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도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8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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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역사학은 천황제 파시즘을 키운 온상으로, 그 침략 정책에 가장 큰 희생을 당했던 우리로서는 그 실체 파악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체제 확립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정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P12)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8권(마지막)은 1권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비판 총서의 시작과 끝을 한 저자의 글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1권에서는 메이지 시대의 '동양사' 개발이 쇼와 시대 도쿠토미 소호를 통해 천황제 황도 파시즘으로 가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 선점론은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주의에 기반이 되었다.
8권은 쇼와 시대에 외무성이 관리한 동방문화학원 및 산하 도쿄연구소와 교토연구소의 연구, 1939년 문부성 지원으로 도쿄, 교토 두 제국대학 아래 설립된 동양문화연구소,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와 연구 성향을 고찰하였다. 그렇기에 시대적으로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일본제국의 대외침략에 따라 진행된 개발 연구 변화를 통해 그들이 침략주의 정당성을 찾은 경위도 살펴볼 수 있다.


1911년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들어섰다. 그러나 쑨원 정부는 각지의 군벌 세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위안스카이에게 권력이 이양된다. 일본제국은 위안스카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1915년 1월 「21개조 요구」 를 통해 만주에 대한 일본의 이권을 반영구화하고, 남만주와 동무 내몽골 지역에 대한 특수권리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배경 속에 동방문화학원은 1920년대 의화단 사건의 결과로 중국에게서 받은 배상금과 「21개조 요구」로 얻어진 수익금을 통해 1929년 외무성 주도로 창설되었다.
동방문화학원은 산하에 도쿄연구소와 교토연구소를 두었으며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도쿄제대와 교토제대 출신 교수들이었다.
도쿄제대의 동양문화 연구소와 교토제대의 인문과학 연구소는 중일전쟁 이후 창설되었으며 지금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단체이다.

1885년 이후 대일본제국헌법, 교육칙어 반포 등으로 천황제 국가주의가 강화되었으나 국가 신도를 비판하다 제국 대학에서 축출되는 교수들도 생겨나는 등 자유 민권 운동의 붐이 일었다.
그러나 러일 전쟁의 승리 후 일본은 구미 열강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1908년 천황은 「무신조서」를 발표하며 이를 공표하였다.
1912년 호헌운동이 일어나며 정당 정치가 실현되었다. 1차 대전으로 국가주의가 강화되는 듯 했으나 1918년 9월 하라 다카시가 총리로 지명되고 제2차 호헌운동이 일어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1921년 11월 하라 다카시가 우익 청년에게 살해되면서 어둠이 드리워졌다.
국제적으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천명되고 국제연맹 창설이 이루어지면서 일본 내각도 이에 걸맞는 외교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대외침략 노선과는 갈등이 잠복할 수 밖에 없었다.
1925년 쇼와 시대가 시작되었고 1927년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들어서면서 대외 팽창 성향이 강해졌다. 3차에 걸친 일본의 산둥반도 출병으로 중국과의 대립은 극화되고 일본 내에는 천황제 국가주의(황도주의)가 부상하였으며 청년 군 장교들의 정당 정치 공격이 잇따랐다. 불만이 가득한 일본의 관동군은 단독으로 공격을 감행하였고(만주 사변) 뒤이은 일본의 국제 연맹 탈퇴는 일본 내 정당 정치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었다.

황도 지상주의는 그야말로 교육이 낳은 괴물이었다. 동방문화학원은 천황제 국가주의 사조에 걸맞는 교육을 지향하였다. 만주국 건국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였으며 일만문화협회를 구성함으로써 만주 통치의 영구화를 기했고 몽골 지역의 역사와 지리, 문화를 연구하였다. 이는 일본제국의 서양 세계에 대한 도전과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양의 목표를 천명하는 것이었다.

구미 물질문명의 세가 도도하게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금일 동방 문화의 천명 발양을 도모하는 것은 바로 눈앞의 급무라고 믿는다. 이에 연구에 종사하는 여러 선비가 더욱 연찬의 공을 쌓아 그 업적을 들어 동방 문화의 정화를 세계에 선양하고 그리하여 본 연구소 설립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기를 희망한다. - 동방문화학원 개소식 축사 中 (P98)

1930년대 말 동방문화학원의 주요 지도급 학자들이 고령이 되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생겼고 재정난이 발생하였다. 또 중국과의 전면전 와중에 일본 정부가 난징에 친일 화평파인 왕징웨이 정부를 세워 전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일본 지식인층의 기대를 높이면서 교토제대는 1939년 문부성 지원을 받는 제국대학 최초의 '동아인문' 관련 연구소로 인문과학연구소를 개설하였다.

우리 인문과학연구소는 신동아의 건설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문과학의 종합 연구에 따르는 것을 사명으로 하여 (...) 본 학보가 추구하는 바는 동아의 현상을 밝히고, 또 이에 근거하여 원리 및 정책을 고구함에 있으며, 여러 종류의 지식을 종합하여 여러 연구에 당하여 힘써 (...) 세계사적 전환기에 본 연구소 사명의 일단을 이루는 것을 희망한다. - 1941년 3월 『동아인문학보(저널)』 발간사 中 (P181)

동방문화학원은 근 10년간 존속하면서 제국 일본 정부가 역사학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도쿄제대는 1941년 11월 동양 문화에 관한 종합적 연구를 목적으로 동양문화연구소를 발족하였다.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와 마찬가지로 문부성 지원으로 제국대학 내에 둔 최초 연구소였다.

지금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도모하여 동양 영원의 평화 기초를 다짐은 우리나라 부동의 방침이므로 이때 특별히 동양 문화를 근본적으로 고구하여 우리 국책의 수행에 이바지함은 실로 긴요한 급무가 되었다. (...) 동아를 중심으로 아세아 대륙 및 남양에 걸쳐 그 문화의 종합적 근본적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국운의 진전과 학술의 발전에 공헌하고자 한다. - 1941년 총장의 '설립 이유' 中 (P189)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주로 중일전쟁의 점령지를 대상으로 하는 '동아 신질서' 확립 기여를 표방했다면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는 '대동아공영권' 확립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것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둘은 서로 미묘한 차이가 있었으나 동아학과 대동아학을 주장하며 국가의 대방침인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천황의 지배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뒷받침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인문과학연구소는 '동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 동양문화연구소는 '동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동양'은 1894년 나카 미치요가 역사교과서 체제 회의에서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 3분으로 나누며 등장하였다. 동양은 천황 지배하의 동아시아 세계를 의미한다. 동아는 일본의 침략전쟁 진행으로 '동양'이란 용어에서 '동방', '동아', '대동아'라는 용어로 파생되었다. 동양문화연구소의 '동양'은 '대동아'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890년 교육칙어 반포 이래 교육과정이 바뀌며 역사교육은 3분과 체제로 자리를 잡는다. 1902년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중등학교에 배부되는데 이때 조선사는 '일본 역사' 속에 포함되었다. 조선(한국)은 4세기 진구 황후의 '신라 정벌'로 이미 일본에 복속되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제국은 1902년 한국의 역사를 일본사에 편입한 뒤 1910년 강제 병합을 단행하였다.

1925년 쇼와 천황이 등극 후 1929년 발행된 교과서에는 '국체의 정화' 곧 군민이 하나가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닫게 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내세웠다. 역사교과서가 쇼와 천황의 황도주의 정신에 맞추는 추세로서, 바꾸어 말하면 쇼와 천황 자신이 곧 황도주의 선양의 주체가 되고 있다. (P325)
천황 스스로도 12세 동궁 시절부터 신대 지상주의 역사교육을 받으며 황도 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청년 장교들을 배출하는 사관학교의 역사교육은 일반 중등 교육보다 황도주의 색채가 더 짙었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해군기관학교에서 발행한 『조칙집』에는 태평양 전쟁 시기에 주요 해전의 함대 사령관에게 작전 명령을 지시하는 칙어가 실려 있다. (P330~331)
① 「일미영 개전에 당하여 연합함대 사령장관에게 내린 칙어」(1941.12.8)
② 「하와이 해전의 전첩을 맞아 연합함대 사령장관에게 내린 칙어」(1941.12.10)
③ 「말레이해협 해전을 앞두고 연합함대 사령장관에게 내린 칙어」(1941.12.12)
④ 「홍콩 공략을 앞두고 지나 파견군 총사령관과 남방군 총사령관에게 내린 칙어」(1941.12.27)
⑤ 「싱가포르 공략을 앞두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남방군 총사령관에게 내린 칙어」(1942.2.16)
⑥ 「동인도제도의 전첩을 맞아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남방군 총사령관에게 내린 칙어」(1942.3.10)

③~⑥은 적군을 섬멸하라는 출동 명령의 칙어이다. 메이지, 다이쇼 시대에 천황이 출격 명령을 내린 칙유의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칙어는 쇼와 천황이 '대동아전쟁'을 직접 지휘, 통솔하였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P331)

쇼와 천황은 중국 점령으로 확립되는 공간을 '동아'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를 독려하였다. 만주사변은 '동아'라는 공간으로 가는 첫 걸음이었는데 국제연맹이 이에 제동을 걸자 탈퇴를 선언하는 조서에서 일본제국이 목표로 하는 공간에 대한 규정으로 '동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940년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출범하면서 내놓은 「기본국책요강」에서는 '동아' 대신 '대동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황국의 국시는 팔굉일우의 조국(肇國) 의 대정신에 기초하여 세계평화의 확립을 가져오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먼저 황국을 핵심으로 하여 일만지(日滿支)의 강고한 결합을 근간으로 하는 대동아의 신질서를 건설함에 있다. 이를 위해 황국 스스로 속히 신 사태에 즉각 응하는 흔들림 없는 국가 태세를 확립하여 국가의 총력을 동원하여 위 국시 구현에 매진한다. - 「기본국책요강」 中 (P313~314)


일본 안에서도 대외 침략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장한 이들이 소수지만 있었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근대화 시책을 담당한 관리였던 가쓰 가이슈(1823~1899)와 일본 인류학,민속학,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리이 류조(1870~1953)다.
가쓰 가이슈는 청일 전쟁을 반대하였으며 일본 미래의 국방체제를 방어적인 형태로 가져가야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친분이 있었던 사카모토 료마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조슈 세력의 국가주의 성향에 찬동하지 않았다.
도리이 류조는 도쿄제대 인류학교실에 근무하면서 국내외 현장 조사에 임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조사를 통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의 근원을 찾는데 전념하였으며, 관부 '동양학' 추구와는 거리를 두었다. 동방문화학원이 출범하면서 연구에 참여하였으나 요대(僚代) 문화 탐구에 열중할 뿐 일만문화협회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무려 반세기 이상 동아시아에 여섯 차례나 큰 전쟁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참극의 역사가 잘못된 역사교육에서 비롯한다면 일본 역사학계는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피해국의 역사학도 그 실체 파악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참혹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바른 규명 없이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를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사항이다.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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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2-26 0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덟권 다 보셨군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거리의화가 님이 보셔서 알았습니다 역사는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한국이라고 역사를 제대로 알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역사학자도 하나가 아니고 여럿으로 나뉘기고 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사람도 있더군요 한중일 세 나라가 힘을 합치면 좋겠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2-26 09:54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아무래도 학술연구서라 대중역사서처럼 널리 읽힐 수 있는 형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역사서들을 통해서 통용되는 역사 서술을 보충하고 가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계속 이런 책들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중일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에밀리 디킨슨 시 읽기 - 그 녀석은 이 왕관을 만질 수 없어
나희경 번역 및 해설 / 동인(이성모)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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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에밀리 디킨슨 시의 세계를 모두 이해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역자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어서 나처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시들을 접근하기에 좋다. 자연의 묘사는 독특했고 고통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는 동정을 느꼈다. 시인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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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25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킨슨의 시는 읽을 때마다 사물과 사람 세계관이 다르게 보입니다 ㅎㅎ
화가님 디킨스 입문 시작!^^

거리의화가 2022-12-26 09:45   좋아요 1 | URL
디킨슨 어떤 시는 전체가 다 아리송한 것도 있는데 어떤 시는 단어 선택이 기막히게 좋은 것들이 있더라구요. 물론 역자의 해설에 도움이 있어 ‘아~‘한 것이지만...ㅋㅋ
 
The Last Cuentista : Winner of the Newbery Medal (Paperback, 영국판) -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원서, 2022년 뉴베리상 수상작
Donna Barba Higuera / Piccadilly Press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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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사람이 남았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과거를 들려줄 이들은 사라졌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이를 통해 과거는 전승될 것이고 현재와 미래는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역시 풍경을 묘사한다거나 재치 있는 표현들은 원서로 보는 것이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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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럼에도 희망을 갖게 되는 이야기

What do I have to gain by going forward? Everything I love is behind me. - P294

The drones split into groups, basket-weaving across one an-other. Bright-green mist spews from their bases with a sicken-ing hiss.
My stomach roils. I helped create that.
The green mist we‘ve brought turns Sagan‘s orange-and-pur-ple sky a revolting brown. I think of how high the drones are. - P300

I remember Mom say-ing bees are life. Without bees, there‘s no food, without food, no humans - P303

Javier‘s story ends on that ship. In this ending, he knows Iloved him, and he has his book. His story will end as Javier-not as part of the Collective. - P305

Lita‘s voice fills my head. "Set your intention." Tears well inmy eyes. I let my memories fill me. I am bringing all of them:Mom, Dad, Lita, Javier, and our home. Ben and my crumblinglibrary, deep in my mind. The stories of Lita and my ancestors.
I‘m bringing them all to this world. - P308

"A few brave humans left their home on the nagual‘s mother,
Earth. They took very little and left behind so much they loved, in hopes of finding a new home for their children, and theirchildren‘s children, and all humans to come." - P311

We‘re lucky. A handfulwho get to live on two planets. And I know they all deserve tohear the truth now about what‘s gone wrong. That it‘s just usleft. That all our parents are gone, and hard work lies ahead sothat so we can live.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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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흰옷을 입은 여자 에밀리 디킨슨의 진주 실

에밀리 디킨슨은 장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고 산문이나 소설, 로맨스도 쓰지 않았다. 바로 이 사실때문에 동시대 성공한 여성들과 비교할 때 디킨슨이 더없이 두드러진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만 해도 우리가 여성 서정시의 ‘문제’로 규정한 것을 해결하려 하면서 예술에 대한 여성의불안을 극화하고 거리를 둔 채 서사 안에 서정시적 폭발을 안전하게 (말하자면 주제넘지 않게)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 P984

로세티와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 우리가 보았던 모든 소설가가 허구를 만들어낼 때 몽환에 도취되어 표현했던 분노와 죄의 환상을 디킨슨은 삶과 그녀 자신의 존재로 글자 그대로 수행했다.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파괴와 체념의 천사에 대해 썼던 반면, 디킨슨은 스스로 그런 천사가 되었다. 샬럿브론테가 자신의 불안을 고아의 이미지에 투사할 때,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그 아이의 역할을 재연했다. - P986

사실상 정교한 극적 독백으로 이해되는 디킨슨의 시는 확장된 소설 속 ‘대화‘이며, 소설 - P986

의 주제는 가상 인물의 삶이다. 그 인물은 원래 에밀리 디킨슨이지만 스스로 에밀리, 데이지, 에밀리 형제, 에밀리 아저씨, 디킨슨 삼촌 등으로 다양하게 이름 지었다. - P987

디킨슨은 언젠가 히긴슨에게 ‘자연은 유령이 출몰하는 집―그러나 예술은-유령이 출몰하도록 애쓰는집‘이라고 써 보냈다. 이 말은 나와 타자의 관계를 에머슨식으로 분석했다고 자주 여겨지지만, 이 말의 고딕적 은유는 (만약이 말이 고딕적 은유에 의존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우리에게 다른 것, 즉 디킨슨이 (여성) 고딕소설에 나오는 자아의 출몰을(여성) 예술에 본질적이라고 생각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디킨슨에게 예술이란 포에시스-만들기보다 미메시스-행동하기였는데, 이는 그녀가 의식조차 사색적이기보다 연극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P990

이 ‘얌전한 독신녀‘는 진단하는 시선과 객관성을 발휘해 동시대 여자들을 관찰했으며, 자신이 관찰한 ‘얌전한 여자들’을 ‘부서지기 쉬운 숙녀들’, ‘부드러운 천사 같은 피조물들‘, 베일 이미지, 심지 - P993

어 단순히 ‘견면 벨벳‘ 소파 쿠션 같은 수동적인 물건으로 묘사했다." 디킨슨은 대부분의 여자들을 꼼짝 못 하게 옥죄는 것이특히 결혼이라는 ‘부드러운 퇴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디킨슨이 특히 찬양했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에밀리 브론테가 제시했듯) ‘반은 야생적이며 강하고 자유로운‘ 소녀를 여자와 아내로 변모시켜 에너지와 상상력 넘치는 소녀가 품었던 ‘최초의 전망‘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 P994

초기의 디킨슨은 ‘여자와 아내의‘ 일에 대항해 아이로 분하고17어린 시절의 장엄한 장난감에 매혹되었다. 그 결과가 미친 영향력은 사실 매우 광범위했다. 한편으로는 정교하게 고안된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부분적으로 금이 간) 아이 가면에 초기의디킨슨이 보인 강한 집착은 숱한 시작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놀랄 정도로 혁신적인 (문법적 ‘오류‘로 가득 차 있고 미친 아이만 쓸 법한 엉뚱한 문체로 점철되어 있는) 시로 이어졌다. 반면에 아이 가면(또는 태도나 복장)은 결혼의 공포에서디킨슨을 자유롭게 해주고 품위 있는 장난감과 ‘놀수있게‘ 해주었지만, 결국 디킨슨이 절뚝이는 자아가 되도록 위협했다. 즉그 자아는 디킨슨의 고딕적 삶의 허구가 위기에 부딪쳤을 때,
어린 여자아이가 육아실에 갇히듯 아버지의 집에 디킨슨을 감금시켜버렸다. 복장이라는 의미에서 습관이었던 것이 중독이라는 더 치명적 의미의 습관이 되었고, 결국에는 이 두 가지 습관때문에 디킨슨은 내면의 거주자(뇌리를 떠나지 않는 내면의 타자)는 물론 외부의 거주지(피할 길 없는 감옥)를 얻었다. - P999

자신을 어린 시절의 무책임과 인생의 장난감으로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디킨슨은 나중에 스스로‘낮의 정거장‘이라 불렀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0그런 만큼 디킨슨은 초기의 많은 시에서 ‘무책임한 역할‘을(붉은 뺨에, 바쁘고, 경이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성인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작은 사람 역할을) 맡는다. - P1000

위협적으로 찬란한 태양은 디킨슨에게 일종의 가부장적인 빛의 신을 의미한다. 이는 디킨슨이 1862년 수전 길버트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정오의 남자‘에 대한 특별한 사색에서 분명해진다. - P1006

매일 황금으로 치장하는 신부와 약혼녀에게는 우리의 삶이얼마나 지루해 보일까? [・・・] 그렇지만 수지, 아내에게는 […] 우리의 삶이 세상 다른 어떤 삶보다 더 소중해 보이겠지. 너는 아침 이슬을 맘껏 머금은 꽃을 보았지. 똑같이 아름다운 꽃들이정오에는 강력한 태양 앞에서 고통으로 머리를 숙이는 것도 보았고, 너는 이제 이 목마른 꽃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슬뿐이라고생각하겠지? 아니야, 꽃은 햇빛을 갈구하고 불타는 정오를 갈망할 거야. 햇빛이 자신을 태우고 상처를 입혀도 말이야. 그들은 평화롭게 지내왔어. 그들은 정오의 남자가 아침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 이제 그들의 삶은 그의 것이야. 오, 수지,
[・・・]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지는 것 같아.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 굴복해버릴까 봐 온몸을 떨어. - P1007

어떤 의미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아버지를 두 명 두고 있는 셈이다. 한 명은 태워버릴 듯이강렬한 남자, 바이런의 영웅 같은 사람으로 ‘홀로 엄숙한 책들을 읽고 결코 놀지 않으며‘, ‘마음은 순수하지만 무섭고 자신을 ‘더 많은 땅에‘ 펼쳐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다른 한 명은 ‘여성 참정권론자‘를 공격한 위풍당당한 공인이며, 히긴슨에게 ‘마르고 건조하며 말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 ‘에밀리의 삶이어떠할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 P1009

에밀리 디킨슨이 아버지를 문학적 형상의 종류로 의식했다는사실은 그녀의 반항과 불가피했던 감금을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인 에어조차 세인트 존이 자신을 원칙이라는 철의수의로 에워싸려하면 자유로워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제인에게는 몽환의 경지에서 자신을 불러내는 로체스터가있었다. 디킨슨에게는 세인트 존과 로체스터, 사회의 기둥과 독선적인 영웅 모두가 그녀의 아버지/주인/연인이라는 하나의 형 - P1012

상에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신과 사탄이 하나의 ‘정체 모를 아버지‘ 형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과 같다. - P1013

디킨슨과 비교할 때 브론테의 산문은ㅡ『셜리』의 형식에 대한 브론테 자신의 묘사를 인용하자면 - 월요일 아침처럼 비낭만적‘이다. 39 그러나 디킨슨이 자신의 절망을 더 ‘비뚜름하게’말하긴 해도 그녀도 거의 정확하게 같은 진실을 품고 있다. 디킨슨도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워하며 자신의 주인에게 인정받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원하며 회신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쇠약해지고 수척해져간다. - P1021

디킨슨의 폐소공포증은 (존 코디가 지적했듯) 광장공포증과 번갈아나타난다. 이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보충물처럼 기능한다.44 그런데 디킨슨의 영혼이 ‘붕대로 감긴 순간‘은 번번이 ‘탈출의 순간‘으로 대치되었다. 이 탈출의 순간에 디킨슨의 영혼은 성적한계를 격렬한 기세로 초월해 사방에서 폭탄처럼‘ 춤추며, 여성의 복종, 수동성, 자아 포기라는 그림자 같은 봉쇄로부터 ‘정오와 낙원‘이라는 남성적 자기주장으로 달아난다.[] 512편] 앞으로 보겠지만, 그런 탈출을 위한 시인의 전략은 디킨슨이 취했던 패배의 가면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하고 창의적이었다. 사실상 많은 경우 패배의 가면은 승리의 얼굴로 변형되었다. - P1024

디킨슨의 목소리는 자신이 상상하는 바대로 사형선고를내렸다. 조지 엘리엇의 암가트처럼, 디킨슨은 자신의 ‘복수를[자신의] 목에걸고 다니며 죽음을 말하고, ‘칼날 같은 단어’를 - P1030

디킨슨은 주인의 적을 향해 강력하고 ‘단호하게 엄지손가락’에 힘을 줌으로써 남성적인 권위를, 이른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인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일종의 ‘초월성’을획득하는 것이다. - P1031

하얀 선거, 백열등, 흰색(또는 색이 아닌 색)은 가상의 사람으로서 에밀리 디킨슨의 은유의 역사를 통틀어 핵심적이다. 그의미의 모호성은 그녀의 삶으로 만든 허구라 할 수 있는 ‘진주실‘의 중심 가닥을 구성한다. 1860년대 초반 내지 중반의 어느때쯤, 아마도 1862년, 확실치 않은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에 디킨슨은 그 유명한 흰옷을 입는 습관을 들였다. - P1035

디킨슨에게 흰색은 백지상태, 텅52빈 페이지, 살지 않은 삶의 순수한 가능성(‘잃어버린 모든 것‘)을 상징함과 동시에 겨울의 완전한 피로, 북극, ‘극지에서의 속죄‘, 사탄 부대의 이동, 메리 셸리의 불경한 삼위일체가 만나는빙하 황야를 암시한다. 따라서 흰색은 퍼시 셸리의 「흰 산」이그러하듯 창조/파괴의 원칙에 통합된 하늘의 영광과 지옥의 무시무시함을 의미한다. 아이와 유령과 모두 극적으로 연관된 그것은 백합의 발(전족), 거미의 거미줄, 부드러운 데이지의 꽃잎,
그리고 많은 일을 겪은 진주의 꺼끌꺼끌한 겉면이 발하는 색이다. 마지막으로 멜빌에게도 흰색은 중요했지만, 19세기에 흰색은 여성의 색이었음이 분명하고 매번 여성의 또는 여성에 의한상징으로 선택되었다. 디킨슨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1039

여자는 순백에 내재된 그런 약함을 어떻게 초월할 수 있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여러 소설을 포함해) 많은 신화와 이야기가 보여주듯, 한 가지 방법은 흰색 자체의 복잡한 상징성을 더발전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수동성이 순응과 저항이라는 의미를 모두 함축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순백은 초대를 의미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거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눈은 태양에쉽게 영향을 받지만, 그것은 열을 거부한 결과다. 처녀성virginity은 단어의 어원이 남성다움이나 힘을 의미하는 남편vir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화 속 사냥꾼과 달처럼 하얀 디아나의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주듯) 자기 안에 있는 일종의 갑옷을 나타낸다. 따라서 눈처럼 하얀 ‘처녀‘에게 처녀성은 약함이 아니라힘을 뜻하고, 신랑에게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주는 양성적 완전성, 자율성, 자족성이라는 은혜다. - P1041

19세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멜로드라마적인 고딕물과함께 흰색은 특히 19세기에 죽음, 유령, 수의, 영혼의 ‘방문자‘
를 의미하는 색이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해리엇 비처스토가 냉소적으로 말했듯 ‘유령 가족의 일반적 특성은 흰 수의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스토는 그녀의 캐시와 에멀라인을 흰 이불로 에워싸 미친 여자가 아닌 미친 여자 유령으로 분장시킴으로써 그들이 사이먼 리그리의 억압에서 탈출하도록 처리한다. - P1047

거미의 성취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디킨슨 세계의 용어를 감안하면)거미는 ‘그‘가 방적의 ‘실체 없는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것처럼, 침묵 속에 있다는 점에서도 여성적이다. 비밀스럽고 조용하게 춤을 추는 것도 그의 과묵함을 강조하는데, 실 뽑는 일과 베 짜는 일처럼 춤추기는 예술에 대한, 특히 여성 예술에 대한 디킨슨의 은유 중 하나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 P1069

디킨슨은 자신에게도 문학적으로 불확실한 순간이 있었고,
심지어 절망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흰옷을 입은-여자‘로서 디킨슨이 입었던 여러 복장은 심리적 파편화를 상징하지만, (또는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그 파편화 때문에) 그녀는 자기 삶의어두운 틈새에서 진주 실을 자아내는 거미-예술가가 불가해한방식으로 승리할 것을 깊이 확신했다. - P1072

언젠가 디킨슨은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죽은 자는0 너무 빨리 잊힌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그들은 나를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킨슨이 의미한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시로 짰던 그녀의 삶에 대한 정교하고도 허구화된 태 - P1076

피스트리였음이 틀림없다. 그 태피스트리에서 각각의 시는 어느 정도 그녀가 만나리라 상상한 얼굴들을 만나려고 준비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여성 예술가로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바꿔 쓰면) 영원을유혹하기 위해 시간의 산물을 이용한 방식이다. - P1077

이 모든 여자들에게 바느질은 방어적인 바느질이 필요하지않을 세계에 대한 전망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에밀리 디킨슨도 마찬가지였다. 거미의 은유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디킨슨 삶의 틈새 안에 거주한 거미 예술가의 머릿속에는 마술적인 장소에 대한 환상, ‘낙원의 태피스트리‘가[] 278편] 있었으며, 거미 예술가는 그녀가 알고 있는 낙원의 이미지를 자신의진주 마법으로 짜고 있었다. 이 낙원에서 여성 예술가는 자신과 자신의 의미를 모호한 그물망으로 위장한 전복적 거미가 아니라 꾸밈없이 빛나는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서 여성 예술가는더는 ‘북극‘의 외로움 속에서 밤새 바느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침내 ‘동쪽‘의 새벽 햇살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큰소리내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 P1083

에밀리 디킨슨의 시 묶음이 어렴풋이 그려낸 낙원은 교묘하게 위장된 시적 생애의 말 없는 시작부터 침묵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에밀리 디킨슨이 공공연하게 거주하기를 열망한 곳이다. - P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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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26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12-27 09: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알라님^^
알라님도 완독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