕을 ‘태황‘이라 하십시오. 명命을 ‘제制‘ 라 하시고, 영습을 ‘조詔‘라 하시며, 천자가 스스로를 부를 때는 ‘짐朕‘ 이라 하십시오." - P219

"짐이 듣건대 태고太古 때에는 호號는 있었으나 시호는 없었으며,
중고中古 때에는 호가 있다가 죽으면 행적에 의거해 시호를 삼았다고 한다. 이와 같다면 자식이 아버지를 논의하는 것이나 신하가 군주를 논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짐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지금부터는 시호를 정하는 법을 없애노라. 짐은 시황제始皇帝라 부른다. 후세부터는 수를 세어 이세二世, 삼세三世에서 만세萬世8에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전하도록 하라." - P220

시황제는 오덕五德오행의 처음과 끝이 번갈아 이어지는 순서를 헤아려 주나라는 화덕德을 얻었는데 진나라가 주나라의 덕을 대신했으니 화덕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야흐로 이제부터는 수덕德이 시작된다고 생각해 한 해의 시작을 바꾸고 조정의 하례식도 모두 10월 초하루에 거행했다. 의복과 깃발과 부절의 색은 모두 검은색을 숭상했다. 숫자는 6을 기준으로 했으니 부절과 법관法冠을 모두 여섯 치로 하고 수레 너비는 여섯 자로 했다. 또 여섯 자를 일 보步라 하고 수레 한 대를 여섯 마리 말이 끌게했다. 황하의 이름을 덕수德水로 바꾸어 수덕의 시작으로 삼았다. 강하고 엄하며 매몰차고 깊이 있게 모든 일을 법에 따라 결정하고, 각박하게 인애, 은혜, 조화, 감정이 배제되었을 때에야 오덕의 수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 P220

장강을 타고 상산으로 가서 제사를 지냈다. 큰 바람을 만나 거의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진시황이 박사들에게물었다.
"상군湘君은 어떤 신인가?"
박사들이 대답했다.
"듣자니 요임금의 딸이며 순임금의 아내였는데 이곳에 묻혔다고합니다."
그러자 진시황은 크게 화를 내며 죄수 삼천 명을 시켜 상산의 나무를 모두 베게 한 후 그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 P227

"이제 황제께서 천하를 합하여 소유하시고흑과 백을 구분하여 지존황제 한 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도록 하셨사온데, 아직도 사사로운 학문으로 서로 함께 법령과 교화를 흐비난하고, 사람들은 내려진 법령을 듣고 각기 자신의 학문으로 그것을 의논하니, 조정에 들어오면 마음속으로 반감을 품고 조정을 나오면 길거리에서 논의하며, 군주에게 과시하여 명예를 만들고 기이한것을 취해 고귀함으로 만들고 아랫사람을 이끌어 비방을 조성합니다. 이런 짓을 금하지 않는다면 위로는 군주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붕당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마땅히 이를 금지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신이 사관에게 명해 진나라 기록이 아니면 모두 태워 버리도록 청하겠습니다." - P233

이때 진시황은 함양에 인구는 많은데 선왕의 궁전선왕 때 지은 궁전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내가 듣건대 주나라 문왕은풍에 도읍하고 무왕은 호에 도읍했다 하니, 풍과 호 사이가 제왕의 도읍지이다."
이에 위수 남쪽 상림원 일대에 궁전을 지었다. 먼저 아방阿房에 전전을 만들었는데, 동서로 오백 보이며 남북으로 오십장으로 위쪽에는 일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쪽에는 다섯 장 높이 깃발을세울 수 있었다. 사방으로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부터 곧장 남산南山까지 이르게 했다. - P234

내가 노생 등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많은 것을 내렸으나이제는 나를 비방함으로써 나의 부덕함을 더하고 있다. 함양에 있는유생들에 대해 내가 사람을 시켜 조사해서 물어보도록 하니 어떤 자는 요사스러운 말로써 백성들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에 어사를 보내 유생들을 심문했다. 유생들이 서로를 고발하니법령으로 금지한 것을 범한 자가 사백육십여 명이었다. 그들 모두를 - P237

함양에 생매장하고 천하에 알려 후세에 경고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징발하여 변경으로 유배시켰다.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扶蘇가 간언하여 말했다.
"천하가 막 평정되었으나 먼 곳의 백성들은 아직 따르지 않고으며, 유생들은 모두 암송하며 공자를 본받고 있는데, 지금 황상께서 법을 엄격하게 하여 그들을 옭아매니, 신은 천하가 안정되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황상께서 이 점을 살펴 주십시오."
그러자 진시황은 노여워하며 부소를 북쪽으로 상군에 파견하여몽염을 감시하게 했다. - P238

유성流星이 동군東郡에 떨어졌는데 땅에 닿자 돌덩이가 되었다. 백성들 가운데 누군가그 돌에 새겨 말했다.
"진시황이 죽으면 땅이 나누어지리라."
진시황이 그 말을 듣고는 어사를 파견해 추적하면서 심문했지만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돌이 있던 곳 주변에 사는 자들을모두 잡아 죽이고 그 돌을 불살랐다. - P238

7월에 수자리 병사 진승陳진섭등이 옛 형 땅에서 모반을일으켜 ‘장초張楚초나라를 넓힌다는 뜻‘ 라 했다. 진승은 스스로 자리에올라 초왕楚王이 되었으며, 진현에 머물면서 여러 장수들을 보내 땅을 점령하게 했다. 산동군현의 젊은이들은 진나라 관리에게 고충을 겪자 각자 자기 지방의 군수郡守, 군위郡尉, 현령縣令, 현승縣丞을 죽이고 모반을 일으켜 진섭 1에게 호응했다. 그들은 서로 자리에 올라 제후나 왕이 된 후, 진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연합하여 서쪽으로 향했는데, 그 수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 P249

이세황제가 말했다.
"짐이 듣건대 한비자는 ‘요순은 나무를 베어다 깎아 내지 않고 서까래를 만들고 띠로 지붕을 이을 때도 처마 끝을 잘라 내지 않았으며, 질그릇에 밥을 먹고 토기에 물을 담아 마셨으니, 비록 문지기의먹을 것이라 해도 이보다 누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임금은 용문龍門을 뚫어 대하大夏로 통하게 하여 황하의 막힌 물길을 터서 바다로흐르게 할 때 직접 자신이 가래를 쥐고 흙을 다듬어 정강이에 털이없어졌으니 노예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대단하지 않다.‘ 라고 말했다한다. 무릇 천하를 얻어 귀하게 된 자는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할 수 있으며, 군주가 엄중히 법을 밝히면 아랫사람들이 감히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아서 천하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은나라와 하나라의 군주는 고귀하여 천자가 되었는데도, 몸소 곤궁하고 수고로 - P251

운 고단한 현실에 처해서 백성들을 위해 희생했으니, 오히려 무엇을본받겠는가? 짐은 지극히 존귀한 만승萬乘의 천자이나 그 실질적인것이 없으니 천승의 어가 만의 군속을 만들어 내 이름과 칭호를 충족하려 하는 것이다. …" - P252

진나라은 장한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을 정벌하게 했으나 장한은 이를 틈타 삼군三軍의 무리에 의지해 바깥에서 협상을 하여 그의 황상에게 모반했다. 군신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자영은 자리에 올라서도 끝내 깨닫지 못했다. 만약 자영에게 평범한 군주의 재능이 있었고 겨우 중간 정도의 재능을 지닌 보좌가 있었다면, 산동이 비록 어지러웠더라도 진나라의 국토는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며, 종묘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P259

만약 진나라 왕이 지난 세대의 일들을 헤아리고은나라와 주나라의 자취를 아울러 가지고서 그 정치를 제어했다면,
후에 설령 음란하고 교만한 군주가 있었다 하더라도 기울고 위태로워지는 근심은 없었을 것이다. - P266

속세에 전하기로는 진시황은 죄악을 일으키고 호해는 죄악이 극에 이르렀다 하니 일리가 있다. 그런데 다시 자영을 책망하며 진나라의 국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른바 시세의 변화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다. 기나라의 기계가 휴읍빵을 제나라에 바친 것에 대하여 『춘추』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나는 「진시황 본기」를 읽다가 자영이 조고를 거열형에 처하는 데에 이르면, 일찍이 그 결단을 탄복하고 그 의지를 애석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자영은 삶과 죽음의도의를 갖추었다.
->
사마천은 자영에 대한 평가가 애석했던 모양이구만.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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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주나라 본기

주의 군대는 비록 수는 많았지만 모두 싸울 마음이 없어서 속으로 무왕이 빨리 쳐들어오기를 바랐다. 주의 군사들은 모두[무왕의 편으로 돌아서서 싸우면서 무왕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무왕이 돌격하자 주의 병사들은 모두 무너져 내리면서 주를 배반했다.
주는 도망쳐 돌아 들어가 녹대 위로 올라가서 보옥으로 장식한 옷을뒤집어쓰고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무왕이 커다란 흰색기를 들고 제후들을 지휘하니 제후들이 모두 무왕에게 절했고, 이에무왕이 제후들에게 읍하자 제후들이 모두 복종했다.
무왕이 상나라에 이르자 상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왕은 신하들을 시켜 상나라 백성들에게 "하 - P118

늘이 복을 내렸도다." 라고 말하게 했다. 상나라 사람들이 모두 절하면서 머리를 조아리자, 무왕 역시 배례로 답했다. - P119

"반드시 여자들을 왕께 바쳐라. 짐승 세 마리가 모이면 군群이라하고, 사람 세 명이 모이면 중衆이라 하며,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찬이라 한다. 왕이 사냥할 때에도 짐승을 무리로 잡지 않고, 행차할때에도 무리(衆] 지은 사람들을 수레에서 내리게 할 수는 없으며, - P129

왕이 비빈妃嬪을 맞이할 때에도 한 집안에서 세 여자를 취하지 않는다. 이 세 여자는 모두 미인이다. 백성들이 미인들을 자네에게 바쳤다 하나, 감히 무슨 덕으로 감당하겠느냐? 왕도 오히려 감당하지하거늘 하물며 자네 같은 미천한 것이 어떻겠느냐? 미천한 것이 보물을 가지면 결국 반드시 망하는 법이다."
그러나 밀강공은 왕에게 여자를 바치지 않았다. 일년후에 공왕이 밀국을 멸망시켰다. - P130

유왕 2년, 서주의 세 하천에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백양보伯陽가 아뢰었다.
"주나라는 장차 망할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은 질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질서를 넘어서면 백성이 어지러워집니다. 양기가엎어져 나올 수 없고, 음기가 억눌려 솟을 수 없으면 지진이 일어납니다. 지금 세강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양기가 그 자리를 잃고 음기에 눌린 것입니다. 양기가 자리를 잃고 음기 아래 있으면 근원이 분명히 막히게 됩니다. 근원이 막히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 P135

진이 주나라를 공격하자 주취가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폐하를 위한 계책은 주나라를 공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 이익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천하를두렵게 한다는 소리만 들을 뿐입니다. 천하가 그 명성으로 진을 두려워하면 틀림없이 천하는 동쪽으로 가서 제나라와 힘을 합칠 것이 - P152

고, [폐하의] 병사들은 주나라에 지쳐 버릴 것입니다. 천하가 제나라와 힘을 합치면 진나라는 왕이라 불리지 못할 것입니다. 천하가진나라를 지치게 만들려고 폐하께 주나라를 치도록 권한 것입니다.
진나라가 천하에 지치면 정령은 실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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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과의 교제에 열중하면서 그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열거하는 스완의 모습은, 마치 소박한 혹은 관대 - P15

한 예술계 거장이 말년에 이르러 요리를 하거나 정원 가꾸는일에 끼어들어 사람들이 그가 만든 요리나 정원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 천진난만하게 만족감을 늘어놓으면서도 자신의 걸작에 관해서라면 쉽게 받아들일 만한 비판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과도 같다. 또는 자신이 그린 작품은 거저 주면서도 도미노 놀이에서는 40수만 잃어도 기분이 상해 화를 내는 모습과도 같다. - P16

아버지는 외교관이 은근하게 접근해왔을 때 자신의 호감을 결정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결과임을, 즉 상대방의 모든 지적인 장점이나 감수성도 그것이 자기에게 지루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다른 많은 이들의 눈에도 공허하고 경박하고 무가치하게 보이는 사람의 솔직함과 쾌활함만큼이나 별 효과 없는 추천장이 된다는 걸 잘 알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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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食其又說王曰 方今燕趙已定 唯齊未下 諸田宗彊 負海, 岱 阻河, 濟 雖遣數萬師 未可以歲月破也 臣請得奉明詔說齊王 使爲漢而稱東藩 上曰 善 乃使酈生說齊王曰 天下之事歸漢 可坐而策也 王疾先下 齊國可得而保 不然危亡 可立而待 先是 齊聞韓信且東兵 使華無傷, 田解 將重兵 屯歷下 以距漢 及納酈生之言 遣使 與漢平 乃罷歷下守戰備〈出漢書田儋傳〉

○ 韓信引兵東 未度(渡)平原 聞酈食其已說下齊欲止 辯士蒯徹 說信曰 將軍受詔擊齊 而漢獨發間使下齊 寧有詔止將軍乎 且酈生一士伏軾 掉三寸之舌 下齊七十餘城 將軍以數萬衆 歲餘乃下趙五十餘城 爲將數歲 反不如一豎儒之功乎 信然之

【戊戌】信襲破齊歷下軍 遂至臨淄 齊王以酈生爲賣己 乃烹之 引兵東走高密〈出史記信本傳〉

○ 楚大司馬咎 守成臯 項王令謹守勿戰 漢數挑戰 楚軍不出 使人辱之數日 咎怒 渡兵氾水 士卒半渡 漢擊之 大破楚軍 盡得楚國寶貨 咎及司馬欣自剄 漢王引兵渡河 復取成臯 軍廣武 就敖倉食 項羽聞成臯破 引兵軍廣武 與漢相守〈出本紀〉

○ 楚軍食少 項王患之 爲高俎 置太公其上 告漢王曰 今不急下 吾烹太公 漢王曰 吾與羽 俱北面受命懷王 約爲兄弟 吾翁卽若翁 必欲烹而翁 幸分我一杯羹 項王怒欲殺之 項伯曰 爲天下者不顧家 雖殺之無益也

○ 項王謂漢王曰 願與王挑戰 決雌雄 毋徒苦天下之民父子爲也 漢王曰 吾寧鬪智 不鬪力 相與臨廣武間 漢王數羽十罪 羽大怒 伏弩 射中漢王 漢王傷胸 乃捫足曰 虜中吾指 漢王病創臥 張良彊請漢王 起行勞軍 以安士卒 毋令楚乘勝 漢王出行軍疾甚 因馳入成臯〈以上 出史記本紀〉

○ 韓信已定臨淄 遂東追齊王 項王使龍且 將兵救齊 龍且曰 吾平生 知韓信爲人易與耳 寄食於漂母 無資身之策 受辱於胯(袴)下 無兼人之勇 不足畏也 齊楚與漢 夾濰水而陳 韓信夜令人爲萬餘囊 盛沙 壅水上流 引軍半渡 擊龍且 佯不勝還走 龍且果喜曰 固知信怯也 遂追信 信使人決壅囊 水大至 龍且軍 太半不得渡 卽急擊 殺龍且 虜齊王 盡定齊地

○ 立張耳 爲趙王〈出漢書本傳〉

○ 韓信 使人言漢王曰 齊僞詐多變 反覆之國也 南邊楚 請爲假王 以鎭之 漢王大怒 張良, 陳平 躡漢王足 因附耳語曰 漢方不利 寧能禁信之自王乎 不如因而立之 使自爲守 漢王亦悟 因復罵曰 大丈夫定諸侯 卽爲眞王耳 何以假爲 遣張良 操印立信 爲齊王 徵其兵擊楚〈出史記本傳〉

제나라 왕은 역이기의 설득에 항복을 받아낸 후 안심하고 있었다. 이때 한신이 괴철의 말에 따라 제나라를 기습 공격하는 바람에 역이기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제나라 왕은 역이기를 삶아 죽인다.
초나라에 군량이 부족해지자 다급해진 항우가 인질로 삼고 있던 한왕 유방의 아비인 태공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항복을 종용한다. 이 때 항백이 태공을 죽인다고 해서 우리에게 득될 것은 없다라고 하여 항우가 태공을 죽이지 않는다.
제나라를 평정한 한신은 제나라 왕을 추격하고 항왕이 용저를 보내 제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용저는 한신을 얕보았으나 그는 한신의 계책을 당해내질 못했다.
한신이 한왕에게 자신을 제나라의 가왕(임시 왕)으로 삼아달라 요청한다. 장량과 진평이 화가 난 한왕을 제지시키고 그를 지금 당장 힘으로 당해낼 수 없으니 왕으로 삼으라는 간언에 오히려 진왕(진짜 왕)으로 삼겠다 이야기한다.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은 후 그 군대로 하여금 초나라를 정벌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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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개명파 지식인들, 일본물 마시고 서양서 온 기독교에 목욕한 사람들, 미신타파를 외치고 민족개조를 외치고 조선인을 계몽하려고 목이 터지는 사람들, 미신타파하면 땅을 찾고 수천 년 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길바닥에 내다 버려야 땅을 찾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대신 사탕빨고 우동 사 먹어야 땅을 찾을 것이던가, 사실은 긴구치나 하마키를 피우는 족속, 금종이 은종이에 싼 과자 먹는 족속, 우리 것을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족속 때문에, 그들 때문에 조선민족은 말살될지 모른다. 남부여대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바가지 들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지게 지고 그리운 님 기다리듯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신세는 마을 큰 나무에 돌 얹고 절한 때문인가 성황당에 제물 바친 때문인가 용왕을 모시고 터줏대감을 모신 때문인가, 그것을 총독부, 동척 아닌 어느 곳에 가서 물어볼꼬. - P16

목욕탕 냄새를 기억한다. 그 물 냄새를 기억한다. 목욕탕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는데 과거의 유산이 현재까지 이어진 셈이다. 찜질방이 생기고 코로나19,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목욕탕의 수가 급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발소 간판도 기억난다. 그 회전하며 돌아가던 빨간색과 파란색이 교차되던 간판, 그 시절 남자들의 아지트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전통 문화는 낡은 대상,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치부되며 많은 것들이 이후 사라졌다. 취사 선택한 전통을 보수하여 지금까지 지켜냈다면 전통과 현대의 급격한 단절로 겪는 고통을 덜하게 겪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너무나 급격한 변화로 잃어버리게 된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이 생긴다.

토지 4부 1권인 13권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20여년이 지난 1930년대 즈음의 조선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조선의 소도시나 읍면 도시는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양과점, 담배 가게, 이발소, 목욕탕 등으로 채워진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 터의 주인이었던 조선인들은 일본 자본으로 잠식되어 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며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더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기도 했다. 한편으론 먹고 살려면 거기에 애써 적응해야 했기도 했을 것이다. 적응하지 못한 이들,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하는 뜨내기와 유랑민들은 거리를 떠돌 수 밖에 없다. 농촌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토지 소유권을 침탈당하고 지주와 마름은 자신들의 배를 불렸으며 소작인들은 소작할 땅이 없어 화전민으로 산천을 떠돈다.

조선인과 일본인 간에 위계 질서는 공고해졌다. 차별과 억압 속에 조선인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일본인들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수없이 많아졌다. 반면 일본인들은 안하무인,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당하지 않으려면 친일파가 되어야 출세할 길이 열리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강쇠는 활동사진관 앞에서 외국인에게 눈이 팔린 사이에 술통을 싣고 가던 일본인 상인에게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잘못은 일본인 상인이 했는데 결국 파출소로 가게 되었으나 조선인 순사는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다. 조선인들의 피해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수도 없이 벌어졌을 듯하다.

13권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중점적 사건으로 다룬다. 이 무렵이 되면 1920년대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과 학생들로 독립 운동 주체가 변화한다. 노동자들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운동,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교육 차별에 따른 학생 운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노동자 운동이 증가한 것은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의 영향이 크다.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했고 이에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해질 수 밖에 없었기에 파업은 자연 수순이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원산만 파업이다. 1929년 1월 원산의 한 석유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 파업이 벌어졌다. 조선총독부와 자본가들의 탄압에도 3천명의 단합한 원산 지역 노동자들이 4월까지 파업 투쟁을 벌였다. 이 때 노동자들은 감독 파면, 최저임금제 및 해고수당제 실시 등을 요구하였다. 일본과 중국, 프랑스, 소련 등의 노동단체도 격려, 후원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독부의 핵심 간부 구속, 무력 진압 진행으로 실패로 끝이 난다.
"원산 일이 있고부터는 경찰 놈들 지랄발광하는 바람에 고무공장, 방직공장 아이들이 얼어부맀다.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겉지만 서로를 못 믿는기라. 부두에서 몇 명 풀어넣기는 했다마는, 조심스럽고 신실한 사람들이라 걱정은 안 하는데 그래도 살얼음 밟는 것 같다." - P35

1911년 제2차 조선교육령의 발표 이후 초등교육은 일본인은 소학교, 한국인은 보통학교, 중등교육은 일본인은 중학교, 여자중학교, 한국인은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로 나뉘게 되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수업 연한 차이를 없애고 한국인이 다니는 보통학교와 교원 수를 늘렸는데 보통학교의 입학 정원이 제한된 가운데 지원자가 늘어 경쟁이 심해졌다. 총독부나 지방 관립 혹은 공립 중등학교 중 한국인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는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립 고등보통학교 허가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0년 인구 만 명당 중등학생 수를 확인해보면 일본인은 373명인데 반해 조선인은 15명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1920년대부터 전국 각처 수없이 많은 학교에서 항일운동이 계속되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표면상으로 일인 교사 혹은 일인 교장의 배척, 식민 노예교육인 차별제도 철폐 등을 내세운 맹휴였으나 그것은 물론 항일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배후에는 반드시 비밀조직이 있어 학생들을 지도한 것도 사실이다. 전국 각처 학교에 불을 지른 11.3 사건 역시 우발적인 단순한 사건을 아니었다. 11월 3일, 12일 민족차별 철폐와 식민지교육 반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신간회 본부 등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광주에 파견하고 12월 9일 서울에서도 시위가 열리며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서희의 둘째 아들 윤국은 이 학생 사건에 가담하여 유치장에 갇혔다 풀려나지만 서희는 걱정하고 환국은 동생을 '근간과 지엽을 모르는 이'로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윤국은 현실을 외면하는 환국이 답답할 뿐이다. 자신은 이제 어리지 않는데 어머니나 형이 모두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데서 받는 설움이 폭발한다. 당시 학생들의 마음이 윤국이 같았을까.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는 고국의 현실을. 하지만 2달 후면 졸업인 윤국이의 선배 홍수관처럼 유치장에 갇혀 까딱하면 퇴학 처리되어 그 때까지 공부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되고 날아가버릴지도 모르는 현실도 있었다.

"당신네 일본은 일로전쟁 당시 대영제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국력으로 볼 때 분명히 영국은 형의 나라였을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는 그 강대국에서 대가의 약속을 받고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국의 땅도 러시아의 땅도 아닌 우리 땅이 제물로 넘어갔습니다. 과거 우리 조선도 오랑캐로 모멸했던 청나라와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명나라와의 우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명분 때문에 싸운 것입니다. 대가도 지원도 없는 외로운 싸움, 만일에 지금 말하듯 속국이거나 식민지였었다면, 누가, 하라 하지도 않았던 전쟁을 왜 합니까. 억압해온 힘에서 벗어난 기쁨 때문에 만세를 불렀음 불렀지, 검을 싫어하기에 뺀 검이었고 야만을 싫어하는 검. 침략을 싫어하는 검, 그래도 조선이 미개국입니까?" - P123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계속하라는 것이었고 연도 연줄이 있어야 창공을 날지 연줄이 끊어지면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지붕 위에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비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나이가 어려, 목적은 크고 뚜렷하다 하더라도 방법은 캄캄절벽 아니겠느냐, 방법이란 분별이며 분별은 나이와 더불어 정교해진다, 어떤 사람은, 자리를 잃으면 아무일도 못한다, 소년은 본시 있던 그 자리에서 일하라, 호구를 위한 일자리를 구한다든지 고학을 해보겠다면 별문제겠으나 학생운동도 학교를 잃고는 못해, 학교가 바로 현장이다. 노동자는 공장이 현장이듯 농민은 농토가, 룸펜은 도시 뒷골목이, 또어떤 사람은, 덤빈다는 것은 나를 망치고 동지를 망친다고 했다. 또아리를 틀어 지금은 도사릴 때라고도 했다. 다 옳은 말이었다. 앞뒤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윤국은 너무 옳기 때문에 너무 앞뒤가 맞기 때문에 석연치 않았다. 옳은 만큼 앞뒤가 맞는 만큼 그런 만큼 지혜롭고 순수할까 싶었다. - P259

나폴레옹은 불가능이라는 글자를 사전에서 빼버리라 했다. 나는 나폴레옹 같은 것 존경 안 해. 그러나 저 높은 하늘과 광활한 대지에 내가 서 있고, 나는 어디든 걸을 수 있다. 나는 불가능을 향해 걸을 수 있다! 불가능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은 목표가 된다. 따뜻한 밥, 따뜻한 옷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조그마한 아주 조그마한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매달리어 노예가 된다! 부자일수록 더욱 더 노예가 된다! 내가 나에게 노예 되기를 거부해야만 남도 해방시킬 수 있고 내 나라도 찾을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은 뭔가 모르지만 훌륭한 말들은 하고 있지만 어째서 거미줄에 묶인 사람같이 보였을까. 나는 수관형이나 숙이를 보았을 때만큼 감동하지 않았다. 방법, 방법, 방법이라 했다. 자리, 자리, 자리라고도 했다. 나는 그것을 많이 생각해보아야 해. 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 P260
명희는 귀족인 조용하와 결혼한 이후 영혼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조용하의 동생 조찬하는 명희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본 여자와 결혼을 했고 남편 조용하는 성악가 홍성숙과 바람을 피웠지만 명희는 그마저도 질투의 감정마저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 동경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이었으나 가부장제는 공고했고 결혼이란 제도에 이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패잔병들의 은신처가 결혼이라는 거지 뭐. 여자가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요원해. 뭐 나야 별 재간도 없었던 여자지만 말이야. 결혼 잘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혼자서는 견디어 배기기 어려웠다는 얘기가 될 게야. 배운 여자가 하면 그건 언제나 질책이었고 어떤 때는 숫제 화냥년 취급이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배운 여자가 나가야 할 문은 한 군데도 열려 있지 않으면서, 철저하지 철저해, 조선 사람들 보수적인 것." - P160

조용하는 명희에 대한 조찬하의 감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함정을 여러 번 파기도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함정을 판다. 임명희의 오빠 임명빈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이혼을 선포한 것이다. "이유는, 내 동생과 임명빈 누이동생 두 사람한테 물어야 할 겁니다."
이에 조찬하는 "이제부터 불륜에 빠질 겁니다. 형은 이혼을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제 당당하게, 현재 처와 이혼하고 임명희 씨를 아내로 맞겠소."하고 말한다. 조용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다. 본인은 명희와 이혼할 생각이 결코 없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조용하는 복수를 다짐하고 그 대상을 명희로 삼는다. 불평등, 여기서도 철저한 불평등을 발견한다. 남녀의 불평등, 위계의 불평등, 힘과 권력의 불평등. 동생과의 싸움에서 진 것은 자신이었는데 왜 명희는 걸고 넘어지는가.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상, 귀족인 자신과 역관의 딸인 명희, 그런 명희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괘씸했던 것이겠지. 당연히 엎드려야 할 존재가 고개를 빳빳이 든 모양에 열이 받은 것이겠으나 정말 치졸하기 짝이 없고 못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이런 허접 쓰레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다행인 것은 명희 스스로가 이 긴 암흑의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절실하게 해본 것이 없었음을 인지한 것이다. 창조할 능력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데 자신은 그런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이제 명희는 새로 태어났다.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도끼로 깨부술 힘을 스스로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훈장질도 했고 결혼생활도 했고 그러나 그것은 하고 안 하고 한계 지을 수 없는 멀미였을 뿐이었지. 난 사실 말을 하면서도 지금 나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고 앞이나 뒤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창조의 능력이 없다, 사랑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거야. 의식하건 안 하건 생활 그 자체는 창조여야 하지 않을까?"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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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4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부가 1930년대였군요. 저는 이 중간쯤이 잘 생각이 안나요. 1,2부가 워낙에 강렬해서 그런가? 그리고 오히려 뒤쪽 5부쪽은 또 그 이념논쟁이 심해서 그런가 생각이 많이 나고요. 앞으로 화가님 리뷰로 아 4부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 되새길듯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3-05 16:21   좋아요 0 | URL
네. 4부가 1929년 무렵부터 시작이더군요. 1930년대 어디까지를 다룰 지 모르겠지만 초반까지는 다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5부는 역시 이념 논쟁으로 흘러가는군요. 마지막이라 기억에 남는 것도 있겠지요^^; 저는 3부가 좀 흐릿했는데 4부 들어오니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읽어봐야 알겠지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