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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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바깥, 밤의 불확실함과 미스터리 속 어딘가에, 문지방을 서성이는 형체‘ 의심과 불안은 끝없는 개미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는 생각, 차라리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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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구적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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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화가 냉전의 틀로 해석되면서 유럽의 블록 형성은 더욱 수월해졌다. 1949년에 유럽에서 만들어진 여러 제도는 애초에는 임시적인 성격을 지녔다. 트루먼 행정부와 미국 여론은 북대서양조약으로 인해 미군이 유럽에서계속 주둔하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점령 기간이 끝나면 군대를 철수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이하 서독)의 헌법도 다만 "이행기 동안" 서독에서 국가의 틀을 마련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기본법"으로 구상되었을 뿐임을 강조했다. 다른 한편 스탈린에게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Demokratische Republik: DDR(이하 동독)은 "평화 지향의 민주 독일로 가는 첫걸음이었지만, 사실은 내키지 않는 방식이었다. 스탈린이 그 신생국가의 지도부에보낸 경축 메시지에 독일 사회주의라고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그 임시 조치들은 곧 굳어졌다. 하지만 유럽 분단이 영속될 위험이생기자마자 곳곳에서 저항이 일었다. 유럽의 블록 형성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결이 전개되었다. 그 결말은 195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뚜렷해졌다. - P82

서독의 나토 가입을 막으려는 소련의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소련 지도부의 새 권력자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는 유럽 정책을 점차 사통당의 동독 지배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1955년 5월 14일에 바르샤바에서 동유럽 블록의 정부 수반들이 "우호와 협력 및 상호 지원 협정"에 서명했을 때 동독 총리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애초에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에 참관국으로만 참여했지만, 곧 정회원국이 되었다. 흐루쇼프는 1955년 7월의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마지막으로 탐색한 뒤 그런 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확인하고 동베를린의 한 집회에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독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동독의 정치적·사회적 성과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 - P90

가능하다고 밝혔다. 두 달 뒤인 1955년 9월 20일에 소련은 동독과 상호 관계 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동독이 내정과 외정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규정하며 다만 "독일 전체에 미치는 4대 열강 협약에 대해서만 유예를 둔다고 밝혔다. 1956년 초에 동독의 병영 주둔 인민 경찰은 국가 인민군Nationale Volksarmee: NVA으로 바뀌었다. 1956년 1월 28일에 바르샤바 조약국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국가 인민군은 소련 최고사령부 휘하의 바르샤바 조약 군사 기구로 통합되었다. 이제 동쪽의 블록 형성도 완결되었다. - P91

핵전쟁 위협 체제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당 간부들은 지배를 수월하게 유지했고, 소련은 동맹국들에 대해 계속 손쉽게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 P92

있었다. 바르샤바 조약은 탄생 때부터 그런 지배 유지의 도구임이 확인되었다. 이때 그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뿐만 아니라 자기 진영 내부의 해방운동에 대해 더 맞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서구에서 노동운동과 지식인 자본주의 비판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먹히던 소련 모델은 헝가리 봉기가 진압되면서매력을 크게 잃었다. 공산주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폭정은 서유럽의 경제재건 성공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에 확연히 대비되었다. - P93

1966년 3월 7일에 드골은 대서양 간 통합에 맞서 자신이 추진했던 유럽적 대안이 점차 눈앞에서 멀어지자 나토의 군사 조직에서 프랑스는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대서양 동맹 회원국 지위를 유지했지만, 나토 사령부의통제권에서 자국 군대를 뺐고, 동맹국들에 프랑스 영토에서 군사기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동맹국들은 그 요구를 따랐다. 나토 본부는 파리에서 브뤼셀로 옮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드골은 핵 열강으로서 프랑스의 독립을 지켰지만, 6개국 정치 공동체는 이제 저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유럽 국가들은 드 - P101

골이 일방적인 공세로 자신들을 함부로 대했다고 간주했고, 그 결과 다시 미국과 협력할 방안을 더욱 강력히 찾아 나갔다. 1967년 말에 잔존 나토 회원국들은 "유연한 대응"이라는 공동 전략을 통과시켰다. - P102

서구 열강과 동유럽 블록 국가 모두 재정적인 이유로 재래식 군비 계획을1950년대 초에 계획했던 규모대로 이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의지도부는 모두 점차 핵 억지력에 의존했다. 핵폭탄 투입을 경고하면서 재래식군비의 결함을 보충하거나 고비용이 드는 재래식무기고의 감축을 가능하게만들 수 있었다. 물론 핵 억지 체제로 넘어가니 핵무기로 인한 절멸 공포가생겨났다. 그래서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열강 지도부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 P106

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긴 인지 오류와 핵무기 대치 상태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대화가 지속되기는 극히 어려웠고, 그 결과 동서준비관계에서 새로운 긴장이 계속 발생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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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올해의 책을 정리했다.


내가 뽑은 책들은 대부분이 역사 분야의 책이고 문학은 단 2권이다.
하지만 그동안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방 후부터 한국 전쟁 이전까지 한국과 관련된 역사 책들을 계속 읽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의 역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하며 늘 관심을 갖게 된다. 원래는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더 많았으나 이제는 이 시기 책에 더 흥미를 갖게 되는데 뒤이은 역사가 탈식민과 이념 전쟁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치 문서와 해방정국>는 또 하나의 해방 후 정국의 키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버치 중위는 미군정기 하지 사령관에 의해 발탁되어 조선에 들어와 좌우합작위원회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그가 작성한 자료들과 시간 순으로 배치된 기록, 인물에 대한 평가들이 담겨 있다.
강용흘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확이 있었고(그도 미군정청에서 일했다) 1946년 쌀 추수 파동에 대한 실감나는 기록, 여운형과 김규식에 대한 평가 등이 흥미로웠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11월에 읽었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7권이었던 <남양과 식민주의>와 궤를 같이 할 것 같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양반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전시 상황에 일본군이 되어 연합군 포로 감시를 위해 남방을 향한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손자였던 작가가 조부의 행적을 영웅시하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전범이 받았던 피해, 고통의 측면에 주목했었던 것 같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제대로 된 소감을 정리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 책이었다.(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민족주의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없고 앞 세대의 희생자의 경험과 기억은 세습될 때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다. 작가의 모든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으나 지나친 민족주의 신봉과 숭배 의식은 곱씹어볼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남양과 식민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의 전시의 장이 된 남쪽 태평양의 섬들과 도서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일제가 펼친 남진 정책과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일제가 남진 정책을 생각보다 일찍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과 내외부의 상황의 추이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확인해볼 수 있다.



통사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데 읽을 시점이 됐을 무렵 마침 <시민의 한국사>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지배층의 관점이 아닌 '아래의 힘'에 주목하여 쓴 역사다. 미국에도 민중사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늦었지만 이런 통사가 나와주어 참 반갑고 감사하다. 지배층의 학정을 엎고 들고 일어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은 한반도의 역사는 어쩌면 민중이 이끌고 간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지 모르겠다.
1, 2권으로 나누어 1권은 전근대편으로 조선 후기 개항 이전까지의 시기를 담고 있고 2권은 근현대편으로 최근 정권까지 범위를 다루었다.
통사의 특성 답게 정치사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파트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그동안 통사를 읽을 때 정치와 경제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 책의 경제 파트는 핵심을 쉽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정치,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시리즈의 꽃은 역시 2권이다. 보수/수구 정권의 눈치에 은폐되거나 축소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시리즈는 하반기 읽기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까지의 세계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또 한 시리즈의 책이라고 생각한다(1350년 이전의 역사도 출간되었으면!).

특히 1750년 이후의 세계사를 지역사를 모으고 단순하게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별로 특징을 뽑아내어 잘 정리했다고 느껴진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엿보였고 가려져 있던 인종 차별, 노예, 여성, 이주민들의 역사를 다양한 사례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상반기에 읽었던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을 읽으면서 미리 예열을 했는지 이 시리즈를 읽을 때 버겁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부족한 역사 공부의 시기와 장소가 무엇인지 체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오랑캐의 역사>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해왔던 책 읽기가 헛된 것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 만주족의 역사, 타이완사, 중국의 철학, 일본의 근세 이후의 역사, 합스부르크 제국사, 오스만 제국 등 중동의 역사를 읽었던 것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결코 이것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다 연결되어 있음을, 역사는 통합되는 것임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책들을 과거에 읽지 않았다면 <오랑캐의 역사>를 소화하기 어려웠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작가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을 때만 해도 좀 어렵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번에 읽게 되었을 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내부의 역사를 외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진행되어온 결과물과 최근 역사계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내놓은 결과물들을 결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노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었고 그만큼 확장된 시야를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동남아시아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느꼈는데 앞으로 보충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가 앞으로도 좋은 책을 부디 꾸준히 내주면 좋겠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총 8권으로 학술연구서로 대중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모든 시리즈의 책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앞서 7권은 이야기했고 1권과 8권을 더 꼽아보았다.(두 권은 저자가 같고 이야기도 이어진다)
일본 역사는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사'라는 개념이 없었고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근대 시기 나카 미치요의 주장으로 '동양사', '일본사', '서양사'로 구분되는 계기가 된다.(이 때 조선사는 '일본사'에 포함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본 근대론의 시작은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수록'이란 책을 남겼고 자신의 생각을 전파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침략주의를 후대에 전파하였다.
자유민권주의자였다가 황국주의자로 변신한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평전을 쓰고 황실 중심주의 전통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출간한 책으로 일본학을 제창했다. 일본학은 일본 국민이 알아야 할 일본에 관한 일체의 학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대립하는 모든 관계에 입장은 이로써 비일본, 반일본적인 것으로 모는 주장이다.
1권에서 메이지 시기의 일본 근대에 주목했다면 8권은 쇼와 시기의 일본에 중심을 두었다. 동방문화학원과 도쿄대학, 교토대학 내 설립된 연구소에서 연구한 동방학이 일제의 식민주의에 어떻게 뒷받침된 이론들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국도 근대 시기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본 지식계에서도 자국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 뿐 아니라 우리도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예 거부하거나 그대로 믿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비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균형 맞추기로 문학 책을 읽었다.
문학이 내게 어려운 이유는 물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눈에 그릴 수 있어야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모호하고 추상적인 묘사들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전히 문학이 어려우나 그래도 그 중 얻은 수확이 있어 기쁘다.


올해 국내 소설 중 단연코 TOP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 제목부터 내용까지 어디 하나 빈 구석이 없는 책이었다.
3년 간의 코로나를 겪고 나이가 들어가기도 하면서 '평범한 미래'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현재, 그리고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앞의 미래를 열심히 살아나가며 별 탈 없는 매일을 우리는 꿈꾸고 소망하게 되는 것 같다.
8편의 단편 소설 어느 편을 펼쳐도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설의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며 추억에 젖기도 할 것이다.
회의주의자인 내가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정말 마법 같은 책이다.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내밀한 기록을 만날 수 있는 <코펜하겐 삼부작>.

과연 내가 해외 문학 작품을 읽으며 좋다고 느낄 때가 올까 생각했는데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 반영되었으니 에세이라고 해야 맞겠지.
토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자주 맞닥뜨렸던 공포와 불안, 좌절의 기억이 떠올라 어떨 때는 괴롭기도 했다.
불안한 청춘, 어딘가에도 기댈 수 없는 바람처럼 떠도는 유령 같은 자아가 그려졌다. 나도 그랬고 그도 그랬다.
그의 삶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의 글은 그만큼 나를 흔들어놓았던 것 같다.


작년 연말 올해 읽기로 했던 책들을 보니 거의 다 clear하였다(역시 계획은 중요!).

어쨌든 한 해동안 꾸준히 책을 읽고 정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동안은 책을 읽기는 했어도 제대로 정리한 책이 많지 않아 대부분 뇌에서 휘발되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역사에 관련된 책은 1년에 단 몇 권이라도 이전부터 읽어왔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책 선정에 고심하는 편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역사/문화 분야인데 눈여겨보는 출판사에서 신간이 출간되었을 때 받는 알림 중 괜찮은 책을 고르거나 집에 묵혀둔 책 중 '이제 더는 미루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책들 중에서 선정하는 편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비슷하게 갈 것 같지만 그동안 집에 쌓인 책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후자에 좀 더 치중하자고 다짐한다.
테마는 중국사와 동남아시아사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읽어둔 게 너무 없어서 한계를 느꼈기에 이쪽 읽기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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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7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화가 님! 어쩌면 이렇게 제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을까요? 하하하하하
올해도 열심히 읽으셨네요. 우리 내년에도 열심히 읽읍시다!!

잠자냥 2022-12-27 22:09   좋아요 3 | URL
저도요! 하하하;;

프레이야 2022-12-27 1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역사 읽기를 언제 따라가보나 합니다.
페이퍼 따라 쫓아갈 날이 ;;) 그나마 딱 한 권 겹쳐서 다행이에요. 내년에도 영양가 높고 고급진 페이퍼 부탁드려요. 😊

단발머리 2022-12-27 1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저도 인상깊게 봤는데 (대출해서 읽느라 완독 못 했음요. 뜬금 없는 고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 화가님 올해의 책이라니 내년에는 꼭 완독하렵니다. 많이 읽으셨어요, 멋지십니다!
역사 관련해 책 읽고 싶으면 무조건 거리의 화가님 방으로 와야겠어요!!

라로 2022-12-27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한 권 겹치는데 저는 아직 다 안 읽었어요. 빌레뜨 2 방금 다 읽었으니 내일 김연수 책 다 읽겠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2-27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화가님 서재에서 많이 봐서 책 제목들이 눈에 익숙합니다^^
다 좋은 책이었군요!!
김연수 작가님 책은 소설가 50 인이 뽑은 1 위의 책이라고 오늘 유튭에서 보았어요.
저는 사다놓기만하고...^^;;;
암튼 계획한 책들을 모두 다 완독하셨다니 전 그게 더 대단하시단 생각이 드네요.
장하십니다^^

모나리자 2022-12-27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거의 역사에 관한 책을 꼽으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사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듯합니다.
새해에도 왕성한 독서활동 이어가시길 바랄게요. 거리의화가님.^^

새파랑 2022-12-27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은 역사 천재~!! 따라갈수가 없습니다~!! 전 역사 책 보면 전공서적 보는 느낌이 들어서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 화가님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

독서괭 2022-12-27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목록 멋지십니다. 특히 계획을 거의 다 실천하셨다니 대단!! 저도 계획을 세우고 독서를 해봐야겠어요.
“오랫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노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결과물 읽으시며 화가님도 오랫동안 이어오신 역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보답받으신 느낌이^^ 꾸준함에 탄복합니다. 새해에도 많이 읽으세요!

페크pek0501 2022-12-27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관한 책을 고를 땐 앞으로 거리의화가 님께 여쭤보고 읽어야겠단 생각이 드는 멋진 페이퍼였습니다!!!

자목련 2022-12-28 0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책은 김연수 소설집 하나뿐입니다. 계획대로 실천하는 화가 님, 멋지십니다^^

거리의화가 2022-12-28 10:2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저도 서재에서 친구분들의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쁜 한해를 보냈습니다.
내년에도 열독으로 채우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기원하며!

수이 2022-12-28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랑 겹치는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화가님 만나서 행복한 한 해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선 2023-01-01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죽 책을 보셔서 이런저런 걸 아셨겠네요 거리의화가 님 2023년에도 역사와 함께 다른 책도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희선 2023-01-08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한해 읽은 책에서 좋았던 책 정리해서 그 책 한번 떠올리셨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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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안보는 미국의 보장으로 시작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는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과 국가의 성립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으므로 난항
라틴 아메리카에서 공산 확산 흐름 방지를 위한 미국의 개입

미국 국방부는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일본 영토에 미군 기지를 계속 보유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찬성했다. 실제로 미국은1951년 9월 8일에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오키나와섬에 대한 사법재판권 일체를 보유했다. 오키나와는 117개 미군 기지와 함께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 구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동시에 체결된 미·일 안보조약에서 일본은 자국 영토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국내 분위기를 고려해서 보수 정치가 요시다 시게루田※ 총리는 당시 미국 정부가 원한 일본군 창설 의무를 조약에 포함하기를 거부했다. 반면에 미국도 일본이 침략을 받을 때 일본을 방어할 의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요시다는 미국 교섭자들에게 5만 명 규모의 일본군을 창설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내밀히 말했다. 하지만 ‘자위대‘를 창설하는 법안이 1954년 3월에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후 불평등한안보 조약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협상의 진통 끝에 1960년 1월 21일에 수정 안보조약이 탄생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고 기존의 공군기지를 확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그 대신에 이제는수정 조약에 군사원조 보장과 상호 자문 의무가 담겼다. 그 외에도 일본은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권리를 가졌다. - P60

공산주의가 성공을 거둔 곳은 공산주의가 빈농이 빈궁한 삶을 개선하도록 돕고 옛 식민 권력과 결탁한 상류층이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그들의 반식민 원칙보다 더 강력히 그 대결에휩쓸려 들어가서 태평양 지역의 군사적·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열강으로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대서양 지역과 같은 정치 결속을 갖지 못했다. 일본과 일본의 옛 지배 지역 사이에 반목이 지속되었고,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로 인해 1954년 초에 미국이 ‘공산주의 침략자들‘에게 맞서자며 제안한 군사동맹에는 영연방국가들인 영국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를 빼고는 단지 필리핀과 태국, 파키스탄만이 참여했다.
1954년에 정식 창립된 ‘동남아시아 조약기구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 SEATO’는 정치적 의미가 거의 없었다 - P65

문제는 다만 인도아대륙의 상이한 지역과 다양한 지방의 행정 통솔권을누구에게 넘겨야 할지가 불분명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Nehru 가 이끄는 국민회의는 다양한 민족 집단과 카스트와 종교 공동체를 결속할 하나의 인도 중앙 통합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파트너를 자청했다. 하지만무함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가 이끄는 무슬림 연맹은 이슬람 주민을위한 독자적인 국가(그의 모국어로는 ‘순수한 땅‘이라는 의미의 ‘파키스탄‘)의 건설을주장했기에 국민회의의 권위는 도전받았다. 아마도 진나는 느슨한 형태의 인도 국가연합의 틀에서 이슬람 주와 힌두 주들이 서로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는 방식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구상은 국민회의의 단일 전체 국가 건설 계획과는 합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인도에서 독립은 실상 분단을 대가로 달성될 수 밖에 없었다. - P66

1947년 3월에 영국 노동당 정부는 루이스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경을인도 총독으로 임명해 파견하면서 1948년 8월까지 인도 독립을 완수하라는임무를 맡겼다. 진나가 통합 국가 방안을 지지하도록 만들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마운트배튼은 종교적 기준에 따른 분단을 결정했다. 그것은 진나의 파키스탄을 북동부의 펀자브와 남동부의 벵골 지역 전체로 확대하지 않고 다만 이슬람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한정하는 것을 뜻했다. 펀자브의 비옥한 동부 지역과 대도시 캘커타Calcutta (콜카타)는 인도 영토로 남았다. 소요와 무정부상태를 막기 위해 마운트배튼은 계획을 서둘러 실천했다.
1947년 6월 3일에 관련 협정이 체결되었고, 1947년 8월 15일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국가로 선포되었다. - P67

유럽 열강은 근동과 중동에서 아랍 민족주의의 등장과 대면해야 했다.
아랍 민족주의의 발전 배경은 근대적 중간층의 성장이었다. 아랍 민족주의는제국주의자들에게 종속되는 것에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그 지역을 장악할 때 협력했던 전근대 지배 엘리트들에게도 각을 세웠다. 그렇기에유럽인들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승인한 것을 빼면 경제 부문과 군사 부문에서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유럽인들이 권력을 상실한 것은 종종 일어난 내부 봉기와 소요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아랍 민족주의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갈등으로 가속화되었다. 그것은 1917년 11월에 영국이 그 지역에서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거주지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말미암아 촉발되었다. - P69

신속한 탈식민화를 위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경제 침체와 억압 부활의악순환이었다. 그 신생국들에서 경제 발전이 자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무역과 광업과 공업을 장악했던 유럽 회사들과 지역 금권정치가들 사이의 비열한 동맹이 더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원주민들이 생산성 진보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곳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장기적으로 그 어떤 발전 전망도 없는 ‘제4세계‘로 전락했다. - P80

미국은 카스트로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입지를 더 강화했다. 여러 남미 국가에서는 쿠바 혁명을 본받아 혁명 투사들이게릴라 투쟁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대게릴라 작전 전문가에게 배우고 미국의 군사 지원금에서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한 경찰과 군부대들이 게릴라들을패퇴시켰다. 그렇다고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가 몰락한 후 그것을 대신해 제국주의 세계열강이 되었다는 비난을 들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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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와 권력관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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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역의많은 관찰자가 주장하듯이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근본적으로 변해 미국이 더는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변화의 동력을 이끌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략이나 경제와는 무관한 발전들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해졌기때문일까? - P17

분명히 이 초국가적인 연계와 사유가 모두 평화나 정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1945년 이후의 역사는 낯선 사람과 대상에 대한 몰이해, 심지어 자기생각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의 무수한 예를 보여 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6권은 (아울러 이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남성과 여성, 어린이, 그들의 주거 공간, 그리고 동물과 새, 물고기, 식물들이 모두서로 의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관한 자각이 증대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 P19

미국은 채권국이자 전쟁 물자 공급국이라는 역할을 활용해 미국 상품을위한 새로운 시장과 미국의 영향력이 미칠 새로운 영역의 확대라는 목표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 P27

미국과 소련은 경제체제와 정치 질서가 서로 달랐지만, 애초에 구체적인경제 이익의 여러 차원에서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미국은 전쟁 수요에 의한 생산 확대가 끝난 뒤 실업 증가와 경기후퇴를 초래할 과잉생산을 피하기 위해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반면에 소련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결과를 - P32

극복하고 전후 주민들의 기대를 소비 상승으로 충족해 주기 위해 더 많은 공업 제품을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 P33

합의를 통해 전후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계속 활용되지 못했고, 그대신에 냉전이 개시되면서 유럽은 분열되었다. 그것은 우선 매우 특별한 무능력의 결과였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협력 제안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 줄 몰랐다. 마찬가지로 서구 사회도 그와 같은 협력에 필요한 통찰력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음 상황, 즉 쌍방 간의 인지 오류가 발생했다. 양측은 점점 더 상대방을 침략자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런 인식이 확산될수록 다음 상황, 즉 적대 세력 간 경쟁 상황에서 항상 발생하는안보 딜레마가 점점 더 강력히 작동했다. 양측은 모두 혹시라도 있을 상대방의 침략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다. 그런데 그것은 상대방에 의해 공격 의도를가진 증거로 해석되었고, 계속 또 다른 대책을 필요하게 했다. 이중적 악순환이었고, 그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 P37

1947년 3월 12일에 그리스와 터키를 원조하기 위한 기금을 요청하고자 대통령이 의회에서 발표했던 ‘트루먼 독트린‘은 소련과 미국의 갈등을 이제 ‘테러와 압제‘ 대 ‘자유‘ 체제의 세계적 투쟁으로 규정했다. 트루먼은 세계 도처에서 이 자유를 지키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라 밝혔다. 이제 국무부 정책 기획관이 된 케넌과 국무 장관조지 C. 마셜George C. Marsall은 유럽 각국을 위한 개별 원조 계획을 하나의 다 - P45

자적 재건 프로그램으로 포괄함으로써 프랑스의 저항을 극복했다. 그것은 동시에 프로그램 참여국의 통합을 위한 길을 열어 주었다. 이제 원조가 다시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서유럽국가에 유럽 통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독일의 부활을 통제할 수 있음을보여 주었다. 1947년 6월 5일에 국무부 장관이 프로그램을 설명한 뒤 그것은 ‘마셜플랜‘으로 알려졌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세력이 강한 서유럽 국가에서 마셜 플랜을 관철하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에도 참여가 제안되었다. 그리하여 이미 시작된 유럽 분열을 다시 돌릴 기회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생겼다. - P46

서유럽 공산당 지도부는 종전 후 계속 쌓인 사회적 불만을 지지자들이자유롭게 폭발시키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결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1947년과 1948년의 겨울에 대규모 파업 운동이 일었다. 그것은 때로 폭동의양상을 띠었다. 물론 그것은 서유럽에서 미국의 정책 목표가 관철되는 것을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촉진했다. 지금까지 소련이 서유럽으로 팽창할 것이라는 미국의 공포를 근거 없다고 무시했던 대다수 서유럽인은 대규모 파업 행동과 이른바 제국주의자들을 겨냥한 전투적 공세를 보면서 서유 - P47

럽 공산당들이 현존 질서의 전복을 획책하고 소련이 유럽 전역을 자기 통제하에 장악하려고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내각에 참여하는 일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대항문화‘의게토로 추방당했다. 정치의 무게 추는 뚜렷이 우파로 기울었다. 마셜플랜을통한 재건은 반공주의라는 광범위한 동의를 토대로 수행되었다. - P48

1949년 말에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가 붕괴한 자리에 이렇게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권력 블록이 만들어졌다. 그 블록은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승전 주역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유럽은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뉘었다. - P51

내전 발발 여부를 결정한 것은 결국 중국 내부의 당파투쟁이었다. - P54

1951년 6월에 중국군과 북한군의 지도부는 휴전협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 기간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이 동맹국들에 서둘러 양보하지는 말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한국에 묶어두는 것은 철저히 스탈린의 이익에 맞았다. 1953년 3월에 스탈린이 사망하자비로소 후임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서 평화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을강구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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